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07

대마도는 당연히 고유의 한국땅, 일본은 불법점유를 풀고 우리땅 대마도를 반환하여야한다 : 네이버 블로그

대마도는 당연히 고유의 한국땅, 일본은 불법점유를 풀고 우리땅 대마도를 반환하여야한다 : 네이버 블로그





궁시렁궁시렁

대마도는 당연히 고유의 한국땅, 일본은 불법점유를 풀고 우리땅 대마도를 반환하여야한다

반가운

2016. 8. 1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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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 역사, 문화, 의식, 인터넷에서,

일본의 한국 침략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독도는 한국땅, 대마도도 당연히 한국땅이다.





쓰시마는 잘못된 명칭이고, 일본은 우리땅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하여야한다.





관련 월간조선 기사 : 대마도는 한국땅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111100019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서 불법 점령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국제적으로 약속했다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도발 이유는 대마도 문제를 덮기위한 것











대마도는 당연히 한국 고유의 영토이다.





부산에서 대마도까지는 49.5km, 일본 후쿠오카에서 대마도까지는 147km, 이 대마도에 고대로부터 한국인들이 살던 곳이었다. 고대 마한과 마주보는 땅이라 하여 대마도(對馬島)라고 불러 왔다. 그동안 학자들과 연구가들에 의해서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통일신라 때부터 고려와 조선말까지 대마도는 한국의 경상도 계림(신라)의 부속 도서로서 경상도 관찰사의 관할이었다.





2) 대마도 원주민들의 혈액 DNA가 한국인과는 100% 동일하여도 일본인들과는 30%가 같지 않다.





3) 대마도를 지배 했던 소씨(蘇)는 진주가 본관인 한국 성씨이다.





4) 삼국시대에는 진도라는 우리의 영토로 불리었다.





5) 신라 때 볼모로 잡혀갔던 신라의 왕자를 구출하고 자신은 일본에서 처형된 신라 국사 박제상 공의 순국비가 있다.





6) 고려 창왕(1389년) 때 박위 장군의 지휘로 왜구의 소굴로 변한 대마도를 완전히 소탕하고 대마도의 관사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고려문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7) 그 후 조선 태조(1396년) 2차 정벌, 세종(1419년) 이종무 장군의 3차 정벌 후 대마도 도주가 신하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서약서도 있다.




▲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 일본의 정치가.)이 조선침략에 대비하여 무장에게 명령해서 만든 지도인 '팔도전도' 에는 독도와 대마도를 조선의 땅으로 표기하여 '일본 영토' 가 아닌 '침략 대상' 으로 명시하고 있다.


8) 풍신수길이 조선 침략에 대비해 만든 지도(팔도전도, 1592년이전)에도 대마도가 조선 땅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9) 태종이 세종 때 대마도 정벌에 나선 군사들에게 내린 하교문, 성종 때의 청백리 황희 정승과 조선과 대마도를 부자관계로 비유한 퇴계 이황 선생, 순암 안정복 선생의 동사외전, 동사강목, 정약용의 비어고에도 한국 땅으로 기록되어 있다.



10) 조선 왕조 500년간 대마도주는 대대로 조선의 관직을 받았다.



11) 1750년 영조 때 해동지도의 대동총도의 설명문, “백두산이 머리가 되고 태백산맥이 척추가 되며 영남의 대마도와 호남의 탐라를 양발로 삼는다.”는 문구나 1830년 일본에서 만든 조선국도에도 울릉도, 독도, 대마도가 조선 영토로 표기되어 있고 1855년 영국지도, 1865년 미국 지도 등 국내의 많은 역사 기록문에 명백히 표기되어 있다.





대마도를 한국령으로 표기한 1734년 프랑스제작 지도





12) 1861년 오가사와라 영유권 분쟁당시 일본이 만들고 국제사회에 인정받은 "삼국통람도설"의 "삼국접양지도"(프랑스어판, 1832년)에 독도와 대마도가 모두 한국땅으로 되어있다.





13) 삼국통람도설의 조선팔도지도(도호쿠대 소장) - 제작자 하야시 시헤이의 서명과 함께 울릉도, 독도, 대마도가 모두 조선땅으로 표시되어있다. * 이후 대마도가 일본영토로 빠진 위조본이 등장하였다.







* 하야시 시헤이[ 林子平 ]의 "삼국통람도설"이 중요한 이유와 내용 정리



- 일본 에도시대 대학자 하야시 시헤이(1738~93)이 1785년에 지은 "삼국통람도설"은 조선, 오키나와, 북해도 3국에 대한 정치지리서이다. 이 책에 수록된 지도중 주목할 부분은, "삼국접양지도" 와 "조선팔도지도"이다. 이 지도는 기록에 의하면 1788년 ~ 1873년까지 일본정부의 공식지도로 활용되었다.





- 위의 "삼국접양지도"(프랑스어판, 1832년)는 1806년 "삼국통람도설" 원본1권이 프랑스에 소개되어 1832년 프랑스어 번역본에 수록된 클라프로트의 번역 지도(1832년 제작)이다. 이 지도에 울릉도, 독도, 대마도가 조선땅으로 명시되어있다.





- 1853년 미국이 무인도 오가사와라제도(일본남쪽 1,000Km 떨어진 무인도군도)를 점령하여 식민지화 하였는데, 1861년에서야 일본이 이 사실을 알아채고, 오가사와라제도를 일본령으로 표시한 "삼국접양지도"(일본어 필사본)을 제시하였으나 거부당하자, 다시 "삼국접양지도"(프랑스어판, 1832년)을 제시하여 국제적으로 지도가 인정되고, 오가사와라제도가 일본 영토로 공인되었다. 따라서 같은 논리로 울릉도, 독도, 대마도 또한 조선땅으로 공인된 것이다.




