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3

이광수 그의 자서전 5 북간도


5] 북간도

국가가를 거쳐서 용정으로 흘러 들어온 우리 세 사람의 행 색은 참으로 초조하였다. 돈이 넉넉히 있거니 할 때에는 비 록 초라한 옷을 입었더라도 마음이 든든하더니, 세 식구의 주머니에 돈이 천원 밖에 없는 오늘에는 마치 사람들의 값 이 떨어진 것 같아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우리를 낮추 보는 것 같았다.

엘렌의 백부는 마적에게 잡혀 가 죽고 그 식구는 본국으로 돌아 갔는지 부지 거처라는 소식을 들은 뒤로는 더욱 앞이 막막하였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주막에 있을 수도 없서서 집 하나를 얻 어 들고 나는 직업을 얻으러 나섰다.

우선 배운 재주가 그래도 교사니 교사 자리를 구할 수 밖 에 없었다. 그러나 이 학교 저 학교 돌아 다니며 「나 교사 로 써 주오」 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우선 사람을 사귀어서 저편에서 나를 끌도록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구월 새 학기고 벌써 시작이 되어서 교사 자리도 얼른 생기기를 바 랄 수가 없었다.

한 달쯤 지나는 동안에 나는 이 지방 누구누구하는 이들께 알려지게 되었다. 내 글의 독자도 몇 사람 만나게 되고, 치 타에서 내가 맡았던 일을 매우 중요한 일같이 생각하는 이 도 있었고, 내가 K학교 시대 좋은 교사였다고 소개하는 이 도 있었다.

그중에도 T라는 이 지방의 지도자가 나를 사랑하여 주었 다. T씨는 S중학교와 여학교의 교장이요, ○○ 회의 회 장이었다. 그는 나이는 아직 사십 내외지마는, 오랜 풍파에 시달려 얼굴이 퍽 노성하고 심히 열성이 있고 또 머리도 좋 았다.

나는 조선 사람중에 이러한 큰 인물이 있는 것을 기뻐 하 였다. 그도 무론 합병 전에는 조선에 있어서 ○○회의 중요 간부로 있던 사람이다. 내가 중동선 M역에서 한달이나 같이 있던 C씨의 동지다. 내가 C씨의 대필로 편지를 쓸 때에 이 T씨에게도 한번 길다란 편지를 쓴 것을 기억한다.

C선생이 선생께 드린 편지를 제가 대필하였습니다.

하고 고개를 끄떡끄떡하였다.

이 모양으로 내가 이 지방 인사에게 인정을 받은 첫 일로 나는 S학교 강당에서 남자 학생 일동에게 일장의 강연을 하 게 되었는데, 이 강연은 상당히 깊은 감명을 준 모양이었다.

T선생은 강연 끝에 내 손을 잡고 강연의 성공을 치하하였고 또 학생들도 나를 주목하는 모양이었다.

그후에 나는 여학교에서도 강연을 하였고, 또 일반 민중을 모아 가지고도 「시베리아에 계신 동포들으 현상」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였다. 나는 그 강연 중에 구라파 대전으로 아라사가 동병하던 광경도 이야기하여 오백여 명 청중에게 두 시간 반이나 강연을 계속하였다. 이 강연도 상당히 성공 인 모양이었다.

내가 친구의 가족을 데리고 이리로 오던 길에 ○○군에게 당한 이야기를 나는 T선생 기타 몇 사람에게만 하였다. T 선생은 내 말을 듣고는 다만 말 없이 고개를 끄떡끄떡할 뿐 이었으나, 나중에 어떻게 하였는지 돈 오천원을 도로 찾아 주었다.

『다 보내 드리라고 했는데 벌써 그것으로 무기를 샀다는 구려.

하고 T선생은 유감된 얼굴로 말하였다.

나는 그 돈 오천원을 받을 때에 참말 기뻤다. 그리고 수없 이 T선생에게 감사하였다.

내가 마아가릿과 엘렌에게 그 말을 할 때에 두 사람이 기 뻐하는 양은 비길 데가 없었다.

나는 그 돈 중에서 이천원을 떼어 남녀 학교에 각 천원씩 기부하고 그리고는 좀더 깨끗한 집을 하나 구하고 나머지 돈으로 땅을 장만하였다. 현금으로 두는 것이 안심이 안되 는 까닭이었다. 인제는 먹을 걱정은 없었다, 그 땅으로 농사 를 지으면 세 식구 먹고 입기에는 아무 걱정이 없었다.

오랫 동안 웃는 낯을 보이지 아니하던 마아가릿과 엘렌도 기뻐하였다. 그리고 이 지방에서 내가 차차 알려지고 대접 을 받게 되는 것을 제 일과 같이 기뻐하였다. 마아가릿이나 엘렌이나 다 내 친누이와 같이 나를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 였다.

나는 마아가릿과 엘렌에게 말하여 예배당에 다니기를 권하 였다. 마아가릿은 조선에 있을때에나 북경에 와서나 천주교 인이었고 엘렌은 아라사에서 자랐지 때문에 회랍교인이었 다. 그러나 그 부모들이 천주교나 회랍교에 들러 간 것은 아마 신앙 때문이 아니요, 일종 정치적 이용 때문인 듯하였 다.

남의 힘에 의뢰하는 마음 때문인 듯하였다. 그러므로 이러 한 교인들은 환경을 따라서 교파를 변하는 것을 그리 고통 으로 알지 아니하였다. 나도 시베리아에 있을 때에 회랍 정 교의 세례를 받으라는 권유를 여러 번 받았는데 그 이유는 아라사 영토에서 일을 하려면 아라사 국교인 회랍 정교에 입교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이었다.

조선에 있을 때에는 장로교나 감리교에 속했던 사람이 이

「편리」를 위하여 세례 받은 사람을 여럿을 보았다. 그러 나 나는 「편리」와 양심과를 바꾸도록 융통성이 있는 사람 은 못되었다.

이러하기 때문에 나는 마아가릿과 엘렌에게 종교를 바꾸라 는 망을 하기를 심히 꺼렸다. 나는 예비 행동으로 그들의 신앙을 타진해 보았다.

그 결과로 사실상 그들에게는 아무 신앙도 없음을 알았다.

그들은 다만 집안 어른들을 따라서 어느 교회에 다닌 데 불 과하였다. 내 권유를 따라서 그들이 신교파로 옮아 올 때에 그들은 아무 고통도 느끼지 아니한 것이 이 때문이었다.

『오빠 하라는 대로 해요.

『자도 그렇지요.

하는 것이 마아가릿과 엘렌의 대답이었다

『여기도 천주교당이 있으니, 만일 마음에 원하시거든 거 기 댕기시지. 신앙은 양심대로 할 것이요, 양심은 자유니 까.

나는 이렇게 마아가릿에게 말해 보았다. 그랬더니 마아가 릿은 나를 따라서 장로교 예배당에 다니겠다고 단언 하였 다.

우리 세 식구가 일시에 예배당에 함께 다니게 된 것은 이 지방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었다. 대개 이 지방에 사는 사람 은 그중에도 지식 계급들은 대개 교적에 이름을 두고 있었 다.

K학교에 있을 때에도 경험한 일이지마는, 무식한 교인은 대감과 서낭님을 믿는 이들이요. 지식 계급 사람들은 다라 고는 못해도 대부분은 행세로 믿는 교인들이었다. 교회 학 교의 직원이니 성경, 찬미를 끼고 예배당에도 가고 기도하 라면 곧잘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도 하고 설교하라면 제법 성경 구절을 펴 놓고 열번도 토하지마는, 그들이 학교를 고 만 두고 집에 가면 내가 언제 예수를 믿었더냐 하는 듯이 씻은 듯 부신듯이었다.

이러한 종류의 교인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종류의 교인이 도리어 점잖은 교인인 것 같아서 예수의 말씀을 고대로 믿 고 행해 보려고 애를 쓰는 나 자신이 퍽이나 단순하고 유치 한 것 같아서 낮이 붉어진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지 방 교인들도 대개 그러한 종류임을 나는 곧 보았다.

교회니까 목사도 있고 장로로 있고 집사도 영수도 있었다.

목사는 신학을 배운 사람이 하는 직업이지마는, 장로 이하 제직은 반드시 믿음이나 행실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일종 의 정치요 관로였다. 믿음 부족한 사람일수록 표리가 다르 고 구변이나 수완이 많은 사람일수록 이 벼술을 하기에 합 당한 듯하였다.

T선생도 예배당에는 다녔다. 그러나 그는 결코 설교는 아 니하였고 또 장로도 아니 되었다. 기도를 하려면 그것은 거 절하지 아니하였으나, 진정한 믿음에서 나오는 기도는 아니 요, 일종의 연설이었다. 나도 T 선생의 이 태도에는 심히 불만하였다.

왜 안 믿으면 교회에 오지도 말고 기도도 말 것이지 하고 이것을 옥의 티로 보았다. 그래서 한번은 내가,

T선생, 기도는 마시지오.

하고 참다 못해서 충고하였다. 나는 그처럼 T선생을 아낀 것이었다. 그에게 털끝만한 허물이 ㅡ 더구나 거짓이 있기 를 원치 아니하였다.

『고맙소이다. 유원의 말씀하시는 뜻을 내가 잘 압니다.

T선생은 이렇게 대답하고 그후에는 기도를 아니하였다.

정월 하기부터 나는 남녀 학교의 작문과 조선어와 대수를 맡아 가르치고 영어도 몇 시간 가르치게 되었다. 일년 남짓 하게 쉬었던 교사의 일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내 교수 방법은 학생들의 호감을 산 듯하였다. 작문 시간 을 이용해서 틈틈이 들려 주는 문학 이야기도 이 학생들에 게는 처음 먹어 맛있는 듯하였다. 나는 그것을 보고 만족 하였다.

물론 새로 굴러 들어온 교사인 나는 학교 행정에 대해서는 일체 관계하지 아니하였다. 직원 회의에도 나는 다만 가만 히 앉아서 들을 뿐이었다. 이것은 매우 지혜로운 일이었다.

내가 만일 이대로만 갔더면 나는 화평한 교원 생활을 할 수 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철 없는 교만이 있었다. 다른 직원들 이 하는 소리가 모두 마음에 차지 아니하였다. 더구나 남중 학교의 학감이라는 K씨는 음험한 꾀 밖에는 아무것도 취할 점이 없는 사람이었다. 명철한 T씨가 어찌해서 이런 사람에 게 학감의 일을 맡겼을까 하고 나는 T선생을 의심하고 싶었 다.

K씨는 키가 작고 통통하고 곰보요, 입술이 두껍고 푸르고 그리고 사람을 볼 때에 바로 보지 아니하고 눈을 치떠서 보 는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굽신굽신 겸손한 체하면서도 아무 의 말도 아니 듣는 고집과 거만이 꽉 차 있었다.

그는 일이학년 산술을 가르친다고 하나 산술도 아는 것 같 지 아니하였다. T선생이 다른 일로 결근할 때에는 수신을 가르쳤다. 나는 이것을 퍽 괘씸하게 생각한다.

나는 아무리 하여도 K학감에게 호의를 가질 수 없었다. 그 와 나와 혹시 단둘이 앉을 경우면 나는 외면하고 있었다.

그도 나를 좋아하지 아니하는 눈치를 여러 번 보였다. 나를 힐끗 보고는 그 검푸른 입술을 삐죽하고 코웃음을 하는 모 양이었다.

나중에 알아 본즉 T선생이 K씨를 학감으로 쓴 것이 아니 라, S참령이 처음 이 학교들을 세울 때에 자기의 심복인 K 씨를 남중학교의 학감으로 Y씨를 여중학교의 학감으로 썼다 가, S참령이 정치 운동하러 시베리아로 가면서 교장의 자리 를 T선생에게 사양하고 간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T 선생이 K, Y, 두 학감을 가볍게 천동 키 어려운 사정이 있 다고 생각하였다.

Y학감은 K씨와 같이 음험한 대신에 간악한 사람이었다. 해 해 웃어 가며 아첨해 가며 사람을 골리는 그러한 사람이었 다. 이마가 툭 나오고 눈은 혹보기요 목소리는 재재하는 위 인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학교에는 작문 네 시간 밖에 가르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이십 사 시간이나 맡은 남학교의 K학감에게 대 한 것과 같은 밀접한 관계는 없어서 그다지 내 마음을 괴롭 게 하지는 아니하였다.

S선생과 같이 열성 있고 또 음모라든지 간사라든지를 모르 는 광명한 사람이 어떻게 이러한 음험하지 아니하면 간악한 인물을 신임하였을까, 하고 나는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하 였다.

그러나 T선생에게 S선생의 성격에 관한 설명을 들을 때에 나는 고개를 끄떡일 수가 있었다. S선생은 자기가 단순하고 정직한 사람이므로 누구나 믿었고, 또 자기가 간사하거나 아첨할 줄 모르는 대신에 간사하고 아첨하는 사람을 더 잘 믿은 것이었다. S선생의 말년의 실패 ㅡ 일생의 실패가 그 가 사람을 바로 볼 줄몰라서 음험, 간악한 무리의 농락감이 된 데 있었다.

K학감, Y학감은 장차 S T와의 교정을 끊고 큰일을 그르 치고, 그리고 S망하게 할 인물이 된것이다.

내가 T교장과 다수 직원과 학생과 또 일반 인사들에게 사 랑과 신임을 받게 될수록 K학감과 나와의대립이 눈에 띄우 게 되었다. 사월 새학기를 앞두고 벌써 K학감은 벌써 나를 제거할 계책을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K는 나의 치명적 약점을 알아 내었다. 극서은 내가 본국에 아내가 있으면서, 젊은 여자를 둘씩이나 한 집에 데리고 있 다는 것이었다.

실상 나의 생활은 부자연하였다. 누가 보아도 마아가릿은 내 아내, 엘렌은 내 동생이었다. 우리가 사는 집이 란 것도 안채와 바깥채의 구별이 분명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함경 북도 집본으로 외채집에 아랫방 웃방 맛웃방 골방으로 되어 있어서 장지 하나를 새에 두고 젊은 남녀가 셋이 모여 있었 다.

벽에 가까운 방에 마아가릿이 있고, 그 다음 방에 엘렌이 있고, 골발에 식모가 있고 이를테면 사랑이라고 할 만한 맨 웃방에 나는 거처하였다. 이러한 생활이 의혹의 씨를 뿌리 지 아니할 수 없었다.

더욱이 의혹의 재료가 되는 것은 마아가릿의 아름다움이었 다. 그의 몸이 육감적으로 생겼고, 또 옷 모양을 보는 것과, 화장을 하는데 일종의 천재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친구의 아내라는 생각과 또 종교적 신념으로 마음을 잡아 매노라고 하면서 때때로 그의 풍부한 육체에 마음이 끌렸다. 그의 나 이가 스물 셋, 내 나이가 스물 넷, 어떻게나 위태한 나이들 인고?

게다가 마아가릿이나 엘렌이나 어려서부터 의국 교육을 받 았기 때문에 구식 조선 여성의 수줍음이 없고 도리어 내가 수줍어하는 편이었다.

그들은 내 요이며 잠자리를 식모의 손에 맡기지 아니하였 다. 처음에는 마아가릿은 남의 아내라는 생각으로, 그래도 아무쪼록 엘렌의 손을 빌어서 내 뒤를 거두게 하는 모양이 었으나, 차차 익어져서 제 손으로 하는 때가 많았다.

내가 감기나 들어서 누워 앓는 때면 마아가릿은 내 곁에서 밤을 새우는 때조차 있었다, 나는 잠이 들었다가 마아가릿 의 손이 내 이마에 얹히거나, 내 손을 잡은 때를 여러 번 발견하였다. 나는 마아가릿의 눈에 정열의 빛이 나는 것과, 그의 숨결이 씨근거림을 볼 때에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러한 때에 나는 힘써서 전장에 나아간 R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예수를 생각하였 다.

그러나 아무리 하여도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 곁에 있는 것 을 무심코 태연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내 가슴에 타오르는 동물적 정욕을 누르기는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더구 나 마아가릿의 심정을 생각할때에는 가여움과 귀여움까지도 일어났다.

이러한 생활이 계속할수록 내 마음은 편안하지 못하고 내 몸은 피곤하였다. 더욱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마아가릿과 엘렌 사이에 질투에 가까운 감정이 일어난 듯함이었다. 엘 렌이 내 곁에 있을 때에는 마아가릿은 불쾌한 듯이 낯을 찡 기고 돌아 서고, 마아가릿이 내 곁에 있는 것을 보고는 엘 렌은 입을 삣죽하고 돌아 섰다. 나는 몇 번이나 따로 방을 얻어 가지고 나갈 생각을 하였다. 만일에 무슨 일이 생겼다 가는아아, 그것은 상상하기도 무서운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결심을 단 행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따로 나가서 살겠소, 하는 말이 차마 나가지 아니할 뿐더러, 심히 부끄러 운 일이지마는 또 두 여성을 떠나기가 아까운 듯도 하였다.

나는 마아가릿이나 엘렌에게 다 정다움이 있었다, 나는 평 등으로 두 사람을 사랑하리라고 애를 썼다. 평등으로 사람 하는 동안에는 위험이 없음을 느낀 때문이었다.

이러한 부자연한 생활을 하는 것이 세상 사람의 눈에 수상 히 보이지 아니할 리가 없었다. 더구나 내가 악의를 가지고 있는 K학감에게 이것이 이용할 좋은 재료가 되지 아니할 리 가 없었다.

하루는 T교장이 나를 그의 처소로 불렀다, 그의 처소는 학 교 구내에 있는 교장 사택으로서 그는 일해 주는 사람 한 내외를 데리고 생활하고 있었다.

『건강이 어떠시오?

하고 T선생은 근엄한 낯으로 물었다.

『괜찮습니다. 언제나 봄철이 제게는 좀 좋지 안습니다.

하고 나는 T선생이 내가 젊은 여성과 함께 살기 때문에 내 건강이 쇠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나, 아닌가 해서 일변 부끄럽기도 하고 일면 분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몸의 쇠약이 학교 일에 대한 과로에서 온 것만이 아닌 것은 사실이었다. 그 속에는 청춘의 오뇌가 섞 여 있음을 부인 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너무 많으시지 않소?

교장은 이렇게 물었다. T선생은 내 몸이 쇠약한 원인을 교 무에 대한 과로로 돌리고 싶은 것이었다.

『괜찮습니다.

T선생은 한참 동안 학교에 관한 이야기며, 그주 전쟁에 독 일 편이 이기는 모양이란 이야기며, 일본과 중궁과 미군이 참가하고 이태리가 연합군 측에 참가하면 장차 세계대세가 어떻게 어떤 길로 나아가리란 이야기며 한 시간 가까이 세 계 대세 이야기, 동양 정국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그가 이처럼 세계 사정에 정통한 것과 대국을 보는 식견이 높은 줄은 몰랐다. 도무지 학교에 라고는 다녀 본 일이 없는 그, 외국 글이라고는 한문 밖에 모르는 그로서 젊은 축들에게는 무식하다는 비방까지 받는 그로서 어떻게 이처럼 정확한 인식을 가질까. 그의 말은 절절히 논리에 맞 고 역사의 원리에 맞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까지도 T선생 에게 대하여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깨달았다.그를 알고 존경하지 아니함이 아니었지마는, 내가 안 것은 실로 코끼리의 귀 하나뿐인 것 같았다.그의 속은 내 속으로는 이 루 헤아릴 수 없는 큰 것처럼 생각혔다.

