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2

알라딘: 잠실동 사람들 정아은

알라딘: 잠실동 사람들

잠실동 사람들 
정아은 (지은이)
한겨레출판2015-02-02


책소개

<모던 하트>로 2013년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정아은의 장편소설. 

전작이 서른일곱 헤드헌터의 일상을 통해 학벌이 계급으로 작동하는 사회를 그렸다면
<잠실동 사람들>은 계급을 상승시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교육'을 좇는 엄마들의 이야기와 
그녀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더불어 불공정한 출발선이 시작되는 공간사까지 아우르는 소설이다.

'잠실'이라는 특정 공간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구성은 인물들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문학평론가 서희원"좋은 다큐멘터리 작가가 그렇듯이 최대한 대상에 밀접한 상태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며 관찰"한다고 평했다.

정아은의 <잠실동 사람들>은 단순히 아이를 매개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엄마들의 이기심을 다루지 않는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아이들 교육 얘기에 열을 올리지만, 그 사이사이 배어나오는 엄마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포착해낸다. 그리고 엄연히 학벌과 거주지로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지고 그 선을 벗어나는 반전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 현실을 속도감 있게 그려낸다.

작가가 묘사하는 이 사회의 민낯은 잠실동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싱크홀'보다도 더 거대한 싱크홀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가슴에 뚫려 있고,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이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붕괴하였다는 사실(서희원)"을 상기시킨다.


목차
1. 대학생 이서영
2. 지환아빠 허인규
3. 지환엄마 박수정
4. 어학원 상담원 지윤서
5. 과외 교사 김승필
6. 지환엄마 박수정
7. 파견 도우미 최선화
8. 원어민 강사 지미 더글러스
9. 해성엄마 장유미
10. 초등학교 교사 김미하
11. 해성엄마 장유미, 지환엄마 박수정, 태민엄마 심지현
12. 카페 주인 이태용, 박수진
13. 학습지 교사 차현진
14. 경훈엄마 강희진
15. 과외 교사 김승필
16. 해성아빠 고성민
17. 경훈엄마 강희진
18. 초등학교 교사 김미하
19. 대학생 이서영
20. 초등학교 교장 최정상
21. 지환엄마 박수정
22. 태민엄마 심지현
23. 해성엄마 장유미
24. 초등학생 허지환

해설 _ 싱크홀 서희원(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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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90 비록 나는 주류에 끼어들지 못했지만 내 아이들은 주류로 살게 하리라. 주류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선 주류가 되게 하리라. 한 번뿐인 인생, 아이들이 세상의 부와 권력을 실컷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집이 가난하다고, 촌년이라고 놀림당하는 설움을 자식들에겐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P. 158-159 몇 개월 전, 교육부에서 특목고 때문에 사교육이 극성을 부린다는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특목고 입학원서에 각종 경시대회 성적을 기재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바꾸었다. 그 방침이 발표되던 날, 아이 초등 시절부터 대치동 새벽 라이드라는 십자가를 감내해왔던 엄마들의 억장이 무너졌다. 이때까지 한 게 모두 헛짓이었다는 자괴감과 허무감이 좁디좁은 대치동 학원가 골목에서 눈치 보며 주차할 곳을 찾는 엄마들 얼굴에 무겁게 드리워졌다. 보내던 학원을 갑자기 정리하는 엄마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엄마들은 이내 예전의 태세로 되돌아갔다. 정성 들여 싼 도시락을 손에 들려 부지런히 아이들을 실어 날랐다. 정책이야 정권이 바뀌면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거고, KMO 입상자들을 대학 부설 영재원에서 뽑아가는 한 결국 그 아이들이 특목고로 직행할 게 뻔하다는 계산이었다.
“내 말 들었어?”
유미의 목소리에 짜증이 잔뜩 묻어 나왔다. 나라고 좋아서 아이를 새벽까지 내돌리겠는가. 특목고에 들어가면 대학 입시의 반은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이 뭔가. 거의 다 된 거나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6년. 힘들어도 그 기간만 이 악물고 공부하면 인생이 보장된다. 벌 수 있는 돈도, 남들에게 대접받는 정도도, 인생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정도도 모두 졸업한 대학의 명칭에 달려 있다. 이 뻔한 현실을 알면서 어떤 부모가 아이를 공부시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장의 편안함을 위해 아이의 미래에 대해 눈감아버리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어리숙한 인간들의 무책임한 이상주의이다.  접기

