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3

이광수 그의 자서전 4 방랑의 길


4] 방랑의 길

내가 이렇게 하고 지을 떠날 때에 내 모메 지닌 것은 오직 입은 옷 한 벌과 겨우 국경을 넘을 만한 돈이 든 돈지갑 하 나뿐이었다. 나는 한두 벌 옷도 가지지 아니하였다. 집을 떠 난다고 해서 새 옷을 갈아입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차마,

『지금 나는 떠나오.' 할 용기가 없어서 아내에게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산보나 나가는 모양으로 집을 나선 것이었다.

때는 늦은 가을이었다. K학교를 에워 싼 포플라 잎사귀들 이 누렇게 황이 들어서 바람에 펄펄 날리고있었다. 나는 학 교에 와서 직원들과 학생들과 마나는 대로 인사를 하고 산 보 가는 모양으로 정거장으로 나갔다.

정거장은 K학교에서 십리나 되었다. 고개 하나 넘어서 산 모퉁이를 돌아 서면 조그마한 K역이다. 나는 고개에 올라 서서 학교를 바라보고 낙루하였다. 학교와 학생들이 그렇게 도 그리웠다. 나를 미워하는 K장로나 M교사까지도 다 그리 웠다. 그들이 만일 이 고개에 나타난다 하면 나는 정녕 그 들을 안고 울었을 것이다. 학교는 내 유일한 집이요, 학생들 은 내 애인이었다. 나는 이 세상에 이 밖에 정들인 곳이 없 는 것이다. 술도 담배도 다 끊고 가정의 향락도 없는 나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가르치는 것으로 유일한 낙을 삼았던 것 이다. 학교 건물의 어느 기둥에는 내 손이 아니 닿았을까.

저 낙엽이 지는 어느 포플라는 내가 그 생일과 자라나는 양 을 모르는 것이 있을까. 눈물 어린 내 눈에는 학생들이 운 동장에서 풋보올을 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얼굴은 아니 보 이지마는 그 동작으로 보아서 어느 것은 누구라고 일일 이 풋보올 차는 아이들을 지적할 수가 있었다. 그들은 대개 십 삼세 적에 만나서 십 칠세까지 길러 낸 내 학생들이 아니 냐. 나는 그들의 얼굴에 어디 기미가 있고 어디 여드름이 있는 것까지도 아는 터이 아니냐. 그들의 성품이 누구는 누 긋하고 누구는 팔팔하고 누구는 헤식고 누구는 다부지고 ㅡ 무엇은 내가 모르는 것이 있느냐. 나는 참지 못하여 눈물을 뿌리면서 정거장 쪽을 향하고 달음질쳤다. 만일 조금만 마 음을 느꾸었더면 나는 학교로 달아 들어 가고 말았을 것이 다. 내 결심은 굳었다.

나는 차를 탔다. 차는 학교를 바라보는 데로 통과하게 되 었기 때문에 나는 한번 더 창가를 끊지 아니할 수 없었다.

첫 정거장에 다다를 때에 나는 여기서 내려서 다시 K학교 로 가서 하룻밤만 학교에서 자고 떠난단 말을 한 뒤에 실컷 학생들과 이야기나 하고 떠날까 하는 생각이 간절하였다.

그러나 꾹 참았다.

내가 학교와 학생에게서 점점 멀어 가거니 하면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식 떼어 두고 쫓겨 나는 어미의 마음이 이 러할까. 발자국에 피가 고인다는 것이 이런 생각을 두고 이 른 말일까. 나는 몸과 마음을 둘 곳을 몰랐다.

마침내 나는 셋째 정거장에서 내렸다. 여기서 학교까지는 육칠십리나 된다. 그리고 내일 아침이 아니면 K방면으로 가 는 차는 없다. 그때에는 지금 모양으로 열차가 하루에 여러 번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 이삼차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도저히 내일까지 차를 기다릴 수가 없었다. 나는 떡 을 사서 들고 걷기를 시작하였다. 때는 석양도 지나고 거의 황혼이었다. 내발에는 날개가 돋힌 듯이 걸음이 빨랐다. 그 캄캄한 밤길을 다섯 시간 걸어서 자정이 다되기 전에 K학교 에 닿았었다. 기숙사 각방에는 불이 껴지고 마당에 선 장명 등만이 빤하게 켜 있었다.

나는 발자국 소리 안 나게 기숙사 방방 문 앞으로 다니면 서 그 방 속에서 자고 있는 학생들을 생각하였다. 어느 방 에는 누구누구, 누구는 아랫목에서 누구는 웃목에서, 누구는 가운데서 자는 것을 나는 다 안다. 그들은 생각할 때에 나 는 그립고 정다운 마음이 복받쳐 오름을 금할 수 없었다.

나는 방방 앞에서 학생의 이름을 하나씩 들어서 정성껏 기 도를 올렸다. 그러할수록 그들에게 대한 나의 그리움은 더 욱 간절하였다.

나는 방문을 열고 그들의 편안히 잠든 얼굴을 보고 싶었 다. 그러나 나는 그 일은 하지 아니하였고?

예전에 날마다 하던 모양으로 방 아궁이(기숙사는 옛날 조 선식 건물이어서 방방이 툇마루 밑에 함실 아궁이가 있었 다)들을 돌아 보고 어린 학생들이 벗어 던진 신발들을 바로 놓아 주었다.

찌그러진 학생들의 신발. 나는 그것을 들고 반가움과 귀여 움에 떨었다. 그 신발을 코에 댈 때에 나는 냄시 그것은 내 가 사랑하는 아이들의 살의 향기다.

이튿날 나를 만난 직원들과 학생들은 무척 나를 반가와 하 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한번 만나러 왔다는 말을 듣고 학교 에서는 학과를 쉬고 나를 위하여 송별하는 자리를 베풀어 주었다.

나는 사년 동안 아침마다 조회 시간에 올라 서던 이 연단 에 최종으로 올라 섰다. 나는 내 가슴에 쌓였던 학교와 학 생에게 대한 사랑을 숨김 없이 쏟아 놓았다. 내 눈에 눈물 이 흐를 때에는 학생 중에는 우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정처 없이 방라의 길을 떠난다는 말을 끝으로 하였 다. 실상 이 시절에는 방랑의 길을 떠나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었다. K학교를 통과해서 간 사람만 해도 십여 인은 되 었을 것이다. 그들은 대개서울서 여러 가지운동에 종사하던 명사로서 망명의 길을 떠나는 것이었다. 모두 허름한 옷을 입고 미투리를 신고 모두 비창한 표정을 가지고 가는, 강개 한 사람들이었다.

이때에 이 모양으로 조선을 떠나서 방랑의 길을 나선 사람 이 수천명은 될 것이다. 그들이 가는 곳은 대개 남북 만주 나 시베리아었다. 어디를 무엇을 하려 가느냐 하면 꼭 바로 집어 대답할 말은 없으면서도 그래도 가슴속에는 무슨 분명 한 목적이 있는 듯도 싶은 그러한 길이였다. 그것도 시대 사조라고 할까, 이렇게 방랑의 길을 떠나는 것이 무슨 영광 인 것 같이도 생각되었던 것이다.

T S C 하는 거두들은 벌써 합병 전에 망명했거니와, 그때부터 줄곧 방랑의 길을 떠나는 자가 끊이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그렇기로 나 같은 사람이야 망명이란 것도 없다. 그러면서 도 스물 네 살 된 젊은 몸이 정처 없는 방랑의 길을 떠날 때에는 비장한 듯한 감회도 없지 아니하였다.

내 송별에는 나 개인에 대한 이별의 정 외에 이 방랑의 시 대 정신도 도움이 되어서 직원과 학생의 감회가 더욱 깊게 한 모양이었다.

눈물 판으로 끝을 막은 내 송별회가 끝나자, 나는 더 오래 머무르기를 원치 아니하므로 곧 길을 떠났다. K역에 차가 닿을 시각은 아직 멀었기 때문에 나는 여비도 절약할 겸.

또 떠나는 고향의 풍경을 좀더 볼 겸 다음 정거장까지 걸어 가기로 작정하고 뒷고개를 넘었다.

학생들이 많이 따라 나왔다. C라는 학생은 제가 덮던 뻘건 담뇨를 싸가지고 나오고, Y라는 학생은 어디서 난 것인지 일원짜리 은전 한푼을 내 손에 쥐어 주고, 이 모양으로 신 행을 주는 이도 있었다. 오리까지 나오는 이, 십리까지 따라 오는 이, 사십리 길을 다 걸어서 다음 정거장까지 따라 온 학생도 이삼인은 되었다. 나는 일생에 이렇게도 아껴 주는 전별을 받아 본 일이 없다. 이렇게도 서럽고도 정다운 이별 을 하여 본 일이 없다.

이날은 늦은 가을에 흔히 있는 모양으로 봄날같이 따뜻하 였다. 길가에는 서리 맞은 야국이 더러 남아 있었다. 먼 산 에는 아지랑이까지도 보였다. 어젯밤 서리를 많이 친 탓일 는지 모른다.

나는 황량한 압록강 벌판을 바라보고 감개 무량하였다.

『내가 가던 날에 피눈물 난지 만지 압록강 내린 물에 푸른빛 전혀 없다.

하신 효종 대와의 노래를 생각하였다. 효종 대왕은 청에 잡혀 가는 몸으로서 피눈물 흘린 만도 하지마는, 나 같은 이름 없는 한 선생이 부앙 강개할 것도 없을 것이지마는, 석양에 방랑의 길을 나선 몸이 압록강을 굽어 보는 갑회는 눈물 없을 수 없었다.

안동현에서 일생 처음 중국 사람의 객관(여관)에 들어서 귀 에 익지 아니한 어음과 눈에 익지 아니한 모양들을 볼 때 에, 일종의 불안이 없지 아니하면서도 또한 에피소우딕한 흥미도 없지 아니하였다. 딸랑딸랑, 째각째각하는 물건 팔러 다니는 소리며, 삐걱삐걱 야릇한 소리를 내는 외바퀴 수레 소리며, 박석 위에 떨어지는 말발굽 소리도 끊어지고 때묻 은 채렵 이불로 찬 기운에 스며들 때까지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자유는 언제나 적막을 데리고 다니는 것인 듯하다. 나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이역 객창의 첫날은 심히 의로왔다.

돌아 보아 말할 사람도 없고, 날은 추울데 내 흰옷에 묻은 때만 유난히 눈에 띄었다.

밥값을 치르고 나니 주머니에 돈이 겨우 일원 칠십전 이것 을 가지고 나는 일생의 방랑을 밑천을 사는 것이다.

나는 한푼 없는 사람이 되려고 내 돈이 자라는대로 봉천 방향으로 차표를 사가지고 거기서 내려서부터는 걸어서 북 경으로 향할 작정이었다. 인가 있는 데서 밥을 얻어 먹으며 중국 남방을 향하여 내려 가서 안담을 거쳐 면전으로 섬라 로 인도를 두루 돌아 파사로 소아시아로 그리고는 구라파보 다도 아프리카에 들어 서서 아비시니아와 애급을 보고 대륙 을 종단하여 희망봉까지 내려 갔다가 ㅡ 나는 이러한 꿈을 꾸면서 안동현 정거장을 향하고 걸어 나갔다.

내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 걸어 가노라니,

『남궁군!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어떤 청복을 입는 젊은 사람, 옳다 그는 W로구나 하고 나는 사오년 전에 서울서 K군의 소개로 한번 만난 일이 있는 글 잘하는 W군인 줄을 알았다. K군이라 함 은 독자도 기억하실는지, 동경서 내게 바이런을 소개해 준 친구다. 그는 나와 달라서 명가의 자제요, 그의 아버지는 무 슨 벼슬을 하다가 시국에 분개하여 자살한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나는 K의 집에서 W군을 처음 인사하였다. W는 몸이 가냘 프고 손이 보드랍고 눈이 크고 정기가 있는 사람이다. 이는 K보다도 더 명가 자제로 그의 조부도 영의정을 지내고 증조 도 영의정을 지냈고, W군 자신은 십 사오 세 적부터 벌써 문명이 높아서 문장이란 명칭을 듣는이다.

그는 내 손을 잡고 반가운 뜻을 표하였고 나는 다만 하룻 동안만이라도 강 한 새 둔 곳일지라도, 이역의 외로운 옛 친구를 만난 것이 기뻤다. 그는 내 여행의 목적을 듣더니 그럴 것 없이 우선 상해로 가라고 권하였다.

상해에는 바이런의 K군도 있고, 광생이라는 별명을 듣는 H군도 있고, 또 성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S군도 있고, 그 밖 에도 사 년 전에 K학교를 들러서 망명의 길을 떠난 M신문 주필 T도 있고, 여러 명사들이 많이 모였으니 그리로 가라 는 것이었다. 바이런 K는 물론이어니와, 광생 H나 성인 S나 또 T고집이나 다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다.

『자 그렇게 하라고.

하고 W는 그 가느단 손가락으로 지갑에서 십원짜리 지전 두 장을 꺼내어서 내개 주고, 또 어떤 청복 파는 집에 가서 퍼런 청복 한 벌을 사주었다.

나는 W의 이 의외의 호의를 무한히 감사하고 그 말대로 상해에 가기를 약속하였다. W는 곧 서울로 갔다.

나는 배편을 알아 보았다. 바로 그 이튿날 떠나는 요차오 라는 영국 배가 있는데 이것이 금년으로 마지막 배라고 한 다. 대개 압록강이 얼어서 배가 다닐 수 없기 때문인데, 이 배도 강이 얼 것이 무서워서 안동현까지 올라 오고 산딸랑 터오라는 안동현서는 사오십리나 하류에 있다고 한다.

삼등표를 사려고 하였으나 그것은 관리들이 타는 데라고 하므로 이등표를 샀다. 표를 사고 나니 돈이 일원 얼마 밖 에 안 남았다. 배까지 가는 삼판은 참으로 추웠다. 흐릇한 물에 풍랑은 높고 강 좌우 언덕은 개흙과 마른 갈대뿐이었 다.

그래도 중국 사람들은 무에라고 줄곧 떠들어 대었다. 석양 풍랑 세인 흐린 강 위에 일엽주를 타고 흘러 내려 가는 감 회는 실로 쓸쓸하였다. 나는 장차 어디로 가는 고 하는 생 각에 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배에 올랐다. 낡은 조그마한 기선으로 더럽기가 짝이 없고 내가 탄 선실에는 나 하나 밖에 없었다. 넷이 탈 침대가 있 는 선실에 나 하나뿐이었다. 침대라고 매트리스 조차 었었 고 널쭉뿐이었다. 바람은 불고 불기운 없는 방은 견딜 수 없이 추웠다.

나는 C라는 학생이 준 붉은 담뇨로 몸을 싸고 잠이 들려 하였으나, 추워서 잘 수가 없어서 방안에서 답보로를 해서 얼은 다리를 녹였다.

거의 서서 새우다시피 하고 아침에 갑판 위에 나와 보니 배는 아직 떠나지 아니하였는데, 간판 위에는 얼음이 얼고 용암포 쭉 산들에는 밤 동안에 하얗게 눈이 덮혀 있엇다.

바다는 늠실거리고 바람은 여전히 마스트를 때려 울렸다.

아침 식탁에서 나는 조선 사람인 듯안 세 손님을 만났다.

이때에 조선 사람들은 조선 사람을 무서워하는 판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마는. 그래서 피차에,

『저놈이 조선놈인 모양인데 어떤 놈인가?

하고 서로 힐끗힐끗 정탐하는 눈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나와 같이 청복을 입었고, 두 사람은 양복을 입었었다. 그 청복 입은 사람이 암만해도 낮 이 익은데 섣불리 입을 열 수도 없어서 나는 때때로 힐끗힐 끗 보기만 하였고 저편도 그러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기로 손님이라고 우리 넷 뿐, 식탁에는 배 사무원인 청인 세 사람, 아울러 일곱 사람뿐인데 언제까지나 말이 없 이 시치미를 따기는 참 거북하였다.

쿵쿵하고 엔진 돌아 가는 소리와 떨그덕떨그덕 키줄 울리 는 소리가 들렸다. 배가 떠나면 경찰의 눈을 피해 다니는 사람들도 마음을 놓는 것이었다.

나도마음을 놓았거니와, 세 사람도 마음을 놓는 모양이었 다. 인제는 영사관 경찰의 손에 붙들려 내릴 근심은 없는 까닭이었다.

배가 떠나는 것을 보고야 양복 입은 쾌활하고 잘 생긴 친 구가 먼저 입을 열어서 나를 향하여,

『남궁 석씨 아니시오?

하고 말을 붙였다.

어떻게나 시원한지 그 무거운 침묵이 깨어진 것이 어떻게 나 시원한지, 나는,

『네 그래요. 나 남궁 석이야요.

하고 너무도 기뻐서 젖가락을 떨어뜨렸다.

『나 M이야요. 우리 동경서 만났지오. 저 간다(神田) Y군 집에서 만났지요. S허구 점심까지 같이 먹지 않았어요?

하는 M의 말에 나는 오 년전 일이 환하게 기억에 오름을 깨달았다. 그의 말에 S라는 것은 그 여자다.

Y의 외종매라는 그 여자다. M도 서로 척분이 있다던 것을 기억한다. S M더러도 오빠라고 부르던 것을 기억한다.

스끼야기를 먹고 S가 밥을 뜨고 하던 그 때에. 그러나 M 도 변하였다. 그렇게 이쁜 홍안 미소년이던 M은 벌써 풍파 격은 어른맛이 있었다.

『네, , 이런.

나는 이런 말 밖에 더할 수가 없었다. M은 먼저 뚱뚱하고 눈 가는 친구를 소개하였다. 그는 C라는 사람이요, 다음에 청복 입은 친구를 소개하였다. 그는 S라는 사람으로 나중에 는 이름 난 사회주의 이론가가 되었다가 부산에서 물에 빠 져서 자살한 사람이다.

만일 이 사람들의 본명을 말한다면, 여러분 중에서는 「아, 그 사람」하고 다 알 만한 사람들이다.

이로부터 나는 서중에서 적적하지 아니하였다. 내가 그들 의 방에 가기도 하고, 그들이 내 방에 오기도 하였다. 그들 은 여비도 넉넉한 모양인데 가만히 눈치를 보니, M은 제 여 비로 가는 모양이요, S C가 여비를 써주는 모양이었다. S 는 퍽 재주 있게 맑지게 생긴 사람이나 좀 침울하고, C는 뚱뚱하고 후덕스럽게 생긴 사람이었다. 재주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M에게서 S양의 말을 들은 것이 괴로왔다. 내 잠든 옛 기억을 일깨워 준 것이다. 혼자 추운 내 방에 있노라면 S의 모양이 눈앞에 선하게 나떴다. 아마 벌써 누구으 아내 가, 몇 애기의 어머니까지도 되었을는지 모른다. M이 저만 큼 변했으면 S도 어지간히 변했을 것이다. 그 가느스름한 눈, 한일자로 건너 문 볼그레한 입, 좀 가냘픈 듯한 몸 ㅡ 그러나 모두 다 옛 기억이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고적한 긴 항해는 추억으로 양식을 삼는 것이다.

