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9

대륙의 주인은 누구인가? -한설야의『대륙』에 나타난 현실인식 이해영



대륙의 주인은 누구인가?1)
-한설야의『대륙』에 나타난 현실인식
이해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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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이 글은 한설야의『대륙』에 나타난 현실인식을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한설야는 적어도 중국인의 땅인 대륙에서 이루어지는 오족협화 내지 동아협동체라면 평등한 관계에 앞서 주인인 중국인의 허락과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보았다. 한설야는 또한 당대의 만 주담론과는 전혀 반대되는 ‘만주국’에서 설 자리조차 없는 조선인을 그려냈다. 일본의 무력 침략에 의해 세워진 ‘만주국’에서 조선인은 원래의 그 땅의 주인이었던 만주인들에게는 일 본인의 앞잡이로 취급될 수밖에 없으며 일본인들에게는 또한 도구 정도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만주국에서 조선인은 설 자리조차 없다는 것이 한설야의 인식이다. 한설야는 또 한 의용군을 결성해 일본에 저항하는 항일세력이기는 하지만 온갖 착취와 폭정을 일삼아 만 주의 3천만 주민을 궁핍에 빠뜨리고 참상에 밀어 넣은 장본인인 장학량 역시 원래도 대륙 의 주인이 아니었지만 대륙의 주인이 될 자격을 상실한 대륙의 부랑아일 뿐이라고 보았다. 한설야는 1939년의 시점에서 장학량 의용군의 부패와 무능, 타락으로부터 반만항일 실패의 원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인식들은 한설야가 결코 동아협동체론이나 오족협화 로 대표되는 일본 제국의 담론을 수용하지 않았고 그것을 원천적으로 부정한 자리에, 즉 ‘만주국’의 건국 자체를 부정하는 자리에 서있었음을 보여준다.

<키워드> : 한설야,『대륙』, 만주, 만주국, 동아협동체, 제국, 재만 조선인

<Abstract>
Who's the Host of the Continent?
-The Reality Recognition of Han Seolya's The Continent
Li Haiying
This paper studies on the reality recognition of Han Seolya's The Continent. Han Seolya thought that the "Five-Race Harmony" and the "East Asian Cooperative Community" should be built on the equality and be admitted by the Chinese who were the hosts. He also wrote about the Koreans who even had no place to put their feet on in 'Manchukuo' which was completely opposite to the contemporary Manchuria discourse. In "Manchukuo" established by the Japanese invasion of armed forces, the Koreans were regarded as Japanese stooge by the Manchurians who were the owners of the original land, and they were regarded as only tools by Japanese. What Han Seolya recognized was that the Koreans had no place to put their feet on in Manchukuo. He also recognized that although the volunteer army was built as an anti-Japanese force, its continuous exploitation and tyranny put 30 million inhabitants of Manchuria in poverty and misery. For this reason, Zhang Xueliang who spin a cocoon around himself lost the qualification to be the host of the continent, although he had never been the host of the continent. Han Seolya thought that Zhang Xueliang was only a vagrant.  He pointed out that the failure of anti-Manchukuo and anti-Japanese struggle was caused by the corruption, incompetence and depravity of Zhang Xueliang's voluteer army in about 1939. With this reality recognition, Han 
Seolya could never accept the "East Asian Cooperative Community" and the "Five-Race Harmony" which were the representative discourse of Japanese Empire. He thought that these discourses were wrong at the very beginning, and it was wrong to establish 'Manchukuo'. 
<keyword> : Han Seolya,『The Continent』, Manchuria, Manchukuo, East Asian 
Cooperative Community, Empire, Koreans in Manchu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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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Ⅰ. 들어가기
Ⅱ. 대륙의 진정한 주인 : 만주의 민간 토착세력
Ⅲ. 대륙의 타자 : 설 자리조차 없는 조선인
Ⅳ. 대륙의 부랑아 : 주인 자격 상실의 장학량 의용군
Ⅴ.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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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들어가기

한설야의『대륙』은 1939년 6월4일부터 9월24일까지『국민신보』에 연재된 일본어 장편
소설이다. 그 주된 이야기는 1932년 ‘만주국’ 건국 초기를 배경으로 일본인 청년 오야마와 하야시들이 만주 오지에서 민간에 의한 공동체 사회 건설을 위한 금광 개발 사업을 벌이는 와중에 부딪친 마적의 습격과 납치 및 만주인 조집오와 그의 딸 조마려의 도움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과 오야마와 만주인 처녀 조마려가 식민자와 피식민자 사이의 차별과 배제 의 제국적 의식을 넘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대륙에서 그들의 꿈을 실현해 간다는 내용 이다.『대륙』이 연재된『국민신보』는 매일신보사가 자매지로 발행한 주간지로서 1939년 4월3일자로 창간되었으며 순 일본어 신문으로 여기에는 조선인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이 필 자로 등장한다.3) 그 독자는 재조 일본인과 조선 지식인 계층이었을 것이다.4) 
그러므로 한설야의『대륙』은 창작시기, 작품의 배경, 발표지면, 발표언어 등 측면에서 다 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점을 내포한다. 첫째, 한설야는 왜서 1939년의 시점에서 그로부터 7 년이나 앞선 시기인 1932년 즉 만주국 건국초기의 사건을 서사화하고 있을까? 1939년은 일본 관동군의 치안숙정 작업에 의해 ‘만주국’의 ‘치안’이 안정기에 접어들고 중일전쟁과 함 께 일본이 중국과의 무력전쟁으로부터 외교적 제휴로 정책을 조정하여 “동아협동체론”을 적 극 주창하고 펴나가던 시기이다. 그런데『대륙』속의 사건이 벌어지는 시기는 만주국 건국 초기로 만주 각지에서 마적과 비적 그리고 반일 의용군, 중국공산주의자와 조선공산주의자 에 의한 항일독립운동세력이 빈번하게 출몰하던 시기이자 일본 관동군의 비적 토벌 등 치안 숙정 작업이 가장 잔혹하게 가장 치열하게 이루어지던 시기이다. 둘째, 무엇 때문에 한설야 는 이 시점에 일본어로 창작하여 일본어 신문에 발표한 것일까? 한설야가『대륙』을 집필한 
 
1) 이 논문은 2014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진흥사업단)을 통해 해외한국학중핵대학육성사업의 지 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AKS-2014-OLU-2250004).
2) 華東師範大學校 中文系 / 中國海洋大學校 한국어과
3) 김재용,「새로 발견된 한설야의 소설『대륙』과 만주 인식」,『역사비평』63, 역사문제연구소, 2003, 252쪽.