P. 278 이 여자는 필시, 자기 남편이 의사니까 자기도 그런 ‘급’ 사람들하고 어울려야겠다는 의식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어디 가서 판사나 의사나 변호사 같은 사람들, 혹은 그 배우자를 만나면 반색을 하고 덤벼든다. 남편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도 모르면서, 힘들게 맺은 과실만 쏙쏙 빼먹으려 하는 여자. 남편의 지위를 자기의 지위로 착각하고 ‘급’을 정하려 하는 여자. 희진이 육아로 힘든 와중에도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사회와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하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여자들과 어울리면서 시간 낭비하는 게 싫어서이기도 하다.  접기

P. 295 소영. 너는 ‘진짜’구나. 어디에서도 당당하게 너의 이력을 밝힐 수 있겠구나. 질투심과 자조감이, 소외감과 그리움이 범벅이 되어 밀려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것이 억울함. 그는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소영이 여러 번 대학원 시험에 떨어지고도 다시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인 그가 생활비를 벌어다 주었기 때문이었다. 소영이 대학원에 합격했을 때, 대학원을 졸업한 뒤 여기저기 보무당당하게 통역을 다닐 때, 그는 진심으로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소영의 성과가 모두 자신의 것과 다름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혼과 함께, 그 성과는 모두 소영만의 것이 되었다.  접기
P. 339-340 미하는 교실 뒤편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래, 떠나자. 어차피 교직에 염증이 날 대로 난 상태였다. 돌을 넘기기 바쁘게 온갖 종류의 ‘선생님’들의 서비스를 받으며 자라온 아이들에게 만만한 선생님들 중 한 명으로 취급받는 것도, 툭하면 찾아와 불평을 늘어놓는 학부모들에게 시달리는 것도 이제 신물이 난다. 그동안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수없이 많았지만, 가정 형편을 생각해 참았다. 당장의 생계도 문제였지만, 노후를 대비한 연금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참다 보니 근속 연수가 20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 해만 더 버티면 연금 수령자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태민엄마가 찾아왔을 때도, 해성아빠가 찾아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을 때도 남은 기한을 헤아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이런 수모까지 감내해가면서 교직을 지속할 수는 없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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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자신이 어떤 인간이 되어가는지 매일매일 자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사회의 속도와 나 자신의 속도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치하지 않는 속도를 맞추려다보니 내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들여다볼 수가 없다. 그러다 문득, 뒤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허다하다. 나도 모르게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내 뜻과 달리. 내 꿈과 달리. 이 소설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들도 어렸을 적엔 이런 어른이 되리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초등학생 지환이의 소설 속 마지막 말. 다친 새를 안고 따뜻하다고 외치는 그 말에 대해 오래 생각해본다. - 윤성희 (소설가) 

<잠실동 사람들>은 서민들의 거주지였던 잠실 주공아파트 단지가 철거되고 그 자리에 재건축된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파노라마식으로 묘사하고 있는 소설이다. 과거 박태원의 <천변 풍경>이 그랬던 것처럼, 특정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의 동선과 이곳에서 경험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소설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 은 ‘잠실’이라는 문제적 장소에 대한 관찰과 묘사를 통해 주제의 핵심을 탐색하고 있는 작품으로 이해된다. 정아은의 <잠실동 사람들>이 흥미로운 것은 좋은 다큐멘터리 작가가 그렇듯이 최대한 대상에 밀접한 상태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며 관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 서희원 (문학평론가)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5년 2월 5일자

줄거리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
새마을 시장 뒤편 빌라촌 반지하 셋방에 사는 여대생 서영은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원하지 않는 ‘알바’를 한다. 그녀는 상업지역의 각종 소음이 들려오는 가운데 이를 악물고 알바 시간을 견뎌낸 뒤 문을 열고 나가는 알바 상대의 뒷모습을 보며 주저앉는다. 서영의 알바 상대였던 허인규. 두 아이의 아빠이자 회사원인 인규는 서영의 집에서 나온 뒤 시장 골목을 빠져나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로 돌아간다. 재건축으로 올린, 신축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인규는 방금 빠져나온 여대생의 거주 공간을 생각하며 자신이 귀가하게 될 깔끔한 아파트를 경이로운 시선으로 올려다본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무리하게 대출을 해서 잠실로 이사들어온 인규의 아내 수정은, 주변 엄마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고군부투하며 하루를 보낸다. 수정의 아이 지환이 레벨 테스트를 받은 어학원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는 윤서와 지환의 과외교사로 일하게 된 승필 등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고층아파트 내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나는 ‘담임 교사 퇴출 사건’을 향해 나아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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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정아은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2013년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 《잠실동 사람들》 《모던하트》 《맨얼굴의 사랑》, 에세이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등을 썼다.
수상 : 2013년 한겨레문학상
최근작 :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 총 2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 정아은의 신작
“모든 것은 일상적이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 일상이 문제다(서희원 문학평론가)”

