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8

북한의 선군노선과 권위구축동학 2013 서울대 정치학과 안 경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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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박사학위논문
북한의 선군노선과 권위구축동학:
정치적 계승의 위기를 중심으로
2013년 8월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안 경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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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본 연구는 김정일 시대의 선군노선의 등장과정을 탈냉전과 고난의 행군 그리고 이와 중
첩된 정치적 계승의 위기 속에 시도된 권위축적전략으로 재조명하고, 그 의미를 북한식 급
진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북한식 급진주의의 원형은 주체노선이라 할 수 있다. 1950년대의 ‘대국주의적 압력’에
대한 경험과 1960년대 소련발 탈급진화의 흐름은 북한이 나름의 방식으로 맑스레닌주의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주체노선을 확립해나가는 핵심적인 계기가 되었다. 비록
소련의 수정주의와 중국의 교조주의에 대한 비판을 모두 포괄하고는 있었으나 북한의 주
체노선은 급진주의에 훨씬 가까운 것이었다. 1967년의 과도기 논쟁을 통한 북한 사회 전반
의 변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후 후계자 김정일은 북한식 급진주의를 ‘김일성주의’의
이름으로 순수이데올로기의 차원으로 격상시키려 시도하며 이에 따른 이데올로기적, 조직
적, 정책적 변화를 주도해 나갔다.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완전승리의 기치 하에 강화되어온 북한식 급진주의에 탈급진적 모
색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였다. 북한은 발전의 위기에 직면하여 다양
한 시도를 통해 나름의 정책적 합리화를 시도해나갔다. 인민생활향상론과 합영법을 통한
중공업 우선의 자립적 발전전략의 연성화는 그 핵심이었다. 이러한 변화가 가속화된 것은
물론 1980년대 후반 탈냉전의 파고가 시작되면서 부터였다. 북한은 일련의 남방정책을 통
해 교차승인을 실현함으로써 탈냉전의 새로운 국제질서에 편입되려 노력하는 동시에 신무
역체계, 혁명적 경제전략 등을 도입하며 탈급진화를 통한 적응을 시도했다. 제네바 합의
체제 역시 적어도 북한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었다. 교차승인의 핵심은
북미관계정상화였으며 제네바 합의는 냉전기 내내 일체의 접촉 자체를 거부하던 미국으로
부터 안전보장과 관계개선의 공약을 받아낸 중요한 성과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유훈통치 시기는 일종의 과도기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해당 시기 북
한의 정책과 담론은 탈급진적 모색과 급진적 요소가 혼재되어 있었다. 혁명적 경제전략과
제네바 합의 체제가 지속되는 가운데 군에 대한 강조와 보수적 체제수호 담론들 역시 병
행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과도기의 대응만으로 체제의 생존위기를 극복하는 데
- ii -
는 한계가 있었다. 유훈통치의 마지막 해였던 1997년의 위기는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
다. 결국 1997년을 기점으로 탈급진적 모색은 종식되고 김정일 정권의 비전과 기조는 북한
식 급진주의를 재구축하는 쪽으로 총결되었다. 선군노선의 등장이 그것이다. 이는 군사주
의의 강화를 통해 체제의 안전을 도모함과 동시에 혁명성의 강화를 통해 카리스마적 권위
를 구축함으로써 권위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었다.
 이러한 기조 하에 김정일은 주체사상의 독창성을 강조함으로써 맑스레닌주의의 탈급진적
해석에 기반 한 개혁개방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또한 사회주의 완전승리론을 대체한 사회
주의 강성대국론을 통해 국가발전의 비전과 원칙을 분명히 했다.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 차
원의 급진주의의 정립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조직적, 정책적 변화를 수반했다. 국방위원회
체제의 등장과 내각책임제를 통한 정경분리가 조직적 차원의 변화였다면, 혁명적 경제전략
의 폐기와 중공업 우선 전략의 재강화, 국방공업우선론의 채택 등은 정책적 차원의 전환을
의미했다.
 이는 1960년대 이래 형성되어온 북한식 급진주의가 선군노선으로 재구축되었음을 의미했
다. 즉 탈급진화의 가능성을 함께 내포하고 있었던 계급에서 인민으로의 변화는 외부의 위
협과 내부의 권위의 위기라는 이중 위기 속에 다시 인민으로부터 ‘군(軍)과 인민’으로의
변화로 귀결되면서 급진화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후 선군노선은 선군경제노선, 선군사상
의 등장을 통해 더욱 체계적인 형태로 발전되어 나갔다.
 요컨대 <부정(negation)>, <대안적 비전(visionary)>, <행동주의(activism)>라는 3가지 요소를
그 구성요소로 하는 터커(Robert Tucker)의 급진주의 개념에서 볼 때, 미국 중심의 일극체
제로 재편된 제국질서에 대한 ‘부정’과, 사회주의 강성대국이라는 ‘대안적 비전’, 그
리고 선군정치라는‘행동주의’를 갖춘 선군노선은 명백한‘북한식 급진주의’였다.
