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2

알라딘: 나는 제사가 싫다 이하천

알라딘: 나는 제사가 싫다
나는 제사가 싫다 - 삼십년 동안 가부장제와 맞서 싸운 한 여성작가의 외침 
이하천 (지은이)이프(if)200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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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100자평(1)리뷰(6)

272쪽148*210mm (A5)354gISBN : 9788995040928

책소개

한국의 기혼여성들이라면 누구나 '제사'가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유교문화의 핵심이라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시댁의 제사를 치르며 느꼈던 왠지 모를 억울함, 중노동 뒤의 피로와 그 절차의 터무니 없는 부당함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의 대다수 기혼남성들에게 '제사'는 끝까지 지켜야 할 미풍양속이고 신성한 의식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그렇게 좋은 거라면, 남성들, 당신들이 다 가져가라'고, '왜 그 좋은 것을 여성에게 강요하느냐'고 말이다.

이 책은 저자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때로는 격앙된 목소리로 때로는 날카롭고 차분한 어조로 '호주제'와 '제사'로 대표되는 이땅의 가부장제도와 뿌리깊은 성차별주의를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남녀 양성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대안적인 제사 양식을 제안하기도 한다. <미스코리아 대회를 폭파하라>, <사위에게 주는 요리책>에 이어 페미니스트 잡지 이프의 출판부에서 펴낸 세번째 단행본이다.


목차
1. 조상은 상전이 아니다. 사회가 바로 상전이다.
2. 자라지 않는 아이 한국남성의 영혼
3. 구걸하는 영혼, 남성은 거지가 아니다.
4. 우리집 동물이야기
5. 가부장제와 나의 자녀교육
6. 근대성의 발견과 정신해방
7. 메이크업의 사회적 의미와 나의 스타일
8. 우리는 패배하기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니다.
9. 생존을 위해 문학을 하다니!

책속에서
제도란 사람이 만든 것이다. 우리가 인간이라면 잘못된 제도는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부계조상에 대한 제사가 마치 인간의 본능이라도 되는 듯이 여성에게 강요해온 이 제도를 나는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했다. 또한 인간 본연의 모습에 젖줄을 대놓고 있지 못한 제도를 어른으로써 내 후손들에게 절대로 물려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본문 267~268쪽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이하천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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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충북 제천에서 맏딸로 태어났다. 17살 때 스승으로 나타난 한 남자와 만나 6년뒤 결혼해서 맏며느리가 되었다. 결혼후 남편의 공부 때문에 미국으로 떠나 다시 5년 후 캐나다로 건너갔다. 어느 누구와도 형식적인 만남을 강요당하지 않는 삶에서 의의를 찾고 싶었던 그는 15년의 외국 생활동안 만났던 교포 여성들에게서 마치 죄인과도 같은 모습을 보았다.

교포 여성들이 풍기는 '피해의 냄새'와 남성들의 '권위의 냄새'에 질식할 것만 같아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글쓰기를 택해 그 모든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천착하다가 한국의 가부장제 제사를 만났다.

지은 책으로 <조용히 쓸어라, 대지는 깊이 잠들지 않는다>(통나무, 1993) <불타는 대지>(중명, 1997)등이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에 '조상은 상전이 아니다-나의 제사 격파기'와 '엄마의 독이 아들을 죽이다'등을 기고했다. 접기
최근작 : <내가 증오한 사랑>,<나는 제사가 싫다>,<불타는 대지> … 총 3종 (모두보기)