나는 박 대령으 딸이 남편을 원망하고 울던 것을 생각 하 였다. 그리고 오다께바이상을 생각하였다.

운현은 인제 군서기가 되어서 금테 두른 모자에 금장식한 칼을 찼다. 언제 한번 만났을 적에 날 더러 도 군서기가 되 라고 권하였다. 그는 날더러 혼인하라던 그 처제와 관계를 맺아서 그 둘째 마누라가 간수를 먹었단 말을 들었다.

대련, 연해, 청도를 거쳐서 우리는 어느 아침에 양자강을 올라 가게 되었다. 물은 참 더러웠다. 흐르다 못해서 까맣 다. 세계에 가장 큰 강 중에 하나인 양자강입은 바다와 같 았으나 무척 더러웠다.

그래서 홍포강에 들어서서는 언덕이 보였다. 유명한 오송 포대도 보이고, 산하나 아니 보이는 벌판에버드나무잎이 누 렇게 된 것이 보였다. 배들도 동양 제일 국제 항인 상해를 향하고 또 상해를 떠나서 오르고 내렸다.

압록강 연안에는 눈이 내리는, 얼음이 어느 겨울이었으나 여기서는 겹옷도 오히려 더울 만한 이른 가을과 같았다.

강물이 흐린 것과 같이 하늘도 흐릿하였다. 구름이 있어서 흐린 것이 아니라, 마치 뽀얀 먼지가 낀 것 같은 그러한 흐 림이었다. 강남 오천리 ㅡ 나는 강남을 온 것이다.

차팡이라고 일컫는 보이들은 차치엔()을 내라고 손님을 보고 소리소리 지르고 적다고 더 내라고 악을 악을 썼다.

참말 떠드는 백성이었다.

내 꼴은 말이 아니었다. 값싼 청복에서 푸른 물이 묻어서 모가지 손 할 것 없이 온통 퍼렇게 되어 버렸다. 손톱 눈까 지 퍼렇게 물이 들었다. 게다가 일주일간이나 입은 채로 딩 굴었으니, 꾸깃꾸깃한 것은 말할 것 없고 지나간 한밤 동안 은 방이 더워서, 땀이 흘러서 퀴퀴한 내 몸 냄새가 내 코를 찌렀다.

M군이 내가 아직 맥고를 쓴 것을 물쌍히 여겨서 제 보이 스카우트 모자를 주어서 얻어 쓰고 내 조선 옷과 붉은 담뇨 싼 보퉁이 하나를 들고 배에서 내렸다.

안개 속에 잠긴 상해으 시가, 강에 뜬 각국 병선과 상선, 뚜벅뚜벅 다니는 양인들과 헐레헐레하고 떠들기만 하는 청 인들, 그 속으로 나는 들어 가는 것이다.

나는 우선 M, C, S들이 가는 곳으로 끌려 갔다. 간데는 W 라는 사람의 집인데 꽤 깨끗하였고, W라는 주인은 말쑥하게 차린 서양 냄새 나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상해에 온 지 십여 년 되는 사람으로 서양 사람 상점에 일을 보아 주고 수백원 월급을 받고 있는 사람으로서 푸른스, 민이라는 민 영익과 또 하나 H라는 광무 시대에 임금께 긶 다니다가 망 명해 와서 사는 사람, 다 유에는 갖은 호사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K S, H군들이 있는 집을 주인에게 물었으나 주 인은 모른다고 하였다. 안동현서 W군에게 이 집에 와서 물 으면 안다고 분명 들었는데도 주인은 모른다고 버티었다.

M군은,

『가만 있어요.

하고 나를 보고 눈을 끔적하였다. 그것은 미리 K군 집에 사람을 보내어서 이러이러한 작자가 왔는데 보내랴 말랴, 주소를 가르쳐 주어도 좋으냐, 물어 가지고 처지 하라는 뜻 이었다.

상해에 와 있는 조선 사람을 무서워 하여서 서로 믿는 터 이 아니면 주소를 숨기는 것이다. 더구나 K H S나 또 T나 다 망명객이라 할 인물들이기 때문에, 좁채로 주소를 알리지 아니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외계와의 통신은 이 W 으 집으로 하는 모양이었다.

오후에야 나는 K의 집에 가는 「허가」를 얻어서 인력거를 타고 그 중상스러운 보퉁이를 들고 갔다.

그것은 법조계 어느 종용한 농당(동네나 골목에 해당한 말) 의 길게 늘여 지은 셋집의 한 채였다. 문패라고는 없고 으 직 NO.22 라는 집 호수가 붙었을 뿐이었다. 이러니까 도망 군이가 숨어 살기에는 십상이었다.

K의 길음하고 벗겨진 얼굴하며, S의 심술 사나운 듯한 눈 이며, M의 싱글거리며 기웃두름한 고개이며 다 반갑게 만났 다.

W군이 무사히 안동현을 통과하였다는 내 보고에 일동은 기뻐하는 모양이었다. 그후에 알고 보니, W는 군자금(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밥 먹고 담배 먹을 밑천)을 구하러 조 선으로 들어 간 것이었다.

그들은 가지고 번가아 쓰고 나간다는 것, 외투와 동복들이 없어서 불란서 공원까지 밖에는 출입을 못한다는 것을 알고 는 나는 여기 온 것을 후회하였다. 나 하나 더 군식구가 늘 기 때문에 다들 불편할 것이었다.

그러나 다들 친한 친구들익 때문에 그러한 걱정도 잊어 버 리고 유쾌하게 지낼 수 있었다.

여기서는 모두 침대와 의자를 쓰는데 나는 침대를 살 돈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돈이 있어도 나를 침대 하나를 사 주겠지마는, 그들에게는 모두 돈이 없어서 나는 K와 한 침 대에서 잤다.

침대라면 우리에게는 썩 사치한 것으로 들리지마는, 기실 이원 내외로 살 수 있는 값싼 침대여서 나무깨비로 네 기둥 을 하고, 역시 나무깨비로 틀을 짜고는 종려 노로 그물 뜨 듯이 얽어 맨 것이었다. 이 집에서 매트리스를 깐 침대는 성인 S뿐이요, 그 밖에는 다 요 하나들 깔고 잤다. K와 나 와 둘이서 자는 침대도 이러한 침대였다.

바닥이 늘어나서 움쑥하게 들어 가서 자다가 깨어 보면 우 리 둘은 엉덩이와 잔등이 마주 붙고 머리와 다리만 갈겨 있 었다. 동경에 있는 때에는 K와 나와는 혹시 늦도록 이야기 하다가 한 자리에서 자게 되면 서로 꼭 껴안고 키스까지도 하였지마는, 인제는 피차에 징그럽게 되어서 서로 고개를 돌려 대고 엉덩이만 마주 대게 된 것이었다.

낮에는 성인 S는 마호멧교를 연구하노라고 코오란을 읽고 앉았고 K는 오스카 와일드의〈도리안 그레이〉를 탐독하고 있었다. 나는 K에게 바이런 소개를 받아서 혼이 난 일이 있 기 때문에 이〈도리안 그레이〉는 아니 읽으려 하였으나 K 는 부덕부덕 읽으라고 하였다.

나는 드디어 〈도리안 그레이〉와 〈프로푼디스〉를 읽었 다. 그것은 바이런의 작품 이상으로 유혹적이었다. 그것을 읽고는 청춘의 번뇌가 일어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K 의 얼굴에 혈색이 없는 것이 이런 것을 읽고 마음의 번뇌에 부대낀 까닭이 아닌가 하였다. 그렇다고 K는 계집 집에를 다니는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마음속으로 오입을 하 고 줄기는 모양이었다.

그는 동경서 내게 어떤 여자를 밤새도록 만지기만 하고 말 았노라는 말을 하였거니와, 내가 믿기에는 그는 일생에 아 내 이외 여자와 관계를 맺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좋게 말하면 인정을 다 알기만 하고 알아만 두고 행하지는 않은 깨달은 사람이요, 실행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오스카 와일드의 것을 읽고는 내 마음을 진정하기 위 하여 그 해독제로 신약 전서를 읽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 렇지 않고는 나는 타버릴 것 같았다. 내가 신약 전서를 읽 는 것을 K가 빈정거리기 때문에 내약한 나는 숨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광생 H는 아랫방에 혼자 있어서 가끔 마룻바닥을 쾅쾅 밟으며 비분 강개한 연설을 하고 또 무슨 시를 읊는 모양이었다. 그는 여간해서 이층에를 올라 오지 아니하였다.

실상은 제나 나갈래야 나갈 옷이 없는 것이었다. 그는 늘 혼자 있었고 우리 이층에 사는 사람들도 그의 고적을 구하 는 생활을 간섭하려고 하지 아니하였다.

이러한 생활 속에 때때로 T가 찾아 왔다. 그는 T신문 주 필로 이름이 높던 사람으로서 망명할 때에는 내가 있던 K학 교에 들러서 수십일을 두류했기 때문에 나도 잘 아는 사람 이다.

그가 K학교에 두류할 때에 담배를 어찌 즐기는지 담뱃대를 털고는 대통이 식을 동안을 못 참아서 창에 구멍을 둟고 그리로 대통을 내밀어서 찬바람에 식히던 것을 기억 하고, 또 그가 세수를 할 때에는 꼿꼿이 앉아서 손으로 물 을 낯에 바르기 때문에 소매로 물이 흘러 들어 가서 저고리 소매를 적시면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던 것을 기억한다. 고 개를 숙이지 않고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이 T의 매운 절개를 표시함이었다.

『에익, 고집 불통 같으니.

하고 K학교의 R노인은 T를 보고 혀를 채었다.

나는 K학교를 마치고 그 길로 청도로 해삼위로 돌아 다니 다가 상해에 온지는 얼마 안된다고 한다. 여전히 고개를 잦 히고 팔장을 끼고 성난 듯한 얼굴로 우리 처소에 찾아 왔 다.

그러나 신이 나면 혹은 상글상글 웃기도하고, 혹은 낯이 주홍빛이 되면서 고담 준론이 끊이지 아니하였다. 그는 술 을 사랑하나 한두 잔 이상은 안 먹었다. 그는 의리 절개란 것으로 굳은 사람이었다. 그는 비위 틀리면 입을 다물고 일 어나 나가는 버릇이 있었다. 이른바 자리를 차고 나가는 것 이었다.

T의 하는 일은 하루 종일 팔장을 끼고 책사를 더듬어 돌아 다니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선에 관한 말이 있으면 책을 살 돈이 없으니까 그자리에 서서 보았다. 오늘에 다 못 보면 이튿날 또 가서 보았다. 그리고는 책사 주인에게 핀잔을 맞 으면서 요긴한 구절을 베꼈다.

이렇게 하루 종일 돌아 다니다가 시장해지면 집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는 그 이튿날은 또 책사 돌이를 떠났다.

T는 김 부석(金富석)을 원수같이 미워하였다. 그는 〈삼국 사기〉(三國史記)를 쓸때에 사실을 굽혀서 한족을 주로하고, 제 나라를 종으로 하여서 민족에게 노예 근성을 넣은 것을 분개하였다. 그리고 〈동국 통감〉(東國通鑑)을 편찬한 무리 들도 죽일놈들이라고 낯을 붉히고 분개하였다. 그는 조선 역사를 바로 잡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는 동시에 역사상 에 불충 불의한 무리들을 필주 하는것으로 사명을 삼았다.

이러한 사람들과 나는 함께 살았다.

날마다 한두 차례씩은 대개 이야기판이 벌어졌었는데 그때 에 어떤 이야기들을 했는지는 너무도 오래된 일이라, 기억 이 없고 지금도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은 K긔 관조론(觀照論) 이다. 그는 일생을 관조하는 태도로 살아 간다는 것인데, 아 마 자기는 일생 갈등의 와중에 들어 가지 아니하고 한층 높 은 자리에 머물러서 인생을 내려다 보고 살자는 뜻이 아닌 가 한다.

그후에 K는 안남으로 인도로 남양으로 돌아 다녔으나 여행 기 하나 쓴 일 없었다. 그것은 써서 무엇해? 하는 태도였다.

두어 번 그가 감옥에도 들어 가고 소설도 끝없이 긴 이야기 를 하나 써보았으나, 끝을 맺지 아니하고 말았다. 그는 평생 에 그 「관조의 태도」라는 것을 떠나지 아니하는 모양이었 다.

무엇이나 다 알 두지마는, 내가 몸소 하지는 않는다. 그것 은 해서 무엇해 하는 모양이다. 아마 은사라든지 처사의 심 경일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때 생활에 또 한 가지 잊히지 아니하는 것은 S의 종교론이었다. 그는 불교와 예수교와 희회교와를 한데 뭉쳐 서 새 종교를 만든다고 자칭하고 있었다. 기실 불교에 관해 서는 별로 책도 읽지 아니하는 모양이었으나, 성경과 코오 란은 늘 들고 앉아 있었다.

그는 침대 위에 눈을 반쯤 내려 깔고 앉아서 몸을 흔들흔 들하고 있는 것은 방금 세계 각종교를 한 솥에 넣고 끓이는 것이었다. 그것들이 녹아서 마치 족편 같은 젤리가 되기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덜 끓은 모양인지 오 늘에 이르러도 아무 소식이 없다.

그때에 상해에서 만난 사람 중에서 특별히 잊히지 아니하 는 특색을 가진 이는 역사가 T. 그는 책사와 도서관을 뒤 져서 얻어 내인새 재료로 조선 고대사에 대한 여러 가지 논 문을 썼다. 첫째로 그가세상을 놀라게 한것은 기자 조선의 부인이었다. 지금 와서는 그것이 한 상식이 되었지마는, 그 때에 있어서는 기자 조선의 부인은 실로 폭탄 선언이었다.

그러나 T는 궁하게 북경으로 상해로 유리하다가 마침내 변 변치도 못한 일로 무정부주의자 일파와 함께 감옥에서 분사 하고 말았다.

또 하나 상해에서 만난 사람이 있었다. 그이는 다만 상해 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만 장로일 뿐더러, 조선 안에서도 장 로로 존경을 받는 이었다. 그는 P라고 호라고 또 미친놈이 란 뜻을 가진 호도 가지고 있었다. 벌써 이도 빠지고 머리 도 세인 파파 노인으로 역시 합병 전에는 서울서 H라는 신 문에 주피로 있던 이다.

그는 밥을 주면 먹고 옷을 주면 입고 또 술이 생기면 먹고 없으면 굶고, 다만 조선의 역사를 쓰고 불충 불의한자를 공 격하는 것으로 생활을 삼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아첨하거나 비위 맞출 줄도 모르고, 저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행하는 늙은이었다. 그 절개에 있어서 T와 다름이 없으나, 성품에 있어서는 T보다 훨씬 시인적이요, 또 성자적이었다.

T가 늙으면 P와 같이 되었을는지 모르거니와, T는 언제나 칼날 같은 의지와 절개로 뭉쳐진 사람으로서 시인적 여유조 차 아니 가진 사람이었다.

아무려나 P T는 다스러지는 조선의 그림자였다. 다시 나 기 어려운 표본들이었다. 그들은 벌써 죽어 없고 그들의 이 름조차도 젊은 사람의 귀에는 들릴 기회가 없어지고 말았 다.

나는 상해에서 양력 설을 쉬고 다시 방랑의 길을 떠나려고 했으나, 미국 있는 조선 사람들이 발행하는 S라는 신문에서 주필로 오라고 한다고 해서 승낙을 하였다. 나는 Y라는 사 람의 손에서는 돈 이백원을 받았다.

그중에서 양복 한벌을 지어 입고 아호도승 은행이라는 아 라사 은행에 가서 아라사 금전으로 바꾸니 백원이 될락말락 했다. 배표를 사고 아니 한 삼십원 남았다.

M이라는 데 가서 C를 찾으시오. 그러면 미국까지 갈 여 비를 주리다.

하는 것이 내게 돈을 준 Y의 말이었다. 나중에 알아 본 즉, 미국에서는 주필 초빙 여비로 오백불이 상해로 왔다는데 다 집어 쓰고 그것만이 남은 것이라 한다.

내가 탄 배는 P라는 아라사 배였다. 배에까지 K H와 기 타 여러 친구들이 배웅을 나와 주었다. 모두 인제 떠나면 언제 만나나? 막연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면서도 마음에 모 두 국사적 자랑을 높이 가지고 있었다.

내가 배를 탄 것은 해삼위로 향함이었다. 날더러 시베리아 경유로 구라파를 돌아서 미국으로 돌아 가라고 한것은 일본 경유를 꺼리는 것이라고 말하였으나, 기실은 여비가 부족한 때문에 아니었던가 한다. 내게 있어서는 시베리아로 가는 것이 좋은 일이었다.

내 목적은 방랑에 있으니까 곧장 미국으로 가는 것보다는 시베리아 구라파를 경유하는 것이 더구나 좋은 일이었다.

주머니에 돈은 몇 푼 안되지마는 그래도 금돈이 몇 푼 되었 다. 내 일생에 한목 이만한 돈을 지녀 보기는 처음이었다.

M에만 패들의 간사장 격인 인물이엇다. 기개 있고 돈 아끼 지 아니하고 누구에게나 신임받는 사람이었다. C는 일신이 도시 담이라고 일컫는 사람이었다. 그는 합병 당시에 망명 해서 미국으로 가던 길에 성피득보에서 병을 얻어서 백림서 치료하다가 병이 낫지 아니하여 시베리아 철도의 M이라는 정거장 부근에 집을 잡고 치료 하는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를 만나는 것만 해도 내게는 상당히흥미 잇는 일이었다.

하물며 해삼위라면 서간도라, 아울러서 그때 우리 젊은 인 텔리전트 패에게는 기어이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거기는 많은 망명객들이 모여 있고 여러 가지 단체들이 있 어서 일도 하고 싸움도 하고 있었다. 그중에도 해삼위는 가 장 큰 싸움판이어서 칼질이 나고 육헐포질이 나고 하여 C S Y니 하는 사람이 피를흘린 지도 얼마 오래되지 아니한 곳이었다.

이러한 해삼위에 들어 가는 것이 무시무시하지 아니함도 아니지마는, 나는 W라는 해삼위에서는 주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에게 소개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든든하였 다. W라면 조선 말에한참 세도를 부리던 Y대신의 손자다.

그 재산이 얼마인지 모른다는 사람이다. 외국 은행에 예금 한 돈만도 수백만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다. 이 사람에게 소개장을 가진 나는 해삼위에 가더라도 맞아 죽을 근심은 없었다.