핵심어: 선군노선, 정치적 계승, 북한식 급진주의, 탈급진화, 권위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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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제1장 서 론 ······························································································ 1
제1절 문제제기 ·········································································································· 1
제2절 연구방법론과 자료 ·························································································· 5
제3절 논문의 구성 ····································································································· 8
제2장 급진주의와 국내정치동학 ··························································· 11
제1절 전체주의론의 한계와 정치의 복원 ······························································ 11
제2절 급진주의와 카리스마적 권위 ······································································· 18
제3절 정치적 계승과 권위의 동학 ········································································· 23
제4절 급진화 vs 탈급진화: 북한식 급진주의로서의 선군노선 ··························· 27
제3장 북한식 급진주의의 원형과 후계체제 ······································ 34
제1절 탈소련화와 주체노선의 등장 ······································································· 36
 1. ‘주체’의 등장과 권위의 원시축적 ································································· 36
 2. ‘5.25’교시와 북한의 급진화 ··········································································· 45
 3. 국방경제병진노선의 강화 ··············································································· 47
제2절 수령제와 후계체제 ························································································ 53
제3절 후계자와 북한식 급진주의 ··········································································· 60
제4장 탈냉전과 북한식 급진주의의 진동 ·········································· 69
제1절 주체비전의 위기와 후계리더십의 대응 ······················································ 69
 1. 6차 당대회: ‘당중앙’에서 ‘친애하는 영도자’로 ··········································· 69
 2. 발전의 위기와 ‘문제해결사’ 후계자: 인민생활향상론과 합영법 ················ 74
제2절 냉전의 해체와 탈급진적 모색의 강화 ···············································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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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주의진영의 붕괴와 정당성의 위기 ························································· 81
 2. 계급에서 인민으로: 인덕정치와 조선민족제일주의 ····································· 83
 1) 조선민족제일주의 ························································································ 83
 2) 인덕정치와 광폭정치 ··················································································· 86
 (1) 전사(前史): 기본군중 vs 복잡한 군중 ················································· 86
 (2) 인덕정치와 광폭정치: 등장과 차별화 ··················································· 89
 3. 김정일식 부국강병론과 혁명적 경제전략 ····················································· 93
 1) 김정일의 비전과 <사회주의는 과학이다> ················································· 93
 2) 혁명적 경제전략과 부국강병론 ·································································· 95
 4. 남방정책의 등장과 제네바 합의 ·································································· 106
제5장 계승의 위기와 북한식 급진주의의 재구축: 선군노선 ··········· 110
제1절 고난의 행군과 계승의 위기 ······································································· 111
 1. 유훈통치의 의미와 한계 ··············································································· 111
 2. 고난의 행군과 권위의 위기 ········································································· 114
제2절 과도기의 대응: 군, 청년, 그리고 수령결사옹위론 ·································· 116
 1. 군을 통한 계승과 혁명적 군인정신 ···························································· 117
 1) 군을 ‘통한’ 계승의 의미 ·········································································· 117
 2) 아래로부터의 혁명화: 군 현지지도와 혁명적 군인정신 ························ 122
 3) 경제건설자로서의 군 ················································································· 126
 2. 청년과 세대의 문제: 청년중시사상의 등장 ················································ 127
 3. 붉은기 담론과 수령결사옹위론 ···································································· 132
제3절 위기의 축적과 선군노선의 등장 ······························································· 133
 1. ‘이중 위기’와 급진주의 ················································································ 133
 1) 제네바 합의 체제와 외부 위협 ································································ 133
 2) 급진주의와 국내정치 ················································································· 137
 2. 선군노선: 이데올로기, 조직, 정책을 중심으로 ·········································· 148
 1) 선군노선의 이데올로기적 기반 ································································ 150
- v -
 (1) 우리식 사회주의론: 독창성 vs 계승성 ·············································· 150
 (2) ‘사회주의 완전승리론’에서 ‘사회주의 강성대국론’으로 ··················· 159
 2) 선군노선의 조직적 토대 ··········································································· 164
 (1) 국방위원회 체제와 선군노선 ······························································· 164
 (2) 내각책임제와 북한식 정경분리 ··························································· 166
 3) 선군노선의 정책적 실현 ··········································································· 167