4) 김재용은 위의 글에서『국민신보』가 일차적으로는 조선에 나와있는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을 것이 라고 추측하였다. 이와 함께 이 무렵 이기영도 일본어로 장편소설『대지의 아들』등을 발표한 것을 볼 때, 이 들 일본어 소설의 잠정적인 독자로 재조 일본인과 함께 식민지 시기 조선의 지식인 계층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시기는 1939년 6월부터 9월까지로 이 시기는 아직 일제에 의한 일본어글쓰기가 강요되기 전이다. 그러므로 한설야는 자신의 어떤 필요에 의해 의도적으로 일본어로 창작하여 일본어 신문에 게재한 것이다. 김재용은 한설야가 일본어로 이 작품을 써서 잠재적 독자층으로 삼 았던 일본인에게 만주국이 현재 얼마나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를 강하게 보여주 고 싶었던 것이라고 보았다. )이를 두고 김윤식은 한설야는 그 이전 1937년에도「白い開墾地(하얀 개간지)」를 일본어로 창작하여 일본 국내의 문학지『文學案內』에 발표한 것 )을 예로 들면서 이것이 한설야의 일본어 쓰기 능력에 의한 ) 그 자신의 자의적 선택임을 근거 로 일제시기 이중어 글쓰기의 제4형식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셋째, 한설야는 과연 대륙 아 니 만주에서 일본인의 주도가 아닌 여러 민족의 평등한 관계에 의한 진정한 의미의 오족협 화를 희망했던 것일까?
위의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상당한 정도의 선행연구가 이루어졌으며 다각적이 고 다차원적인 측면에서 이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졌다. 김재용은 한설야의『대륙』을 발굴 하여 소개하면서 한설야가 ‘만주국’의 오족협화의 허위성을 비판하고 동시에 자민족중심주 의도 극복하려고 했다고 보았다. 일제에 의해 ‘만주국’이 완전히 정비된 1939년의 시점에서 치안 부재의 1932년의 초기 ‘만주국’을 다룬 것 역시 이러한 ‘만주국’에서의 오족협화의 허 위성을 비판하기 위해서라고 하면서『대륙』의 저항성을 높이 평가했다. ) 장성규 ), 고명 철 ), 서영인  ), 이경재 )은 한설야의『대륙』이 제국의 담론을 수용하면서 그 담론 내부 에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냄으로써 제국의 이데올로기와 어긋나는 지점을 만들며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고 보았다. 특히 서영인은 작품에서 비적에 대해 주목하면서 “한설야 가『대륙』에서 형상화하고자 했던 것은 쉽게 정복될 수도 없고 쉽게 이데올로기화될 수도 없는, 만주 대륙의 실체” )라고 지적하였다. 윤대석은 한설야가 1939년의 시점에서 만주국 건국 초기를 무대로 소설을 쓴 것은 당시 전개되고 있던 동아협동체론, 동아연맹 )론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신절서론에 참여해서 그것을 변형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하였다. 이진경은 한설야가 일본의 ‘동아신질서론’에 ‘편승’하면서 말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고 보았고 그 것만이 당시 식민지 조선인이 말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였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한설야 의『대륙』은 일본인의 ‘만주인 되기’와 만주인의 ‘비 만주인 되기’를 통해 국민적 경계를 횡단하면서 소수자로서 식민지 인민 즉 ‘조선인의 말하기’를 하고 있다고 보았다. ) 서영인 역시 하위주체의 말하기 방식이란 맥락에서 한설야의『대륙』에 나타난 미지의 ‘타자’들이 자 ‘만주국’에서 피식민 민족의 하위주체인 조선인의 말하기 방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 위 의 연구들이 한설야의『대륙』이 저항의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상반되는 관점에 서 김성경 )과 서경석  )은 한설야가 일본 제국이 제기한 ‘동아협동체’론에 대한 희망과 이 로부터 변화가능한 만주 공간에 대한 희망을 보여줌으로써『대륙』이 협력의 의미를 가진다 고 보았다. 손유경 역시 민간 자치 공동체를 구상하는 진보적 일본 청년 오야마와 하야시가 마적(비적) 문제에 관한 한 철저히 관동군의 입장에 따르고 있으며 토벌대의 잔혹한 토착민 학살 행위에 대한 비판적 자의식을 이 두 청년이 전혀 구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저항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19)
이러한 논쟁의 핵심은 결국 한설야가 식민주의적 무의식에 포섭된 것인가 아니면 일제의 식민정책 내에서 일제를 비판한 것인가에 있다. 문제는 협력의 의미는 물론 저항의 의미를 가진다고 본 연구들에서조차 한설야가 일제의 제국 담론을 일단 수용했다고 본 것이다. 즉 “한설야는 제 민족에 대한 차별과 강제가 없는 평등한 연합체로서의 ‘오족협화’에 동의했 다”  )고 보았다. 그런데 과연 한설야는 ‘만주국’에서 진정한 ‘오족협화’를 희망했고 일본의 주도가 포기된 ‘동아협동체’의 실현에 기대를 가졌던 것일까? 과연 한설야는 ‘만주국’에서 일제의 식민정책에 조건부적인 동의를 한 것인가? 여기서 한가지 보다 근원적인 것을 이야 기하자면 ‘대륙’ 즉 ‘만주’는 원래 만주인의 땅, 즉 중국인의 땅이다. 과연 한설야는 제 민족 간의 평등한 관계만 성립된다면 그 땅에서 일본이 제기한 ‘오족협화’ 내지 ‘동아협동체’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본 것일까? 즉 한설야는 일본의 초기 만주 정책에 환상을 품고 있었던 것일까? 본고는 바로 이 지점에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위의 근원적인 물음에 답하기 위해 본고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추가로 염두에 두고자 한다. 친일과 국제주의자 사이에 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일본인 청년들의 민간 공동체 건설에 공감하고 그들에 협력하는 조 집오와 조마려는 친일세력인가 국제주의자인가? 한설야는 수필『北國紀行』에서 간도공산당 사건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을 정도로 만주 사회주의자들의 항일운동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왜 한설야는『대륙』속의 항일세력을 장학량 의용군과 반만 마적으로만 한 정한 것일까?『대륙』에 나타난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조선인들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한설야의『대륙』은 과연 만주의 조선인 이주농민들에게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은 것인 가? 본고는 위의 문제들을 차례로 답해가면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2. 대륙의 진정한 주인 : 만주의 민간 토착세력 한설야는 ‘만주국’이 안정기에 접어든 1939년의 시점에서 1932년의 초기 만주국을 다루
면서『대륙』에서 유독 만주의 민간 토착세력인 조집오의 역할과 위력을 강조 부각하였다. 조집오는 돈과 절대권력을 가진 관동군의 군사력과 정치력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 마적 에 의한 오야마 아버지의 납치사건을 자기의 집안과 대대로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던 마적 두목 왕쾌대와의 협상을 통해 해결한다. 조집오의 협상이 없었다면 오야마와 그의 아버지는 생존조차 불가능했으며 오야마와 하야시 이 두 의욕에 찬 제국의 청년들은 비적과 스파이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만주국’의 관리도, 군인도 아닌 조집오의 영향력과 위상은 ‘만주국’ 이전의 만주의 역사로부터 형성된 관계에 의한 것으로 “만주의 주인은 만주를 개척의 대상 으로 바라보는 오야마나 하야시도, 그리고 만주국에서 막강한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관동군 도 아닌, 조집오와 왕과 같은 토착세력” )이다. 그렇다면 오야마와 하야시라는 두 일본 청 년의 이상에 호의를 보이는 조집오는 과연 이들의 생각에 완전히 공감한 것인가? 그런데 조 집오가 공감하고 동의하고 있는 이 이상 즉 국가의 힘이 아닌 자유 이민, 군대의 힘이나 대 자본의 힘이 아닌 민간인들 간의 협력에 의한 만주 오지의 개발과 건설에 의한 만주 제 민 족의 공동체 건설이라는 이 이상은 엄밀하게 말해서 관동군의 무력 침략에 의해 세워진 ‘만 주국’의 건국 역사를 부정하는 자리에서만 가능한 것이어서 현실의 ‘만주국’과 근원적으로 공존이 불가능한 이상이다. 그렇다면 이 이상이 가능한 ‘만주국’은 어떠한 형태여야 하는가? ‘만주국’에서 일본인과 만주인은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가?
