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4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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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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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타치와 사베츠니 산세이시마...

1. 개요2. 내용3. 주요 주장
3.1. 20대들의 학벌주의3.2자기계발서3.3. <아프니까 청춘이다>
3.3.1. 반론3.3.2. 옹호
3.4.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3.4.1. 반론
3.5. 20대들은 왜 이렇게 되었나?
4. 궁극적인 주장5. 비판

1. 개요[편집]

암울한 시대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이십대의 진짜 얼굴을 보자 - 뒤표지 문구
오찬호가 2013년에 처음 선보인 사회학 저서이자 대표작이다. 정확한 제목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이다. 뒤표지의 문구를 그대로 빌려 쓰자면, '이 암울한 시대에 암울하게 변해버린 20대들의 슬픈 몽타주'를 설명하는 책이다. 극심한 입시경쟁, 취업난 따위로 인하여 살아가기 힘든 헬조선에서, 괴물처럼 변모하고만 8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에코세대(당시 20대)의 심리, 사고 방식을 탐구한다.

이 책의 제목은 극심한 경쟁 속에서 타인을 매몰차게 밀어내야만 하는 20대의 자화상을 드러내고 있다. 상당히 불편한 진실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바람에 사회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1] 언더도그마를 비판한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뒤표지 문구에서 20대들을 피해자이자 가해자라고 칭한 것은, 현 한국 사회의 폐단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는 피해자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이들 스스로가 안고 있는 문제 또한 탐구하자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사실 이게 이 책의 핵심이며, 오찬호가 사람들에게 일깨우고자 하는 내용이다.

2. 내용[편집]

이 책은 자신의 박사학위논문 '불안의 시대, 자기계발 하는 20대 대학생들의 생존전략'(2012)을 대중교양서로서 풀어 쓴 것이다.

이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대학 강사로서 2008년경 경기도 한 대학의 수업시간 중 KTX 비정규직 여승무원 전환 문제에 대해 토론하다가 학생들의 반응을 보게 된 것이라고 한다. 한 경영학과 4학년 학생이 '비정규직이 노력없이 지위가 전환되는 건 불공평하다'[2]고 했을 때, 저자는 내심 이 학생이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을지 걱정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약 2/3의 학생들이 이 학생에게 찬성한다는 쪽에 손을 들자 저자는 이 현상에 대해 사회학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이는 약 4년간의 연구를 통해 박사학위논문 및 책으로 완성되었다.

'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건 너의 노력 부족'이라는 논리가 팽배한 현실에 대한 비판이 이 책의 주요한 뼈대다.

이 책에 나온 비유는 아니지만 비유를 하나 해보자. 단국대 철학과 박사는 1년에 약 2명을 모집한다. 하지만 단국대 철학과 교수는 5년에 1명 꼴로 채용한다. 박사를 마치는 모든 졸업생이 교수직을 거절하지 않는다고 할 때, 교수가 될 수 있는 사람은 10%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박사를 하고도 교수가 되지 못한 90%에게는 더 연구를 잘 하지 못한 잘못이 있는 것일까? 그것보다는 교수직이 부족한 상황이 문제라고 말하는 게 합당하지 않을까? 따라서 개인의 노력 부족을 무조건 탓할 것이 아니라 사회 환경을 문제 삼고 바꿀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또한, 그런 말이 통하기 위해서는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고, 과정이 전부 공정하고, 돌아오는 결과 또한 정의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그렇지 못하므로 이런 논리는 부당한 현실에 순응해버리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저자 인터뷰에 따르면, 때로 영화 보고 치맥하고, 1년에 한두 번 여행 가는 건 굉장한 사치가 아니지만 한국의 자본주의는 악질적이기 때문에 이런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담으로 저자의 말에 따르면, 제자에게 한 기업의 합숙 면접에서 이 책을 논리적으로 비판하라는 조별 토론 주제가 주어졌다고 한다.

3. 주요 주장[편집]

이 책에 나오는 오찬호의 주요 주장을 정리.

3.1. 20대들의 학벌주의[편집]

연세대는 서강대를, 서강대는 성균관대를, 성균관대는 ...(중략)... 성결대를 무시한다. - 86쪽

옛날에도 물론 학벌주의가 있었다. 하지만 단지 'SKY냐 아니냐', '인서울이냐 아니냐' 정도였을 뿐, 지금처럼 군대의 계급이나 LoL 솔로랭크처럼 점수 1점, 등급 한 컷단위로 극도로 체계적이지는 않았다. 2000년대 초반 경희대 법과대학 재학생에 의해 만들어진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이라는 용어가 바로 그것이다. 태정태세문단세와 비슷하게 체계적으로 암기되며 서열이 낮은 대학이 자신의 대학을 더 높은 대학과 비슷한 대학으로 퉁쳐버릴라치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면서 호들갑을 떠는 바로 그것 말이다.

오찬호는 20대들은 수능을 카스트제도처럼 신봉한다고 주장한다. 그 20대에게는 카스트 제도보다는 LOL 랭킹전 등급 다이아,골드,실버,브론즈 같은 수능 등급과, 다니는 대학 이름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해버리고, 수능 점수가 자신보다 높은 상대나 그와의 비교를 당할때 열등감에 자신이 왜 수능 점수가 낮은지에 대한 자기 합리화를 시도하며, 반대로 자신보다 낮은 점수를 받거나 서열이 낮은 대학에 간 사람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정도로 하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20대들의 주장은 이렇다.

수능은 초중고 12년간의 노력이 집대성된 결과 아니냐. 이것 자체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등급 하나만으로 직접적으로 확인한 바도 없으면서 사람의 전체를 판단해버리는 것이 바로 문제라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공부 안 하고 논 애들은 지방대랑 전문대에 들어갔다', '실제로도 지방대 애들은 수준이 떨어진다', '지방대 애들이 지하철에서 술 취해서 떠들고 쓰레기 버리는 것도 봤다' 하는 것 따위를 근거라며 내세우는데, 이는 당연히 명백한 논리적 오류다.

애초에 수능은 12년간의 노력이 집대성된 결과라는 것 자체는 사실이지만 여러가지 변수가 충분히 존재하는 시험이다. 이런 변수들을 고려할 때 지난 12년간의 노력이 어땠는지 점수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가치판단의 잣대를 한 가지로만 가지게 되는 위험하고 성급한 생각이다.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전까지만 해도 수능시험장에 당뇨병 환자인 수험생들이 혈당체크기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음을 생각해보자.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수능시험 이전에 시험보다가 쇼크사할 수도 있다.[3]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으신 직군중 하나인 법조계는 과거 사법고시때부터 지금의 로스쿨까지 철저하게 출신 학과로 파벌과 출세구도가 결정되고,시험점수로 카스트를 정하는 서열위주 사회다. 딱 사시 패스 이후 사법연수원에서 시험성적으로 판사-검사-변호사[4]로 서열을 갈라놓고 연수원 성적과 고등학교 최종 성적으로 법관,검사,변호사들끼리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위아래를 갈랐다. 이 논리가 로스쿨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져서, 지금의 젊은 법조인들조차 이 논리에 아주 당연하게 물들어있다. 의학계는 2020년 매년 전교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라는 문구 하나로 완전하게 설명할 수 있다. 언론계도 마찬가지다. 언론계는 아예 언론고시 성적과 입사 언론사 서열을 가지고 아예 순위를 정해놓고, 방송은 지상파 3사의 보도를 내리 복붙하고 신문은 조중동 3사의 보도를 내리 복붙한다.