그 반면에 젠 체하던 나 자신이 말 못되게 적어지는 것 같 았다. 옛 사람이 일어나서 절하였다 함은 이러한 심경으로 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사람인 나는 그래도 T선생을 나보다 큰 사람으로, 나를 그보다 못한 사람으로 승인하기 가 싫었다. 나는 T앞에 눌려서 고개가 숙어지는 것이 죽기 만큼이나 싫었다. 나는 내가 T보다 낫다는 결론을 얻고가 싶었다. 나는 T가 나보다 십 오년 장이나 되는 것으로 내게 유리한 재료를 삼았다.

내가 T나이가 될 때에는 T보다 더 크게 될 것이란 것이었 다. 나는 T가 모르는 어학들을 알고 수학을 알고 문학을 알 고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T의 세계대세에 관한 인식 이나, 조선 민족에 대한 경륜이나 다 나도 그만큼은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나는 T의 값을 깎아서 나와 비슷하게 만들어 놓고 좀 사슴을 내밀었다. 덤빌 테면 덤벼 라! 하는 태도였다이렇게 가엾은 나였다.

T선생은 내 속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아무 리 하여도 그가 나보다 수가 위인 듯 하였다.

『유원이 작히나 잘 생각하시겠소마는, 그 부인네들은 따 로 사시게 하는 것이 어떻겠소?

하는 T선생의 말은 약간 회복 되었던 내 마음의 평정을 완 전히 깨뜨려 버렸다. 그것은 마치 내 아픈 자리를 박박 긁 는 것과 같았다.

『선생님도 저를 의심하십니까?

하는 내 말은 떨렸다. 나는 손발이 꽁꽁 얼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있소? 내가 유원의 인격을 존경하지마는, 어 디 세상이 그렇소? 없는 흠도 만들어 내랴는 세상이니까.

또 교육가의 처세란 심히 어려운 일이니까. 조금이라도 세 상의 오해를 받을 만한 일을 할 필요가 없단말욘. 유원은 장차 이 곳 교육계에 중심 인물이 되어 주셔야 할 것이니 까. 나도 그 두 식구를 따로 있게 라기가 어려운 사정이 있 는 줄도 아오마는,암만 해도 그리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그 대신 김 권사 같은 늙수구레한 부인더러 R부인댁 일을 보아 드리도록 하고, 유원은 따로 계시는 것이 좋을 것 같 아.

이 모양으로 T선생은 내가 더 묻고 설명할 필요도 없을이 만큼 인정의 기미를 다 살펴 가면서 간단하나마 충분하게 말을 하였다.

나는 이것이 필시 K학감이 T교감에게 내 줄상을 한 때문 이라고 생각하였지마는, T선생의 말은 절절히 옳았다.

나는 더 T선생에게 반항할 힘을 잃어 버렸다.

『네, 선생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이렇게만 대답하고 나왔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내 결백을 증명하노라고, 또 내가 두 여성과 같이 있는 것은 순전히 희생적 정신이라는 것을 누누이 변명한 것은 뒤에 생각하면 무척 추태였다. 내가 왜 구구스럽게 그랬을까. 그 뒤 몇 십 년 후까지도 T선생을 생각할 때마다 그 생각을 하고는 부끄 러웠다.

식사 중에 나는 따로 떠나 살겠다는 말을 차마 내일수가 없었다. 나는 그들이 나를 사랑하고 내 곁에 있기를 바라는 줄을 믿기 때문에 내가 그럼 말을 하면, 그들은 바라는 줄 을 믿기 때문에 내가 그런 말을 하면, 그들은 반드시 슬퍼 서 밥맛을 잊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밥을 먹는 동안 그들은 내게 하룻 동안 지난 이야기를 하 였다. 예전 같으면 나도 학교에서 지난 일, 세상 소문을 이 야기하여서 그 들을 기쁘게 하였다. 우리 식탁은 서양식으 로 한상에 벌여 놓고 먹는 것이었고, 음식도 큰 그릇에 밥 이나 국이나 고기나 나물이나 담아 놓고 저 먹을 이만큼 제 접시에 덜어서 먹으며, 또는 음식 접시를 들어서 권하는 것 이었다. 이렇게 서로 권하면서 서로 저편을 즐겁게 하려고 재미 있는 이야기를 하여 가면서 저녁 밥을 먹는 것은 실로 즐거운 일이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난 뒤에는 마아가릿과 엘렌이 만든 과자와 차를 먹으면서 우리는 밤 여덟 시나 되 도록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인생의 낙이었다. 이것은 조 선 가전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나는 S(동경서 그리 워하던 여자)와 부부가 되어 이러한 화락한 가정 생활을 하 는 것을 그려 보았다. 그리하면 얼마나 즐거울까 나는 담배 를 피우면서 멀거니 공상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할 때면 엘 렌은,

『오빠, 또 무슨 생각을 하세요?

하고 항의하는 버릇이 있었다. 마치 셋이 않은 자리에서 혼자만 무슨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 같았다. 여러번 엘렌에게 그러한 책망을 받은 뒤에 나는 실상 그것이 잘못 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셋이 밥을 먹을 때에는 세 사람이 함께 다 아는 이야기, 또는 생각을 하더라도 저 두 사람에 게 어떻게 기쁨을 줄까 어떻게 이익을 줄까, 하는 생각만을 하기로 힘을 썼다. 마아가릿과 엘렌은 밥을 먹는 동안에는 오직 내 생각만을 하는 것 같았다.

『이것을 잡수어 보세요?

『오늘은 왜 적게 잡수세요?

『내일은 무슨 다른 국을 끓여 드려요?

『입맛이 없으신가봐?

『아이참. 잡숩고 싶은 것을 말씀을 하셔요?

이 모양이었다.

『어젯 밤에는 기침을 하시던데.

『오늘은 퍽이나 곤해하시는 같애. 얼른 주무세요.

이렇게 세세한 데까지 내 몸에 관하여 두 사람은 주의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송구스러울이만큼 고맙고 미안하고 그 러면서도 기뻤다.

그러나 이날 저녁에는 T선생에게 들은 말이 마음에 걸려서 도무지 마음이 뚫어지지를 아니하였다.나는 지이 먹고라도 유쾌하게 식사를 마치려 하였으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를 아니하였다.

마아가릿과 엘렌이 그처럼 지성으로 나를 사랑해 주는 양 을 보고는 차마 떠나겠단 말이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언제 까지나 이대로 같이 살고 싶었다. 그것은 반드시 나늘 위하 는 욕심만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기쁨을 주고, 슬픔을 주고 싶지 아니하다는 생각도 간절하였다.

이렇게 내가 나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예민한 엘렌 은 벌써 눈치 챈 모양이었다.그는 힐끗힐끗 나를 보았다. 그 러나 내 낯색이 수상치 아니한 것을 봄인지 예전모양으로,

『또 무슨 생각을 하세요?

하지 아니하고 차차 근심스러운 듯이 그 얼굴은 흐렸다 엘 .

렌은 실로 민감한 계집애였다. 남의 가슴속에 움직이는 감 정의 길을 빤히 들여다 보는 듯하였다. 더구나 내게 대한 지성스러운 염려가 내 가슴의 감정을 더 밝히 보는가 싶었 다.

마아가릿은 열정기였으나, 남의 마음을 알아보는 데는 도 리어 어두운 편이었다. 그는 언제나 제 열정 때문에 제 눈 을 뜨지 못하였다. 그와 반대로 엘렌은 모든 것을 다 비취 는 맑은 거울인 것 같았다. 이걱이 그로 하여금 쌀쌀하게 또 적막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고 나는 생각하였다.

과자가 나오고 차가 나올 때 까지도 우리의 단란에는 웃음 의 꽃이 피지 아니하였다. 두 여자의 근심스러운 눈만이 때 때로 내 속의 생각을 찾으려는 듯이 내게 빛났다.

마침내 엘렌은 그의 예민한 마음으로 내 속을 해부하기 시 작하였다.

『오빠, 무슨 걱정이 있으셔요?

나는 말 없이 빙그레 웃었다. 엘렌이 내 속을 알아 맞추는 것이 신통하다는 것보다는 딱해서 웃는 것이었다. 내 마음 은 더울 무거웠다.

『아마, 저희 때문에 오빠께 무슨 걱정이 생기신게죠?

마침내 엘렌은 정통을 쏘았다.

『오빠, 오빠는 큰일을 하시는 어른이시니 저희 때문에 희 생이 되셔서 쓰겠어요, 저희가 오빠께 누가 되거든 오빠 좋 으실 도리를 하세요? 언니 안 그래요?

나는 일변 놀라고 일변 감탄하는 생각으로 엘렌을 보았다.

어찌 그렇게도 예민할까. 어쩌면 내 속을 그렇게도 들여다 볼까. 나는 엘렌을 힘껏 껴안고 싶도록 엘렌이 귀엽게 생각 하였다. 내 눈이 얼마 동안이나 엘렌의 크고 맑은 눈을 뚫 어져라 하고 들여다 보았는지 나는 모른다.

『누님은 어쩌자고 그런 말씀을 하시우? 아주버니 떠나서 우리가 어떻게 사우.

하는 마아가릿의 말에 나는 비로소 내가 엘렌을 바라보고 있던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날은 말을 내지 아니할까고도 하렸다. 차마 떠난가 는 말을 내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벌써 방까지 잡아 놓은 내가 아니냐. 나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는 마아가릿을 향하여 말하는 것이 옳은 줄 을 알면서도 말하기 편한 것을 취하여서 엘렌을 향하여

『엘렌아.

하고 불렀다.

『네에?

『내가 암만 해도 따로 방을 얻고 나가야겠어. 그러는 것 이 사체에 옳겠어. 그래서 방을 하나 잡아 놓았다.

『누가 무에라고 해요?

『응, 교장 선생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그러시고, 또 학교에는 나를 못 먹어하는 사람도 있거든』

『제가 왜 오빠의 친누이 동생이 못되었을까. 내외종만 되 더라도 조금이라도 어떻게 되더라도 남들이 그런 말을 안하 련만.

하고 엘렌은 한숨을 진다.

『그럼, 저희는 치타로 가지요. 북경으로 가든지. 여기서 어떻게 저희들끼리만 있습니까. 이 두메 산골짜기에.....

이것은 마아가릿의 항의였다.

『내가 떠난대야 다른 데로 가는 것이 아니요, ○○여관에 방을 하나 잡고 있는 것인데요. 날마다 한번씩 을수도 있구 요. T선생 말씀이 좋은 노인 한분이 있다고 ── 권사 아시지 그 마나님 말씀야요. 그이를 오게 할 테니 적 적한 것도 없지 않아요?

나는 마아가릿의 항의를 이러한 말로 대답하였다.

『날마다 오시면 도로 마찬가지지요. 세상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한다면 도로 마찬가지 아니야요? 저희들이 멀리로 가 버려야 말이 없지 않습니까?

마아가릿의 말에는 불평이 있었다.

『아이, 언니 왜 그렇게 말씀을 하시우?오라버니도 마음이 괴로우셔서 그러시는걸. 가기는 우리가 어딜 가요? 전장에 나가신 오빠 오실 때까지 오라버니를 따라 다녀야지. 안 그 래요. 언니?

『누님은 오라버니 뫼시구 여기 계시구려. 난 치타로 갈테 유. 북경으로 가든지. 누님이야 무슨 상관 있어요? 나만 가 면 고만이지. 난 가요. 아마 벌써 돌아 가신 게지, 그러길래 소식이 없지 벌써 일년이나 가까이 와도 편지 한장 없으니.

그리고 날마다 꿈자리만 사납고. 어저께도 오빠가 하얀 군 복을 입으시고 성당으로 들어 가시는데 사람들이 많이 할렐 루야, 고스뽀지 뾰밀루이를 무르고 따라 가던데. 그럼 돌아 가셨어 분명 돌아 가셨어!

하고 마아가릿은 히스테릭하게 울기 시작한다.

『그럴 리가 있어요? 치타 사령부에서는 우리 주소를 아는 데. 무슨 일이 있으면 기별이 있지요. 전장에 나간 사람이 어디 집에 편지할 여기가 있나요? 참호 생활에 세월이 오는 지 가는지는 압니까. 그렇게 슬퍼하지 마셔요. 다 하나님께 서 알아서 하실 텐데 무슨 걱정이셔요?

이렇게 위로는 하건마는, R에게서 통신이 끊긴 것은 나도 근심이 되었다. 왈샤와에서 군용 우편으로 한 편지외에는 반년이나 소식이 없었다.

R이 만일 전사했다고 하면 필시 마아가릿의 꿈에 올 것 같 았다. 그는 퍽으나 마아가릿을 사랑하였다. 마아가릿의 마음 을 믿지 못하면서도 그를 사랑하였다. 그의 혼이 따로 나와 돌 수가 있다면 필시 마아가릿을 찾아 와서 그 마음이 변했 나를 살필 것이다.

그리고는 내 마음을 살필 것이다. 만일 내가 R의 믿음을 저버리는 일이 있다면, 얼마나 그가 나를 원망할까. 얼마나 믿을 수 없음을 슬퍼할까. 나는 이런 생각을 끝까지 R에게 신의를 지킬 것을 맹세하였다.

이튿날 학교 시간이 끝나 뒤에 나는 여관으로 잠시 옮았다 가 다시 조그마한 집을 하나 얻고 학비 없는 학생 하나와 함께 자취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학생은 왕청문이라는 데 서 와 있는 학생으로서 나이가 이십이나 되고 퍽 건실한 학 생이었다. 그는 지극히 나를 닮아서 나와 같이 있기를 자원 하였다. 나는 이 학생과 같이 있는 것이 세상의 의혹을 없 이하는데 유효할 줄 믿으므로 기쁘게 허락한 것이었다.

나는 하루 한번씩 마아가릿과 엘렌을 찾았다. 대개는 학교 에서 돌아 오는 길에 들렸으나, 공일이면 오전 중에도 들렸 다. 그들은 내가 오늘 시간을 헤아려서 파와 과자를 준비하 여서 나를 대접하였다. 이렇게 서로 만나는 것이 도리어 더 반갑고 유쾌하였다.

K학감과 Y학감도 인제는 나를 중상할 재료를 잃어 버렸다.

T교장도 매우 만족한 모양이었다.

제일학기도 지나고 여름방학이 왔다. 나는 나와 동류 하는 학생 N군과 그 동무 두 사람과 함께 경박호(鏡泊湖) 지방으 로 여름 여행을 떠나기로 준비를 다하고 이 삼일 후면 떠나 기로 작정한 때에 불행한 소식이 왔다. 그것은 치타 사령부 로부터 R이 파란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는 기별이었다.

R중위는 여러 번 용감하게 싸워 공을 세우고 유월 십오 일 싸움에 적진에 돌격하다가 탄환을 맞아서 세상을 떠났사 오며.

하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유족에게 구휼비를 줄 터이니 사 령부로 출두하라는 것이다.

이 소식이 북경에 있는 아라사 대사관을 경유해서 왔기 때 문에 일개월 이상이나 지체한 것이다.

마아가릿과 엘렌은 내게 매달려서 울었다. 더구나 마아가 릿이 비탄하는 양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는 몇 번이나 까무러쳤다, 나는 마아가릿이 이처럼 그 남편을 사랑하던가 하고 의외임에 놀랐다.

마아가릿이 내게 애정을 향하던 것같이 내가 생각한 것을 나는 부끄러워하였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내 마음이 부정한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만 진정하세요. 사람이 아무 때에 죽으면 안 죽습니까.

죽으나 몇 해 후에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지요. 사내가 한 번 전장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는 것이 그 얼마나 사내 다운 일야요? R동생은 남아답게 죽었으니, 구질구질 구구스 럽게 오래 살다가 아무 것도 못하고 죽는 사람보다 얼마나 값이 높아요?

나는 이러한 말로 마아가릿을 위로 하였다. 사실로 나는 R 이 부러웠다. 칼을 빼어 들고 군사들의 앞을 서서 적진 중 으로 쫓아 들어 가다가 가슴에 탄환을 맞고 붉고 뜨거운 피 를 뿜고 땅에 거꾸러지는 양이 심히 용장해 보였다.

K학감, Y학감 기타 구더기 같은 우리들과 네다 내다 하고 다투고 아첨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내 신세가 심히 초라하 고 구차스러웠다. 내가 왜 치타에 있을 때에 의용병으로 R 과 같이 전선에 나가지를 아니하였던고 하고 스스로 원망하 였다.

나는 신라의 관창랑(官昌郞)을 생각하였다. 열 일곱 살 먹 은 소년으로서 단신으로 백제 군중으로 달려 들어 가서 수 십명 적군의 목을 베이고 마침내 백제 명장 계백(階伯)의 손 에 목을 잘리던 이야기, 죽기를 두려워하기 보다 죽기를 자 원하던 그 심경을 생각하였다.

내 못난 마음속에 이렇게 죽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생 각이 어느 한 구석에 있는 것이 고마왔다.

마아가릿은 치타로 간다고 주장하였다. 나는 그 주장이 물 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유족 구휼금이란 얼마나 되는 것인지 모르지마는,그래도 치타까지라도 가는 것이 죽은 이에게 대하여 당연히 표할 정의라고 생각하였다.

러나 북경에 있는 아라사 대사관의 증명을 요한다는말이 있으니, 치타로 가기 전에 먼저 북경으로 가지 아니 하면 아니 되었다.

나는 이 뜻을 T교장에게 말하였다.

『무론 가야지요. 어서 떠나시오. 유원이 R부인을 잘 보호 하여서 다녀 오시오.

T교장은 이렇게 엄숙하게 말하였다. 여기서 북경, 북경서 치타, 치타서 또 여기 ㅡ 어떻게나 길고 어려운 여행인고?

고생이 많이 되거니와, 여비도 많이 드는 여행 인고? 더구 나 마적과 ○○단이 횡행하는 길림 지경을 보행으로나 마차 로 빠져 나가서, 남만 철도 연선까지 나가는 것이 어려운 중에도 어려운 일이었다. 치타에서 울 때에 당하던 일을 생 각하면 더구나 이에서 신물이 돌았다.

간신히 여비를 마련해 가지고 나는 마아가릿과 엘렌을 데 리고 북경을 향해서 떠났다.

다행히 장춘까지는 무사히 갔다. 우리는 행장을 이사 가는 가난한 백성 모양으로 차리고, 떠났던 것이 성공한 모양이 었다. 마아가릿이나 엘렌이나 내다 모두 허름한 청복을 입 어서 아무쪼록 사람의 주의를 끌지 아니하도록 하였다.

그렇지마는 장춘(지금은 신경이다)서부터는 이렇게 차리는 것이 불리할 듯해서 마아가릿과 엘렌도 양장을 시키고, 나 도 양복을 하고 노자는 많이 들지마는 봉천까지 일등을 탔 다. 중국 부자집 가족으로 보이자는 것이었다.

정거장에는 물론이어니와, 차에도 무장한 일본 경관과 헌 병과 또 호위병이 타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도 마음이 놓일 때가 없었다.

마침 같은 차실에 상해로 피난 가는 아라사 사람 한 가족 을 만나서 마아가릿과 엘렌은 그 능란한 아라사말로 이야기 를 하고, 나도 서투른 아라사말과 영어로 그들과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이 우리 일행을 카므플라즈하는데 큰 도움이 된 모양이었다.

봉천서 천신까지도 줄곧 이 아라사 사람과 같이 갔다. 돈 은 많이 들었으나 퍽 유쾌한 여행이었다. 그 아라사 사람의 가족은 오십 되는 부인 하나, 열 칠팔 세 되는 처녀 둘, 열 댓 살 난 사내 아이 하나와, 팔구 세나 되는 퍽 약해 보이 는 사내 아이 하나, 그리고 아마 그 집 일 보아 주는 사람 인 듯한 가정 교사 같은 사십세나 되었을 듯한 말 없는 여 자 하나 이렇게였다.