이하천(지은이)의 말
거듭 말하지만 이 책은 실험의 첫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이 사회 곳곳에서 이와 같은 언어의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 싸움을 기본선까지 끌어올리는 데 최소한 100년은 걸릴 것이라는 예감을 한다. 나는 이 언어의 싸움을 우리가 해낼 수 있게 되기를, 그래서 이 사회에 험상궂고 찌그러진 양철들처럼 왜곡되어 웅크린 모습으로 서 있는 가부장제의 귀신들을 몰아내고, 해방된 자아가 곳곳에서 숨쉴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두손 모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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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제사가 싫어' 서 읽어봤는데 꽤 동감가는 부분이 많네요. 한번쯤 읽어보시길.. 
Matilda 2011-09-0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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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즈음에 다시 제사에 대해 생각하게 되다 새창으로 보기
처음 이 책에 대한 얘기를 들었던 건 <시사저널>에선가, 이 책에 대한 논쟁이 붙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였다. 일단 매우 도발적인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이 사회에서 태어나 자라 남의 집 며느리된 여자 치고 제삿날이 즐겁기만 한 사람이 누가 있을 것인가만, 그렇다고 <나는 제사가 싫다>고 사회에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사람은 또 몇이나 있겠는가. 이하천이라는 작가의 소설을 읽은 적은 없었지만, 이 책만은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했다. 분명히 이하천이라는 사람 역시, 다른 대부분의 여성학자들처럼 매우 잘 이해해주는 시어머니가 계시거나, 남편이 매우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거나...할 것이다.

이름 있는 여성학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들의 생각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일단 그들의 처지가 나와는 매우 달랐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여성의 희생을 딛고 일어섰으면서, 일어서지 못하는 것을 답답해하는 그들의 얘기를, 나는 오히려 답답하다고 느끼던 차였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는 여성학자들이 밤새워 토론하고 때로는 다른 지역, 다른 나라의 행사에도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는 건 그녀의 아이를 돌봐주는 친정어머니(아주 가끔은 시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었고, 특별한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어 살면서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는 한 여성학자도 집안을 꾸리면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이모와 함께 살았다.

아마 이하천이라는 작가도 이런 부류가 아닐까 나름대로 의심했다. 그러나 그녀는 훨씬 용감한 종류의 사람인 것 같았다(최소한 책에서 보자면).

<제도란 사람이 만든 것이다. 우리가 인간이라면 잘못된 제도는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부계조상에 대한 제사가 마치 인간의 본능이라도 되는 듯이 여성에게 강요해 온 이 제도를 나는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했다. 또한 인간 본연의 모습에 젖줄을 대놓고 있지 못한 제도를 어른으로서 내 후손들에게 절대로 물려줄 수는 없다.>

책의 맨 앞에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그리고 시어머니에게

'낯 붉힐 줄 모르는 감각으로 반만년이나 멍청하게 연장되어 온 낡은 권리를 움켜쥐고, 우는 것과 제사지내는 것밖에 모르는'

이라고 이야기했고, 부모란 모름지기 운운하시는 시아버지에게는

'부모가 뭔데요? 부모는 책임지는 자예요.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책임지셨지요? 그리고 무엇을 책임지실 건가요? 며느리는 자식이 아닙니다. 당신 아들이 죽어보십시오. 또 내가 당신 아들과 이혼이라도 해보십시오.
나는 당신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그래도 내가 당신들 자식입니까?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예의를 지켜야 하는 사이입니다.'

라고 항변했다.

인간의 도리 운운하면 '그렇게 시시한 것이 인간이라면 인간임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고, 혼자 남을까 전전긍긍해하는 스스로에게 '내 기꺼이 혼자 죽으리라'고 다짐하기도 했단다.

일년에 몇 차례 그냥 눈 딱 감고 제사 지내버리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이런 어려운 말들, 남편과 헤어질 각오를 하지 않고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이런 말들을 쏟아붓고 가정을 깨느니, 그냥 '나 하나만 입 다물면 집안이 조용해지기 때문에 참자'는 논리로 참아버리고 만다. 이하천 씨는 바로 이런 생각이 여성의 생명력을 없애버린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동학의 교주였던 해월 최시형 선생이 처음으로 발표했던 향아설위(제사 지낼 때 위패와 밥그릇을 벽 쪽에 갖다 놓는 것이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살아 있는 사람 쪽으로 위패와 밥그릇을 갖다 놓는 것)에 남녀 평등의 개념을 접목시킨 새로운 제사 형식을 소개했다.