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 모두 대한민국에서 성공가도를 탔으며, 그 권력으로 한국의 평범한 서민들 위에 군림할 수 있었던 계층이 되었던 것이 비극의 연속이다.[5] 현시대 20대는 사회에 나가 저런 것을 하기 위해 죽어라 공부하고 죽어라 경쟁하며, 이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독창적인 생각을 하는 같은 또래들을 관종이니 관심병자니 같은 식으로 비하하고 왕따하는 게 당연하도록 만든 교실 풍토에 푹 절여진 시대를 살았고, 이를 가고있는 지금 학생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20대들 사이에서 만연한 학벌주의의 최대 해악은 피해자가 동시에 가해자도 된다는 점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대학에게 무시를 받는 피해자들은 동시에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대학을 무시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이럼으로써, 학벌주의로 인해 피해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마저도 학벌주의가 더욱 공고하게 유지되는 데에 기여하는 셈이라고 오찬호는 주장한다.[6]

3.2. 자기계발서[편집]

몇십 년 전까지는 한국의 산업사회가 전 세계에 그 유례가 없을 정도의 전설적인 고도 성장을 이루었기에 무언가 노력을 하면 꼭 완벽하지는 않아도 어떤 보상이 분명히 돌아왔다.[7] 하지만 언제부턴가 죽을 만큼 노력해도 안 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되었다. 인간이라면 누려야 마땅할 행복을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한국 사회에서, 어쩌다 성공을 한, 즉 노력을 죽어라 해서 그 보상을 받아낸 희귀하고 특수한 사례를 내세우면서 '그러니까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너도 할 수 있으며, 실패란 없다' 같은 공허한 결론을 내리는 게 요즘 자기계발서라는 것이 오찬호의 주장이다.

책에 나온 건 아니지만 비유를 하나 해보자. 박사 졸업 직후 조교수로 임용된 사람을 가리키며 박사 졸업 후 시간강사를 하며 5년 넘게 임용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봐, 하니까 되잖아, 너도 최근 3년간 SSCI 주저자 2편 있고 영어 강의, 데이터 분석 강의 가능하면 교수 임용 된다고'하는 것이랑 다를 바 없다. 보통 시간강사들은 아무리 학문을 갈고 닦고 해도 교수 되기 힘들다.[8]

자기계발서의 세계에서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것은 노력 부족 때문이라면서 개인의 잘못으로 간단히 이야기가 정리되고 만다. 오찬호는 이런 논리를 비판한다. 성공이 그렇듯이, 실패 또한 100% 개인적 역량으로 인한 결과는 아니므로 그런 논리는 부당하다고 말한다. 또한, '위기가 찾아와도 노력' 운운하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세상이 떠들어대는 이 말로 20대들을 위로하는 것은 가당찮은 일이라고 말한다. 앞서 말했듯이 노력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돌려주는 사회라야, 또 위기의 정도가 어지간해야, '지금 힘들어도 조금만 버텨라. 결국 달콤한 열매가 찾아온다.'라는 말이 통하는 것인데 지금 한국 사회가 그렇지 못하다는 말이다.

또한, 현재의 자기계발 동향은, '이렇게 해라'라는 말만 있지, 그래서 그렇게 했을 때 무엇인가 달라지는 것이 없다. 20대들은 아무것도 얻어가는 것이 없는 채로 자기계발만을 되뇌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안 하는 것보단 이런 게 나은 거니까라는 생각이 20대들을 이 악순환 속에 단단히 붙잡아둔다. 사실 이 생각이 틀렸다고도 할 수 없다. 정말로 안 하고 앉아 있는 것보다야 하는 게 백배 낫다. 문제는 그래서 했는데 좋은 결과가 생각만큼 잘 안 나온다는 것. 이것이 한국 사회의 핵심적인 해독이다.

3.3.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편집]

이 책에서는 서울대학교 교수 김난도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비판한다. 노력을 했을 때 정당하고 확실한 보상이 돌아오는 사회에서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성립하는 것인데, 지금의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해도 겨우 중간 갈까 말까 한 세상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따진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는 '인생을 24시간으로 환산하면 20대는 잠에서 일어나는 오전 7시'라고 하는데, 이는 20대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달리기를 하고 있는지 간과한, 공허한 비유일 뿐이라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새벽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다치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주장이다.

김난도는 서울대 교수이고, 서울대 학생들을 만난다. 책에서, 김난도는 서울대 교수를 할까 말까, 그의 제자들은 유엔의 기구에서 일할까 말까를 고민한다.[9] 이들은 소수의 특수한 모습일 뿐 일반적인 20대들의 모습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김난도의 조언들은 서울대 학생들한테나 어울리는 '서울대스러운' 얘기들이라고 말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사실 '노력하면 당장은 힘들어도 나중에 보상이 돌아오니 힘내라'와 다를 바 없는데, 앞서 언급한 대로 지금 한국에서 노력이 정당한 보상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찬호 외에도 해당 책에 대해 이런 비판이 많다. 물론 사회 유명 인사나 다른 책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추천하는 경우도 있고, 창비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일부가 수록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책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이 책은 한국 출판 사상 최단 기간 밀리언셀러를 달성하고 현재는 300만 부 이상이 팔려 나간 베스트셀러가 되어 김난도는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자세한 것은 아프니까 청춘이다 문서로. 문서에 비판에 관한 분량이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3.3.1. 반론[편집]

김난도가 유엔 국제기구에서 일할까 말까 고민하는 '일반적인 20대의 모습'이라 할 수 없는 독자를 대상으로 책을 썼다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다. 저자가 목표 독자를 누구로 설정할지는 저자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서울대 교수인 저자가 서울대 제자들의 어려움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책이다.
"이 책이 그렇게 대중을 상대로 쓴 책이 아니었고요. 제 아이하고 우리 제자들 상대로 그냥 개인적인 소회, 수업시간에 했던 얘기들을 묶은 책인데요. 갑자기 너무 화제가 돼서 물론 기쁜 측면이 없는 건 아닌데요. 요즘 청년들 참 힘들잖아요? 생각보다도 훨씬 더 많이 힘들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심경이 복잡한 면이 있네요." - 2011년 언론 기사

그리고 옹호론에서 이 '책을 통해 유명세를 얻은 뒤' 다른 대상에게 강연하는 것은 '은근슬쩍 얘기를 바꾸는 것'이라는 비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온당한 주장으로 바라볼 수 없다.

3.3.2. 옹호[편집]

저자 본인도 결국 저 책의 타깃을 대한민국 모든 젊은 청춘들로 은근슬쩍 바꿨다는 것이 주 비판 쟁점이다. 김난도 교수는 저 책을 통해 유명세를 얻은 뒤 청춘시네마 등에 출연하며 대외활동까지 했으며 서울대 바깥으로 나가 책 내용에 대해 강연하며 서울대생들의 청춘을 현재 모든 젊은이들의 청춘으로 일반화했다.

3.4.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편집]

혜민의 저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비판한다. 이 책 역시 200만 부가 팔려나간 베스트셀러이지만 오찬호는 이 책에도 맹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세상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쉬면 세상도 쉽니다'라는 문구를 인용하는데, 이에 대해 '내가 먼저 놓으면 세상살이도 편해진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현재 20대들은 놓고 싶어도 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결국, 뭐든 세상 탓만 할 일이 아닙니다', '상대가 나를 칠 때 지혜로운 이는 굽힐 줄 압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다', '누가 나를 욕하면 나를 낮추십시오' 등의 말에 대해서는 사회의 구조에 대한 불만을 멈추고 자신을 낮추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냐는 물음을 던진다. 오찬호는 이 책이 세상 탓을 멈추고 순응하여 살기를 부추김으로써 사회를 개선하지 못하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3.4.1. 반론[편집]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법에 관한 책이다. 마음의 혼란을 가다듬고 자신을 성찰하는 법을 일러준다. '세상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쉬면 세상도 쉽니다'라는 문구를 꼭 그런 식으로 해석하여 비판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는가? 그저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를 시도하라는 의미일 뿐이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심리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이유를 찾아가라는 조언인데, 그것을 굳이 헬조선이나 20대들의 사고방식 따위와 무리하게 접목하여 지나치게 각박하게 해석한 것은 아닐까? 이는 사회 현상을 갈등론적관점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해석한 것이다.

