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3

이광수 그의 자서전 2 소년시대


2] 소년시대

K는 내가 학비를 잃어 버렸다는 말을 듣더니, 두말 없이 내 방으로 뛰어 내려와 P더러 내 돈을 내어 주라 하고 그대 로 안 들으매 P를 타고 앉아 실컷 두들겨 주고 마침내 그 돈 이십원을 찾아 내었다. 이것은 P가 본래 손버릇이 나쁜 줄을 같이 있는 동무들이 다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P를 위하여 대단히 마음이 괴로와서 P를 소바집으로 끌고 가서 소바를 대접하고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나는 누가 무엇을 달라든지 무엇을 시키든지 거절 아니하 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대단히 바빴다. 십여 명 M학교에 있 는 조선 학생들의 작문이란 모조리 내가 지었다. 그것은 내 가 어락의 힘이 나은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큰일을 할 기회가 없는 것을 매양 한탄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밤 같은 때에 갈을 걸어 가다가 떨고 지나가는 거지를 보고 외투를 벗어 준 일도 있고, 어떤 서양 사람 거지에게는 스웨터와 주머니에 있는 돈을 온통 털어 주고 내복만 입고 집에 돌아 와서 여러 사람의 의심을 받은 일도 있었다. 바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신 예수의 말씀을 따라서 이러한 말은 아무에게도 일체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생활이 한 일 년 계속되었을 때에 Y라고 하는 어느 대학에 다니는 학생의 소개로 어떤 조선 여자 하나를 만났 다. Y라는 대학생은 특별히 나를 사랑하고 칭찬하는 사 람이었다. 내게 소개한 S라는 여자는 그와 척분이 있는 여 자로서 그의 보호 밑에 동경에 와 있었다. 그때에 내 생각 에는 조선 여자로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는 처음 보는 것 같 았다. S는 얼굴이 희고 머리가 까맣게 청초하다는 인사을 주는 여자였다. 무척 쌀쌀해 보였으나, 맑고 빛나는 그 눈에 많은 총명과 아울러 자비심이 있는 거 같았다. 나는 내 기 억에 있는 고모들, 누이들, 기타 모든 여자들을 회상하여 보 아도 S와 같이 높은 기품을 찾을 수가 없는 것 같았다. 나 는 S와 초면 인사를 할 때에 낯이 화끈함을 깨달았으니, 필 시 내 낯이 붉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에 일어나는 생 각은 저이가 내 누이였으면 하는 것이었다. 젊은 여성을 누 이로 보는 생각은 성경대로 행한다고 작정한 이래로 줄곧 계속하는 것이어서 지금에 와서는 아주 한 습관이 되어 버 렸다. S와 만난 뒤에 Y씨는 S에게 대한 내 감상을 물었다.

나는 대단히 청초하고 존경할 만한 여자라고 대답하였다. Y 씨는 자기 하숙에 나를 데리고 가서 「스끼야끼」를 먹으면 서,

『개가 내 내종맨데, 저의 아버지는 돌아가 고조부님이 계 셔. 딸 하나뿐이고 아들이 없어 날더러 동경서 사위감을 골 라 달라는데.

하고는 빙그레 웃었다.

그후부터 내 마음에서 S의 모양이 떠나지를 아니하였다.

나는 내 생각이 누이라는 지경을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많 이 애를 썼다. 독자는 내가 일찍 박 대령 집에 있을 때에 박 대령의 명령으로 그 딸 예옥을 누나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내 나이 열 두 살에서 열 세 살, 지금은 내 나이 열 일곱이다. 그만큼 가슴에 울려 오는 이성의 발자국이 다를 것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거의 한 순간도 S를 잊을 수가 없었고, 또 날이 갈수록 그 그리 움이 더 간절하게 되었다. 그러나 곧 여름 방학이 되었기 때문에 다시 S를 만날 기회도 없이 동경을 떠나서 조선으로 돌아 오게 되었다. 동경서 얼마를 오다가 나는 차에 S Y 와 함께 타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Y는 나더러 짐을 가지 고 그곁으로 오라고 하였으나, 나는 그리 가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죽이고 내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연락선을 탈 때에 도 나는 아무쪼록 두 사람에서 멀리 떨어져 자리를 잡았는 데, 이렇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위신을 보전하는 것이 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이 한없이 설렌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나는 S와 대면하는 기회에도 아주 심상한 표정을 꾸미느라고 애를 썼다.

이때에 내 조부는 팔아 먹을 것을 다 팔아 먹고 서조모도 돌아 가소남의 집 사라에서 아이들에게 하늘 천 따지를 가 르치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된 줄까지는 모르고 그래도 집 한간은 쓰고 있으리라고 믿고 있었었다. 조부의 떨리는 글 씨로 쓴 편지에는,

『잘 있으니 염려 말아. 네 누이도 잘 있다. 몸 조심하고 공부 잘하여라.

