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3

염운옥 [낙인찍힌_몸: 흑인부터 난민까지, 인종화된 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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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운옥, <#낙인찍힌_몸: 흑인부터 난민까지, 인종화된 몸의 역사>(돌베개, 2019)
읽는다 읽는다 하다가 읽었다.
흑인으로 태어났다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러 이유로, 아예 몸에 낙인을 찍어, 노예로 부리고 차별해온 인류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분석하고 정리하고 비판한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차별(의 정당화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서양사의 차원에서 보면, 유럽인이 비유럽인과 만나는 '접촉지대'에서, 아니 서양인이 비서양을 정복해가는 과정에 인종 개념이 생겨났다.(27)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권에서는 오늘 백인의 원조격인 서.북유럽은 야만인 지역이었고, 흰 피부는 흐리멍덩한 경멸적 색이라는 뉘앙스도 있었다고 한다.(41)
하지만 17,8세기 들어 상황은 역전되기 시작했다.
서.북유럽 백인 중심의 인종주의는 순혈주의로 흘렀고,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흑인이라는, 이른바 "한 방울 법칙"(one-drop rule)이 생겼으며, 오늘까지 통용되기도 한다.(85)
가령 골퍼 타이거 우즈의 혈통은 1/8 백인, 1/8 원주민, 1/4 타이인, 1/4 흑인, 1/4 중국인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냥 '흑인 골퍼'로 여겼다. (87).
1983년 루이지애나주 흑인 규정법에는, 32분의 1 이상의 흑인 피가 섞인 사람은 흑인이라는 법이 있었다. 그에 따라 외견상 완벽한 백인이었지만, 5대조 조상 중 한 명이 흑인이었다는 이유로 여권에 흑인으로 규정되었던 사람이 주법원에 제소했다가 패소하기도 했다고...
이 '한 방울 법칙'에 대해 아이티공화국의 뒤발리에 대통령은 아이티 국민의 98%가 백인이라는 조롱조의 비판을 한 적이 있다. 백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인 이가 98%는 되니 아이티 국민의 98%는 백인이라며... 백인 중심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적 조롱이었다.(88)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는 흑인을 호명하는 주체는 흑인이 아닌 백인이며 거기에 작동하는 일종의 권력 관계를 비판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흑인'이 기표라면 기의는 '열등성'으로 작용하다 보니(104) 피부색이 밝은 흑인이 백인 행세를 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고, 유대인이 독일인으로 동화되려 애쓰거나, 일본인이 되려는 조선인이 생기거나 하는 씁쓸한 일들도 많았고 지금도 그렇다.(99)
노예는 당연히 노예가 아니었다. 노예가 되기전 아프리카인은 마을의 건실한 농부였고, 솜씨좋은 수공업자였으며, 강인한 전사였다.
과거에 노예제라는 불행한 역사가 있었다는 두루뭉수리의 표현이 아니라, 영국 백인이 아프리카사람을 권력을 이용해 노예로 부렸다는 정확한 사실을 드러내야 한다.
흑인 여성에 생식기 중심의 성적 판타지를 불어넣어(158) 흑'인'을 동물적 검은 '육체'로 여기던 백인 남성의 동물성을 드러내야만 한다. 현대 포르노그래피는 흑인 여성에 대한 포르노그래피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피부색, 성 모두에 권력관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167~)
흑인여성이 백인 농장주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다시 노예가 되는 악순환을 끊고 자신의 딸을 살해함으로써 백인의 노예재산제도에 저항하고 노예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흑인의 극단적 저항의 사례들도 있다. 자식살인, 노예제에 대한 저항, 흑인 주체성 회복의 선언이 뒤섞여있는 이 사건은 인종차별의 당사자가 당하는 고통의 정도를 잘 보여준다.(205)
오늘의 이스라엘은 인종주의의 최대 피해자이지만, 그들 역시 2018년에 민족국가법을 통과시키면서 이스라엘을 유대인 중심의 국가로 규정함으로써 비유대인을 변방으로 내몬다.(212) 같은 이스라엘 국민인데도, 900만 이스라엘의 20%나 되는 아랍계 주민을 배제한다. 서유럽계 유대인이 아프리카(가령 에티오피아)계 유대인을 차별한다.(252,256) 인종주의의 피해자가 인종주의를 활용해 다시 가해자의 자리에 서는 모순이 유대인의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차별주의는 예수가 여자에게서 생겨났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기존 남성중심적 신학과도 연결되고,(186)
이슬람에서 여성의 베일(부르카, 니캅, 히잡,...) 문제로 이어진다.