또한, 혜민 스님의 말은 자신의 성장을 방해하는 비생산적인 남 탓을 하지 말고 자신을 성찰하란 뜻이지, 결코 부당한 것에 따지지도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 아니다! 이것 역시 혜민 스님의 의도를 왜곡하는 것이다. 오히려, 혜민 스님이 말하는 휴식은 문제 제기를 위해서 진정으로 불합리한 것이 무엇인지 차분히 돌아볼 시간을 가지게 한다는 점에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불합리한 사회의 본질적 허점이며 이를 논파할 근거를 정리할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휴식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3.5. 20대들은 왜 이렇게 되었나?[편집]

책이 나온 2013년 기준 20대들은 80년대 중반 ~ 90년대 중반생이다.[10] 어린 나이에 IMF 외환위기가 닥쳤다. 부모님들이 하루아침에 실직하고 살기 힘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돈 벌어서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최고'라는 가치를 은연중에 주입당했다. 오찬호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때문에 20대들의 몽타주가 이렇게 '괴물'이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즉, 이 세대들은 저자가 표현한 것처럼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된 것이다.

2020년 6월의 코로나 시국에서도 이러한 문제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요원 정규직 전환 절차 논란'의 격전장이 되어버린 포탈 뉴스 댓글등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정의다", "공부한 우리가 되레 역차별 받는다"라고 적는 수많은 분노의 댓글을 보노라면 현재 20~30대 청년들의 감정과 태도는 2013년 이 책에서 예로 들었던 KTX 여승무원 비정규직 사태 때 청년들의 반응과 판박이며, 저자가 표현한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굴레에서 청년들이 계속 맴돌고 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11]

아이러니한 건, 이러한 청년들의 차별의 명목이 공정평등이란 점이다. 즉, 기회의 평등, 공정한 결과를 매우 강조하는 동시에 경쟁에 따른 결과의 차별을 합리화, 정당화한다는 것.[12][13] 다만 그들이 주장하는 공정과 평등의 기준이 상당히 편향적이라는 것이 문제점이다. 앞서 언급한 인국공이나 여승무원 비정규직에서도 이야기하듯이 오로지 수능성적과 입사성적만이 타당하며, 능력이 없는 비정규직은 차별받아도 당연하다고 본다.[14]

한 블라인드 앱에서 삼성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BTS 지민이 고가에 집을 사자 이에 대해 비난하는 글을 썼다. 수능도 안 보고 운이 좋아 된 것 아니냐는 것. 위 사례에서 나는 죽어라 공부해 대기업에 들어갔는데, 자기 좋아하는 음악 하다 운이 좋아서 부자가 된 것이 싫다는 것이다. 즉 나의 노력의 산물인 수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성공하는, 그것도 차원이 다른 성공을 해내는 모습에 자신의 노력이 부정당했다고 생각하여 분노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참 서글픈 모습이다.[15]

'수능', '시험', '공채'에 집착하는 이들은 비정규직이 되는 사람들의 집안 환경, 질병, 사고유무, 재능과 노력, 장애유무를 일체 고려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열악한 집안 환경(가난, 아동학대, 가정폭력, 외도 등)을 가진 사람이 남들과 똑같은 수능 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해 보자. 이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아무도 그런 환경을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경계성지능장애로 태어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사람은 죽도록 노력한다고 해도 겨우 일반인 수준의 지능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에게 단순히 교육과 시험 기회만 주어지면 되는 것인가? 교육의 질, 시험의 질 모두 어떤지 포함되어 있지 않다.[16][17]

단적으로 이런 환경에서 정규직이 되고 제대로 된 공부가 가능할까? 언론과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몇몇 소수의 성공만을 미화시키고 사회적 문제를 우리 눈에서 가린다. 회사는 절대로 손해보는 짓을 하지 않는다. 정규직을 미끼로 비정규직들을 데려와서 쓰다가 버리는 것이다. 아니면 무기계약직이라는 다른 방법으로 살아간다.

수능성적과 입사성적만이 평등하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면은 냉혹하게 다르다. 현실과 드라마는 다르다. 드라마에서는 가난한 천재 학생이 모든 것을 뒤집고 1등이 되고 수석이 되지만 실제로 그런 학생을 본 적이 있는가? 있다고 해도 전체 학생대비 몇 명이나 되겠는가? 현실은 가난한 학생들은 제대로 된 교육과 정신적 안정을 찾지 못하고 성적이 바닥을 기게 된다. 그리고 드라마에서는 부잣집 가족의 인성이 개판으로 나오지만 가난한 집안은 더욱 개판이다. 평균 범죄율이 누가 더 높을까? 가난한 집과 그 동네 일대다. 대리만족을 위해 부자를 불행하고 힘들어 보이게 할 뿐이다.

4. 궁극적인 주장[편집]

책의 후반부에서 오찬호는 한국 사회의 행태를 자신의 군대 경험담에 비유해서, 궁극적으로 자신이 외치고 싶은 주장을 내비치면서 내용을 클라이맥스로 몰고 간다. 휴가에서 돌아오면 맛있는 음식을 사오는 악습이 생겼는데, 갈수록 음식을 사오는 스케일이 커진 것. 그래서 결국 분대장이 전 분대원 앞에서 경고하기를, '오늘부터 휴가자가 먹을 것 사오는 것 그만하자'는 것이었다. 누군가에는 굉장히 금전적 부담이 될 수도 있고, 처음에는 사소한 것에도 고마워하던 마음이 갈수록 커지는 음식의 스케일에 무뎌지므로 이 악습을 끊어버리자는 것이었다. 개인이 사회를 바꾼다는 것이 마냥 가능한 일은 물론 아니겠지만, 최초 한 사람의 문제의식이 있어야 사회도 바뀐다는 주장을 하고 싶었던 것. 20대들은 이 헬조선에서 사회적 약자이므로 아무것도 못 한다고 쳐도, 기성세대들은 왜 가만히 있느냐고 오찬호는 외친다. 휴가에서 돌아오면서 음식을 사와야 하는 상황에서 고민하는 이등병에게 '고민하니까 이등병이다'라고 말하고, '맛있는 거 사오면 일등병 된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한국 사회를 일갈한다. '고민하니까 이등병이다'라는 말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과 너무나도 닮지 않았는가.[18]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말이 진정한 위로가 되기 위해선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슬로건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오찬호는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기회도 불평등하고, 과정은 불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지 못하게 나온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증명해 보임으로써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의 힐링 담론이 잘못이라고 결론을 내리며 책을 마치고 에필로그에 들어간다.

결국, 다소 과격하게 말해서 해도 안 되는 이 사회에서 자꾸 '노력해라' 운운하는 것에서부터, 맹목적으로 '고진감래(苦盡甘來)'만을 강조하는 따위의 논리는 이제 그만두자는 것이다.

책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고 있지만, 이 책의 내용은 한편으론 능력주의의 맹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능력주의 문서로.

5. 비판[편집]

5.1. 연구방법론[편집]

이 책은 박사 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나온 교양서이다. 따라서 해당 박사 학위 논문에 대한 비판이 이 책에 대한 비판이 된다.

저자의 출신 대학에서 여러 학자들이 해당 박사 학위 논문의 연구방법론을 평가하였다. 연구 과정에서 녹음을 하지 않은 점이 신빙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되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신뢰를 얻기 위해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반론하였다.