차가 산해관을 지나서야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나는 마 아가릿이 파란 전선에서 전사한 R중위의 부인이라는 것 엘 렌은 그의 누이하는 것, 나는 그의 가족을 보호하는 친구라 는 것을 말하였다. 산해관까지에는 우리는 사정이 있어서 행색을 숨겼던 것이다.

내 말을 듣더니 늙은 부인은 벌떡 일어나서 마아가릿을 껴 안고 입을 맞추고, 다음에는 엘렌을 껴안고 입을 맞추고 그 리고는 그딸더러,

『우리 나라를 위하여 파란 전선에서 전사 하신 R중위의 미망인과 누이. 너희들도 입을 맞추라.

하고 명령하였다. 처녀들도 일어나서 마아가릿과 엘렌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것이 어떻게나 극적 시인인지 나는 눈물이 쏟아졌다. 식 당에 앉았던 다름 사람들도 모두 이상히 여겨서 이쪽으로 힐끗힐끗 주목들을 하였다.

안고 입맞추는 것이 끝난 뒤에 늙은 부인이,

『내 아들, 이애 아버지도 육군 대위로 파란 전선에서 죽 었소. 오월 스무 하룻날! 그날은 그렇게 슬픈 날, 나라위해 죽은 것이 영광이지마는, 어머니와 아내의 가슴은 아픈 것 이오. R부인, 나 당신의 마음 잘 아오.

할 때 마아가릿은 고개를 숙이고 느껴 울었다.

우리가 북경 대사관을 거쳐서 치타로 간다는 말을 듣고 쥬 꼽스카야라는 이 부인은 치타 사령부에 있는 제 조카라는 사관에게 소개하는 명함을 주었다.

우리는 천진서 쥬꼽스카야 부인 일행과 작별하였다. 작별 할 때에도 쥬꼽스캬야 부인은 마아가릿과 엘렌을 껴안고 입 을 맞추었고, 내가 중위의 형제라 하여 내게까지 입을 맞추 고, 그 두 딸들도 눈물을 흘리고 이빈을 아껴 주었다.

그들은 조금도 이민족에게 대한 차별을 보이지 아니하고, 진정한 동포애로 우리를 대하였다. 나는 이때에 더욱 아라 사 민족의 위대한 국민성을 깨달았다.

우리는 가도가도 잿빛 같은 벌판과 잿빛 같은 촌락인대를 지나서 석양에 북경 정양문(正陽門)역에 다다랐다. 정양문은 남대문의 이름이다.

차에서 내린 나는 마차 하나를 잡아 타고 예전에 그 이름 을 들은 일이 있는 그란도델 드 페캥이라는 호텔로 갔다.

프랑스말로 북경 큰 호텔이란 뜻이다.

북경에 처음 오는 나는 실상 어디로 갈 바를 몰랐고, 마아 가릿이 비록 북경서 생장했으나, 그도 어려서 일이라 무엇 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날이 저물지 않았더면 바로 아라사 공사관으로 갔을 것이다.

우리는 마차와 인력거와 쿨리가 많은데 놀랐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사모하던 북경이다. 천자가 있는데로, 문화 의 가장 높은 중심으로 한번 보기를 끔직히 원하던 북경이 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에 가장 천한 나라의 하나로 준야만 의 대우를 받는 중국의 서울에 불과하는 북경이다.

중국을 조국으로 알던 우리 조선인들이 언제나 원망스러운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렇게 더러운 나라, 이렇게 더럽 고 못난 백성에게 소국인을 바치던 역사의 여러 가지 기억 이 머리 속에 일어나서 심히 불쾌하였다.

더구나 북경의 세력에 의뢰하여 제 나라 안에서 서로 다투 던 것이며, 정 철(鄭澈), 이 항복(李恒福) 같은 무리는 선조 대왕더러 아주 나라를 명나라 황제에게 바치고 북경으로 가 자는 이른바, 내부론(內부論)을 주장한 것이며, 그러한 무리 들이 송강(松江)선생이니 오성(오城)선생이니 하여 후세에까 지 존경을 받을 수 있던 내 조선이 미웠다. 성명까지도 지 명까지도 다 한족식으로 고치고, 한족의 조상인 요순 우탕 을 제 조상으로 높이고, 저를 소중화라고 자처하고 기뻐하 던 내 조상들이 미웠다.

우리 정신 속에서 모든 우리 것을 다 빼버리고 속속들이 한민족화하려 하던 김 부식(金富軾), 정 몽주(鄭夢周), 최 만 리(崔萬里), 송 시열(宋時烈) 같은 무리가 이가 갈리도록 미 웠다. 치가 떨리도록 원망스러웠다.

나는 그 반감으로 북경이라든지 한민족이라든지를 실컷 멸 시하고 싶었다. 북경의 모든 것에 침을 뱉고 길거리에 다니 는 모든 한족을 채찍으로 때리고 발기로 차고도 싶었다. 그 러나 도리켜 생각하면, 그것은 하나도 북경이나 한족의 허 물이 아니고 순전히 나 자신의 죄였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내 눈알에는 「대광보국숙록대부」운운한 커다란 비를 세운 여러 조선 사람들의 무덤이 보였다.

만일 그들의 백골이라도 제 죄를 깨닫는다 하면, 반드시 무덤이 갈리고 비가 부러져서 피와 땀을 뿜으라고 생각하였 다. 만동묘(萬東廟)는 다 무엇이고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는 다 무엇인가.-- 나는 객실 창으로 황혼의 북경 성중을 바라보면서 이러한 분개한 생각에 이를 갈고 있었다.

『오빠, 또 무슨 생각을 하세요?

나는 엘렌이 방에 들어 오는 줄도 몰랐다. 엘렌은 내 어깨 에 손을 걸고 내 얼굴을 근심스러히 바라보았다.

『응, 조선 사람으로 태어난 부끄러움을 생각하고 있었 다.

엘렌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었다.

그도 어디를 가나 어엿하게 다니지 못하고, 마치 무슨 죄 나 지은 사람같이 남의 눈을 꺼리는 우리 신세를 슬퍼할 만 한 철이 난 것이었다.

『저녁 잡수실 때가 되었는데.......

『응, 식당으로 가자.

나는 시계를 보면서 말하였다.

『식당에 내려 가도 괜찮아요?

『그럼, 괜찮지!

나는 꺼릴 것이 무엇이냐, 하는 반항심을 느꼈다.

엘렌은 정말인가 하는 듯이 나를 힐끗 보고 먼저 나가 버 렸다.

『마음 놓고 식당에도 못 가는 신세.

이렇게 나는 크게 한숨을 지었다. 그러나 어엿하게 식당으 로 가리라고 결심하였다.

나는 마아가릿과 엘렌을 데리고 식당의 한 테이블을 점령 하였다. 넓은 식당에는 이십명 가량이나 손님이 있었다.

대부분은 서양 사람이나, 동양 사람도 남녀 사오인은 되었 다. 서양 사람은 다 자신도 있고 위신도 있어서 어울려 보 이지마는, 동양 사람들은 모두 빛이 없었다. 키가 작고 살빛 과 혈색이 좋지 못한 까닭도 있겠지마는, 정치와 문명의 중 요한 원인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더구나 중국 사람은 대개 아편장이 같이 어깨가 쑥 올라 가고, 목이 앞이 주고, 그리고 입이 다물리지를 아니하여 얼이 빠져 보였다.

상해에 있을 때에 나는 손 일선, 진 형병, 송 교인 같은 인 물들을 대할 기회가 있었거니와, 그들은 그렇게 얼빠져 보 이지 아니하였지마는, 북방 중국인이 얼빠진 점으로는 더한 듯하였다.

나도 저럴 것이다 하면, 밥맛이 없었다. 국을 먹는 것이나 칼과 살창으로 고기를 베는 것이나 다 저 서양 사람들을 억 지로 흉내 내는 것 같아서 부끄럽고 불쾌하였다. 식당 보이 들은 모두 중국 사람이지마는, 그들은 분명히 서양 손님들 을 더 존경하고 우리 동양 사람이 무엇을 시킬 때에는 거만 하였다. 어쩌다가 동양 사람은 이처럼 서양 사람에게 누리 게 되었는고 하고 분개하였다. 아편전쟁, 의화단비, 교주만 사건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모두 서양 사람이 동양 사람을 누르고 동양 사람의 것을 빼앗는 일이었다.

상해 황포탄 공원이나 제스필드 공원에「외국인 이외의 입 장을 금함」이란 패를 분인 것이며, 황포탄 부두에 놓인 걸 상에도「Foreigners only」라고 써 붙인 것을 보고, 나도 앉을까말까 망설이던 것이 생각 난다.

조선 사람들도 양복을 입으면 들어 갈 수 있어도 청복을 입으면 못 들어 가던 것, 그리고 전차에 치인 때에 양복 입 은 사람은 치료비 삼십원, 청복 입은 사람은 치료비 십원이 라든 것, 서양 사람들이 중국 사람이 끄는 인력거를 타고는 막 단장으로 인력거군의 머리와 등을 갈기고 발길로 차던 것--일러한 모든 모양들이 식탁 위에 떠올랐다.

서양 사람들은 비록 종용종용이라도 서로 마음 턱 놓고 이 야기도 하고 웃기도 하건마는, 동양 사람들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도무지 마음을 펴지 못하는 것이 불쾌하였다. 나는 소리소리 지르고 싶은 듯한 충동까지도 느꼈다.

『오빠, 또 무슨 생각을 하시우?

엘렌이 항의를 하였다.

『동양 사람이 서양 사람에게 눌리는 것이 분해서 그런 다.

나는 이렇게 툭 내쏘았다.

『동양 사람들끼리는 서로 누르고 눌리고 하지 않아요?

엘렌은 싱긋 웃는다.

『우리 조선 사람은 세계에 시골뜨기, 세계에 제일 못난이, 세계에 제일 지체 낮은 이!

나는 뜯어 먹던 빵조각을 돌돌 뭉쳐서 테이블 위에 던졌 다. 또 발악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나는 차도 다 먹지 아니하고 식당에서 뛰어 나왔다. 다시 는 식당에를 들어 가지 아니하리라, 서양 사람 있는 곳에는 가지도 아니하리라, 이러한 결심까지 하였다. 식당에서는 동 양 사람들끼리도 영어를 쓰는 것이 더욱 견딜 수 없는 모욕 감을 주었다.

『오빠 무슨 괴로우신 일이 있어요?

엘렌은 방에 들어 와서까지 내 걱정을 하였다.

『세상을 좀 뒤집어야겠다. 인류가 서로 형제로 우애하는 세상을 맨들어야겠어. 젠 체하는 자의 교만을 꺾고, 노예 근 성 가진 자의 아첨의 혀를 끊고-- 이런 생각이다. 하하 하.

하고 나는 소리를 내어 웃어 버렸다.

한길에는 왕보처(인력거)들이 달리고 등 구부러진 순경들이 낡아 빠진 총을 메고 오락가락하는 것이 희멀건 전등빛에 보였다. 그것들이 모두 귀신들 같았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 면 여러 가지 소음이 북경 성중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음모의 도시, 향락의 도시, 죄악의 도시 소리다. 바람결에 불려 오는 것은 큰 나라가 썩어 문드러지는 냄새와, 그렇지 아니하면 군벌들이 향락하는 아편과 계집애 냄새일 것이다.

이튿날 우리는 마차 하나를 타고 교민항(交民巷)으로 몰았 다. 교민항이란 각국 공사관과 외국 군대들이 주둔하는 북 경성의 동남 한 구석이다. 한번 이 교민항에 들어서면 벌써 중국의 법률이나 무력은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무슨 변란 이 생길 때면 대관들의 가족과 재산은 이 교민항으로 피난 을 오는 것이다.

아라사 공사관은 거무스름한 벽돌집이었다. 문에는 끼끗한 아라사 병정 하나가 총창을 들고 서고, 또 몽고식 벙치를 씌운 중국 사람들이 몽치를 들고 파수를 보고 있었다.

공사관은 종용하였다. 통역인가 싶은 양복 입은 중국 사람 이 영어로 나를 향하여 온 뜻을 물었다. 나는 마아가릿을 가리키며,

『이 이는 파란 전선에서 명예로운 전사를 한 R중위의 부 인인데 공사관에서 부러서 오신 길이요.

하고 대답한즉, 그는 마아가릿과 엘렌을 한번 힐끗 보고 약간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고는 응접실을 손으로 가리키 며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안으로 들어 갔다.

응접실에는 자주빛 모전을 깔고 굉장히 커 보이는 교의들 을 놓았다. 앉으면 몸이 온통 교의 속에 빠져 버리는 듯하 였다. 나는 이런 교의에 앉아 본 일이 없었다. 테이블에는 초록보를 덮었는데 그 보가 방바닥까지 닿았다.

벽에는 아라사 황제 니꼴라이 이세의 초상이 걸렸다. 그는 몇 해 아니하여서 임금의 자리도 빼앗기고 참살을 당할 줄 도 모르고 걸려 있었다. 그의 후덕스러운 얼굴은 그러한 참 변을 당할 사람 같지는 아니하였다.

그리고 황제의 초상 곁에는 황태자 알렉세이의 미남자다운 초상이 걸려 있었다. 차르 차레비치(임금 임금의 아들)이 둘 은 아라사에서는 항용 같이 위하는 줄을 나는 안다.

그리고 다른 벽에는 이콘(예수의 화상)을 모셨다. 나는 치 타에서 어는 집에서 이콘이 하나님의 화상이라고 수염 길다 란 노인을 그렸던 것을 기억한다. 이콘과 차르--이 둘이 아 라사의 제정 시대에 두 가지 신이었다.

종교가 썩어져서 정치적 권력의 이용물이 될 때에 종교의 지위를 정치의 위에 놓는 그러한 표본이다.아라사 땅에 사 는 조선 사람들이 승정승, 승감사하고 대승정들 부르는 것 은 가장 적당한 칭호였다. 차르는 정권의 원수인 동시에 교 권의 원수로서 천국 일과 세상 일을 총찰하는 하나님의 대 리자라는 것이었다. 나는 서울에도 아라사 공사관 곁에 희 랍 교당이 있던 것을 기억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젊은 아라사 사람이 아까 그 중국 사람과 함께 나와서,

『고스포자 R?

하고 마아가릿을 찾았다.

마아가릿은 앉은 채로 손을 내밀어서 그 아라사 사람과 악 수하고 공사관에서 온 서류를 내어 주었다.

그 아라사 사람은 서류를 훑어 보더니 대단히 감격한 낯으 로 마아가릿를 향하여 한번 허리를 굽히고, 그리고는 엘렌 과 악소하고, 나중에 나와 악수하고 네가 누군가 하는 듯이 나를 보았다.

나는 R중위의 친군데 R중위가 출정할 때에 가족을 내게 맡기고 갔다는 말과, 북간도에 R중위의 친족을 찾았으나, 그 들은 마적에게 학살과 약탈을 당하여서 그 유족의 거처를 알 수 없다는 말을 대강 대답하였다.

그는 내 말에 더욱 감격하고 동정하는 모양을 보이고는 잠 깐 기다리라 하고 서류를 들고 나가 버렸다. 아아, 공사허ㅓ ㄴ테로 이 말을 하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 젊은 아라사 사람은 친절과 관대와 이러한 아라사 사람 의 성격을 가장 전형적으로 가지고 있는 듯하였다. 다만 주 색을 좋아할 듯하였다.

한 십 분이나 기다려서 우리는 공사의 방으로 불려 들어갔 다. 그 방은 응접실보다 더 크고 더 화려하였다. 차르, 차례 비치의 화상과 이콘이 있는 것은 물론이다. 공사는 수염이 많고 눈이 크고 머리가 벗어진 뚱뚱보였다. 얼른 보기에는 씨근씨근하는 병이 있는 사람 같았다.

공사의 이름은 데니낀이라고 하였다고 기억한다.

그는 은근히 마아가릿, 엘렌 그리고 나 이러한 순서로 악 수를 하고 우리에게 의자를 권하였다.

『파란 전선의 우리 군대는 지금 푸로시아 헝거리 방면으 로 좌우로 가라서 공격하는 중이오. Rㅈ중위가 빛나게 전사 한 곳은 아마 여긴가보오.

하고 그는 일어나서 어기죽어기죽 벽에 걸린 지도로 가서 손가락으로 국경 방면을 가리켰다. 우리는 공사의 뒤를 따 라 가서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거기는 빨강 연필과 퍼런 연필로 여러 마디의 평행선이 그어 있었다. 아마 퍼런 줄이 아라사 군대, 붉은 줄이 덕오 동맹군인 모양이다.

붉은 줄 푸른 줄 여러 줄로 그려진 것은 양군의 진퇴를 표 시한 모양인데 아마 공사는 보도를 듣는 대로 이렇게 줄을 그어서 아라사군의 푸른 줄이 백림과 위인으로 들어 가기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공사는 아라사가 반드시 이길 것을 믿는 모양이었다. 적어 도 누구를 대해서 말할 땡에는 믿는 모양을 보이는 모양이 었다.

우리가 흥미를 가지고 지도에 주목하면서 공사의 설명을 근청하는 모양을 보고 공사는 만족한 듯이 더욱 신이 나서 이번에는 프랑스 백이의 국경인 서부 전선을 가리키며 설명 하였다.

또 이태리로 연합군에 참가할 것과, 일본과 중국도 반드시 참가할 것과, 미국도 참가할 것을 말하고, 흉노와 같은 독일 을 다시는 거두를 못하도록 바숴 버릴 것이라는 것을 열심 히 설명하였다. 아마 이것은 공사가 중국 대관들을 설복하 노라고 여러 번 설명을 해온 버릇인가 싶었다.

R중위의 피는 결코 헛되이 흐른 것이 아니외다. R중위는 조국을 위하여 인류의 문화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것입니 다. 인류가 감사할 죽음, 하나님이 칭찬하실 죽음 그러니까 R부인 슬퍼하지 마시오. 황제 폐하께옵서는 결코 나라를 위 해서 죽은 용사의 유족을 잊으시지 아니할 것이오.

공사는 이렇게 마아가릿과 엘렌을 위로하였다.

그리고 치타에 가는 일에 대해서는 아직 북경에 머물러서 회보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곧 젊은 서기관을 불 러서,

R중위의 유족이 지금 북경 공사관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유족 구휼금을 이리로 보냄이 어떠냐고. 젊은 여자 두 분이 이 전란 시대에 먼 여행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그렇게 치타 사령부와 페테르스부르크 육군성에 공문을 띄우게, 돈 은 중앙 정부에서 내일 것이니까.

하고 제 생각대로 분분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데니킨 공사는 나와 마가릿을 번갈아 보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좋으니 북경에서 기다리시오. 아마 일 개월이면 회보가 올 듯하오.

하고 할 말 다한 뜻을 표하였다.

마가릿이나 내나 공사의 처치에 대하여 아무 항의할 필요 도 없었다. 만일 일개월 내에 회보가 오기만 하면 학교 일 에도 지장이 없을 것이었다.

우리가 인사하고 물러나오려 할 때에 서기관은 공사의 뜻 이라 하여, 명일 만찬을 공사관에서 대접한다는 말을 하고 우리가 들어 있는 여관을 적었다.

우리는 어리둥절하여 여관에 돌아 왔다.

마가릿은 여관에 돌아 오는 길에 또 울기를 시자하였다.

