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4

이재봉 장마와 독서: 세월호 참사 조사 / 아시럽 달리기 | 평화 세상

이재봉의 평화세상

장마와 독서: 세월호 참사 조사 / 아시럽 달리기 | 평화 세상

이재봉 2022. 7. 24. 07:56

http://blog.daum.net/pbpm21/618


저는 장마가 좋습니다. 봄부터 가뭄이 극심했는데 정원과 과수원의 화초와 나무엔 양분을 주고 농부에겐 휴식을 제공하니까요. 마당.밭일이 아무리 밀려도 비가 내리면 만사 제치고 책에 매달릴 수 있거든요. 장마철이 독서의 계절이 되는 거죠.

마침 7월엔 10여권 책을 받았습니다. 진보당에 관심 가지면서 조봉암, 진보당, 사회민주주의 등에 관한 책들을 읽다 중단하고 선물 받은 책부터 붙잡았지요.

제자가 서울의 대학원에서 석사논문을 끝내자마자 가져왔는데, NLL 관련 남북군사회담에 관해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제자 논문을 통해 제가 잘못 가르쳐온 게 적지 않다는 걸 깨달으면서요. 통일운동에 전생을 바쳐오신 90대 어르신 평전에 추천사를 써달라는 부탁과 함께 받은 세 권짜리 원고를 통해서는 해방, 분단, 전쟁, 통일운동에 관한 한국현대사를 다시 공부할 수 있었고요. 다음 두 가지 책은 여러분께서도 꼭 읽어보시길 강추합니다.

1. 박상은,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재난 조사 실패의 기록≫, 진실의 힘, 2022.

저자 아빠가 건네준 책입니다. 박상은 선생은 제 친구 ‘동학쟁이’ 역사학자 박맹수 원광대 총장 딸이거든요. 연세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시민운동하면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에서 활동하다,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하고, ‘선체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 집필진에 동참했던 저자가 작년 충북대 대학원에서 쓴 사회학석사 논문을 크게 보완해 펴낸 책입니다. 끔찍한 참사 원인과 책임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배경과 그 과정에서의 ‘무능과 실수’ 등에 대한 ‘내부 고발’ 또는 ‘자기 평가’ 같은 기록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참사 조사에 대한 정부의 방해에 분노했지만, 저자는 박근혜 정부의 방해가 가장 결정적 이유였다면 문재인 정부에서도 같은 어려움이 반복된 구조적 이유가 뭐겠느냐고 냉정하게 묻습니다. 재난이 발생하면 법적 책임을 추궁하는 경찰.검찰 조사에 지나치게 집중하기 마련인데, 그는 책임자 처벌이 목적인 ‘수사’와 사건의 인과 관계를 밝히는 ‘조사’를 분리하는 국제기준을 적용하자고 제안합니다.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구조 개혁, 재발 방지 대책 등이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죠.

박사 과정에서도 ‘위험과 재난’을 주제로 연구하는 전문가의 글에 어설픈 서평을 쓰기보다 아래 신문 기사를 소개하는 게 낫겠군요. 세월호 참사에 30대 청춘 8년을 바치고 8월 결혼식을 올린다는 저자에게 격려와 축하의 맘으로 읽어보시겠어요?

<연합뉴스> "세번의 세월호 참사 조사 모두 실패…이제 질문을 바꿀 때“
https://www.yna.co.kr/view/AKR20220706107900004

<한겨레> “세월호, 복잡한 책임 문제를 단순하게 풀려 하지 않았나”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50928.html


2. 강명구, ≪유라시아 비단길 아시럽 평화의 길≫, 1-3권, 문사철, 2022.

이젠 세계적 유명인사가 된 저자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 선생에 대해 더 이상 소개할 필요 없겠지요. “달리기로 세계 최고의 대서사시를 쓰겠다고 나선 사람이고 인류 최대의 무대에서 전위예술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 회갑을 맞은 2017년 9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고 호소하는 깃발을 단 70kg 넘는 손수레를 밀며, 유라시아/아시럽 대륙 16개국을 뛰어 횡단한 여행기입니다.

“구한말 이준 열사가 이루지 못한 110년 묵은 ‘자주독립’의 꿈을 가슴에 안고 유럽의 땅끝마을 네덜란드 헤이그로 날아가 세상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아시럽 대륙 1만 6천km를 달려서 평양을 거쳐 서울까지 오는 대장정을 시작”했지만, 중국 단둥에서 압록강을 건너지 못하고 달리기를 멈춰야 했던 아쉬움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총과 칼로 세계를 지배했던 유럽을 앞세운 ‘유러시아’는 익숙하지만, 문화와 평화를 내세우는 아시아를 앞세운 ‘아시럽’이란 말은 좀 생소하죠? 우리는 아시아에 속하면서도 ‘유라시아’로 쓰지만 중국인들은 ‘아구 (亞歐)’라 쓰는 사실을 참고하시면 좋겠군요. 미국과 유럽의 세계지도엔 유럽이 가운데 있고 아시아가 오른쪽 끝에 있지만, 한국과 중국은 아시아를 가운데 놓고 유럽을 왼쪽 끝에 두는 세계지도를 사용하는 점도 비교해보시고요.