칼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는 고층 빌딩 숲과 재래시장과 낮은 빌라촌이 공존하는 곳,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모던 하트>로 2013년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정아은의 신작 장편소설 <잠실동 사람들>이 출간되었다. 전작이 서른일곱 헤드헌터의 일상을 통해 학벌이 계급으로 작동하는 사회를 그렸다면, 신작 <잠실동 사람들>은 계급을 상승시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교육’을 좇는 부모들과 ‘교육’으로 먹고사는 학교 선생님, 원어민 강사, 과외 교사, 학습지 교사, 어학원 상담원 들이 벌이는 분투기, 더불어 불공정한 출발선이 시작되는 공간사까지 아우르는 소설이다.
‘잠실’이라는 특정 공간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구성은 인물들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문학평론가 서희원은 “좋은 다큐멘터리 작가가 그렇듯이 최대한 대상에 밀접한 상태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며 관찰”한다고 평했다.
정아은의 <잠실동 사람들>은 단순히 아이를 매개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부모의 이기심을 다루지 않는다. ‘교육’시장에 아슬아슬 매달려 있는 대학생, 주과목이 아니라서 홀대받고, 태어나서 줄곧 교육 서비스 대접에 익숙한 아이들과 학부모를 매일 마주해야 하는 선생님, 모욕감, 치욕감을 견디면서 엄마들 눈치를 살피는 과외 교사와 학습지 교사, 입시에 악착같이 매달린 듯 보이지만 아이의 미래에 대한 확신보다는 떠도는 소문에도 쉽게 흔들리는 갈대 같은 부모 등 다양한 삶의 주체들이 살아가는 생의 단면을 제시한다. 또한 엄연히 학벌과 거주지로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지고 그 선을 벗어나는 반전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 현실을 속도감 있게 그려낸다.
작가가 묘사하는 이 사회의 민낯은 잠실동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싱크홀’보다도 더 거대한 싱크홀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가슴에 뚫려 있고,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이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붕괴하였다는 사실(서희원)”을 상기시킨다.

모든 것은 일상적이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 일상이 문제다

<잠실동 사람들>의 중심에는 초등학교 2학년 같은 반 아이들을 둔 지환엄마, 해성엄마, 경훈엄마, 태민엄마가 있다. 대출 한계를 채워가며 무리해서 잠실 아파트로 들어오거나 미국 유학, 직장을 포기하고 아이 교육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엄마들이다. 아이들 옆에서 전전긍긍하면서도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 옳은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이것도 아이들의 복지와 엄마의 일이 상충되는 부분이다. 아이들을 학원으로 돌리려니 돈만 들고 제대로 된 교육을 못 시킬 것 같고, 직접 끼고 가르치려니 엄마가 일을 많이 못 하고. 결국 육아와 여자의 일은 서로 반목할 수밖에 없는 걸까. 희진은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깝다. 펼쳐진 탄탄대로를 버리고 페이닥터로 주저앉은 것도 결국 육아 때문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한번 육아를 손에 잡고 나니 도저히 놓을 수가 없다.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당장에 아이를 끌고 들어가는 엄마들과 달리 장대비로 바뀔 때까지 아이를 빗속에 방치한 채 모여 수다를 떠는 조선족 시터들의 모습을, 제 키보다 높은 미끄럼틀에 올라가 무섭다고 우는 네 살짜리 아이에게 혼자 내려오라고 친절하게 말한 뒤 앉아서 스마트폰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조선족 시터의 모습을 보아버린 뒤로는 남에게 아이들을 맡길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의사로서 성장하기는 다 틀린 걸까. 이대로 남의 병원에 정부 보조금 늘려주는 페이닥터나 하다 끝나는 걸까. 수백 번도 더 해왔던 생각이 다시 머릿속을 채웠다. 영원히 결론 내지 못할 해묵은 문제가. (280쪽)

한편, 잠실동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잠실 고층 아파트를 바라보는 속내가 더 복잡하다. 삼성동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자란 과외 교사 김승필과 잠실동에서 원주민으로 자란 학습지 교사 차현진이 지닌 이주의 역사는 서울 강남권 개발의 역사와 맞물린다. 상전벽해라는 말처럼, 한순간 모든 풍경이 변하는 사회의 속도는 개인이 쫓아가기엔 너무나 벅차고 과거 또한 빠르게 잊힌다. 현재의 고층 아파트를 보며 한 번도 아파트에 살아본 적 없던 김승필은 자신도 모르던 열망이 솟구친다.