남편이 죽었다는 것을 한번 더 의식한 것이다. 남편이 죽었 다는 것을 한번 더 확실히 안 것이었다. 엘렌도 아주 기운 이 다 빠져 버린 것같이 따라 울었다. 나는 웬일인지 그들 이 우는 것을 말릴 기운이 없었다.

나는 아까 공사가 지도를 가리키면서 설명하던 것을 생각 하였다. 동맹군이니, 연합군이니 하는 수백만의 군대가 서로 죽이는 광경을 상상하였다.

대포와 소총과 수류탄과, 그리고 창과 칼과 가슴에 서 피 를 뿜고 쓰러지는 시체, 참호 속에서 죽을 날을 기다리는 젊은 사람들. 마아가릿이나 엘렌과 같은 사랑하는 사람을 정장에 보내고 마음을 졸이는 어머니들, 아내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별을 듣고 가슴을 뜯는 이들! 아무리 하여도 전쟁은 옳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인류는 한번 반성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또 한 편 생각하면 우리와 같이 세계의 움직임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민족의 처지가 가엾기도 부끄럽기도 하였다.

나는 마아가릿과 엘렌을 데리고 인력거를 타고 궁성과 공 자묘와 나마절을 구경하였다. 그러나 마음이 한가하지 아니 하기 때문에 구경이 재미가 없었다. 마아가릿과 엘렌은 아 무 경황이 없는 듯이 따라만 다녔다.

공자묘에서 목목이 검은 도로 같은 것을 입은 사람들이 돈 을 달라고 손을 내밀 때에 비로소 마아가릿은 입을 열어서,

『아이구, 축축도 하이. 참말 돈만 아는 백성이야.

하고 한번 웃었다.

참말로 공자묘를 들어 와서 받은 감상이라고는 그 직원인 듯한 자가 염치없이 돈을 달라고 손을 내어 미는 것이다.

중국은 공자의 고국이지마는 공자의 가르침은 중국 사람과 는 상관 없는 것 같았다. 마치 명태 잡이하는 곳에서는 명 태를 아니 먹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예수 나신 고국인 유태족에 예수교인이 없고, 석가 여래 나신 인도에 불교도가 없다는 것과 같아서, 역시「선지자는 고향에서 대접을 못 받는다」는 것일까. 중국 사람은<논어>

를 거꾸로 읽는다는 말이 있거니와, <논어>를 똑바로 읽은 이는 누군가. 조선 사람의 조상들은 <논어>를 지나쳐 읽어 서 걱정이었다.

공자묘 보다는 구경 가치로는 나마절이 더 좋았다. 이상 야릇한 물상을 만들어 놓은 것도 재미 있거니와, 누런 장삼 입은 몽고 중들이 마치 무덤 속에서 나온 혼령들 모양으로 말 없이 불상을 싸고 도는 것도 가관이었다.

그들은 손을 가슴에 읍하고 눈을 내려 깔고 자꾸만 걸었 다. 마치 세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돌기를 시작해서 세상이 끝난 뒤에까지 돌려는 것 같았다.

『왜 저렇게 빙빙 돌기만 해요?

하고 엘렌이 이번에는 입을 열었다.

이름부터 황사 -- 누런 절이라고 하거니와, 개와며 기둥이 며 모든 것이 누르고 중들의 의복도 누르고, 얼굴도 누르고, 공기까지도 다 누런 것 같았다. 그들은 어떠한 진리를 찾노 라고 얼굴에 주름이 잡히도록 저러는 것일까.

마아가릿과 엘렌이 입을 열어서 말하고 웃는 것만으로 구 경 나온 목적은 달했다고 생각하였다. 얼마 살지도 못하는 인생을, 가슴에 슬픔을 안고 살아 가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에 가엾은 생각이 나는 것은 성인만이 아닐 것이다. 마아가 릿과 엘렌이 R을 잃고 실심해 하는 양-실상 그들의 앞길은 어찌 될 것인지 망연하지마는--을 보면 내 몸을 십자가에 박아서 될 것이면 그리해서라도 그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 다.

무슨 인연으로인지 그들은 지금 내게 의탁하고 있다. --그 렇게 믿을 만한 힘이 못되는 내게 매달려 있다고 생각 때에 한량 없이 애처로웠다. 더구나 오늘 공사관에서 마아가릿이 삣죽삣죽하는 양을 볼 때에는 뼈가 저리는 듯함을 깨달았 다.

나마절에서 인력거를 몰아서 돌아 오는 길에 어디로 가서 저녁이나 사 먹을까 하는 생각이 났다. 북경서 앞으로 한 달이나 유숙해야 할 것을 생각하매, 돈 한푼을 헤피 쓸 수 가 없었다. 호텔 식당에서 밥을 사 먹는 것은 대단히 비쌌 다.

아무리 절약해서 먹어도 한 사람에 이원폭은 들었다. 중국 음식점에 들어 가면 그 절반을 가지고도 잘 먹을수 있으리 라고 생각하였다.

「家常使 」라고 칠판에 금자로 박은 어느 음식점 앞에서 인력거를 내렸다. 중국 사람의 집이라면 무시무시하게 생각 하는 것이 조선 사람의 상정이다. 사람의 살로 만두 속을 넣어 판다는 <수호지> 영향일까. 만주에 홍마우스(마적)가 사람 죽이기를 파리 잡듯한다는 데서 온 생각일까 우중충한 복도로 꼬불꼬불 들어 가서 층층대를 올라가서, 또 꼬불꼬불 어떤 방으로 인도할 때에는 결코 기분이 좋지 는 아니하였다. 어느 구석에서 청룡도가 나오지나 아니하나, 철편이나 올가미가 나오지 아니하나 하고 마음이 놓이지 아 니하였다. 마아가릿과 엘렌도 몸을 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나는 스스로 부끄러워하였다. 다 같은 사람이 아니냐. 그중에도 세계에서 가장 오랜 문화를 가진 한족이 아니냐. 요순의 나라, 공자, 노자의 나라가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고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화평할 수가 있었다.

이튿날 저녁때에 공사관에서 젊은 서기관이 마차를 가지고 우리 일행을 맞으러 왔고, 만찬이 끝난 뒤에도 공사관에서 는 마차로 우리를 여관까지 데려다 주었다. 이것은 여관 보 이들과 지배인에게는 큰 놀람을 준 모양이었다. 그것은,

『누구신지 몰라 보았습니다. 저 더 큰 방으로 옮기시지 요.

하고 지배인이 몸소 와서 물은 것으로 보아서 알 것이다.

우리는 그러나, 이런 값 비싼 호텔에 여러 날 머물 수가 없었다. 나는 셋집을 하나 얻기로 작정하고 여관 보이에게 그 말을 의논하였다.

『북경에서는 외국 사람에게는 집을 세를 주지 못합니 다.

하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래도 보이는 매우 친절해서 제 친척이라는 중국옷 입은 사람 하나를 데리고 왔다. 그는 복건 사람으로서 양복점을 하는 사람이었다. 우리에게 양복 주문을 얻을 겸 보이가 소 개한 것이었다. 역시 상업적 국민이라고 나는 웃었다.

그 양복점 주인 되는 마 서방은 이렇게 말하였다.

『외국 사람으로는 집을 못 얻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중국 사람이라고 경찰청에 가서 말하고 증명서를 얻으면 집을 얻 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중국 사람 아닌 것을 어떻게 중국 사람이라고 하 오?

하고 내가 웃은즉 마서방은,

『당신 이렇게 말씀하시오. 본래 상해 사람으로서 부모를 따라서 조선을 가서 살았노라고 그러다가부모는 죽고 조선 사람에게 수양을 받았노라고. 거 어디, 상해에 그럴 듯한 주 소를 모르시오? 거기를 본적이라고 대고. 그러면 나는 당신 아버지의 친구라고 당신 집 일을 잘아노라고. 이번에 나를 믿고 당신이 북경을 찾아 왔노라고.

이렇게 꾸며대는데 그 꾸며대는 양이 아주 익숙하였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껄껄 웃었다.

그러나, 필경 그를 따라서 나는 경찰청에 갔다. 마서방은 우선 제 명함을 내어 놓고 다음에는 나를 청장에게 소개하 고 아까 꾸민 대로 이야기를 해버렸다.

청장은 내 신세에 대하여 매우 감동도 되고 동정도 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나를 보고 기특하다는 듯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끄덕하고 다음에 곁에 있는 경관들을 불러서,

『이분이 본대 우리 중국 사람인데 어려서 조선에 갔다가 부모가 다 괴질로 돌아 가고, 조선 사람의 집에서 길려서 공부까지 하고 이제 조국을 찾아 왔다고.

하고 큰소리로 소개를 하고는 내가 중국 국민이라는 증명 서를 써 주었다.

나는 낮에 쥐가 났다. 이러한 좋은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 죄스러웠다.

『자, 보시오. 되지 않아요. 북방 사람은 이렇게 어수룩하 다니까, 무지할 때에는 무지하지마는요.

이렇게 마서방은 자기의 승리를 기뻐하였다. 그는 아래턱 이 짧고 이마가 뒤로 잦은 것이 전형적의 복건 타이프이었 다. 교활하고 박덕한 빛이 흘렀다. 나는 이 사람이 싫었다.

마서방은 나를 자기의 양복점으로 인도하여서 맛없는 차를 대접하였다. 양복점이라야 조그마한 것이지마는, 그래도 가 리누이한 양복들이 수두룩히 걸리고 부인네의 드레스도 두 어 벌 걸려 있었다. 직공들은 마 서방이 들어 오는 것을 보 고는 모두 고개를 숙이고 일만 하지 거들떠 보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다 북방 사람인 듯하였다. 얼굴이 마 서방식이 아 니었다. 대개 우직한 타이프이었다. 나는 공자가 자로에게 남방지강이냐 북방지강이냐 하신 말씀을 생각하고, 남방 사 람과 북방 사람의 체격과 성격이 다른 것을 깨달은 듯하였 다.

마 서방은 나를 앉혀 놓고 이 직공, 저 직공이 일하는 곁 으로 돌아 다니면서 한바탕 잔소리를 하고는 샘플과 유행 사진첩을 가지고 와서 한복과 춘추복 옷감 선전을 하였다.

이것은 런던 이것은 파리 하고 설명을 하고는 내가 양복을 짓는다면 특별히 싸게 해준다고 단언하였다. 나는 그럴 이 유가 어디 있나 하고 속으로 웃었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양복을 지을 필요도 없고 힘도 없었다.

그래도 마 서방은 나를 큰 부자로 아는 모양이었다. 아마 호텔 보이가 우리 일행이 아라사 공사관 마차로 다닌다는 말과, 공서관 서기관이 우리를 모셔 가더란 말을 한 모양이 었다.

『타이타이와 소저에게 이 감으로 드레스를 한 벌 만들어 드리시죠?

마 서방은 옥색 비단을 한 필 갖다가 내 앞에 놓으면서 명 령하듯이 말하였다. 타이타이란 부인란 말이다. 마아가릿을 내 아내로 보는 모양이었다.

『이거 참 좋은 감입니다. 띵호우디.

하고 피룩을 손바닥에 펴놓았다가, 이리저리 잡아 당기었 다가 기어이 나를 설복하려는 모양이었다.

『배리 굿 실크 배리 파인.

마 서방은 혀꼬부라진 영어도 하였다.

실상 내게 도만 있으면 마아가릿과 엘렌에게 옷을 한 벌씩 지어 주고 싶었다. 그것을 못하는 것이 슬펐다. 그렇다고 솔 직하게,

『위 메유 치엔(나 돈 없소).

이럴 수도 없었다.

『오늘은 집이나 얻읍시다. 옷감은 차차로 보고.

나는 이렇게 방패 막음을 하였다.

마 서방은 머쓱해서 옥색 비단을 제자리로 가져 가라고 직 공을 향하여 소리를 지르고는,

『펑탕!

하고 불렀다.

펑탕이란 무슨 소린가 하고 그 발음이 하도 우스워서 혼자 픽 웃었다.

『펑탕!

하고 서너 마디 부르는 소리에 안으로서 나오는 것은 한 오십세나 되엄직한 얼굴에 주름 잡힌 사람이었다. 웃통을 벗고 퍼런 잠방이를 입고 장히 간판이 사나운 키다리었다.

그는 무슨 힘드는 일을 하다가 나오는지 젖가슴에서 땀이 흘렸다. 양미간과 몸에 꼬집어 뜯은 듯한 울혈이 보이는 것 이 더욱 그의 상모를 흉악하게 보이게 하였다. 아마 이군이

「펑탕」이란 사람인 모양이다.

『촨아상바(옷 입어).

마 서방의 명령에 그는 때묻은 문장 뒤로 사라졌다가 제법 깨끗한 두루막까지 입고 매고자를 쓰고 부채까지 들고 나왔 다. 이렇게 차리고 나선 펑탕은 아까보다 훨씬 점잖아 보였 다.

『이 어른 모시고 가서 집 하나 얻어 드려.

하고 마 서방은 다시 웃는 낯을 지어서 내 귀에다가 입을 대고,

『북방놈들은 남방 사람인 줄 알면 집세도 갑절을 불러요.

물건 값도 그러고 참 고약하지요. 저 놈은 북방놈이니 이놈 을 다리고 다니셔요. 북경서 자라난 놈이 되어서 북경 일을 잘 압니다.

하고 소근거렸다.

『고맙소이다.

하고 나는 펑탕을 데리고 나섰다.

펑탕은 대문을 나서는 길로 나는 한번 거들떠 보지도 아니 하고 올 테면 오고, 말 테면 말라는 듯이 저 갈 길만 갔다.

그리고 연방 무에라고 중얼대었다. 아마 주인 마서방을 원 망하는 모양이었다. 가끔 탁 뱉아 버리는 듯한 어성으로.

『타마나가 초우비.

하고 길바닥에 가래를 탁 뱉았다.

그는 아는 사람이 많았다. 길에서는 아는 사람을 만나서는 내가 있든지 말든지 저하고 싶은 말은 다하고 그리고도 내 게는 미안하다는 인사는커녕 보지도 아니하고 또 걸었다.

나는 펑탕을 어디까지 따라 가는 것인지 궁금하였다. 알만 해도 이 친구에게 무슨 뇌물을 써서 그 환심을 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펑탕이 도무지 결을 주지 아니 하니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얼마를 좁은 골목으로 끌고 가다가 어떤 까만 칠한 대문 앞에 서며,

『이 집 어때우?

하고 평생 처음으로 말을 붙였다.

대문으로 보아서는 꽤 큰 집이었다.

나는,

『칸칸(보자).

하였다.

그는 나를 그자리에 세워 놓고 잠깐 어디를 갔다가 웬 눈 꼽 끼고 꼬랑이 달린 늙은이를 데리고 왔다.그는 필시 수십 년 묵은 드라코마 환자일 것이다.

그 눈꼽 낀 영감은 대문을 밖으로 잠근 쇠를 열고 우리를 안으로 들여 보냈다.

그 집은 네 체나 되고 방이 십여 개가 되는 큰 집이었다.

『타이다(너무 커)

하고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부다(안 커). 이 집이 커? 이 집 참 좋은 집.

하고 펑탕은 마치 내 집을 얻는 것이 아니라, 제 집을 얻 는 모양으로 나는 젖혀 놓고, 눈꼽이와 집세 흥정을 하였다.

눈ㄲ곱이는 삼십원이라 하고 펑탕은 이십원에서 이십 오원 까지 끌어 올렸다. 내가 여관을 아니할 바에 이런 큰 집을 얻을 필요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

나는 그 집에서 나와서 펑탕더러,

『내 식구가 셋이야. 그러니깐 큰 집은 주체할 수가 없 어.

하고 애원하듯이 말하였다.

그는 내말을 듣는지 마는지 또 벌벌 앞서서 걸었다. 또 무 에라고 중얼거리고는, 「ㅌ타마나가 초우비」라는 후렴을 외웠다. 이 욕설은 내게 향한 것일 분명하였다. 그러나 그가 나를 위해서 집을 구하려는 성의만은 보였다. 그는 골목골 목 사람을 만나는 대로 무에라고 지절대였다. 그것은 피시 셋집의 유무를 묻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차마 있을 수 없는 작고 더러운 집을 보였다.

「저기 타이 시오우(이거 너무 작아).

하고 나는 돌아서 나왔다.

『이거 작어? 이거 작잖어!

하고 또 펑탕은 집주인허구 집세 다짐을 하고 있었다. 이 번에는 아마 집주인이 펑탕의 마음에 안 들었는지 무에라고 욕설을 하면서 발길로 대문을 차고 나왔다.

이 모양으로 몇 집을 보는 동안에 오정이 지났다. 나도 시 장하거니와, 암만 해도 펑탕을 무었을 좀 먹여서 마음을 눅 일 필요가 있음을 느끼고,

『술 먹어?

하고 물었다.

그는 손을 내어 저으면서

『부 부아오!(아니 그럴 것 없어.

하였다. 그 말로 보거나, 그 눈치로 보거나 이것은 분명히 싫다는 말은 아니요 사양이었다. 펑탕에게 사양이 있는 것 이 의외인 것 같았다. 아마, <논어>가 그의 마음에 어느 구 석에 있는가 싶다.

『우리 점심 먹어. 어디 맛나는 음식집으로 가.

하는 내 말에 그는 기쁨을 도저히 감추지 못하면서.

『유유(있어 있어).

하고 걸음을 빨리 걸었다.

우리는 어느 음식점에 들어 갔다. 그것은 어제 내가 마아 가릿과 엘렌을 데리고 갔던 데보다 훨씬 떠러지는 곳이었 다.

펑탕은 그래도 앉으려고는 아니하였다.

『앉아, 앉아.

하고 내가 자리를 권해도 그는 앉지 아니하고 한편 구석에 서 있었다. 역시 예절이 있었다.

나중에 내 권에 마지 못하여 그는 앉았다. 그러나 길상을 상 모퉁이에 옮겨 놓고 나와 정면으로 대하기를 피하였다.

그의 <논어>가 나온 것이었다. 역시 예 문화를 가진 백성이 었다.

식탁에 앉은 때에 그는 결코 우락부락한 펑탕이 아니요.

훌륭한 군자였다. 술이 몇 잔 들어 가매, 그는 매우 만족한 듯이 또 내게 대하여 매우 감사한 듯이 대단히 유쾌하면서 도 예절다왔다. 그는 내가 자기를 평등으로 대우하는 것이 너무도 고마운 모양이었다.

그는 흥이 나서 우선 마 서방의 혐구를 시작했다. 펑탕은 마 서방 집에서 음식 만드는 일을 하노라고 하면서 마 서방 이 인색하고 강박화고 교활한 것을 말하고, 남방 놈들은 다 그렇다고 욕설을 퍼부었다.

『손 중산도 남방 사람인데.

하고 내가 웃었더니 펑탕은 젓가락을 턱 놓고 정색하면서,

『손 총통은 제일 좋은 양반.

이라고 경의를 표하였다.

『단 기서는 어떠냐?

한즉, 펑탕은 단기선는 손 총통만 못하다고 단정하고「펭 위시양 (풍 옥상)」이야말로 좋은 사람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 말끝에 자기도 여러 장군 밑에 병정 노릇을 했지마 는, 풍옥 상이 고작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또 말하기를, 자 기는 인력거도 끌어 보고 병정 노릇도 사오차나 해보았다고 한 뒤에 자기의 경력이 매우 놀라운 듯이 껄껄 웃고 나서,

『마 서방녀석 좀더 아니꼽게 굴어 봐. 한바탕 때려 주고 나올 데요. 그깟놈에게서. 병정 노릇을 하든지 인력거를 끌 든지 밥 못 먹을라구요.