아무튼 저는 15년 전 50대 초반 마라톤 풀코스 42km를 딱 한 번 완주해보고 평생 자랑거리로 삼아오는데, 친구 강명구는 홀로 14개월 동안 거의 매일 40-50km를 달리면서 지나는 곳의 지리와 풍광 그리고 역사와 문화를 페이스북으로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을 깔끔하게 다듬어 세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겁니다. 문학과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데다 평양 출신 시인 아버지의 문재를 닮은 듯한 유려한 글솜씨까지 지녀 1,300쪽의 글을 쉽고 재미있게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군요.

그가 2년 전 뇌경색에 걸려 아직 완치되지 않았는데, 또 다시 아시럽 횡단 마라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9월 베트남에서 뛰기 시작해 주로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며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평화를 얘기하고 싶다는 목표를 갖고요. 반신마비에서 완전히 풀리지 않은 몸으로 어찌 달릴 거냐는 만류 섞인 제 물음에 달려야 치유된다는 그의 대꾸가 재밌고도 대단합니다. 하기야 그는 에필로그에서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숨결이 거칠어져 새 숨결이 열리도록 통일이 오고 평화가 올 때까지” 계속 달리겠다고 다짐했지요.

세계 유일의 2대륙 횡단 마라토너이자 ‘뛰어다니는 백과사전’ 강명구를 응원 삼아 그의 책 많이 읽어주시기 바라며, 감사와 사랑으로 이재봉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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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의 세월호 참사 조사 모두 실패…이제 질문을 바꿀 때"

송고시간2022-07-09 



김치연 기자기자 페이지


특조위 조사관 출신 박상은씨,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발간

세월호 추모발길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치연 기자 = 세월호 참사 이후 8년간 세 번의 공식 재난조사 위원회가 구성됐지만 모두 실패했다. 소수의 책임자가 처벌받았고, 참사와 관련한 새로운 사실이 일부 수면 위로 떠 올랐지만 정작 대중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오히려 더 알지 못하는 상태에 빠졌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조사관 출신 박상은 씨는 이달 5일 펴낸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에서 세월호 참사를 조사한 특조위, 세월호 선체조사위(선조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의 조사가 실패했다며 이같이 진단했다.

9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사무실에서 만난 저자 박씨는 "세월호 참사 이전에 한국 사회의 재난조사는 대부분 검찰이 주도해 책임자를 가려내고 처벌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며 "재난조사기구는 수사기관과 다른 역할을 해야 하지만 세 개의 위원회는 모두 사법적 원인 규명에 몰두해 사람들이 재난을 이해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저자는 재난이 여러 행위자의 결정적이지 않은 잘못과 실수로 발생하기 때문세월호를 고의로 침몰시키거나 승객을 구조하지 말라고 명령한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월호 재난조사기구들은 '책임자 처벌'이라는 사법적 조사에 매달려 정작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묻고 답하는 구조적 원인에는 소홀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저자는 "법적 책임을 묻는 시도가 실패하는 과정에서 개인 처벌을 위한 사법적 조사가 구조적 원인 규명의 문제의식을 압도하고, 정치적 진영과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의 여부가 인과관계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됐다"며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가 제기한 많은 질문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박상은 저자

[촬영 김치연]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기업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지', '개인 처벌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재난조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재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방식은 무엇인지' 등 주요한 질문을 놓쳐왔다는 것이다.

다만 저자는 이런 재난조사기구들의 실패가 아예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재난조사 연구가 척박했던 한국 사회의 시행착오였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사법적 조사를 넘어선 재난조사위원회는 사실상 세월호 참사로 처음 시작됐다"며 "세월호 재난조사 기구들은 길게 보면 우리 사회에서 재난조사위원회의 첫 시작이고 실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주체가 최선을 다했고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전문지식과 인식론 속에서 재난조사를 했다"며 "이를 토대로 앞으로 다른 방식의 재난조사위원회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했다.

책에서 저자는 9·11테러, 인도 보팔 참사, 후쿠시마 핵 발전소 사고 등 해외 재난조사를 소개하고, 한국의 재난조사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재난조사 연구 방식을 제시한다.

책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진실의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저자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재난을 바라보는 인식과 던지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저자는 "즉각적으로 연결되는 선형적인 인과에 따라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재난도 있다"며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과 같다"고 말했다.

예컨대 석면 피해와 관련해 석면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던 사회 상황을 고려하면 국가와 기업에 명확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이에 대한 피해 구제를 사회 차원에서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석면피해구제법이 만들어진 것이 하나의 예다.