낡은 아파트를 허물고 재건축해 지었다는 이 세 단지의 고층 아파트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는 사람들이 왜 아파트, 아파트, 타령하는지 알게 되었다. 걸어 다닐 때 불안하지 않은 곳, 즐비하게 주차된 차들 때문에 신경전을 벌이지 않아도 되는 곳. 그것이 아파트였다. (중략)
많이 벌어서 이런 아파트를 살 것이다. 착하고 잘 웃는 여자를 만나 살림을 꾸릴 것이다. 아이를 낳아 이런 유모차에 태우고 다닐 것이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웃음이 나왔다. 사실 아파트가 미치도록 갖고 싶다거나 재혼이 너무너무 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승필은 그 생각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런 열망이 생겨난 게 어딘가. 집에 틀어박혀 떠나버린 여자를 생각하며 시간을 죽이는 것보다 백배는 나을 것이었다. (288-289쪽)

유년기의 추억이 사라져버린 고층 아파트를 바라보는 차현진은 씁쓸하다. 허울 좋은 재개발은 집값을 천정부지로 올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을 동네 밖으로 축출했다.

현진은 두리번거리며 자신이 살았던 동이 어디에 있었는지 가늠해보려 했지만, 그게 지금의 분수대 자리에 있었는지, 227동 자리에 있었는지 도통 구분이 되지 않았다. 과거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려주는 표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서, 리센츠가 주공아파트 2단지를 재건축한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없었다면 지나가다 봐도 여기가 자신이 자란 동네라는 걸 모를 것 같았다. 옆에 있던 1단지와 건너편에 있던 3단지까지 엘스, 트리지움이라는 초고층 아파트로 탈바꿈해 있어 과거를 떠올리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중학교와 고등학교 건물은 예전 모습 그대로여서, 그 자리를 바탕으로 자신이 살았던 동을 어렴풋이 가늠해볼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걸까. 이럴 거면 아예 동 이름도 바꾸지, 왜 그대로 잠실2동이란 이름을 유지하고 있을까? 현진은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아예 동 이름을 바꾸고 중?고등학교까지 싹 쓸어버렸다면 이 아파트가 자기가 살았던 아파트란 생각도 들지 않았을 테고, 고층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억하심정을 갖지도 않았을 것 아닌가. (245-246쪽)

정아은 소설가는 가진 사람들과 갖지 못한 사람들이 나뉘기 시작한 지점을 찾고, 시간이 흐를수록 견고해져만 가는 계급사회를 인물들의 입을 통해 서술한다. 중심부에서 밀려난 제각각의 사연과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는 잠실동 초고층 아파트 안의 삶과 비교되면서 소설 안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특히 지환엄마, 해성엄마의 집에서 도우미 일을 하는 최선화는 아이 셋을 둔 엄마이면서 가장이기도 하다. 풍족하지 않아도 부족함 없이 살던 일상은 어느 날 동네가 뉴타운으로 지정되면서 작은 균열이 일어난다. 이주 대신 새 아파트의 임대주택으로 입주했는데, 아이들은 학교에서 놀림을 받게 되고 전파상을 하던 남편이 단골이었던 이웃들을 잃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첫째 화영이는 미혼모가 되었고, 둘째 서영이는 집을 나가고 연락두절 상태다. 언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동네를 옮기지 않았다면 하고 선화는 늘 되짚어보지만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다. 한편 집을 나온 뒤, 근근이 버티고 있는 대학생 이서영에게도 앞날이란 암울하기만 하다.

나는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 청운의 뜻을 품고 대학에 들어올 때만 해도 로스쿨 등록금을 걱정했지, 대학 등록금을 걱정하진 않았다. 올 초에 하남 집을 뛰쳐나온 뒤,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했다. 과외, 편의점 알바, 고깃집 서빙 등 손에 잡히는 일을 닥치는 대로 했지만 돈은 좀처럼 모이지 않았다. 목이 터지게 아이를 가르치면 과외 알선업체에서 과외비의 반에 가까운 금액을 떼어갔고, 편의점 일은 시급이 너무 적었다. 고깃집 일은 시급이 높은 편이었지만 일을 마치면 너무 피곤해서 학교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벌어도 카드 회사에서 빌린 대출금에 대한 이자를 물고, 책값을 대고, 방세에 식비와 교통비, 통신요금을 내면 남는 게 없었다. 대학의 하루하루가 모두 돈으로 메워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무렵, ‘알바’를 하기 시작했다. 낯선 남자의 몸을 견뎌야 하는 데에 회의가 들면 엄마와 언니를 생각했다. 구질구질하고 고단한 삶. 평생 그렇게 살 것인가. (370-371쪽)