“장래에는 논밭이나 미개척지를 매입하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국가의 힘이 아닌 자유 이민의 정신 아래 노력 하나로 이루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건 굉장히 좋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만주라는 곳은 당신네 나라와 사정이 달라서……” 조 노인은 사색적인 인간이 가지고 있는 냉정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주 사람도, 일본 사람도, 조선 사람도 삶을 원하는 인간 적인 본능은 누구나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만주에서 자라 만주 사람이나 조선 사람들 틈에서 오랫동안 생활했기 때문에 이 땅의 공기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그래서 만주어를 잘하시는군요. 아주 잘 되었군요. 외국에서 가장 큰 자본은 바로 그 것이니까요. 먼저 외국을 이해하고 생활하고 가능하다면 그 나라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대륙』 ), 
20쪽, 밑줄 인용자 주)
만주에서 국가의 힘을 배제한 민간인 공동체 건설에 대한 순수한 이상으로 불타고 있는 
일본인 청년 하야시의 격정과 열변에 조집오는 “그러나 만주라는 곳은 당신네 나라와 사정 이 달라서...”라고 냉정하게 대답한다. 조집오의 이 대답에는 여러 가지 층위의 의미가 내재 되어있다. 표면적으로 그것은 ‘만주’는 일본 내지와 치안, 문화, 풍토 등이 다름을 나타내는 매우 상식적인 차원의 발언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나 그 뒤의 생략된 말은 여러 가지 상 상을 가능하게 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 생략된 말은 “그렇게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내지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 등으로 상상 가능하며 그 전체적 뜻은 “만주는 당신 네 나라가 아니라서...”라는 잠재된 차원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냉정하고 고집스럽기 까지 한 조노인을 설득하기 위해 하야시는 자기가 어려서부터 만주에서 자라 만주 사람이나 조선사람들 틈에서 오랫동안 생활했기 때문에 만주의 공기는 잘 알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하야시는 이때의 자신을 극력 일본인과는 멀리 떼어내며 자기가 얼마나 만주를 이해하고 만 주인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극력 강조하고 있다. 하야시의 이러한 노력과 발화는 대륙에서 즉 만주에서 만주인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일본인이 일본인이기를 포기하고 현지에 융화되어야 하며 현지인화 되어야 함을 은연중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하야시의 설득에 조 집오는 우선 하야시의 만주어 실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조집오는 “외국에서 가장 큰 자본은 바로 그것이니까요. 먼저 외국을 이해하고 생활하고 가능하다면 그 나라 사람이 되 는 것이지요.”라고 긍정적으로 대답한다. 이는 얼핏 보면 하야시의 뛰어난 만주어 실력이 만 주에서 생활하는데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발언이지만 1932년 혹은 1939년 당시의 일본과 ‘만주국’의 관계 내지 ‘만주국’에서 일본인과 만주인의 관계 속 에서 놓고 본다면 이는 틀림없이 대단히 혁명적이고 위험한 발언이다. 우선 조집오는 오야 마와 하야시라는 두 일본인 청년을 향해 ‘만주’를 거침없이 ‘외국’이라고 호명한다. 이는 ‘만 주’ 혹은 ‘만주국’을 일본 제국의 판도 내에서 분리하여 제국의 식민지 )의 위치가 아닌 일 본 제국과 대등한 국가 즉 ‘외국’으로 호명한 것으로 ‘만주국’에 대한 일본 제국 내지 관동 군의 형향력과 간섭을 배제하고 분리한 것이다. 그때 ‘만주국’에 이민해 살고 있는 일본인들 중 과연 몇 사람이나 ‘만주’ 내지 ‘만주국’을 일본의 식민지가 아닌 하나의 대등한 국가로, ‘외국’으로 생각했을까? 역으로 과연 몇 사람이나 되는 만주인이 일본에 대하여 ‘만주국’을 피식민지가 아닌 대등한 국가로, ‘외국’으로 생각하고 있었을까? ‘만주국’에 대한 조집오의 이 ‘외국’이라는 호명은 일본이 제국 내에서 특히 ‘만주국’인들을 향해 구축해왔던 일본 제 국과 ‘만주국’의 어떤 관계 )를 일거에 전복해버리는 혁명적이고 위험한 발화였다. 이어서 조집오는 하야시에게 먼저 외국을 이해하고 가능하다면 그 나라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설교 한다. 즉  년 내지 1939년의 ‘만주국’에서 만주인이, 만주에서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일본인 청년들에게 ‘만주’를 이해하고 ‘만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설교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 러한 오늘날 평등한 국제교류라는 차원에서 보면 지극히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대화이지만 그때의 ‘만주국’에서는 대단히 혁명적이고 심각한 대화가 이루어진 끝에 조집오는 드디어 하야시와 오야마에게 도움을 약속한다. 한설야는『대륙』에서 유난히 일본인이 ‘만주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만주어를 공부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만주국’에서 일본어에 비해 만주어 의 우위를 강조하고 있는데 일본인인 하야시마저 오야마에게 “자네도 앞으로 만주어를 더 공부해”라고 진심으로 권하고 있다. 그것은 만주를 알고 만주에서 생활하기 전에 먼저 말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만주에 진출한 일본인 대재벌 고 토 사장도 마려에게서 만주어를 배울 정도로『대륙』은 온통 만주어 열풍이다. 조선에서 일 제가 1938년부터 제3차 <조선교육령>을 반포하여 조선어교육을 배제하고 조선어 말살 정 책을 실시하였던 것을 감안하면 한설야의 이러한 ‘만주국’에서 일본어에 대한 만주어의 우 위에 대한 강조는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를 통해 한설야는 은연중 대륙의 주인 즉 만주의 주인은 만주인임을 암시하고 있다. 즉 일본인이 대륙에서, 만주에서 어떠한 아름다운 이상이든지 그 이상을 실현하고 이루어나가 기 위해서는 우선 만주어를 잘해야 하고 만주를 이해해야하고 나중에는 만주인이 되지 않으 면 안된다는 이 담론이 의미하는 바는 만주에서 모든 일의 주도권은 일본인이 아닌 만주인 에게 있음이다. 