 (1) 혁명적 경제전략의 좌초와 중공업 우선주의로의 회귀 ···················· 167
 (2) 국방공업우선론의 등장과 선군정치의 완성 ······································· 172
 3. 선군노선의 발전: 선군사상과 선군경제노선 ·············································· 184
 1) 선군사상의 등장 ························································································ 184
 2) 국방공업우선론에서 선군경제노선으로 ··················································· 186
제6장 결 론: 선군노선과 김정은 정권 ·············································· 195


참고문헌 ················································································································· 201
Abstract ················································································································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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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그림 목차>
<표 3-1> 북한의 군사비 ································································································ 50
<표 3-2> 남북간 재래식전력균형: 군사비누계 비율(1972~1994) ····························· 52
<그림 3-1> 북한 경제 관리에서 3대혁명소조체계 ····················································· 67
<그림 5-1> 북한 배급제의 상대적 안정성 지수 ······················································· 114
<표 5-1> 1995-1996 부문별 현지지도 횟수 ·························································· 124
<표 5-2> 1997년 부문별 주요회담 ············································································ 136
<표 5-3> 노동신문 주요 발언(1998.10-1998.12) ····················································· 181
<표 5-4> 반미 군중대회(1998.12) ·············································································· 183
<그림 5-2> 북한 경제성장률(1990-2010) ·································································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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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서 론
제1절 문제제기
 1990년대 등장한 선군정치에 대한 연구는 주로 선군정치의 구성 요소 중 정치세력으로서
‘군의 부상’과 그것이 갖는 함의에 대한 연구에 집중되어 왔다. 이는 노동계급이 아닌
군을 혁명의 주력군으로 삼는다는 ‘선군후로’(先軍後勞)’의 원칙과 국방위원회를 중심
으로 한 김정일 체제의 ‘특수성’이 당-국가 체제라는 사회주의 정치체제의 고유한 특성
으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당-군 관계와
국가성격의 변화 여부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은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준다.1)
 본 연구는 이와 같은 한계를 넘어서고자 선군정치, 사회주의 강성대국론, 선군경제노선,
선군사상 등으로 이루어진 김정일 시대의 선군노선의 등장과정을 탈냉전과 고난의 행군
그리고 이와 중첩된 정치적 계승의 위기 속에 시도된 권위축적전략으로 재조명하고 그 의
미를 터커(Tucker 1967)의 급진화(radicalization)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함으로써 1990년대
초반 일련의 탈급진적 모색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정권의 출범과 함께 북한이 개혁개방을
거부하고 결과적으로 미사일과 핵개발을 지속하며 급진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과정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1990년대 북한이 내파 혹은 붕괴에 대한 수많은 예측을 유행하게 할 만큼 위기상황이었
1) 관련된 논의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 견해는 변화에 주목하는 관점으로서
군의 위상과 역할이 당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으로 강화되었다는 견해이다. 서대숙(2000), 와다
하루끼(2002), 백승주(2001), 유호열(2000), 윤황(2010)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 견해는
본질적으로 북한의 당-우위체제는 변함이 없으며 다만 군의 ‘역할’이 증대했다는 주장이다. 김
정일의 정치를 군 ‘중심’의 정치가 아닌 군 ‘중시’ 정책으로 파악하는 견해들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주장으로는 장달중·임수호(2005), 정성장(2001b), 최진욱(2001), 정성임(2004;
2009). 조준래(2003), 서석민(2007) 등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당과 군의 지위가 수평적으
로 변화되었으며 이는 김정일의 직할통치에 의한 ‘당-정-군 역할분담체제’ 혹은 ‘분할통치’로
봐야한다는 주장으로서 김갑식(2001, 2005a), 정영태(2000)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첫 번째 견
해인 군의 역할 강화론은 군사국가화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군사국가화론에 대한 개괄
적인 논평으로는 양현수(1999)를 참조할 것.
- 2 -
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2) 따라서 북한의 선군정치는 이와 같은 대내외적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간주되어 왔다.3) 그러나 위기는 변화의 계기일 뿐 변화의 방향을 결정하지
는 않는다. 따라서 선군정치가 대내적 위기관리 정책을 넘어 “<1 : 세계>라는 가장 어려
운 상황에서도 사회주의와 민중의 존엄, 국력을 최대치로 과시”(김철우 2000, 2)해 나가나
는 피포위의식과 선도의식이 결합된 비상체제로 제도화되고(이정철, 2008, 130) 북한의 이
데올로기, 정책, 조직 등이 이러한 선군정치를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변화되고 재창조됨으
로서 이른바 선군노선이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 북한식 사회주의를 수호하는 국가노선(전덕
성 2004, 129)으로 항구화된 과정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는 1980년대 중반의 모색기를 거쳐 탈냉전 이후 북한에도 다양한 탈급진적 요
소들이 나타났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남북기본합의서, 북일수교의 시도 등 일련의 남방
외교, 신무역체계의 등장과 경공업, 농업, 무역 제일주의를 기반으로 한 혁명적 경제전략,
제네바합의체제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시도는 1994년 수령의 사망 이후 북한 내부
의 논쟁을 유발했다. 따라서 탈냉전 이후 여러 위기상황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1990년대 중
반까지 북한의 미래는 열려있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부의 논쟁 속에 북한의 미
래가 ‘선군노선’으로 귀결된 동학은 무엇인가?
 20여 년 간의 후계체제를 거친 북한의 정치적 계승의 과정이 매우 체계적으로 진행되었
으며 후계자 김정일의 정치적 권위와 권력기반 역시 여타의 사회주의 국가들의 계승자들
에 비해 상대적으로 탄탄한 것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4)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이 김일
2) 1990년대 북한 붕괴론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로는 이상근(2008)의 논의를 참고할 것.