내가 해삼위에서 배를 내린 것은 해무가 자욱한 추운 아침 이었다. 쇄빙선이 깨뜨려 놓은 얼음 바다로 연해 붕붕 고동 을 울리면서 까만 해무 속으로 배가 들어 가는 것은 심히 음침하였다. 어디 세상 끝에 나온 것 같았다.

부두에서 썰매를 탔다. 썰매에는 말을 네 필이나 달았다.

큰 말, 작은 말. 이름이 신한촌이라길래 어떠한 덴가 했더 니, 해삼위 시가를 다 지나나 가서 공동 묘지도 다지나가서 바윗등에 굴 붙듯이 등성이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그것이 었다. 이르테면 염라국 지나서다. 해삼위 시에서는 이 귀찮 은 거린채들을 공동 묘지 저쪽으로 한데 몰아서 격리를 시 킨 것이었다. (거린채라는 것은 꼬레이츠라는 아라사 말로 조선 사람이라는 말의 조선 사람 사투리다).

아이들과 청년들이 길바닥에서 얼음을 지치고 있다가 내 썰매가 오는 것을 보고는 욱 모여 들었다.

그들은 거의 내 앞길을 막았었다. 그리고는 매우 적개심 있는 눈으로 흝어 보았다.

그중에 한 청년이 쓱 나서며.

『웬 사람이야?

하고 거의 반말짓거리로 물었다. 여기는 모두 함경도의 육 진 사투리다.

나는 공손하게 내가 상해에서 온다는 말을 하고 주인들 집 을 구한다는 말을 하였다.

『그 양복은 어디서 지어 입은 것이야?

『모자가 일본 모잔데.

『행리도 일본 것이고.

『문병 조선 사람인가?

청년들은 내가 들어라 하는 듯이 이런 소리를 하였다.

『이리 내려 오우!

하여 그들은 나를 전후 좌우로 옹위하고 어떤 집으로 들어 갔다. 나는 그들이 하는 대로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들 방으로 들어 가서 날더러 의자에 앉으라 하고는 십여 명 청년이 쭉 둘러 서서 내 허락도 없이 내 집을 수험 하기 시작했다.

그리도 나서는 내 몸 수험을 할 때에 벌써 이상한 인물이 왔다는 기별을 받고 K, Y, H등 세 사람이 왔다. 이 세 사람 은 K라는 조선인 단체의 산부인 동시에 그 기관 신문인 K 신보의 간부들이었다. 그중에 Y라는 이가 나를 알아 보고,

『남궁군 이게 얼마 만이오?

하고 내 손을 잡아 흔들었다. Y는 동경서 서로 안 사람이 었다.

Y는 심히 반가문 빛을 보이면서,

『잘 왔소. 우리도 필경은 형이 이리로 오신 줄 알았어.

, 우리 조밥을 같이 먹고 일합시다.

하고 K, H 두 사람에게도 나를 소개하였다.

그제야 나를 죄인 취급하던 청년들이 물러나서 슬몃슬몃 빠져 나가고 말았다. 나는 일생에 처음 당하는 일이다. 필경 은 소개장으로 무사히 될 줄을 알면서도 마음이 편안치 못 하였다.

Y에게 듣건댄 소개 없이 여기 들어 온 사람들이 민정 혐의 로 올가미를 받아서 죽어서 그 시체가 바다 얼음 구멍에 장 사된 사람이 여러 명이라고 하는데, 나도 그렇게 될 뻔한 사람 중에 하나다. 나는 여기서도 조선 사람끼리 서로 무서 워하는 광경을 보고 슬펐다.

나는 C도 만나 보았다. 그에게 저녁 대접도 받고 또 다른 데로 갈 것 없이 해삼위에 머물러 있으란 권유도 받았다.

나를 끌고 교회며 회관이며 신문사며 또 조선 사람들이 사 는 시가를 두루 구경시키고는 여기 머물러서 같이 일하자고 여러 가지 계획을 말하면서 붙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미 국에 가기로 허락하고 그 노자를 가지고 온 사람이니 그러 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나는 이때에도 해외 조선 사람의 당파에 대한 인식이 부족 하였다. 미국에 있는 단체와 해삼위에 있는 단체 와가 서로 미워하는 줄도 몰랐고, 또 같은 아령에서도 치따를 중심으 로 하는 K, M이라는 단체와 해삼위를 중심으로 하는 K, U 라는 단체 와가 서로 반목하는 줄도 몰랐고, 하물며 상해에 있는 사람들과 해삼위에 있는 사들과가 기호파 북도파로 서 로 미워하는 줄도 몰랐다. 알고 보면 나는 적군의 소개장을 가지고 적군 중으로 들어 온 셈이다.

해삼위에도 N이라는 기호파의 수령되는 이가 한 사람이었 다. 그도 얼마 아니하여 떠나 머리고 말았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지식을 얻을 때에 환멸의 비애를 느꼈다. 대 관절 무얼 가지고 싸우는고. 내가 보기에는 싸울 욕심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손바닥만한 조선에서 기호는 무엇이고 서북은 무엇인고? 나는 이 사람들을 다 자주하고 싶었다.

내가 조선사람이 된 것 까지 저주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근 삼십년이나 지난 오늘까지 아직도 이 구석 저 구 석에서 그런 어리석은 싸움을 하는 것을 보면, 조선 사람은 아마도 매를 더 맞아야 되겠다는 울분 까지도 일어난다.

내가 해삼위를 떠나던 날도 해무가 자욱하였다. 나는 새벽 에 썰매를 타고 정거장으로 나가서 모스크바로 가는 차를 탔다. 나는 W씨로부터 M역의 C씨에게 보내는 편지와 돈 이백원을 받았다.

나는 내가 일주일 동안 유하던 주인집 딸에게 대한 감사한 말을 한 마디 아니 쓸 수 없다. 그는 열 일곱 살쯤 되는 처 녀였다. 얼굴이 동그스름하고 살빛이 분홍빛 나고 가느단 눈이 유난히 빛나는 여자였다.

내 방을 치워 주고 빨래를 하여 주고 옷을 다려 주고, 그 런데 내가 출입한 동안에 내 방에 들어 와서는 방을 말끔히 치이고는 내 빨래를 추려서 내다가, 또 내가 출입하고 없는 동안에 그 발래들을 말끔 다려다가 놓았다. 그 태도가 참 은근하였다.

내가 떠나가기 전 어느 날 아침에 내가 날마다 하는 습관 대로 책상 앞에 앉아서 성경을 읽고 있을 때에 언제 왔는지 모르게 그는 내 등뒤에 와서 갑자기 내 목을 안고 내 머리 와 뺨에 수없이 키스를 하였다. 내가 깜짝 놀라서 돌아 볼 때에 그는 빨갛게 낯을 붉히고 앞치마자락으로 낯을 가리웠 다.

『언제 가세요?

하고 그는 낯을 가리웠던 앞치마자락을 젖히고 어리광하는 듯이 물었다.

『내일 떠나요.

이것이 그와 나와의 첫번 회화였다.

『가시지 마세요.

하고 그는 몸을 흔들었다.

『고맙소. 그래도 나는 내일 가야 돼요.

하고 나는 미안한 듯이 웃었다.

『사흘만 더 있다 가세요. 꼭 사흘만.

하고 그는 두 손으로 내 머리를 만적거렸다.

나는 애 가슴이 설렘을 깨달았다. 내 낯이 후꾼거림을 깨 달았다.

『내일 아침 차로 가요.

하고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나도 같이 가요.

하고 그는 울먹울먹하였다.

『큰일 날 소리. 내 또 오께요.

이런 거짓말이 툭 나오고 말았다. 나도 숨소리가 컸다. 그 러나 나는 성경을 읽던 기분을 잃지 아니하고 이 가여운 처 녀에게 대하여 누이나 딸에게 대한 애정을 보전할 수가 있 었다. 나는 눈을 감아서 이 처녀를 위하여 복을 빌었다.

그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듯이 삐쭉삐쭉하더니, 내 이 마와 뺨과 입과 머리에 열정적인 키스를 퍼붓고는 내 방에 서 나가 버렸다. 대문 열리는 소리를 들은 것이었다.

내가 썰매를 타고 떠날 때에 그는 담에 붙어서 나를 바라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코에서 우이만이 보였다.

나는 공동묘지 앞으로 썰매를 달리면서 이름도 모르는 그 처녀를 생각하고 알 수 없는 인정을 다시금 생각 하였다.

나는 이 처녀가 그 후 시집을 갔다가 과부가 되었다는 말 을 한번 들은 일이 있다. 그러나 그 후에 어찌 되었는지를 모르거니와, 이것은 희한한 내 일생의 에피소우드로 내 기 억에서 사라질 수는 없는 사실이다. 도무지 더럭 끝만큼도 죄라는 생각을 섞지 아니한 추억이다.

내가 탄 열차에는 동양 사람은 나 밖에는 없었다. 모두 다 이야기 좋아하는 순직하고도 느려 보이는 아라사 사람들이 다. 나는 일주일 동안 배운 아라사말 지식으로 「다다다(, )」니, 「니에뚜(아니오)」니, 「니치에워(괜찮아)」니,

「하러씨오(좋지)」니 하는 말을 알 뿐이었다。 큼직큼직한 정거장에서는 사람들이 오르고 내릴 때에 마중 나온 사람, 배웅 나온 사람들이 반가히 만나는 사람, 섭섭하 게 보내는 사람들과 서로 껴안고 쩝쩝 소리도 높게 입을 맞 추는 것이 기이하였다。

「니콜리스크 우수리스키」라는 정거장에서 점심을 사 먹 었다。승객들이 역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를 기다리느라고 차 가 사십 분 동안이나 섰는 것도 이상하였다。여기서는 오르 고 내리는 손님이 많으니만큼 입 맞추는 소리가 참으로 요 란하였다。비로소 딴 세상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났다。 M역에 도착한 것은 그날 밤이었다고 기억한다。조그마한 정거장이었다 음력 섣달 그믐께라 달은 없으나 만산 평야가 모두 하얀 하얀 눈이요,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였다。 나는 역두에 마중 나온 A씨의 집에서 그날 밤을 지내고 이 튿날 아침에 A씨의 선도로 C씨의 집을 찾았다。그 집은 정 거장에서 한 킬로쯤 떨어져서 벌판에 혼자 있는 조그마한 아라사 집이었다。통나무를 우물 정자로 올려 쌓고 위에 지 붕을 만들어 지은 집인데 이것은 시베리아에서 흔히 보는 건축이다。 우리가 그 집에 들어 갈 때 에는 문 안방에서 어떤 머리땋 아 늘인 처녀가 잣을 까고 있었다。나중에 아니 그는 C씨의 유일한 혈육인 따님으로 서울에 남아 있어서 공부를 하다가 아버지 병 구원자로 그 어머니와 함께 여기 와 있는 것이라 하며, 그가 한 알 한 알 입으로 까는 잣은 그 아버지 드릴 잣 죽거리였다。C씨는 그 딸 하나를 낳은 뒤에는 정치 운동 을 하느라고 집에 붙어 있을 새가 없고, 또 서울에 집을 잡 고 있는 동안에도 가족은 시골집에 두고 자기는 단신으로 있었기 때문에, 부인과 만날 기회가 없어서 더 아이를 못 낳은 것이라고 한다。 본래 응접실로 된 방에 C씨는 안락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몸은 작은 편이요,얼굴도 작고 눈도 작으나 빛이 날카 롭고 단단하게 생긴 사람이었다。그는 전신 불수로 기동은 못하는 지가 벌써 삼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A씨의 소개를 따라서 나는 그의 부자유한 손을 잡았다。손 은 무척 부드러웠다。이로부터 난느 날마다 아침부터 저녁 까지 그의 이야기 동무도 되고, 또 그의 편지도 대서하였 다。지금까지는 아직 고등 학교도 체 못 마친 따님이 대서 를 하였다고 한다。우리는 매일 열 장은 편지를 썼다。그 편지는 다 해외에 있는 동지들에게 하는 것으로 혹은 위로 하는 말, 혹은 격려하는 말, 그리고 가장 많은 것은 당파 싸 움과 개 인간의 감정 소격을 좋아하는 편지었다。 그는 편지를 부르다가는 무슨 사건 이야기가 나오면 그 전 말을 내게 들려 주고, 그 인물을 내게 설명해 주었다。그의 어음이 병으로 해서 비록 불분명하지마는, 그의 말은 심히 이지적이요 그리고도 열정적이었다。그는 혹은 지나간 일 을, 혹은 동지의 일을 말하다가는 우후후하고 웃기도 하고 또 낙루하면서 말이 막히기도 하였다。 그는 이 친구 저 친구의 권으로 강전식 정좌법도 하고 전 기 치료도 하였으나, 그런 것에는 도무지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그는 제 일신이나 또는 가족에 대해서는 일찍 말하 는 일이 없었다。그는 언제나 공공한 일에 마음을 쓰는 모 양이었다。 나는 그와 일개월을 같이 있었지마는, 어느 날이나 꼭 한 모양으로 저를 완전히 잊은 사람이었다。나는 그에게서 비 로소 애국자라는 것을 보고 지사라는 것을 보았다。일신이 도시 담이라는 그는 일신이 도시 조국뿐이 었다。 그는 도저히 자기 병이 소복될 것을 믿지 아니하는 모양이 었다。그러나 목숨이 붙어 있는 날까지는 공공한 생각과 공 공한 감정으로 살아 갈 모양이었다。 그는 퍽 우정에 감격하는 모양이었다。그는 하루 아침에는 내가 바에 들어 오는 맡에 아침 인사도 하기 전에,

『유당。』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유당(柳堂)이란 것은 내 호다。

『네。』

하고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고? 또 무슨 단체나 어느 동지의 말을 하려는고? 하였다。그의 속에는 오직 그것뿐이 니까。

『유당,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우정 밖에 또 있소?

인생에 가장 행복된 것이 믿는 친구를 가지는 것 밖에 또 있소? 가만히 진나 일생을 생각해 보니까 그래가장 아름 다운 것이 우정이야。그런데 나는 친구를 가졌소。나는 행 복한 사람이오。』

하고 C는 눈물을 흘렸다。그는 로마인과 같이 우정의 아름 다움을 깊이깊이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는 미국에 있는 T를 두고 말함이었다。T는 미국에 가는 길로 그 부인이 삯빨래질을 해서 저축한 돈 천원을 C의 치 료비로 보내고 그리고도 그 식구 많고 가난한 T는 때때로 캘리포니아의 좋은 과일이며 돈을 보낸다는 말을 하고,

T같은 동지를 위해서는 나도 살아 나서 힘껏 일을 해야 겠는데。그러나 인생의 일이 뜻같이 되오?

하고 빙그레 웃고 눈을 감았다。 그는 다시 눈을 번쩍 뜨며,

『참 인생의 일이란 알 수 없어。내가 덕경 백림에 있을 때요。내가 유하는 방에 카이제르의 화상이 걸렸단 말이 오。나는 병상에 누워서 그 화상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였 소。폐하, 폐하는 지금 대 제국의 황제시오。외신은 일개 외로운 망명객으로 잠시 폐하의 나라에서 몸을 붙여 있소。 그러나 폐하여, 폐하의 조모가 나폴레옹에게 어떠한 욕을 당하셨던가。인생의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니, 혹시 폐하가 일개 망명객이 되어 외신의 나라에 몸을 의탁할지 어찌 아 오? 폐하가 그때에 외신의 손에 보호를 받을는지 어찌아오?

─이렇게 되었소。』

하면서 웃었다。나도 웃었다。 C씨는 카이제르 삼세가 망명객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거니와, 과연 카이제르 삼세는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나 화란에 망명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인사 변천은 실 로 무상한 것이다。나는 C의 집에서 유명한 S씨도 처음 만 났다。그는 수염도 나는 대로 두어서 얼굴에 거치른 기색이 있으나, 그 눈이 빛나는 것이라든지, 그 목소리가 웅장한 것 이라든지 실로 영웅의 위풍이 있었다。그야말로 K진위대 참 령으로 부하의 부스럼을 입으로 빨아주고, 못하는 부하가 있으면 그것이 장교거나 병졸이나 꽉 껴안고 뺨을 비비며,

『이놈아, 글쎄, 이때가 어느 때라고 정신을 못 차려?

하고 울었다는 그 사람이다。군대 해산 후에 그는 각지로 돌아 다니면서 학교 이백여 개를 세웠다는 이다。

『이놈아, 학교를 세울 테냐 안 세울 테냐?

하고 부자를 붙들고 울 때에 거절하는 이가 없었다는 사람 이다。그는 C를 찾아 와서도 C를 껴안고,

『아우님, 어쩌자고 아직도 앓고 있어?

하고 울었다。나와 초면 인사를 하고는,

『대장부가 제 몸과 제 집을 잊지 아니하면 못 쓰오。』

하고 눈을 부릅떴다。이로부터 오년 후에 나는 그를 상해 에서 다시 만나,

『동생, 한날 한시에 죽자。』

하고 그 수염 많은 뺨을 내 뺨에 비비며 울던 것을 기억한 다。C를 일신이 도시 담과 지혜라 하면, S는 일신이 도시 열정과 용기였다。 C가 몸이 편치 아니하여서 누워서 쉬는 날이면 나는A씨의 아들, , 조카들, 이 소년 소녀들의 동무가 되어서 이야기 도 해주고 노래도 지어서 불러주고 또 앞 개천에서 얼음도 지쳤다。이 무인 절도 같은 외딴 곳에서 자라나는 이 소년 소녀들은 조선 사람인 나를 열성으로 환영하였다。 나는 K학교에 두고 온 어린 학생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밤에도 그들은 내 곁을 떠나려고 아니 하였다。한달 동안이나 있는 동안에 그들과 나와는 서로 정 이 들었다。그들은 열 서너살 된 누나를 머리로 육칠세 되 는 코 흘리는 애들이었다。 나는 치따로 가게 되었다。내가 미국으로 갈 노자는 다시 미국에서 와야만 하게 된 사정을 나는 알았다。C씨의 말이 미화 오백불이 두 번이나 온 것을 다 상해로 보냈다는데 상 해에서 다 써버리고 말았다고 한다。나는 우선 치따에 가서 《정교보》라는 조선문 잡지 일을 보면서 미국에서 회보 오 기를 기다리기로 되었다。C씨는 나를 놓기를 섭섭히 여기나 사를 위해서 공을 희생할 수 없다고 해서 꼭 일개월만에 M 역을 떠나기로 되었다。떠나는 작별을 하는 날 C씨는 시베 리아의 사정과 치따에 있는 동안에 주의할 조건을 여러 가 지로 말하였다。그중에 중요한 것은 파당을 삼가고 파당을 조화하도록 힘쓰라는 것이었다。치따에서도 혹은 밀정이란 혐의로 혹은 친일파랑 혐의로 사람이 여럿이 죽었다는 말도 하였다.