저자는 "법적 책임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사회가 재난을 함께 끌어안고, 예방과 그 이후 대처 방식을 고민하는 것들이 쌓이다 보면 재난 책임을 묻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사참위가 세월호 침몰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한 채 지난달 조사 활동을 종료한 이 시점, 저자는 2014년 참사 이후 느꼈던 감정을 다시금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직후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참사에 책임을 느꼈던 그 심정들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면 당시 제기했던 질문도 이어서 떠오를 것"이라며 "책을 통해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 이후 묻지 못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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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복잡한 책임 문제를 단순하게 풀려 하지 않았나

등록 :2022-07-14 
하어영 기자
기고ㅣ 세월호에 우리가 묻지 못한 것

  • 책임자 처벌·사회구조적 원인 규명
  • 두 가닥 엄중한 엄무 안고서 출발
  • 법률가 다수 채워진 사참위
  • 잠수함설·고의침몰설 입증 힘쏟아
  • 우리 사회 공유할 서사와 멀어져

오는 9월 활동을 마무리하는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도 진실 규명이라는 종착지에 닿지 못했다. 8년간 국가기관 조사만 9차례 했는데 세월호 참사 조사는 왜 거듭해서 실패하는가.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을 펴낸 재난 전문가가 그 질문에 답을 보내왔다.“참사 피해자분들과 국민들이 보시기에는 저희 조사 내용이 부족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실 것으로 짐작되며 대단히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2022년 6월9일, 세월호 참사를 조사한 세번째 조사위원회인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위원들은 고개를 숙였다. 오랜 기다림은 실망으로 끝났다.

시계를 8년 전으로 돌려본다. 2014년 7월15일, 서명용지로 채워진 416개의 노란 상자를 들고 1000여명의 시민이 국회로 향했다. 서명에 참여한 인원은 600만명이 넘었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한 ‘헌정사상 전무후무한’ 운동은 한국의 첫 재난조사위원회 구성이라는 성과를 남겼다.


13 초 후 SKIP

8년 전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의 열망과 기대와 8년 뒤 재난조사위원회의 초라한 성과 사이의 격차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무엇이 우리에게 이런 결과를 맞이하게 했나. 정부와 관료의 방해 때문에? 한국의 수준이 후진적이어서? 진보와 보수 양쪽이 세월호 참사를 정치화해서? 이 답들은 틀렸거나, 부분적으로만 맞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의 활동 과정을 돌아보면서 찾아낸 다른 답은, ‘복잡한 책임 문제를 단순하게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책임자를 지목해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복잡하고 어려운 재난의 책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우리 사회가 함께 찾지 못했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 조사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조위·선조위 만든 시민들의 힘

2014년 당시 정부의 강한 반대에도 ‘세월호 참사’라는 단일 재난을 조사하는 특조위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두개의 힘 때문이었다. 첫째는 꼬리 자르기에 그치지 말고 책임자 처벌을 제대로 하라는 요구다.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부터 관련 수사에 나선 검찰은 청해진해운과 운항관리자 등 선박 안전을 관리했어야 하는 이들에 대한 수사는 광범위하게 진행한 반면, 침몰하는 배에 달려가 승객을 구했어야 하는 해경과 재난 컨트롤타워 구실을 해야 했던 청와대에 대해서는 수사를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성역 없는 조사를 진행할 독립적 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두번째 힘은 세월호 이전과는 다른 나라, 즉 사회시스템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과 공감대였다. 검찰 수사는 그 성격상 잘못한 개인을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하지만 ‘썩은 사과’를 하나 골라내는 방식으로 망가진 사회를 고칠 수는 없지 않은가? 사법적 조사가 다룰 수 없는 사회구조적 원인 규명을 통해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하는 나라, ‘안전한 나라’를 구성하자는 요구가 없었다면 재난조사위원회는 구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특조위에는 검찰이 ‘하지 않은 일’과 ‘할 수 없는 일’, 즉 개인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사법적 조사와 그에 한정하지 않는 관행, 조직문화, 정책 등을 다루는 구조적 조사 양쪽을 다 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러나 2014년 검찰 수사에서도, 2017년 탄핵 결정에서도, 2021년 해경 지휘부에 대한 재판에서도 국가의 법적 책임은 인정되지 않았다. 사법적 책임을 묻는 시도가 실패하면 실패할수록, 처벌을 위한 사법적 조사는 중요한 가치로 부상했다. 기술적이면서도 구조적인 조사를 해야 하는 위원회의 구성원들은 법률가로 채워졌고, 재난조사는 형사사건 수사와 유사하게 다뤄졌으며, 침몰 원인과 관련해서도 고위층에게 지시와 은폐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잠수함설·고의침몰설과 같은 가설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반면 구조적 원인 규명의 문제의식은 희미해져갔다. 특조위 진상규명국은 직접적 원인과 사법적 조사에 매달리느라, 안전사회과는 정책연구에만 집중하다 보니 어떤 정책과 관행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되었는지는 조사되지 않았다. 선조위 역시 기술적 논쟁이 격화되면서 그 기술적 문제를 일으킨 구조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한 단계씩 거슬러 올라가는 조사를 하지 못했다. 처음엔 해경이 구조 훈련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조직이었다는 것에 경악했던 사람들은, 훈련 부족과 같은 관행을 드러내는 것이 해경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은 아닐지 의심했다. 재난조사위원회를 만들어낸 두번째 힘, 두번째 요구는 점차 약화되었다.