즉 일본인이 혹은 일본이 대륙에서, 만주에서 어떤 이상 내지 사업을 실현 하기 위해서는 대륙 즉 만주의 주인인 만주인의 동의와 허락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한설야는 국가의 힘이나 군대의 힘, 또는 대자본의 힘이 아닌 평등한 국가 간의 교류 즉 평등한 국제교류를 희망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설야가 주장했던 일본과 ‘만주국’의 관계, ‘만 주국’에서 일본인과 만주인의 관계는 당시의 ‘만주국’에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만주국’의 건국 자체가 일본 관동군의 무력에 의한 만주 침략 위에 건립된 것이므로 이는 ‘만주국’ 건국 자체가 안고 있는 근원적인 모순이었고 그러한 ‘만주국’의 건국의 역사가 통 째로 부정되지 않는 한 해결 불가능한 모순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주국’에서 일본인과 만주인의 관계는 협화 내지 협력이 아닌 배신과 불신, 감독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고 한설야 는 말하고 있다.
“오늘 두도구에서 일만군(日滿軍) 귀순 선서식을 하고 협피구 주둔을 명령받아 간다고 합니다.”
“위험하군요. 마적처럼 쉽게 배반하는 사람들은 신용할 수 없겠네요.”
“그도 그렇지만 몰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가능하다면 유도해서 군에 넣어 변경 경비…… 라기 보 다는 비적 회유의 표본을 삼는 겁니다. 물론 엄중하게 감시하지요”
“마적도 예전과 달리 모두 곤란한 모양이네요.”
“그래요. 그래서 계속해서 귀순을 신청하는 겁니다…… 그러나 일단 진심으로 귀순을 하면 피복이나 식량을 나누어줍니다. 저기 말에 실은 것이 보이지요?” “이상한 사람들이네요. 이렇게 좋은 토지를 버리고……” 마스코는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있었다.(『대륙』, 72~73쪽, 밑줄 인용자 주.)
귀순하는 마적의 부대를 바라보며 하야시와 오야마의 동생 마스코가 주고받는 대화이다. 만주의 마적에 대한 일본인 일반의 인식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마적의 귀순을 바라면서 도 정작 귀순하는 마적에 대해서는 마적처럼 쉽게 배반하는 사람들은 신용할 수 없다고 하 는 것을 통해 ‘만주국’에서 마적에 대한 일본인들 일반의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또한 귀순한 마적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그들을 ‘만주국’ 군대에 편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비적 회 유의 표본으로 변경 경비를 시키며 엄중하게 감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귀순한 마적에 대 한 불신임은 역으로 그들의 진정한 귀순을 불가능하게 하여 그들은 귀순하였다가도 다시 반 변하여 마적과 내통하거나 마적이 되어버린다. 문제는 이 대화의 주인공들인 하야시와 마스 코의 신분이다. 만주에서 군대에 의존한 개발과 건설이 아닌 민간의 힘에 의한 제 민족 협 화의 공동체를 건설하겠다는 이상에 불타는 하야시와 재벌의 딸이자 관동군 장교의 딸이긴 하지만 군인과는 거리가 먼 한 일본인 소녀 마스코의 대화는 이것이 마적에 대한 일본인 일 반의 태도이자 인식임을 보여준다. 일본군의 무력 침략에 의한 ‘만주국’ 건국에 반대하는 만 주의 마적과 일본군의 대대적인 소탕에 직면하여 하는 수 없이 귀순하는 마적에 대한 일본 인 일반의 불신은 ‘만주국’의 절대 권력자인 일본인들을 ‘고독한’ 처지에 빠지게 하며 만주 에서 그들의 처지를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불신은 일본인과 마적 사이 뿐 아니라 일본인과 그들의 협력자인 ‘만주국’ 병사들 사이에도 존재한다. 마적 토벌에 나선 ‘만주국’ 병사들은 “사격의 명수였지만 웬일인지 정확하게 조준을 하지 못했”고 “병사들은 어제까지 자신의 동 료였던 적을 사살하는 것을 별로 내켜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일본의 무력 침략으로 건국된 ‘만주국’에서 일본인과 만주인의 진정한 협력은 있을 수 없으며 일본인은 만주인에 한한 어 디까지나 침략자일 뿐으로 만주인의 진정한 협력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상한 사람들이네요. 이렇게 좋은 토지를 버리고……”라는 마스코의 이 말은 “침
략”이라든가 “무력”이라든가 “군인”이라든가 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먼 순진한 일본인 소녀의 입에서 무의식 중 나온 말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충격저이고 파괴력을 가진다. 국가의 힘에 의해 즉 일제의 ‘토지수용령’으로 중국인 농민들의 토지를 무상으로 혹은 헐값으로 차지한 일본인 이민자의 입장과  그 땅에서 쫓겨나 하는 수 없이 혹은 분노로 마적이 된 중국인 내 지 만주인들의 마음의 거리는 그만큼 멀고 어긋나는 것이어서 그들 사이의 협력이란 처음부 터 불가능한 것이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 우리는 한설야가『대륙』에서 결코 제 민족이 평등한 오족협화에 동의한 것이 아니었고 일본인의 주도가 포기되어진 동아협동체에 동의한 것이 아니었음을 명징하게 보아낼 수 있다. 한설야는 적어도 중국인의 땅인 대륙에서 이루어지는 오족협화 내지 동아 협동체라면 평등한 관계에 앞서 주인인 중국인의 허락과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는 일본제국주의의 무력에 의해, 침탈에 의해 구상된 동아협동체론의 근거를 부정한 것으 로 동아협동체 내에서의 전향 사회주의자들의 한계를 간파하고 동아협동체의 존립근거에 의 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한설야는 대륙의 주인은 만주인 민간 토착세력이고 그들의 허 락과 동의가 있어야만 일본인이 만주에서 협화를 실현해나가고 그들의 이상을 실현해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만주국’ 자체가 일본 관동군의 무력 침략에 의한 것인 만큼 이는 원 천적으로 불가하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제국의 담론을 수용하고 그 틀 내에 서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보다 혁명적으로 제국의 담론 자체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자리에 서면 ‘만주국’은 건국부터 다시 되어야 할 것이 다.