이때, 이슬람 여성에게 베일은 차별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 여성의 주체적 관점을 드러내는 계기도 된다는 사실은 인상적이다.
가령 부르카와 같은 베일은 여성이 '보여지는'(seen) 대상을 넘어 '보는'(seeing) 주체로서 자리매김할수 있게도 한다는 점에서 이슬람 여성주의의 능동성을 생각하게 해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부르카를 쓴 이슬람 여성에게 능동적 관찰자의 자리를 부여하기도 한다는 해석은 부르카의 재발견이기도 했다.(295)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는 이주민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 내가 언젠가 만난 적이 있는 미얀마 이주민 소모뚜가 한국에서 쓴 다음과 같은 고백시는 한국인의 차별문화를 잘 보여준다: "어머니..얼마 전에 책을 한 권 읽었어요. 어머니, 링컨이라는 사람이 노예제도를 없앴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아니예요. 어머니, 여기서 와서 우리를 좀 보세요. 링컨은 그들의 나라만 바꿨어요..."(353)
쩝...
피부색은 상관없다는 컬러블라인드니스(colorblindness)는 그저 이론일 뿐, 현실은 저마다의 이유로 피부색을 차별하는 컬러리즘(colorism)의 세상, 인종주의가 여전히 횡행하는 세상이다.(9)
나도 우리도 너희도 그렇게 차별당하고 차별하며 산다.
인종주의가 현실에서 다양한 옷을 입고 횡행한다.
두고두고 유효한 책일 것 같다.
이 책에서 다루는 영역, 지역, 쟝르는 넓고 깊다.
이 정도의 글을 쓰기 위해 흘렸을 땀의 양에 머리가 수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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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찍힌 몸 - 흑인부터 난민까지, 인종화된 몸의 역사 염운옥 (지은이)돌베개2019-07-15 448쪽
책소개

2019년 7월 초, 디즈니사에서 실사화 예정인 <인어공주>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인어공주 역에 흑인 배우인 할리 베일리를 섭외한 것에 대해 ‘빨간 머리에 하얀 피부’인 에리얼의 모습을 훼손하는 선택이라는 반대 여론이 생기면서 인종차별 문제로 대두됐던 것이다. 이에 대해 디즈니는 애초의 계획대로 확정하며 일단락됐으나, 21세기에 그러한 타국의 뉴스를 접하는 일이 반가울 리 없다. 그러나 어디 국외뿐일까. 일상적인 인종차별 및 혐오 발언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곳이 바로 이곳 아니던가. 일례로 타임지 선정 영향력 있는 10대로 선정된, 한국인 최초 흑인 모델인 한현민 씨가 한국에서의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다”라고 고백한 것이야말로 한국사회의 인종주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까. 왜 충분한 문제의식이 공유되고 있음에도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은 사그라지지 않을까. 인종주의의 역사는 어느 편에 손을 들어주며 흘러왔던 것일까. 우리는 인종차별의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쉽지 않은 문제일수록 역사 속에 실마리가 있는 법. 『낙인찍힌 몸』과 함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답을 풀어보자.