이러한 말이 구식 한문체로 씌어 있을 뿐이요, 이렇게 까 지 못 살게 되었단 말은 한마디도 내게 알리우지 않았다.

남의 집 사랑에 가서 식객의 신세가 되어있는 조부의 앞에 내가 절을 할 때에는, 조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좋던 얼 굴에는 검은 버섯이 많이 돋고, 위엄 있기로 이름이 있어서 번개같이 번쩍거린다고 하던 그의 눈도 마치 구름에 덮인 것같이 빛이 없었다. 나는 늙은 조부의 이러한 모앙을 복 모든 야심과 욕망이 다스러지고 다만 단 한 간 집이라도 내 집이라는 것을 잡고 조부를 뫼시고 있고 싶었다. 조부뿐 아 니라, 인제는 열 두살이나 된 누이 애경이가 남의 집 식구 들 틈에 눈치밥을 먹고 있는 것이 몹시 가여워서 나는 누이 를 데리고 뒷산에 올라 가서 서조모가 돌아 가신 일이며, 긴고갯집을 팔고 이 집으로 오게 되던 일이며, 이 집에 와 서 사는 모양을 묻고,

『이 집에서 너 귀애 주시던?

『그저 그렇지.

하는 것을 듣고는 걷잡을 수 없이 울고 말았다.

나는 중학교만 졸업하면 조선에 돌아 와 직업을 얻어서 늙 은 조부를 봉양하고 어린 누이를 공부를 시켜서 편안히 살 수 있는 집에 시집을 보내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형편 같아서는 앞으로 이태 동안을 더 기다릴 수도 없 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열 일곱 살 먹은 중학교 삼 학년생 으로는 아무리 그때 세상이라도 직업을 구할 길이 없었다.

나는 아찌할 바를 모르고 이곳 저곳으로 친척과 아는 집을 찾아 돌아 다녔다. 조부가 붙여 있는 집에는 하루를 묵기가 고통이기 때문이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동경 유학생이란 것은 촌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족하였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이틀 사흘은 눈치밥을 아니 먹고도 지낼 수가 있었다.

땅이 둥글다는 이야기며, 화륜선, 화륜거 이야기며, 번갯불 로 등불을 켜는 이야기며, 머리를 깎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 며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함으로 무슨 큰 문화 운동이나 하 는 듯한 자존심을 가지고 돌아 다녔다. 사람들은 내 말을 매우 재미 있게 듣는 모양이었으나, 예수의 관한 말이 나면 다들 지색 팔색으로 반대하는 것이었다. 나도 우리 집에 〈척사윤음〉(斥奢輪音)이라는 책이 있어서 그것을 읽은 기 억이 있거니와, 예수교가 사특한 가르침이라는 인상은 내 친척 되는 계급의 머리 속에 대단히 깊이 박힌 모양이었다.

그래서 예수교나 동학이나는 어리석고 천한 백성들이나 하 는 짓으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나는 친척을 찾아 다니는 길에 박 대령 집을 찾아 갔다.

박 대령은 벌써 돌아 가고 그 부인과 딸 예옥이와 단 두 식 구가 그마우라고 하는 바닷가 산골짜기 조그마한 초가집에 사는 것을 발견하였다. 사년만에 찾아온 나를, 더구나 양복 입은 나를 그들은 얼른 알아 보지 못하였다. 사모님은 변상 한 듯이 바스러지고 머리를 쪽진 예옥은 몸집은 커졌으나 얼굴에는 옛날의 순진한 빛이 스러지고 산전 수전 다 격은 여편네와 같은 것이 슬펐다. 내가 누군지 알아 본 사모님은 절하는 내어깨를 붙들고 울었다.

나중에 듣건댄, 이 용구가 일진회를 끌고 선언서를 발표하 였을 때에 박 대령은 분연히 반대하고 일어나서 싸우려다가 헌병대에 붙들려 거문도로 귀양을 가서 거기서 죽고, 한푼 유산도 없는 사모님은 예옥을 데리고 헤매다가 할 수 없이 운현이 녀석을 사위로 맞았으나 운현이는 현병 보조원이 된 것을 큰 출세로나 알아서 읍내에서 첩치가를 하고 예옥이를 돌아 보지 않는 것은 벌써 이태가 넘는다고 한다. 예옥이와 살림을 하는 동안에도 운현이는 나를 문제로 삼아 가지고는 예옥을 볶고, 술이나 취한 떼에는 때리기까지도 여러 번 하 여서 풍파가 끊인 날이 없었다고 하는데, 어머니가 이런 이 야기를 하는 동안 예옥이는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우는 얼 굴에서 나는 옛날 예옥을 찾을 수가 있었다.

방 한 간, 부엌 한 간인 예옥이 집. 사모님의 이야기를 듣 기에 날이 다저문 때에 나는 그곳을 떠나려 하였으나 사모 님의 굳이 붙들었다.