3) 예컨대 선군정치를 국가의 총체적 위기상황에 대한 위기관리체제로 분석한 대표적인 연구로는
오경섭(2009)을 들 수 있다. 그는 위기관리를 “최고정책결정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피해를 최소
화하고,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위기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취하는 제도
적, 정책적 노력의 과정”으로 정의하고 선군정치를 사회주의체제의 붕괴, 제1차 북핵위기, 김
일성 사망, 기근, 경제의 붕괴라는 위기에 맞서 “수령의 권력안보를 실현하기 위해 군대를 활
용한 보수적 위기관리체제”로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선군정치의 목적은 오
직 권력안보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권력 혹은 안보 중심적 접근만으로 선군노선의 지속성과
총체성을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4) 사회주의 국가의 그 어떤 후계자도 김정일과 같은 장기간의 후계수업을 받은 예는 없다. 또한
부자세습 역시 마찬가지이다. 루마니아의 경우 시도는 했으나 체제의 붕괴로 결국 실패하고 말
았다. 또한 부자세습은 아니지만 가족 간에 이루어진 계승의 사례로는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
게 정치권력이 계승된 쿠바의 사례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쿠바의 경우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권위는 계승하지 않고 정치권력의 제도화를 통해 계승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측면에서 북한의
방식과는 차별적이었다. 루마니아의 부자세습과 관련된 시도에 대해서는 Tismaneanu(1989)
- 3 -
성 사후 ‘수령의 제1충신’혹은 ‘공동 통치자’가 아닌 유일한 수령으로 거듭나야 했던
김정일 체제의 출범 과정에서 정치적 계승이 초래한 위기가 부재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
니다. 특히 북한의 정치적 계승은 냉전의 비대칭적 해소와 연이어 닥친 고난의 행군과 중
첩된 총체적 위기 상황에서 진행되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대내외적 환경은
체제의 정당성과 수령의 권위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우리는 1994년 제네바 합의 직후 이와 같은 선군노선이 채택되었다는 북한의
‘사후적’ 설명과 달리 북한의 선군정치가 단계적인 발전과정을 겪어 왔다는 점에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선군정치는 ‘군사선행의 원칙하에 국방력강화에 선차적인 힘을 넣고,’
‘군대를 혁명의 제1기둥으로 내세우며,’ ‘군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을 추진하는 것’
으로 정의된다.5)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 지점은 1999년 6월 16일 <근로자>, <노동신
문> 공동논설인 <우리당의 선군정치는 필승불패이다>를 통해 체계화된 상기한‘선군정
치’의 구성요소들이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과 군을 중시하는 것, 그리고 군의 활용도를 국방 이외의 분야로까지 확장하는 것은 논
리적, 혹은 경험적으로 동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6) 즉 선군노선은 지도자의 결단의 결
과로서의 성격을 갖는 동시에 그러한 결단이 외부의 환경변화와 내부의 정치적 동학 속에
‘관철’된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는 선군정치가 형성되어간 과정에서 잘 나타난
다.
 선군정치의 기원에 대한 북한의 ‘최초의’설명은 1995년 1월 김정일의 다박솔 초소방문
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김철우 2000, 16-17).7) 1995년 이래 김정일의 현지지도가 군에
를, 쿠바의 계승의 과정에 대해서는 호프만(Hoffmann 2009)을 참조할 것. 한편 북한의 후계
과정과 후계자 김정일의 정치에 대한 연구물은 매우 다양하나 그 중에서도 정창현(1999), 이찬
행(2001), 정영철(2005)이 대표적이다.
5) 김철우. 2000.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 평양: 평양출판사, pp.27-37.
6) 정권의 군사화와 군비의 상관관계에 대한 경험적 연구는 군의 영향력 강화나 군부의 집권이
반드시 국방비의 증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Deger & Sen 1995, 301).
정권의 군사화는 오히려 부족한 정당성의 확보를 위해 군비를 축소하고 경제개발에 집중함으
로써 안보우선주의의 완화로 귀결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경험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물론 비록 형식적이긴 하지만 대의민주주의 제도 하에 정권의
재창출을 인민의 지지에 기댈 수밖에 없는 권위주의 국가들의 사례를 북한에 직접적으로 적용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하에서 보듯 북한의 선군정치 역시 초기의 핵
심적인 내용은 군의 이반을 방지하기 위한 군의 혁명화였으며 그것이 군의 활용도를 높이고
국방력 강화하는 내용들로 ‘확장’되어 간 것은 그 이후였다는 점이다.