United we stand divided fall. (합하면 흥하고, 갈리면 망한다)

이라는 말을 그는 수없이 하였다。그는 갑신 정변에 이래 로 조선 사람의 모든 운동이 합하지 못함으로 무너진 것을 말하였다。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그는 빙그레 웃었으나 그의 표정은 비창하였다。나는 차마 그를 떠나지 못할 것 같이 느껴졌다。장부 눈물이 없음이 아니나, 이별하기에 뿌 리지 아니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나는 꾹 참았다。이것이 C 와의 최후의 결별이 되었다。 내가 탄차는 자정에 M역을 떠났다。역두에는 A씨와 어린 동무들이 나를 보내었다。나 떠나는 것을 꼭 보아야 한다고 다들 내 방에 쓰러져 자다가 더러는 못 깨고 더러는 깨어서 정거장까지 나온 것이었다。나는 이 어린 사람들의 배웅을 가슴에 사모치게 고맙고 기쁘게 생각하였다。나는 그들을 한번씩 안아 주고 차에 올랐다。 나는 병든 지사 C씨 생각, 어린 친구들 생각, 또 어찌 될 지 모르는 내 앞길에 대한 생각으로 잠을 잘 이루지 못하였 다。 새벽에 차창 밖으로 내 눈에 띈 것은 소백 산맥의 눈에 덮 인 삼림이었다。늙어서 뼈만 남은 고목이며, 바람에 쓰러진 고목들。함박눈은 펄펄 내리는데 가도가도 삼림, 집 하나 사람 하나 볼 수 없는 아 처녀림의 고요하고 거룩한 경치!

나는 소년 시절의 깨끗하던 생활을 생각해 보았다。 동경 M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밤에 수풀 속에 혼자가서 기도 하던 심사。나는 저 눈에 덮인 처녀림과 같이 깨끗한 일생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하고는 혼자 끝없는 기도를 올렸 다。그러나 나는 일생의 깨끗함을 안보할 수가 있었던가。 내 인생관은 그렇게 이미 깊고 굳었던가。 나는 하르빈에 내려서 이상하게 들뜬 마음으로 하루인가 이틀을 자고, 어느 눈 내리는 오후에 떠나는 모스크바행을 탔다。가도가도 끝없는 눈의 벌판, 어느 것이 송화 강인지 도 분별할 수 없는 가이 없는 눈의 벌판!

흥안령에서 밤이 새었다。아침 햇빛이 굉장히 찬란하게 흥 안령의 눈에 쌓인 모양을 비취었다。역두에는 사람들이 오 락가락하였다。그들의 얼굴은 분을 바른 것 같이 희었다。 솜털에 성에가 맺힌 것이었다.

어느 정거장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얼굴 붉고 투실투실한 아라사 부인들이 고기 삶은 것이며, 순대며, 이런 먹을 것을 플렛포옴에 벌여 놓고 팔았다。열 댓살 된 계집애들이 우유 병을 꼭 껴안고 서서 사는 사람이 있기를 기다렸다。나는 빵과 고기와 우유를 샀다。그것들은 다 따뜻하였다。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이렇게 추운 식전 새벽에 따뜻한 먹을 것을 가지고 나와서 그것을 식히 지 아니할 양으로 애쓰면서 나를 기다리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나는 진정으로 그들을 보고,

『불라고다류 와쓰。(고맙습니다)

라고 외치지 아니할 수 없었다。그들은 내가 부르짖는 뜻 을 못 알아 들었을는지 모른다。그러나 나는 꼭 그렇게 생 각하였다。 만주리에서 여행권 검사와 짐 검사는 무사히 끝나고, 나는 인제 다시 아라사 국경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튿날 오정때를 지나서 차는 치타역에 닿았다。M역에서 도착하는 시간을 미리 알리지 아니했기 때문에 정교보사에 서는 아무도 나온 이가 없었다。내가 짐을 들고 두리번거리 는 것을 보고 어떤 긴 칼 차고 장화신은 군인이 어디로 가 느냐고 물었다。나는 정교보사의 주소를 말하였다。 그는 손수 짐을 들고 정거장 밖으로 나가서 이스보스치카 하나를 불러서 태워 주고 웃으면서 작별하였다。나는 이것 이 헌병인가 하고 의심하였다。모르는 행객에게 대한 호의 뿐인 줄을 알 때에 아라사 사람의 국민성에 무척 호감을 가 졌다。아라사 문학에서 본 아라사 사람의 성격을 내 손수 보는 것이 기뻤다。 나는 정교보사라길래 꽤 큰 집으로 알았으나, 마차가 닿을 때에 앞에 나타난 것은 조그마한 통나무집 한 채 였다。 그래도 간판만은 큼직하게 「정교 믿는 한인들의 잡지 정 교보를 발행하는 데」라고 아라사 말로 써 붙였다。나는 일 개월 간 배운 아라사 말로 그것을 알아 본 것이 기뻤다。마 차가 닿는 것을 보고 안으로서 머리가 꼽슬꼽슬하고 눈이 빛나는 Y씨와, 허리를 펴지 못하는 K씨가 달려 나왔다。물 론 다 초면이었으나 이름으로만 서로 알고 있던 사이였다。 이렇게 내 시베리아의 일 년간의 생활이 시작 된 것이다。 어디 가 있는 조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치타에 있는 조선 사람들 모두 가난하였다。크나큰 KM이라는 단체의 중앙 기 관이요, 기관지 발행소인 Y씨의 집도 가난한 생활인 모양이 었다。Y씨는 곧 나를 끌고 고물, 가구 등속을 파는 시장으 로 나갔다。그것은 침대와 침구를 사려는 것이었다。이것이 모두 십원 내외지마는, Y씨에게는 이것이 큰 지출인 모양이 었다。그렇다고 내 주머니에는 일, 이원 돈도 남지 아니하 였다。그런데 이렇게 넉넉지도 못한 Y씨에게 얹혀서 사는 것이 아주 면목 없는 일이었으나, 미국서 돈만 오면 갚아 주리라 하고 그것만 믿고 있었다。 나는 정교보라는 잡지에 글을 쓰면 이것을 편집하는 일을 임시로 보고 있었다。우리는 이 잡지를 석판으로인쇄하였 다。K씨가 허리를 굽히고 그것을 석판 원지에 쓰다가는 허 리가 아프다고 가끔 아구구 소리를 쳤다。 일을 쉬일 때에는 Y, K, 나 이렇게 모여 앉아서 잡담 도 하고 봄새 날이 따뜻해진 뒤부터는 아이들 모양으로 비 새 치기도 하였다。이것은 내가 수입한 것이었다。 Y씨는 오래 미국에서 KM일을 보다가 원동에 KM회를 설 치하는 사명을 띄고 시베리아로 온 이였다。처음에 그의 뜻 대로 되어서 아령 오십만 조선인은 다 이 KM 한 단체 속에 통일이 되었었으나, 차차 각처에 영웅들이 일어나서 갈래갈 래 분열이 되었다가 지금은 치타를 중심으로 하는 KM과 해 삼위를 중심으로 하는 KU와 두 단체로 갈리고 말았다。 KM이 한찬 성할 때에는 동포끼리의 송사까지도 맡아서 하 였고, 아라사 정부의 양해로 교육까지도 자유로 맡아할 권 한을 얻었더라는데, 여기는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회랍 정교 라는 아라사 국교를 믿으라는 것 이었 다。정교보라는 잡지도 이러한 조건 밑에서 허가 된 것이라 고 한다。 또 이 회는 동포의 직업에 관한 알선도 하여서 조선인으로 관청인이나 기타에 취직할 때에는 이 회장의 증명서가 필요 하고, 또 철도나 기타에서 조선 사람 인부를 쓰고자 할 때 에는 이 회로 조회하는 것이었다。기타 여행권, 기타 대관 청 문제에는 이 회를 경유하게 되어 있었다。그러나 영웅들 이 각 지방에서 제 세력을 펴려고 하기 때문에 KM의 세력 은 점점 미약하게 되는 중에 있었다。 치타에는 조선 가람 신부도 있었고, Y씨는 정교회의 전도 사였다。조금 똑똑한 사람들은 대개 정교회에서 세례를 받 았다。그때 아라사 제국에서는 교권과 정권이 대립해 있었 기 때문에 정교회의 세례를 받고, 그 증서인 메트리까 한 장을 몸에 지니는 것은 여행권 이상의 효과를 가졌었다。이 메트리까가 있으면 여행도 자유로 할 수있고 취직도 할 수 있었다。이것이 없는 사람은 거의 법률의 보호권 이외에 있 었다。 정교회의 세례를 받은 이에게는 또 한 가지 좋은 일이 있 었다。그것은 교부와 교모를 가지는 것인데, 내가 세례를 받게 되었으니 교부가 되어 주로, 교모가 되어 주오, 하고 청하면 어떠한 신사 숙녀가 그것을 거절하지 아니하였고, 한번 교부와 교모가 된 뒤에는 일생에 부자관계, 모자 관계 를 계속할 뿐더러, 그 교부, 교모의 자녀들과도 형제 자매의 관계가 있었다。그래서 경제적으로 될 수 있는 대로 도움을 주었다。조선 사람들 중에는 이것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 어서 내가 치타에 갔을 때에는 아라사 명사들은 조선 사람 의 교부, 교모 되기에 진저리를 내었다。 교부와 교모는 부부가 동시에 될 수는 없었다。그러나 한 번 세례를 받으면 두 명사의 가정과 관계를 맺게 되었고, 교부와 교모는 세례받는 아들에게 의복이나 성경이나 십자 가나 값 가는 선물을 한느 습관이 있어서 이 섣불리 해도 어떤 때에는 돈 백원 어치나 되는 일이 있었다고 하나, 그 때에는 조선 사람의 신용이 떨어져서 불과 몇 십원 어치 밖 에 아니 된다고 Y씨는 말하고 웃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시베리아의 봄은 오월이나 되어야 온다. 오월 초하룻날은 이 봄맞이하는 명절로서 아라사말로 베료즈라는 자작나무 잎에 파릇파릇 피는 벌판에 나가서 하 루를 즐기는 것이다. 남자, 여자,아이들, 그 기나긴 겨울에 갇혀 있다가 비로소 넓은 하늘과 넓은 땅 사이에 나와서 먹 고 마시고 실컷 봄을 즐기는 것이다.

이것은 겨울 긴 북방 나라가 아니고는 맛을 모를 것이다.

조선도 답청이라고 이를 봄행락이 없는 것이 아니지마는, 아라사 사람이 오월 일일(양력으로는 오월 십 사일)의 베료 즈 숲에서 즐기는 심정은 일본으 사꾸라 철의 행락에나 비 길 것이다.

우리도 약간 먹을 것을 준비해 가지고 치타강이라고 부를 말한 개천가로 나갔다. 벌써 풀도 베료즈 잎도 노르스름하 게 피어 있고, 강물도 자다가 깬 듯이 소리 없이 흘러 내렸 다.

벌판 숲속에는 벌써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구석구석 진을 치고 음악도 하고 춤도 추고 술과 과자도 먹고 있었 다. 우리는 Y, K, K신부, , 그밖에 두어 사람 모두 사 내들만이었고, 또 얼굴이나 의복이나 다 빛이 없고 또 노래 를 부르고 춤을 추는 사람도 없거니와, 그럴 만한 흥도 일 어나지 아니하였다.

실상은 우리의 생활은 갈수록 궁핍하는 모양이었다. 잡지 도 이름이 월간이지 두 달에 한 호도 나오기가 어려웠다.

회비도 갈 모이지 아니하고 잡지 대금은 더구나 한푼도 들 어 오지 아니하였다. 이렇게 궁하던 우리는 남들이 유쾌하 게 풍성하게 봄놀이를 하는 것을 볼 때에 더욱 우리의 궁상 이 눈에 띄었다.

허리를 못 펴는 K는 더욱 말 못되게 수척하였고, 나는 상 해에서 지어 입고 온 옷이 다 헤어져서 차마 밖에 나갈 수 가 없었다. 게다가 단벌 외투는 앓는 친구에게 주어 버리고 나는 볼기짝이 벌쭉벌쭉 나오는 양복 바지에 다가 검은 루 바시카륜를 입고 팔굽이가 다 나간 양복 저고리로 외투 삼 아 입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보다 얼마 더 낫지 못하였다. 우리 일은 앞으로도 별로 큰 희망이 없었다. 유월에는 대의회를 모아 서 오는 일 년 간 예산을 결정한다고 하여 그것을 바라보고 들 있지마는, 모두 지상 공문일 것은 빤한 일이다.

내가 미국에 가는 일도 틀려지고 말았다. 그것은 내 중학 교적 동무 한 사람이 미국에 가서 KM에 반대하는 KL이라 는 단체를 조직하고, 거기다가 내 이름을 집어 넣었기 때문 에 KM에서는 내가그 회원이 아니라는 성명서를 그 기관지 요, 내가 일보러 가려는 신문에 발표하라고 청구를 한 것을 나는 내 친구를 거짓말장이를 만들기가 어려워서 거절해 버 리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은 날더러 정교회의 세례를 받기를 권하였다. 그러 면 좋은 교부와 교모를 얻어서 그 신세를지자는 것이었다.

나는 희랍 정교가 어떠한 것인지는 모르지만는,차마 구복을 위해서 신앙을 팔기는 싫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끌려서 희 랍교 예배당에도 몇 번 가 보았다. 유명한 빠스카(부활절)에 소보르(대승정이 주관하는 예배당)에도 가 보았다.

톨스토이의 〈부활〉에서 읽은 광경을 목전에 보는 것이 유쾌하였고, 또 찬양대가 하는 엄숙한 성가라든지, 또 수녀 원에서 올리는 경건한 예배라든지, 다 내 마음을 끌었으나, 그래도 구복을 위해서 차마신앙을 팔 수는 없었다.

시베리아의 여름은 갑자기 몰아 왔다. 나는 여름 옷이 걱 정이 되었다. 구두도 걱정이 되었다. Y씨는 그 집도 지닐 수 가 없어서 더 구석진 더 조그마한 집으로 떠나고, 나는 유 대 사람의 방 하나를 빌려 가지고 혼자서《정교보》를 편집 하면서 살기로 하였다.

허리 못 피는 K씨는 〈임상 의전〉(臨床 儀典)이라는 책한 권을 나헌테 배워 가지고 의사 행세를 하기고 하고 다른 데 로 갔다.

치타에 있는 다른 조선 사람들은 더러는 감자와 오이 농사 를 하고,더러는 빨랫간을 하고, 조선에서 온 인텔리들은 권 련 마는 일을 해서 밥벌이를 하고 있었다. 모두들 정성도 있고 친절도 하고 좋은 사람들이었으나, 또 모두들 궁한 사 람이었다.

예정대로 KM대의회가 모였다. 각지방으로부터 삼십명 가 까운 대의원들이 모여서 일주일 동안이나 회의한 결과로 《정교보》를 계속 간행하기고 하고 중앙의 회무를 Y씨가, 잡지 일을 내가 책임을 지기로 결정이 되었다.

그래서 일생에 처음 삼십원 월급을 받고 또 넓적한 방 한 간을 얻어서 제법 테이블 놓고 교의 놓고 침실 따로 두고 두어 달 살아 보았다. 그러나 예기한 바와 같이 잡지는 두 어 호를 더 내고는 예산이란 것은 지방 공문이 되어 버렸 다. 나는 다시 양말 한 컬레 새로 살 힘도 없어지고 말았다.

나는 암만해도 치타에 있을 수가 없었다. 어디로나 새길을 찾을 도리 밖에 없었는데, 거의 앞도 절벽 뒤도 절벽이어서 좋은 궁리가 나지를 아니하였다.

나는 하루 종일 솔밭 있는 구릉이 있었다. 그리고 서남쪽 으로 강을 건너면 넓은 벌판이 있어서 거기는 소떼와 양떼 와 말떼가 여름내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여남은 살 된 계집애 혼자서 커다란 소를 삼사 마리씩이나 몰고 다녔다. 조그마한 북을 치면, 소들은 「물 먹어라」,

「들어 가자」하는 말인 줄을 다 알아 들었다. 석양이 먼 벌판 끝으로 떨어질 때면 소들과 양들이 배를 불려 가지고 먼지를 날리면서 돌아 왔다.

나는 날마다 이런 것을 보면서 몽고인의 목축 생활을 그리 워하였다. 몽고로 들어 가 볼까, 거기 가서 몽고 사람들 속 에서 방랑을 해볼까, 이러한 생각도 해보았다. 여름이면 지 붕 있는 마차에 가족을 싣고 말떼를 몰고 몰아 풀 있는 데 를 따라서 정처 없이 돌아 다니다가, 겨울이 되면 장막을 치고 가죽 부대에 들어가서 자고 말젖을 먹고 ㅡ 이러한 몽 고 사람의 생활이 그리웠다.

그래서 나는 지도를 펴놓고 몽고로 들어 가는 길도 조사해 보았다.

또 가끔 금점군들이 내 사무실을 찾아 왔다. 그들은 대개 십여 년씩 금광으로 방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꽁이깨짐(침대 를 아라사말로 꼬이까라고 하는데, 조선 사람들은 꽁이깨라 고 발음을 한다)을 지고 도끼 하나, 삽 하나, 마른 면보 한 자루, 이것만 있으면 시베리아 벌판 어디고 못 가는 데가 없다. 대개는 삼사인이 할 「알째리」가 되어서, 수입은 평 균 분비를 하고, 또 열, 스물이 의형제를 모아서 고락을 같 이 한다고 한다. 겨울 여행에는 날이 저물면 땅을 파고 통 나무를 찍어서 그 구덩이에 불을 놓고 불이 다 탄 뒤에 그 구덩이 속에 들어 가 자면 아주 뜨뜻하다는데, 어떤 때에는 자다가 깨어 보면 하늘에 별이 총총하고, 어떤 때에는 자는 동안에 눈이 내려서 이 불 모양으로 몸을 덮는다고 한다.

『모두들 삽 하나씩 있것다, 구덩이 파는 재주는 있것다.

그들은 이 구덩이 파고 자는 것을 퍽 유쾌하게 말하였다.

