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01

진짜 북한을 알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알짜배기 안내서 : 책과 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진짜 북한을 알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알짜배기 안내서 : 책과 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진짜 북한을 알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알짜배기 안내서

등록 :2018-09-25 17:50수정 :2018-09-25 18:11

<한겨레> 책 기자가 고른 북한 관련 책 5

새로 열리는 ‘함께 사는 시대’
현재진행중인 북한의 변화
제대로 알고 미래를 대비해야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

이번 ‘평양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이 일성은 15만명의 평양 시민들에게 직접 건넨 말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깊었다. 한반도의 평화는 남북 또는 미국의 지도자들이 만나서 무언가를 ‘선언’하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과제가 아니다. 궁극적으론 서로 갈라진 채 살아가던 사람들이 다시 만나 살을 부비면서 다져가야 할, 장기적인 과제다. 남북 정상은 이제 막 그 물꼬를 텄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야 할 북쪽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오랫동안 한반도를 지배해온 강고한 반공 이데올로기의 영향 아래, 북한을 그저 ‘미친 국가’, ‘괴물 국가’로만 여겨오지는 않았는지? 물론 다변화한 미디어를 통해 북한에 대한 정보들이 끊임없이 전해지긴 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아직도 북한은 미지의 영역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사안을 바라보는 종합적인 시각을 키워줄 수 있는 책이다. 최근 국내에서 출간된 북한 관련 책들 가운데 ‘알짜배기’라 할 수 있는 다섯 권을 꼽아본다.





# 북한 변화의 실상을 보여주는 책들

우리는 오랫동안 북한을 어떤 고정된 렌즈로 바라보는 데에 익숙해져왔다. ‘최고 지도자’에 초점을 맞추는 이 렌즈를 통해 보면, 북한은 그저 핵 개발, 미사일, 최고 지도자가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권력, 그 아래 신음하는 가난한 주민 등의 천편일률적인 정보들로 이뤄진 희미한 이미지로만 머릿 속에 남는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역동적인 곳이다. 특히 90년대 대기근에서 비롯한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북한 사회는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장마당(시장)’ 경제가 있다. 최근 국내에서 출간된 북한 관련 책들은 주로 이런 북한 사회 내부의 변화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지난 5월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이뤄지는 사이, 우리는 오늘날의 북한, 특히 평양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전해주는 사진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게 됐다. 그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타커스)는, 사진기자 출신 언론인 진천규가 “2010년 5·24 조치 이후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단독 방북 취재”를 한 결과물을 담은 책이다. 2017년 10월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평양, 원산, 마식령스키장, 묘향산, 남포, 서해갑문 등지를 취재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휴가 때 읽은 책 목록에 포함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여러 매체들이 지은이가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소개하기도 했다.

사진의 힘은 강력하다. 구체적인 공간과 사람의 모습이 또렷하게 제시되는 순간, 우리는 백마디 설명 없이도 그 대상에 대해 많은 것을 직관적으로 알게 된다. 대동강변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스마트폰으로 통화를 하거나 촬영을 하는 사람들, 지하철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 줄 지어 선 택시들의 모습, 갖가지 종류의 상업 간판들, 다양한 상품들이 진열된 마트와 백화점의 모습….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같다”는 지은이의 말처럼, 정말로 책 속 사진들은 우리의 일상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평양의 일상을 보여준다.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는 제목을 붙인 이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무엇보다 “당국의 통제와 검열”을 받지 않은 취재 결과라는 의미가 크다. 지나가는 여학생들의 사진을 찍었다가, ‘왜 마음대로 사진을 찍느냐’며 삭제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진땀을 흘렸다는 일화 등도 재밌다.





조선자본주의공화국평양의 시간과 서울의 시간이 함께 흐르고 있다면, 그 표준시는 과연 어디에 맞춰져 있을까? 북한 당국은 아마도 극구 부인하겠지만, 그 답은 아무래도 ‘자본주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 국내에서 출간된 <조선자본주의공화국>(비아북)은 영국 전직 언론인 둘이서 함께 쓴 책이다.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이었던 다니엘 튜더와 <로이터통신> 서울 특파원이었던 제임스 피어슨은 저널리스트답게 북한 안팎의 다양한 취재원들로부터 정보를 입수하여 그동안 우리가 외면했던 북한 내부의 실상을 종합적으로 그려냈다. “세 명 이상의 신뢰할 만한 취재원을 통해 확인되는 주장만을 믿을 수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North Korea Confidential’이란 제목으로 2015년 영미권에서 먼저 출간됐던 책이다.