목차 들어가는 글 1. 인종에 갇힌 몸들 인종 개념의 기원과 형성 린네의 분류학 빙켈만의 미학 안면각과 두개측정에서 인종 사진까지 2. 검은 몸의 노예, 저항의 언어 누가 ‘흑인’인가? 노예무역, 노예제,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 노예제의 유산과 기억의 정치 3. 인종, 계급, 젠더가 교차하는 여성의 몸 사르키 바트만, 3중의 억압 아래서 메리 프린스, 여성 노예는 말할 수 있는가? 서저너 트루스, 흑인 여성의 여성성과 모성 4. 혐오스러운 몸에서 강인한 육체로 누가 ‘유대인’인가? 유대인의 몸 담론 파괴하기와 재생하기 5. 베일 안과 밖, 그리고 문화정치 테러의 세계화와 이슬람포비아 무슬림 ‘베일’ 논쟁과 이슬람포비아의 젠더화 무슬림의 ‘악마화’와 ‘인종화’ 6. 한국에서 다양한 몸과 함께 살아가기 한국인, 외국인, 이주민 ‘혼혈’에서 ‘다문화’로 이주노동자와 인종차별 다문화주의와 인종주의 나가는 글 미주 시각자료 출처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염운옥 (지은이) 경희대학교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연구교수.
몸의 차이를 둘러싼 담론과 실천의 경합을 역사적으로 살피는 작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주요 저서로 『낙인찍힌 몸: 흑인부터 난민까지 인종화된 몸의 역사』(2019),
『몸으로 역사를 읽다』(2011, 공저),
『대중독재와 여성』(2010, 공저),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 유전자 정치와 영국의 우생학』(2009) 등이 있다.
최근작 : <혐오 이론 1>,<도시를 보호하라>,<전쟁과 여성 인권> … 총 1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시선의 권력과 분류의 욕망이 만들어낸 차별과 배제의 대서사 2019년 7월 초, 디즈니사에서 실사화 예정인 <인어공주>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인어공주 역에 흑인 배우인 할리 베일리를 섭외한 것에 대해 ‘빨간 머리에 하얀 피부’인 에리얼의 모습을 훼손하는 선택이라는 반대 여론이 생기면서 인종차별 문제로 대두됐던 것이다. 이에 대해 디즈니는 애초의 계획대로 확정하며 일단락됐으나, 21세기에 그러한 타국의 뉴스를 접하는 일이 반가울 리 없다. 그러나 어디 국외뿐일까. 일상적인 인종차별 및 혐오 발언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곳이 바로 이곳 아니던가. 일례로 타임지 선정 영향력 있는 10대로 선정된, 한국인 최초 흑인 모델인 한현민 씨가 한국에서의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다”라고 고백한 것이야말로 한국사회의 인종주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까. 왜 충분한 문제의식이 공유되고 있음에도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은 사그라지지 않을까. 인종주의의 역사는 어느 편에 손을 들어주며 흘러왔던 것일까. 우리는 인종차별의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쉽지 않은 문제일수록 역사 속에 실마리가 있는 법. 『낙인찍힌 몸』과 함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답을 풀어보자. “당신의 코에서는 열정이 보이지 않아!”, “머리 크기로 짐작하건대, 똑똑하시겠군요.” 타자의 몸을 먹고 자라난 인종주의의 역사 가느다란 눈에 광대뼈, 큰 엉덩이에 두툼한 입술, 흰 피부에 커다란 눈, 곱슬머리에 기다란 코……. 이러한 표현들을 접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특정 인종을 상상한다. 그리고 판단한다. 왜 어떤 몸은 아름다움의 척도가 되지만, 어떤 몸은 비하 대상이 되는가? 나아가 미와 추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별과 박해를 받는가? 저자 염운옥이 인종주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몸을 둘러싼 규정과 편견에 물음표를 던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사논문 주제였던 우생학을 공부하면서 인간의 몸에 등급을 매겨 제한을 두는 발상에 분노했고, 이를 좀 더 깊게 보기 위해서는 그중 열등하다고 분류된 유색인종의 몸과 이데올로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여겼다. 10여 년 전 가졌던 의문이 소논문들과 몇 편의 글로 조금씩 풀려가는 동안 한국사회에서 다른 인종에 대한 혐오는 변주를 거듭하며 거세졌고, 책 작업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시 묻자. 