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9

高橋亨, 『朝鮮人』. | FELIVIEW



高橋亨, 『朝鮮人』. | FELIVIEW




高橋亨, 『朝鮮人』. 2016년 2월 9일 종로 보신각 앞의 삼일운동 군중 사진. 이들 각자는 어떤 조선인일까?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떤 삶 의 궤적을 지나 이 자리에 선 것일까? 사진기와 사진사를 바라보는 앉아있는 저 여인은? 다카하시 도루(高橋亨), 『식민지 조선인을 논하다(朝鮮人)』, 구인모 역, 동국대학교출판부, 2010. “틀린 말이 하나도 없네.” 목차를 일별하고 내용을 읽기 시작했을 때였다. 조선인, 조선땅, 조선역사에 대해 정태적 특성과 다양한 한계를 지적하는데, 별반 반박할 말이 없었다.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인』은 총독부에 의해 두 번 발간되었고, 무라야마 지준이 “조선 민속”에 대한 책을 편찬할 때도, 이 내용을 전 재했다고 한다. 이 책의 내용은 처음 1917년 일본에서 『일본사회학원연보』라는 ‘사회학’ 학회지에 실린 후, 조선으로 파견되는 식민지 관료, 지식인의 필독서요, 지참물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인에 의해서 처 음 만들어진 조선에 대한 ‘민족지(ethnography)’인 셈이다. 식민지를 개척하러, 본국에서 관리나 지식인을 파견할 때, 식민지에 대한 여러가지 지식을 담아 “민족 지”의 형태로 손에 들려서 보낸다. 식민통치자는 식민지의 피통치민과의 접촉이나 경험 혹은 현장조사 를 통해서 알게 된 지식을 근거로 식민지를 통치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본국으로부터 가져 온 이미 알고 있는 지식에 근거하여 통치한다. 그러므로 이 통치의 근거가 되는 지식은 이미 기성의 지식이 되어 식민지에 새로운 균열,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내게 되고, 식민지를 다시 재단한다. 그런데 이런 통치의 기반이 되는 지식인 “민족지”는 동양학자의 현지조사 보다는 비록 여행기 등이 포함되지만, 동양학자의 도서관에서 문헌 조사를 통해 만들어진다. 물론 이때의 식민지는 동양이다. 다카하시 도루, 『조선인』은 이런 점에서 아주 전형적이다. 다만, 일본 스스로도 동양의 일부라는 사실만 빼고. 물론 위에서 말하는 식민지는 모두 동양이다. 따라서 이런 식민지 “민족지”란 오리엔탈리즘의 지식 구조 안에서 움직인다. 다카하시 도루(高橋亨)는 동경대 출신으로 조선총독부 학무국 촉탁으로 와서 구관제도조사사업에 참여 했고, 구술문화유산과 고도서의 정리, 한 마디로 규장각 도서를 정리했다는 말이다. 또 경성제국대학 창 4/29/2020 高橋亨, 『朝鮮人』. | FELIVIEW feliview.com/modern-hist/themodern/ttakahashi-chosenjin/ 2/5 립위원회 간사, 즉 경성제대(오늘날의 서울대) 기본 골격을 잡았고, 여기서 교수로 있으면서, 조선어조 선문학의 기틀을 잡았고, 혜화전문학교(후일 동국대학교)의 교장도 지내는데, 이는 저자의 평소 소신, 즉 일본 불교를 들여와서 조선인 교화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이 반영된 듯하다. 그는 경성경학 원 제학 및 명륜연성소 소장 등 일제시대 유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패전 후에 일본에 귀국하 여, 텐리(天理)대학 교수로 조선문학, 조선사상사 등을 가르쳐, 일본에서 한국학의 기초를 잡았다. 그의 한국유학사와 한국종교사 저술, 『조선유학대관』과 『이조불교』 등은 아직도 극복대상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다. ‘국민성’ 혹은 ‘한국인론’. 참 지겹게 듣던 말이다. 한국의 국민성 혹은 민족성은 이렇다, 저렇다, 한국인 은 원래 이렇다, 저렇다. 그런 말이나 글을 곰곰히 읽어보면,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 겠다. 한두 가지 그럴듯한 사례를 통해 전체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일. 