이 외에도 ‘빌라 사는 애들’ 운운하며 학원을 평가하는 엄마들을 대하는 어학원 상담원 지윤서, ‘눈이 파란 백인’으로 학부모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원어민 강사 지미 더글라스, 학력과 경력을 속인 채 실력만으로 평가받길 원했던 과외 교사 김승필, 자신의 아들은 집에 두고 잠실 엄마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습지 교사 차현진 등의 시선은 “동(洞)이라고 지칭하기보다는 ‘성(成)’이라고 부르는 것이 좀 더 적절한” 잠실동 고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잠실동 사람들>을 통해 정아은은 ‘무엇’을 위해 달리는 줄도 모르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그 안에 소속되고자 하는 절실함을 서술한다. 생존을 위해 존재를 부정당하는 치욕감, 모욕감, 불쾌감을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그림자까지 생생하게 그리는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기억을 잃고, 맹목이 되어가는 우리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거울 같은 시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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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이 높은 스토리텔링. 리얼한 관찰. 노골적일만큼 솔직한 문체. 읽어볼만 해요~  구매
하늘보기 2016-01-16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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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식탁 주문 후, 약속한 날짜에 안온다고 직원 개무시하더니, 남편이 하는 일 안풀려서 상황이 심각하다고 하니 직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걸 보고있자니 ... 과연 인간은 타고난 인성때문에 갑질을 하는건지 아님 돈많다는 벼슬로 갑질을 하는건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  구매
뉴희 2017-08-28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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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감 있고 잼있는데
뭔가 모지라  구매
hydrozoa 2016-03-20 공감 (2) 댓글 (0)
Thanks to
 
공감
     
말로만 듣던 문제들이 사람이 되어 움직이는 걸 보니 또 새로운 충격으로. 리얼한 포착.  구매
웽스북스 2015-08-20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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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한하지 않은 이들의 궁박한 이야기. 부박했다. 우리의 삶이.  구매
TellYouMore 2015-04-1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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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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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동 사람들,작가 정아은의 소묘와 통찰 새창으로 보기
캐슬,팰리스, 아파트 이름이 거창해졌다.

영어 이름이 아우라를 뿜어내고, 40층에 다다르는 거대해진 몸집은 주변을 누르고 위용을 과시한다.

그렇게 잠실주공 아파트 단지는 서민들의 주거지에서 거대한 성곽으로 변모했다.

언제부터인가 어디에 사는지는 사람의 많은 면모를 파악하는 수단이 되었다. 금융가 PB들에게도 고객이 물어보는 질문이 어디 사느냐라고 한다.

성곽속의 사람들은 어떤 존재들일까?

오가다가 깔끔한 간판을 보고 임대료 많이 나가겠구나 그러니 가격을 올리겠군 하는 생각은 해본다. 일하다가 잠시 카페와 베이커리는 들러보지만 힐끔 보는 것으로 속까지 알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대안이 있다. 바로 이 소설이다.

작가 정아은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여러 사람의 여러 시선을 모아 큰 그림을 그려내 나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주인공들은 거주민과 주변인으로 나뉜다.

거주민의 색깔은 주변인의 시선으로 더 잘 구별된다. 아파트 가격에 민감하고, 자가냐 전세냐는 차이도 있지만 공통적으로 애들 교육에 집중한다.

어렸을 때는 영어에 목 매단다. 부모세대는 영어 컴플렉스가 크다. 영어 하나만 잘 해도 성공하는 주변 동기들을 봐았기에 영어 약점을 대물리지 않으려는 집념이 매우 강하다. 영어교사, 원어민 등의 우대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아이 하나를 놓고 8개 뺑뺑이 돌리는 집들도 나타난다. 덕분에 여러가지 부작용이 나온다. 

그 중 하나가 아이들이 교육을 소비로 인식하게 된다. 영어를 배우는데 원어민이 나오는 학원에 비하면 학교선생님 발음은 촌스럽다. 그러다 보니 교육자로 선생님을 대우하지 않게 되고 덕분에 초등생도 "씨발"이라는 욕설을 선생에게 내뱉는다.

맥도날드가 아이들에게 돈내밀어 햄버거 사게 되면서 서비스를 싸게 만들어 버릇없게 만든다는 분석이 있었다. 지금 아이들에게 학교는 수많은 교육서비스 중 하나다. 자판기 처럼 돈 넣으면 물건이 나오는데 학교만 예외적으로 따지는 게 많다.



이런 아이들은 경주마로 비유할 수 있다.

어머니들은 집단 레이스에 뛰어든 경주마들의 후원자들이다. 먹이다가, 조련에도 참여하고 정 급하면 같이 뛰어들어 달리기를 한다.

심판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대는 모습이 나타나니 참 웃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비현실적이지 않다.

요즘 회사에서는 헬리콥터 맘에 의해 신기한 현상들이 나타난다. 면접 후, 연봉협상, 승진 심사 등 쉬지 않고 헬기맘들이 불쑥 나타나니 조직원들은 당황하게 마련이다.