『그게 웬 소리냐. 아무리 우리가 못 살게 됐기루.

하고 묵어 가라는 것이었다. 그날 밤에 나는 이러한 이야 기를 들었다. 박 대령이 거문도에서 세상을 떠날 때에 거기 따라 가 있던 서 접주에게 한 유일한 유언은 내가 돌아 오 기를 기다려서 예옥의 남편을 삼게 하라고 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 것을.

하고 사모님은 내 손을 잡으면서.

『그러니 네가 언제 올지 모르고 또 모녀가 어디 가 의접 할 곳은 없고, 그런데 운현이 녀석이 날마다와서 조른단 말 이지. 그래 저는 싫다는 것을 어리석은 어미가 우겨서 그만 혼인을 해버렸구나. 내가 어리석은 년이지. 남편의 유언을 어기고 하나 밖에 없는 딸자식의 일생을 망쳐 놨구나. 그러 기루 운현이 녀석두 사람이지 설마 이럴줄이야 알았니? 인 제는 영 발길두 안하는구나. 그런몹쓸 놈이 어디 있니. 하나 님이 내려다 보시지. 그놈에게 앙화가 안 내려?

나는 이튿날 읍내로 들어가서 운현이를 찾았다. 나는 운현 의 집에 가기 전에 먼저 읍내에서 수소문을 해보았다. 운현 은 글씨를 잘 쓰고 일본말을 잘하기 때문에 헌병대에서 세 력이 있고, 민간에서는 대패라는 별명을 얻어서 몹쓸 놈으 로 소문이 높다고 한다. 대패라는 것은 그 얼굴이 긴데서 온 별명이겠지마는, 또 닥치는 대로 깎아 먹는 뜻이라고 한 다. 이러한 세력을 보고 막()이라고 내 조부가 별명을 지 은 이 호장이라는 아전이 운현이를 손자 사위를 삼아서 운 현이는 이 호장 집 주인 모양으로 거드럭거리고 산다는 말 을 들었다. 이 호장은 풍신 좋고 말 잘하고 그러면서도 간 사하기가 짝이 없어 원이 오는 대로 손에 놓고 주무르고 돈 있는 백성들을 잡아 들이고는 청을 받고 놓아 주고, 이리하 여 수천석 재산을 모은 사람인데, 소위 양반이라는 패에는 사갈 같이 미워하지마는, 옛날과 달라서 어찌할 수 없다고 한탄하는 말을 나도 어려서들은 적이 있고, 내 조부가 그놈 은 쇠를 먹기 좋아하니, 쇠먹는 벌러지는 막이라, 그 놈은 막이라고 한 뒤부터는 이 호장을 막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이만한 예비 지식을 가지고 나는 운현의 집을 찾았다. 내 가 찾아 갔을 때에는 그는 마침 몸살이 났다고 집에 누워 있었다. 내 명함을 보고 운현은 풀대님으로 나와서 반갑게 맞아서 내 손을 끌고 제 방으로 들어 갔다. 그의 행동에는 내게 대하여 적의를 가진 빛은 없었다.

『아이, 이거 얼마만이야! 왔단 말을 들었지.

이런 말들이 모두 나를 옛 친구로 반갑게 맞는다는 뜻을 보였다. 방에는 장이며 금침이며 모두 신부의 방인 것을 표 시하였다. 화문석 돗자리 위에 깨끗한 요를 깔고 그 위에 또 돗자리를 깔고 모시 겹이불을 밀어 놓은 것이라든지, 시 골서는 상당히 사치한 생활이었다. 다만 벽에 걸린 땀밴 누 런 복장과 두 뼘 되는 칼이 이 호화로운 환경에는 어울리지 아니하였다.

『여보, 여보.

하고 부르는 소리에 응하여 지게문 밖에 와서 반쯤 몸을 가리우고 선 이는 모시분홍 치마를 입은 열 육칠 세나 되는 새악시였다.

운현은,

『이리 들어 오우. 이이는 내아이 적 친구야. 남궁 석씨라 구, 지금 동경 유학하는데 나와는 형제 같은 이란말이야. 인 사해요.

하고 나를 향하여,

『내 아내야.

하는 말을 대단히 큰 소리로 외치는 듯이 선언하였다.

젊은 부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숙이고 방으로 들 어왔다. 나는 이찌할 줄 모르는 감정을 가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또 미처 마음을 준비할 새도 없이 그 부인의 절에 대하여 마주 절을 하였다. 그 부인은 이런 집 딸에게서 흔 히 보는 모양으로 높은 맛은 부족하나 꽤 아름다운 여자였 다.

나는 그 젊은 부인이 마루에 앉아서 떠나자 않는 기색을 보았기 때문에 도무지 예옥의 말을 내일 기회를 얻지 못하 였다. 그러다가 주인이 나 대접할 것을 준비하라는 말을 그 아내에게 해서 젊은 부인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 지는 것을 보고 나는 이 기회를 잃지 아니하려고,

『여보게, 자네 예옥이 누나는 어찌하려나?