말이야 그럴 듯하다. 나는 그런 글을 읽을 때, 종종 나는 한국인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이런 말들의 근거는 무 엇일까? 그리고 그런 말들의 가장 원형적 지식이 들어있는 책 한 권을 보게 되었다. 그것이 다카하시 도 루의 『조선인』. 이 모든 한국인론의 원형이다. 그리고 이것은 식민 통치를 위한 지식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과 구성은 사이드가 지적하고 있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적 “민족지”. 내용은 이런 순서로 기록된다. 조선의 지리, 지질, 인종, 언어, 사회, 역사, 정치, 문학·예술, 철학, 종교, 풍속·습속을 말하는 것이 총론이다. 내용은 이렇다. 조선은 중국의 속국으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12) 조선의 지질은 고생대층으로 안정적이다.(13) 우랄알타이와 한족이 섞였으나 일본은 아니고, 예의를 중 시한다.(14) 조선어의 존비어에 사회계급 인식이 들어있다.(15) 조선은 사회적 계급이 강력하다.(16) 조선 역사는 가치가 없다. 조선인은 조선 역사가 아닌 중국 역사를 배운다.(17) 조선의 정치제도는 중 국풍이며, 외교를 중시하는 안정적 중앙집권 국가다.(18) 조선의 예술은 빈약하다.(20) 조선 철학은 주 자학이 들어온 후 진보나 발전이 없이 화석화되었다.(21) 조선 불교는 쉽사리 몰락했다, 조선인은 정치 만능의 민족이다.(23) 조선백성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풍속을 유지하는 나라다.(24) 구석구석 따지 고 들면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뭐 딱히 틀린말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나서 각론으로 들어가 열 한 가지 특성에서 조선인을 고찰한다. 사상이 고착되어 있다. 한 사상 이 들어오면, 사상의 자유로운 투쟁이 별반 없다는 것이다. 주자학 일변도라는 말. 사상의 종속. 조선의 사상은 독창성이 없어 중국에 종속되어 있고, 일본처럼 사상을 변형하거나 새롭게 만들어 내지 못한다 는 것.(42) 형식주의. 조선의 사상가들은 형식논리에 집착하고, 형식논리에서 설득되면 받아들는 저급 한 철학에 매여 있다는 것. 형식논리의 원리를 벗어나서 직관을 따르지 못한다는 것.(47) 당파심이 보 편적이라, 양반은 물론 중인, 평민도 각기 당파를 짓고, 그리스도교의 확산이나 동학의 교리 역시 평민 들에게 일종의 당파를 형성하는 것이다.(51) 문이 무를 천시하는 ‘문약(文弱)’의 전통이 있다.(57) 심미 관념이 결핍되어 있다. 조선의 예술은 사실 별볼일이 없고, 신라 시대가 그나마 조금 나았으며, 조선중 기 이후 완전히 퇴화했는데, 이는 유교, 가렴주구, 가난이 원인이다.(60-62) 조선인들은 공사를 혼동한 다. 여기에는 소극적인 혼동과 적극적인 혼동이 있는데, 공물을 사물로 삼지 않더라도, 공적 사무를 사 사롭게 처리한다. 병을 핑계로 공무에 태만하든가, 친척, 처자의 병을 핑계로 결근하거나, 노부모 및 가 족 봉양을 구실로 원지 부임을 고사한다든가, 부양가족이 많으므로 지방관직으로 전근을 청하는 것 등. (69) 다음에 관용과 위엄, 순종, 낙천성 등 발전시켜야 하는 특성들이 나온다. 4/29/2020 高橋亨, 『朝鮮人』. | FELIVIEW feliview.com/modern-hist/themodern/ttakahashi-chosenjin/ 3/5 이상의 내용은 1917년에 쓰여진 것이다. 그러나 1919년 일본에 큰 충격을 주는 3.1운동이 발생한다. 그는 이 운동을 역시 사대주의의 결과라고 본다. 현실적이지 않은 논리(민족자결주의)를 가능한 일인 것처럼 믿고, 대국(미국)의 원조가 있는 것을 암시하거나 선동했다는 것.(96) 조선이 사대주의를 하지 만, 원나라가 망하자, 명나라로 갈아타고, 명나라가 흔들리자 청나라로 갈아타고, 다시 일본으로 갈아탔 다는 식이다. 조선인의 마음은 한 부분은 미국화하고, 다른 한 부분은 일본화하여, 미국인도 아니고 일 본인도 아닌, 미국화하고, 일본화한 조선인이 문제로, 일본에 유학와서 서양화한 조선인에게서 영향을 받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100-101) 후론(1920년). 