하고 뽐내었다. 병정 노릇과 인력거 끄는 것은 버젓한 밥 벌이 직업으로 아는 모양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펑탕은 심히 공손해졌다.

나를 선생이라고 부르고「타마나가 초우비」쓰지 아니하였 다. 나는 펑탕이 아무 악의가 없는 인물인 줄을 알매, 양미 간과 목에 울혈된 것까지도 밉지 아니하였다. 펑탕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배가 아픈 때에 하는 치료법이었다. 손톱으 로 양미간과 목을 자꾸 꼬집어 뜯으면 어떻게 심하면 복통 도 낫는다는 것이었다.

펑탕은 기쓰고 집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러한 끝에 T라는 후통( =골목)에 알맞은 집 하나를 얻었다. 대문에 옷칠까 지는 아니하였으나, 본래는 꽤 큰 살림하던 집인 양하였다.

동서로는 줄행랑 모양으로 두 체가 있고 정면 남향으론 높 다란 안채가 있는데, 그것이 우리가 얻은 집이었다. 좌우에 있는 것은 낭무라는 것이겠지. 거기는 한 줄에 넷씩 방이 여덟이 있는데 모두 방세를 들어 있는 모양이요. 그중에 서 쪽 줄 머릿방에 있는 것이 이 집 주인이라는데, 키가 훨쩍 크고 몸이 똥똥하고 얼굴도 점잖고 글도 알았다.

그는 본래 만주족으로 귀족이다가 혁명 후에 그래도 이 집 하나를 남겨 가지고 방세를 놓아 먹고 산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그는 매우 거만하면서도 예절다움이 있었다.

우리는 곧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석 달 집세 십 오원을 치뤘다. 우리는 한 달만 있을 예정이지마는 그것이 규례라 고 한다.

우리가 얻은 집은 좌우에 방이 있고, 가운데 대청에 비길 공간이 있고, 대청 정면에는 거울 하나를 놓고, 그 앞에 탁 자 하나를 놓고, 그 좌우에 나무만으로 만들고 주홍칠을 한 교의 둘이 마주 놓여 있었다.

대청 정면은 퍽 재미 있고도 신비하였다.

안방과 건넌방이라고 할 두 방은 넓이와 생김생김은 꼭 같 은데 서ㅉ족에는 방 한편에 음식 만드는 부뚜막이 있었다.

아마 본래는 부엌은 아랫채에 따로 붙어 있었겠지마는, 따 로 떼어서 세를 놓느라고 이렇게 부엌을 방에 끌어 들인 것 같았다.

방에는 창 있는 쪽으로 허리 높이나 되게 턱진 캉(온돌)이 있고 그 나머지(온 방의 삼분지 이 이상)는 방석을 깔아 놓 은 땅이었다. 이렇게 넓고 놓은 방에 이 온돌만 가지고 어 떻게 겨울을 지내나 싶어서 을씨년 같았다. 반자와 창과 도배는 하나도 성한 곳이 없 었다.

펑탕의 말이 이것은 이사 가는 사람이 으레 다 찌어 놓고 가는 법인데 그것은 복이 뒤에 떨어지 있지 말게 하려는 뜻 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온통 새로 따르지 아니하고는 도저 히 들어 살 수가 없었다.

『이거 좀 깨끗이 치이고 갈 바를 수 있겠소?

하는 내 말에 펑탕은,

『염려 마세요. 내일 안으로 대궐같이 훌륭하게 해놓으리 다.

하고 장담을 하였다. 나는 그에게 돈 오원을 수리비와 가 마솥이며 세 색구 먹을 기명 등속 사는 비용으로 주었다.

호텔에 돌아 온 것은 다 저녁때였다. 마아가릿과 엘렌은 내가 늦도록 안 돌아 온다고 퍽 걱정을 했다고 한다. 나는 집을 얻어 놓은 말을 하고, 내일 가 보자고 말하고 저녁을 먹었다.

여비를 생각하면 이 호텔에 하루를 묵는 것도 바늘 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그렇건만 마아가릿은 이 호텔이 좋다고 여 기서 한 달을 기다렸으면 좋을 듯이 말하였다.

그는 장차 아라사 정부에서 나올 돈을 바라고 이렇게 뺏장 좋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기로 어떻게나 철 없는 사람인가 하고 나는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보지 아니 할 수 없었다.

마아가릿의 얼굴은 아름답고 매력이 있고 또 열정적이었으 나, 헤푸고 허영심 있는 빛이 있고 굳은 마음이 부족하였다.

엘렌은 비록 혈식도 좋지 못하고 환한 얼굴은 아니지마는, 지혜의 빛과 맺힌 데가 있었다. 엘렌은 나이 어려도 마아가 릿을 지도할 자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이 두 여자의 장래를 잠깐 눈앞에 그려보았다. 어째 어두운 그림자가 얼른얼른 보이는 것 같아서 가슴이 답답하 였다. 무슨 더 큰 불행이 앞에 오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이틀 후에 아직 한쪽 방은 다 바르지도 아니한 채로 우리 는 새 집으로 떠났다.

펑탕은 방이 잘 발려졌느라고 호기를 부렸다. 새로 발라 놓으니 꽤 깨끗하였다. 그래도 발에 달아서 움툭불룩한 방 바닥의 박석이며 때에 찌든 문지방 같은 것은 불에 데워 버 리기 전에는 깨끗이 할 도리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이런 소리를 할 권리가 있을까. 우리 조선은 어떠한데, 하면 코가 맥맥하였다.

그러나 저러나 마아가릿은 심히 이 집이 불만한 모양이었 다. 들며 나며,

『이게 무에야?

『이런 데서 어떻게 살아?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만하게라도 있을 집이 있는 것만 고맙게 알아야지 요.

나는 이런 말을 했더니, 마아가릿은 앉아서 울기를 시작했 다. 내 말을 핀잔으로 들은 모양이다.

그러나 달고 치면 안 맞을 수 없어서 마아가릿도 하루 이 틀 지나는 동안에 차차 웃기도 하고 벽에 그림장도 붙이기 시작하였다.

북경구경도 이제는 거의 다 했다. 만수산(萬壽山)도 보고 와불사(臥佛寺)도 보고 서산(西山)도 보았다. 만수산은 어리 석은 장난만 같았다. 못을 파고 산을 만들고 그리고 서태후 (西太后)는 과연 행복을 얻었는가.

통주(通州)까지 가서 수양제(隋煬帝)의 운하도 보았다. 여 기서 배를 타고 수백 수천의 미인을 시켜서 채승으로 배를 끌게 하였다는 수양제는 필시 백만 뚱뚱하고 머리는 뾰족한 바보라고 생각하였다.

펑탕은 날마다 왔다. 그는 나무를 사 오고 반찬 거리를 사 오고, 또 주인 마 서방 욕설을 하고, 그리고는 우리가 잘 알 아 듣지도 못하는 말로 떠들었다. 펑탕은 우리 집에는 심히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어려운 일을 시키는 데만 필요한 것 이 아니라, 이 귀양살이 같은 살림에 찾아 주는 유일한 반 가운 손님이요, 또 말동무였다. 마아가릿과 엘렌도 차차 펑 탕과 사귀어서 웃고 이야기하였다. 펑탕은 생긴 모양은 흉 악하지마는 웃고 떠들 때에는 호인다운 빛이 있었다. 실상 그는 악의는 없는 사람이었다.

펑탕은 글은 한 자도 몰랐다. 펑탕이라고 무슨 자를 쓰는 지도 몰랐다. 그러면서 관화책을 내려 읽으면 대개 다 알아 듣고 발은 잘못된 데를 가르쳐 주었다. 그는 우리들에게 중 국말을 가르쳐 주는 것을 퍽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그는 순진한 북경 사람인 것을 자랑하고 마 서방의 사투리 를 흉보고 천진이나 보정부 사람의 말도 흉악한 사누리라고 공격하였다.

우리가 그를 환영하고 평등으로 대접해 주는 것이 대단히 기쁜 모양이었다. 그는 차차 버릇이 없어졌으나, 그리도 믿 어져서 좋았다. 돈이나 먹을 것을 두면 한사코 사양하다가 마지 못해서 받는 양을 보였다.

아라사 공사관에는 가끔 찾아 갔으나 차차 대접이 시들해 졌다. 가는 것이 창피한 생각이 났다.

한 달이 거의 다 가고 북경에는 아침 저녁에 싸늘한 바람 이 불기 시작했다. 나는 심히 마음이 초초하였다. 개학이 닥 쳐 오지 않는가.

구라파 대전의 보도는 연합군측에 불리한 모양이었다. 동 부 전선에서 아라사군이 패전했다는 보도조차 있었다. 아라 사 공사관원도 매우 초조한 모양이었다. 아라사가 패하면 유족 구휼비도 희망이 적을 것이다.

그래도 마아가릿은 규휼금을 크게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돈을 받아서 어떻게 할 이야기까지 하고 있었다.

『구휼금을 바라지 말고 북간도로 다 갑시다.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으면서도 못하였다. 그러나 내 마 음에는 그것은 절망인 것 같았다. 그래서 한 달만 차면 북 간도로 돌아 가기를 강경하게 주장할 결심을 하고, 엘렌을 보고는 가만히 그러한 말을 비치었다. 엘렌은 내 말에 고개 를 까닥까닥하였다.

그런데 마침내 불행한 일이 터졌다.

서리라도 올 듯한 싸늘한 어떤 밤, 나는 얇다란 담요 하나 에 싸여서 추위를 참고 가까스로 잠이 들었을 때에,

『오빠, 오빠.

하고 부르는 소리에 깨었다.

『엘렌이냐? 왜 그래?

하고 나는 벌떡 일어났다.

『언니가 배가 아프다고 대굴대굴 굴고 있어요.

하는 것이 엘렌의 대답이었다. 찬 방바닥에 춥게 자는 나 도 뱃속이 편안치를 아니하였다.

주머니에 돈이 삼십원 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이 번개 같이 내 머리에 지나갔다.

『언제부터?

하면서 나는 어두운 대청을 지나서 엘렌을 따라서 안방이 라고 할까, 두 여자의 침실로 갔다. 석유 등장이 그물그물하 는 밑에 마아가릿은 자리옷 자락으로 못을 가누지도 못하고 괴로와하고 있었다.

손발이 싸늘했다. 관격인가.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엘렌아, 내 아궁이에 불을 지피게 너는 물을 끓여라.

하고 내 담뇨까지 갖다가 마아가릿을 덮어 주고 아궁이에 장작을 한 아궁이 지펴 놓고 그리고는 마아가릿의 등을 문 질러 주었다. 마아가릿은 인사 체면 불구하고 내 목, 어깨 할 것 없이 매달리며 괴로와하였다.

나는 의사를 생각하였으나 밤 새로 두 시에 어디 의사를 불러 오나?

나는 엘렌과 함께 끓인 물로 마아가릿의 손발을 씻겼다.

마아가릿은 뒷간에를 간다고 했으나 일어날ㄹ 새가 없이자 리에 설사를 하였다. 엘렌의 말에 이것이 세번째다고 한다.

뿌유스름한 쌀 뜬물 같은 설사. 나는 어머니 아버지의 호열 자 돌았을 때 일을 생각하였다. 쌀 뜬물 같은 설사는 밝기 까지에 몇 번을 설사를 하였는지 모른다. 마아가릿은 허탈 이 되어서 눈을 뜨지 못하였다.

이해에 북경에는 호열자가 돌았다. 기실 북경에는 호열자 없는 해가 없다고 한다. 아마 이전에 아랫체에서 죽어 나간 여편네도 이 병인지 모른다.

나는 발기를 기다려서 한길에 나섰다. 병원을 찾자는 것을 기억하고 그 방향으로 걸었다.

<이 일이 장차 어찌 되려는 것인고?>

나는 앞이 캄캄하였다.

Y라는 병원이 눈에 띄었다. 나는 Y의사를 청해 가지고 집 으로 왔다.

『콜레라!

라고 그는 진단하고는 주사 한대를 놓고 달아나 버렸다.

내가 그를 뒤따라 가서 치료 방법을 물을 때에, 그는 그리 능치도 못할 영어로,

『브랜디 앤드 레몬!

이라고 말하고는 무슨 물약을 한 봉 주고 그리고는 십이원 오십전을 청구 하였다.

나는 그 길로 서양 식료품 가게에 가서 코냑 한 병과 레몬 다섯 개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 와서 마아가릿의 입에 브 랜디와 레몬 즙을 흘려 넣어 주었다.

엘렌과 나와는 사흘 동안 거의 한잠도 못하고 마아가릿을 간호하였다. 나는 도저히 마아가릿이 소생하지 못할 줄 생 각하였으나, 차차 병이 나아서 사흘째 되던 날에는 속이 편 안하다고 하고 잠도 잤다. 마아가릿이 색색 잠이 든 것을 볼 때에 내 기쁨은 실로 비길 데가 없었다.

『엘렌아, 언니가 낫나보다.

하고 나는 엘렌을 돌아 보았다.

『오빠의 정성으로.

하고 엘렌은 내 가슴에 얼굴을 대고 울었다.

『엘렌아, 인제 내 방에 가서 좀 자거라, 네가 자고 나면 나도 잘 테야.

하고 나는 억지로 엘렌을 내 방에 끌어다가 뉘이고 담뇨를 덮어 주고, 그리고는 석탄산을 물에 풀어서 마아가릿의 더 러운 옷과 자리를 소독해서 빨았다. 이런 일을 하는 데는 내가 엘렌보다 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마아가릿으리 부 정한 배설물 처치는 모두 내 손으로 하였다. 나는 내 아버 지와 어머니께서 앓으실 때에 너무도 어려서 잘 구원을 못 한 것을 후회하기 때문에 앓는 사람을 보면 내 정성껏 힘껏 그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다.

「오빠 정성 때문에」라고 한 엘렌의 말은 이것을 가리킨 것이었다.

마아가릿의 병은 나았다. 그는 참으로 이적이다. 그는 일어 나 앉게도 되고 중동밥을 먹게도 되었다. 그러나 그가 완인 이 되어서 나와 다니기에 이시비여 일이나 걸렸다.

이러하는 동안에 여름 방학도 다 지나가고 구원도 거의 다 갔다. 내가 학교에 갈 기한은 다 지나 버렸다. 나는 이러한 사정을 T교장에게 보고하였지마는, 나를 미워하는K, Y 두 학감이 필시 말썽을 부리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구월 그믐께쯤해서 학교로부터 해직 사령이 왔다. 어찌하여 해직한다는 이유는 없고 다만 사정에 의해서라고 하였을 뿐이었다.

얼마 후에 T교장은 내가 산 토지에서 난 소출을 판 것이라 고 돈 삼십원을 부치면서 내가 두 여자를 데리고 북경에 와 서 집을 잡고 살림을 하고 있는 것을 이유로, 학교 직원간 에 물론이 일어나서 부득이 해직한 것이라고 하였다.

『학교 그만 두었어.

하고 내 대답에 엘렌과 마아가릿은 다 놀랐다.

설사 학교를 고만 두지 않았기로니 앓고 난 마아가릿을 끌 고 북간도로 가기는 불가능이었다.

『걱정 말어. 어떻게 살게 되겠지. 하나님이 살 길을 주시 겠지.

나는 이런 말로 두 사람을 위로하였다. 그러나 앞은 캄캄 하였다. 이 북경, 아는 이도 없는 이 북겨에서 어떻게 세 색 구의 생활비를 버나. 북간도의 땅을 팔아 오는 길 밖에 없 지마는, 그것도 내가 가기 전에 누가 파나?

T교장의 필지에 의하건댄, 금년에 대풍이라고 다들 기뻐하 다가 조상강과 우박으로 일주일 내에 연길현 일대의 농작물 이 전멸 상태가 되어서 십만 농민이 겨울을 지날길이 망연 하다고 하니, 땅을 팔례야 팔 수도 없을 것이었다.

나는 내가 배운 재주로 밥을 벌어 보리라 하고 한푼으로 글을 지어 보았으나, 내 한문의 힘으로 도저히 신문에 실어 줄 것 같지 아니하고《패킹 리이더》라는 영문 신문에 투서 를 해볼까 하고 글을 지어 보았나, 중학교를 졸업한 영문으 로는 도저히 가망이 없었다.

나는 상점에 세일즈맨이 되어 볼까 하고도 생각해 보고 실 상 서양 사람의 상점을 몇 군데 찾아 다녀도 보았으나 타이 핑도 소기도 부기도 모르는 나로는 도저히 직업을 얻을 수 가 없었다.

이러하는 동안에 주머니에 있는 돈은 점점 줄어 들고 날은 차차 추워졌다. 도저히 담요로만 살 수 없어서 뚱안스창이 라는 장에 가 본즉, 이불 한 채를 사재도 십여원은 주어야 하겠었다. 나는 이불 한 채를 사서 앓고 난 마아가릿과 엘 렌을 주었으나, 그들은 내게 미안하다고 영 덮으려고 아니 하고, 억지로 덮어 주면 내가 잠들기를 기다려서 내 몸에 덮어 주었다.

마아가릿도 인제는 아라사 정부에서 나온다는 돈을 믿지 아니하게 되었다. 주더라도 공채로 줄 것이란 말을 듣고는 그만 낙망해서 본디 물러서 저항력이 부족한 마아가릿은 쩔 쩔 매고만 있었다.

나는 최후 수단으로 소설을 써서 서울M신문에 투고를 하 였다. 그리고 만일 이 소설이 게재되거든 그 호부터 보내 달라고 편지에 써 넣었다.

한 이 주일 후에M신문사에서 등기로 편지 한장이 왔다. 그 속에는 오원「가와세」가 있고, 편집국장의 이름으로 장편 소설을 하나 써보라, 그리하면 매삭 십원씩을 주마, 하는 편 지가 왔다. 그리고 이삼일 후에는 내 소설이 실린 소설이 왔다.

그때의 기쁨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내 소설 이 신문에 올라서 기쁜 것이 아니라, 다만 십원이라도 수입 이 생기게 된 것이 기쁜 일이었다.

나는 이 첫 원고료 오원을 가지고 장에 나가서 마아가릿과 엘렌의 내복을 사고 또 오래간만에 청도(靑島)고기한 근과 숭어 한 마리를 사 들고 들어 왔다. 마침 펑탕이 왔다가 그 숭어와 고기로 중국 요리를 만들고, 또 펑탕에게 오래간만 에 술값을 좀 주었다.

그리고는 나는 날마다 거의 아침부터 저녁까지 혹시 자다 가 일어나서도 소설을 썻다. 어떻게나 부지런히 썼든지 불 과 십여 일 동안에 신문에 일백 사오십회나 날 분량을 써서 소포로 부쳤다.

내 소설의 표제는 <진정>(眞情)이었다. 나는 내가 참되지 못한 탓으로 참된 것이 소원이었다. 나는 참된 애국심, 참된 사랑, 참된 우정을 그리고 싶었다.

내 소설의 주인공 H라는 사내와 Y라는 여자는 참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었다. 한번 속으로 허락한 사랑에 대해서도 충성을 다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었다. 한번 속으로 허락한 사랑에 대해서도 충성을 다하려고 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은 그들의 애인을 참으로 사랑하는 동시에, 그들의 나라를 참으로 사랑하려고 애썼다. 그들은 결코 재주에서나 다른 능력에서나 빼어난 사람들은 아니었다. 차라리 조선사람이 가진 모든 흠점을 단 가진 사람들이었다. 의지가 약하고 곤 란을 뚫고 새 길을 개척해 나가는 힘이 부족하였다.