하고 담판을 개시하였다.

『이사람 그런 소리 말구 우리 오늘 하루 술이나 먹구 유 쾌하게 놀자구.

운현은 고개와 손을 함께 내저었다.

『글쎄, 자네네 가간사니까 내가 할 말이 아니지마는, 어제 께 사모님을 뵈러 갔더니 우시고 말씀을 하신단 말야. 세상 에 처첩하는 사람이 한둘이겠나마는 자네나 내나 은혜를 잊 어서야 쓰겠나. 가끔 돌아 보고 양식이라도 대 드려야지.

하는 내말도 운현을 움직이는 것 같지 아니하였다. 운현은 다만 예옥을 버리는 것도 아니요. 예옥이가 개가하지 않는 동안 양식은 대어 줄 것을 말하고는 이 문제에 관하여 더 말하기를 원치 않는 표정을 보았다. 그리고 내 화둘를 돌리 려는 듯이 문득 날더러,

『여보게 석이, 자네도 인제공부 고만하고 벼슬이나 해보 지. 조부장도 연로하신데 돌아 가시기 전에 좀 봉양을 해야 안하나?

하고 도리어 나를 책망하는 어조였다. 이날에는 나는 고개 가 수그러지지 아니할 수 없었다. 제 늙은 할애비와 어린 동생을 남의 집으로 굴리면서 운현이더러 조강지처를 돌아 보라는 권고를 할 면목도 없을 것이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방바닥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러나 불쌍한 예옥 의 모양이 눈에서 떨어지지를 아니하였다.

『이거 봐. 지금헌병대에서 통역생을 구하는데 보조원으로 월급이 구원. 통원생 수당이 육원. 한 달에 십 오원이란 말 이야. 게다가 편지까지 쓸 줄 알면 삼원를 더 준다거든. 그 러면 월급이 심 팔원이 아니냐. 십 팔원이면 자네네 세 식 구가 먹고도 한 달에 은 남을 것 아닌가? 자네 같으면 이 세 가지 월급을 다 받을 수가 있을 것이야. 분대장이 자네 이름을 알아요. 또 내 말이라면 믿어 주거든. 나도 실상 외 로와 어디 말 할 친구나 있나. 어때? 어디 그래 보지?

대신을 희망하는 날더러 헌병 보조원이 되라는 것은 큰 욕 인 것 같아서 불쾌하였지마는, 집 사정을 보면 십 팔원 월 급이라는 말이 내귀를 솔깃하게 하지 아니함도 아니었다.

사실상 십원만 매삭 생기는 데가 있다 하면 학교를 그만 두 고라도 살림을 시작하려고 하던 터이 아니냐. 내가 대답이 없음을 보고 운현은 재차,

『그럼 그것은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고. 또 한가지 내 헐 말이 있네. 그렇지 않아도 자네가 동경 가기 전에 한번 만 날 양으로 자네가 있는 곳을 찾던 길이야. 무슨 말인고 하 니, 내 처제가 있는데 내 처조부께서 자네를 사위를 삼고 싶다구 말씀한단 말야. 그런데 무엇을 꺼리는고 하나, 자네 조부께서 안들으실 것 같거든. 예전 같으면야 될 말인가. 그 런 소리 했다가 볼기 맞지 않겠나? 그러나 지금세상에야 양 반 상놈이 어디 있느냐 말야. 그래서 내가 처조부 보고 장 담을 했네. 자네를 만나기만 하면 꼭 허락을 받는다고. 어떤 가? 장가나 들구, 통역생이나 되구, 남 부러울 것 없지 않은 가? 또 내 처제 몫으로 볏백이나 갈 걸세.

이런 소리까지 하였다. 나는 운현의 이 말에는 거의 본능 적으로 비위가 뒤집혔다. 호장의 사위가 되라는 것은 헌병 보조원 되라는 것보다 좀더 모욕인 것 같았다. 더구나 운현 의 첩 동서라는 것을 생각 하면 더 견딜 수가 없었다. 만일 예수의 가르치심이 사람에는 높고 낮음이 없고 다 평등한 형제라고 하시지 아니하였던들 나는 낮에 핏대를 돋혀 가지 고 운현에게 대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만히 반성할 때에 내 조부 남궁 석 생원과 이 호장과 다를것이 무엇이 냐. 이호장의 손녀가 내 아내가 되기에 부족할 이유가 무엇 이냐 하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렇지마는 이것은 이론뿐이요, 내 감정은 아무리 하여도 호장의 집에 장가 든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 는,

『고마워. 자네 호의는 내가 잘 아네. 그렇지만 나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또 공부하는 몸이니까 장가 들 생각은 없 어.

하고 흥미 없는 대답을 하였다.