이런 입주민 공간의 차별성은 주변인들의 시선을 통해 더 드러난다. 

가사도우미,과외선생,학습지교사 등 주변인들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을'이다. 주변에서 걸어들어와 여기로 일하러 오는 이들의 삶에는 다 약점들이 있다. 경제적 약자가되는데는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사연들은 대를 이어 물림이 된다.



따지고 보면 교육을 잘해서 자식에게 현재의 삶을 물려주거나 더 낫게 만들려는 입주민의 열의도 대물림이다.

부도 가난도 대물림이 되는 것인가?

저자의 전작의 말미를 보면 사회의 봉건화에 대한 짙은 우려가 후기에 적혀 있다.

경로의 고착화.

사는 곳은 그대로 신분이 되는 것.



캐슬은 봉건을 상징한다. 영주와 마름, 하인과 농노가 있다.

입주민과 주변인의 삶들은 캐슬 시대의 삶들과 연결이 된다.

그리고 성장률이 낮아짐과 캐슬들의 성장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 

인간은 꿈이 클 때 최대한 자신을 열정으로 불태우는 존재고, 불타는 에너지의 모음이 성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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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16-05-01 공감(1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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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동 사람들 새창으로 보기
자투리 시간 짬짬히 재미있게 읽었다. 다큐작가가 쓴 소설 같은 느낌. 작가도 내또래지만, 등장인물마다 장이 바뀌면서 서술시점도 바뀌는데 제목이 곧 등장 인물 이름이며, 그 옆에 괄호하고 생년이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대다수 인물이 1978~ 1971 등등으로  현실에서 내가 만나는 아이친구 부모들의 생년과 겹친다. (게다가 가깝게 지내는 둘째아이 친구네는 이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잠실(엘스아파트)로 내년 하반기에 이사를 간다고 한다.)

이 소설의 키워드는 교육이다. 5층 주공을 허물고 세워진 리센츠 엘스 등으로 명명되는 대단위 잠실 아파트 단지를 배경을 한 이야기이다. 툭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했던 해성 엄마의 아들은 사실은 꾀병일 뿐이었고, 서영과 원조교제를 하던 지환아빠는 아내에게 발각됐지만 세컨드 운운하는 부부싸움으로 끝났고, 몇몇 엄마들의 충동질로 담임반 아이들의 집단 등교 거부에 비관해 음독자살을 시도한 교사는 결국 죽지 않았고, 비극적인 결말로 이르지 않았다.  

즉, 스토리를 파국으로 치닫게 하여 이야기를 쭈욱 밀고 나가는 형식이 아니라서, 진짜 우리가 보는 이웃들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누가 말했더라,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부모의 재력과 시간을 갉아먹으며 성장하는 아이들...

이 나라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힘들의 우열은 어떻게 결정되었으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계급을 재생산한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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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6-10-31 공감(1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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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동 사람들] 재건축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다큐엔 욕망이 가득해. 새창으로 보기
[잠실동 사람들] 재건축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다큐엔 욕망이 가득해.

 

인간의 욕망은 아마도 본성이겠지. 대개 없으면 부러워 하다가 가지게 되면 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하니까 말이다. 지나친 욕심이 불행을 가져오는 줄 알면서도 인간의 욕심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지나친 욕망이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함을 알면서도 내려놓는 게 쉽지가 않다.

 

서민 아파트 재건축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일상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욕망이라는 아파트에 사는 인간군상들의 다큐멘터리 같다. 멈추지 않는 욕망의 전차를 탄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제목처럼 이야기의 배경은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이다. 서민의 안식처였던 잠실 주공 아파트가 철거된 후 재건축으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 기존의 원주민들은 자의든 타의든 서서히 밀려나게 되고 돈을 가진 이들과 아이들 교육을 통해 신분상승을 노리며 교육 특구인 강남을 찾는 입주민들로 채워지게 된다. 그 결과, 강남의 공교육과 사교육은 이들 아파트 입주민들에 의해 휘둘리게 되는데......

 

불광동에서 살다가 강남의 잠실로 이사 온 후로 손이 커져버린 지환 엄마 수정은 주변의 엄마들과 수준을 맞추기 위해 외국 제품을 구입한다. 이름난 어학원을 보내기 위해 영어 과외를 시작한다. 축구부 엄마들을 따라 얼굴 잡티제거에 돈도 들이지만 늘 다른 엄마들 수준에 맞출려니 버겁기만 하다. 더구나 아들 지환은 동물엔 관심이 많지만 공부엔 별 관심이 없어서 교육 효과도 없는 것 같다.