이어지는 2부에서 조선 개조의 근본문제로 학문과 정치의 전통적 구속에서 해방시키고, 교육제도를 개 정하고, 종교대학을 설립하며, 정실사회에서 실력양성의 사회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3.1 운동에서의 기독교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서양 선교사의 의견을 유일한 이유로 삼지 안혹, 그 아래 에서 일하는 박봉에 무학의 조선인 목사 혹은 신자들의 지도자 등 이른바 교회 회원들의 집단이 형성하 고 발표시킨 일종의 군중심리와도 같다.”(119) 선교사들은 본국과 일본 및 총독부의 요청과 지도로 3.1 운동에 반대했다. 조선에 교육, 특히 고등교육, 종교교육 기관이 없어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 또 3.1운동 이후의 문화정치에 대해 칭찬하면서, 그 목표를 ‘국민화(nationalization)’인 것으로 설명한 다. “세계대전 이후 구미 각국, 특히 미국에서 두드러지는 국책이 국민화정책이라는 것은, 구미 지역을 돌아 다녀 본 이들이라면 한결같이 깨달은 바이기도 하다. 미국과 같은 국가의 정세에서는 아무리 건국정신 이 민본주의에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 자립의 근본 방책은 반드시 국가주의에 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 도없다. 그래서 미국 국민의 국민화정책은 현재 최고, 회대의 국책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국민화정 책은 국어·종교·인종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행되어야만 하는데, 그 시행 방책의 중심은 공통교 화에 있고, 이에 공통교화정책이 국민화정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공통교화를 통해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설사 서로 인종·언어·종교가 다르고 습속이 다르더라도, 언제가 부지불식간에 동 일한 사상·취미·판단·사고방식을 지니게 되어, 국민적 성격 양성의 계기를 얻게 될 것이다.”(130) 이 문화정치에 대한 반일운동으로 일본문화의 고유성을 부인하고, 일본 문화의 수준을 조선보다 낮게 보며, 식민지 경험이 조선을 진보시키지 못했고, 조선 역사를 위대하다는 등으로 날조하며, 조선어를 존 중하고 발달시킨다고 비판한다. 본문이 150쪽이 채 되지 않는 이 짧은 책에는 오늘날 한국에서 등장하는 한일간에 주고 받는 온갖 속설 이 거의 모두 들어있다. 그렇다면, 이제 이런 내용을 하나씩 들어, 그 전적의 근거와 옳고 그름을 따질 차례인가. 그것이 오늘 이 땅의 민족주의자들이 날마나 하던 일이다. 1920년대 식민지 지식인 시절부 터 하던 일. 그리고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주장하던 일. 그리고 그 일은 1860년대에 일본이 하던 일이기도 하다. 역자 해제에 따르면 메이지 시대에는 일본에 서 자국에 대한 학지를 구성하면서, 일본인에 대한 심성 연구가 활발했다. 그 결과 하가 야이치의 『국민 성십론(国民性十論)(1907)이나 대일본문명협회의 『서구인의 일본관(欧米人の日本観)』(1906-1907) 등이 등장한다. 국민의 초역사적 공통 심성인 국민성을 규정한다. 내용은 생략하지만, 다카하시 도루의 4/29/2020 高橋亨, 『朝鮮人』. | FELIVIEW feliview.com/modern-hist/themodern/ttakahashi-chosenjin/ 4/5 조선인과 비슷한 부분도 있다.(180-181) 역자는 일본의 문헌들을 근거로 이런 국민성 담론은 독일 관 념론 철학과 낭만주의 민족성, 민족혼 관념의 영향으로 칸트, 헤르더의 영향과 진화론, 우생학 등의 영 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182) 그런 연장선에 ‘중국인론’도 있다.(183) 이런 논의가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일본이 밟아온 궤적이다. 