내 흥미 없는 대답이 운현을 불쾌하게 한 듯하였다. 그것 은 운현도 박 대령 집에 나와 같이 있을 때에 제 문벌이 내 것만 못한 것을 고깝게 생각한 때가 여러 번 있으므로 오늘 내 태도도자기에게 대한 멸시로 생각할 만도한 일이다. 나 는 운현이가 호장이나 만나 보고 가라는 말도 거절하고, 왔 던 목적인 예옥의 말도 충분히 못하고 공연히 마음만 설뗑 하게 되어 가지고 이 집에서 나왔다.

부끄러운 말이지마는, 그후 며칠 동안 나는 운현의 말을 들었던 편이 좋지 아니할까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해 보았다. 동경 학교 마당에 있을 때와 달라서, 고향에 돌아 와 보니, 단단한 현실이 말랑말랑한 내 어린 꿈을 형적도 없이 부서 버리고 말았다. 인류를 건진다는 높은 이상이나, 나라 일을 한다는 빛나는 결심도 악착한이 현실 속에서는 해를 본 장마 버섯같이 맥없이 스리져 버리는 것 같았다.

월급 십 팔원, 부자집 딸, 이런 것은 야비하다고 웃어 버리 기에는 현실 사회에서는 너무나 가치가 컸다.

동경 있을 때 같으면 코웃음 거리도 아니 될 조그마한 사 실이 나로 하여금 비틀거리게 하는 큰 힘이 된것이다. 내가 내 조부를 보고 이 호장 문제를 웃음 거리 삼아서 말한 것 은 십분지 칠쯤은 조부의 의향을 떠보려는 것이었다.

『뮛이 어째? 저런 죽일 놈이 있나。아무리 세상이 거꾸로 됐기로서니 대대로 하정배하던 놈이 내 집과 혼인을 하자 고? 그래 너는 가만히 듣고만 왔어?

하고 호령호령할 때에는 나는 가슴이 뭉클하던 것이 쑥 내 려 가는 것 같았다。그러나 다음 순간에 조부의 얼굴에는 실심한 빛이 있었다。큰소리로 호령하던 시절이 아닌 것과 자기의 신세가 어떻게 말 아님을 생각함일 것이다。 이때에 안에서 나오는 저녁상아아, 그것은 도저히 노인 이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더구나 치아가 하나도 아니 남 은 조부는 오이 쪽이나 무우쪽이나 우거지는 씹을 길이 없 다。십여 년 전부터도 김장을 할 때에는 조부를 위해서는 무를 삶아서 넣었고, 서조모가 생 존하였을 때에는 치아가 없는 조부의 식성을 고려하여서 음 식을 만들었다。그러나 이 한 뼘씩 되는 이름이 열무 김치 지 쇠디쇤 무줄거리와 또 무잎사귀 데쳐서 간장을 찔끔 친 것, 이것은 이가 튼튼한 사람이라도 씹기가 힘이 들 것같았 다。 조부는 물을 말아서 김치 국물해서 밥을 자시고 있었다。 건더기는 애시에 입에 넣을 생각도 아니하는 모양이 었다。 나는 내 살을 베어 내어서라도 국 한 그릇을 끓여 드리고 싶었다。나는 운현이 말대로 헌병 보조원이 되어 서 십 팔 원 월급을 받아 가지고 늙은 조부 공양을 해볼까 하고 그날 밤은 잠을 아니 자면서 생각해 보았다。 이튿날 나는 오십여 리 길을 걸어서 내 삼종 집에를 갔 다。이 집은 내 어릴 적의 낙원이지마는, 이번 길은 그 낙 원 맛을 보려고 간 것은 아니었다。일생에 처음 현실적인 금전 문제를 가지고 간 것이다。 이날 밤에 나는 재당숙이 혼자 사랑에 있는 틈을 타서 내 가 금후 이년이면 중학교를 졸업할 터이니 그런 뒤면 월급 생활을 할 수 있으니, 그동안 조부와 누이를 먹여 달란 말 을 하고, 내가 월급을 받게 되면 이태 동안 두 식구에게 준 생활비를 갚겠노란 말을 하였다。나는 이 말을 할 때에 감 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등에는 땀이 흘러서 젓삼을 적셨 다。그러면서도 나는 아저씨가 아마 이 청을 들어 주리라고 믿었다。재당숙은 내 말을 들을 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이튿날 아침에 나는 아저씨가 부르기를 기다렸으나 아무 말이 없었다。내 삼종과 함께 이웃에 아는 사람을 찾아서 놀다가 낮이 기울어서 돌아 왔을 때에 재당숙은 나를 보고,