1. 제사상은 집에서 가장 좋은 곳에 준비한다.

2. 맑은 물을 아름다운 그릇에 그득 담는다. 계절에 맞는 꽃잎을 서너 개 띄운다.

3. 꽃과 향과 촛불을 준비한다.

4. 가족 전체가 제사상을 중간에 놓고 빙 둘러 앉다.

5. 사회자를 한 명 정하고, 그 사회자는 오늘은 누구의 제삿날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 조상에 대해 알릴 사항이 있으면 알린다.

6. 사회자의 주도로 모인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요즈음의 자신의 삶'에 대해 고백하는 시간을 갖는다.

7. 3분 정도 묵념의 시간을 가지며 조상과 나의 삶과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식이 끝나면 청수를 한 모금씩 돌아가면서 마신다.

8. 끝나고 파티타임을 갖는다. 그 전에 사회자는 오늘의 파티타임을 위해 누구누구가 수고해 주셨는지 이야기하고, 파티타임이 끝나면 수고하지 않은 사람들(물론 남자도 포함)이 설거지 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고 이야기한다.

9. 파티는 축제 분위기에서 (누구에게도 절대로 짐이 안 되도록 사전에 조정한다.

내 생각에는 6번 순서에 제사를 지내는 그 조상에 대한 기억들에 대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물론 며느리나 손자들이 모르는 조상일 경우엔 주로 시아버지 시어머니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어떤 성품을 가진 분이었는지, 그분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한다면 전혀 모르는 사람의 제삿상이라는 기분은 들지 않을 것 같다.

<시사저널>에 가끔 시론을 썼던 설호정 씨는 <나의 제사 혁신기>라는 글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2001년? 혹은 그 이전?  4월 27일자 시사저널에 쓴 글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설호정이라는 사람은 전혀 모르지만 그 사람의 글은 예전에 <샘이 깊은 물>이라는 월간지에서도 비교적 좋아하는 종류의 글이었다. 매우 예리하고 때로는 신랄하지만 항상 대안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고 보니, 이분, 요즘 뭘 하시지?)

큰며느리였지만 직장이 있었던지라 제사상 준비는 시어머니와 동서들이 했다. 그리고 그는 철저히 금품으로 보답했단다. 그러다가 결혼 스무해 쯤만에 드디어 전업주부가 되었고, 지체없이 시집의 대소사는 그의 앞에 떨어졌다. 몇 번 해 보니 역시 스트레스였다. 전통문화의 민족적 계승도 물론 좋지만 그 대단한 일이 왜 피 한방울 튀지 않은 며느리 집단의 노고로 감당되어야 하는가도 의문이었다. 그리고 시어머니도 동지의 입장일 것이었다.

그래서 시어머니를 설득했다. 그 시어머니의 아킬레스 건은 '형제 간에 의 상한다'였다. 그리고 제삿날 며느리들이 침울해하면 와서 잡수시는 넋들도 즐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다음의 일은 시어머니가 다 알아서 하셨단다. 물론 그 과정에 긴 이야기들이 오갔겠지만 결과는 '절에서처럼 제삿상에는 꽃과 과일과 떡만 놓고 정성껏 지내자'였단다. 며느리도 현명하고 시어머니도 무척 현명하셨다.