내인설과 외력설 사이에 선 사참위

모든 재난에는 일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 존재한다. 증거는 사라지고 기억은 빠르게 희미해지기 때문에 재난의 시간은 완전히 재현될 수 없으며, 의혹은 필연적으로 제기된다. 재난조사의 성패는 이 의혹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합리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사회의 역량에도 달려 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싸고도 2014년부터 여러 의혹이 제기되었다. 일부러 전원 구조 오보를 냈다거나, 세월호 내부에서 폭발이 있었다거나, 여러 증거 기록이 조작되었다는 의혹 등이었다. 의혹은 각각 독립적이었고 하나의 가설을 구성하지는 않았지만, 은연중에 국가가 뭔가를 숨기고 있을 수 있다는 의문을 포함하고 있었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국가 책임을 피하기 위해 청해진해운 등 다른 행위자들에게 재난의 책임을 계속해서 떠넘기고, 세월호 진상규명을 탄압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숨기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은 계속 강해졌다.


특조위와 선조위는 이런 의혹들을 잘 조사해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의혹에 올라타는 경향이 있었다. 특조위는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대기 방송을 누군가 지시한 것은 아닌지 찾아내려 하거나, 이미 배제된 가설인 세월호 내부 폭발설을 연상시키는 증언을 부각했다. 선조위는 가설을 좁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열어두어야’ 한다는 결론(열린안)에 힘을 실으면서 의혹 조사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재난조사의 역할 중 하나는 납득할 만한 재난 서사를 제출함으로써 공통의 사회적 기억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애도의 시간이 시작되고, 권고가 힘을 얻을 수 있다. 특조위와 선조위의 활동으로, 밝혀진 사실들은 분명 늘어났다. 그러나 우리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아는 것은 더 줄어들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에 한국 사회가 만들고 공유한 서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밀문을 개방하고 다니는 연안 여객선의 관행 시정, 사고의 징후를 미리 파악하기 위한 준사고 보고 제도 등 선조위의 권고 사항이 기억되고 이행될 리 만무하다.

사참위는 특조위와 선조위로부터 몇가지 유산을 물려받았다. 첫째, 위원들의 전문성이 편중되기 쉬운 법제도가 유지되었다. 특조위는 17명의 위원 중 무려 15명이 법률가였다. 사참위에서도 위원회가 종료할 당시 남아 있던 6명의 위원 중 5명은 변호사, 1명은 행정가로 과학·기술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둘째,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과제의 분리도 계속되었다. 특조위에 대한 평가를 숙고하지 않은 결과, 또다시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과제가 별개로 다뤄졌고, 각 참사의 구조적 원인은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다. 셋째, 외력설의 입증에 사로잡혔다. 사참위는 내인설을 뒷받침하는 기술적 조사 결과에는 계속 의문을 제기한 반면, 외력설을 뒷받침하는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계속해서 추가 조사를 했다. 결국 사참위는 외력설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냈지만, 자신 있게 복원성 문제가 근본 원인이라고 밝히지도 못했다. 6월9일 기자간담회의 모호한 메시지는 다른 조사 성과들마저 주목받지 못하게 만들었다.

세월호를 향해 다시 던져야 할 물음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이 가능할까. 8년 동안, 세개의 조사위원회를 거친 세월호 참사를 두고 새로운 조사위원회를 꾸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이미 진실의 조각들을 가지고 있다고 답하고 싶다. 다만 그 진실의 조각들이 하나의 모습으로 떠오르기 위해서는 질문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질문을 ‘누가 잘못했는가’가 아니라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으로 전환하면, 우리의 시야에 2014년 4월16일 배가 급격히 기울고 침몰한 100여분의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들어올 것이다. 결정적 잘못을 저지른 한두명이 아니라 작은 잘못과 부주의를 쌓아가며 재난을 만들어온 수많은 사람들과 시간이, 그 구조를 만든 사람들의 책임이, 그 책임을 숨기기 위해 진상규명 요구를 억누르며 재난의 시간을 연장해온 모든 과정이 이제 눈에 보일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참사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의 책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전혀 새로운 질문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2014년에 이미 던졌던 질문이기 때문이다. 잠시 잊었을 뿐인 그 질문을 상기하면서 세월호 참사를 다시 마주한다면, 이 참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여전히 많음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박상은/재난 연구자·플랫폼C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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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닻을 올린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오는 9월 종합보고서를 내고 활동을 마무리한다. 지금으로서는 선체 내부 문제(복원성)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충돌 등 외력 가능성을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도 진실 규명이라는 종착지에 서지는 못한 셈이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뒤 검찰→감사원→국회(국정조사)→중앙해양안전심판원→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대검 세월호 특별수사단→세월호 특검→사참위 등으로 이어진 국가기관 조사만 9차례다.

세월호 참사 이튿날인 4월17일 검찰이 진상조사에 나섰다.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세월호 수리 및 증축 과정에서 복원성에 결함이 생긴 사실, 과적 운항, 고박(고정) 부실 등을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검찰은 해경·항만 관리자 등 공무원, 세월호 승무원, 선사(청해진해운) 직원 등 399명을 입건하고 154명을 구속했다. 5월 감사원 감사에 이어 6월엔 국회 국정조사가 이어졌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첫 보고를 받은 시각(오전 10시), 7시간이 넘도록 대면보고가 없었던 사실이 드러난 것도 이때다. 12월 해양안전심판원은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복원성’을 지목하는 조사 결과를 냈다. 일부에서 제기한 충돌·좌초 가능성에 대해선 부정적 의견이 담겼다.