책은 북한 내부의 ‘자본주의적 변화’가 어떻게 시작됐고, 어떻게 전개됐는지 보여준다. 북한의 사회경제 체제는 90년대 대기근과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무너졌고,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스스로 장마당을 만들어냈다. 북한 당국은 이렇게 만들어진 ‘이중경제’ 체제를 사실상 수용했다. 북한의 놀랄만한 변화는, 바로 여기서 비롯했다. 지은이들은 이 과정에 대한 분석과 함께, ‘자본주의’적 전환을 겪고 있는 북한의 천태만상을 소개한다. “군부가 소유한 고려항공은 이제 콜라와 통조림 등 가공식품을 생산하고 평양 시내에서 택시 서비스 사업도 벌인다. (…)‘내고향’이란 이름의 재벌 기업은 북한 내수용 담배를 생산할 뿐 아니라 ‘아침’이라는 브랜드로 이란에 수출까지 한다.”





평양자본주의백과전서<조선자본주의공화국>이 외국인의 시각으로 쓴 책이라면, 최근에 출간된 <평양자본주의백과전서>(북돋움)는 국내 저자가 쓴 책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탈북자’로서 <동아일보>에서 북한 전문 기자로 일해온 주성하 기자가 쓴 책이다. 언론인이 쓴 책이라는 점, 북한 내부의 다양한 취재원에 기댔다는 점, 제목에 ‘자본주의’란 말을 썼다는 점 등 두 책은 비슷한 구석이 매우 많다. 차이점을 굳이 꼽아보자면, <평양자본주의백과전서>는 <조선자본주의공화국>에 견줘 좀 더 최신의 정보를 기반으로 삼아 북한의 ‘천태만상’을 더욱 풍부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북한 출신의 북한 전문 기자가 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터다. 다만 지은이가 자기 나름대로 북한 체제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내용은 의외로 많지 않은데, 이는 ‘백과전서’란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풍부한 정보 제공을 ‘제1의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라 읽힌다.

평양 주민들이 ‘전문집’에 ‘치맥’을 포함한 각종 음식을 휴대전화로 주문해 배달시켜 먹는다거나, 부동산 투자 열풍으로 평양 노른자위 아파트 값이 30만 달러를 넘어섰다거나, 가장 인기 있는 데이트 코스인 모란봉에는 ‘부화 행위’(연애행각)를 단속해 돈을 뜯는 ‘기동타격대원’이 출몰한다거나 하는 깨알같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지은이는 이제 평양은 ‘혁명의 수도’가 아닌 ‘욕망의 수도’라며, “시장경제와 사회주의의 혼재, 시장화의 급속한 확산”이 북한 사회 전체의 현재 모습이라고 말한다.



# 북한 변화의 배경을 분석하는 책들



<평양자본주의백과전서>에는 북한의 세대 규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북한은 시대를 주도한 20, 30대를 기준으로 ‘혁명 세대’를 규정해왔다. 혁명 1세대는 김일성과 함께 빨치산 투쟁을 한 세대, 2세대는 6·25전쟁과 전후 복구를 겪은 세대, 3세대는 1970년대 3대 혁명소조운동을 이끈 세대, 4세대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은 세대다. 김정은 시대의 개막과 함께 이제 북한에는 5세대가 등장했다.” 이 5세대는 ‘장마당 세대’라 불리며, 오늘날 북한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배경 아래에서 등장하게 된 걸까?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몇 권의 학술 서적들이 도움이 될 듯하다.