 

학부형의 리더 격인 해성 엄마는 두 아이를 수학 영재원에 보내서 특목고를 목표로 하는 열혈 엄마다. 자신의 젊음을 바쳐 아이들의 학원 스케쥴을 관리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폐쇄공포증을 겪는 등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어학원 상담원인 윤서는 잠실동 원주민이었다가 밀려난 경우다. 그녀는 여고 시절에 당한 왕따 경험으로 불안과 강박증으로 괴로워한다. 최근엔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다. 삼성동의 역사와 함께 자랐던 김승필은 이혼 후 지환의 영어 과외 선생이 되지만 학력이나 경력을 추궁하던 아파트 엄마들에 의해 과외를 그만두게 된다.

 

아파트의 파견 도우미 할머니는 도우미를 하면서 아파트 아이들의 옷을 받아 손자에게 입히며 늘 아파트 주민들을 부러워 한다. 할머니의 첫째 딸 화영은 고등학교 때 아이를 낳은미혼모고 둘째 딸 서영은 집을 떠난 지 오래다.

 

논술 학습지 교사 차현진, 독일어 교사였던 카페 주인, 카드 회사에서 대출받은 등록금을 갚기 위해 지환 아빠와 매춘을 하는 스무 살 대학생 서영, 일주일을 꼬박 논술과 영어, 학습지와 학원에 휘둘리는 아이들, 불안정한 직장인들, 자신의 생각만큼 따라오지 않는 아이들을 걱정하는 엄마들, 쌓인 분노를 욕으로 표출하는 아이,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담임, 담임교사 퇴출 운동과 자살 미수 사건, 자신의 입신양명에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는 교장, 자신을 탓하기 보다 남을 탓하며 학교 수업을 보이콧 하는 학부모들, 입시와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신음하는 아이들, 사교육비에 휘청거리는 아빠들 등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잘못된 교육과 왜곡된 사랑에 휘청거리는 모습이 어디 강남 엄마들 뿐일까. 읽는 내내 잠실동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과 좁은 빌라촌에 사는 주변 인간들의 대비가 너무나 극명해서 읽기 불편할 정도였다. 건장하고 활동적인 어른들도 그렇게 살진 않는데, 숨 돌릴 틈이 없는 아이들의 시간표에 숨이 턱턱 막혀올 정도다.

 

 



 

 

교육을 계급상승의 절호의 기회로 삼는 엄마들의 치맛바람과 그와 연결된 과외 교사, 학습지 교사, 학원 강사, 담임교사, 입시와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신음하는 아이들, 사교육비에 휘청거리는 아빠들의 모습이 우리 사회의 불편한 모습 그대로다. 마치 재건축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욕망 다큐멘터리를 본 느낌이다. 비릿하고 속물 근성인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마주한 느낌이다.  어둡고 칙칙한 강남 교육의 민낯과 속살을 마주한 느낌이다. 한국 교육 이대로 괜찮은가. 한국 사회 이대로 브레이크 없이 질주할 건가. 읽는 내내 참담했던 소설이다.

 

<모던 하트>로 제 1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정아은의 장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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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덕 2015-04-17 공감(9)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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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올라야 새창으로 보기 구매
「오르막길」이라는 노래(윤종신 작사)가 있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소설을 읽어가는 동안 종종 이 노래의 앞부분 가사가 생각났다. 노래 후반부에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 곳’이 나오지만, 소설 속 현실에서의 정상은 어디쯤일까 가늠되지 않는다.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글에 묘사된 상황을 금방 끄집어내 다큐라 칭한다 해도 전혀 과장된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나를 짓누른다.

 

누가 주인공이랄 것도 없이 소제목으로 등장하는 16명의 사람들이지만,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가장 많이 나오는 지환엄마 수정이라 생각한다. 그녀에게서는 ‘경계’가 연상된다. 잠실동에 살지만 대치동을 바라보고, 잠실동과 빌라 촌 사이에서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안정된 소속을 갖지 못한 인간처럼 불안정한 모습은 그녀의 이름처럼 금방이라도 깨질 듯 ‘수정’을 닮아있다. 지환의 담임교사 미화를 겨냥한 집단 시위에 완전히 동조하지도 못하고, 강하게 거부하지도 못하는 모습은 우리 주변 흔한 엄마들의 모습이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서도 독자적으로 행동하기에는 감수해야 할 것들이 많기만 하다.

누구누구의 엄마로 불리는 보다 많은 엄마들은 이렇듯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주류에 휩쓸려 간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스프링 벅의 질주처럼 씁쓸한 현실이다.