2015년 특조위가 출범했다. 세월호특별법에 따른 첫 독립 조사기구였다. 정부 비협조로 조사가 순탄치 않았다. 2017년 꾸려진 선조위는 인양한 세월호에서 차량 블랙박스 영상파일 4978개를 복원한 성과 외에도 선박 운항 방향을 바꾸는 장치 일부인 ‘솔레노이드 밸브’(유압조절장치)가 고착(고장) 상태였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침몰 원인을 복원성에 두는 내인설에 힘을 실었지만 의견은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선체 좌현 핀 안정기(좌우 균형을 잡아주는 장치)에서 물리적 손상을 발견하면서 외력 가능성도 제기된 것이다. 결국 선조위는 내인설과 (충돌, 좌초 등을 전제한) 열린 안을 각각 담은 두 개의 보고서를 내놨다.

사참위 조사가 진행되던 2019년 검찰이 다시 등장했다. 사참위가 수사 의뢰한 게 계기가 됐지만 대검 특별수사단은 수사한 8건 가운데 특조위 조사 방해 혐의 1건을 기소하는 데 그쳤다. 2021년엔 특검이 폐회로텔레비전(CCTV) 데이터 조작 등을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내렸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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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 재난 조사 실패의 기록 
박상은 (지은이)진실의힘2022-07-05
360쪽

2014년 6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의 청원 속에 세월호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에는 세월호 조사를 검찰이나 경찰이 아닌 재난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위원회를 만들어, 철저하게 조사하라는 시민들의 염원이 담겨있었다. 그 후, 정부는 대한민국 최초의 단일 재난조사위원회인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를 만들었고,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이하 ‘선조위’), 사회적참사위원회(이하 ‘사참위’)로 이어졌다.

그러나 특조위는 강제 해산됐고, 선조위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결론짓지 못하고, 양립할 수없는 내인설과 외력설을 모두 담았으며, 사참위 또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마무리되고 있다. 도대체 왜, 시민들의 간절한 열망 속에서 무려 8년간, 세 개의 국가기구를 통해 진행된 세월호 재난 조사가 성과를 내지 못햇을까? 참사의 원인은 왜 밝혀내지 못했으며, 제대로 된 책임을 지는 이들은 없는 것인가?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재난 조사 실패의 기록>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간다.


목차
추천의 말
책을 펴내며 |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는 재난조사?
1장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
1. 무엇을 바꾸고 싶었나
2. 세월호 특별법 제정 운동에 담긴 상이한 요구들
3. 안전사회운동이 떠오르다
4. 국가 폭력 담론
5. 국가란 무엇인가
2장 우리는 왜 재난을 조사하는가
1. 해외의 재난조사
2. 한국의 재난조사
3. 원칙과 딜레마
4. 한국의 독특한 재난 인식론
3장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1. 위원회 구성부터 예견된 한계
2. 특조위의 혼란
3. 사법적 조사와 정책 연구로 나뉘다
4. 특조위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
4장 2016~2017년 탄핵 정국과
선체조사위원회의 출범
1. 촛불집회와 세월호 참사의 재소환
2. 진상규명 운동의 재난 인식론은 어떻게 바뀌었나
3. 징검다리 위원회의 출범
5장 선체조사위원회의 두 보고서
1. 새로운 문제와 반복된 문제
2. 침몰 원인 논쟁
3. 두 보고서가 의미하는 것
결론 | 재난조사와 책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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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일에 실패했음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더구나 자신이 그 실패의 일부였음을 인정하는 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저자에게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바로 그런 일이었다. 세월호 조사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종결했을 때, 저자는 잠시 좌절한 다음 곧 회의록과 보고서를 읽어나갔다. 실패한 재난조사의 기록에는 한국 현대사의 고통스런 궤적과 한심한 정치적 다툼, 무능과 비겁과 어리석음, 그리고 무엇보다 피해자들의 고통이 있었다. 저자가 관찰하고 분석하며 또 고백하고 성찰하는 실패에서 우리는 마지막 배움의 기회를 얻는다. 세월호 이후 우리는 과연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인가? - 전치형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생생했던 지난 고통을 반추할 수밖에 없었기에 이 책의 초안을 읽는 동안 너무 아팠습니다. 원망도 컸습니다. 솔직히 이 책은 너무 늦게 나왔습니다. 나처럼, 우리처럼 또 다른 누군가는 유가족이 되지 않기를, 또 나처럼, 우리처럼 뼈아픈 시행착오를 경험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기에 이 책을 계기로 재난참사의 조사방법과 조사기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광범위하게 시작되면 좋겠습니다. - 장훈 
이 책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오늘까지의 답’을 내놓고 있다. 조사위원회 일원으로 참여했던 저자는 홀로 답을 찾아나섰다. 한국 사회 그 자체가 빚어낸 사건이라던 세월호 참사가 음모론으로 빠져들고 진상규명 운동이 사그라드는 과정과 이유, 책임을 집요하게 짚어낸다. 지금 멈춰 서서 그 여정을 돌아보지 않으면 우리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읽는 독자가 늘어날수록 이 책은 ‘어제의 기록’이 아니라 ‘내일의 지침’이 되리라 믿는다. - 정은주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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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국일보 
 - 한국일보 2022년 7월 8일자 '책과 세상'
국민일보 
 - 국민일보 2022년 7월 14일자 '책과 길'