또한 양적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이 면담자 수가 4명으로 제한된 조사 등에 대해 신뢰도와 타당도에 대한 비판을 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4명이라도 질적 연구의 특성상 충분히 가치가 있으며, 양적 연구에서 간과되기 쉬운 부분들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질적 연구도 충분하다고 반론하였다. 그러나 양적 연구방법론을 통해 현재의 연구의 신빙성을 더 높일 수 있다. 가령 박사 학위 논문 중 대학생들의 생각을 알기 위해 설문조사를 한 부분이 여러 차례 있는데, 단순히 각 응답의 %를 내놓는 것에 그치지 말고 컨조인트 분석을 활용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19]

[1] 저자 오찬호는 이 책이 사회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부를 가져다주진 못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무래도 직시하기에 불편한 내용을 담은 책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한다.[2] 실제 수업에서는 저렇게 정제된 표현을 한 것이 아니라 '날로 먹으려고 하면 안 되죠!' 라고 했다고 한다.[3] 그 집안 환경과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불운 그리고 태생적 한계듯 이런 저런 주관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요소를 모조리 배제한다. 인생은 통제가능한 문학이 아니다. 심지어 문학에서도 이를 통제 못해서 문학적 은폐를 일으키기도 한다. 통제가 안되니 숨기거나 외면시킨다.[4] 이를 양지열 변호사는 막변이라고 불렀다. 연수원 나와서 막 변호사 됐다고.[5] 모두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직종일 뿐더러, 그 사람의 권한으로 상대를 법적,사회적 피해를 입힐 수도 있고 그렇게 해도 피해자가 항의하는 것 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막강한 권위를 행사했다.[6] 서열이 낮은 사람은 일단 내가 낮지? 라는 생각 품기에는 점수라는 객관적 지표에 밀리고 이를 바탕으로 서열을 말하니 함부로 저항하기 힘들다. 큰 차이가 아니라면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음에도 말이다.[7] 하지만 이러한 관점 역시 상대적으로 일종의 환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고도 경제 성장기에 마치 누구에게나 열린 것으로 보이지만 열악한 노동환경과 제한 된 교육 기회 등 많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8] 2021년에 김건희 국민대학교 학위논문 표절, 경력 사칭 임용 사건이 드러나며 학문적 성취보다 배경과 재력으로 학위와 교수직이 주어진다는 증거가 나왔다.[9] 김난도 교수는 서울대 학생들에게조차 상당히 비판받았다.. 어지간한 서울대 출신들이 봐도 상당히 배가 부른 고민이었기 때문.[10] 즉 2020년 기준으로 이 연령대의 포지션이 책이 나온 당시와 크게 다르다.[11] 이런 청년의 분노는 자신의 기회 박탈로 이어지게 때문이다. 자신은 죽도록 노력했는데 그런 노력 없이 그냥 비정규직으로 입사했고 정규직까지 된다. 그런 나의 노력은 무엇인가? 가 되어버린다.[12] 이게 정당회 되어 논란이 있는것이 바로 갑질이다.[13] 차별에 대항하는 것이 공정과 평등이다. 왜 선거권과 권리를 능력과 관계없이 평등하고 공정하게 나눠주겠는가.[14] 이는 매우 위험한 발언인 것이 세금을 더 많이 내는 상류층들은 더 많은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과 다를 것이 없다. 왜냐면 그것이 더 공평하니까. 그러나 세금이 달라도 법적 대우는 평등한 것이 진리인 것이 민주주의 국가이다. 빈자도 부자도 한표씩만 행사하고 보호 받아야 한다.[15] 차별에 대항하는 것이 공정과 평등이다. 왜 선거권과 권리를 능력과 관계없이 평등하고 공정하게 나눠주겠는가.[16]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는 많지만, 성공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북유럽의 예를 보자 막대한 세금과 부자를 이탈 방지를 위해 세습의 합법화를 해주고 있다. 그리고 가난자를 최소화 시켰지만, 동시에 부자가 되는 길도 막혀버린 사회. 그로 인해 빈부격차가 매우 심각한 나라. 그럼에도 이를 위해서 기꺼이 세금을 내고 있지만, 이를 주도한 것이 바로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세상 변화의 앞장 선 금수저(스웨덴 총리 팔메는 금수저 오브 금수저다.)이다. 노르웨이는 석유가, 핀란드는 넓은 국토와 더불어 적은 인구(500만) 덕분이기도 하다. 프랑스 역시 높은 세금과 복지를 하지만 높은 물가와 집세로 직업이 있던 사람이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주워 다 먹는 등 막장이고, 노란 우산 사위까지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17] 능력주의를 주장한 이준석 역시 이의 문제를 알고 공교육을 강화해 제대로 공부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어떻게 이들을 돌아오게 할 건지 이의 대한 재정 그리고 결과는 어차피 상위층이 차지하는 현실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딱히 대답은 없다. 무조건 여러 사람 쓰자고 끝이 아닌 것 이다.[18] 이러한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68혁명의 경우 청년들이 들고 일어났지만 본격적인 개혁을 한 것은 기성세대였다.[19] 1980년대부터 마케팅과 의사결정 중심으로 활용되던 방법으로 오늘날에는 인사조직관리나 사회학에서도 활용된다.===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 지금+여기 3오찬호 (지은이)개마고원2013-12-06
책소개그동안 많은 이십대 담론은 이십대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그들의 사회경제적 처지, 그리고 그 해결책에 대해서 논했다. 이십대들이 문제에 부딪혀 있으니, 이를 해결하여 이십대들이 ‘제대로’ 살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여러 이야기들은 상시적인 불안에 내몰린 이십대들이 그 결과로 어떤 존재로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 이십대들은 ‘정상적인 삶’과 ‘윤리’와 ‘공정’ 등에 대한 개념이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다. 예전의 ‘진보적 이십대’를 놓고 생각한다면 이들은 매우 뒤틀려 보이기까지 한다. 이십대 자체가 문제적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늘날 이십대들은 마냥 고통 받는 것만이 아니라, 그 고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 찬성하기까지 하며 스스로도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데 앞장서기도 한다. 이런 기묘한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십대 문제를 결코 풀 수 없을 것이다.목차머리말 | 지금 이십대가 위험하다
1장 강의실에서 바보가 된 어느 시간강사 이야기“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동병상련은 없다!비정규직인 건 자기계발 안 한 탓?이십대를 이해하는 것, 그래서 이십대에게 할 수 있는 말
2장 자기계발서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이십대의 자기계발 아이러니왜 아무도 문제시 하지 않는 걸까?촛불 든 이십대, 사회에 눈 감다차별과 해고를 정당하다 여기는 이유시간관리, 자기 통제, 그리고 칼날
3장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멋진 신세계’가 이룩한 재앙첫째: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기둘째: 편견의 확대재생산셋째: 주어진 기존의 길만 맹목적으로 따라가기왜 학력위계주의가 문제인가덫에 걸린 대학생들의 자기방어진리의 빛, 수능점수‘떨어지는’ 동년배에 대한 무시 또는 배려다른 이를 평가하는 좁은 잣대“내가 이룬 성과를 존중해달라”대학서열에 대한 무모한 집착본질에서 벗어난 평가점점 단단해지는 기존의 편견어두운 수능의 추억학력위계, 끌어 내리기와 밟아 오르기상품화된 개인, 그런데‘팔리지 않는’개인학교 야구잠바의 사회학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 이십대미래도 희망적이지 않다원인1: IMF의 추억원인2: 경영학과의 사회학원인3: before/after의 덫
4장 자기계발 권하는 사회를 치유하자!‘원래 그런 세상’은 없다긍정과 희망을 논하기 전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무엇을 간과했을까공정성을 다시 생각하자기회는 균등한가?과정은 공정한가?맷집의 사회학CPA의 사회학결과는 정의로운가?