이제 남은 것은 ‘만주국’의 군인 오영장의 고문이기도 하고 길림성 실업 국장의 친구이기
도 한 그렇지만 민간인이기를 자처하는 조집오는 과연 누구인가 하는 문제이다. 조집오는 “원세개(遠世凱)의 건아로 중앙 정계에 이름을 떨친 적도 있고 원세개의 사후에는 고향에 돌아가 길림성의 대의원을 지내기도 했”으니 청조 복벽을 위한 친일파는 아닐 것이다. 또한 장학량의 폭정에 불만을 품고 정계에서 은퇴하여 시골에서 청빈한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장작림과 장학량의 군벌통치에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이다. 오늘날의 평등한 국제관계에서 였다면 그는 틀림없는 진정한 국제주의자. 한설야가 이념적으로 바라는 진정한 국제주의자 의 모습이 아닐까?


3. 대륙의 타자 : 설 자리조차 없는 조선인 한설야의『대륙』은 주인공을 만주인과 일본인으로 설정함으로써 조선인들이 극히 미미한 
존재로 등장하며 서사의 기본 줄기와도 큰 연관을 맺지 못하고 동떨어져있다. 기존의 연구 들은『대륙』에서 이 조선인의 존재에 대해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 이 무렵 식민지 조선 에서 만주붐이 일고 ) 각 언론매체들이 만주 관련 기사, 기행문 등을 집중적으로 쏟아냈으 며  년 이후 한국 근대문학에서는 만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본격적으로 창작되었다. 이는 1939년 5월, 조선인 이민을 일본인 이민과 마찬가지로 국책이민으로 정하면서 만주가 조선인에게 매우 현실적인 장소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한설야가『대륙』을 발표하는 것과 거의 동시기에 이기영, 이태준 등이 만주 관련 소설들을 발표했고 그 주인공들이 오로지 만 주 대지에서 개척과 정착을 위해 고투하는 조선농민들이었음을 감안할 때 한설야의 이런 조 선과 조선인에 대한 무관심은 매우 이례적이고 흥미로운 일이다.
일본의 만주 개발이 본격화되고 이것이 중일전쟁과 맞물리게 되면서 식민지 조선의 지식
인과 대중에게 만주는 경제적으로 하나의 희망의 공간으로 다가왔으며 정치적으로는 자치를 꿈꿀 수 있게 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부각되었다. 이 무렵 ‘만주로 가자’는 “일을 하러 가고 희망을 갖고 간다고 할 수 있게끔 되었다.” )『조광』1939년 7월호는 만주문제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는데 대륙진출의 문제와 만주와 조선과의 관련, 그리고 당대의 만주붐을 확인할 수 있는 글들로 특집이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 
(가)오늘의 滿洲國은 그 建設의 거름(肥料)으로 우리 農民의 피와 땀도 적지않게 提供한 곳이라 滿洲事變의 重要起因의 하나가 萬寶山 朝鮮農民事件이었다 함은 누구나 짐작하고도 남는 바아니랴. 日本 帝國의 힘찬 後援아래 滿洲國이 건설되었고 그의 一構成要素로 우리 겨레도 參劃을 許容맡았으며 더욱이 帝國政府의 國策으로 移住開拓을 獎勵케까지 된 以上 그 무엇 때문에 大陸進出을 躊躇할 것이 랴.30)
(나)朝鮮內地에 있는 사람들은 좀더 滿洲의 重大性을 하로바삐 正當히 認識할 努力을 할 것, 적어 도 자기 民族의 系統-鮮系가 堂堂한 國民으로 한목들이 着着飛躍을 하는 만주국에 무관심할 배가 아 닐 것이다. 특히 인테리층에게 우리 鮮系의 진실한 질을 보이자.31)
위의 인용문 (가)과 (나)는『조광』1939년 7월호 만주특집에 실린 이선근과 이운곡의 글
이다. 이선근은 만주 개척과 건설에서 조선농민의 기여와 공로를 강조함으로써 ‘만주국’에서 조선인이 당당히 그 구성요소로 국가 건설에 참획할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제국의 국책에 의해 대륙에 진출할 권리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운곡 역시 선계가 당당 한 ‘만주국’의 국민으로 한목 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선계의 질을 보 이자고 하고 있다. 당시 전향 사회주의자들의 진영에서도 ‘만주’는 조선인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중일전쟁의 상황에서도 사회주의자들은 국제적 정세 속에서 조선의 독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동아협동체론이나 내선 일체론 속에서 조선인의 권리를 찾는 데에서 강요되는 의무만큼의 권리, 그리고 실질적 이득이라는 희망을 발견하였 다. ) 5개의 민족이 평등하다는 만주국의 논리가 물론 허구이기는 하지만, 이 허구를 실현 시킬 가능성에 일본과 조선의 좌파 지식인들은 일종의 환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 차 별과  제한을 철폐할 것을 주장하면서, 자치라는 권리를 주장할 단계에 이르는 과정으로 만 주에서의 권리주장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34)
이러한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만주 인식은 그 무렵 만주를 재현한 소설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기영의『대지의 아들』은 “우리의 선배는 만주에서 처음으로 수전을 개척한 명 예스런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조선 이주 농민의 수전개간의 역사와 공로를 강조하며 이는 ‘만주국’에서 조선민족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는 역사적 기반이 된다. 1937년 경에 이미 ‘만주국’에 이주하여『만선일보』편집국장을 역임했고 이 무렵은『만선일보』를 그만두고 안동의 만주국 생필품 회사에 근무하던 염상섭 역시 재만 조선인 작품집『싹트는 대지』(1941년 11월 15일, 만선일보사 출간)와 안수길의 개인 창작집『북원』(1944년 4 월, 연길 예문당 출간)의 서문에서 조선농민이 ‘만주국’의 국민이 되기 위한 길은 수전개간 으로써 만주의 농업건설에 기여하는 것이며 만주 조선인 개척문학 내지 농민문학은 그러한 개척민의 마음의 양식인 동시에 정신적 원동력의 공급원이 된다고 하였다.   ) ‘만주국’ 조선 계 문단이 낳은 재만 조선인 출신 작가 안수길은 1944년『만선일보』에 연재한 소설『북향 보』에서 ‘만주국’ 이전 조선계 농민들이 만주의 개척과 수전개간에 대한 기여를 통해 조선 인의 ‘만주국 국민’의 자격을 확인하였으며 ‘만주국’이 적극 장려하는 유축농업을 발전시키 고 농민도를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만주국 국민’이 되기 위한 길이라고 주장하였다.37)