극장국가 북한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와 정병호 한양대 교수가 함께 쓴 <극장국가 북한>(창비)은 인류학자의 눈으로 북한 체제를 분석한 책이다. ‘극장국가’라는 말은 원래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가 19세기 인도네시아 발리의 네가라 왕국을 연구하면서 쓴 말로, 물리적 강제가 아닌 화려한 의례와 공연 등 상징으로서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 체제를 가리킨다. 지은이들은 이 말을 열쇳말로 삼아 북한에서 ‘카리스마 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유지되는지 분석했다. 김일성은 ‘민족해방’(탈식민)을 앞세워 카리스마 권력을 획득했는데, 뒤를 이은 김정일은 이 혁명 유산을 이어받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거대한 서사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카리스마 권력을 세습, 유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김정일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 표어인 ‘선군정치’가 단지 “군대를 앞세운다”는 의미가 아니라, “군대와 인민은 하나”라는 식의 절대적이고 도덕적인 일체성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한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말해, 물리적인 강제가 없이도 카리스마 권력이 유지되는 것이 ‘극장국가’로서 북한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다만 지은이들은 ‘인민을 제대로 먹일 수 없는 극장국가가 존립할 수 있을지’ 의문을 던진다. 더이상 ‘극장국가’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면, 북한 권력층이 “극장국가의 환상을 무너뜨릴, 새로운 북한혁명을 시작하고자 하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라고도 충고한다. 적극적으로 남한, 미국과의 대화에 나서는 등 체제 변화의 근본적 동력을 모색하고 있는 김정은은, 과연 이들의 충고를 들었던 것일까.





장마당과 선군정치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연구학원(SOAS) 한국학센터 연구교수인 헤이즐 스미스의 <장마당과 선군정치>(창비)는 제목 그대로 ‘선군정치’와 ‘장마당’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깊이 파고든 책이다. 2년 넘게 북한에 체류하는 등 25년 동안 현장과 자료를 모두 섭렵하며 연구해온 지은이의 노력이 배어든, 이 분야 최대의 노작이라 꼽을 수 있다.

지은이는 오늘날 북한은 ‘아래로부터의 시장화’와 ‘위로부터의 핵무장’이 교차하는 나라라고 본다. 냉전 종식으로 체제 유지에 위협을 느낀 김씨 가문 지도부는 ‘핵무장’을 염두에 둔 핵개발 프로그램 등 ‘정권 안보’에 몰두했는데, 그 결과 경제 영역에서 엄청난 실패를 경험했다. 90년대 중반 대기근으로 무려 100만명이 죽었다. 당국의 실패 아래 북한 주민들은 그동안 국가가 허용하지 않았던 영역, 곧 장마당(시장)에서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오늘날 북한의 시장경제가 출현하게 된 배경이다. 북한 정권은 말로는 ‘시장화’를 억압하면서도, “실제로는 ‘식량안보’를 포함한 핵심적인 우선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아래로부터’ 이미 진행된 사실상의 시장화에 의존했다.”

북한 시장경제의 실상을 다룬다는 측면에선 <조선자본주의공화국>, <평양자본주의백과전서>와 비슷하지만, 한 분야에 파고들어온 학자의 저술답게 역사적인 배경과 시장화 과정 등에 대한 깊고 종합적인 분석이 일품이다. 앞으로 일어날 북한의 변화를 가늠해보기 위해, 교과서처럼 옆에 두고 뒤적여볼 만한 책이다. “결국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다름 아닌 2400만 북한 인민”이라며, 북한 인민의 역량에 한결같은 신뢰를 보내는 지은이의 태도에도 공감하게 된다.



지난해 8월 국내 언론들이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을 소개한 뒤 북한에서 보인 반응을 소개한다. 당시 북한의 최고재판소에 해당하는 중앙재판소는 국내 언론 몇 군데를 지목하여, “남한의 ‘괴뢰보수신문’이 ‘반공화국모략도서’인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의 불순한 내용들을 가지고 우리 공화국의 존엄을 엄중히 모독하는 특대형범죄를 감행”했다는 취지의 담화를 발표했다. 그런데, 이 책과 이 책을 소개한 국내 언론을 비난하는 이유가 흥미롭다. ‘자본주의여서는 안되는’ 북한 체제를 ‘자본주의’라고 “악랄하게 헐뜯고 왜곡날조”해서 문제라는 것이다. 아직 북한 당국은 ‘자본주의’라는 말 차제를 용납할 수 없는 듯하다.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장화’를 ‘자본주의화’라고 단정하는 것도 아직 이른 일일 수 있다. 급격한 ‘시장화’에 따른 빈부격차의 지속적인 확대, 뇌물 등 이중경제라는 속성에서 비롯하는 각종 부조리, 북한 당국의 정치적인 억압 등도 풀기 힘든 숙제다.

‘북한의 변화’는 현재진행중이지만, 그것이 어디로 향할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그것은 ‘남한의 변화’도 불러올 것이다.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서로 좀 더 많이 알아야 한다. 그리고 늘 그렇듯 ‘읽는 것’은 ‘아는 것’에 큰 도움을 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63370.html#csidx235b7c7d074bcf3b1b8dae96bcf2c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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