맺음말 | 그따위 위로는 당장 멈춰라!접기책속에서첫문장지난 6년간 학기마다 꼬박꼬박 4~5개 대학을 돌아다니면서 600~700여 명의 이십대 대학생들을 만나는 게 일과였던 나에게, 어느 날 아주 오랫동안 기억될 사건이 발생했다.이십대는 불안하니까 자기계발 담론을 받아들여 위기를 넘어서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불안한 상태는 계속 유지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도돌이표 처럼 갇혀버리는 것이다.모두가 이 자기계발의 수행에 동참하면 그 어마어마한 참여자들 덕택에 성공하는 ‘하나의’ 사례는 또 발견될 것이고,이는 ‘기능성'의 객관적 증거로 활용될 것이다.그리고 이렇게 희박한 성공의 기능성이 표면화될 때,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수천수만의 사례는 노력 부족이리는 말로 간단하게 정리 처분된다.이렇게 좌절하는 자아가 많아질수록 자기계발서 시장은 더 커진다는 건 두 말하면 잔소리. 노골적으로 말해, 자기계발서를 읽었다는 건 낚였다!’의 다른 말인 것이다.-34쪽  접기 - 마늘빵이십대는 불안하니까 자기계발 담론을 받아들여 위기를 넘어서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불안한 상태는 계속 유지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도돌이표 처럼 갇혀버리는 것이다.모두가 이 자기계발의 수행에 동참하면 그 어마어마한 참여자들 덕택에 성공하는 ‘하나의’ 사례는 또 발견될 것이고,이는 ‘기능성'의 객관적 증거로 활용될 것이다.그리고 이렇게 희박한 성공의 기능성이 표면화될 때,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수천수만의 사례는 노력 부족이리는 말로 간단하게 정리 처분된다.이렇게 좌절하는 자아가 많아질수록 자기계발서 시장은 더 커진다는 건 두 말하면 잔소리. 노골적으로 말해, 자기계발서를 읽었다는 건 낚였다!’의 다른 말인 것이다.-38쪽  접기 - 마늘빵오동철: 너 아직도 노냐?한세진: 예? 노는 게 아니라.....오동철: 요새 취직하기도 힘들다는데.....불황 아니냐, 불황.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착해요. 텔레비전에서보니까 프랑스 백수 애들은 일자리 달라고 다 때려 부수고 개지랄을 떨던데,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다 지탓인줄 알아요. 지가 못나서 그런 줄 알고. 아휴~새끼들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다 정부가 잘못해서 그런 건데~~ 야! 너도 너 욕하고 그러지 마. 취직 안 된다고. 니 탓이 아니니까. 당당하게 살어! 힘내 씨발!-50쪽  접기 - 마늘빵시간을 ‘나처럼’ 보내지 않은 사람을 결코 ‘나와 같은 급’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 다 같은 노동자라고? 큰일 날 소리다. 나보다 ‘덜’ 노력한 사람은 그만큼 ‘덜’ 대우받아야 한다. 이렇게 ‘엄격한 시간관리'만이라도 평가받길 원하는 것이다.-82쪽 - 마늘빵개인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느냐를 기준으로 모든 세상사를 다시 보게 만드는 것이다. 자기계발을 수행해야만 하는 상황이 세상을 바라보는 이십대의 눈을 만들어버렸고, 그 이십대의 눈은 곧 자기계발서 자체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이십대 스스로 그 시각에 갇혀, 결국은 다시 자기계발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십대가 자기계발을 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인정하지 않던 바로 ‘그 사람들’이 되기 싫어서다. 이것이 자신을 자기통제적인 자기계발로 몰아붙이게 하고, 덩달아 ‘시간관리’에 대한 신념은 더욱 강화되며, 이 신념은 타인을 평가하는 고정관념이 되어버린다. -83-84쪽  접기 - 마늘빵더보기추천글괴물이 되어버린 20대 - 서민 (단국대 의과대학 교수, <밥보다 일기> 저자)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3년 12월 22일자 '한 주를 여는 생각'저자 및 역자소개오찬호 (지은이) 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오랫동안 강의했다. 대구와 서울을 거쳐 현재는 제주의 시골에서 산다. 주로 글을 읽고 쓰며 가끔 육지로 나가 강연한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보면서 사회가 개인을 어떻게 괴롭히는지 추적하는 데 관심이 많다. 평범한 일상 속 차별과 혐오의 씨앗을 찾고 드러내는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
『민낯들』은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라는 체념과 “사회 탓만 하고 살 거야?”라는 무례함이 응축되었을 때,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반복되는지 역으로 따져 본 결과물이다. 매번 사람들 입에서 되풀이되는 ‘재발 방지’를 위해 정말로 필요한 변화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불쏘시개가 되었으면 한다.
인문사회과학출판협의회 ‘10년을 빛낸 책’(세대 부문)으로 선정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를 시작으로 『진격의 대학교』(2015),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2018) 등 여러 책을 집필했다. 최근 작으로는 2020년에 출간한 『지금 여기, 무탈한가요?』, 『곱창 1인분도 배달되는 세상, 모두가 행복할까』,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등이 있다. 『민낯들』은 열세 번째 단독 저서다. 〈차이나는 클라스〉(JTBC), 〈어쩌다 어른〉(tvN),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CBS) 등 여러 방송에 출연한 바 있다. 접기최근작 : <민낯들>,<잠깐! 이게 다 인권 문제라고요?>,<매거진 G 1호 나란 무엇인가?> … 총 48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대한민국 이십대는 어떻게 괴물이 되었는가
장면1. 어느 대학 강의실.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KTX 비정규직 여승무원의 정규직 전환 요구를 놓고서 강사와 학생들이 토론을 벌인다. 한 학생이 이렇게 말한다.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다른 학생들도 이런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눈치다. 이에 힘입은 그는 계속 말한다. “입사할 때는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었으면서 갑자기 정규직 하겠다고 떼쓰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행위인 것 같습니다.” 수강생의 3분의 2 이상이 이 의견에 동의했다.
장면2. 지방대 출신이 취업시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다룬 영화를 보고 일단의 학생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주인공의 처지에 충격을 받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모임을 주관한 강사는 그들에게 지방대에 대한 차별이 불공평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 학생은 언제 울었냐는 듯이 “지방대는 저희 학교보다 대학서열이 낮아도 한참 낮은 곳인데, 제가 그쪽 학교의 학생들과 같은 급으로 취급을 받는 건 말이 안 되죠!”라고 답했다. 여기에 반대하는 이는 없엇다. 이들은 모두 ‘인서울’ 대학 학생이었다.
장면3. 학교에서 가장 잘나가는 학과인 경영학과에 다니는 한 학생은 자기 학과가 다른 학과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겨우 턱걸이”해서 학교에 들어온 철학과나 사학과 학생들을 “개무시”한다. 수능을 보지 않고 들어온 수시생들을 ‘수시충’이라 비하하며 부르고, 재외국인 전형, 사회통합 전형 같은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학우들을 낮춰본다. 최근 몇몇 대학들에서는 지역균형, 기회균등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을 ‘지균충’ ‘기균충’이라 부르며 무시한다고 한다.
이것이 이 책이 보여주고 있는 지금의 이십대다. 이들에겐 어떤 공통점이 있다. 바로 차별의 벽을 쌓고 상대를 밀어내는 태도다. 자신의 현재 위치에 대한 방어와 타인에 대한 공격이 동전의 양면처럼 쌍을 이룬다. 즉 이들은 현 사회의 피해자일 뿐만 아니라 가해자이기도 하다.그동안 많은 이십대 담론은 이십대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그들의 사회경제적 처지, 그리고 그 해결책에 대해서 논했다. 이십대들이 문제에 부딪혀 있으니, 이를 해결하여 이십대들이 ‘제대로’ 살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여러 이야기들은 상시적인 불안에 내몰린 이십대들이 그 결과로 어떤 존재로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 이십대들은 ‘정상적인 삶’과 ‘윤리’와 ‘공정’ 등에 대한 개념이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다. 예전의 ‘진보적 이십대’를 놓고 생각한다면 이들은 매우 뒤틀려 보이기까지 한다. 이십대 자체가 문제적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늘날 이십대들은 마냥 고통 받는 것만이 아니라, 그 고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 찬성하기까지 하며 스스로도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데 앞장서기도 한다. 이런 기묘한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십대 문제를 결코 풀 수 없을 것이다.
불안에 잠식당한 이들의 새로운 윤리
이십대 변화의 근원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겪고 있는 극심한 불안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정적인 삶을 기대할 수 없게 된 현실에서 이십대들은 자기 몫을 챙기는 데 매우 예민해졌다. ‘자기 노력에 대한 보상’에 굉장히 집착하게 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길 원하는 것은 노력 없이 좋은 결과를 얻으려는 ‘도둑놈 심보’다. 여기서 비정규직 고용 형태의 불합리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안 된다. 자신들은 이렇게 노력해도 취업이 안 되는데 비정규직이 바로 정규직이 된다는 사실에 이들은 박탈감을 넘어 격렬한 분노마저 느낀다. 이들에게 이 분노는 더없이 정당한 것이다.마찬가지로 이십대들이 생각하기에, 지방대와 상위권대 학생은 각 대학에 가기 위해 들인 노력(곧 수능점수)이 다른데 똑같이 취급받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당연히 차별 대우를 받아야 한다. 때문에 요즘 이십대 대학생들은 과거보다도 더 학교서열에 민감하다. 단순히 학교 등급을 나눌 뿐만 아니라 학교 내에서도 학과에 따라서도 등급을 나누고 정시생과 수시생, 특별전형 등을 구분 짓기도 한다. 각각의 단계 차이를 과장하고 넘을 수 없는 벽을 쌓고자 한다. 저자는 이런 이십대들의 새로운 학력주의 행태를 ‘학력위계주의’라고 부른다. 명문대 대학생들은 과거와는 다르게 자신이 명문대를 다닌다는 것을 과시하고, 하위권 대학 학생들을 멸시한다. 대학생들이 학교와 학과명을 내건 야구잠바를 입고 다니는 유행에서도 그런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학교 수준에 따른 과시와 멸시, 우월감과 열등감의 법칙이 이십대들을 지배하고 있다.