그런데 한설야의 소설에 등장하는 조선 농민은 “황량한 만주의 처녀지를 개척한 은인이
었” )지만 ‘만주국’에서 정작 어떠한 권리도 자격도 획득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본인에게도, 만주인에게도 협상의 상대, 대화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있다.『대륙』에서 조선인이 실체로 등장하는 장면은 세 장면이다. 두 장면은 마적이 조선인 마을을 침입하는 장면이고 한 장면 은 마적의 침입과 약탈을 당해 가족과 친인을 잃고 집을 잃은 조선인 피난민들이 고국에 돌 아가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장면이다. 조선인 이주민들은 ‘만주국’ 건국 이전에는 장작림 군 벌의 온갖 폭정에 시달렸고 ‘만주국’ 건국 이후에는  마적에게 시달렸다. “일본의 군대가 레 일을 점령하고 지키고 있을 뿐인 시대에 오지의 주민들은 피뢰침 하나 없이 천둥번개 속에 서있는 노목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갑자기 대륙에 등장한 만주국이 그들 국민에게 약속한 새로운 봄도 반군과 비적의 도약으로 각지에 피바람을 일으켰다.” ) 안수길이 만주시기 소 설에서 ‘만주국’의 건국이 조선인 이주민들에게 삶의 안정을 가져다주었다고 했던 것과는 매우 대비되는 서술이다.
그런데 왜 유독 조선인 마을만이 마적의 표적이 되는가? 한설야는『대륙』에서 마적이 조 선가를 침입하는 장면과 조선가와 지나가 사이의 경계, 일본 경찰의 반격에 패퇴하게 된 마 적들이 조선인의 옷을 입고 도망치는 장면을 통해, 그것이 ‘만주국’에서 어쩔 수 없이 일본 인으로 혹은 일본인의 하수인으로 낙인 찍힌 조선인의 벗어날 수 없는 신분 때문이라고 날 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마적의 습격을 받은 삼도구 시가의 서반부는 지나가이고 동반부가 조선가였는데 “삼도구 시가의 반인 조선가는 이미 막다른 골목에 있었지만”, “그러나 웬일인 지 지나가는 평화로웠다.” ) 마적의 습격을 받자 얼마 안있어 ‘만주국’ 공안대와 육군대는 백기를 들고 군대 외의 지나가의 주민들도 마적들과 결탁하여 포탄세례를 면했을 뿐만 아니 라 조선가의 약탈에 동참했다. 마적들은 “조선가와 영사관 경찰을 맹렬하게 공격하였”는데 이는 마적들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조선가와 지나가의 경계 일 대는 흰옷을 입은 주검이 뒹굴고 있었고 조선가는 거의 다 타버렸다. 지나가 사람들은 경계 에 진을 치고 방벽을 쳐 지나가에 불이 번지는 것을 막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 경찰대가 반 격하자 이번에는 역으로 지나가가 불에 타게 되고 지나인 포로들의 손으로 지나가와 조선인 경계에는 넓은 공간이 생겨 조선가에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고 있었다. 마적들은 대개 조선 인의 흰옷을 훔쳐 입었다. “그들은 일본군이 온 것을 알자 약탈품에서 조선인의 흰옷을 꺼 내 입고 조선인으로 가장했다.”  )는 이 단 한 줄의 묘사보다 우리에게 ‘만주국’에서 조선인 이 구경 어떤 처지에 있으며 어떤 신분인지를 명확히 알려주는 표현은 없으리라. 거기에 더 해 일본인 하야시는 “지나가 물건들은 전부 당신들 것이 되는거야”라고 조선인들을 위로한 다. 이처럼 ‘만주국’에서 조선인들은 어쩔 수 없이 일본인들과 같이 묶여 있으며 이는 일본 이 무력으로 중국 대륙을 침략하고 진행한 ‘만주국’의 건국이 조선인들에게 가져다준 재난 이자 숙명적인 것이었다. 윤대석은 이를 다른 작가들이 ‘일본인:조선인=조선인:만주인’이라 는 구도를 만드는데 비해, 한설야가 ‘일본인:조선인=일본인:만주인’이라는 구도를 만들었고  “그것은 이 소설에서 조선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지 않고 괄호 속에 묶어둠으로써, 그러 니까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조선 민족의 주체성을 내세우지 않음으로써 가능했다”고 지적하 였다. “주체성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스스로를 일본에 일치시킬 수밖에 없는 운명이 당시 의 조선인에게 있었던 것”이라는 것이다.42)
그렇다면 ‘만주국’에서 일본인들에게 조선인은 무엇인가? “대지에 스며드는 피와 목숨을 
이 황량한 대륙에 유용하게 쓰려는 것 뿐”이라는 하야시의 생각은 ‘만주국’에서 조선인에 대 한 일본인의 생각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만주국’에서 조선인은 일본인에게 결국 대지를 개 척하기 위한 도구이자 밑거름일 뿐인 것이다. “죽어도 좋으니까 고국 땅에서 죽고싶다고 하 네요.” 와 “그러나 지금 죽어도 그들 모두가 고국까지 갈 방도가 없어요.”라는 조선인 민회 서기의 입을 빌어 전달되는 조선인 피난민들의 처지는 ‘만주국’에서 실제 조선인이 놓여있 는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 이도 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었다”고 『대륙』은 쓰고 있다.
