2019-03-30

설민석 - 석굴암을 일제가 고의로 훼손했다고? 역사 왜곡입니다 - 조선일보 > 사회 > 아무튼,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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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석굴암을 일제가 고의로 훼손했다고? 역사 왜곡입니다
권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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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3.16 03:01

한국사 강사 설민석씨 또 논란
한국사 강사 설민석씨는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의 3·1절 특집에 나와 "석굴암은 일제가 고의로 훼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tvN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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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명예를 훼손해 유족들에게 손해배상까지 했던 한국사 강사 설민석(49)씨가 또다시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렸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TV 예능 특집 방송에 출연해 "석굴암을 일제가 고의로 훼손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것 때문이다.

설씨는 지난달 25일 tvN 예능 프로그램 '문제적 남자'에 나와 전현무 등 연예인들을 상대로 역사 강의를 하면서 석굴암 얘기를 꺼냈다. 그는 이 방송에서 조선통감부(조선총독부의 전신) 2대 통감이던 소네 아라스케(1849~1910)가 석굴암 앞에 서 있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소네 아라스케가)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한국의 문화재들을) 여기저기 훼손했다"며 "콘크리트와 시멘트를 발라서 우리의 석굴암을 완전히 훼손시켰다"고 말했다. 또 "석굴암은 수학과 기하학, 과학의 완벽한 결정체"라며 "(석굴암 훼손엔) 일본의 질투도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방송이 나간 뒤 포털 사이트와 소셜 미디어엔 "방송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났다" "질투도 정도껏 해야지 일본 너무하다"는 등의 글 수백 건이 올라왔다.

하지만 인터넷을 중심으로 설씨의 주장이 명백히 틀린 사실에 근거한 역사 왜곡이라는 반론이 바로 나왔다. 일본이 석굴암에 콘크리트를 바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석굴암을 훼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수공사를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화재청과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일제는 1912~1923년 사이 총 세 차례에 걸쳐 보수공사라는 명목으로 석굴암을 조사하고 공사를 벌였다. 설씨는 마치 소네 아라스케가 석굴암 훼손을 주도한 것처럼 얘기했지만, 실제 공사는 아라스케가 죽고 조선통감부가 총독부로 바뀐 뒤인 1912년 데라우치 총독이 시작한 것이었다.

또 설씨는 방송에서 일제가 손을 대기 전 "석굴암은 1000년 이상 곰팡이 하나 안 슬었을 정도로 완벽하게 보존됐다"고 주장했지만 문헌 기록에 따르면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1912년 당시 석굴암 조사 보고서를 보면 이미 석굴암 천장의 3분의 1 가까이가 파손되어 구멍이 생겼고 그 구멍으로 흙이 쏟아져 본존불상이 파손될 위험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일제가 보수공사를 하며 콘크리트와 시멘트를 쓰는 바람에 석굴암 내부에 습기가 차는 등 상태가 나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 역시 당시 문화재 보존 기술의 발달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었다는 게 한국 학계의 중론이다. 대통령령에 따라 편찬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일제의 보수공사에 대해 "당시 새로운 재료와 기법으로 등장한 시멘트의 효능을 믿고 사용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박정희 정부 때인 1963년 석굴암 연구의 대가였던 고(故) 황수영 동국대 교수 주도로 석굴암 원형을 복원하는 공사를 벌였지만, 이 역시 부분적으로 오류가 있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이때 석굴암 앞에 목조(木造)건물을 세웠는데, 이게 원형에서 벗어난 것일 뿐 아니라 습기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단 지적이다. 또 1963년 공사 때 석굴암 입구 양쪽 팔부신중(八部神衆·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 가운데 맨 앞 한 쌍만 90도 꺾여 있는 것을 바로 폈다. 일제가 이걸 꺾었기 때문에 바로잡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07년 성균관대 박물관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일제가 첫 보수공사를 하기 전에 팔부신중의 맨 앞 한 쌍이 90도로 꺾여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신라시대 석굴암의 원형에 대해선 정확한 사료가 없을 뿐 아니라 '숭유억불' 정책을 시행했던 조선시대를 거치며 석굴암이 어떻게 변형되었는지조차 추측할 수 없기 때문에 설씨처럼 일제가 이를 고의로 훼손했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반일 감정만 부추기는 주장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일제가 선의만으로 석굴암 보수공사를 한 것 역시 아니다.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는 "일제는 석굴암 보수공사를 통해 조선의 과거와 현재를 대비하면서 문명화된 일본이 조선의 옛 영화를 되찾아 줬음을 과시했다"며 "일제의 식민통치를 미화해선 안 되지만 사실과 다른 주장을 지상파 방송에서 가감 없이 내보내는 건 불필요한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반대편에서 일본 식민통치를 부정하는 이들에게 비판의 빌미를 주는 일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B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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