인종주의란 무엇인가. 인종주의는 타자의 ‘행위’가 아닌 피부색, 머리카락, 골격, 두개골, 혈액 등과 같은 생물학적인 속성에 근거해 인간을 규정짓는다. 눈에 보이는 것에 기반해 보이지 않는 것을 결정하며, 이 과정에서 몸에 대한 담론이 더욱 강화되는 것이 인종화의 속성이다. 이 역사의 시작은 16세기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낙인찍힌 몸』은 혈통을 의미하던 인종이 어떤 연유로 인간 분류의 하위범주로 사용됐는지, 그리고 피부색으로 인간을 분류한 린네의 명명법과 흰 그리스 조각을 아름다움의 척도로 삼았던 빙켈만의 미학이 어떻게 씨줄과 날줄이 되어 백인우월주의 신화와 인종화를 만들어냈는지 찬찬히 풀어낸다(1장). 여기서 문제는 몸 담론이 인종과 결합되고 합리화하는 방식에 있다. “작은 안면각, 가벼운 뇌, 돌출된 아래턱, 앞이마 중앙의 미발달”(77쪽)이 흑인의 특징을 넘어 범죄나 백치 같은 열등한 인간의 특성으로 확대 해석되거나, 유대교를 믿던 유대인들의 종교 집단이 ‘검은 머리에 매부리코’를 지닌 ‘탐욕스러운 인간들’로 인종화되는 경우 등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흥미로운 점은 인종화에 대한 시각 경험을 배반하기도 일이 종종 발견된다는 것이다.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제아무리 피부가 하얗더라도 ‘흑인’이지만 그들 중에는 ‘패싱’을 통해 백인 사회에 자연스레 진입하는 경우도 있었다(94~103쪽). 또한 ‘예쁜 아리아인 선발대회’에 유대인 해시 레빈슨 태프트가 1등으로 선발됐던 웃지 못할 사연도 있다(216~218쪽). 유대인은 여러 지역에서 여러 민족과 함께 살아왔기에 외모만으로 식별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생물학적인 몸을 근거로 인종을 구분한다는 것의 비논리성을 보여주는 증거인 동시에 태어남과 동시에 낙인찍힌 채 살아가야 했던 몸들에 해방과 자유를 찾아주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외모, 말투, 옷차림부터 종교, 문화적 지표까지 신인종주의를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만약 당신의 옆집에 무슬림 가족이 이사 온다면? 장시간 타야 할 비행기의 옆자리에 국적을 알아채기 쉽지 않은 유색인 남성이 앉았다면? 값비싸고 고급스러운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종업원들이 전부 조선족 여성이라면? 겉으로 내색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슬금슬금 피어나는 불편함 감정까지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낙인찍힌 몸』이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 싶은 메시지도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교양 있는’ 시민이기에 학창 시절에 배운 대로 인종차별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인종을 서열화하는 습속은 가벼운 계기만으로 그 민낯을 드러낼 수 있다. 여기서 들라캉파뉴가 말했던 인종주의는 “천 개의 머리가 달린 히드라”(6쪽)라는 말을 떠올리는 게 유용하다. 인종주의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에 단일하게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낙인찍힌 몸』의 전반부가 생물학적인 특성에 따른 인종차별의 역사를 정리하는 데 주력했다면, 후반부에서는 백인우월주의가 여전히 건재하는 가운데 문화적인 지표가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신인종주의’ 현상에 주목한다. 5장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이슬람국가의 테러와 베일이라는 제2의 피부를 지닌 무슬림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인종차별을, 6장에서는 ‘다문화’ 한국에서 살아가는 혼혈인, 이주민, 난민을 다룬다. 외모, 말투, 옷차림에 문화적인 요인이 덧대져 위협 집단으로 고착화되는 데 우리 역시 동조자였음을 확인하는 일은 씁쓸하지만 유의미한 독서가 될 것이다. 자신이 언제나 인종차별을 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일은 계급차별과 성차별에 대해 좀 더 예민한 감각을 갖겠다는 다짐이 되기도 한다. 