그렇다면 한설야는 왜 당대의 만주담론과는 전혀 반대되는 ‘만주국’에서 설 자리조차 없 는 조선인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이는 다른 작가들이 오족협화의 틀을 수용하거나 동아협 동체론의 틀 즉 제국의 담론을 수용하고 그 담론 내에서 다시 비판하려고 했던 것과는 달리 한설야는 ‘만주국’ 건국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원천적으로 그것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무력 침략에 의해 세워진 ‘만주국’에서 조선인은 원래의 그 땅의 주인이었던 만주인들에게 는 일본인의 앞잡이로 취급될 수밖에 없으며 일본인들에게는 또한 도구 정도밖에 되지 못한 다는 것. 그래서 만주국에서 조선인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 한설야의 인식이다. 만주의 주인은 만주인이기 때문이다. 안수길은 그래도 수전개간과 민족협화를 통해 ‘만주국’의 국민 자격을 획득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이 ‘만주국’의 존재를 승인해야 하는 일인 한 그것은 근원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일본이 무력 침략으로 세운 ‘만주국’에서 일본의 신민으로 살아가는 한 조선인 역시 만주인에게는 그들의 땅을 빼앗은 원쑤일 뿐, 협화란 애당초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안수길이 훗날『효수』에서 ‘만주국’의 토지 주인은 결국 일본인도 조선 농민도 아닌 그들, 즉 목 매달린 만주인 ‘비적’들이었다고 했을 때, 그것은 ‘만주국’을 벗어 난 먼 훗날의 일이었다. 한설야는 만주에 대한 환상과 꿈을 끝없이 부풀리는 당대의 만주담 론을 그 뿌리로부터 전복시킴으로써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만주에서 조선인의 타자적 위치, 설 자리조차 없는 처지를 말해주고자 했을 것이다.


4. 대륙의 부랑아 : 주인 자격 상실의 장학량 의용군

『대륙』에는 일본에 대항하는 여러 갈래 세력의 마적 외에 이들과는 달리 분명한 정치적 이념을 지닌 세력인 장학량 의용군이 등장한다. 그 아버지 장작림은 원래 동북의 오랜 마적 출신으로 동북을 장악한 군벌이었으나 일본 관동군과의 알력으로 그 유명한 황고툰 사건을 당하여 폭사하게 되고 장학림은 역치하여 동북군을 이끌고 관내로 퇴각하여 장개석의 휘하 에 들어간다. ‘만주국’ 건국 초기, 장학량은 북경에서 “항일구국, 실지회복”의 구호를 내걸고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꿈꾸며 신경, 할빈, 봉천 등지에 온갖 스파이 조직을 운영하고 국제 사회에 ‘만주국’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동북 현지에는 의용군을 파병하여 일본군에 대항한다. 그러나 장학량의 이러한 항일구국운동에 대해 한설야는 의외로 대단히 냉소적이고 비판적이 다.
우선 장학량의 휘하에서 항일구국에 나선 스파이들은 순수한 항일구국의 이념보다는 돈이 
목표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그들은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적대국에 넘기기도 하고 정보를 마 음대로 고치기도 하고 또한 임무를 맡기 전에 대가부터 따지는 등 애국과는 거리가 한참 멀 다.
“……오야마 대위를 생포하기로 만반의 책략을 도모하고 이미 백방에 수배중이라는 것을 조금 과장 되게 말하십시오. 상황은 말하기에 달려 있기 때문에 운 좋게 이것이 성공할 경우에는 일생동안 편하 게 먹고 자고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사례금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돈만 많으면 누가 이런 위험한 곳에서 자청해서 한가롭게 지내고 있겠습니까? 빨리 이런 일에서 손을 뗀 뒤 외국엘도 도망가 고 싶습니다.”
……
“끝났어요? 수고했어요. 빨리 보고해 두지 않으면 나중에 동북 의용군 총지휘나 그 부하군단이 자신 들이 한 것처럼 해서 상금을 가로챌지도 몰라요. 호호호. 누가 뭐라고 해도 돈이 목적인 걸요.”(『대
륙』, 122쪽.)
장학량이 신임해마지 않고 모든 중대한 임무를 맡기는 신경의 스파이 두목 류오락이 그 
부하에게 하는 말이다. 애국이나 장학량에 대한 충성심이라고는 꼬물도 보아낼 수 없고 오 로지 돈이 목표이며 상금을 위해서는 정보를 과장하기도 하고 또한 의용군에게 상금을 뺏길 가봐 전전긍긍한다. 그들이 얼마나 본업에 충실하지 못한 허술한 스파이인지는 만주의 산속 에서 활동하는 장학량 의용군에게 장학량의 명의로 보내는 오야마 부자의 납치와 연관된 중 대한 밀서를 연락원인 당이 술에 취해 조마려의 방에 떨어뜨린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만 주의 산속에서 장학량의 밀명을 받아 항일에 나선 장학량 의용군 역시 돈에서 자유롭지 못 하며 싸움보다는 “논공상행”이 우선이다.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정작 항일도 애국도 아닌 돈이다. 장학량이 믿어마지 않는 “북만의 나폴레옹”이라는 마점산도 “또 돈을 달라는 거겠 지”라는 류오락의 말처럼 돈에 대한 요구가 심하다.
한설야는 장학량의 휘하들 뿐만 아니라 장학량 본인의 항일구국 방식에 대해서도 비판적
이다.
“미국이나 영국은 물론 국제 연맹 가맹국이 모두 지나를 응원하고 있어요. 장장군도 중앙정부에 합 종해서 국제연맹에 출소(出訴)하세요. 중국의 운명은 뭐니뭐니 해도 국제 연맹에 달려 있으니까요.”
영국과 미국 영사와 공사들이 이렇게 설득하자 장 장군은 희희낙락하여 그들의 기분을 맞추어 주느
라 돈을 뿌렸다.(『대륙』, 66쪽.)
한설야는 장학량이 ‘만주국’ 초기에 국제열강들과의 외교에 주력하고 국제연맹을 통해 만
주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에 매우 비판적이다. 강대국의 틈서리에서 식민지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 사람이 요즘 굉장히 분주해. 그리고 미국영사도 외국의 신문기자도 모두 일본과 만주국에는 불 리한 존재거든. 독일은 전에 장 장군이 독일에서 산 액자의 수 배나 되는 군수품을 약속했어. 미국에 는 만주 철도 시설권을 저당 잡히고 중국 차관의 묵계를 얻었고 영국에는……”(『대륙』, 57쪽.)