그러다가 금 있는 데를 얻어 만나면 통나무들을 찍어 다가 우물 정자로 올려 쌓고 가는 나무로 지붕을 덮고, 그리고는 쇠털 같은 풀을 뜯어다가 문틈을 막고 창으로 서양목 헝겊 을 치고 물을 뿜으면 얼어서 유리창 처럼 되고 그리고는 방 한편 구석에다가 돌멩이더미를 쌓고 밑에 아궁이를 만들고, 거기다가 불을 때어 돌들이 뻘겋게 단 뒤에 물을 퍼다가 뿌 리면 방안이 더운 증기가 꽉차서 아주 후끈후끈하게 된다고 한다.눈이나 많이 오는 날이면 사슴 사냥을 해서 구워 먹고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여편네가 없는 것이어서 어떤 사람은 십 사 년간 조선 여자 구경을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 은 사금을 한 전대씩 허리에 차고는 이르쿠우츠크나웰흐네 우진스크나 치타나 이러한 큰 도시에 나와서 술과 계집에 그 전대를 톡 털어 버리고는 또 꽁이깨짐을 지고 나선다고 한다.

『아무개는 계집아 손 한번 잡아 보고 반 숟가락, 입 한번 맞추고 한 숟가락, 이렇게 퍼 주었읍다.

나는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을 백 명은 더 만났을 것이다.

그들은 다 낙천적이요, 되는 대로 살아 간다는 맘 놓음이었 다.

한번은 현금을 삼백원쯤 벌어 가지고 인제는 여편네를 하 나 얻어서 빨래간이라도 내고 재미 있는 생활을 해본다고 치타로 온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의 성명을 잊었으나. 그는 오십이 가까운 듯한 순직한 사람이었다.

『마우재 여편네는 암만 해두 재미 없읍데.

마우재란 아라사 사람들이란 말인데 시베리아에는 조선 여 자가 드물기 때문에 돈푼이나 잡은사람들은 마우재 여자들 을 데리고 살았다. 그들은 내외간에 말이 통치 아니해서 도 리어 그들의 새에서 난 자녀들이 통역 하는 것이었다.

그는 돈이 삼백원이나 있으니, 마우재 여자 말고 정자 조 선 여자한테 장가를 들 희망을 가지고 조선여자 많은 해삼 위로 가는 길에 치타에 들렀노라 하였다.

그는 며칠 동안 취한 얼굴을 가지고 나를 찾아 왔으나, 수 일간 소식이 없기로 갔는가 했더니, 의외로 시립 병원에서 죽었다는 기별이 왔다. 사람들은 그가 소범 상한으로 죽었 다는 말들을 했으나 그것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의 남은 돈을 가지고 장례를 잘 지내고 돌비를 세우고, 그리고 술과 담배를 사서 장지에서 잘 먹었다.

나는 그의 비문을 지었는데, 무엇이라고 썼는지 생각이 아 니 나거니와, 지금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그가 제 장례비 를 버느라고 그렇게 애를 썼다고 생각한 것과, 그가 누군지 도 모르는 여자에게 장가 들러 가는 길에 잠깐 들렀노라고 하던, 치타에 영원히 묻혔구나 하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러한 광경을 보고 들을수록 나는 더욱 방랑할 생각이 났 다. 나도 꽁이깨집을 짊어지고 시베리아 방랑의 길을 떠날 까. 가다가 가다가 아무 데서나 죽어서 묻혀버릴까, 이러한 생각도 해보고, 또 엉큼하게 시베리아에 방랑하는 수십만 동포를 가르치고 인도하는 자가 되어 볼까ㅡ 이러한 생각도 해보았다. 또는 다시 K학교로 가서 정든 학생들과 고락을 해보고도 싶고, 또는 다시 동경으로 가서 공부를 더 해보고 도 싶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생각으로 한량 없는 공상을 하는 동안에 여름도 거의다 지나가고 입은 옷은 점점 때묻 고 헤어져서 노동자나 다름없이 되었다. 아무 데를 가재도 돈 한푼 없는 몸은 하루 이틀 할 수 없이 치타에서 오락가 락하고 있었다.

나는 마침내 금점군들을 따라서 꽁이깨짐을 지고 떠나리라 고 생각하는 때에 구주 대전이 터져서 아라사에서도 동원령 을 발하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호의가 돌고 총독부 앞 넓 은 마당에는 징발이 되어 오는 장정들이 천명씩 땅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와 차르(임금)에게 서약식을 행하고는 짐차에 실려서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하였다. 이 집에서도 저 집에서도 남편을 빼앗긴 아내, 자식을 빼앗긴 부모들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내가 묵은 방에서는 밤이 깊도록 이웃 집에서 나는 울음소리가 들리고 길거리에 나가 다니면 어느 구석에서도 울음 소리 아니 들리는 곳이 없다.

장정을 실은 열차가 치타역을 떠날 때에는 남자들은 「우 라(만세」를 부르나 부인네들은 목을 놓아서 울었다. 그 우 는 소리가 조선 부인네들 울음 소리와 다름이 없었다.

치타 강가에 앉아노라면 장정과 말을 실은 열차가 길다란 구렁이 모양으로 달려나와 까사르라는 치타 교외의 정거장 을 떠나서 모스크바 쪽으로 향하고 기운차게 달리는 것이 보였다.

어떤 때에는 순박한 영감님과 마나님이 어디서 호외 조각 을 들고 와서 날더러 읽어 달라고도 하였다. 그들은 글을 몰랐다. 그들은 내가 호외를 읽어 주는 소리를 듣다가는 도 무지 호외만으로는 시원치 않다는듯이,

『독일이 이겼느냐, 아라사가 이겼느냐?

하고 단도 진입적으로 물었다.

『지금 싸우는 중이니까 보아야 알지요.

하면 그들은,

『대관절 왜 싸우느냐?

고 물었다.

그들은 암만 해도 아들을 죽이러 내보내지 아니할 이유를 못 찾는 것 같았다.

내가 날마다 먹을 것을 사러 가는 가게에는 하루는 전혀 보이지 않던 늙은이 하나가 앉았을 뿐이요, 낯익은 주인이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것은 나와 친한 유쾌한 젊은 사람이 여서 내게 외상을 곧잘 주고 농담도 잘하던 사람인데 그사 람이 없었다.

나는 면보며 설탕이며 순대며, 이런 것을 사자고 했다. 그 노인을,

『나는 물건이 어디 있는지 값이 얼만 지도 모르니, 예전 에 사던 값을 내고 마음대로 가져가오.

하는 말이 퍽 슬펐다. 아들 형제가 다 전장에 나간 것이었 다.

『왜들 싸워요?

하고 내가 말을 붙으니까, 그 노인은 아라사의 사람식으로 어깨를 으쓱하고 두 팔을 벌리면서,

『스쵸르초 네 즈나에트(뉘 아나) 신문에는 독일 놈들이 먼 저 건드려서 싸운다고 하지만 독일 신문에는 아라사 놈이 먼저 건드려서 싸운다고 그럴테지, 아아, 슬라와 보구(하느 님 맙시자 비슷한 뜻.)

하고 눈을 내려 감았다.

우리 조선 사람들은 모두들 흥분 하였다. 전쟁 소식을 전 하는 호외가 돌면 글 볼 줄 아는 사람한테 모여서 그 설명 을 듣고는 주먹을 부르 쥐었다. 마치 남들은 다 전쟁에 나 가는데 우리는 못나 가는 구나, 하는 듯한 감회들이 있었다.

전쟁이 터지자 물가는 장달음을 쳐서 올라갔다. 면보값, 설 탕값, 고기값, 아니 오르는 것이 없었다. 농사를 짓는 조선 사람들은 수입이 늘어서 기뻐했거니와, 우리 따위는 더욱 죽을 지경이었다. 더구나 인제는 회니 잡지니 다 글렀다.

「프세미르니야 워이나(온 세삼 싸움)」하는 신문의 제목들 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 끝이 온 것처럼 느끼게 하였다.

내가 주인하는 유대 사람은 또 포근롬(유대인 학살)이나 오 지 않나 하여 전전 긍긍하였다. 그의 딸을 불야불야 혼인을 해버렸다.

어찌 될지 모르는 세상이니, 딸을 주인이나 정해주자는 것 이라고 주인 마누라가 내게 통정을 하고, 혼인식장으로 내 방을 빌려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도 손님의 하나로 초대 를 받았다. 신랑 신부뿐 아니라, 모인 사람이 다 유대인이 요, 아라사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은 말할 것 없지만은, 그 들은 다 수심기를 띄고 혼인 무도를 할 때에는 커어튼과 덧 문을 닫고 하였다.

아라사 사람들 알기를 두려워하는 모양이었다. 또 바깥에 서 안 틀릴이만큼 가만가만히 하였다. 그래도 신랑 신부만 은 이 모든 것을 다 잊어 버린 모양으로 흥 분한 얼굴로 수 없이 안고 키스를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내게는 슬프게 가 엾게 보였다. 또 신랑도 언제 불려나갈지는 모르는 것이었 다.

이렇게 전시가 되니, 길거리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오피체르(사관) 들이었다. 그들은 술 취한 얼굴로 퍼런 모자 를 비스듬히 쓰고 검은 가죽 씌운 긴 칼을 끌면서 젊은 여 자를 끼고 횡행하였다. 이쁘고 젊은, 여자는 모두 다 오피체 르의 것이 된 것 같았다. 사실상 이발소에서 늘 만나는 오 입장이 아라사 친구 말이 오피체르 때문에 요새에는 계집애 하나 얻어 볼 수 없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너는 왜 전장에 안 나가느냐고 물었더니 그의 말이,

『너 모르니? 나도 병이 있거든.

하고 씩 웃었다.

『네가 병이 무슨 병? 사랑병?

하고 놀려 먹으니까 그는 「쉬」하고 눈을 끔적끔적하면 서,

『군의가 병이란 말이다.

하고 날더러 입을 닫치라는 시늉을 하면서 픽 웃었다. 그 는 필시 사관들도 다 전장에 나가면 그 많은 과부와 처녀들 은 다 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군의에게 천루우블리를 먹이고 병이란 진단으로 병역을 면하였단 말 은 조선 사람인 그 이발소 주인에게 들었다.

구라파 대전 때문에 나는 시베리아 방랑의 계획도 포기하 기 아니한 수 없었다. 전시에 외국 사람의 국내 여행은 위 험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최후 수단으로 일어와 영어 개인 교수 한다는 광고를 여남은 곳에 써 붙이고 기다려 보았으나 아무 소식이 없었 고, K신부가 이르쿠우츠크 사관 학교에 나를 소개하였으 나 거기서도 소식이 없었다.

나는 정말로 진퇴 유곡이 되었다. 끼니 때마다 면면보를 살 돈도 없었다. 거의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이때에, 하루는 난데 없는 마차가 문밖에 와 서고 나는 알지 못하는 사람의 방문을 받았다. 그는 사관이었다. 그리고 그는 젊은 부인 하 나와 여학생 하나를 데리고 왔다.

『남궁 선생이시오?

하는 그의 말은 이 지방에서는 듣기 어려운 기호 말이었 다.

『네, 남궁 석입니다.

하고 나는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나와 달라서 옷을 꽤 화려 하게 입고있었다.

『저는 R이라고 합니다.

하고 그는 명함을 내었다. 그것은 아라사 말로 박은 것으 로 콘스탄틴 니콜라에 비치 R이라고 하고, 육군 기병 소위 라는 직함이 있었다. 나는 명함을 보고서 생각이 났다. 치타 에 있는 사단에 조선 사람 장교가 한 사람 있는데, 조선 사 람과는 통히 교제가 없다고 이 지방 사람들이 불평하는 소 리를 들은 까닭이었다.

그리고 R,

『제 아내올씨다. 이것은 누이 구요, 엘렌이라고 합니다.

하여 동행한 두 여자를 소개하였다.

R은 선비로 생긴, 미목이 청수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부 인이나 누이가 다 점잖은 집 딸인 것이 분명하였다. 다만 그 부인의 눈이 너무 작고 애교가 있는 것이 어염집 부녀답 지를 아니 하였으나, 엘렌은 그 오빠와 같이 청수하게 생겼 었다. 혈색이 좋지 못한 것이 흠이었다.

『뵙기는 오늘 처음이지마는......

하고 사관은 꽤 바쁜 듯이 몸이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입 을 열었다.

『누구신지 알지요. 벌써부터 찾아 뵈려고 했으나 제가 이 지방 조선인들과 만나지 못할 사정이 있단 말씀야요. 그이 야기는 후일에 이애 엘렌에게라도 들으시지요. 그런데......

하고 R은 한번 한숨을 지면서,

『아시다시피 이번에 동원령이 내려서 저도 내일 아침에는 치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서부 전선으로 가는 모양이지요.

그저께야 전선으로 나가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이틀을 누고 많이 생각해 보았어요.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 하고. 아시다 시피 우리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하러 피를 흘리는 것입 니까. 그래 도망을 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요. 식 구라구 아내허구, 누이동생,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사범 학교 에 다니는 아우 하나. 이번가면 살아 돌아오기를 기약할 수 도 없는 일이요, 또 요행 살아 돌아 온댔자, 이태가 될지는 삼년이 될지는 모를 일이니, 가족의 일도 걱정이 되고 그래 서 도망할 생각도 해보았지만은, 나 한 사람이 도망을 한다 면 아라사 땅에 사는 오십만 동포가 다 누를 입겠단 말씀이 지요. 조선사람 사관도 수십명 되거니와, 병졸은 아마 수 천 명 될 것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모두 누가 미칠 것 아냐요?

그래서 저는 나가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이 싸움에 나아가 서 피를 흘리는 것도 필경은 동족을 위하는 것이라고, 그러 니까 내 힘껏 정성껏 나가서 싸운다고 스스로 맹세를 하였 지요. 그러는 것 옳지요?

하고 그는 말을 끊고 나를 바라본다.

『옳습니다. 장하신 결심이십니다.

하고 나도 이 청년 사관의 태도에 진정으로 감격이 되었 다.

『고맙습니다. 선친께서 임종에 저를 불러 놓으시고 하신 말씀이, 너는 네 몸을 생각하지 말고 네 집을 생각하지 말 고 오직 조선을 생각하라.ㅡ 이 말씀뿐이었습니다. 이 말씀 을 세 번이나 뇌이셨어요. 임종의 고통속에서......

하고 R은 치미는 감격을 누를 수 없는듯이 잠시 고개를 숙 인다.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손수건으로 눈과 코를 씻 으면서,

『이번에 전장에 나갈 결심을 한것도 선친의 유언의 힘이 지요. 그런데 말씀이징. 제가 내일 뚝 떠나면 이 가족을 어 찌하느냐가 문제가 아닙니까? 북간도에 제 삼에 제 삼촌과 사촌이 살지만은, 그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통신이 끊어진 지가 벌써 이삼 년 데니, 어찌 된지 알 수 없고, 집사람은 심정은 북경 방면에 있는 모양인데 역시 소식이 끊어 졌구 요. 광동으로 갔단 말도 있고 운남으로 갔단 말도 있고, 어 디 우리네 망명객의 신세가 정처가 있어요? 그렇다구 가족 을 여기다가 두고 갈 수도 없고. 제 선친(그때 아라사 서울) 으로 가시던 길에 여기 동포를 찾아 보려고 내리셨다가 잡 혀 돌아 가셨지요. 그리고는 아버지 입으시던 의복을 제비 를 뽑아서 나눠 가졌다고들 합니다. 시체도 못 찾았지요. 아 마 해삼위서 치타로 선친을 중상하는 무슨 기별을 했던가 보아요. 그러니 제가 이 지방 사람을 만날수가 있겠어요?

하는 말에 나도 어떤 서울사람이 여기서 밀정의 혐의로 죽 어서 시체는 감자부대에 담아서 얼음 구멍에 집어 놓고, 그 가 가졌던 돈과 의복과 행리는 모두 나눠 가졌다는 말을 들 은 것이 기억되었고, 더구나탁시도에 떠비햇쓴 사람 하나를 보고, 이것이 그 죽은 사람의 옷이라고 웃던 것도 기억이 되어서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끄덕 하였다.

R을 담배 하나를 붙이고 내게도 권하면서,

『그래서 선생께 다가 가족을 맡아 줍소사 하고 청을 하리 라고 결심을 하고 찾아 왔습니다. 저는 선생이 뉘신줄을 잘 알아요. K학교의 계실 때부터도 선생말씀을 들은 일이 있었 지요. 선생이 치타에 오신뒤에도 또 길이 있어서 다 알고 있었지요. 어려우시지마는 제 아내와 누이를 맡아주셔요. 제 가 살아 돌아오면 다행이요, 만일 죽고 못 돌아오면 선생께 서 좋게 생각하시는 대로 어떻게 살 도리를 해주셔요.

하고 눈물을 씻고 앉았는 누이와 아내를 돌아 보았다. 나 는 이 청년 사관의 말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만큼 성의와 열정이 있었다. 젊은 아내와 과년된 누이 를 남에게 맡기지 아니하면 아니 될 그의 심사를 나는 지금 잘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네 맡아 드리오리다.」하고 시 원한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지금 내 몸 하나도 둘곳 이 없는 사람이 아니냐. 그래서 나는 한참 동안이나 말없이 머리를 숙이고 앉았었다. 나도,

『가족을랑 염려 마시오. 어서 가서 큰 공을 세우시오.

이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그 말이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R 도 내 옷 입은 꼬락서니를 보면 대개 다 사정을 짐작 하련 마는, 하고 나는 반쯤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R은 내가 말없이 앉아 있는 것을 보더니 한번 길게 한숨을 쉬고,

『만일 선생이 아니 맡아 주신다면......

하고 잠시 말이 막혔다가,

『저는 이 두 식구를 내버리고 갈 수 밖에 없으니, 그럴 바이면 차라리 둘을 다 죽여 버리고 가렵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다.

부인도 엘렌도 이마에 손을 대고 느껴 울었다. 나는 더 생 각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감격한 소리로,

『말씀대로 하지요. 북간도에 완장댁을 찾든지, 북경 빙장 댁을 찾든지 찾아 드리죠. 그리다가 못 찾으면 어떻게 하든 지 형께서 돌아 오실 때까지 보호해 드리지요!

해 버렸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R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그에 눈에서나, 내눈에서나 눈물이 흘러 내렸다. 나는 그가 나같은 못 믿을 위인을 이처럼 믿는 것이 감격 되었던 것이 다.

『지금부터 저는 선생님을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저를 동생으로 불러 주셔요. 마아가릿은 형님을 내 친형님으로 뫼시오. 엘렌아 너는 이 형님을 큰 오라버니로 뫼시고. 내가 만일에 전장에 나가서 죽고 못 돌아 오더라도 이 형님 지시 대로만 복종하고 살아야 한다.

이렇게 그 아내와 누이에게 말하고는 R은 나를 향하여,

『형님, 이것도 다 인연입니다. 장차 큰일을 하실 형님에게 이리한 짐을 맡기는 것이 심히 죄송합니다.그러나 이 천지 에 나는 형님 밖에 믿는 이가 없으니 어찌합니까? 다 인연 입니다.

하고는 시름을 다 놓은 듯이 담배 한대를 더 피우면서,

『오늘 저녁을 제 집에서 잡수셔요. 마차를 밖에 세워 두 었습니다. , 가셔요.