저자가 3장에서 깊게 서술한, 흑인 여성에게 교차하는 인종, 계급, 젠더 차별은 여전히 잔존하기 때문이다. 2중, 3중의 억압 속에서 개개인의 목소리는 쉽게 사라지고 문젯거리로만 남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가령 2018년 초, 제주에 도착한 예멘난민을 두고 페미니즘의 한쪽에서 예멘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여기며 입국 반대를 외치는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국민이 먼저’라는 슬로건을 내건 보수 매체들과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저자의 바람대로 성급히 결론 내리기보다 꾸준히 공부하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신인종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수동적인 노예’에서 ‘사슬 끊는 흑인’으로, ‘보여지는 대상’에서 ‘보는 주체’로 인종주의에 갇힌 인종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인종주의’를 떠올리면 노예, 혐오, 차별, 배제, 말살, 흑백의 이분법 같은 단어들이 자연스레 달라붙는다. 『낙인찍힌 몸』 역시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 괴물쇼에 올라야 했던 흑인 여성들, 홀로코스트 속으로 사라진 유대인, 이스라엘 국가에서 배제당한 에티오피아 유대인, 한국사회에서 부당한 처우에 놓인 이주민 등과 같이 인종주의의 슬픈 역사를 재현하는 데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렇지만 이에 못지않게 폭력에 맞서 저항하며 주체적인 목소리를 냈던 장면들을 소개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노예 해방을 애원하는 수동적인 노예가 아닌 스스로 ‘사슬을 끊는 노예’(142쪽)를, 불쌍하고 연민을 자아내는 노예 여성 트루스가 아닌 꼿꼿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나(이미지)를 판다”(198쪽)고 말하는 트루스의 모습을, ‘거래’가 아닌 열렬한 연애를 거쳐 결혼했음을 당당하게 공개한 결혼이주여성의 편지 사연(317쪽)을 실었다. 독자들은 각 장마다 저자가 숨겨 놓은 희망의 몸짓을 만나게 될 것이다. 책에 실을 70여 장의 시각자료를 선정하며 인종차별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고착화시키는 이미지를 일부러 배제했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중요한 점은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한걸음 나아가 인종주의에 갇힌 인종주의에서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2018년 10월 14일 세상을 떠난 네팔인 ‘미누’를 추모한다. 그는 1992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입국해 18년을 일하며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알리는 데도 앞장섰으나, 표적단속으로 잡혀 결국 강제출국을 당했다. 저자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미누와 그가 활동했던 다국적밴드 스탑크랙다운(Stop Crackdown)을 떠올리며, 그가 “온정의 대상이 되는 것도, 단속과 추방,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것도 거부했”(380쪽)다고 쓴다. 이는『낙인찍힌 몸』이 그의 말을 빌려 전하고 싶은 메시지기도 하다. 접기
평점분포 9.2 “오, 나의 몸이여, 내가 언제나 질문하는 사람이 되게 하기를!” 프란츠 파농의 말로 마무리하는 여운까지. 상세하고 유려하고 아름답다. 구매 물가에 돌 하나 2020-05-18 공감 (1) 댓글 (0) = 들어가는말 읽자마자 좋아서 구입. 구매 judy 2020-07-03 공감 (0) 댓글 (0) = 2019년 필독서,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구매 감자 2019-10-31 공감 (0) 댓글 (0) Thanks to 공감 마이리뷰 구매자 (1) 전체 (2) 리뷰쓰기 공감순 잘라도 또 자라는 히드라 새창으로 보기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자를 차별하는 것을 인종주의라고 한다면, 문화 · 종교 등을 이유로 삼아 타자를 차별하는 것은 변형된 인종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인종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시대를 막론하고 그 역사적 뿌리가 깊은 현안이다. 