나는 이것을 현대 조선 사람의 공통한 결점으로 보기 때문 에 H Y에게도 그러한 결점을 주었다. 그리고 다만 내가 가장 말하고 싶은 참되려는 애씀만은 그들에게 주었다. 이 렇게 하는 것이 현실에 충실할 뿐더러, 또「참되려는 애 씀」을 두드러지게 독자에게 인식시킬 수 있다고 믿은 것이 다.

나는 이 속에서 특별히 두 가지를 말하려 하였다. 그것은 내가 나고 자라고 또 묻힐 땅에서부터 내 생활을 땔 수 없 다는 것, 나는 마치 그 땅에 난 풀이나 나무와 같이 그 땅 을 떠나서 생명이 없다는 것, 그리하고 남녀 간의 사랑은 가장 청정할 것, 따라서 정조란 남녀를 물론하고 소주하다 는 것이었다.

이러한 청정한 연애관은 무론 내가 동경 M중학에서부터 성경을 읽어 온 영향이겠지마는, 조선 사람들이 남녀 관계 를 한 유희로, 향락으로 알고, 더욱이 남자가 여자를 정욕을 만족하기 위한 한 기구로 아는 것에 대한 반감도 될 것이 다.

나는 첩을 얻는 것을 짐승적이라고 공격하는 글을 여러 번 썼다. 소위 오입이라는 것을 가장 추악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면 내마음이 그처럼 깨끗하였느냐 하면, 그렇다고 할 염치는 없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나는 마음은 불결하더라도 언행만이라도 깨끗이 해보자 하는 것이 소원이었고, 또 이 렇게 애써 가노라면, 즉 겉을 깨끗이 정말 아침 햇빛과 같 이 말고, 밤새에 쌓인 흰 눈과 같이 깨끗하게 될 날도 있으 려니 하고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젊은 두 여성과 한 집에 오래 사는 심경도 이러하였 다. 결코 내 마음에 풍파가 일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날 나는 이것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시련의 기회로 믿었다.

북간도 사람들이야 무엇이라고하는지, 예수를 잘 믿노라 하고 교회에 직분까지 가졌다는 K학감, Y 학감이야 우리 셋 을 두고 무슨 추악한 이야기를 지어내든지, 나는 하나님의 앞에서와 두 여성의 앞에서 겉으로만이라도 깨끗함과 의로 움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결심하고 싸우는 것이었다. 나는 이 싸움 때문에 몸과 마음이 피곤하고 쇠약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을 나는 명예로운 것으로 생각하였다. 언제 예 수께서 오시더라도, 언제 죽은 R의 혼령이 오더라도,

『나는 두 여성ㅇ을 깨끗하게 보호하였소.

하고 대답할 수 있는 것만이 내 소원이었다. 이 심경이

<진정>에 반영된 것은 더 말할 것 없다.

북경의 시월은 벌써 추웠다. 낮에는 볕이 따뜻하지마는, 밤 이 되면 갑자기 공긱가 어느 것 같았다. 은행나무 잎들이 누렇게 되기 시작하고 캐수이(끓는 물) 파는 고동 소리가 식 전이면 유난히 높이 들렸다. 휑덩그레한 방에 이불도 없이 긴 밤을 지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감옥에 있 는 사람들과 집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였다.

세상에 추워하는 사람이 없도록 할 수는 없을 까--나는 추 워서 잠 못 이루는 늦은 가을 긴긴 밤에 이러한 생각을 하 였다. 귀뚜라미가 요란히 울었다. 쥐들이 난동하기를 시작하 였다. 뚫어진 창구멍이 휘파람을 하였다. 그러날 나는 마아 가릿과 엘렌이 미안히 여길 것을 두려워해서 춥다는 말도 못하였다. 그렇지마는 내 몸에 지방이 점점 빠져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퍼렇게 언 손등의 피부가 비비면 부서질 부서 질 것 같았다.

나는 원고를 쉬지 않고 썼다. 소설은 더 써야 반 년쯤 지 난 뒤가 아니고는 돈이 될 수 없을 줄 알기 때문에, 나는 북경 구경 이야기며, 시베리야, 만주 여행 중의 소견 소문과 감상을 기행문 모양으로 써서 또 신문사에서 매삭 이십원씩 만 오면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그때에는 북겨의 물가가 싸서 고기 한 근에 이십전, 연탄 한 돈에 칠팔원,ㄹ 쌀도 한 사람이 한 달 먹은 분량이 이원 이면 족하였다. 이렇게 치면 이십원으로 세 식구가 연명해 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돈이 다 떨어져서 어찌하면 좋을까 할 떼에 신문사에서 백 원「가와세」가 왔다.

『엘렌아, 언니허구 옷 사러 나가자.

하고 너무나 기뻐서 큰소리를 쳤다. 그 소리가 내 귀에 들 릴 때에 나는 머쓱해지지 아니할 수 없었다.

『오빠, 돈이 어디서 왔수?

하고 엘렌은 안 믿기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일 금 백원야」라는 검은 잉크로 박힌「가와세」를 내어 주었 다.

『서울서 왔어?

하고 엘렌은 의아하였다.

나는 소설을 써서 원고료를 받는다는 말을 이때까지 하지 아니하였다. 그것은 조그마한 희망을 주었다가 낙망을 시키 기가 가엾은 까닭이었다.

엘렌은 갑자기 나이가 먹는 것 같았다. 그는 앞길이 막막 한 것, 내가 혼자 애를 쓰는 것, 이런 것 저런 것으로 애를 태우고 있는 것을 내가 안다.

이 세사에서 가장 나를 아껴 주고 나를 믿는 이가 엘렌인 줄을 내가 안다. 그의 마음은 동정에 찼다.그는 남을 위해서 걱정하는 마음을 가진 여자다. 그의 마음은 영민하고 이지 적이면서도, 따뜻하고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의 단단한 땅바 닥에서 발을 떼지 아니하는 성격을 가졌다. 두고두고 사귀 일수록 그의 아름다움이 하나씩 하나씩 새로 보였다. 그 가 냘픈 몸, 조그마한 가슴속에는 끝없이 많은 아름다움이 가 득 찬 것 같았다.

이것은 내가 다른 여성을 접촉할 기회가 없는 경우에 있기 때문에 비교를 못하고, 엘렌에게만 마음을 끌린 까닭도 있 겠지마는, 지금 와서 생각하더라도 그는 세상에 흔치 아니 한 아름다운 성격을 가진 여성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믿는 다.

엘렌은 마아가릿과 같은 열정가는 아니었다. 마아가릿과 비길 때에는 차라리 싸늘하고 쌀쌀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 는 순전히 타산적인, 이기적인 그러한 피가 식은 여성은 아 니었다.

얼른 따끈하지 아니라는 대신에, 언제까지 따뜻한 그러한 믿음성 있는 정을 가진 여자였다.

그러니까 그는 쾌활하다든지 요샛말로 명랑한 타이프의 여 성은 아니다. 그는 아침볕에 피는 연꽃은 아니나 황혼에 있 는 듯 마느 듯, 그러나 분명하고 청초한 박꽃일 것이다. 엘 렌은 마돈나 타이프이다.

나는 엘렌이 나갈 길이 수녀거나 학교의 선생이거나 간호 부건, 그렇지 아니하면 devoted wife라고 생각하였다. 단아 하고 얌전하고-- 그러나 이 음침한 성격 속에 어찌 보면 궁 상이랄까, 비극적 색채랄까, 이러한 불길한 요소가 아니 보 이는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그의 얼굴은 혈색이 좋지 못하고 그의 손발이 살이 없는 것이 풍성한 감각을 주지 못하였다. 오직 그의 부드러 운 목소리가 이 모든 흠을 가리운다.하겠으나, 그 목소리에 는 힘이 부족함이 그의 건강과 수명을 의심케 하였다. 그는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요, 하늘의 사람일는지 모른다.

소설 원고로 백원으로 마아가릿과 엘렌의 겨울옷을 장만하 고 나도 무명으로 청복 한 벌을 해입었다. 나는 인제는 당 분간 북경을 떠날 수 없는 것을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엘 렌과 마아가릿의 주장으로 내가 덮을 이불도 한 채 샀다.

마아가릿도 인제는 건강해지고 의복과 이부자리도 생기고, 그리고도 주머니에 몇 십원 돈이 남아서 한참 동안 아무 걱 정 없이 나는 원고를 쓰고 영문과 한문 공부를 하고 마아가 릿과 엘렌도 펑탕을 선생으로 삼아서 관화 공부를 하였다.

배워서 무엇에다 쓰든지, 북경에 있으니 그동안 한어를 배 우는 것이 좋지 아니하냐고 내가 주장하는 것을 두사람도 찬성하고 복종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마아가릿과 엘렌은 인 제는 나와 피와 살로 서롤 붙은 존재와 같아서 무슨 새 운 명이 오기 전에는 헤어질 수가 없는 사정이 아니냐. 참 이 상한 인연도 있다.

하루는 책을 하나 사려고 어느 책사에를 가서 섰노라니, 천만 뜻밖에 역사가 T가 팔짱을 끼고 들어 오는 것을 만났 다.

T선생, 웬일이시오?

하고 나는 그의 말랑말랑한 손을 잡았다. 그의 손에는 뼈 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내 손을 쥐는 것도 아니요, 안 쥐 는 것도 아니요, 빙그레 웃었다. 이것이 반갑다는 말이다.

『북경에 온 지 서너 달 되었지요.

하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나는 그가 매괴주를 좋아하고 싼시연탕을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고,

『매괴주 한잔 잡수시지.

하고 웃었다.

『유원이 웬 돈이 있으시오?

하고 그는 나를 따라 나섰다.

조그마한 음식점에 들어 가서 침침한 조그마한 방에 둘이 때묻은 탁자를 새어 놓고 마주 앉아서 김 오르는 싼시연탕 과 따뜻한 매괴주가 들어 오기를 기다리면서 우리는 이야기 를 하였다.

『어째서 미국을 안 가셨나요?

T는 이렇게 물었다.

나는 어떤 친구 때문에 오 사게 된 연유을 대강 말하고, 북겨엥ㄹ 오게 된 깓닭도 간단히 말하였다.

『나도 유원이 북경 와 계시다는 말은 들었지요. 아마 북 간도 방면에서 소문이 왔나보군요. 젊은 여자 둘을 데리고 와서 어디 숨어 산다는둥, 일본 공사관에 드나든것을 보았 다는둥, M신문에 글을 쓰는 것이 필시 유원이라는둥 시 비가 많습디다. 오죽 말이 많은 조선 사람이오? 아무려나 조심하시는 것이 좋으리다.

이것은 T의 꾸밈 없는 말이었다. 나는 T가 참된 사람인 것을 믿기 때문에 더욱 그의 이러한 말이 내 마음을 서늘케 하였다. 내가 M신문과 관계하는 것은 물론 본명으로가 아니 요 가명으로이지마는 만일 이것이 나 남궁 석이란 것이 판 명되는 날에는 나는 어떠한 봉변을 당할는지도 모르는 것이 다.

그것은 그때에 조선에 신문이라고는 오직M이 있었을 뿐이 요, M신문은 정부의 기관지이기 때문에 당시 해외에 있는 조선 사람들은 신문에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총독부에 돌아 가 붙은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내가 일본 영사관 에 다닌다는 말이 난다고 하면, 내 생명은 길로 풍전 등화 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유원이 일본 공사관에 다닐 리도 없고M신 문에 글을 쓸 리도 없다고 말은 했지요. 그렇지만......

T의 이 말에 나는 더욱 등골에 땀이 흘렀다.

나는 차마 이 말을 더 듣기를 원치 아니하여서 말을 돌렸 다.

『대관절 선생은 어째 상해를 떠나셔서 이리로 오셨어 요?

K군도 남양으로 인삼 장사를 간다고 떠나 버리고 또 거 기서 얻어 먹을 데도 없고 싸움질하는 꼴도 보기 싫고, 그 래서 북경으로 뛰어 왔지요. Y씨네 형제분이 북경으로 오라 고도 그러고. 그렇지만 북경도 마찬가지야. 여기서도 무엇을 가지고들 그러는지 서로 싸우고 잡아 먹고, 또 상해만치 책 사도 없고, 별로 재미가 없소이다.

하는 것이 T의 북경에 대한 소회였다.

『북경에서는 무엇들을 가지고 싸우나요?

『모르지요. R씨 파니 P씨 파니 A씨 파니 하고 싸우지요.

그리고 싸우는데 유일한 무기는 친일파라는 것이고, 그래서 뭉둥이질이 나고 육혈포질이 나고 관헌에 밀고질이 나고, 그러기로 내야 누가 어찌게쏘?나는 아무 편에도 안 들고 책 이나 보고 글이나 쓰고 있으니까.

매괴주 서너 잔에 벌써 T의 얼굴에는 홍훈이 돌았다. 그는 말을 이어,

『그래서들 모두들 있는 데를 속이고 있지, 길에서 서로 만나게 되면 샛골목으로 슬쩍 비키고는, 나는 요새에 신라 와 당나라의 교통사를 조사하고 있는데, 당나라에 와 있던 신라 사람들도 서로 그러고 지냈던가, . 허기는 장보고(張 保皐)를 모함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모양이야. 그렇다면 이 병은 신라 적부터 있는 법하고 여조에도 송나라 원나라에 와 있는 패들이 서로 모함한 일이 있는 모양이지마는, 이조 에 들어서 더욱 심했고, 아마 지금이 고작이 아닌가 하지 요.

나는 T와 작별하고 집에 돌아 올 때에 대단히 마음이 무서 웠다. 북경에 있는 조선 사람들간에 내가 문제가 되어 있다 는 것은 심히 불길한 일이었다. 더구나 그 세 문제--젊은 여자와 함께 산다는 문제, M신문에 글을 쓴 다는 문제, 일 본 공사관에 다닌다는 문제는 도저히 변명 할 수 없는 문제 였다.

내가 공사관에 다닌다는 것은 아마 아라사 공사관과 일본 우편국에 내가 다니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며칠 후에 과연 조선 사람 칠팔명이 마당에 들어 왔다. 나 는 마침 M신문에 원고를 부치려고 나가는 길이었다.

『남궁 석씨 계신 데가 어디오?

하고 그중에 얼굴 넓적하고 키 큰 사람이 내 앞에 바싹다 가 서서 물었다.

『내가 남궁 석이오.

하고 나는 불길한 예감을 가지고, 그러나 태연하게 대답하 였다. 나는 내 몸에서 피가 흐를 것을 각오하였으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에 맡겼다. 그러므로 태연할 수가 있었 다.

『댁이 남궁 석이오. 할 말이 있으니 좀 들어 갑시다.

그의 말은 북방 사투리였다.

그들은 어떤 이는 처옵ㄱ을 입고 어떤 이는 양복을 입었 다. 모두 나를 노려서 훑어 보았다.

『이리 들어 오시오.

하고 나는 앞서서 내 방으로 그들을 안내하였다. 마침 내 방을 치이러 왔던 엘렌이 놀라는 듯이 나와 여러 사람들을 바라보고 나갔다.

『저 여자는 누구요?

넓적이가 이렇게 물었다.

『남궁 석이 첩이겠지.

하고 다른 키 작은 사람이 대꾸를 하였다.

『첩이 둘이라는데 또 하나는 어디 있누?

이것은 사투리였다.

『그런데 대관절 당신은 무엇하러 북경에 와 있소? 하는 일이 무엇이오?

넓적이는 정식적으로 심문을 시작하였다.

『밀정 노릇하러 와 있지? 치타서도 밀정 노릇하고 북간도 서도 밀정 노릇하고. 이놈 우리가 다 안다!

키 작은 사람이 호령을 하였다.

『이놈아, C잡지에 무에라고 썼어? , 해외에 나와서 돌 아 다니지 말고 본국으로 돌아 가 공부들이나 해라? 이놈이 그것이 그래 밀정 아니고 할 소리야? 또 북간도 와서는 T교 장놈과 단ㅉ작이 되어 가지고 지사들을 훼방을 하고. 이놈 아, 네 모가지에는 칼 들어 갈 줄을 몰라?

키 작은 사람의 주먹이 연해서 내 따귀를 두 개나 때렸다.

『이 사람들아, 가만 있소. 차차 순서를 따라서 물어 보자 니.

넓적한 이가 키 작은 사람을 가로 막았다.

『그래, 저 여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오?

『내 친구의 가족이오. 전장에 나가 죽은 친구의 유족이 오.

『그래 당신은 친구의 아내와 동생을 첩으로 데리고 산단 말이오?

『말을 삼가시오! 그게 무슨 말법이오? 나라 일 한다는 사 람들의 말 버릇이 그러하오?

이렇게 나는 죄었다. 실상 나는 그들의 무례한 언행에 대 하여 분개하였다.

『이놈 보아.

하는 소리와 함께 주먹과 발길이 내 몸에 몰려 들어 왔다.

몸을 똑바로 할 수가 없었다. 이리 쓸리면 저편에서 차고, 저리 쓸리면 이편에서 찼다. 퉁탕퉁탕하는 소리에 마아가릿 과 엘렌이 뛰어 건너왔다. 두 여자는 두 팔을 가슴에 대고 울 뿐이었다. 실상 말을 한대야 들을 리 만무하고 어찌할 도리가 없는 형편이었다.

『이 사람아, 가만 있소. 그렇게 따릴 것 없다니. 그놈에게 말을 들어 보아서 죽일 만하면 죽여 버리고 우리가 잘못 생 각한 것이면 또 우리가 남아답게 사죄하고 남궁 석과 서로 악수를 할 것이지 이렇게 할 것이 아니란 말이야.

넓적한 사람은 이렇게 말하면서 나를 그들의 주먹과 발길 속에서 빼어 내었다.

내 코와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옆구리와 등이 켕겨서 몸 을 가눌 수가 없었다.

적의 앞에서는 고양이 본 쥐와 같고, 제 편을 먹을 때에는 토기 뽄 호랑이와 같은 조선 사람의 마음을 나는 울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앞에서 다시는 한 마디로 입을 벌리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다. 왜 그런고 하면, 그들의 마음은 흐 리고 또 흐려서 바른 말을 바로 듣고 옳은 일을 옳게 알 힘 이 없고, 또 옳게 알고도 굽혀 보려 하는 것이었다.

내가 전연 무저항인 것을 볼 때에 그들은 싱거운 모양인 지, 내 방에 있던 M신문축을 압수해 가지고 가버렸다. 나중 에 거기 왔던 사람 중에 몇 사람과 사귀일 기회가 생겼거니 와, 내가 태연 자약한 태도를 가지는데 기가 질려서 더 폭 행을 아니한 것이라고 자백을 하였다.

그리고 신문축을 보아서 거기 쓴 내 글을 읽고는 책잡을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이런 생활을 오래 계속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친족 아닌 남녀가 오래 한집에 사는 것은 아무리 하여도 부자연한 일이어서 이 앞에 어떠한 사변이 생길는지 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이날에 맞은 상처로 십여 일이나 누워서 앓았다. 옆 구리가 결리는 것이 늑막염이 된 것이었다. 마아가릿과 엘 렌은 이 일이 있음으로부터 북경에 있는 것을 대단히 두려 워하는 모양이었다. 실상 나도 또 무슨 일이 있나 하고 마 음이 놓이지를 아니하였다.

나는 밀열이 식지 아니하고 몸은 더욱 수척하였다. 기침이 날 때면 숨이 막히도록 갈비가 아팠다.