저자 및 역자소개
박상은 (지은이) 

사회단체 5년 차,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역사적 맥락에서 세월호 참사를 보고 싶어 대형사고 사례 분석을 했고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라는 책을 썼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안전위원회 안전대안팀에서 일하면서 노동안전운동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문제의식을 배웠다.
2015년~2016년 세월호 참사 특조위 조사관으로 일했다. 안전사회과에서는 주로 대형사고 사례 분석과 규제완화 관련 과제, 세월호 도입 및 검사 관련 자료 검토를 진행했으며, 진상규명국에서는 주로 청해진해운 임직원들에 대한 조사를 담당했다. 2018년 선조위 종합보고서 집필진으로 일했다.
2019년 충북대학교 사회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해서 2021년 2월 『재난 인식론과 재난조사의 정치: 세월호 참사 조사위원회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쓰고 졸업했다. 2021~2022년에도 사참위 종합보고서 집필진으로 가습기살균제와 세월호 참사 종합보고서의 일부를 집필했다.
31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39살에 이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 발 한 발 걷다 보니 세월호 참사를 계속 붙잡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현재 일주일의 절반은 플랫폼C라는 사회운동단체에서 활동하고, 나머지 절반은 충북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한다. 위험과 재난이 주요 주제다. 접기
최근작 :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문화과학 109호 - 2022.봄>,<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증보판)> … 총 4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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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세월호 재난 조사 왜 실패했나?
사회는 재난을 어떻게 책임져야 하나?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재난 조사 실패의 기록>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이어진 세월호 재난 조사를 실패로 규정하고, 그 원인과 해법을 모색하는 책이
다.

2014년 6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의 청원 속에 세월호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에는 세월호 조사를 검찰이나 경찰이 아닌 재난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위원회를 만들어, 철저하게 조사하라는 시민들의 염원이 담겨있었다. 그 후, 정부는 대한민국 최초의 단일 재난조사위원회인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를 만들었고,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이하 ‘선조위’), 사회적참사위원회(이하 ‘사참위’)로 이어졌다.
그러나 특조위는 강제 해산됐고, 선조위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결론짓지 못하고, 양립할 수없는 내인설과 외력설을 모두 담았으며, 사참위 또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마무리되고 있다.
도대체 왜, 시민들의 간절한 열망 속에서 무려 8년간, 세 개의 국가기구를 통해 진행된 세월호 재난 조사가 성과를 내지 못햇을까? 참사의 원인은 왜 밝혀내지 못했으며, 제대로 된 책임을 지는 이들은 없는 것인가?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재난 조사 실패의 기록>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간다.

8년간, 세 개의 세월호조사위원회에 모두 참여한 저자,
특조위와 선조위를 돌아보다.

저자 박상은은 안전사회를 지향하는 시민활동가로 세월호 특별법 운동에 참여했고, 특조위에는 조사관으로, 선조위와 사참위에는 종합보고서 외부 집필진으로 세월호 조사에 깊이 관여했다. 그는 중심에서 일한 내부자, 가장 가까운 곳에서 관찰한 기록자의 시선으로 특조위와 선조위를 들여다본다. 재난조사위원회의 탄생 배경과 설립 과정, 인력 배치와 구성원의 특징, 조사 방법과 조사 순서, 결론을 결정하는 과정과 수용에 이르기까지 두 위원회의 모든 것에 현미경과 망원경의 시선으로, 실패의 원인을 분석했다.
2022년 6월 조사위원의 임기가 만료되고, 9월 공식적으로 활동을 종료할 사참위는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않았으나, 사참위가 앞서 진행된 두 위원회 활동의 유산 위에서 조사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재난조사, 과학의 장이 아니라 정치의 장

왜 세월호 참사 조사는 성과를 내지 못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이미 유력한 설명들이 있다.
제일 먼저 꼽히는 것이 사고를 책임지고, 수습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조사를 방해했
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고 발생⋅구조⋅ 수습 과정에서 책임이 있는 박근혜 정부에서
3년, 그 책임을 제기하며 정권교체를 한 문재인 정부에서 5년동안 조사가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 이유는 성립되지 않는다.
또 재난조사의 전례가 없는 우리나라의 사고 조사 수준이 미흡했고 ‘고의 침몰설’, ‘잠
수함 침몰설’ 과 같은 비과학적인 음모론이 제대로 된 재난조사를 막는 걸림돌이 되
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부분적 이유가 될 수 있을지언정, 전체를 아우르
는 원인으로서는 미흡하다.
저자는 이 ‘단순하지 않은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가 재난조사에 대해 갖고 있는 선
입견 - 즉, 만인이 이견 없이 합의할 수 있는 ‘과학적 조사 방법’ 같은 것이 있다는 -
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재난조사’의 장이 실은 조사하는 자와 조사받는 자, 재난에 책
임이 있는 여러 기관과 인물,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전문가들이 경험하고 타협하는
‘정치의 장’ 이라는 전제 위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힌다.