7) 여기서 ‘최초’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현재 선군정치의 기원에 대한 북한의 설명이 ‘후계자’ 김
- 4 -
집중된 것에서 잘 나타나듯 포괄적 의미의 군 중시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와 같은 북한의
설명은 일정 정도 타당하다. 그러나 당시 선군정치의 핵심 내용은 국방력 강화나 군의 활
용도 재고가 아닌 군의 ‘이반’(離叛) 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따라서 초기 선군정
치는 군 우대, 군 원호, 군의 사상교양 강화 등을 중심으로 했다. 이는 사회주의 붕괴의 핵
심적인 원인을 군의 ‘반(反)혁명화’에서 찾았던 북한의 인식에 기원한 것이었다.8) 그리
고 군을 통한 사회의 재혁명화와 경제건설자로서의 군의 역할 강화 등이 결합된 ‘혁명적
군인정신’론이 등장한 것은 1996년이었으며 그것이 다시 국방공업우선론으로 확장되어간
것은 1997년 무렵이었다. 즉 1999년도에 그 내용이 체계화된 선군정치는 처음부터 완결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상기한 구성 요소들이 순차적으로 결합되어간 결과였다는 것
이다.9)
 특히 국방력에 대한 강조는 자원배분전략의 중대한 변화를 수반했다.10) 1997년을 기점으
로 김정일 정권은 전후 40여 년 간 유지되던 중공업 우선의 산업구조를 경공업과 농업을
중심으로 재편하려 했던 ‘혁명적 경제전략’을 폐기하고 중공업을 중심으로 한 자립적
민족경제전략을 재강화함과 동시에 국방공업우선론을 채택했다.11) 국방공업우선의 경공업,
정일이 1960년 서울 류경수 105탱크사단을 방문하던 날로 소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동신
문> 2010. 8.24; 『선군-김정일정치』 (평양: 외국문출판사, 2012), pp. 28-29. 이러한 변화는
2008년에도 유사한 형태로 나타났다. 즉 선군정치가 1990년대 중반이 아니라 1960년대
말~1970년대 초의 격렬한 조미대결의 역사적 배경 하에서 출현했다는 것이다. 강희봉. 2008.
『선군정치문답』. 평양: 평양출판사, p. 2
8) 김철우. 2000.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 .평양: 평양출판사, pp. 2-4.
9) 선군정치라는 용어가 북한의 공식문헌에 처음 나타난 것은 1998년 5월 26일자 <노동신문>의
“군민일치로 승리하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999년 신년공동사설에서 ‘선군혁명령도’라는
개념이 구체화되었고 1999년 6월 16일 <노동신문><근로자> 공동논설 “우리 당의 선군정치는
필승불패이다”로 체계화되었다(김근식·이무철 2007, 73-75)
10) 나카가네 카츠지(2001, 68-69)에 따르면 한 국가의 발전전략(development strategy)은 크게
자원배분에 관련된 정책과 제도·조직에 관한 정책으로 나눌 수 있다. 자원배분 관련정책에는
어떠한 산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킬 것인가와 관련된 산업정책, 어떠한 지역을 중시하여 자
원을 배분해야 하는가와 관련된 입지정책, 개방문제와 관련된 대외정책, 어떠한 기술을 개
발하고 보급해야 할 것인가와 관련된 기술정책 등이 포함된다. 이에 반해 제도·조직 관련정책
에는 상기한 정책을 실시할 때 틀이 되는 여러 가지 제도와 기구, 조직에 관한 정책이 포함
된다. 예를 들면 어떤 제도를 활용하여 한정된 자원을 배분할 것인가와 관련된 시장과 계획의
문제, 기업의 형태, 기업 내의 조직과 운영 등과 관련된 기업정책, 소득을 사람들 사이에 어
떻게, 어떠한 원리에 의해 분배할 것인가와 관련된 분배정책, 그리고 자금흐름과 관련된 재
정·금융 정책 등이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혁명적 경제전략에서 중공업을 중심으로 한 국방공
업우선론으로의 변화는 ‘자원배분전략’의 변화라 할 수 있다.
11) 그러나 기존 연구에서 국방공업우선론의 등장과 이에 따른 자원배분전략의 변화는 별다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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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동시발전을 내용으로 2002년 제기된 ‘선군경제노선’은 바로 이러한 국방공업우선
론이 공식화, 제도화된 결과였다.12)
 결과적으로 선군노선은 1995년 1월에 제기되었다는 북한의 최초의 설명을 기준으로 하여
도 그 완성된 내용이 김정일 정권의 항구적인 노선으로 체계화 공식화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과정은 김정일 정권이 정치적 계승의
과정에서 발생한 다양한 위기와 논쟁을 극복하고 주체노선의 창조적 계승으로서 선군노선
의 정당성을 확보해 나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13) 그리고 이렇게 확립된 선군노선의 핵
심은 미국 중심의 현 세계 질서에의 ‘순응’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방식대로’ 자주권
을 수호하며 체제의 목표를 유지하고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부정(negation)>, <대안적 비전(visionary)>, <행동주의(activism)>라는 3가지 요소를
그 구성요소로 하는 터커(Tucker 1967)의 급진주의 개념에서 볼 때,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
로 재편된 제국질서에 대한 ‘부정’과, 사회주의 강성대국이라는 ‘대안적 비전’, 그리
고 선군정치라는‘행동주의’를 갖춘 선군노선은 명백한‘북한식 급진주의’였다.