연세대는 서강대를, 서강대는 성균관대를, 성균관대는 중앙대를, 중앙대는 세종대를, 세종대는 서경대를, 서경대는 안양대를, 안양대는 성결대를 ‘무시’한다. 행여나 후자가 전자를 ‘비슷한 대학’으로 엮기라도 할라치면 그 순간 전자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고 난리가 난다. 그렇게 4년제는 다시 2년제를, 2년제는 또 같은 기준에 근거해서 자기들 내부를 쪼개고 줄세운다. 모두가 이렇게 같은 논리를 가지고 가해자 역할을 하며, 또 그래서 당연히 피해자 신분이 되는 상황에도 매우 능동적으로 기여하는 셈이다. ―본문 125쪽
미래가 약속되어 있지 않고, 삶이 불안정한 이들은 현재 자신이 가진 것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이십대도 그렇다. 자기가 기울인 노력과 그 결과물, 즉 학력 및 여러 스펙의 가치를 인정받으려 안달한다. 그리고 그것을 기준으로 세상만사를 평가한다. 노력의 결과물이 부족한 이들은 자연히 자신보다 ‘떨어지는’ 존재며, 이들이 자신보다 앞서 가는 건 정당하지 않은 일이다. 이십대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계발에 몰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계발이 일종의 윤리 기준이 돼버린 것이다. 그렇게 이십대 내면에는 새로운 윤리가 자리 잡게 되었다.
저주의 순환은 계속된다
이십대를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이 저주의 메커니즘을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누구나 알 듯 치열한 경쟁이 일상이 되면서,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지상과제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계발 논리가 접목됐다. 이 논리는 경쟁에서의 승리와 패배는 자신에 달려 있다는 기본 전제 아래 자기 자신을 통제하고 희생시키면서까지 자기계발할 것을 주문한다. 이것은 흔하게는 ‘스펙 쌓기’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어떤 식이든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미래를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 좋은 삶으로 여겨진다. 허나 그 시간투자가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인지, 혹 강요된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지 않는다. 설령 바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시간을 엄격히 관리하는 노력 자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게으른 것보다는 열심히 미래를 준비하는 게 낫다’는 도덕적 당위로 아무것도 약속되지 않는 자기희생을 포장한다.이런 논리가 내면의 윤리가 되어 자기를 채찍질하는 것은 큰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열심히 사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문제는 그 채찍질이 다른 사람에게도 가해진다는 점이다. 자신이 투자한 노력과 시간을 기준으로, 그보다 노력이 부족한 이들을 가혹하게 평가한다. 나보다 ‘덜’ 노력한 사람은 나보다 전적으로 부족한 존재이며, 당연히 ‘덜’ 대우받아야 한다. 심지어 인격적으로(게으르고 개념 없다는 등) 모욕하기까지 한다. 이는 누구든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경쟁 사회에서 비교우위를 얻기 위한 방편이자, 끝이 보이지 않는 괴로운 자기계발 과정에서 위안을 얻으려는 행위이기도 하다. 다른 이를 자기보다 밑으로 끌어내리고 조리돌림함으로써 안심하는 것이다. 반대로 짓밟히는 이들은 그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기계발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이 거듭될수록 타인을 평가하는 시선은 더욱 편협해지고 가혹해지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의 3장에서 학력위계주의에 빠진 대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그 끔찍한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위로만으론 안 된다. 현실 직시가 필요하다
저자는 2008년도에 KTX 여승무원 사태에 대한 학생들과의 논의를 계기로 연구를 시작했다. 2000장이 넘는 에세이를 검토하고 50여 명과 심층 인터뷰를 하며 변화의 양상을 세밀히 탐구했다. 그 과정에서 이들의 속마음까지도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해서 저자는 이십대가 괴물이 되었다는 마뜩치 않은 결론에 도달한다. 과거의 청년 세대들이 공정이라고 생각하던 것을 불공정이라 생각하고, 평등을 거부하며, 차별에 찬성하는 그런 존재가 된 것이다. 실제로 여성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특혜에 반대하고, 부의 세습을 부끄러운 것이라기보다는 부러운 것으로 바라보는 이십대 이야기가 어느덧 익숙해지고 있다. 이런 태도는 심한 경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한 포비아(혐오)로 표출되기도 한다. 인터넷 마녀사냥의 횡행과 ‘일베’의 출현은 그 전조일지도 모른다. 이 암울한 시대에 암울하게 변해버린 이십대들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 이유다.이십대를 둘러싸고 이제껏 진행되온 담론의 양상은 다양하다. 이십대가 자신들의 어려운 사회경제적 처지를 깨닫고 정치적으로 행동하길 주문하는 쪽도 있었고, 이십대가 사회참여를 하지 않는다며 ‘이십대 포기론’을 말하는 쪽도 있었다. 이십대 스스로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는 흐름이 있었으며, 얼마 전까지는 이십대에 대한 위로와 격려가 붐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이십대가 사회로부터 핍박받고 있는 존재라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에서 한발짝 더 나아간다. 지금의 이십대는 그러한 핍박에 순응하여, 스스로도 핍박을 하는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진보적인 이십대’ 또는 ‘정치적 주체로서의 이십대’ 같은 가정은 이제는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이다.그렇다면 지금의 이십대를 두고 참 안됐다며 위로만 하면 될까?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라고 닦달만 하면 될까? 저자는 이십대들의 현재를 냉철히 짚고 그 원인을 찾아보는 것에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제안한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십대들의 서글픈 자화상이다.접기북플 bookple이 책의 마니아가 남긴 글친구가 남긴 글내가 남긴 글img✒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은 이런 (아픈 또는 고마운?) 경험을 하게된다. 지각이나 흡연을 하다 발각되었을 때 우등생과 열등생에 대한 선생님의 반응이 다르다는 것을. 선생님의 의도적인 이중잣대일 수도 있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확증편향에 따라 우등생의 행동에 대해서는 너그럽게 이해하려는 마음이 작동한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은 여성,... 더보기머리쓰기&글쓰기 2021-12-16 공감 (11) 댓글 (0)img처음 읽은 책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이는 오랜 기간, 전국구 시간강사로 광폭 행보(?)를 해온 경험 덕분에 더 힘이 실릴 수 밖에 없는 글입니다. 직접 대학생들과 강의실에서 토론으로 맞장 뜨고, 그들의 레포트를 읽으며 20대의 생각을 가까이에서 모을 수 있었기에, 힘이 실릴 수 밖에 없는 글입니다. 두번 째 읽은 [진격의 대학교] 역시 마찬가지... 더보기얄라알라 2020-11-08 공감 (24) 댓글 (3)img'날로 정규직되려고 하면 안되잖아요'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와 지지에 연대를 보내지는 못하고 시시포스적 '끌어내리기'와 '밟고오르기'를 시전하는 사람들을 보니 눈앞이 아득해진다. 어쩌면 일부 언론이 그렇게 선동하는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위계적인 사회와 계층간 사다리가 걷어차여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을때까지 '밥벌이'만 하다가 가야 할 상황이라는 걸... 더보기자강 2020-06-26 공감 (27) 댓글 (0)===평점 분포     8.6100자평     배송 문의나 욕설 및 인신공격성 글은 상품 페이지에서 노출 제외처리됩니다.등록카테고리스포일러 포함 글 작성 유의사항 구매자 (35)전체 (66)공감순      먹먹한 감정이 드는, 그래서 무척이나 의미있는 독서를 했어요. 저 밑에 마이리뷰에 글 쓰신 분 대단함. 책이 20대 디스하는 책이라니요. 처음부터 끝까지 20대를 대하는 사회를 디스하는데..글고 초반에 그 판매부수는 ˝요즘 분위기가 이렇다˝는 정도덴, 방법론, 논문수준 어쩌고.그게 바로 디스지..  구매dali012 2013-12-19 공감 (17) 댓글 (0)Thanks to 공감     이 책은 저자의 논문을 보완한 책인데, 최근 20대를 분석한 책 중에 현실성이 반영된 책이라고 보여진다. 100자평내에서도 이 책이 이야기하는 속성이 엿보일 정도로 공감되는 측면이 존재한다. 경쟁과 차별이 내재화된 현재의 20대들이 고민과 갈등에 기성세대들이 어떻게 화답하게 될지 궁금하다.  구매즐거운하루 2013-12-20 공감 (13) 댓글 (0)Thanks to 공감     청년층의 사회부조리문제를 다루는 책들중에서는 상당히쉽게 읽힐만큼 어렵지않게 쓰인글이라는 점에서 박수를 보냅니다.결론은 부조리한 체제라는 걸 알면서도 각자의 노력 또한 체제안에서 유의미하므로 그체제를 공고히하는쪽으로 행동하게 되는구나 생각이듭니다.가해를 하든 피해를 받든 말이죠..  구매clauser 2014-01-13 공감 (12) 댓글 (0)Thanks to 공감     중요한 이슈인데 이게(solidarity) 맞고 너희는 틀렸다에서 시작한 관찰과 해석이라 한계가 명확하다.  구매로지온 2013-12-22 공감 (11) 댓글 (0)Thanks to 공감     이해할 수 없던 20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도와주는 오늘날의 보고서. 편견을 줄이고 이해를 높여가는 이런 책이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구매샐닢 2014-01-03 공감 (8) 댓글 (0)Thanks to 공감