하고 먼저 일어난다.

나는 때묻은 모자를 집어 쓰고 따라 나섰다. 마차에는 마 부와 종과 둘이 어자대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R의 집은 무론 사단 관사였다. 비록 집이 크지 아니하나, 나는 치타에 온 뒤에 이런 깨끗한 집에 발을 들여 놓은 일 이 없었다. 표치도 있고 응접실에는 그림도 걸리고 테이블 이나 교의나 커어튼이나 화분이나 다 훌륭하였다. 응접실 한쪽으로 통한 장지는 식당일 것이다. 더구나 초록 카펫을 깐 것이 무척 호화스럽게 보였다. 내 방은 무딿아빠진 마루 바닥이요, 의자도 그냥 나무때기 의자였다.

차가 나오고 깐페트까(엿 과자)가 나오고, 그리고 저녁밥도 쇠고기, 닭고기 모두 맛난 것이었고 나중에 나오는 디저어 트도 먹어 보지 못하던 맛난 것이었으며, 야그드(둘쭉)도 나 왔다. 오랫 동안 궁하게 살던 나는 거의 염치를 잊을 만하 게 한 밥을 잘 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응접실에 돌아 와서 나와 단둘이 앉았을 때 R은 한참이나 머뭇거리다가

『형님, 저는 제 아내를 사랑합니다. 나라 다음으로는 사람 합니다. 사랑하니까 그것이 내 것 같지를 아니합니다. 형님, 제 아내는 좀 믿기 어려운 아내인 것 같아요. 형님께서 말 씀이지, 제 아내가 제게 시집 오기전 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와 혼인한 지가 이태가 되었어요. 그렇지만 제가 전장에 나가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하고 잠시 쉬었다가,

『그러니까 형님, 내일 제가 떠나거든 여기서 지체 마시고 제 가족을 다리고 북간도나 북경이나 어디로 뚝 떠나 주셔 요. 제 눈으로 가족이 치타를 떠나는 것을 보고 떠났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고, 또 형님이 맡아 주시니까 마음이 턱 놓입니다마는......

하고 그는 허공을 바라본다.

나는 R의 말을 듣고 또 그 괴로워하는 표정을 볼 때에 울 고 싶었다. 그처럼 그 아내가 사랑스러울까. 그리고 그 아내 를 잃어 버릴까 보아 그처럼 마음이 놓이지 아니할까.

그날 저녁 나는 R의 아내에게 아주버니랑 칭호와 엘렌에게 오빠라는 칭호도 들었다. 그들도 내게 대해서는 호감을 가 지려는 모양이었다.

R이 가족과 떠나는 마지막 저녁이라, 나는 오래 앉지 아니 하고 일어 났다. 나는 내일 아침 여섯시에 R의 집으로 와서 가족과 함께 정거장으로 나가기로 약속을 하였다. 벌써 아 홉 시언마는, 북국인 이 땅에는 아직도 이른 황혼이었다. 누 럴 천지 정말 황혼이었다. 서쪽 하늘과 북쪽 하늘은 훤하고 오직 동남쪽만이 밤빛을 보였다.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R은 손에 드는 가방 하나를 들고 나와서 마차 하나를 불러 서 나를 올려 앉힌 뒤에 그 가방을 내게 주면서,

『형님, 이것을 가지고 가셔요. 이것이 내 재산의 전부입니 다.

하고 제 빈손을 비빈다.

『그것이 얼마요?

하는 내 말에 그는,

『종용한 때에 세어 보시지요.

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는 손을 내밀어서 내 손을 잡 아 흔들고 가 버린다.

나는 마차에 흔들리면서 집에 돌아왔다. 주인 마누라가 내 가 마차를 타고 왔다갔다하는 모양을 보고 이상한 듯이 눈 을 크게 떴다. 방세가 두 달이나 밀린것이다.

나는 자정이나 지나서야 R이 준 가방을 열어서 그 속에 든 것을 보았다. 그것은 모두가 백원짜리 새 지전이었다. 나는 우선 깜짝 놀랐다.

나는 지전 한 장을 들어서 안팎을 자세히 검사해 보았다.

분명히 「一○○」이니 「스토 루우블리」(백원)니 하고 구 석 구석 박은 백원짜리였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세어 보았다. 백원짜리가 이 백장 십 원짜리가 삼백 장모두 이만 삼청 루우블리. 이것을 일본돈 으로 환산하면 이만 육천원어치나 되었다. 나는 또 한번 놀 랐다.

나는 일생에 이렇게 많은 돈을 가져 본일이 없었다. 구경 도 한 일이 없었다. 나는 얼른 가방을 닫아서 이것을 어디 다가 두나 하고 쩔쩔 매었다.

처음에는 침대 밑에 있는 서랍에 두어 보았다. 그러나 마 음이 놓이지 아니하여서 다시 꺼내어 배게 밑에 넣고 누워 보았다. 그래도 잠이 들지 아니하였다. 만일 도적이 들어온 다면 베게밑을 먼저 뒤질 것이 아니냐. 그래서 다시 일어나 서 침대 매트리스 밑에 넣어 보았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아니하였다. 도적놈이 들어오면 매트리스 밑을 먼저 뒤질 것 같았다.

<도무지 이것을 얻다가 두고 자면 좋단 말인가?>

하고 나는 그 가방을 들고 방 한복판에 서서 쩔쩔 매었다.

이렇게 방황하기를 아마 두시간은 한 끝에 나는 꾀를 얻었 다. 그것은 끄나풀로 테이블 뱃바닥에다가 착 달라붙게 매 달라 붙게 매달아 놓고 테이블 보를 씨우는 것이다. 아무리 도적 놈이기로 이것이야 설마 뒤지랴 한 것이었다.

주인 방에서 들리지 않게 하노라고 사운사운 발끝으로만 걷노라고 해도 워낙 헌집이라 가끔 마루창 널이 삐걱 소리 를 내었다. 그럴 때마다 숨이 막히고 식은 땀이 흘렀다.

이렇게 가방 처지를 해 놓고는 다시 전등을 켜고 일부러 마루 소리를 좀 내고 나서 다시 전등을 끄고 자리에 드러누 웠다.

그래도 도무지 잠이 들지를 아니하였다. 창마다 문마다 모 두 도적놈이 붙은 것만 같았다. 나는 부자의 마음 안 놓이 는 심사를 비로소 맛보는 것 같았다.

<이 돈을 어떻게 처지하나?>

이것도 근심이었다.

<이 돈이 내 돈이었으면.>

이러한 물욕도 일어났다. 만일 R이 내 마음에 이러한 물욕 이 있는줄 알았으면 이 돈을 내게 맡기지 아니 하였으리라 하면 스스로 부끄러웠다.

시계가 세시를 쳤다. 이웃에서 남편과 아들을 전장에 보내 고 우는 부인네도 울기에 피곤해서 잠이 든 모양이었다.

나도 도적의 두려움과 여러 가지 생각으로 잠이 들지 아니 하여서 애를 쓰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불을 켜고 마음 을 가라 앉히려고 성경을 떠들었다.

우연히 나온 것은

『그(예수)는 무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 하거든 저를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 르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살리려 한 자는 잃고 나를 위하 여 제 목숨을 잃는 자는 살리라. 사람이 온 세계를 다 얻기 로니, 저를 잃거나 버림이 되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이냐.

하는 「누가 복음」구장의 말씀이었다.

나는,

『저를 버리고......십자가를 지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또 몇 장을 넘겼다.

『친구들아, 내 너희게 이르노니 몸을 죽이되 그 이상 더 할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 말라. 내 너희게 두려워할 이를 가르치리니, 몸을 죽이고도 지옥에 던질 수 있는 이를 두려 워하라. 내 너희게 이르노니 그이를 두려워하라.

여기까지 읽으매 내 마음은 편안해졌다. 더구나 그 다음 귀절,

『참새 다섯마리에 두 푼하지 않느냐. 그러한 참새 한 마 리도 하나님은 잊지 아니하시나니라. 너희 머리카락도 하나 님은 다 헤고 계시나니 그러므로 두려워 말지어다. 너희는 참새보다 가치가 높지 아니하냐.

여기 와서는 아는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내가 무엇하러 근심을 하였던고? 왜 이말씀을 잊고 있었던 고? 내일 아침 먹을 것이 없기로 금방 도적이 칼을 들고 들 어오기로 내가 두려워할 것이 무엇인고? 하나님은 나를 아 시지 아니하는가 내가 무슨 일을 해야 좋을지 언제까지 살 아야 좋을지 다 아시고 계시지 아니하는가.

『정신 차려서 탐욕을 삼갈지어다. 사람의 목숨은 그가 가 진 풍성한 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ㅡ』

『그러므로 내 너희다려 이르노니 네 목숨을 위하여 무엇 을 먹을까. 네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ㅡ』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이 다 너희에게 오리라.

나는 성경을 덮어놓았다. 더 볼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마 치 내 마음에서는 모든 욕심과 의심이 다 스러지고 맑고 깨 끗한 혼만이 가벼이 날개 치는 것 같았다.

이만 삼천원의 지전이 휴지 뭉텅이와 같았다. 나는 그것을 감추노라고 쩔쩔 매던 것이 부끄러웠다. 하물며 그것이 내 것이면 하는 생각을 가진 것을 생각하면 전등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나는 지나간 더러운 생각을 씻어 버리는 모양으로 혼자 픽 웃었다. 내 마음에는 다시는 부정한 생각이 나지 아니할 것 같았다.

실상 내 마음은 가쁜하였다. 오늘 하루 R의 방문으로 해서 생긴 불안과 심려뿐 아니라, 그동안 궁함으로 받던 괴로움 까지 다 스러져 버린 것 같았다. 길다란 장마에 구름이 쫙 걷히고 햇볕이 환히 비취는 것 같았다.

나는,

『하나님이시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하는 주기도 문 구절을 기쁘게 기쁘게 여러 번 외우고 자리에 들어가 잠 이 들었다. 여섯시에 R의 집에 갈 것을 생각하고 눈을 뜬것 이 다섯시. 한 시간 폭이나 졸았을까. 눈이 감기는 것을 일 어나 세수하고 그 돈 든 가방을 내 보자기에 싸서 들고 R의 집으로 달려갔다.

R은 벌써 영문에 들어가고 마아가릿과 엘렌이 울고 있다가 내가 오는 것을 보고 눈물을 씻고 손은 내밀었다.

나는 말 없이 악수를 하고 나서 어젯밤 내가 감격한 성경 구절을 읽어 주었다. 그러나 슬픔이 가득한 그들에게는 아 무 감격도 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라사 노파가 갖다 주는 커피 한잔을 마시고, 두 식 구를 데리고 마차를 타고 정거장으로 나갔다.

정거장에는 혹은 남편을, 옥은 아들을 보내는 남녀들로 꽉 찼다.그렇게 떠들기 좋아하는 아라사 사람들이언마는, 훌쩍 훌쩍 우는 소리 밖에 아무 소리도 없었다.

우리는 군인들이 들어 갈 특별 입구 가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서 R의 소속 부대가 오기를 기다렸다.

나팔 소리가 나고 칼 빼어 든 사관이 앞을 서고, 그리고는 병정들이 뒤를 따라서 한 부대씩 한 부대씩 정거장으로 들 어 갔다.

어떤 부대는 아직 군복도 안 입고 농복을 입은 채로 얼굴 에는 보리 수염이 묻은 채로 가는 것도 있었다. 이런 모양 이었다.

그들은 전송 나온 군중 중에서 제 가족이나 아는 사람을 찾으려는 듯이 눈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결겅된 운명을 잘 깨달은 듯이 아무 말이 없었다.

이 모양으로 끝없는 군사의 행렬이 지나간 끝에 한 부대가 왔다. 그들은 긴 칼을 차고 총을 진 것이 기병대인것이 분 명하였다. 대부분이 황인종인 것은 부랴트족인 때문이다. 키 는 작으나 모두 표한해 보였다. 그 부대의 중간 쯤해서 칼 을 빼어 들고 걷는 것이 분명 R이었다.

그는 말없이 걸어서 우리가 섰는 앞으로 지난다. 고개는 그냥 두고 잠깐 눈만 이쪽으로 돌렸으나, 그대로 지나가 버 리고 말았다.

나는 모자를 벗어 흔들었다. R의 뒷모양이 정거장 속으로 스러질 때에 마아가릿은 내 어깨에 쓰러졌다. 소리는 내지 아니하다 우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를 안아 부축하였다. 다 른 가족들도 소리는 내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어떤 이는 마아가릿 모양으로 쓰러졌다.

나는 마아가릿과 엘렌을 데리고 가까스로 군중 물결을 헤 어 나와 집으로 돌아 왔다. 집에 돌아 오는 길로 마아가릿 과 엘렌은 쓰러져 울었다. 나는 무거운 가슴을 안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정거장에서 기적 소리가 울려 왔다. 열차가 떠 나는 것이다. 한 시간을 새에 두고 연방 장정과 군대를 실 은 열차가 떠나는 것이었다.

미친 듯이 「우라」, 「우라」하는 소리가 어디선지 울려 왔다. 아마 떠나가는 열차를 바라보고 부르는 군중의 소린 가 보다.

떠나는 사람, 보내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치타 전시가는 마 치 초상난 집과 같았다. 아마 그 넓은 아라사 나라의 어느 구석이나 그럴 것이다. 아마 독일도 오스트리아도 법국도 영국도 다 그럴 것이다. 구라파 전체가 지금 온통 떠나는 슬픔, 보내는 슬픔 속에서 울고 있을 것이다.

전선에서는 지금 포성이 은은할 것이다. 아까 역두에서 본 그러한 장정들이 피를 흘리고는 쓰러질 것이다. 집에 두고 온 부모와 처자를 생각하면서 마지막 숨을 쉬일 것이다. 그 들의 혼이 자유로 행동할 수가 있다면, 그들은 반드시 일직 선으로 제 고향으로 달릴것이다. 그래서는 저를 잃고 우짖 는 부모와 처자를 보고 다시 단장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오늘 치타를 떠난 젊은 남편들과 아들들 중에서 과연 몇 사람이나 살아서 돌아 올는고? 목숨은 부지하더라도 몸 성 하게 돌아 올는고.

나는 느껴 우는 마아가릿과 엘렌을 보았다. 새삼스럽게 측 은생각이 나서 나도 고개를 숙이고 한참이나 울었다.

그러나 이러고 있을 수가 없다. 어서 치타를 떠나는 것이 상책이다. 북간도 그들의 삼사촌의 집에 갖다가 맡기는 것 이 상책이다. 전쟁이 더 벌어지면 꼼짝할 수 없데 될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또 아라사 화폐가 뚝 떨어지는 날이면 내가 맡은 이만 삼천원이 휴지 뭉텅이가 될는지도 모른다. 실상 아라사 사람들은 심히 독일을 무서워 하였다.

도저히 독일과 싸워서는 이기지 못한다고 하였다. 마치 질 것이 분명한 싸움을 하는 것같이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 래서 연합군이 이겼다는 신문 호외가 나도 별로 믿는 사람 은 없는 모양이었다.

『스춀로, 니에즈나엘(뉘가 알아).

하고 나 많은 이들은 두 팔을 떡 벌렸다.

이러기 때문에 나는 하루라도 바삐 치타를 떠나려 하였다.

나는 Y씨에게 내가 치타를 떠날 뜻을 말하였다. Y씨 도 인 제는 시베리아에 아무 희망도 아니 가진 모양이여서 곧 내 뜻에 동의하였다. 그리고 Y씨가 나서 구걸하다시피 하여 내 가 북간도까지 갈 노자를 얻어 주었다. 그리고 치타에 누구 누구하는 이들이 모여서 송별연도 베풀어 주었다.

나는 R의 돈을 쓰지 않는 것이 기뻤다. 내 노자로 차표를 사는 것이 기뻤다. 나는 마아가릿과 엘렌을 이등에 앉히고 나 자신은 삼등을 탔다. 내 노자는 삼등 노자 밖에 안되는 까닭도 있거니와, R의 부탁대로 R의 가족의 거취를 비밀 히 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나는 치타를 떠났다.

우리 열차는 하르빈까지 오는 동안 나흘이나 걸렸다. 동방 으로서 오는 군용 열차를 피하기 위하여서다.

어떤 정거장에서는 일주야를 차중에서 묵은 일도 있었다.

동방으로서 오는 열차는 군인과 대포와 말뿐이었다. 보통 승객의 길은 거의 막힌 모양이었다.

어떤 때에는 광야의 외로운 정거장에서 밤중에 두세시간을 기다린 일도 있었다. 낮에는 아직도 땀이 날만한 기온이언 마는, 밤에는 얼음이 얼만큼 추웠다. 내 빨강 담뇨 하나로는 견딜 수 없을 만한 때에 엘렌이 폭은한 담뇨를 갖다가 덮어 주었다.

마아가릿과 엘렌은 날더러 이등으로 오라고 그렇지 아니하 면 자기네도 삼등으로 온다고 말했지마는, 나는 명령적으로 그냥 있으라고 하였다. 내가 R의 돈데 한푼이라고 손을 대 기를 원치 아니하는 까닭이었다.

하르빈에 내린 것은 비 오는 어느 날 석양, 우리는 여기서 관성자(지금은 신경)로 가는 차를 갈아 타야 하는 것이다.

이튿날이 아니면 연락하는 차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하르빈 에서 여관을 하나 찾아 들었다. 나는 젊은 여자를 데리고 하는 여행의 길이 처음이기 때문에 마음이 조여서 기름이 마를 지경이었다.

다행히 마아가릿과 엘렌은 나를 잘 믿고 따라서 내 말을 잘 복종하였고, 또 울지도 아니하고 유쾌하게 노는 때도 있 었다. 그것이 실로 다행이었다. 만일 그들이 치타에 있을 때 모양으로 자꾸 울기만 하면 그런 질색이 없을 것이다. 아마 하르빈까지 오는 길에 수없는 출성 군인들을 대한 것이 얼 마큼 그의 마음을 위로한 모양이었다.

이튿날 나는 마아가릿과 엘렌을 데리고 나가서 청복을 한 벌씩 사 입혔다. 관성자 길림을 지나서 북간도로 가려면 청 인 행세를 하는 것이 안전할 듯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처음 에는 「끼따이스키」라고 청인을 멸시하여 그 의복을 입기 싫어하였으나, 나는 이로부터 우리는 청인들 속에 여행을 할 것과, 일시는 청인들 속에서 살아야 할 것과, 또 청인이 결코 멸시하거나 무서워할 백성이 아니니, 이로부터 청인이 동포로써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을 말하여서 그 들도 순순히 청복을 입었다.