 본 연구는 이러한 차원에서 1990년대 후반 김정일 정권의 출범을 즈음하여 체계화되어
나타난 이데올로기, 조직, 정책적 차원의 변화들을 북한식 급진주의, 즉‘선군노선’으로
재정의하고 그 등장과정과 내용, 함의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제2절 연구방법론과 자료
목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에는 북한의 국방우선론 혹은 경제·국방병진노선이
1960년대 이후 변함없이 ‘지속’되었다는 관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전소영 2004). 그러나
1972년 경제국방병진노선의 종결과 함께 이루어진 군사비 감소에서 볼 수 있듯이 북한이 국방
분야에 대한 투자를 우선해 왔다는 것이 동일한 강도가 지속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함택영 1998).
12) 2002년 김정일에 의해 제기되어 2003년부터 공식화된 선군경제노선은 이후 북한 경제전략의
최상위의 원칙으로 작동해 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연구는 아직 빈약한 편이다. 대표적인 연구
결과로는 임수호(2009), 권영경(2008; 2009a; 2009b), 김병옥(2011), 차문석(2007) 등이 있다.
13) 유훈통치 시기 당내 갈등은 많은 연구에서 언급된 바 있다. 그 중에서도 이태섭(2001b), 김근
식(1999) 등은 대표적인 연구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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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연구에 있어 연구 방법론 부분은 취약한 부분이다. 이는 개별 연구자의 한계에 기인
한 점도 있겠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북한이라는 케이스가 갖는 자료의 한계와 접근성에 보
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따라서 단순히 사실을 밝히는 서술적인 차원의 연구를 넘어 변
수들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해와 설명을 목적으로 하는 분석적인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공간자료의 한계는 명확하다. 공간자료는 정권의 공식 입장이 정리되고 조작된 형태
로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간자료를 통해 내부의 정치동학을 밝혀낸다든가 특정한
시점의 논쟁을 찾아내기는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
권의 입장 자체가 일관될 수는 없다는 점에서 공간자료에 대한 면밀한 시계열적 분석은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낼 수 있는 단초가 된다. 비록 다양한 견해들의 충돌이 드러나
는 경우는 드물지만 북한 역시 대부분의 경우 정책적 변화에 앞서 상당한 기간의 내부적
인 합리화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타의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공간자료를 통
해 특정 주제에 대한 논조의 변화가 언제 시작되어 어떻게 발전되어 나갔으며 어떤 결과
로 나타났는지에 대한 면밀한 추적은 겉으로 드러난 북한의 정책적 변화들의 이면에 있는
인식과 논리를 파악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연구자의 분석 모델에 따라 공간자료의 단점은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당 중
앙위원회 기관지인 <노동신문>과 <근로자>를 보면 논자들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논지는
통일된 형태로 매우 일사분란하고 체계적으로 변모해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정권을
행위자로 간주하는 경우 흔히 부딪히는 문제, 예컨대 북핵문제에 대해 외교부와 통일부와
청와대가 모두 다른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정부의 인식과 입장’은 무엇인가라는 고
민을 덜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논문은 일차적으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근로자>와 <노
동신문>, 그리고 경제분야를 전문으로 한 대표적인 학술지인 <경제연구>를 중심으로 분석
을 진행했다. 해당 자료들은 각각 월간지, 일간지, 계간지로서 사후적 윤색의 문제에서 자
유롭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본 논문의 분석은 <근로자>에 크게 의존하고 있
다. <근로자>는 당 중앙위원회가 결정한 정책방향을 당 간부와 당원들에게 정확히 전파하
는 동시에 각종 시책의 관철을 목표로 한 교양 선전물이라 할 수 있다(이교덕 199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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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근로자>는 당과 정부, 군의 고위 인사들이 실명으로 논문을 게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해당 시기 당과 정권의 노선과 정책을 파악할 수 있는 핵심적인 자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노동신문>의 경우 구(舊)소련의 프라브다(Pravda)나 중국의 인민일보(人民日
報) 등 사회주의 국가 일반의 당보(黨報)가 지니는 비중을 넘어 수령의 유일영도체계의 핵
심적 선전 도구로서 북한에서 특별히 강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특히 김정일
은 후계자 시절부터 이른바 ‘신문혁명,’‘사설혁명’을 주도하며 면 배치에서부터 활자
크기에 이르기까지 노동신문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현재의 <노동신문>을 설계한 장본인
이었다.14) 한편 <경제연구>는 상기한 자료들과는 약간 성격을 달리한다. 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노동신문>과 <근로자>와 달리 경제연구는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학술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근본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노동신문>과 <근로자>에 비해서
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주장들이 나타난다. 따라서 이는 내부의 논쟁을 엿볼 수 있는 중요
한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다음으로 본 연구가 주목하는 자료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담화문과 논문, 연설문 들이다.
리더십의 인식을 살펴보는데 그들이 직접 한 말과 글 보다 더 중요한 자료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들의 독해에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15) 사후적인 윤색과 조작의 문
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기한 자료의 분석은 해당 연설과 담화 등이
행해진 시점과 함께 그것이 공개된 시점과 의도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16) 물론 논문들의
14) 김정일의 <노동신문>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후계자로 지명된 1970년대부터 지속되어 왔다.