 

3월 들어 미니의 두통이 벌써 두 번째다. 오후 3시 55분에 7교시 수업이 종료되면 청소, 종례를 마치고 4시 반 정도에 집에 도착한다. 저녁인지 간식인지 애매한 식사를 하고 5시 반에 학원가는 버스를 탄다. 저녁 8시 40분에 집으로 와서 출출해진 배를 다시 채우고 만만치 않은 학원 숙제를 마치면 밤 11시가 넘는 건 다반사다. EBS로만 집에서 공부하다 올 초부터 달라진 일과이다. 병원에서는 감기라고 하지만 엄마가 보기에는 심리적인 요인도 다분히 섞인 듯하다. “학원가기 힘들어서 아픈 거 아냐? 힘들면 그만 다녀도 돼.”“정말 아픈 거야. 힘들지만 다니긴 다녀야지…….”무조건 학원을 강요하진 않지만, 말끝을 흐리며 힘없는 답하는 아이의 말 속에 소설 속 아이들의 모습이 느껴진다. 마음이 무겁다.

 

어디서부터 잘못 꿰어진 걸까?

지난 해 전국 4년제 대학의 한 학기 평균 등록금이 318만원이라 한다. 대학 5학년생들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대학생 서영이 살아가는 모습은 그래서 낯설지 않다.

교육 현장은 ‘교육 시장’이라는 용어가 어색하지 않은 공간이 되어버렸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사고 팔 듯 최상의 가치를 얻기 위해 사람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몰아치는 분위기에 아이들의 영혼이 휩쓸리듯 쓰러진다.

지환아빠 인규를 통해 묘사되는 조직 사회의 먹이사슬, 어학원 상담원 윤서와 과외교사 승필, 원어민 강사 지미, 학습지 교사 현진이 보여주는 사교육의 현장은 구석구석이 적나라하다.

어디부터 되돌려져야 할까?

허구라 밝힌 작가의 말에도 불구하고 초등교사 미화를 둘러싼 사건들은 생생하고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알고 보면 나름의 이유들이 있지만, 때로는 목적을 상실한 채 무모한 방향으로 거침없이 진행되어가는 일들에게서는 두려움조차 느껴진다. 소설보다 더한 현실은 묵직한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처음부터 끝까지 갑갑한 마음이 들던 책. 결코 유쾌하지 않음에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그들의 부모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대로 살게 할 수는, 이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끝도 모를 오르막길을 강요당하는 어린 영혼들이 하루 빨리 평평한 곳에 앉아 바람 부는 풍경을 바라보는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expensive’의 비교급은 몰라도 다친 비둘기를 안아 따뜻한 체온을 느낄 줄 아는 초등학생 지환의 모습에서 희망의 빛줄기를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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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3-30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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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현실적인 새창으로 보기
이 책은..하..소설인지 다큐인지. 진짜 추천사에 나온 표현처럼 ‘하이퍼리얼리즘’ 그대로 이다.
잠실 주공아파트가 재건축되고 들어선 고층아파트에 입주해서 살고있는 중산층 입주민들은-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초등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대치동에 진입해서, 자신의 아이들이 최고의 교육을 받고, 최고의 학교로 진학해서 이 나라의 상류층에 당당하게 입성하기를 원한다. 그들과 그들의 주변 인물들, 학습지 선생님, 과외선생님, 학교, 교사, 도우미, 고학생 들의생활, 생각을 극명하게 대비하여 그리고 있다. 그리고 사람만이 아니라 길 하나만 건너면 환경이 완전히 (?) 바뀌는 빌라촌에 대한 대비도 치밀하다.

너무나 현실적이고,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읽는 내내 숨이 막혔다. 언급되는 여러 사건들도 뉴스로, 풍문으로 들었다. 그 치열한 상황을 나도 겪어 봤기 때문에 갑자기 훅, 10여년 이전으로 돌아간 기분마저 들었다. 나의 모습은 그 중 누구였을까.아이 셋을 키우면서,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서야 온몸으로 겪고 아파한 후에야 알았다. 그리고 이제는 한발 물러서서 볼 수 있는 나이가 되고, 아직도 그 상황은 여전히 진행중임을 알기에 안타깝다. 아마도, 내 아이들도, 자신의 아이를 가지면 또 그렇게 안달복달하게 되지 않을까 싶고.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이 떠올랐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인간애를 보여주며 희망을 보여줬던 정세랑의 소설과 다르게, 이 소설, ‘잠실동 사람들’은 담담히 현실 그대로를 묘사한다. 그래서 희망도 없다.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이 그 곳을 떠난 모습만 그리고 있다.

아이들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그렇게 키워야 하는데. 우리는, 우리 사회는, 우리 시스템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그렇게 운용되고 있는가? 답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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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울립 2022-04-20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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