『세사가 전과 달라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하고 거절하는 말을 하고는 오원짜리 지전 한 장을 동경가 는 여비에 보태라고 주었다。 나는 이것만 해도 고마운 일인 줄을 모르고 속으로 재당숙 의 무정함을 원망하고는 다 저녁때에 밥도 아니 먹고 그 집 을 떠났다。 나는 내가 혼인을 하게 된 동기를 길게 설명하고 싶지 않 다。나는 다만 이상한 인연이 나로 하여금 급작스럽게 혼인 을 하게 하였다는 것과, 이 혼인이 내 일생에 큰 파란의 원 인이 되었다는 것만 말하면 그만일 것이다。 나는 돈을 탐해서 이혼인을 한 것도 아니었다. 왜 그런고 하면, 그 집은 부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또 나는 색을 탐해 서 그 집과 혼인을 한 것도 아니었다. 왜 그런고 하면, 나는 그 여자를 한번 본 일도 없을 뿐더러, 그 집이 미인 딸을 둘 만한 가문이 아닌 것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또 문벌 을 탐해서 한 것도 아니었다. 왜 그런고 하면, 그 집은 내 집보다 문벌이 좋지 못한 집이기 때문에.

그러면 나는 무슨 까닭으로 이 혼인을 하였나? 내게는 여 러 가지 설명도 없지 아니하지만 결국은 인연이라고 믿을 수 밖에 없다.

내가 재당숙 집에서 실망과 원망을 품고 돌아 오는 길에 성재(省齎)라는 내 족대부가 나를 찾아서 재당숙집으로 허덕 거리고 오는 것을 만났다. 그는 육십이 넘은 노인으로서 길 다란 지팡이를 짚었다. 그는 가난한 한 학자님으로 내 선친 과 의분 좋게 지니던 이인 줄을 나는 안다.

성재가 늙은 몸으로 여러 십리 길을 나를 찾아 나선것이 다른 일이 아니라, 내 혼인에 관한 일이었다.

그는 내 아버지의 술친구이던 S라는 노인이 방금 병석에서 오늘 내일 하고 시각을 다투는데 꼭 나를 사위로 삼아서 어 린 자식을 맡기고야 눈을 감겠다는 것이다.

나는 성재를 따라서 그날 밤으로 음력 칠월 그믐의 캄캄한 길과 미끄러운 벌판길을 걸어서 S노인의 집을 찾았다.

S노인은 내 손목을 붙들고,

『석아, 너의 아버지 친구야. 나는 너만 믿어. 내 딸이 변 변치 못하지만 너만 믿어. 너만 믿고 눈을 감을 테야.

하는 말을 가까스로 알아 듣게 하였다. 벌써 혀가 꼬부라 져서 어음이 분명치 못하였다.

나는 무조건하고 「네」하여 버렸다. 이것을 내 감격성이 라고 할까. 나는 이 임종의 병인의 말을 거스릴 용기가 없 었다. 만일 이 임종의 병인의 청하는 말이면 무엇이나 거스 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리하여 불야불야 혼인을 하게 되었다. 조부는 불만 하여 서 입맛을 다시면서도 반대하지 아니하였다.

나는 음력 팔원 어느 날 남전복 옥색 도포에 탕건 쓰고 사 린교에 덩그렇게 앉아서 장가를 들어 전안의 예를 행하였 다.

그리나 어떻게도 짧은 인연이었던고? 나는 장가 든 이튿날 에 곧 동경으로 간다고 때를 썼다. 그런 법은 없다고 하여 서 겨우 삼일을 치르고는 신부 집에서 해준 옷을 다 벗어 버리고 고구라 양복을 입고떠나 버렸다.

「싫다」하는 한 생각이 내 마음을 꽉 붙들고 놓치 아니하 는 것이다. 신부는 나와 동갑이었다. 신부에게 무슨 결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보통 사람이었고, 마음씨는 보통 사 람 이상이었다. 그런데 이찌하여서 이렇게 싫을까. 그 싫은 모양은 도저히 형언할 수 없었다.

나는 경솔한 혼인을 후회하면서 지극히 불쾌한 생각을 가 지고 동경으로 왔다. 혼인이라는 이 한 사실이 내 우주를 온통 변해 버린 것 같았다. 오직 예수를 따라서 예수와 같 이 되리라는 단순한 생각만을 품고 있던 내 가슴에는 여러 가지 번민이 들어 왔다. 나는 밤에 늦도록 잠을 못 이루는 버릇을 얻고 때때로 시무룩하게 앉아서 한숨을 쉬는 버릇도 생겼다. 나는 내가 기도하는 수풀 속에 기도를 드리러 가지 마는, 전과 같이 마음이 통일되지를 아니하고 하나님과 그 리스도가구름 안개 속에 가리워서 아무리 하여도 그 얼굴이 보이지를 아니하였다. 번뇌는 진리를 보는 마음의 눈을 어 둡게 하는 것이다.

친구들은 내 성격이 갑자기 침울하게 된 것을 보고 아내가 그리운 것이라고 놀려 먹었다. 이러한 소리를 들을 때에는 더욱 괴로와져서 나는 그자리에서 뛰어 나가거나 가끔 성을 내기도 하였다.