날은 점점 추워졌다. 눈도 없는 강추위였다. 물장수의 외바 퀴 구루마에 고드름이 달리게 되었다. 높다란 집 수없는 문 틈에는 손길이 들락날락하는 집은 여간 메이추얼(무연탄 덩 어리)이나 피워 가지고는 보온이 되지 아니하였다. 마아가릿 과 엘렌은 문틈을 발랐다. 암만 발라도 끝이 나지 아니할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엎디어서 원고를 썼다. 소설 외에 쓰는 원고 로 또 한 달에 십원 가량씩 원고료가 왔다. 이것마저 떨어 지면 세 식구는 굶어 죽을 도리 밖에 없었다. 펑탕도 우리 생활이 어려워지는 양을 보고는 발이 떨어졌다.

가끔 술값을 집어 줄 힘도 내게는 없어진 까닭이었다. 마 아가릿과 엘렌은 아마 화장품이 떨어졌는지 차차 화장도 아 니하였다. 화장 아니한 마아가릿의 얼굴에는 죽은깨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내 몸의 열은 더욱 높아졌다. 체온기가 없어서 몇 도인지 는 몰라도 오후면은 필시 삼십 구도 가량은 되리라고 생각 하였다. 오싹오싹하기 시작하다가 덜덜 떨리고, 그리다가는 전신이 불덩어리처럼 되어서 정신이 몽롱하다가 자정이 넘 어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열리 내리기 시작하나, 그때에는 팔다리가 쑤시고 등이 배기고, 그 고통은 열이 오를 때 이 상이었다. 어찌다가 한참을 자고 나면 전신에 식은 땀이 풍 하게 나서 욧바닥까지 축축하게 젖었다. 이 짓을 날마다 하 고 나서 제 팔목과 손가락이 점점 가늘어지는 것이 눈에 띄 었다.

『무슨 약을 좀 잡수셔야지.

하고 마아가릿과 엘렌은 걱정하였다.

『괜찮겠지.

하고 나는 아무쪼록 웃어 보였다.

하룻밤은 바람이 몹시 불었다. 앙앙 소리가 나는 것 같고 창에다가 모래를 불어다 붙이는 소리가 짜르르하였다.

나는 여전히 땀을 흘리고 기침을 하면서,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코와 이마로 바람결이 훠훠지나 갈 때면 땀에 젖은 몸이 온통 얼어 붙은 것 같았다.

아마 새벽이 되었을 것이다. 창에 비쳤던 달 그림자도 어 느덧 스러져 버리고 말아서 방안은 캄캄하였다.

내 형편이 하도 약약한 것이 도저히 하나님의 섭리를 믿을 수 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아프고 이렇게도 괴롭고, 이렇게 앞뒤 절벽일 수가 있을까. 무슨 까닭에 이처럼 고통을 아니 하면 아니 될까.

<내 죄?>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쇠약과 고통으로 이러 한 생각도 으래 계속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이몽 가몽 잠이 들었다. 아마 째듯한 달 그림의 자극 이 스러진 때문일까. 그러나 잠만 들면 무서운 꿈이었다. 산 속에서 길을 잃고 갈팡갈팡 헤맬 때에 이리로 가도 길이 막 히고, 저리로가도 길이 막히고 할 수 없이 절벽을 기어 올 라 저것이나 넘어 가면 살아 날까 하고 애를 쓰는 꿈, 캄캄 하고 숨이 턱턱 막히고 냄새 나는 굴속에 갇힌 꿈, 죽은 사 람들이 삥 돌러 서서 나를 위협하면서 이리 가면 이길을 막 고 저 길을 가면 저 길을 막는 꿈, 혹은 앓는 사람을 업고 물가로 걸어 가다가 물에 빠지는 ㄱ꿈, 하늘에 별들이 떨어 지고 달이 반쪽이 나서 날라 내려오는 꿈--대체 이러한 무 시무시하고 가슴 답답한 꿈이 뒤를 이었다.

이러한 흉몽들을 깨고 나면 또 전신에는 땀이 흘러 있었 다.

수없는 뱀들이 길에 널려서 도무지 발 옮겨 놓을 자리가 없어서 애쓰는 꿈을 꾸다가 나는 목에 무엇이 끓어 오르는 감각으로 잠을 깨었다. 입에 한 입 물린 것은 찝찔한 것 -- 나는「피?」하는 놀람으로 그것을 머리맡에 놓인 사기 타구 에 뱉았다. 그리고 불을 켜 보았다. 그것은 과인 거품이 부 걱부걱하는 피였다. 또 기침이 났다. 또 한입, 또 기침이 나 면 또 한입, 순식간에 요강이 철철 넘게 피를 토하였다.

<인제 나는 죽었다!>

하는 생각이 가슴에 콱 찼다. 나는 피를 토하면 죽는 것으 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타구를 버려 오지 아니하고는 튀대어 나오는 피를 뱉 을 데가 없음을 깨닫고 비틀비틀 바깥으로 나갔다. 이 대청 으로 들어 오는 문이라는 것이 높이가 길 반이나 되는 잣문 인 데다 대문 모양으로 빗장을 지르게 되어 있어서 그 빗장 을 빼고 문을 열자면 온 집안이 울릴 만큼 큰 소리가 났다.

이것은 일종의 도적 예방일 것이다.

문밖에는 아까 불던 바람도 자고 높은 집들의 지붕에는 아 직도 지는 달빛이 비취어 있었다. 하늘에는 오리온의 기운 찬 성좌가 싱싱하게 빛을 발하고 그 뒤로 주먹 같은 샛별이 파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는 뒷간으로 가던 것을 잊고 한참이나 별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아마 얼마 오래 만나 보지 못할 별들, 하고 생각하니 눈물 이 흘렀다. 그때에는 나는 내가 시작 없는 과거로부터 이 별들을 보아 왔고 끝없는 미래까지 이 별을 볼 것일 뿐더 러, 그 별들이 있기 전부터 내게 있었고 그 별들이 몇 억만 번 나고 주고 하는 것을 내가 보았고, 보고 볼 것이라 함을 몰랐었다.

나는 유한해서 있다가 죽어서 없어질 것, 저 허공과 별들 은 무한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 어 」으로 생각하고 있 었던 것이었다. 「 無生無減 」을 몰랐었다. 「無去無來無住 無異」를 몰랐던 것이다.

내가 타구를 버려 가지고 돌아 올 때에는 마아가릿과 엘렌 이 일어나서 불을 켜들고 문까지 나와 있었다.

『왜 찬바람을 쏘이고 나가려오?

하고 엘렌은 책망한은 모양으로 짜증을 내었다.

『시키실 일이 있거든 부르시지.

하고 마아가릿도 나를 나무랬다.

그들은 내가 타구를 버리고 오는 까닭은 모르는 모양이었 다.

두 여자는 나를 따라서 내 방으로 와서 나를 붙들어 뉘이 고 이불을 싸 덮어주었다.

『아이, 욧바닥이 젖어서 얼음장이야.

하고 마아가릿이 얼굴을 찡그렸다. 마아가릿은 근래에 무 척 진실한 사람이 되었다. 그가 화장을 아니하게 되매 그의 마음이 진실해진 것 같았다. 시커먼 청복, 퍼런 두루막을 입 고는 모양을 내일 필요는 없었다. 또 모양을 낸댔자 엘렌과 나 밖에는 보아 줄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엘렌이나 내가 다 그의 병구완까지 해준 사람이 아 니냐. 그의 몸이나 마음이나 샅샅이 다 아는 사람이 아니냐.

그래서 그는 꾸밀 필요도 없고 허영을 부릴 필요도 없는 것 이었다. 그는 다만 몇 푼이라도 벌이를 하고 싶다는 말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그의 마음속에 이런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볼 때에 일번 가여우면서도 일변 기뻤다.

마아가릿과 엘렌은 마침내 내가 피를 토하는 줄을 알게 되 었다. 그리고 그들은 입술까지 파랗게 질려서 덜덜 떨었다.

누구나 피를 보면 겁이 나는 것이다. 겁이 아니 나면 흥분 이 되는 것이다. 사람을 자극하는 것 중에 피 이상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내가 빨간 피를 한 입씩 물어서 뱉는 것을 보고는 마치 얼빠진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

나는 그들이 그처럼 나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 주는 것을 볼 때에 눈물겹게 고마왔다. 기쁘기까지도 하였다. 세상에서 이만한 사랑과 소중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는 사람은 얼 마나 많은가. 나는 이만하면 죽어도 한이 없는 것 같았다.

하도 다량으로 피를 뱉으니 나중에는 타루로 당해 낼 수가 없어서 세수 대야를 갖다가 머리맡에 놓았다. 폐에 있는 혈 관이라는 혈관은 모조리 다 터지고 몸에 있는 피라는 피는 다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눈을 뜰 수가 없고, 눈을 뜬 대로 무엇이 분명히 보이지를 아니하였다. 세상이 모두 황혼 빛으로 변하고 마아가릿과 엘렌이 곁에서 움직이는 것이 마치 반투명체인 누르스름한 혼령과 같았다.

『아이, 이름 어쩌면 좋아!

하고 마아가릿과 엘렌은 두속능 가슴에 대고 쥐어 짜면서 애를 썼다.

『마아가릿, 엘렌.

하고 나는 억지로 눈을 뜨면서 불렀다. 엘렌은 두 손으로 내 머리를 움퀴듯이 붙잡고 마아가릿은 핏기 없고 싸늘한 내 손을 제 젖가슴에 꼭 대고 제 두 손으로 싸서 누르고,

『네에?

하고 나를 들여다 보았다. 그들은 마치 죽음이 나를 빼앗 아 가려 하더라도 아니 놓으려고 결심하는 것 같았다. 실상 그들은 내 임종을 보는 것으로 알았을 것이다.

『너무 걱정 말어.

나는 이렇게 말하고 빙그레 웃어 보였다. 반드시 억지로 지은 웃음만은 아니었다. 나는 일종의 안식감과 희열감을 이때에 가질 수가 있었다. 몸과 마음이 온통 편안하였다. 가 슴속에 서물서물하는 것도 같고, 목구멍에서 피거품이 보그 르 끓어 오르는 감각조차도 다 유쾌하였다.

『그래도 이렇게 많이 피를 토하셔서 어떻게?

하고 마아가릿은 울었다.

『더러운 피는 다 뽑아 버리고 시방 간장에서 깨끗한 새 피를 만든 중이거든. 더러운 피와 함께 더러운 생각도 다 뽑아 버리고 눈같이 흰 새 영혼이 된단 말이오.

나는 이렇게 웃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또 한번 웃었다. 그 러나 내 귀로 들어 보아도 그 소리는 저 깊이 땅속에서--무 덤 속에서 온은 소리와 같았다. 귀가 멀어진 것인가. 음성이 기운이 없어진 것인가

『오빠가 무슨 더러운 생각이 있수?

엘렌의 음성이 떨리자, 내 눈등에 엘렌의 눈물이 떨어졌다.

『그럼, 아주버님 마음에 무슨 더러운 생각이 있으셔.

마아가릿이 이렇게 대꾸를 놓았다.

나는 두 사람의 눈에 내가 이렇게 깨끗한 사람으로 비치었 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회칠한 무덤의 겉을 보고 희고 깨끗 하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다만 말과 행실만이라도 깨끗하게--이러한 나는 일종의 위선자다. 남을 속이는 사람 일 뿐더러, 그보다는 더 저를 속이는 사람이라고 나는 절실 히 생각하였다.

그러나 내 천품은 잉 위선자 이상에 오를 수는 없는 것 같 았다. 속부터 속까지, 속속들이 눈같이 흰

「나」가 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순간 죽음을 바로 한걸음 앞에 두고 마아가릿과 엘렌의 아무 잡념 없는 사랑을 받는 순간에만은 나는 마음속에 완전한 깨끗함을 느 끼는 것 같았다.

내 얼굴에 떨어진 엘렌의 눈물, 만일 마아가릿이 보지 아 니한다 하면, 나는 그것을 고대로 두어 내 살속에 배어 둘 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엘렌은 깜짝 놀라면서 내 눈등에 떨어진 제 눈물을 씻어 버렸다.

나는 내 병이 폐병인 것을 완전히 알게 되었다. 길림서와 북경서 얻어 맞은 거산이 무론 직접 원인은 아니다. K학교 에서의 과로, 치타에서부터의 심려, 더구나 마아가릿과 엘렌 을 맡아 가지고 오는 일 년 동안의 심려, 그중에도 최근 북 경에서 원고를 많이 쓰노라고 한 피로, 이런 것이 모두 합 해서 나는 마침내 이런 큰 병을 발하게 된 것이다. 내가 최 근에 점점 수척하는 것이 그 병의 시초였던 것이다.

나는 원래가 건강한 몸은 아니었다. 부모가 생존하셨던 때 에 내가 잔병을 많이 앓았던 것은 독자 영러분도 기억하실 것이다. 이러한 체질을 가지고 이러한 피곤한 생활을 한 것 이 그 결과가 이 병을 유인한 것이었다.

나는 죽는 일에 대하여서는 비교적 두려움이 없었다. 다만 오래 앓을 것이 걱정이었다. 손에 돈 한푼 없이 어디서 이 병을 앓나? 내가 앓고 누우면 마아가릿과 엘렌은 어떻게 하 나? 만일 내가 죽으면?

이러한 궁리를 하고 하던 끝에 나는,

<하나님이 나보다 더 잘 아신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 고 나는 내 힘껏 하면 고만이다.>

이러한 결론에 달하였다. 「修人事待天命」은 동양에도 있 는 말이지마는, 내 이 결론은 「누가복음」십 이장에서 온 것이었다. 나는 이 이치를 깊이깊이 느꼈다. 이것을 느낄 때 에 내 마음은 평안을 얻었다. 적어도 장래에 대한 근심은 극복할 수가 있었다. 내일 일을 위해서 염려함으로 무엇이 되느냐. 오직 오늘에 할 일을 힘껏 정성껏 할 것이다.

나는 오늘 밤 잠이 들었다가 내일에 다시 못 볼는지도 모 른다. 만일 하나님이 원하시면 나는 내일 하루를 더 볼 것 이다. 그러면 내일은 또 내일 하루에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내일이 또 오늘이 된다. 내가 살 수 있는 것은 언제 나 오직 오늘뿐이다. 언제나 오늘이 내 생활의 마지막 날이 요. 동시에 전부다--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아픈 것도 오늘뿐이다. 내일도 아픈 생활이 있을는지 모르거니와, 그것은 오늘에 내가 알 바가 아니다.

그것을 아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다. 마아가릿과 엘렌을 맡은 것도 하나님이요, 내가 아니다. 나도 내가 알지 못하거 든 하물며 남이랴?

그러므로 내가 죽더라도 마아가릿과 엘렌은 또 사는 날까 지 살아 갈 길을 찾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안심 을 얻을 수가 있었다.

나는 그때에 아직도 인과의 법칙을 믿을 줄을 몰랐다. 오 늘이 내일의 인이요, 모레의 인이요, 인 있는 곳에 반드시 과가 있고, 과를 볼 때에 반드시 그 일을 갖을 수 있다는 이치를 몰랐다. 내가 오늘 앓는 것도 어저께까지의 내가 지 은 업을 보인 줄을 몰랐다. 다만 나로는 헤아릴 수 없는 하 나님의 섭리라고만 생각하였다.

그러하기 때문에 내 병이 어디서, 왜 온 것을 나는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우연에 돌리지 아니하는 생각을 가졌던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그리하였더면 내 마 음에는 얼마나 원한이 많았을까. 얼마나 내 기막힌 처지에 대하여 가슴을 치고 이를 갈았을까. 모든 것이 다 하나님에 서 오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내게는 원한은 없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왜 이렇게 무자비 할 까. 왜 이렇게 인생에 가난이 있고 병이 있고 죽음이 있고 슬픔이 있을까. 왜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싸울까. 이러한 일에 대하여 때때로 하나님의 자비성을 의심하고 원망하는 일도 없지 아니하였다.

『하나님이 어디 있나!

이러한 소리가 나오는 때가 있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인 과를 믿었던들--물리학이나 화학에서 배운 대로 물지도 에 네르기도 불멸, 오직 인과의 원리로 해서 모든 변화, 즉 모 든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믿는 모양으로, 사람의 생활도 개 인이나 가족이나 민족이나 인류 전체나 모든 인과의 이치로 고락과 흥망과 성쇠가 있음을 알았던들, 나는 「왜 이럴 까」하는 의심이나 원망을 품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 내가 받을 것을 받는구나.>

하고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내일을 위한 인을 짓기에만 힘을 썼을 것이다.

피 나오는 것은 일주일쯤 지나서는 뜸했다. 눈도 예전과 같이 바로 보였다.

나는 다시 원고를 쓰지 아니하면 아니 되었다. 나는 신문 에 원고를 씀으로 먹을 것을 얻는 것뿐 아니라, 내 동포에 게 대한 의무를 다한다는 만족을 얻을 수가 있었다. 나는 스스로 제가 하잘 것 없는 위인인 줄을 깨닫게 되었지마는, 그래도 어렸을 때에 가졌던 엄청난 큰 포부의 그림자가 조 금은 남아서 내 일생을 통하여 동포에게 무었을 주겠다는 생각은 끊지 아니하였다.

더구나 아마도 죽을 날이 얼마 멀지 아니하다는 것을 느끼 는 이때에는 내 속에 있는 모든 좋은 것을 내 목숨이 끝나 는 날까지 남김 없이 동포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 다.

그때 내 처지에서 할 일은 오직 글을 쓰는 거시었다. 내가 본 조선의 잘못을 말하고 내가 믿는 조선의 새 길과 새 일 을 글을 통해서 말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움직이면 또 피가 나오고 열이 올랐다. 만일 이때에 의사가 보았으면 절대 안정을 명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소변 출입도 아니할 수 없고 원고도 아니 쓸 수 없었다.

마침내 엘렌의 발의로 나는 반듯이 누워 있고, 엘렌이 곁 에 있어서 내가 부르는 것을 받아 쓰기로 하였다. 나는 처 음에는 그것이 무척 미안해서 누워서 원고지를 공중에 들고 연필로 쓰는 일을 해보았다. 팔이 아팠다. 그래서 마침내 엘 렌의 말대로 내가 부르고 엘렌이 받아 쓰기로 하였다.

그러나 엘렌은 아라사에서 교육을 받았기 땜문에 조선글이 서툴렀다. 겨우 한글을 쓸 수 있는 정도였으나 어휘가 심히 적었다. 마아가릿은 한문을 좀 알았으나 지식으로 엘렌을 따르지 못하였다.

엘렌은 영리하고 또 내게 도움이 되려고 정성을 다하기 때 문에 며칠이 아니 되어서 내 말을 곧잘 받아 쓰게 되었다.

『오빠, 부족하지만 내가 오빠 도움이 되게 해주셔요.

엘렌은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엘렌의 정성에 나는 큰힘을 얻었다. 우선 내가 불리는 글 이 엘렌에게부터 큰 도움이 되게 하여 주소서 하고 빌었다.

나는 「젊은 同胞에게의 言」이라는 제목으로 긴 논문을 쓰 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논문 겸 감상문이었다.

