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31

[북한 전망대] 협동 없는 협동농장



[북한 전망대] 협동 없는 협동농장



[북한 전망대] 협동 없는 협동농장

워싱턴-박봉현 parkb@rfa.org
2012-06-07


북한 사리원의 미곡 농장
PHOTO courtesy of nk.subnetwork.org
k060712ne-bp.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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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협동 없는 협동농장’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이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 살도록 하겠다”고 주민들에게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대기근으로 수많은 주민이 굶어 죽었습니다. 권력을 넘겨받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 주석의 유훈을 실현할 것을 누누이 강조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쌀밥에 고깃국은 고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끼니 걱정에서 해방되는 꿈을 꾸는 주민이 부지기수입니다.

김 위원장으로부터 권력을 이어받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숙원사업이었던 ‘쌀밥에 고깃국’ 문제를 해결하고 싶을 겁니다. 그래서 나온 방안이 협동농장을 개혁하는 것입니다. 대규모 집단체제로 운영되는 협동농장을 소규모로 쪼개 운영하는 구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이 구상하고 있는 협동농장 개혁은 협동농장을 사유화하는 게 아닙니다. 대규모 체제를 소규모 체제로 전환해 주민들의 소유의식을 어느 정도 높이면서도 기존의 협동농장 체제가 와해되지 않도록 한다는 복안입니다.

대규모에서 소규모로 전환할 경우 주민들의 소유의식이 얼마나 제고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토지를 개인 소유로 넘기기 전에는 의미 있는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내 것과 남의 것에 쏟는 정성은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내 땅이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농사에 열의를 다하겠지만, 내 땅이 아니면 그만한 정성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북한정권은 자칫 농장을 사유화하면 궁극적으로 당의 지시가 잘 먹혀 들지 않고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을 우려해 미온적인 개혁을 선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민의 생활여건이 나아지면 정권을 우습게 보지 않겠느냐고 걱정을 합니다. 주민들이 잘 살면 정권은 저절로 튼튼해지고 지도자는 당연히 존경 받게 되는데 말입니다.

협동농장 개혁안이 완벽하진 않아도, 변화를 거부해 온 북한정권에서 그나마 ‘개혁’의 징후가 드러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내부 이견으로 움츠러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된 주요 이유가 북한에 중국식 개혁을 촉구한 남한의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치 이 대통령이 내놓은 의견을 따라가는 모양새가 되니 개혁구상을 뒤로 물렸다고 합니다. 1962년 도입된 후 수십 년간 주민들의 고통만 가중시켜 온 잘못된 협동농장 제도를 고치려다가 남한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형국입니다. 주체사상에 갇힌 북한이 견지해 온 태도를 고려하면 이례적입니다.

주민을 위해 협동농장 제도를 바꾸려 한다면 남한 대통령 발언에 괘념할 까닭이 무엇입니까? 체면을 차리고 주민들을 굶기는 게 낫습니까, 아니면 체면이 조금 구겨지더라도 주민들을 배부르고 등 따뜻하게 하는 게 낫습니까?

뒤집어 생각하면 남한의 대통령 발언은 북한의 개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북한정권은 남한이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고 비난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남한의 대통령이 북한이 시도하려는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니 이보다 더 강력한 지지자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북한정권은 국제사회가 불쌍한 주민들을 생각해 식량을 지원하면,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존경심에서 그랬다고 거짓 선전을 하곤 했습니다. 이 정도로 뻔뻔한 데 남한 대통령의 개혁 발언에 뭐 그리 민감하게 나올 필요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남한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주민에게 주라고 보내준 지원품을 군대용으로 돌릴 정도로 막무가내의 정권이 아닙니까?

학생에게 책은 충분히 공급하지 않고 공부만 하라고 윽박지르는 학교와 선생님은 존경받을 수 없습니다. 전투 중인 군인에게 실탄을 넉넉히 대주지 않고 적진에 뛰어들라고만 하는 부대장은 훌륭한 지휘관이 아닙니다. 주민에게 끼니 해결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부는 일 잘하는 정부가 아닙니다. 국민의 생활개선보단 통제와 체제유지를 우선시하는 정권은 지속돼야 할 정권이 아닙니다.

북한정권은 통제와 개혁을 모두 얻으려 하고 있습니다. 북한정권의 개혁의지에 의구심이 드는 이유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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