시간과 자원만 주어진다면 전문가들이 재난조사에 객관적인 답을 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선조위에서 세월호의 침몰 원인에 대한 전문가들의 답은 하나로 통일되지 못했다. 그것은 전문가들의 전문 지식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재난조사를 통해 답해야 하는 정치적 질문을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재난조사위원회가 재난과 연관된 다양한 행위자들의 경합과 협상의 장이라는 점은 재난조사위원회가 과학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공간이기도 하다는 점을 의미한다.(139)

특조위는 왜 독자적인 조사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까? 조사 신청을 받아서 이를 바탕으로 조사 방향을 설정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출범 초기부터 활동 기한 논란이 있었던 특조위가 이러한 방법을 선택한 이유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호중 위원은 한 인터뷰에서 특조위가 ‘중립성의 덫’에 걸려있다고 표현한 바 있다. 외부의 정치적 대결 구도가 내부에도 강하게 작동하는 상황에서 많은 위원들이 중립적으로 보이지 않을 경우 받을 공격을 우려했던 것이다. (181)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부의 비협조와 방해가 피할 수 없는 기본 조건이었음을 생각해볼 때, 특조위가 성과를 내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정부의 방해와 정치적 갈등 그 자체가 아니다. 갈등을 피하겠다는 명분 뒤에 숨어 조사 의제·방향·관점에 대한 토론을 회피한 것이다. (184)

사법적 조사에 대한 몰입, 구조적 원인 조사는 사라져…

그렇다면, 세월호 조사가 실패로 끝난 이유는 무엇인가?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은 책임 문제가 매우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렵게 제기
됐기 때문에, 조사가 어려움을 겪었다고 본다. 재난은 많은 행위자들의, 개별적으로는,
결정적이지 않은 잘못과 실수로 발생하지만, 대중은 그 중 결정적 책임자가 누구인지
묻는다. 바로 여기에 재난 책임[재난조사?] 고유의 딜레마가 있다.
세월호 피해자들은 선사와 승무원에 이어 국가기관의 고위층에게 사법적 책임을 물으
려 했지만, 이 시도는 계속 좌절됐다. 사법적 책임 중심의 문제의식은 법률가 중심으
로 위원을 선임하는 배경이 됐다.
사법적 책임을 묻는 시도가 실패하면 실패할수록, 처벌을 위한 사법적 조사는 중요한
가치로 부상했고, 급기야 그것만이 세월호 재난조사의 성패를 결정짓는 기준처럼 대
두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재난조사의 중요한 축인 구조적 원인 규명은 희미해져
갔다.

법적 처벌에 방점이 찍혀있기는 하지만 소극적으로든 적극적으 로든 구조적 원인 조사에 대한 지향이 특조위 내에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지향과 별개로 특조위는 구조적 원인 조사를 위해 어떤 방법과 계획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지 연구나 토론을 진행하지 않았다. 지향과 실행 사이의 격차는 재난조사위원회의 역할을 수사기관의 역할과 유사한 것으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조사위원회는 수사기관이 다룰 수 없는 영역을 담당하는 역할과 수사기관을 대신하는 역할 사이에서 후자로 기울었다.

사법적 원인 규명과 구조적 원인 규명을 동시에 추구한다며 각각의 과제를 담당하는 부서를 분리한 방식은 최소한 특조위에서는 실패했다. 직접적 충돌은 없었지만 조사 내용을 서로 비교했을때 진상규명소위원회와 안전사회소위원회의 가설이나 재난을 바라보는 관점은 완전히 달랐다. 구조 실패와 관련해 진상규명소위원회가 123정이 의도적으로 선원을 먼저 구했는지가 중요한 쟁점이라고 본 반면, 안전사회소위원회는 해상사고에 대한 정부의 구조 역량이 갖춰져 있었는지가 중요한 쟁점이라고 보았다.(207)

만약 사법적 조사만 진행한 결과, 공식적인 조사 결과의 권고 상당수가 검찰, 감사원, 법원에 판단을 넘기는 방식으로 제출되고 구조적 원인 규명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면, 특별법 제정 운동기에 검찰이 받았던 비판적인 평가를 특조위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강제 종료는 특조위 자신의 무책임한 선택과 역량 부족에 대한 일종의 면죄부가 되었다.(217)

과거사위원회 소환과 국가폭력 담론

저자는 세월호 재난조사 실패의 배경에 한국의 특수성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조위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사위원회들을 선례로 삼아 세월호 특별
법을 구성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그 과정에서 과거사위원회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기
술적 조사가 필요한 재난조사의 특성은 고려되지 않았고, 사고 이후 정부가 보여준
무책임과 진상규명 방해 의혹으로 국가폭력 담론이 강하게 제기됐다.