회복할 수 없는 병에 걸려서 만리 이역에 누운 젊은 사람 이 죽음을 응시하면서 최후의 정성과 정력을 다해서 젊은 동포에게 주는 말을 쓰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젊은 몸으로 세상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중병이 든 것을 말하고, 내가 하려던 직분까지 여 러분께 전함을 말하고, 우리는 우리 선인들의 잘못으로 불 생을 당하고 있으니 우리가 또 우리 자손에게 불행을 주어 원망을 사지 말 것을 말하고, 이러하기 위하여 우리는 마치 전자에 나간 군사와 같은 생각으로 우리 자신을 잊고 오직 이 따와 이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기에 몸과 마음과 재산을 바치기로 맹세하고, 말하고, 그리하기 위하여서는 우리는 첫 째로 거짓과 게으름을 버리고 이기주의를 버려서 말이나 행 실이나 오직 참되고 저를 잊고 이 따와 이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부지런히, 부지런히, 죽기까지 부지런히 일하여야 할 것을 말하고, 일할 구체적 내용에 관하여서도 악습관 타파 라든지 문맹 타파라든지 농촌 개발이라든지 경제적 사회 개 량적 각종 조직 운동이라든지 민중 교화 기관의 설치라든 지, 이런 것을 들어서 말하였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격렬하게 주장한 것은 한족을 숭배하 는 유림의 노예 근성 타파와 조상 중심, 가문 중심인 사상 과 도덕의 타파였다. 나는 유교를 공격하여서 조선사람의 혼을 죽인 것은 유교라고 극언하고, 안 순암, 정 포은 이하 로 조선을 유교화하기에 힘쓴 선혈들을 막 공격하였고, <삼 국 사기>를 쓴 김 부식과 만동묘를 세운 송 우암을 민족의 적이라고 절규하였다.

그리고 민족의 역사라든지 어학은 위할 줄 모르면서 이름 없는 조상의 무덤을 꾸미고 족보를 간행하는 것을 타파하 고, 마땅히 자녀를 중심으로 하여 부모는 자녀를 위한 거름 이 되고 희생이 되고 발등상이 될 것이라고 통론 하였다.

그리하는 동시에 혼인은 신랑과 신부의 일이요, 결코 두 집의 문제나 두 부모의 문제가 아니라 하여 연애 자유론을 주창하였다.

그리고 나는 조선이 비록 오늘은 성명 없고 빛 없는 한 존 재이지마는 우리네 젊은 사람들의 총명한 노력으로 말미암 아 장래에는 세계의 큰 빛이 되리라고 말하고, 우리 젊은 조선인의 생명은 마땅히 그 빛을 발할 초의 원료로 바칠 것 이라고 하였다.

『아들과 딸은 구습에 젖은 부모의 길에서 반역하여 새 길 을 찾아 밟으라.

이러한 소리도 하고,

『제 조상을 잊고 한족의 조상을 조상이라고 하던 선인들 의 무덤을 가르고 해골을 파내어 가루를 만들어 바람에 날 려서 조선의 땅을 깨끗이 할지어다.

이러한 격렬한 소리도 하였다.

나는 신문으로 오십여 일을 긍하여 조선의 모든 낡은 것에 대하여 선전 포고를 하고 내 힘을 다하여 공격하였다. 그리 고 끝에,

『나는 아마 죽을 것이다. 내 병은 날로 침중해 간다. 나는 이 글을 끝맺을 때까지 목숨을 부지한 것을 큰 기쁨으로 안 다.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그러나 쇠약한 내 신 경은 이 글을 쓰기에도 가끔 아뜩아뜩한다. 인제 나는 더 무엇을 생각할 힘이 없는 것과 같다. 인제 나는 이 글을 끝 막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만일 우리네 조상이 믿던 바와 같이 사람이 죽어서 다시 어디나 태어나는 것이라 하면, 나 는, 나는 극락도 천당도 다 버리고, 영국도 미국도 다 버리 고 기어이 조선에 태어나려고 한다. 만일 몇 번이고 죽어서 또 태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면 천만 번 억조 번이라도 번번이 조선에 태어날 것을 맹세한다. 그래서 내 손으로 조 선의 산과 들을 울창한 산림과 기름진 오곡과 아름다운 꽃 으로 꾸미고, 조선의 사람으로 하여금 세계에 가장 힘있고 영광 있는 백성을 만들고야 말 것을 맹세한다.

이런 말을 쓰고, 그리고는 이십여 일 동안이나 내 그을 받 아 쓰고 또 정서한 엘렌과, 그동안 내 더러운 것을 받아 내 고 쓰시는 어깨와 팔다리를 주무르고 내 머리맡에서 밤을 새우다시피 간호해 준 엘렌과 마아가릿에 대하여 나는 이렇 게 썼다.--

『내 친구의 아내인 마아가릿과 누이인 엘렌은 앓는 나에 게 대하여 친동기 이상으로 정성을 다해 주었다. 내 생명을 오늘날까지 부지하여 이 글을 마치게 한 이는 시로 이 두 사람이었다. 나는 일어나 앉을 기운이 없으매, 이 원고는 엘 렌이 받아 쓴 것이요, 오후와 밤 동안의 높은 열과 고통이 내 생명을 끊어 버리려 할 때에 밤을 새워서 그것을 붙들어 준 이는 마아가릿이다. 만일 이 글이 내가 우너하는 바와 같이 조선을 위하여 다소의 도움이 된다 하면 그 공적은 엘 렌과 마아가릿과 나와 셋이서 고루 나눌 것이다. 그러나 무 론 마아가릿과 엘렌이 나를 위하여 이렇게 생명을 바쳐 주 는 것이 아뭄 솓득을 바람이 없는 것가ㅏㅌ이, 내가 임종을 눈앞에 바라보면서 이 글을 쓰는 것도 나를 위한 아무 소득 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마아가릿이나 엘렌이나 또 나나 다 아니하지 못하여서, 아니하고는 못 견디어서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기쁨이 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조선이 마아갈릿과 엘렌 두 사람을 대 표로 봬어서 만리 타향에서 앓고 있는 나를 간호해 주는 것 이라고 믿는다. 아아, 끝없는 조선의 정이여, 사랑이여!

끝날 원고를 낭독하고는 엘렌이나 마아가릿이나 다 흑흑 느껴 울었다. 나도 눈물이 흐름을 금할 수 없었다.

『오빠, 저는 오빠께서 이러한 어른이신 줄을 몰랐어요, 저 는 일 년 넘어 큰 어른을 모시고 있으면서도 그가 누구인지 를 몰랐어요.

엘렌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마아가릿은 내 손 하나를 가슴에 안고 말 없이 울고만 있 었다.

나는 이런 센티멘털한 시인을 오래 끌기를 원치 아니하여 서,

『마아가릿, "I would be true."불러 주시오.

하고 찬미 하나를 불러 달라고 하였다.

내몸에는 열이 오르느라고 오싹오싹 오한이 나기 시작하고 손발이 ㅆ사늘하게 일어 올라왔다.

마아가릿과 엘렌은 내 이불을 잘 덮어 주고 손발을 주물러 주었다. 나는 마치 해산ㄴ한 어머니와 같이 기운이 탁 풀려 버림을 느꼈다. 열아 오르고 싶은 대로 올라라, 찬미를 불렀 다.

"I would be true, for there are those who trust me, I would be pure, for there are the who care.

I would be strong, for there is much to suffer I would be brave, for ther is much to dare."

(나는 참되리네, 나를 믿는 이 있으니, 나는 깨끗하리네, 나를 아끼는 이 있으니 나는 굳세려네, 받을 고난 많으니, 나는 겁 없으려네, 당한 위험 많으니.) 이 노래를 들으면 많은 힘을 얻었다. 나를 믿어 주는 사람 들을 생각할 때에 나는 참되려고 애쓰지 아니할수 없고, 나 를 염려해 주는 이름 생각하면 깨끗하기를 힘쓰지 아니할 수 없었다. 진실로 내 앞길에는 받을 고난이 많고 당할 위 험이 많으니, 나는 굳세 버티고 견디고, 겁없이, 힘있게 나 아가지 아니할 숭 벗다.

마아가릿은 또 사랑하는 둘째 노래를 불렀다.--

"Lord for tomorrow and its neebs l do not pray, Keep me from stain of sin just for to-day.

Let me both diligently work and duly pray.

Let me be kind in word and deed Father, to-day"

(주여, 내일 일을 위하ㅕ 빌지 아니하옵니다.

주여, 저를 오늘 하루만 죄에 물들지 말게 하옵소서.

저로 하여금 부지런히 일하고 잘 기도하게 하옵시며, 말이나 행실에나, 아버지여, 오늘 종일 친절하게 하옵소서.) 나는 노래를 다 듣고 나서,

『마아가릿, 엘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지금 부른 찬미 뜻대로 살아 가.

하고 웃었다.

열이 오를 대로 오르면 나는 잠이 드는 것이었다. 일종의 혼수 상태였다.

나는 내 얼굴에 무엇이 닿는 감각으로 잠이 깨었다. 마아 가릿이 수건으로 내 이마를 씻기는 것이었다.

열이 내릴 때에는 전실에 불이 이는 듯한 작열감이 있었 다. 전신에 땀이 풍하게 젖은 것은 실로 불쾌한 일이었다.

『엘렌은 어디 갔어요?

하는 내 말에, 마아가릿은,

『주무시면서도 엘렌을 찾으셔요.

하고 웃으며,

『엘렌은 우편국에 원고 부치러 갔어요.

하였다.

자면서도 내가 엘렌을 찾았다? 아마 그러기도 했을 것이 다. 지금 내 가슴속에 가장 소중하고 귀여운 것이 엘렌이었 다. 나는 엘렌이나 마아가릿이나 꼭 같은 정도로 사랑하려 고 힘을 썻으나, 나는 엘렌에게서 더 많은 가치를 발견하였 다. 엘렌은 잘 내 속을 알아 주고 비판까지 하는 능력을 가 졌다고 나는 믿었다. 그는 한 남자로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스승으로, 동지로 나를 사랑한다고 나는 믿었다. 그 러나 마아가릿은 분명히 나를 한 남자로 연애하는 것이었 다. 아마 자기를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남자로 사랑하는 것인지 모른다. 나는 그 마음도 고맙지 아니함은 아니나, 이 렇게 주영에 있는 때문이겠지마는, 나는 거룩한 사람이 되 고 싶었다. 어느 여자와도 육체적 결합을 목적하지 아니한 뜻만으로의 사랑을 하고 싶었다.

만일 내가 이 병에서 벗어나서 다시 세상에서 살 기회가 있다고 하면 나는 금후의 목숨을 성도적 생활로 바치고 싶 었다. 물욕과 명예욕과 안락욕과 정욕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서 예수 모양으로 순전히 동포를 가르치고 건지기 위하여서 살고 싶었다. 이러한 생각이 있길래로 지나 일 년 반 동안 마아가릿의 유혹을 잘 이겨 나온 것이다.

실상 마아가릿의 유혹과 매력은 저항하기 어려울이만큼 컸 다. 그는 몇 번이나 내게 안기고 내게 매어 달렸다. 그러할 때마다 나는 이성이 아뜩아뜩함을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최 후의 일순간에 나는 나를 이길 수가 있었다.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양력 설, 음력 설도 지났다.

내 논물이 나기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나서 하루는 역사가 가 얼굴 넓적한 그 사람을 데리고 나를 찾아 왔다. 그 얼굴 넓적한 사람이란 나를 때리러 왔던 패의 두목이던 그다.

『유원, 웬일이오.

하고T는 내 머리맡에, 얼굴 넓적한 사람은 내 발치에 앉았 다.

나는 웃음으로 두 사람을 대하였다. 펑탕도 찾아 오지 않 는 이때에 오래간만에 사람을 만난 것이 기뻤다. 비록 나를 때리러 왔다 하더라도 반가왔다.

『신문에 쓰이는 것은 보았지요. 이번에는 본명으로 쓰셨 두구먼, 유원이 이번에 쓰시는 글은 참 좋은 글이야요. 오늘 은 그 글 치사 겸 문병 겸 왔지요.

이것은T의 말이요,

『저번 일은 용서하셔요. 나는 W야요. 선생을 잘못 알고 그런 일을 해서 이렇게 병석에 누우시게 하니 뭉;라고 할 말씀이 없어요.

하는 것은 얼굴 넓적한 사람의 말이었다.

『그런 높으신 생각을 하는 양반이 부정한 일을 하실리가 있어요? 그래서 혼자는 와 뵈올 면목도 없어서 T선생을 모 시고 왔지요.

이런 말도 하였다.

나는 진실로 기뻤다. 북경에 있는 동포들이 내게 대한 오 해를 풀게 된 것도 기쁘지마는, 내가 쓴 글이 그만큼 독자 간에 반향을 일으킨 것이 기뻤다.

또 그후에는 북간도의 T교장으로부터도 위문하는 말과 그 에 대한 칭찬의 편지가 오고, 돈 이십원도 치료비에 보태어 쓰라고 왔다.

내 생활에도 차차 봄이 오는 것 같았따. 마아가릿과 엘렌 도 기뻐하였다. 북경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더러 찾아 왔다.

또 삼월에 들어 가서는 동경 시대에 잠깐 만난 일이 있는 K씨로부터 M신문을 통하여 치료비 이백원을 부쳐 보내고, 언하여 씨의 편지로 내가 병이 나은 뒤에는 동경에서나 북 경에서나 원하는 곳에서 공부를 하라, 합기는 당해 주마 하 는 고마운 말이 왔다.

이러한 의외의 도움으로 나는 편안히 병을 치료할 수가 있 어서 육칠원경에는 나와 돌아 다니기도 하게 되었다.

구월 학기에 나는 연경 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하였다. 나는 K씨로부터 학비를 받는 것이 고통이었으나 마아가릿과 엘렌 을 위하여서 아니 받을 수가 없었다.

아직 회복되지 못한 건강이지마는 그래도 학교 과정을 감 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마아가릿과 엘렌을 나는 YWCB의 기숙사에 들여 보내기에 성공하였다. 그것은 내 영문학 선생인 팔 박사의 진력으로 였다. YWCB의 일을 보는 미스 워어터하우스라는 이가 장 차 모스크바로 파견을 받게 된다 하여 엘렌은 위양에게 아 라사말을 가르친다는 명의로 학비를 얻게 되고, 또 마아가 릿은 배닝험이라는 늙은 부인을 돕는다는 명의로 학비를 얻 게 되었다.

이리하여서 크리스마스 방학이 지나고 새학년부터는 우리 는 T라는 동네에서 죽을 고생을 하던 집을 피하고 세 사람 이 흩어지게 되었다.

나는 연경 대학 기숙사로 들어 갔다.

내 방에는 중국 학생 셋이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는 C라는 북방 사람이요, 하나는 F라는 복건 학생, 또 하나는 손 문 선생과 동향이라는 광동 학생이었다. 그들은 비록 다 같은 중국 사람이라고 하건마는 서로 말이 잘 통치 아니하여 영 어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도 그들 새에 섞일 때에는 외국에 있다는 생각 이 없었다. 다만 피차에 서투른 영어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좀 불쌍한 듯하였다. 당시 북경에 있는 중국 국회인 참의원 과 중의원에서도 관화를 모르는 것을 그리 수치로 알지 아 니하고 도리어 자랑으로 아는 기색도 있었다. 광동서 온 K 라는 아이는 저의 가족에게 하는 편지에도 영어를 썼다.

『중국 사람도 유대인 모양으로 코스모폴리탄이다.

나는 내 동창 학생들을 보고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아마 국민의 수효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그러한지도 모른다. 또는 수천년래도 제 나라가 곧 천하라고 자존해 와서 대등의 적 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기는 <논어> <맹자>에는 민족 의식을 말한 데는 없다.

『열강이 장차 중국을 분할하면 어찌하느냐?

나는 이러한 말을 해보았다. 왜 그런고 하면, 영국이 양자 강 이남을, 미국이 안휘와 복건을, 아라사가 몽고와 청해를, 프랑스가 고아서와 운남을, 이 모양으로 세력 범위를 정하 여 사실사의 분할을 한다는 소문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중국 학생들은,

『아이 돈 케어(난 상관 없어).

한다든지,

『네버 마인드(걱정 말어).

하고 태연하였다.

그 이유는 과거에도 몽고족이나 만주족이 중원을 정복한 일이 있었지마는 다 삼백 년이 못해서 도리어 피정복자인 한족에게 동화되고 흡수됨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열강이 설사 중국을 과분하더라도 그것은 길어야 삼백 년을 못 가서 도로 한족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 와 같이 수효적은 민족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었다. 나는 일변 그들에게 애국심이 없음을 비웃으면서도 또 일변으로는 그들의 대륙적인 흉금이 부러웠다.

한번은 교육가 장 백령이라는 이가 학교에 와서 강연을 하 는데 「백년 후의 중국을 바라보노라」하여 오직 교육 운동 으로만 새 중국을 백 년 후에 이룩한다는 말을 할 때에 청 중은 모두 박수 갈채하였다.

나는 아령과 북간도에 있는 조선 사람들이 성급하게 「금 방, 금방」이라고만 떠들고 십 년 계획도 세우려 아니 하는 것과 비교해 보았다.

일찌기 서양 사람들이 중국을 「자는 사자」라고 일컫다가 일.청전쟁에 참패하는 것을 날 산 사자가 아닌가 하였다. 어 찌했든지 한족은 우리와는 고래로 관계가 깊은 민족이었다.

단군 때부터 벌써 요 임금 시대의 한족과 교통이 있었고, 역사가 C의 말과 같이, 기자(기자)가 비록 지금 요양(요양) 의 한편 구석에 와서 망명 생활을 하였다 하더라도, 또 역 사가 C의 말과 같이 기자가 은나라의 기자가 아니라 개오지 라 하더라도,또 한나라 때 낭랑이 비록 지금 대동강 연안이 아니라는 W씨의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또 우리 조선족이 독특한 문화를 지어 내였다 하더라도 우리가 한족의 문화의 영향과 혜택을 받은 것 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한족에게 대하여 감사의 뜻을 아 니 품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신 만엽 이래도, 특기 이조 오 백 년에 한족의 문화에 중독하여 제 것이라 할 모든 좋은 것을 잃어 버린 것은 심히 원통한 일이지마는 그것은 우리 조상네의 잘못이지 결코 한족의 잘못이라 할 수는 없고, 또 백제와 고구려의 나라와 문화를 멸한 당나라나, 임진란에 조선에 들어 와 서 행악한 명병이나 그것도 그들을 우리 나 라에 불러 들인 우리 조상들의 죄요, 한족의 죄는 아니다.

우리는 한족을 미워하고 멸시하는 생각까지도 가지는 경향 이 있지마는, 이것이 심히 어리석은 일이다--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아무려나 나는 오래간만에 홀가분한 생활을 할 수가 있었 다. 학교의 교사나 잡지의 편집이나 다 마음 졸이는 일이었 고, 또 두 식구를 끌고 다니며 가난한 생활을 하는 것은 실 로 뼈가 휘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기숙사에서 학생 생활을 하는 것은 참으로 유쾌 한 일이었다. 다만 병후의 몸이 남과 같이 건강치 못하여서 걸뜻하면 피곤하고 감기가 드는 것이 괴로운 일이었다.

이렇게 비교적 유쾌한 생활을 하면서 나는 내 학비의 전반 을 마아가릿과 엘렌에게 보태어 줄 수가 있었다. 토요일 오 후면 나는 마아가릿과 엘렌을 찾았다. 그들도 괜찮게 지내 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다음에 봄까지 북경에서 지났는데, 내게 학비는 주 는 K씨로부터 동경으로 가거라, 동경으로 가는 길에 서울에 들러라, 이러한 청구가 왔다. K씨는 그때에 서울에서 학교 를 경영하려고 준비하는 중이어서 내게 학비를 주는 것에는 학교 일을 보게 하자는 뜻도 품었던 모양이었다.

또 나도 공부를 하려면 동경이 낫다고 생각하여서 마아가 릿과 엘렌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마는, 그들도 될 수 있으면 동경으로 데려 가기로 하고 나는 북경을 떠났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