위의 마담 류오락의 말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장학량의 항일구국 방식은 열강들에게 나라 의 주권을 팔아넘기고 열강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이다. 이는 결국은 일본을 물리치기 위 해 또 다른 열강들의 식민지가 됨을 뜻하는 것으로 자주독립과는 거리가 멀며 이대로라면 장학량에게서 항일구국의 전망을 보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경에서 만주의 “실지회복”을 꿈꾸는 장학량은 그러나 ‘만주국’ 건국 이전에는 아 버지 장작림 대부터 만주에서 선량한 만주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온갖 가렴잡세와 착취를 진 행하며 폭정을 일삼아온 군벌이다. “삼위 일체”의 착취라고 할 정도로 거의 강탈에 가까운 착취가 자행되었다. “장 장군이 북경으로 진출하게 되자 더욱 착취의 밀도가 심해졌다. 장이 나 그 아내들의 끝없는 유흥비아 외국 사절의 매수를 위한 막대한 자금은 이런 인민의 고혈 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래서 장 장군의 중앙 진출은 특히 만주 3천만 주민의 궁핍에 박차 를 가할 뿐이었다”라는 서술은 ‘만주국’ 건국 이전 장작림, 장학량 군벌의 폭정이 어느 정도 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 그렇다면 이 장학량이 되찾으려고 하는 만주가 어떤 모습일지는 불 보듯 뻔하다. 장학량은 만주 주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권력, 부와 사치를 위해 서 만주를 되찾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한설야는 암시하고 있다. 온갖 착취와 폭정을 일삼아 만주의 3천만 주민을 궁핍에 빠뜨리고 참상에 밀어 넣은 그는 원래도 대륙의 주인이 아니 었지만 대륙의 주인이 될 자격을 상실한 대륙의 부랑아일 뿐이라는 것이 한설야의 인식이 다.
장학량 군벌의 항일구국에 대한 이러한 예리한 비판은 카프작가로서 한설야의 이념적 성 찰의 결과일 것이며 카프 이념에 대한 일관된 견지에 의한 것일 것이다. 1931년 당시 김명 식이 만주 조선 동포의 문제에 대해 논하면서, 일본, 중국의 제국주의에 대항한 노동자의 연대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장개석에게 만주 조선인의 자치구 설정을 요구한 것 )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또한 안수길이「벼」에서 일본의 만주 침략에 발판과 구실이 된다는 것 때문에 조선인의 토지를 몰수하고 조선인을 만주에서 몰아내고자 하는 국민당의 청렴 관리 소현장에 대해 매봉둔 조선주민들의 입장에서는 불편하지만 중국이란 국가의 입장에서는 소 현장과 같은 민족의식에 투철한 진보적 인물이 관리로 발탁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중국 국민 당의 애국주의, 민족주의의 고양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평가를 보인 것과도 사 뭇 대조적이다. 우리는 특히『대륙』이 발표된 시점이 1939년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때가 되면 일본 관동군과 ‘만주국’ 군의 치안숙정이 효과를 거두어 비적은 1932년 여름 최 대치 30만명에 달하던 데로부터 수백명으로 감소하며 최후의 무장 항일세력인 동북항일련 군(東北抗日聯軍)은 1939년 겨울부터 한만 국경에서 끝까지 추격되었다가 궤멸 수준에 이 른다. ) 한설야는 이 시점에서 반만항일 실패의 원인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앞 에서 살펴본 장학량과 그 휘하들의 부패와 타락 그리고 순수하지 못한 항일구국 때문이었다 고 한설야는 비판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설야가 1933년 10월 24일의『북국기행』에서 1930년의 간도공산당 사건에 대해 “『전부조선사람뿐이엇나요?』하고 물엇다.『웬걸 지금은 만인과 합작하고잇습니다.만주사람이아니면 그러케광범위에밋처거사하기가어렵고 또 잘숨어 낼수도 업지요. 무기나폭탄가튼것도 그사람이라야 마니변통할수잇지요.』『그래, 이런일이 종종잇나요?』『각금잇기는하지만 이번처럼 대규묘로한일은업습니다.사오도시를 한꺼번에 첫스니까 아마도몃천명일테지요.』” )라고 자세히 다룰 정도로 만주의 공산주의자들의 항일 운동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대륙』에서는 이들 항일세력 속에 공산주의자들 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5. 결론

이 글은 한설야의『대륙』에 나타난 현실인식을 살펴보는 것을 통하여 한설야가 오족협화
나 동아협동체론으로 대표되는 일본 제국의 담론을 일정부분 수용하고 그 틀 내에서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것이냐를 핵심적인 문제로 제기하고 그와 연관된 문제들에 대답하고자 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설야는 결코 일본 제국의 담론을 수용하지 않았고 그것을 원 천적으로 부정한 자리에, 즉 ‘만주국’의 건국 자체를 부정하는 자리에 서있었다. 한설야는 적어도 중국인의 땅인 대륙에서 이루어지는 오족협화 내지 동아협동체라면 평등한 관계에 앞서 주인인 중국인의 허락과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는 일본제국주의의 무력 에 의해, 침탈에 의해 구상된 동아협동체론의 근거를 부정한 것으로 동아협동체 내에서의 전향 사회주의자들의 한계를 간파하고 동아협동체의 존립근거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 다. 한설야는 대륙의 주인은 만주인 민간 토착세력이고 그들의 허락과 동의가 있어야만 일 본인이 만주에서 협화를 실현해나가고 그들의 이상을 실현해갈 수 있다고 보았다. 한설야는 또한 당대의 만주담론과는 전혀 반대되는 ‘만주국’에서 설 자리조차 없는 조선 인을 그려냈다. 이는 다른 작가들이 오족협화의 틀을 수용하거나 동아협동체론의 틀 즉 제 국의 담론을 수용하고 그 담론 내에서 다시 비판하려고 했던 것과는 달리 한설야는 ‘만주 국’ 건국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원천적으로 그것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무력 침략에 의해 세워진 ‘만주국’에서 조선인은 원래의 그 땅의 주인이었던 만주인들에게는 일본인의 앞잡이로 취급될 수밖에 없으며 일본인들에게는 또한 도구 정도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 그 래서 만주국에서 조선인은 설 자리조차 없다는 것이 한설야의 인식이다. 대륙의 주인은 만 주인이라는 것이 한설야의 확고한 인식이다.
이와 함께 의용군을 결성해 일본에 저항하는 항일세력이기는 하지만 온갖 착취와 폭정을 
일삼아 만주의 3천만 주민을 궁핍에 빠뜨리고 참상에 밀어 넣은 장본인인 장학량 역시 원 래도 대륙의 주인이 아니었지만 대륙의 주인이 될 자격을 상실한 대륙의 부랑아일 뿐이라는 것이 한설야의 인식이다. 한설야는 1939년의 시점에서 장학량 의용군의 부패와 무능, 타락 으로부터 반만항일 실패의 원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장학량 군벌의 순수하지 못한 항일구 국과 그 실패에 대한 예리한 비판은 카프작가로서 한설야의 이념적 성찰의 결과일 것이며 카프 이념에 대한 일관된 견지에 의한 것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설야는 정작『대륙』 에서는 이들 항일세력 속에 공산주의자들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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