과거사위원회의 경험을 계속해서 소환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라는 재난을 의문사 사건이나 5·18 광주 항쟁과 같은 직접적인 국가 폭력과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다. 그렇지 않아도 국정원 등 비밀스럽고 위압적인 국가기관에 대한 의혹이 대두된 상황에서 권위주의 정권 시기의 의문사 사건과 세월호 참사를 비교하는 것은 의도치 않아도 일종의 방향성을 지니게 되었다. ‘국가의 조직적 무책임성’혹 은 ‘부작위에 의한 국가 폭력’에 가까운 재난에서의 국가 책임은 ‘의도에 의한 국가 폭력’이었던 권위주의 정권 시기 국가 책임과 혼동되기 시작했다.(76)

세월호 참사를 국가 폭력으로 보자는 말을 ‘부작위도 국가 폭력으로 해석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와 국가 폭력의 유비는 오히려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인격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에서 국가 폭력 프레임을 강조한 당시의 전략이 맞았을까? 국가 폭력 프레임 채택이 일정 정도는 불가피했더라도, 국가 폭력 정의의 모호성에 계속 기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해를 확산시킬 시도 들을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사회운동은 그 씨앗을 제대로 뿌리지 못했다.

선조위는 왜 두 개의 보고서를 냈을까?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에선 그동안 논란이 됐던 선조위의 두 개의 보고서 - 내인설과 외력설,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한 종합보고서가 탄생한 이유를 추적했다.
선조위는 특조위에 비해 기술적 조사에 집중하도록 설계된 위원회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에서 세월호 부분은 탄핵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 그에 대한 반발로 정권의 첵임을 물어야 한다는 열망이 뜨거운 상황에서 출범했다. 참사 관련 정부 책임자들 대부분이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것도 선조위를 강하게 압박했다. 저자는 선조위가 법정활동 기한 종료를 채 일주일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재난조사 역사상 유례없는 두 개의 보고서를 내기로 결정한 배경에 이런 압박감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외력 검증 TF는 외력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외력이 작용했다면 어떤 외력인지, 무엇을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검토해야 하는지 가설을 제시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포항 지진의 경우 자연 지진론 대 유발 지질론을 주장하는 학자 들이 자기 가설을 입증하려 했다면, 71 세월호 선조위 내부의 논쟁은 ‘내인설 대 외력설’이라기보다 최종 보고서의 명칭대로 ‘내인설대 열린 결론’이라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회의록에는 반복적으로 ‘외력을 특정하는 것이 아니라 외력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 목표라는 점이 언급된다. (284)

선조위 조사관 대부분, 브룩스벨·마린 등 외국의 전문기관은 모두 외력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진영론적 사고와 책임의 인격화로 인해 선조위는 내인설의 압도적 우세 속에서도 피해자 가족과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에 내인 설을 충분히 설득하고 확산시키지 못했다.(302)

선조위의 두 개의 보고서는 재난조사의 종결에 관한 쟁점을 제기한다. 특조위가 외부의 방해와 신청사건 형태의 조사 방식 선택으로 초기부터 공식적인 종결을 할 수 없었던 조건이었다면, 선조위는 결론에 이를만한 조사를 진행하고도 공식적인 종결의 거부를 능동적으로 택했다. 선조위의 종결 거부라는 선택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하나로 작성된 보고서를 불과 일주일 전에 찢어서라도 외력설의 가능성을 무겁게 남겨두려는 선택은 어떤 효과를 남겼나.
밝혀진 사실들은 분명 늘어났다. 그러나 선조위 종료 이후 한국 사회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아는 것은 더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서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303)

세월호 재난 조사, 우리가 잃어버린 질문들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가 제기한 많은 질문들을 제대로 묻지 못하게 되었다.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기업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가? 개인 처벌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재난조사란 어떻게 가능한가? 권력을 가진 이들을 면제하지도, 우리자신을 면제하지도 않는 사회적 책임의 방식은 무엇인가? 이 거대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점점 앙상해져 갔다.(8)

평범하게 흘러가는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은 가장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하고, 존중되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이고, 한 사회가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 재난조사 실패는 실패로서만 머물러선 안 된다.
저자는 이 실패기를 통해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명확히 밝히고, 내일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동안 국내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9.11 테러, 인
도 보팔 참사, 후쿠시마 핵 발전소 사고 등 해외 재난조사를 소개하고 세월호 조사와
비교한 것도 한국의 재난조사 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리려는 저자의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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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실패를 헤집는 작업을 해야 하나 생각이 들 때면 한 단원고 희생자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2016년 여름 특조위 강제 종료에 항의하는 단식농성장에서, 그는 조사위원회가 잘못하거나 성과 없이 끝나면 결국 그 비난과 책임을 유가족이 지게 된다고 말했다 (중략) 피해자 가족의 그런 태도 때문에 나는 사회운동과 조사위원회의 무능과 실수, 선의였으나 의도치 않은 결과에 대해 책임질 수 있도록 그 과정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피해자 가족들은 너무 많은 책임을 진 반면, 우리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1)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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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 난지 8년이 지났는데,
정권도 바뀌었는데
왜 세월호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지 궁금했는데
이 책을 보니 그 궁금증이 풀린다.
우리가 보다 중요한 질문을 놓쳤다는 것을.

카리노 2022-07-07 공감 (1) 댓글 (0)
    
성찰할 기회를 주는 책이다. 누군가 말해줬으나 어디선가 접했으나 생각과 연결하지 못했던 시간, 너무도 경도 되었던 시간이 끝난 뒤 되돌아 볼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것을 담담하게 정리한 책이다. 
봄햇살 2022-07-09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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