깨끗한 소망만이요, 아무거리낌이 없던 내 마음에는 혼인 으로 하여서 잠시도 뗄 수 없는 큰 걱정이 뿌리를 박았다.

내 마음은 흙탕물 모양으로 흐렸다.

성경에는 부부한 하나님께서 짝 지어 주신 것이매, 사람의 힘으로 뗄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내 마음에도 이 말씀 은 옳았다. 만일 세상이 남자 절반 여자 절반이라고 하면, 한 남자가 두 여자를 차지할 때에 여자 없는 남자가 생기거 나 그렇지 아니하면 한 남자는 처녀 아닌 여자를 아내로 삼 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 하였다. 그러므로 이혼을 하거나 첩을 얻거나,일사라도 다른 여자를 접촉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이미 혼인한 아내와 일생을 같이 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그리하기 위하여 나 는 이 싫은 사람을 사랑하도록 힘쓰지 아니하면 아니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결심도 하고 기도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마귀의 시험이란 것일까. 내가 힘쓰면 힘쓸 수록 아내의 미운 방면만이 생각하고 세상에 수없는 여자가 다 내 배필이 될 수가 있었을 것을 하는 생각이 났다. 더욱 이 S양에게 대한 사모는 날로 더하였다. 내가 혼인한 줄을 아직 모르는 Y는 유난히 나를 졸랐다. 그래서 하루는 마침 내 내가 혼인했다는 말을 자백해 버릴 때에 그는 낙심하는 양을 보였다.

나는 S를 사모할 권리가 없음을 깨달았다. 마음으로 사모 하는 것만도 죄가 됨을 깨달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S에게 대한 사모함은 더욱 간절하게 되었다.

싫은 아내를 사랑하려는 고민, 사모하는 S를 마음에서 떼 어 버리려는 고민, 이러한 속에서 일 년을 지나는 동안에 나는 처음으로 일기 쓰기와 시 짓기를 시작하였다. 지금은 그때에 쓴 일기가 다 서실되어 버렸지마는, 열렬한 사모와 흑심한 고통을 적은 것이었다.

다음해 하기 휴가에 나는 단단히 결심하였다. 이번에 고향 에 가면 내 아내를 힘껏 사랑해 주리라. 아내의 아름다운 점만을 발견하고 마음에 안 드는 점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 보리라.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가 아니냐. 아무 리 마음에 들지 아니하는 사람이라도, 원수라도 사랑하여야 할 사람이 아니냐. 나는 이를 악물고라도 이 아내를 사랑하 리라고.

나는 고향에 가서 조부의 곁에서 하룻밤을 지내고는 곧 처 가로 갔다. 이때에는 벌써 장인 되는 이는 죽고 가세도 더 욱 치패하여서 조그마한 초가집에 떠나 와 있었다. 그 집은 수수밭에 파묻혀 있는 바로 뜰앞까지 삼이 길게 자라서 삼 잎사귀의 향기가 코를 찌르고 지붕에는 박과 호박이 달리고 질적질적한 뜨락에는 닭과 개들이 가댁질을 하고 있었다.

아내 되는 사람이나 장모 되는 사람이나 작년에 이틀 동안 잠깐잠깐 본 사람들이라 모두 초면에 대하는 사람 같고 도 무지 말이 어울리지를 아니하였다. 파리가 까맣게 덮인 방 속은 찌는 것 같았으나 그렇다고 밖에 나와 앉을 데도 없었 다.

그래도 사위가 왔다고 닭을 잡고 생선을 사오고 달걀을 찌 고 호박을 지지고 소주까지 받아 오고 이집 일가 사람들까 지 모여 들어서 극진히 관대를 하였다.

그때에는 아직 머리 깎은 사람도 적고 보통 학교도 한 고 을에 하나씩이나 있던 때라, 이 농촌 사람들은 옛날 조선 사람 그대로였다. 옛날이라야 이조말년의 퇴폐한 옛날 말이 다. 젊은이들은 모여만 앉으면 음담 패설이요, 도박이요, 술 먹기요, 담배 피기요 이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더욱이 이 근 방은 더하였다. 삼 년이나 동경 생활을 하여 마음에 교만이 잔뜩 들어 앉은 내가 보기에 이 사람들은 마치 딴 인종인 것만 같고, 내 속에 품은 높은 뜻은 알아 줄 것도 같지 않 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내게 술을 권하고 담배을 권하고 또 노름을 권했으나, 나는 다 거절하고 도리어 술 먹기와 노름하기를 그만 두고 예수 믿고 머리를 깎으란 말을 권하 여 보았다. 생각하면 그때 내 정경이 가엾기도 아니꼽기도 하였다.

제가 무엇이길래, 가장 높은 체하고, 가장 깨끗한 체하고 ㅡ 그러나 나는 그때에 아직 제가 어리석은 물건인 줄을 알 지 못하였다.