그 이튿날 찰르 타고 비가 퍼붓는 속으로 관성자를 와내리 니, 자정이 넘었는데 시베리아 방면에 사는 유대계 아라사 부자들이 사해 방면으로 피난 가노라고 어떻게 손님이 많은 지 우리는 가까스로 중국사람의 여관 방 하나를 얻어서 거 기다가 두 사람을 재우고 나는 혼자 기어 잘 곳을 구해 보 았으나, 큰 돈을 지니고 어찌할 수 없이 두 여자가 자는 한 편 구석에서 눈을 붙였다. 이로부터 이와 같은 주막생활을 수십일이나 할 생각을 하면 이것도 한 연습이었다.

이튿날 나는 마차 하나를 얻어서 두 여자를 태우고 마차군 과 한자리에 앉아서 길림을 향하고 길을 떠났다. 마차는 두 바퀴 마차로 퍼런 포장으로 지붕을 한 것인데 오장이 들추 이도록 흔들렸다. 바퀴가 절반씩이나 빠지는 길, 길이 넘게 자란 수수밭 속으로 가는 고생은 여간이 아니었다. 더구나 젊은 여자와 재물을 지니고 가는 길이라 도무지 마음이 놓 이지 아니하였다.

나는 하르빈에서 산 육혈포를 언제나 빼어서 쓸 수 있도록 청복 앞자락에 넣고 가끔씩 그것을 만져 보았다. 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에 맡긴다고 생각은 하면서, 남의 가족 과 재물을 맡은 이상 내 힘껏은 그들을 보호하되 죽기까지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수수밭 속으로부터 어떤 놈 이든지 덤비면 육혈포로 해댈 결심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낚시질도 못하는 성미다. 고기를 속여서 잡아 죽이기 가 어려운 것이었다. 한번은 살벌한 마음을 길러야 한다고 K학교의 비둘기 한 마리를 내 손으로 목을 따서 죽인 일이 있었으나, 그후로는 한 달 이상을 두고 괴로와 하였다.

이러한 내가 육혈포로 사람을 쏠수 있을까. 그러나 마아가 릿과 엘렌이 나만을 믿고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줄줄 따라 오는 것을 생각하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길림을 떠나서 사흘째 되던 날인가, 우리 일행은 T령이라 는 살림이 무성한 영을 넘게 되었다. 그리 높지는 아니하나 워낙 수림이 많은데다가 아직 낙엽이 아니 되어서 하늘이 잘 보이지 않는 데가 있고, 축축한 찬 바람이 땀을 스쳤다.

우리는 이 영을 넘는데, 동행을 얻기 위하여 온 하루를 묵 었으나 대개는 보따리 하나씩 진 노동자들이요, 믿음직한 동행이 없었다. 나는 이 동행이란 것이 도리어 화근이란 말 도 들은 일이 있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믿음직한 동행 을 기다리려고 하였다.

그렇다고 그냥 동행만을 기다린다는 것만도 도리어 주막 주인이나 다른 행객에게 의심을 살 듯도 싶어서 나는 몸이 아프다는 선언하고 낮에도 담뇨를 쓰고 누워 있었다. 젊은 여자와 많은 돈을 지닌 내게는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도적 인 것만 같아서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아니하였다.

하루 종일 기다려서 겨우 보행군 오육인의 동행과 함께 주 막을 떠났다. 다들 보행으로 가는데 우리만 타고 가는 것이 미안도 하고, 또 무시무시하기도 하여 마아가릿과 엘렌만을 마차에 태우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으면서 서투른 중국말로 이야기를 하였다.

『여기도 도적이 나오?

나는 무심코 하는 듯이 이런 말을 물어 보았다.

『왜 안나요? 길림서 돈화 가는 길에는 T령이 제일 도적 많이 나는 곳이라오. 그러나 우리네 따위야 빼앗길 것이 있 나?

이런 소리들을 한다.

하늘은 맑고 늦은 가을 볕이 쪼일 떼에는 따가울 지경이었 다. 우리는 수풀 속에 들었다가 등성이에 올랐다가 이 모양 으로 낮이 기울도록 걸었다. 이따금 새소리도 들리고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도 만났다.

조금만 더 가면 마르터기라는 말을 들으며, 굴곡이 많은 삼림 깊은 길을 걸었다. 버스럭 소리만 나도 머리가 쭈뻣쭈 뻣하고 발이 머물러졌다. 나는 호주머니에 넣은 육혈포 자 루를 만져 보았다.

그럴 때에 어디서 「땅」하고 총소리 한방이 났다. 동행하 던 중국 사람들은 잠깐 두러번두리번하더니 모두들 수풀 속 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놀라지 마시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천연히 계시오.

하고 나는 마아가릿과 엘렌을 마차에서 내리라고 하였다.

두 여자는 내 팔 하나씩을 꼭 붙들었다.

이때에 벌써 수풀 속에서 중국 병정의 옷 같은 연두빛 나 는 복장을 입고 같은 빛 나는 모자를 쓴 사람 사오인이 뛰 어 나왔다. 그중에 하나는 총을 들었으나, 다른 사람은 혹은 중국식 칼을 들고, 혹은 몽둥이를 들었다. 나는 번개같이 내 운명을 자각하였다.

아는 내 팔에 매달린 마아가릿을 뿌리치고 빨리 육혈포를 꺼내어서 우선 총든 사람을 향하여 한 방을 놓았다. 나는 내 힘껏 싸우다가 죽을 결심을 한 것이다.

왜 그런고 하면 친구의 아내와 누이와 재산을 맡아 가지고 가다가 내가 살고 그것을 잃으면 내가 무슨 면목으로 다시 하늘을 대하랴 이렇게 생각한 것이었다.

나는 거의 정신 없이 육혈포를 연발하였다. 내 앞에 보이 던 도적이 죽었는지 달아났는지 나는 그것을 볼 여유가 없 었다. 총 들었던 놈 하나가 거꾸러진 것만은 분명히 기억한 다. 내 힘 있는 데까지 대항만 하면 고만이라고 나는 생각 한 것이다.

인제 육혈포의 마지막 방이라고 의식하면서 눈앞에 보이는 도적을 겨누고 쏘려고 할 적에, 무엇이 내 머리를 힘껏 내 려 치는 것을 느끼고는 나는 땅에 쓰러져서 정신을 잃었다.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나중에 알고 보니, 일주야를 지나 서였다. 나도 심히 캄캄한 곳에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처음 나는 생각이 마아가릿과 엘렌이 어디 갔는가 하는 것이요, 그다음에 나는 생각이 목이 마르다 하는 것이요, 그다음에 나는 것이 이 곳이 어딜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도 육혈포가 내 손에 쥐어 있는 것같이 생각 했 다. 그러나 손가락을 움직여 보니 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이만원 돈이 든 전대를 허리에 찾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무론 없었다. 머리가띵하고 아프기로 만져 보니 헝 겊으로 싸맨 모양이었다.

『엘렌!

하고 나는 불러 보았다. 대답이 어디서 오리라고 예기한 것이 아님은 무론이다.

『아이, 오라버니.

『아이, 아주버니.

하고 손들이 내 몸에 올 때에는 나는 정말이라고 믿어지지 아니하였다.

하도 반가운 김에 나는 그것이 누구의 손인지도 모르고 힘 껏 쥐었다. 그 손들도 내 손을 힘껏 쥐었다.

『다들 다친 데나 없으시오?

이것이 내 첫 인사였다.

『저희는 괜찮아요.

하는 것은 마아가릿의 소리었다.

『머리에 피가 많이 흐르셨는데.

하는 것은 엘렌의 소리였다.

『예가 어디오?

하고 나는 손으로 방바닥을 더듬어 보았다. 방바닥에 깐 것은 마른 나뭇잎인 듯하였다.

『땅광 속이야요. 굴처럼 판 데야요.

하는 것은 엘렌의 말이었다.

나는 뒤통수를 얻어 맞고 쓰러지자, 마차군과 또 호인 하 나를 시켜서 마차 우비로 맞들에를 만들어서 나를 답아 가 지고, 마아가릿과 엘렌을 데리고 길도 없는 수풀속으로 해 질 때까지 걸어서 여기를 왔는데, 거의 다 와서는 수건으로 눈을 동이고 끌고 왔기 때문에 어딘지 모른다 하며, 처음에 는 나 따로 마아가릿, 엘렌 따로 둔 것을 마아가릿과 엘렌 이 내 곁에 함께 있게 아니하면 죽는다고 야단을 해서, 또 눈을 싸매고 여기를 왔단 말과, 끼니때면 밥과 물을 갖다가 준다는데 그때에는 저 굴 아궁이를 막아 놓은 한장문을 연 다고 하는데, 판장문이라야 사람 하나가 기어 들어올 만 밖 에 안하고, 이 굴 속은 엘렌이 앉아서 팔을 들면 굴 천정의 널쭉이 만지어진다고 한다.

『우릴 어떡헌다든?

하는 내 물음에 엘렌은 손으로 내 이마와 코와 입 어염을 만지면서,

『장군이 와야 죽이든지 살리든지 한다고 그래요. 그런데 모두 조선 사람들이야요.

하고 한숨을 쉰다. 아마 그들은 이 의외의 변에 울다가 울 다가 인제는 만사를 단념한 듯이 별로 당황하는 빛도 없고, 내가 정신을 차린 것만 더할 수 없이 기뻐하는 듯이 내 팔 다리도 주무르고 이마도 짚어 주었다. 내 몸에는 좀 열이 있는 모양이요, 차차 정신이 들수록 정수리 께가 쑥쑥 쑤시 기도 하였다.

목이 몹시 마르지마는 물을 찾아야 쓸데 없을 줄을 알므로 참았다. 배도 고팠으나 역시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였 다.

어찌 되는 것인가. 당장 마아가릿과 엘렌이 성하게 곁에 있는 것은 다행하지마는, R의 전재산인 이만원 돈은 다시 찾을 길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루의 희망이 남은 것은,

『다들 조선 사람이야요.

하는 엘렌으 말이었다. 만일 그들이 다들 조선 사람이라 하면 ○○단일 것이요, ○○단이면 혹시 내 이름을 알 사람 이 있을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렇다 하면 벗어날 도리도 있 겠지마는, 손에 돈 한푼 없이 여자 두 사람을 데리고 세상 에 나가서 어떻게 사나? 하는 것이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또 생각하면 내육혈포에 그들이 하나라도 죽었다고 하면, 그들은 필시 내 목숨으로써 대상하러 들 것이다. 나는 장차 총살이 되려는 것인가.

죽거나 살거나 엇 하회를 알고만 싶었다. 밤인지 낮인지, 어찌 되는 셈인지도 모르고 캄캄한 굴속에 갇혀 있는 것은 꽤 고통이었다. 더구나 이따금 마아가릿과 엘렌의 우는 소 리가 들릴 때면 가슴이 터지는 듯이 괴로왔다.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 모르게는 떨어지는 법이 없다 는 말로 두 여자를 위로 하였다. 근심함으로 걱정함으로 무 슨 일이 잘되는 법이 없다는 말도 하였다. 사람이란 어느때 에나 한번은 죽는 것인데, 죽고 살기를 그렇게 괘념할 필요 도 없다는 말도 하였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라는 말도 여러 가지 이야기도 하였 다.

소설에서 본 이야기, 조선에서 옛날부터 내려 오는 이야기, 내가 여기저기서 구경한 이야기들을 하였다. 그리고는 웃기 도 하였다. 내 이 정책이 상당히 효과가 있어서 마아가릿과 엘렌은 위로를 받는 모양이었다.

이러기를 이틀 사흘, 하루 두 때 밥을 먹은 모양인데 그 수효로 따져 보아서 우리는 날을 계산하였다.

그러다가 누구나 졸리면,

『인제들 ㅡ 자죠.

하여 일어났다. 이 밖에는 밤낮과 시간을 분변할 도리가 없는 것 같았다.

비 오는 철은 아니어서 좀 덜하지마는, 굴속이 습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자다가 깨어 보면 추워서몸이 꼬부라지는 듯하였다.

젊은 남녀가 누우면 몸이 마주 닿는 좁은 함정 속에서 끝 없는 밤을 지나니, 성적 충동이 아니 일어날 수가 없었다.

부끄러운 말이지마는 나 자신도 억제하기 어려운 순간을 여 러 번 경험하였고,두 여자도 잠결에 모르고 한 것이라고 보 기에는 너무 의지적으로 나를 껴안는 일이 있었다.

더구나 죽을지 살지 모르는 운명이라는 것이 그들로 하여 금 더욱 이러한 담대함을 보이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 숨이 경각에 있는 세 남녀는 가장 애욕의 지옥에 빠지기 쉬 운 경우였다.

나는 한번은 숨이 막힐 듯함에 놀라서 잠을 깨었다. 어느 몸이 내 가슴 위에 있고 입이 내입에 닿아 있었다. 불같이 뜨거운 그 입김이 내 육체를 태울 듯이 자극하였다.

나는 그의 머리를 정답게 쓸어서 제자리에 누이고 어머니 가 어린 자식에게 하듯이 그의 어깨를 또닥또닥해 주었다.

"Thy will be done"을 수없이 외웠다. 아뜩아뜩해지는 정 신을 수습하여 나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전장에 나간 R을 생 각하였다.

그것은 나를 십자가에 박는 것과 같은 괴로움이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하신 예수의 말씀의 참 뜻 이 알아지는 것 같았다.

나는 아난 종자가 이러한 유혹에 빠졌던 이야기를 한다.

능엄경(能嚴經)은 이것을 두고 설한 것이었다. 만일 일체 법 공의 이치를 깨달았을지댄, 미인의 살도 결국 흙이요, 물인 것을 보는 힘이 있을진댄 이만한 것은 우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도 저도 없는 이십 사오세의 건강한 남녀로는 유 혹을 이기기는 실로 칼로 제 살을 깎는 것보다도 아픈 일이 었다.

그러나 이기고 난 뒤에 얻는 승리의 기쁨! 굴속은 환한 광 명과 하늘의 향기도 차는 것 같았다. 진실로 성자와 같이 마음도 까딱 아니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어니와, 그 래도 그만해도 하고 스스로 위로 하였다.

나는 속은 그렇지 못하면서도 겉으로 성자의 태도를 취하 였다. 이런 경우에는 허위야말로 내가 취할 태도라고 믿었 기 때문이다.

한번은 굴 문이 삐걱 열리며

『이리들 나와!

하는 호령이 들렸다.

『어떡해요?

하고 두 여자는 내게 매달렸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고 나는 두 여자의 머리를 쓸어 주었다.

『울거나 떨거나 창피한 모양을 보이지 말고 태연히 태연 히!

하고 나는 이 두 사람과 영결할 순간이 온 것을 느끼면서 마아가릿과 엘렌의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두 여자도 아라사 식으로 내 이마와 뺨과 입에 수없이 입을 맞추었다. 내 눈 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굴 밖에 기어 나가자마자 나는 뒷짐으로 결박을 받았으나 두 여자는 그냥 걸어서 가기를 허함이 되었다.

오래간만에 빛을 보니 눈을 뜰 수가 없고 눈에는 눈물이 흘렀다. 우리가 끄려 간 곳은 어떤 커다란 나무 밑이었다.

박달인가 잎사귀가 자름하였고, 그 밑에는 유록인가 연둔가 그런 빛깔 나는 군복을 입은 사람이 수십명이 나서 있고, 정면이라 할 만한 곳에 긴 칼을 차고 선 것이 대장인 듯싶 었다.

나를 끌고 가던 군사들은 내 뒤통수를 주먹으로 탁 쳐서 그 대장의 앞에 무릎을 꿇어 앉혔다. 나는 성경에 어느 관 원 앞에 잡혀 갈 때에 무슨 말을 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때 가 되면 성신이 가르치리라 하신 예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가만히 있었다.

『너 이놈!

하고 대장은 심문을 개시하였다.

『○○위해 ○○○○ ○○군을 죽였다지. 네 살을 찢어 젓을 담그고 뼈를 갈아서 가루를 만들어도이 죄를 다 속하 지 못할 줄을 몰라?

그 음성은 꽤 우렁찼다. 나는 이렇게 모욕적 언사로 묻는 데는 대답하지 아니하리라 하고 가만히 먼 데만 바라보고 있었다.

『왜 대답이 없어?

하고 대장은 발을 굴렀다. 그의 풍모는 S참령을 연상시키 었다.

『나는 죄인이 아니니 먼저 나를 얽민 것을 끄르고 점잖은 말로 물으시오. 그러면 나도 할 말이 있소.

하고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대장은 한참이나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내 곁에 지키고 선 군졸을 명하여 나를 결박 지인 줄을 끄르게 하였 다. 나는 일어섰다. 일어서는 길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군을 죽인 것이 아니오. 나는 전장에 나아간 내 친구의 가족과 재산을 맡아 가지고 가는 사람이니까, 그 가족과 재산에 위해를 가하려 하는 자에게는 내 생명이 있 는 동안 저항할 의무가 있소.

T령에 다다랐을 때에 문득 무기를 가진 사람들이 고함을 치고 내달으니, 내가 이러한 때에 쓰랴고 준비하였던 무기 로 저항한 것은 당연한 일이오. 그러므로 나도 도적을 막는 정당 방위를 한 것이오. 결코 ○○군울 해한 것은 아니요, 지금도 여기 서 있는 이 두 여자를 위해서는 내 목숨이 남 은 동안은 손톱으로라도 저항하고 이빨로라도 저항하여서 이 두 여자를 지킬 것이오. 내가 누구를 죽였든지 몇 사람 을 죽였든지 내가 한 일은 정당한 일이오. 또 나라 일이란 신성한 일인데 신성한 일을 신성한 수단으로 할 것이요, 결 코 정당치 못한 수단으로 할 것이 아니라고 믿소. 당신네와 같이 도적의 수단을 쓰는 것은 ○○운동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믿소. 나도 나라 일을 하는 사람이므로 이러한 충 고를 하는 것이니....

하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곁으로서 어떤 사람이 달려 들어 주먹으로 내 입을 치고 무엇이라고 욕설을 하였으나,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나는 알아 듣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의 주먹이 내 입을 쳐서 내 앞니를 부러뜨리고, 연해서 내 따귀와 면상을 쳐서 나로 하여금 혼도케한 까닭 이었다.

이윽고 내가 정신을 차린때에는 나는 어떤 골짜기에 누워 있고, 내 곁에는 마아가릿과 엘렌이 울고 앉았고, 또 군사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마아가릿과 엘렌이 내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였으나, 두 군사는 총을 들 어서 두 여자를 위협하였다. 나는 일어나려 하였으나, 머리 가 어찔어찔하여서 고개를 들기가 어렵고 한편 귀가 윙윙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고막이 터진 것이었다. 나는 내 흰 산동주 청복 앞자락에 피가 엉킨 것을 보고, 내 입술이 부 어서 잘 벌려지지 아니하고 이가 두 개나 부러진 것을 알았 다. 눈도 한쪽 눈은 잘 떠지지 아니하였다.

