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30

[남정욱의 영화 & 역사] 간신 토벌에 나섰던 日청년 장교들의 오판 - 조선닷컴 - 오피니언 > 전문가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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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의 영화 & 역사] 간신 토벌에 나섰던 日청년 장교들의 오판

입력 2020.04.29 21:30 | 수정 2020.04.30 00:41
['우국']
日王 배신에 투항·처형·자살… 무모했고 실패했지만 결기는 인정
국내 우파, 혜택만 향유·허약한 이론 무장·젊은 세력 양성 부재…
"용기 있는 자 나서고, 비겁한 자 퇴장하라" 老학자의 말 떠올라


남정욱 작가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 때 나는 두 번 놀랐다. '참고'한 작품이 너무 유명한 것이어서 놀랐고 가져다 쓴 원문이 너무 초라해서 놀랐다. 그 작품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이다. 역동적인 기세의 애국이 아니라 격렬하지만 우울한 상념의 우국이니 당연히 비극이다. 젊은 내외가 자살한다. 남자는 주도적으로 죽고 여자는 순종적으로 따라 죽는다. 남자는 황군 만세를 유서에 쓰고 여자는 부모보다 앞서 가는 불효를 군인의 아내인 까닭으로 돌리며 죄송해한다. 소설의 배경은 2·26 사건이다. 1936년 2월 26일 육군 청년 장교들이 천황을 위해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러나 히로히토가 자신들을 반란군 취급하자 실망 끝에 자살하고 투항하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된다. 총 들고 나서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에는 정신적 지도자가 있다. 기타 잇키(北一輝)라는 인물이다. 아, 표현을 수정해야겠다. 기타 잇키는 2·26 사건에 가둘 '사이즈'가 아니다. 요시다 쇼인이 방향을 제시하고 사이고 다카모리가 원형을 만든 일본 우익의 완결판이자 정점이 기타 잇키다.

1883년 작은 섬에서 태어난 기타 잇키는 골방 혁명가가 아니었다. 중국 신해혁명 때는 직접 불꽃 속으로 뛰어들어 쑨원, 쑹자오런과 함께 달렸고 '동양적 공화정의 중국'과 '동양적 군주정의 일본'이 연대하여 대(對)서양 동맹을 구축한다는 맹랑한 발상을 했다. 이상적인 군주정을 위해 그는 '천황 국체론(國體論)'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국체론은 일본 만화영화 '마징가 Z'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양팔은 각각 육군과 해군이다. 몸통은 정부이고 두 다리는 국민이라는 구조다. 그런데 머리에 조종사가 들어앉아야 그림이 완성된다. 그전까지는 거대한 고철에 불과한 이 로봇을 작동시키는 것이 바로 천황이고 그러니 토 달지 말고 충성하라는 게 국체론이다. 기타 잇키는 국체론의 핵심인 '천황의 국민'을 '국민의 천황'으로 180도 뒤집어 버렸다. 그에게 천황은 수단이자 국가에 봉사하는 하나의 '기관' 그 이상이 아니었다. 이른바 '천황 기관설(機關說)'이다(이 주장을 한 사람은 기타 잇키가 처음은 아니다). 기타 잇키의 눈에 당시 일본은 재벌과 정치 파벌이 천황을 빙자해 자기 이익을 실현하는 타락한 나라였다. 이걸 갈아엎자는 것이 그의 대표작 '국체론과 순정사회주의'와 '일본개조법안대강'의 핵심이었고 그의 저작들은 2·26 사건 주동자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그들은 암살과 테러, 그리고 군부의 봉기라는 방법론만 이해했을 뿐 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후 천황의 동의를 기다리라는 얘기가 아니었다. 천황을 '확보'하고 그에게 개혁을 요구하라는 얘기였다. 목적이 뚜렷하지 않았던 쿠데타는 결국 실패로 끝났고 기타 잇키는 순진한 청년 장교들을 현혹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도련님에게 투구를 빼앗겨 진 싸움'이라는 하이쿠(俳句)로 쿠데타를 정리했다(그에게 천황은 언제까지나 '애'였다). 처형 직전 여전히 정신 못 차린 사형수 일부가 "천황폐하 만세를 외칠까요?"라고 물었고 기타 잇키는 "안 해"라고 대꾸했다. 2·26 사건은 옆 나라 청년 엘리트 장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5·16을 앞두고 박정희는 "2·26 때 일본의 젊은 군인들이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궐기했던 것처럼 우리도 일어나 확 뒤집어야 할 것이 아닌가?"라며 기염을 토했다. 박정희의 10월 유신은 메이지유신이 아니라 2·26 당시의 혁명 구호였던 '쇼와유신'에서 따온 것이었고 '미친개에게는 몽둥이'라는 표현도 기타 잇키의 어록과 겹친다.


/일러스트=이철원


미시마 유키오는 '우국'을 영화로도 만들었다. 주인공도 자신이 맡았는데 그래서인지 영화 속 할복 장면은 사전 예행연습처럼 보인다. 기타 잇키의 속셈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던 그는 마치 반박하듯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배를 갈랐다. 때로 무모하기까지 한 일본의 우익을 보면서 나는 이 나라 우익에는 왜 그런 결기가 없는지 살짝 궁금하다. 누구 말대로 국가 위기 때마다 목숨 내놓고 앞장서는 인물들은 늘 정해져 있고 호국(護國)은 결코 좌익의 몫이 아니다. 오래전 양동안 선생은 용기 있는 우파 지식인들이 전면에 나서고 비겁한 자들은 퇴장하라는 요지의 글을 발표했다. 흙 안 묻히고 혜택만 향유하려는 습성, 허약한 이론 무장과 젊은 우파 양성 노력 부재를 질타하며 우익의 각성을 촉구했던 그 글을 다시 읽어 본다. 제목부터 참 우국적이다. 이 땅의 우익은 죽었는가. 오래된 그 말이 수십 년 세월을 넘어 생생하게 와 닿으니 이 무슨 까닭.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29/20200429040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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