이 소년 청교도는 사흘이 모사여 동경서부터 품고 온 결심 ㅡ 아내를 지성으로 사랑하리란 결심을 깨뜨리고서는 방학 도 다 끝나기 전에 동경으로 와 버렸다.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하여서 낙심하였다. 도저히 지어 먹고 아내를 사랑할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이때에 내 청교도적 생활을 뒤집어 엎은 것이 당시 동경 (아마 세계을 다)을 휩쓸던 자연주의 문예와 바이런의 시들 이었다. 하세가와라는 어느 대학 교수가 지은 〈현실 폭로 의 비애〉라는 책이 어떻게나 내가슴에 깊은 동요를 주었는 지. 종교니 도덕이니 습관이니 하는 것에 대한 정의를 어떻 게 근저로 부터 깨뜨려 버렸는지. 그리고 K라는 친구에게 권함 받은 바이런의 시들 ㅡ 〈카인〉,〈해적〉,〈돈판〉등 이 어떻게 청교도적 생활이 천박함과 악마주의의 힘있고 깊 음을 내게 가르쳤는지, 나는 마치 부자유한 감옥이나 수도 원에서 끝없이 넓고 밝은 자유의 신천지에 나온 것같이 생 각하였다. 나는 K와 함께 발매 금지 되는 잡지와 서적을 사 보는 것으로 자랑을 삼았다. 그때에 발매 금지라면 사상적 인 것이 아니요, 노골적인 성욕 묘사로 풍속 괴란의 협의로 서였다.

『쾌락의 일순은 고통의 천년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는 돈판의 말이 어떻게 내가슴을 흔들어 놓았던고. 카인 의 하나님에게 대한 원망은 이상한 매력을 가지고 내 마음 을 고혹하였다.

나는 톨스토이의 깨끗한 문학에 맛을 잃고 인생의 암흑면 을 폭로하는 문학을 탐독하게 되었다. 돈판과 함께 인생 향 락의 단술에 취하여서 카인과 함께 하나님을 저주하고 싶었 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을 나는 내가 크게 지보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악마주의를 찬양하게 된 것이다.

나는 술 먹기를 시작하였다. 나는 길에서나 전차에서나 젊 은 여자를 보면 실컷 음란한 마음을 품는 것을 당연하게 생 각하였다. 내가 예수의 가르침을 배반하고 악마주의의 제자 가 될 때에 열 팔구 세의 춘기 발동기인 나는 성욕의 노예 가 되었다. 나는 오다께 바아상의 딸이 내 집에 와 자는 밤 에 억제할 수 없는 육욕을 가지고 거의 밤을 새운 것을 기 억한다. 나는 그것을 이루지 못한 것을 내가 용기가 부족한 때문이라고 한탄하였다. 나는 요시와라라는 창기촌에도 몇 번 갔다. 갈 때에는 갖은 추태를 다 부려서 더러운 욕심을 만족하리라는 결심을 단단히 하고 가건마는, 정작 가서 낯 에 분칠을 하고 귀신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여자들의 모양 을 면대하면 그것이 모두 짐승의 일과 같아서 침 뱉고 물러 나왔다.

저주와 불평과 불만과 육욕과, 이러한 열등 감정의 포로가 되어 버린 나는 밤이면 술이 취하는 때가 많았다. 같이 있 는 H, K등 친구들은 내가 이렇게 변하는 것을 보고 걱정해 주었으나 나는,

『흥 너희 같은 속물이 어떻게 내 깊은 사상을 알아?

하고 가장 깨달은 체하였다.

이때에 만일 내가 죽어서 무엇으로 태어난다 하면 그것은 잔나빌 것이다. 왜 그런고 하면, 그때에 내 마음속에는 술과 계집에 관한 욕심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욕심만 있고 하나도 채우지를 못하였으니 반드시 아귀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도 마음이 편한 때가 없고 항상 저주와 불평으 로 끓었느니, 그때 생활이야말로 곧 지옥 생활이다. 나는 그 때에 지옥과 아귀와 축생의 삼악도에서 수없이 윤회하고 있 었던 것이다. 그때에 내 얼굴에서는 순결한 빛이 스러지고 내 마음에서는 천국의 평안이 가버렸다. 눈과 같이 내 영혼 은 칠과 같이 검게 물이 들어 버렸다. 일생을 두고 씻더라 도 다 깨끗해지지 못할이만큼.

나는 날마다 야마사끼군을 대하였느나 야마사끼군이 여전 히 깨끗한 것을 볼 때에는 본능적으로 부끄러운 생각이 나 기는 나면서도 나는 야마사끼가 유치하고 내가 한층 높은 데로 올라 선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스스로 속였다.

아마 야마사끼군은 내 혼 속에 악마가 들어 앉은 줄을 몰 랐을는지 모른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마음에 먹은 것은 몸에 나타나는 법이다. 그때 내 얼굴과 행동에서는 반드시 악마적인 빛과 냄새를 발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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