===Namgok Lee어제 아들과 대화하면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에 대한 소개와 함께 지금의 20대 청년들의 사고방식을 듣고, 청년문제의 다른 축(軸) 즉 주체의 문제가 더 심각하고,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더욱 어렵겠다는 것을 느꼈다.물론 그 책임은 부모 세대(기성세대)에게 있다.교육열의 바탕이 되고 있는 그 욕망들, 돈에 대한 갈망과 각자도생의 이기주의가 만들어 놓고 불어넣어서 형성된 ‘괴물’(인용하는 독후감 안에 나오는 표현임)이 된 청년 세대.어디서부터 해결할 것인가?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내가 하는 이야기들도 막상 주체인 청년 세대에게  한 낱 구름잡는 이야기로 들리겠구나 하는 생각과  어떤 시스템이나 제도의 결함보다 우리 사회를 정체시키는데 더 심각하다는 생각 때문에 밤 잠을 설쳤다.(무더위와 함께)어떻게 할 것인가?나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보인다.대학을 새로운 문화의 산실로 변화시키지 못하면, 당당하고 떳떳한 나라가 서지 못하겠구나하는...뚜렷한 대책도 내 놓기 힘들어서 더 힘든...시간이 해결할까?이른바 지난 업적(?)들이 만들어 놓은 가장 심각한 문제다. 책을 구해서 읽어볼 생각이지만, 우선 인터넷을 통해 책의 내용을 들여다본다.---------------------[리뷰/독후감]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오찬호) 2017.01.11. 18:47 1. 그러니까 우리는 그거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아. 직장인이냐, 아니면 무직이냐. 이걸로 다 결정나버려.ebs 다큐프라임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에서 한 취준생의 이야기이다. 나는 이 말에서 현재 20대가 ‘취업’이라는 사슬에 얼마나 큰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지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대학은 물론 청춘으로 포장되는 스펙과 경험, 이십대의 모든 활동이 사실상 취업과 연결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취업이라는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20대가 가지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고민해볼 수 있었다. 대한민국 20대의 정체성, 정말로 20대는 작가가 책의 도입부에 이야기한 것처럼 ‘괴물’ 이 되어버렸을까?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특정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체화한다. 따라서 그런 시각에서 보면,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되기 위한 노력을 다하지 않은 결과일 뿐이다...현재의 경제적 상황을 자기계발로 극복하고자 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이십대로 하여금 이렇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요구에 특정한 입장을 갖게 만든다. 그 결과, 자신들이 종사하게 될 그 ‘노동시장’의 환경은 더 나빠질 뿐이다. 이렇게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이 역설적 상황이 내 ‘의문’의 출발지점이었다.저자는 현 이십대들의 취업전쟁, 경쟁주의가 그들 스스로를 더욱 험난한 구조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자기계발의 눈’에 문제제기 한다. 자기계발이라는 필름이 하나 덧씌워진 채로, 대학생들은 세상 모든 문제에서 개인의 노력차이와 시간관리를 따진다. 열심히 하고도 결과를 보장받지 못 하는 것 역시,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한 탓일 것이며, 그럼에도 남들과 같은 길을 고집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이라고 애써 위로한다. 자신에 적용되는 엄격한 자기계발 필름은 타인에게도 적용되어 타인을 평가하고 깎아 내리는 데에 이용한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들로 이십대들은 결국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 그들이 ‘헬조선’이라 일컫는 시스템을 ‘무한 반복’시키는 것에 적극 일조하는 것이다.1등만이 살아남는 승자독식사회 구조가 그 엄청난 불공정성에도 어떻게든 유지되는 것은 이처럼 모든 사회적 구성원들이 이 구조를 적극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의 피해자들이 가장 충실한 구조의 유지자로 기여하기에 사회는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어 나간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만약 이들이 정말로 자신의 ‘선택’에 확신하고 처음부터 스스로의 방향성을 결정할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자기계발서의 필름을 장착한 채로 오로지 ‘나’ 한 사람의 잘못, ‘너’ 하나의 잘못으로 사회를 바라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와 주변을 탐구할 시간도 없이 급하게 20대에 들어선 우리는 사실 어디서부터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 ‘잘’ 모른다. 스스로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스스로에게 가장 미숙한 이들이 현재의 20대인 것이다. 사회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쉴 새 없이 돌아가고, 경쟁 속에서 조금이라도 방심할 수는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아야 하지만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 지 몰라 무작정 달리기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도착지점은 보이지 않고, 앞 상대와의 거리는 멀어지기만 하는 것 같아, 무언가 스스로를 변명할 것이 필요하다. 서열, 수능성적에 집착하며 옆 상대를 밀어내기에 바쁘고 스스로에게는 노력부족이라며 다그친다. 어쩌면 많은 대학생들이 이제는 너무 당연해서 자신들의 현실에 아무런 문제의식조차 가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개인’의 능력은 중요시하면서, 사실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도 명확하지 않은 채로 그저 주위에서 하는 대로, 뒤처지기는 싫다는 생각에 무작정 다수의 사고방식을 체화하는 것 일지 모른다. 마치 같은 설계도에 맞춰 작동하는 톱니바퀴처럼 굴러갈 뿐, 그 어디에도 자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성찰은 없다. 자기 ‘자신’도 의심해보지 않는데, 하물며 사회 시스템에 어떤 의심을 가지고 질문을 할 것이란 말인가.왜 우리가 대안을 고민해야 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확실히 공감하는 게 오히려 자기계발 권하는 이 사회를 변화시킬 근본적인 해결책이지 않겠는가.20대들의 현실에 어떤 해결책을 ‘당장’ 내 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저자는 해결방법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제기를 막아버리는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먼저 ‘문제제기’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기한은 가늠할 수 없다.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면, 결국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세계가 진보한 과정이 그렇듯이, 변화는 작은 의심에서부터, 소수의 문제제기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2. 현재 내 나이는 22살, 현대사회와 이해 교수님 추천으로 오찬오 선생님이 쓴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 교수님께서 책을 소개 하실 때 나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응? 차별을 찬성?’ 그래서 두 번째로 교수님께서 책 제목을 다시 말씀하실 때까지 다시 귀를 쫑긋 세웠다. 하지만 처음에 들은 게 맞았다. ‘응? 지금과 같은 민주시대에 차별을 찬성?’ 