《낙인찍힌 몸》은 인간의 몸에 대한 위계적인 해석에서 시작된 인종주의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는 영국 우생학 운동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다. 우생학은 열등한 인종의 몸을 분리해내고 낙인찍는 학문이다. 우생학 열풍은 영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우생학은 제국주의 바람을 타고 미국으로 전파되었고, 흑인을 배제하는 인종주의는 지금도 백인들의 의식에 잠재되어 있다. 히틀러(Hitler)와 나치 독일(Nazi-Deutschland)이 자행한 유대인 학살은 난데없이 툭 튀어나온 사건이 아니다. 유대인 학살은 유럽의 오랜 반유대주의 전통에 기반을 둔 우생학이 초래한 끔찍한 결과다. 뾰족한 코를 가진 유대인은 열등 인종의 전형으로 정의되었고, 아리안인(Aryan)의 뛰어난 내적 자질은 출중한 외모를 통해 증명된다는 학설이 전파됐다. 과학적인 이론으로 뭉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우생학은 타자의 몸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 인종 차별과 다른 민족에 대한 침략 및 지배를 정당화해왔다. 인종주의는 외모, 피부색, 골격 등의 생물학적 속성을 기준으로 타자에게 우열을 매긴다. 저자는 인종주의를 인종적 타자의 몸을 먹고 자란 ‘히드라(Hydra)’로 비유한다. 히드라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물뱀이다. 히드라는 아홉 개의 머리를 가졌는데, 이 목을 잘라내면 베어진 자리에서 새로운 목이 생긴다. 히드라 같은 인종주의는 여전히 강력하다. ‘인종(raza)’이라는 단어는 원래 동물의 품종을 뜻하는 스페인어다. 이 단어는 유럽으로 확산하면서 우리가 익숙한 ‘인종(race)’이 만들어졌다. 분류학이 발전하면서 동물의 품종을 의미하던 인종(raza)은 인간을 분류하는 개념(race)으로 자리 잡았다. 스위스의 박물학자 린네(Linne)는 동물과 식물의 범주를 나누고 속과 종을 분류하면서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이명법을 도입했다. 그는 인류의 피부색을 네 가지로 분류했다. 린네의 분류법에 따르면 유럽인은 백색, 아메리카인은 홍색, 아시아인은 갈색, 아프리카인은 흑색이다. 린네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인종을 공식적으로 정의한 학자이다. 고대 그리스 문화를 떠받들던 독일의 미술사학자 빙켈만(Winckelmann)은 고대 그리스 조각상을 아름다움의 척도로 삼았다. 저자는 린네의 분류학과 빙켈만의 미학을 인종주의 발전의 시작점으로 본다. 《낙인찍힌 몸》은 인종주의의 역사는 서양에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흑인과 유대인, 무슬림 차별 담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은 서양의 인종주의 문제만을 분석하지 않는다. 저자는 히드라 같은 인종주의가 ‘신인종주의(new racism)’ 또는 ‘문화적 인종주의(cultural racism)’라는 이름으로 계속 자라고 있다고 말한다. 백인우월주의와 반유대주의가 생물학적 인종주의라면, 오늘날의 인종주의는 신인종주의다. 신인종주의는 타자의 정치적 성향, 종교, 문화에 우열을 매길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편견을 부여한다. 새로운 히드라의 머리는 다문화를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 자라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조선인은 생물학적 인종주의가 주목하는 실험 대상이었다. 외국에 있는 한국인도 종종 인종 차별을 당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 타자를 낙인찍고 배제하는 가해자의 위치에 선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민, 외국인노동자, 난민, 무슬림들에 가해지는 인종 차별은 새롭게 자라나고 있는 히드라의 머리다. 이제는 ‘문화적 지표’가 인종주의의 표적이 되고 있다. 생물학적 인종주의라는 이름이 붙여진 히드라의 머리를 자르면 그 자리에 신인종주의라고 불리는 새로운 머리가 자란다. - 접기 cyrus 2019-09-20 공감(32) 댓글(2) Thanks to 공감 추천합니다 새창으로 보기 구매 검은 몸이 어떻게 낙인찍힌 몸으로 변해가는가에 관해서 꼼꼼하게 서술한 교양서입니다.가독성도 높아서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습니다. nugurigirl 2019-09-06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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