특히 그는 1974년에 기존의 언론이론을 대폭 수정한 ‘주체적 출판보도사상’을 새롭게 주창하
였다. 여기서 김정일은 출판보도사업에도 신문혁명, 보도혁명, 출판혁명 등 3대 혁명이 필요하
며 이 중에서도 신문혁명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당시 김정일은 “아무리 바빠도 노동신
문사에서 올려보내는 사론설초안들을 다 보”고 직접 수정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김정일. 1974
년 2월 22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사설혁명을 일으킬
데 대하여.” 『김정일 선집』 4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4. p. 78. 노동신문의 변화 과정
에서 김정일의 역할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김영주(1996, 119-128; 2008, 65-68)를 참조
할 것.
15) 자료의 조작과 그에 따른 독해의 문제에 대해서는 류길재(2003)가 유용하다. 또한 김일성 저
작집과, 김정일 선집 자체에 대한 분석으로는 이교덕(2001), 김병로(1993)를 참조할 것.
16) <김정일 선집>은 1992년도와 1993년도에 각각 1권과 2권이 출판된 이후 김일성 사망 후인
1994년부터 2000년까지부터 평균 1년에 2권꼴로 출판되었다. 특히 유훈통치를 마무리하고 김
정일 시대를 선포한 1997년은 총 4권이 집중적으로 출판되었다. 또한 8권의 경우 출판 순서가
바뀌어 12권보다 늦게 출판되었다. 이는 김정일 선집의 출판시기와 논문의 선정이 매우 정치
적인 작업이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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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저작집에 실리기 전에 <근로자>, <노동신문> 등을 통해 공개됨으로 상기한 시점의 문
제에서 자유롭다. 연설문이나 서한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
는 내부 담화문들의 경우 수많은 담화 중에 선택적으로, 그리고 내용 역시 사후적으로 조
작되어 제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17) 따라서 김일성, 김정일의 담화의 내용들은 반드시 여
타의 자료들과 비교분석을 통해 검증될 필요가 있으며 해석 역시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보
다는 이면의 정치적 의도를 읽어내는 ‘맥락적 독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북한에서 출판된 각종 단행본을 비롯하여 <조선중앙연감> 등을 통해 제시되는 공식 자료
들, 탈북자들의 증언과 다양한 회고록 등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상기한 자료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들을 극복하려 노력했다.
제3절 논문의 구성
 본 논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2장 급진주의와 국내정치동학>에서는 강력한 독재국가로서 통치자가 완벽한 자율성을
누리는 것으로 묘사되어온 북한 정치에 대한 기존 연구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기반하여
김정일 시대 선군노선의 등장과정을 탈냉전과 고난의 행군이 중첩되어 나타난 정치적 계
승의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재조명하기 위한 이론적 자원들을 검토한다. 특히 카리스마적
권위의 구조와 정치적 계승의 동학, 급진화와 탈급진화라는 개념을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17) 황장엽에 의해 전해진 김정일의 1996년 12월 김일성 종합대 연설은 이와 같은 메커니즘을
잘 보여준다. 김정일. 1996년 12월. 김일성종합대학 창립 50돌 기념 연설문. “우리는 지금 식
량 때문에 무정부상태가 되고 있다.” 『월간조선』 1997년 4월호. 해당 연설에서 군의 예술공연
과 대학생 예술공연의 차이를 언급하는 부분은 김정일 저작집의 “김정일. 1997년 1월 1일. 조
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올해에 당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일으킬데 대하
여.” 『김정일 선집』 14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2000. p. 256”의 한 부분으로 동일하게 언
급된다. 그러나 전체적인 논조의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담화가 분명한 내용적 차이가
있음은 물론이다. 김정일의 ‘교시’가 작성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황장엽(1999, 176, 209,
219-220, 235) 을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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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북한식 급진주의의 원형과 후계체제>에서는 흐루시초프 등장 이후 진행된 소련의
탈급진화, 즉 평화공존론과 계급투쟁 종료에 반대한 북한식 급진주의의 등장과 성장과정을
다뤘다. 1960년대 북한식 급진주의는 자주, 자립, 자위를 핵심적 구성요소로 한 이른바
‘주체노선’이 수령제의 확립과 함께 강화 발전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5.25’
교시로 불리는 1967년 김일성의 연설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와 프로레타
리아 독재문제에 대하여>는 소련발 탈급진화 물결에 대한 북한의 거부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었다.18) 또한 1972년 이후 주체노선은 후계자 김정일에 의해 김일성주의로의 격상을
통한 맑스레닌주의와의 차별화가 시도되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북한식 급진주의는 독
창성과 계승성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함께 강조하는 단계였다.