난 태생적 한계인지 최소한 내 생각으로는 매우 보수적이고 소심하고 단순하다. 가끔 시집에 서운한 일이 있을 때도 '나 하나 참으면 세상이 조용하다'고 넘어가는 편이다. 그리고 제사라는 제도 역시 이하천씨의 말처럼 '여성의 생명력을 말살시키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오히려 명절이면 오랜만에 떨어져 사는 가족들 얼굴 볼 수 있어서 반갑고, 부엌에서 음식 장만하면서 동서들끼리 남편들 흉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게다가 난 큰며느리라서 제사 의식에 참여해 술도 따르고 절도 하면서 크게 소외감을 느끼진 않는다. 물론 여기에는 시어머니의 희생이 들어 있다. 웬만큼 제사음식 준비도 해 놓으시고, 며느리들에게 큰 부담을 지워주지 않으시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문제는 주도권을 쥔 어른들의 생각이다. 시어른들이나 혹은 남편이 며느리(혹은 부인)를 철저히 노동력과 생산력으로만 본다면 제사뿐만 아니라 시댁의 어떤 행산들 즐거울 수 있겠는가.

후에 내 주도로 제사가 넘어왔을 때, 그때도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그땐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음식은 꼭 먹을 것만 하고(어차피 대가족이 모이면 먹어야 할 음식 양도 엄청날 터이니까), '유세차~' 하는 건 생략하고, 손자건 손녀건 부엌일은 같이 거들도록 하고, 설거지는 남자들에게 하도록 하고... 그 이름이 파티이건 명절이건 혹은 축제이건 제사이건 이름과 상관 없이 즐거운 날이 되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나는 제사가 즐겁다>는 말들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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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녀 2004-09-10 공감(8) 댓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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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부장적인 사회가 싫다 새창으로 보기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적지 않은 거부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우선 이책을 출판 기획한 '이프'가 종전까지 펴낸 책들처럼 제목부터가 파격적이다. 그러나 마지막 장까지 넘기고 난후엔 비록 아주 적절한 언어로 표현되었다고 말하는 데에는 거부감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점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제사 이야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의 폐단을 극렬히 드러내는 상징적인 의미로 '제사' 라는 제도를 꼽은 것이다.작가는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점들을 제시하고 있으며, 또 작가 나름의 해결방안도 내놓고 있다. 지나치다 싶은 면이 없지 않으나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모든 면에서 그러하듯이 투쟁하지 않으면 귀 기울이지 않는 토양에서 살아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양쪽 극단이 존재함으로써 평형을 이룰 수 있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작가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남다른 성장 배경과 결혼 직후미국, 캐나다 등 인권 선진국에서의 이민 생활로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꿰 뚫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대항할 수 있는 여력을 키웠다고 볼 수 있다. 부조리한 사회의 가장 그 밑바닥에는 가부장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 가부장제의 핵은 제사와 호주 제도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폐지든 개혁이든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데에는 누구라도 이견이 없을 것 같다.

가부장제의 가장 큰 폐해는 '힘 있는 자는 힘 없는 자를 눌러도 된다' 는 의식을 한국인에게 심어준 데 있다고 보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권력을 갖지 못했다는 이유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이유로 그들의 인권이 무시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여성운동의 한 갈래에서 보기를 거부한다. 결국 이같은 사회속에서는 여성 뿐 아니라 남성들도 모두 피해자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은 아직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 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가부장제와 뿌리를 같이하는 '충효' 사상 역시 우리가 떨쳐내야 할 악습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개인 각각의 사회적인 책무를 망각한 체 충효사상에 입각한 가족 논리에 매달려 공공성은 던져버리고 부정 부패와의 결탁을 시작한다. 이에 대한 죄책감은 가족과 고향에서 칭송받고 그 속에서 우뚝 섬으로써 모두 위로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사실 사회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잘못도 '효' 앞에서 모두 용서되어 진다는 것은 있을수 없고 또 그것을 강요해서도 안된다. '효' 사상의 굴레를 벗고 인간으로서 개개인서로를 살피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 할 때 이 사회는 바르게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끝으로 작가는 '조상은 상전이 아니다. 바로 사회가 상전다' '근대성의 발견과 정신 해방' 이라는 두 가지를 이 책을 내게 된 동기로 적고 있는데,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 정신세계 만큼은 아직도 저 중세의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현대인들, 한번 쯤 접해 볼 만한 책이다. 자신의 자유 의지로 선택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가장 평범한 이야기를 결코 평범 하지만은 않은 사회를 향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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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mmyej 2003-04-1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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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y2k님의 글에 동의하며 평점을 조금 낯추려고 참가.. 새창으로 보기
lhy2k님의 서평에 전적으로 동의..철없는 20대보다 조금 더 성숙한 자신에 대한 증거의 글 이상은 아니라는 말에 가슴이 후련.. 그러나 내용이 기대에 못 미쳐도 '나는 제사가 싫다'라는 제목이 주는 파급효과와 영향력은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
비로그인 2000-10-25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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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는 정말 싫다. 새창으로 보기
기혼자들의 가장 걱정과 큰 고통중에 하나가 이 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들었습니다. 결혼을하고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면 그냥 하루가서 일하고 돌아오면 된다 라고 생각을 할수 있겠지만 일년에 몇번씩이나 돌아온다면 그것이야 말로 제사라는 말 그 자체가 스트레스로 밀려오는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남자들에게라고 너무 힘들다고 조금의불평을 한다치면 그것을 이해못하고 그것이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오히려 위로라기 보다는 불평을 한다고 생각을 한다.