* 오가사와라제도는 1876년 정식으로 일본에 편입되고

태평양전쟁후 1946년부터 미국에 의해 통치되다가,

1968년 일본에 반환되었다.





- 그러나 내용이 달라진 위조 지도가 만들어져 오랜 세월동안 배포되었다. 위조 지도에서도 독도는 여전히 조선땅이지만, 대마도는 일본땅으로 둔갑되었다.














* 일본의 대마도 관련 역사왜곡


- 오가사와라 분쟁당시 활약했던 다나베는 1863년, 1868년 주불대사로 활동하면서, 1868년 대마도의 일본귀속을 앞두고, 대마도가 조선영토로 표시되어 배포했던 클라프로트의 "삼국접양지도"(프랑스어판, 1832년) 수집, 폐기한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위의 위조본이다.





- 다보하시 기요시(田保橋潔·1897 ~1945)는 《근대 일본-조선관계의 연구(近代 日鮮關係の 硏究)》 등을 저술한 일본의 사학자이다. 일본인 사학자 하라다 사이에쿠(原田 榮)에 의하면, 그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찬위원으로 활동하던 1923년 7월 일본인 사학자 구로이타 가쓰미(黑板勝美)와 함께 대마도 현지로 건너가서 한국 관련 문서 6만6469매, 고기록류 3576권, 고지도 36매, 고서류 18점, 그림 53점 등을 은폐하거나 태워버렸다고 한다.





- 다보하시의 《근대 일본-조선관계의 연구》는 1940년 출판됐으나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가 1970년 다시 발행됐다. 그는 이 논문에서 대마도가 일본에 귀속된 후의 대마도 관련사항을 전체 내용의 1/3 분량으로 장황하게 날조, 서술하고 있다.





- 하야시 시헤이가 1785년에 지은 "삼국통람도설"에는 조선정벌의 타당성도 포함하고있는데, 일본의 아시아침략 정점에 있던 1942년 일본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되었는데, 그 책자는 1924년에 지도와 내용 등을 수정해 만들고 하야시 시헤이의 이름을 넣은 수정본으로 조선총독부 도서관 소장본이다.


-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요구를 접한 일본 정부의 반응은 위기감과 체념이었다고 한다(2008년 7월3일 일본 NHK 방영). 일본 정부는 맥아더 연합군 사령관에게 대마도 확보를 위해 필사적으로 로비를 했다고 한다.











14) 그후로도 계속 독도와 대마도는 조선에 포함되어 있었다.



대마도를 조선의 영토로 표기한 대조선국총도 (1874년, 미국회도서관)





울릉도(무릉)와 독도(우산)을 포함하는 대조선지도 강원도편(1874년, 미국회도서관)



대마도를 포함하는 대조선지도 경상도편(1874년, 미국회도서관)



대조선지도 직제와 면적편에 기록된 대마도





60회 대마도 반환 촉구한 이승만 대통령

1948년 8월 18일 대한민국 건국 사흘 만에 이승만 대통령은 대마도 반환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은 대마도를 한국에 즉각 반환하라! 대마도는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를 섬긴 우리 땅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무력 강점했지만 의병들이 격퇴한 전적비가 남아 있다. 구한말에 대마도를 강점한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서 불법 점령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국제적으로 약속했다. 지체 없이 한국에 돌려줄 것을 촉구한다.” 이는 대통령으로서 공식적으로 처음 제기한 것이다.







우리 국회에서는 대마도 반환 결의안을 만들고 이승만은 대마도 속령에 관한 법적 조치를 취하면서 계속해서 대마도 반환 촉구를 위하여 6.25전까지 60여 차례나 언급했다. “평생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조국은 해방되었으나 대마도는 일본식민지 그대로구나! …” 라며 탄식을 했으며, 전쟁의 소용돌이에 있었던 1952년 1월 18일에도 대일선전포고와도 같은 평화선을 선포하여 대마도를 내놓으라고 호령하였다. 북한의 6.25 남침만 아니었다면 이 대통령의 의지대로 대마도는 우리의 땅이 되었을 것이 확실하지 않겠는가.





해방당시 북한을 점령한 김일성의 첫번째 역적행위는 간도를 중국에 바친 것이었다.



이것도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중국주재 미국외교관 윌리엄스 웰스가 1884년 발간한 지도에서 표시한 중국과 조선의 국경에서, 간도 일부는 조선의 영토였다. 중국이 조선을 그 정도는 인지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째는 물론 무능한 조선의 위정자들때문에 영토 통치권력을 일본, 중국, 러시아 등에 잃었다.

둘째는 조선이 그렇게 크다는 것을 일본이 알지못했기때문에 그들이 점유하지 못한 것이고, 일본 패망과 함께 주인없는 땅이 되어 잃은 것이고, 종전 후 힘이 없던 중국 왕서방은 뜻하지않게 횡재한 것이다.




적어도 위의 2가지 사항은 일본이 중국, 러시아 등과 어떤 계약을 했던 모두 원인 무효에 해당한다.

일본이 중국과 체결해서 서간도, 북간도를 넘긴 "간도협약"은, 일본이 한국 영토에 대한 처분권리가 없는만큼, 분명 원인무효이니 반환받는 것이 당연하니...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야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 김일성이 중국에 뺏겨버린 간도부분은 매국행위에 해당한다.












* 우리는 조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영토의 상당 부분을 200년도 안되는 사이에 빼았겼다.

아래 표시된 부분은 하루빨리 우리가 복원해야하는, 조상이 물려준 우리의 영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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