제목부터가 특이했다. 내 상식에 어긋났다. 하지만 곧 이 책을 읽다보니 책 제목의 ‘우리’는 나를 포함한 현시대 20대 학생들이며 ‘우리는 차별에 찬성한다’라는 어구는 나를 포함한 20대 대학생들의 생각이었다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이 책은 경쟁사회의 사고방식에 길들여진 20대의 이야기이다. 지금 20대인 우리는 치열한 공부 경쟁을 통하여 대학교에 입학하였고, 또 다시 취업을 위해서 옆 사람보다 더 나은 스펙을 쌓는데 몰두하며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다. 또한 수능이라는 잣대 하나만으로 개개인의 학창 시절의 성실도를 판단하고, 거의 공식처럼 정해져버린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와 같은 대학서열을 통해 누군가를 부러워하기도 하며 누군가를 무시한다.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이것이 바로 내 이야기였고, 내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자신을 성찰해 보았다. ‘수능이 진리인 양, 대학서열에 집착했던 나... 쌓은 스펙에 따라서는 각자 다르게 대우받아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나... 이렇게 경쟁구조 사회에 물든 나...’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3.여러분은 차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우린 손쉽게 인종차별, 성차별 등 많은 차별들이 사회 속에서 도래하고 있음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우리가 찾지 못하고 있던 또 하나의 차별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청년과 청소년들 사이에 깊게 뿌리 내린 차별입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그 차별을 담아낸 책,“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을 소개합니다. <사진1>“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이 책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회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인 이십대의 모순적인 모습, 그리고 이 부당한 구조를 지지하는 모습을 말입니다. 이 책에서는 자기계발서가 오직 취업을 위한 하나의 스펙이 된 것, 수능점수에 따른 또래에 대한 당당한 무시, 배려, 그리고 (현재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는 수능점수가) 현재에 대한 평가로 도래하는 것, 대학서열에 대한 집착 등을 그 예로 들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긍정과 희망을 주기‘만’하는 자기계발서와 우리 사회를 비판하고 사회의 공정성을 해결책으로 제시합니다. 기회, 과정, 결과가 모두 공정한 사회를 말입니다.진짜 우리의 모습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의 청년들과 청소년들의 일상에 무수한 차별들이 자리 잡고 있음에 충격 받았습니다. 차별이라는 차별엔 무조건 반대를 외치던 자신에게 부끄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차별이 결코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 일상에도 깊숙하게 힘을 행사하고 있음을 알게 해주었고, 마냥 내가 차별을 반대하고 있지 않았음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읽으면서 와 닿았던 부분들이 있다면, 우월주의, 과잠, 자기계발, 비정규직이었습니다.-우월주의이 책에서는 한 학생을 통해 우월주의를 비유합니다. 명문대에 다니는 0군은 교회활동에서 다른 학생들이 ‘상처’받을 까봐 대학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습니다. 또한 다른 청년은 또래가 지방대라는 이유만으로 개인 능력부터 일상까지 깎아 내립니다. 이 모습을 통해 필자 또한 일상생활 속에서 우월주의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공부를 조금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안타깝다”라는 말을 쓰거나 친구의 사소한 문제까지 성적과 연결시켜 판단하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과잠서강대에 다니는 0양은 길거리에서 S가 붙은 과잠(대학교 학과 야구잠바)을 보면 무조건 어떤 대학인지 알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만약 서울대라면 한숨을, 성결대라면 안도의 숨을 내뱉습니다. 또한 요즘 들어 명문대 과잠의 유행을 이 책에서는 언급합니다. 사실 필자는 대학교에 대한 로망 중 하나로 과잠이 자리 잡을 정도로 학력위계질서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이 과잠이 단순히 학력경쟁에서 당당하게 성공을 거둔 ‘대학생’이라는 증표에서 벗어나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고 남을 깎아내리는 또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잠뿐만 아니라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나보다 공부를 잘하거나 특목고에 다니는 또래를 보면 내 자신이 위축되지만 우리학교보다 공부를 못한다고 알려진 학교에 다니는 또래를 보면 오히려 당당해지는 ‘나’를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자기계발의 의미대학생들에게 자기계발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으면 답은 당연하게 자격증이나 봉사활동 시간, 대외 활동으로 마무리 됩니다. 이처럼 자기계발의 의미가 단순히 자신의 진정한 발전보다는 오직 기업에서 바라는 하나의 취업 자원으로 바뀌어가고 있었습니다. 필자 또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당연하게 자기계발을 스펙으로 여길 정도로 그 단어의 의미보다는 사회에 맞추어가고 있었습니다. 취업을 하지 못하면 온전히 자신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자기계발서의 문제 또한 자각하지 못했고, 입시제도의 레이서로서 필자는 자기계발을 대회 수상 목록쯤으로나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자기계발을 하나의 자원으로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심각성을 되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이처럼 우리 청년들과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많은 차별들이 존재했습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우리들’의 차별을 말입니다. ‘우리들’의 차별이기에 더욱 느끼기 힘들었던 차별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차별들에는 반대했던 우리가 알고 보면 이 부당한 구조를 적극 지지하는, 차별 찬성자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찬성자였다고 낙담하기는 이릅니다. 우리 스스로 이 차별을 반대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과거에도 또한 많은 차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업화 이전에는 크게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당연했던 여성 무선거권에 ‘차별’이름표를 붙임으로써 여성차별이 문제로 대두되고, ‘살’색 색연필에 또한 이름표를 붙이면서 인종차별이 사회 문제로 뜨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많은 차별들이 존재했지만 하나 둘 작은 자각에서부터 차별은 사라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차별에 ‘차별’이름표를 붙여줌으로서 진정으로 공정한 세상, 각자의 능력이 존중받는 세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차별에 반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MOO독자 여러분도 먼저 우리 속의 차별을 돌아보는 것부터 차별에 반대해보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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