당연히 해야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지만 말 한마디라고 따뜻하게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서운함도 든다. 이책을 읽은면서 많은 부분이 공감되는 것도 아주 많다. 왜 꼭 이렇게 힘들면서 까지 명절은 명절대로 있는데 또 제사를 치루어야하는지 하는 부분을 이해할수는 없지만 이런 구세대적인 생각들이 어서 변화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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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 2003-04-20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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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개성, 확실한 색깔 새창으로 보기
오랫만에 확실한 개성과 확실한 색깔을 지닌 작가와 글을 만났다. 당당하고 확실한 필체에 매료되어 나의 하루는 한권의 책과 함께 헛되지 않은 시간으로 채워졌다. 매력적이다. 그 당당함. 그 확실함. 자신의 괴로움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30년을 줄기차게 괴로워 했고 정면으로 온몸으로 타협하지 않는 정신으로 작가 이하천씨는 우리 앞에 우뚝 섰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가져라, NO라고 말할수 있어야 한다.

책을 덮으며 나에게 기억되는 두마디였다. 네가 인간이면 인간답게 당당한 자존심으로 너의 삶을 만들어 가라는 그녀의 꾸짖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수 있어야 한다는 정직함과 용기를 그녀는 가르친다. 아. 정말 나는 그럴수 있을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끝까지 말하고 나의 생활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내가 이루고 싶은 쪽으로 만들어 갈수 있을까. 그래. 물론 시간이 많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몇년이 걸리든 10년 20년이 걸리든 나두 해 보겠다. 내가 할수 있는 것을 찾아 해보겠다.

생활 속에 젖여 있는 봉건성과 식민성에 대항하여,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보겠다. 사람들 머리 속에 들어 있고, 또한 언어로써 수시로 표현되는 그 무지한 가부장제적 봉건성과 천박한 식민성에 아연해 있지만은 않겠다. 나도 나의 싸움을 준비해 갈 것이다.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멀었어..그래 너나 열심히 해봐.. 난 이대로 사는게 편해..어디 너 잘하나 두고 보자. ' 이런말 정말 너무 싫다.

왜, 왜 지금. 바로 지금 바꾸려 들지 않는가 , 왜 남들이 안되고 있으니 나도 안 하는게 당연하다고 하는가, 남들 핑계대지 말고 그래, 나라도 생각을 바꾸고 생활 방식을 바꾸면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가.

내 속에 있는 징징대며 불만족해 하는 어린아이를 자라게 하고 싶다. 나의 영혼을 자라게 하고 싶다. 언제까지 어린애로서 머물러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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