일본은 서구 침략의 대상이 되었을 때, 문 호를 개방하면서, 서구에 의한 ‘일본인론에’에 시달렸다. 그리고 그 일본인론을 내면화했다. 자기 스스 로 일본인이 어떻다는 것을 연구했다. 점점 더 일본은 서구와 다른 일본 만의 특성이 있다는 식으로 일 본인론을 발전시켜갔다. 그리고 그 일본인론은 ‘근대 초극’을 내세우면서 아시아와 태평양을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어쩌면 독일도 유사한 길을 걸은 것은 아닐까. 한국도 비슷한 궤적을 밟고 있다. 다만, 한국인론을 내세우려고 해도 힘이 없어서, 요즘에는 좀 주춤하 는 것 같다. 한때 세계화를 외치면서 잘나가던 시절에는 너도나도 한국인론이 등장했지만, 국내외적으 로 어려움을 겪는 요즘 한국인 특성론은 주춤하다. 일본의 접근과 한국의 접근은 쌍동이처럼 똑같은 방법론이다. 일본은 성공했고, 한국은 실패했다는 차 이가 있긴 하지만. 오리엔탈리즘을 내면화해서 새로운 식민지에 오리엔탈리즘을 투과하는 방식이다. 동 양인 일본은 동양사를 창안해서, 동양안의 동양으로 대만, 조선, 중국, 만주를 개발해 냈다. 그러나 2차 대전 후에 독립한 한국은 그럴 방법이 없어서, 좌절을 겪고 있다. 그럴 방법이 없는게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그렇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성찰하게 된다. 이것은 역자도 지적하듯, “집단적 정체성(collective identity)”를 규정하는 규정성의 문제이다. “집단적 정체성”을 규정하고, “집단”의 일원으로 개인을 호 명하는 통치의 전략이다. 상대가 자기와 같은 국민(nation)인 피지배층이든, 다른 종족인 비지배층이 든. 따라서 요즘 유행하는 말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개인’을 발견하 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 이렇게 저렇게 다를 뿐이다. 전후 일본에서 마루야마 마사오를 필두로 한 리 버럴 들이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를 재발견하려 했던 것도, 개인을 발견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리고 2016년 ‘헬조선’에서는. 다시 세대 담론이 생겨나고, 선거를 앞두고는 지역 담론도 횡행한다. 생 각해 보면, 시급 알바는 젊은 세대 뿐인가. 어제 처가에 다녀오는 길에 휴게소 분식점에서 피곤한 듯 일 하던 50대 후반은 족히 되어 보이는 아르바이트(명찰도 있었음)는 시급 알바가 아닌가. 소기업 공장에 서도 알바로 차별받는 일당 직원들. 우리 집문을 두드리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택배기사는 최저임금 보다 훨씬 많이 버는 것도 아니지 않나. 결국 빈곤과 비정규직, 저임금의 문제일 뿐이다. 나이의 문제가 출생연도의 문제가 아니고. 마치 조선에서 예술이 발전하지 못한 것은 가난했기 때문이었던 것처럼. 조선인들은 그때 그런 모습이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들은 가난했고, 다른 기회가 없었고, 지배층의 힘은 상대적으로 컸으며, 탈출구도 없었다. 그런 것은 수많은 이유와 원인의 결합으로 드러난 일종의 현상인 동시에, 전통사회의 특성이 동질성으로 발현된 것이지, 유전자에 새겨진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모두 지배전략일 뿐이다. 그러니 이제 ‘국민성’, ‘한국인’, ‘세대’. 이런 이야긴 그만 집어치우자. 굳이 하겠다 면, 말릴 도리는 없으니, 그냥 나한테만 하지 마시라. 4/29/2020 高橋亨, 『朝鮮人』. | FELIVIEW feliview.com/modern-hist/themodern/ttakahashi-chosenjin/ 5/5 * 괄호안의 숫자는 책의 쪽수이다. ** 이 글의 저작권은 ⓒFELIVIEW.COM에게 있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이 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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