내 눈이 마아가릿과 엘렌을 돌아 볼 때에 두 여자는 차마 볼 수 없는 듯이 손으로 눈을 가리웠다. 그리고 엘렌은 내 가슴에 엎더져 울었다.

내 머리 속에는 아까 광경이 떠올랐다. 내가 한 말이 떠올 랐다. 나는 그만큼 내가 믿는 바를 똑바로 말할 용기를 가 졌던 것이 기뻤고, 또 이처럼 친구의 부탁에 충실한 것을 만족히 여겼다. 나는 그들이 반드시 나를 총살 할 것을 믿 었다. 내가 목숨을 바치고도 R의 가족과 재산을 보호하지 못한 것은 나로도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염려 말어라.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내가 옳다 고 믿는 길을 걸어.

하고 나는 떨리는 손으로 엘렌으 등을 만져 주었다. 그 등 은 물결치듯이 불릇거렸다.

『말 말어! 그래도 말하면 두 여자는 다른 데로 쫓아 버릴 테야!

하고 군사는 총을 둘러 메어서 위협하였다. 엘렌과 마아가 릿은 내게서 떨어져 물러앉았다.

『가서 이놈 살아 났다고 여쭈어.

하고 한 군사가 다른 한 군사에게 명하였다. 해가 서쪽으 로 기울어지고 서풍인가 싶은 바람이 반쯤 단풍이 든 나뭇 잎을 흔들어 하나씩 둘씩 날렸다. 목이 마르나 물 먹고 싶 다는 말을 하기가 싫었다. 아마 나는 내일 해를 보지 못할 것이다. 오늘 밤 별도 보지 못할 것이다.

내 생애는 아마 오늘로 마칠 것이다ㅡ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손발이 얻어 올라 오는 것과, 개미들이 다리와 등에 스물거리는 것을 감각하면서 다음 순가에 올 것이 무엇이든 지 다 겁 없이 받으리라 하고 있었다.

나는 일찍 압록강에서 배가 파선하여 널쭉을 붙들고 떠내 려 가면서 넘실거리는 흙탕물과 두 언덕의 마른 갈 포기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노래를 생각하던 것을 기억한 다. 사람이란 죽음을 각오만 하면 모든 겁이 다 없어지고 태연하게 되는 것인가 한다. 그러길래로 나 같은 못난이가 이만큼 답대한 마로 하고 또 태연한 심경을 가지고서 죽음 을 기다릴 수가 잇는 것이다. 사람이 누구는 아니 죽나? 살 아 있는 자는 다 죽을 운명에 있으면서도 하루의 목숨을 늘 이려고 구차한 일을 하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이다. 오늘 죽어도 좋다. 금지에 죽어도 좋다 하는마음을 가질 때에 무 슨 걸림은 있고 무슨 두려움은 있으랴.

내가 살아 났다는 기별을 가지고 간 군사가 간 지 얼마 아 니하여 다른 군사 사오인이 구보로 우루 달려 왔다 그중에 한 군사가

『일어나!

하고 나를 향하여 호령하였다.

나는 몸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반쯤 일어나다가 도로 쓰러 졌다. 몸이 말을 듣지 아니하였다.

군사들은 내 겨드랑을 추켜 들어서 나를 일으켰다. 나는 건들먹거리는 머리를 억지로 곧우 세우려 하였으나 마음대 로 되지 아니하였다.

내가 끄려 간 곳은 아까 내가 폭행을 당한 곳이요, 아까 모양으로 장군과 부하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 하여 고개를 바로 하고 눈을 바로 뜨려 하였다. 최후 순간 에 창피한 꼴을 아니 보이려는 노력이었다.

『너는 ○○군을 죽이고 또 ○○군을 모욕하는 언사를 하 였으니, 군법 시행으로 너를 사형에 처할 터이란 말이다.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아니한 네 죄를 아느냐 말야?

나는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지금 너를 총살할 테니, 무슨 소원이 있거든 한 가지만 말을 해, 들어 줄 만한 것이면 들어 줄 테란말이다.

『신성치 못한 행동으로 신성한 일을 더럽히지 말고, 죄없 는 사람을 죽인 죄를 하로라도 빨리 깨달아 뉘우치기를 바 라오. 죄의 값은 죄뿐이니, 저 명명하신 하늘이 내려다 보시 오. 내 소원은 그것뿐이오.

하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이 말 을 할 용기를 주시고 이때에 태연하게 하나님과 예수를 생 각하게 하신 은혜를 고맙게 생각하였다.

내 말에 장군의 눈빛과 낮 근육이 움직이는 듯하였다.

『집행!

하는 호령이 그 장군의 입에서 내리자, 나는 아까 모양으 로 또 어디로 끌려 갔다. 나는 내 앞에 새로 파 놓은 구덩 이를 보았다. 축축하고 노르스름한 새 흙을 보았다.

군사들은 나를 그 구덩이 앞에 세운 말뚝에 얽어 매고 흰 수건으로 내 눈을 싸메었다. 나는 마아가릿과 엘렌이 내 곁 으로 달려 오려다가 군사들에게 붙들려서 몸부림 하고 우는 것을 보았으나, 인제는 눈을 싸매었기 때문에 그 소리만이 들렸다. 그 우짖는 소리는 내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그 소 리가 차차 멀어 가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총을 맞아서 피 를 흘리고 거꾸러지는 양을 그들에게 아니 보이게 해 주는 것만 고마왔다.

군사들이 걸어 오는 발자국 소리와, 다 와서 서는 소리와 총을 내려 땅에 세우는 듯한 소리도 들리고, 마른 잎사귀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 조선에서는 들어 보지 못하 던 이상한 새소리도 들렸다.

나는 일. 로 전쟁 때에 일본 군대가 어떤 사람을 총살하는 것을 구경한 기억이 있다. 그때에 그 죽는 사람이 소리를 질러 욕설을 퍼붓고 몸을 비틀며 울던 것을 생각하고, 그러 한 추태를 보이지 아니한 내 마음의 태도를 고맙게 생각하 였다.

이제나 총소리나 나는가, 저제나 총소리가 나는가. 탕하고 일제 사격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내 가슴에서 빨갛게 피가 흘러 옷을 적실 것을 생각하면, 그것이 한번 보고 싶 은 아름다운 광경일 것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때때로 ㅡ 일 초의 몇 만분지 일이라고 할 만한 짧 은 시간에 살고 싶은 애착과, 죽기 싫은 두려움과, 하고 싶 던 일을 못하고 가는 섭섭함과, 시들하고 고달픈 세상을 떠 나는 것이 시원하다 함과,아내 생각, K학교 생각, 마아가릿 과 엘렌 생각, 동경 시대의 옛 기억인 여러 동무들 이며 S 의생각, 이러한 생각들이 얼핏얼핏 번갈아 지나갔다.

총알이 내 가슴에 박힐 때에 그 감각이 어떠할까? 그 감각 에서부터 아주 절명되기까지에 어떠한 고통과 환상이 일어 날 것인가? 죽은 뒤의 존재는 어떠한가, 나는 이 순간까지 성경을 믿노라고 하여 왔느나, 죽은 뒤의 문제에 대하여는 힘써 생각해 본 일이 적음을 깨달았다.

예수의 부활과 승천, 믿는 자에게 약속함이 된 천당과 지 옥, 「요한 묵시록」에 그려진 천당으 장엄 화려한 모든 광 경, 단테와 밀턴의 시에서 본 지옥의 음산하고 처참한 모든 광경, 그런 것들을 다만 시적으로 비유적으로 생각 하여 왔 을 뿐이었음을 깨달았다.

마로나 생각으로나 나는 죽음에 대해서 두려움이 없는 것 으로 자처하여 왔지마는, 그것은 일종으 허영에 지나지 아 니함을 깨달았다.

죽음이 내게 이렇게 빨리 오리라고는 도무지 예기하지 않 았다. 모든 산 자는 다 죽는다는 이치를 모름이 아니었으나, 내게만은 좀체로 죽음이 오지 아니하리라고 믿던 어리석음 을 나는 깨달았다.

죽음의 저쪽은 무엇인가 할 때에 나는 새삼스럽게 당황하 였다. 도무지 준비 없는 일을 당하는 것이었다. 무엇인지 모 르는 멀건 허공, 또는 어득어득한 허공, 또는 시퍼런 불길로 찬 허공, 또는 검푸른 물, 깊이도 모르는 바다, 이러한 알지 못하는 무시무시한 벼루 위에 나는 섰는 것이다. 내가 절명 하면 차 넣을 내 발꿈치에 있는 구덩이, 그것이 내가 갈 천 지가 아닌 것 같았다.

금방 탕 소리가 날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벌써 나는 죽음 을 생각할 새가 없이 죽음의 무시무시한 나라로 곤두박질을 쳐서 떨어지는 것이다. 나는 마음에 심히 바쁨을 느꼈다.

〈죽음이 무엇인가. 죽은 뒤에도 생명이 있는가 없는가.〉 만일 죽은 뒤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하면 이만 다행이 없 을 것 같았다. 그러나 생명이 계속된다고 하면? 그것은 무 시무시한 일이었다.

내 피 속에 잠자던 불교으 생각들도 일어났다. 축생, 아귀, 지옥, 인간, 천상 ㅡ 육도으 윤희, 아아, 그러나 나는 이러한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서서 겨냥!

하는 구령이 들렸다.

『탄알 잿.

하는 구령이 들렸다.

여러 총뿌리들이 나를 향하고 있는 양이 보이는 듯하였다.

째각째가그 탄알 재는 소리가 분명히 들렸다. 아까 고막이 터진 귀는 더욱 윙윙거리고 내 심장은 마치 마지막 기운을 다하여 달리는 듯이 쿵쿵거렸다. 어디서 마아가릿과 엘렌의 날카롭게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입술 터진 것 이 쿡쿡 쑤셨다.

〈하나님, 나는 모든 것을 당신께 맡깁니다. 당신께서어련 히 잘 알아하시리까. 이 우주간에 당신의 뜻에서 추호나 어그러지는 일인들 일어날 수 있사오리까.

모든 것을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고 나는 싸매인 눈을 가만히 감았다.

이렇게 기도를 드리고 나서 마음은 평정을 회복할 수가 있 었다. 나는 빙그레 웃을 마음의 여유까지 얻었다. 그러자 나 는 졸리는 듯한 감각을 얻었다. 마치 지이치고 지이친, 온종 일 길에 주막 아랫목에 등을 붙인 듯한 편안 함이 내 몸을 싸는 것 같았다. 인제는 총뿌리들이 나를 향하고 있거나, 말 거나 여러 손가락들이 방아쇠를 당기거나 말거나, 탄알이 내 가슴을 뚫거나 말거나 다 내게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 듯하였다. 나는 졸리는 눈과 입으로 한번 더 빙그레 웃었다.

이때에,

『사격!

하는 구령이 들렸다. 「오, 인제로구나」하고 나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마치 나를 쏘는 총소리를 하나도 놓치지 아 니하고 들으려는 듯이.

『또또딱딱』

하는 소리가 분명히 들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흠칫 하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탄알을 맞은 데는 있는가 싶지 아 니하였다. 또 어디나 다 탄알을 맞은 것도 같았다.

『사격 그쳣!

하는 구렁이 들렷다.

나는 웬일인가 하였다.

누가 내 곁으로 걸어 오는 기척이 있더니, 내 눈을 가리운 수건을 굴렀다. 나는 처음 내 눈앞에 총를 세우고 늘어 선 군사들을 보고 다음에,

『선생님!

하고 나서는 사람을 보았다.

나는 놀랐다. 그는 내가 K학교에서 가르친 학생이다. ()이라는 그의 이름까지도 내가 지어 준 사람이다. 그는 나이는 나보다 이삼년이나 위였으나 나를 사랑하고 존경하 여서 이름까지도 널더러 지어 달란 사람이다. 공부는 잘하 는 축이 아니었으나, 마음이 순실하고 열정과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졸업하는 길로 표연히 북으로 달아난 것이었다. 그도 군복을 입었다. 나는 울고 싶게 반가왔다.

웅은 내 결박을 끄르면서,

『제가 한 십여 일 장백현에를 갔다가 금방 돌아 와 보니 까 이 일이 있단 말씀이지요. 어째 마음이 급해서 어저께는 발길을 걸어서 왔습니다. 하마더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 래 사령관께도 그 말씀을 했더니, 다 무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령관 비서로 부관이야요.

이렇게 말하고 웅군은 나를 데리고 사려관에게로 갔다.

이렇게 나는 의외에 죽을 고비에 빠졌다가 또 의외에 죽을 액을 면하였다.

내가 살아 돌아 온 것을 보고 마아가릿과 엘렌은 내 목에 매달려서 한참이나 떨어지지 아니하고 울었다. 나도 울었다.

그들은 수없이 나를 안았다. 그리고 남들이 보는 것도 꺼리 지 아니하고 내 머리며얼굴이며 손에 수없이 입을 맞추었 다. 내 옷에 피가 묻은 것이나, 내 이빨이 부러지고 또 입술 이 부어 오른 것이나, 눈통이 시퍼렇게 부어서 눈이 짝짝이가 된 것이나 다 잊어 버린 것 같았다.

나는 어느 불 때인 방에 누임을 받았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었다. 잠이 든 것인지 기절을 한 것인지 모르나 내가 다 시 정신을 차린 때에는 어느 날 아침이었다.

며칠을 정양한 뒤에 나는이러날 수가 있었으나, 앞니가 부 러져서 말이 새고, 눈 부은 것이 용이히 내리지를 아니하였 다. 그래도 언제까지나 여기 있을 수가 없어서 나는 웅군을 보고 떠나게 해달라고 재촉을 하였다.

웅은 ○○ 운동자간에 도무지 통일이 되지 아니하고 서로 알력하고 저주한다는 것을 한탄하고, 날더러 여기 머물러서 통일의 업을 같이 하자는 말을 하였으나, 나는 우리네의 기 초 사업은 먼저 저를 고쳐서 새 사람이 됨에 있다.

마음의 악습과 몸의 악습을 버리고 저도 참된 사람이 되 고, 남도 참된 사람이 되게 함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 업은 넓은 의미으 교육하는 데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ㅡ 이 러한 의견을 말하였다. 그러나 직접 행동을 목표로 하는 그 들에게는 내 의견은 통치 아니하였다.

그들은 내 의견을 너무 점진적이라고 불만히 여겼으나, 이 것은 치타에서 하던 잡지에도 누구나 쓴 의견이기 때문에 잘못된 내 고집으로 그들은 돌려 버리고 마는 모양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주장한 것은 동포들이 그 땅에서 뿌리를 박 고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번창하기를 도모할 것이니, 이 리해야만 영구한 실력이 생기는 것이지 자꾸 돈을 거두고 생활을 불안케 하는 것은 옳지 아니한 일이니, 이것은 백만 동포의 생명의 뿌리를 파는 것과 같아서 옛날 탐관 오리의 학정과 그 결과에 있어서 다름이 없다고 극언하였다.

총뿌리에 섰던 나, 무덤까지 다 파놓았던 나는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오직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힘있게 말하는 것 밖에 없었다. 나는 이 앞에 남은 목숨을 이렇게 옳은 말을하는데 쓰겠다고 결심하였다. 나는 부려진 앞니를 혀끝으로 더듬을 때에 더욱 이러한 결심을 굳게 하였다.

『네 몸을 죽이고 그 이상 더할 수 없는 자를 두려워 말지 어다. 네 몸을 죽인 뒤에 네 혼을 지옥에넣을 힘이 있는 자 를 두려워하라. 진실로 너희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할지어 다.

하는 예수의 말씀을 나는 이때처럼 절실히 깨달은 일이 없 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었다.

〈사람은 아무 때에라도 한번은 죽는 것이 아니냐. 무엇이 아까와서 제가 옳다고 믿는 바를 행하지 못하고 꾸지레하게 살랴. 옥으로 부서지자는 말과 같이 옥과 같이 깨끗하게 살 대와 같이 똑바르게 살아 자가. 그러다가 저 할 일을 다한 꽃이 떨어지듯이 떨어지자.〉 나는 이러한 정신으로 그들에게 기탄 없는 말을 하였다.

『다들 어서 가서 농사를 지으시오. 동포들에게 해를 끼치 는 일을 마시오. 하와이에 있는 동포들을 못 보시오? 그네 들은 거기 간지 삼십여 년에 무엇을 합네 무엇을 합네 하여 이른바 지도자들에게 돈을 다 빼앗기고, 그 돈은 모두 쓸데 없는 일에 소모되고 지금은 하나 이천원 재산을 지닌 사람 도 없다고 아니하오? 만일 그들에게 근검 저축의 길을 장려 하였더면, 지금은 수십만 수만원의 재산을 가져서 하와이에 서 상당한 기초를 얻었을 것이요. 여러분도 지금 쓸데 없는 일, 되지 아니할 이로 재만요. 여러분도 지금 쓸데 없는 일, 되지 아니할 일로 재만 백만 동포의 생활의 근저를 파젖히 는 공작을 하고 있으니 즉시로 이것을 중지하시오.

나의 이 말은 무론 그들의 귀에 들어 가지 아니하였다. 설 사 귀에 들어 가더라도 그들은 이 진리를 받으려 하지 아니 하였다.

나는 치타에서도,

『유명한 궐년들이 철련 말이나 남의 집 머슴살이로 공연 히 세월을 보내지 말고 어서 조선으로 돌아 가 공부를 하거 나, 농사를 하거나, 장사를 하거나, 아이들 야학을 가르치거 나 하라. 그대들이 비분 강개한 마음을 품고 시베리아로 방 황하는 것이 시적일는지 모르거니와, 아무 실제적 이익은 없는 것이니, 이것은 민족적으로 보아서 큰 손실이다.

이러한 말을 잡지에 썼다가 불평한 청년의 습격을 받은 일 이 있었다.

나도 이러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경우에,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왜 그런 고 하면 지혜로운 사람은「그때」가 아니면 말하지 아니하 기 때문이다.

웅군은 내가 이렇게 너무도 기탄 없이 말하는 것을 퍽 어 려워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만 불쾌한 기색만 보일 뿐이요, 나를 때리거나 죽일 생각은 아니하였다. 죽기 를 겁내지 아니하고 대드는 내가 무시무시하였든지 모른다.

나는 돈 이만 삼천원 중에서겨우 천원을 찾고 그 나머지는 빼앗기고 말았다. 천원도 던지고 말고 싶었으나, 두 여자를 데리고 가는 것을 생각할 때에 그것이라도 받아 넣지 아니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내 일생 중에 한 큰 사건은 지나가고 나는 아직도 퍼렇게 부은 눈을 가지고 마아가릿과 엘렌을 데리고 요정을 향하여서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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