<제4장 탈냉전과 북한식 급진주의의 진동>에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북한에 나타나기 시
작한 탈급진적 징후들이 특히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본격화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1980
년대는 발전이 정체되며 남한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기 시작한 북한의 새로운 시도들이 등
장한 시기였다. 1984년 합영법 제정과 연합기업소 제도 도입, 8.3 인민소비품 운동을 비롯
한 경공업의 강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시도를 주도한 것은 바로 후계자 김정일이
었다. 비록 부침은 있었으나19) 결과적으로 이러한 흐름은 1990년대 탈냉전과 함께 가속화
되었다. 1992년 등장한 신무역체계나 1993년 12월 등장한 혁명적 경제전략이 그것이다. 또
한 일련의 남방정책과 제네바합의 체제 역시 일종의 탈급진적 흐름의 연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탈급진적 모색은 기존의 급진주의적 흐름에 동요를 일으키며 탈냉전 이후
북한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논쟁이 본격화 된 것은 물론 절
18) 김일성. 1967년 5월 25일, 당사상사업부문일군들앞에서 한 연설.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
에로의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문제에 대하여.” 『김일성 저작집』 21권. 평양: 조선로동당출
판사 1983.
19) 1980년대 중반 이후 대외개방정책을 중심으로 한 정책적 부침에 대한 설명으로는 오병훈
(1994)을 참조할 것. 그는 1980년대 중반 이후 1994년까지 북한의 대외경제정책의 변화를 크
게 세 시기로 나누어 고찰하고 있다. 첫 번째 시기는 1984년 9월 8일 합영법 제정 이후 1985
년 5월 17일까지의 대외개방 1기이고 두 번째 시기는 1985년 5월 17일 이후 1991년 12월 28
일까지의 정책적 갈등과 보수화 시기이며 세 번째 시기는 이후 1994년 1월 20일까지의 대외
개방 2기이다. 그는 이러한 정책적 부침이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모든 것을 다 결정한다는 전
체주의적 접근법에서 벗어나 국제체제, 정책레짐, 최고지도자, 통치엘리트 등 4개의 변수 모두
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설명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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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수령의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이 지속되면서 권위와 정당성의 위
기가 심화된 유훈통치기간이었다. 결과적으로 유훈통치기간은 1998년 출범한 김정일 정권
의 정책기조가 결정되는 과도기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제5장 계승의 위기와 북한식 급진주의 재구축: 선군노선>에서는 북한식 급진주의가 유
훈통치를 거치며 새롭게 재구축된 결과물로서 선군노선의 등장과정과 내용을 밝히고자 했
다. 본 연구는 제네바 합의체제의 불안정성으로 인한 외부로부터의 위협뿐만이 아니라 고
난의 행군과 정치적 계승의 위기가 중첩된 내부의 정치적 불안정성이 북한의 급진화의 한
변수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해당 장에서는 이데올로기, 조직, 정책
이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선군노선의 내용을 정리했다. 먼저 이데올로기적인 차원에서 김
정일은 주체사상의 독창성을 강조함으로써 맑스레닌주의의 유물론에 기반 한 개혁개방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한편 사회주의 완전승리론을 대체한 사회주의 강성대국론을 통해 국가
발전의 비전과 원칙을 분명히 했다. 또한 조직적 차원에서는 국방위원회 체제가 등장하고
내각책임제를 통한 북한식 정경분리가 도입되었으며 정책적 차원에서는 혁명적 경제전략
이 폐기되고 중공업 우선의 자립적 민족경제론으로의 복귀가 선언됨과 동시에 국방공업우
선론이 등장하였다.
 <제6장 결 론: 선군노선과 김정은 정권>에서는 본문의 논의를 요약하고 그것이 김정은 시
대에 갖는 함의를 밝히고자 했다. 김정일의 정치가 그러했던 것처럼 김정은 역시 유훈의
계승을 통해 정치적 계승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선군노선은 유훈의 핵심으로 김정
은 시대에도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고비용의 공존’상태를 ‘저
비용의 공존’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급진주의로서 선군노선이 갖는 ‘부정’의 요소 즉
반제자주가 냉전기의 제국주의 타도와는 달리 안전보장과‘인정’(recognition)의 목표를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동시에 밝히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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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급진주의와 국내정치동학

 본 장에서는 북한식 급진주의의 등장과정과 특성을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자원들을 검토
한다. 먼저 북한식 급진주의가 독재자의 자율적인 선택의 결과라기보다는 외부의 환경변화
와 내부의 동학에 대한 대응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밝히기 위해 전체주의를 중심
으로 한 기존의 북한정치분석 모델들의 몰(沒)정치적 특성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또
한 북한식 급진주의가 수령제, 그리고 정치적 계승의 과정에서 등장하고 발전한 메커니즘
을 이해하기 위해 북한의 특수한 권위의 구조, 즉 카리스마적 권위의 구조에 대해 살펴보
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연구의 핵심적 개념인 급진화(radicalization)와 탈급진화
(deradicalization)라는 개념들을 소개했다.
제1절 전체주의론의 한계와 정치의 복원
 멀리는 시민혁명을 기점으로, 짧게는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독재에서 인민의 지배로의 변
화는 대부분의 이들에게 역사의 필연적 귀결로 여겨져 왔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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