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09

'평화와 통일의 참 스승' 홍근수 목사 영결식.노제 엄수 - 통일뉴스



'평화와 통일의 참 스승' 홍근수 목사 영결식.노제 엄수 - 통일뉴스

'평화와 통일의 참 스승' 홍근수 목사 영결식.노제 엄수각계 600여명 참석, 자주.민주.평화.통일로 부활 기원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승인 2013.10.11 19:36:41






▲ '평화와 통일의 사도 홍근수 목사 통일사회장' 영결식이 11일 향린교회에서 엄수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난 7일 지병으로 별세한 홍근수 목사의 '평화와 통일의 사도 홍근수 목사 통일사회장' 영결식과 노제가 11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서울시 중구 향린교회, 대한문앞에서 각각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고인과 함께 지난 2004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을 창립한 문규현 신부와 6.15남측위원회 명예대표인 김상근 목사, 그리고 조헌정 담임목사와 향린교회 교인 등 각계 6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영결식은 이병일 강남향린교회 담임목사의 인도로 '부활증언예배'의 형식으로 시종 엄숙하게 진행됐으며, 조헌정 향린교회 담임목사의 설교 '하늘뜻펴기'에 이어 김상근 목사, 문규현 신부,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김인경 원불교 경기인천교구장의 추도사가 있었다.

▲ 문규현 신부가 유족인 부인 김영 목사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조헌정 목사는 추도 설교에서 "사도바울의 유언과 같은 고백이 많은 기독교인의 장례예배에 인용되지만 홍목사님의 삶만큼 자신있게 증언할 수 있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며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라는 디모데후서 4장 7~8절을 인용해 고인을 기렸다.

김상근 목사는 추도사에서 고인을 '형', '근수형'이라고 부르며, "우리는 당신을 평화와 통일의 사도로 오래 오래 기억할 것"이라고 그리워했다.

문규현 신부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인을 '오랜 벗이자 동지이며, 형님'인 '사랑하고 존경하는 홍근수 목사님'으로 호칭하고, 고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 '평화와 통일의 참 스승'으로 추모했다.

이창복 상임대표의장은 "지금도 100여회에 걸쳐 진행되는 반미 월례집회에서 또 TV토론에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민족, 민주의 사자후를 토했던 고인의 강렬한 힘은 '선지자'의 그것이었다"고 회고했다.

2시간여 걸쳐 진행된 영결식을 마치고 운구는 명동성당으로 이동한 후 30개의 검은 만장을 뒤로 한채 거세게 부는 바람과 맞서며 을지로를 거쳐 노제장소인 시청앞 덕수궁 대한문으로 이동했다.

▲ 이날 덕수궁 대한문앞에서 노제가 엄수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박래군 인권중심사랑 소장이 진행한 대한문앞 노제에서는 김경호 들꽃향린교회 담임목사와 양성윤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등의 추도사와 시민들의 헌화 등이 이어졌다.

김경호 목사는 이 자리에서 "홍근수 목사님이 한국에 처음 도착하신 1987년 첫 일성이 '나는 이땅에 반공을 부수러 왔다'"였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그 뒤로 홍목사님은 교회에서, 거리에서 한결같이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미국의 실세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의 분단을 꽃놀이패로 활용하고 있는 모든 실상을 낱낱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고 회고했다.

박래군 소장은 "사나운 바람이 마치 오늘 이 땅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며, "생전에 홍목사님을 본의 아니게 많이 괴롭혀 드렸는데, 이렇게 보내드리려니 면목이 없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박석운 공동대표는 목사님, 우리 목사님, 홍근수 목사님을 부르다 끝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박 공동대표는 홍 목사가 1991년 KBS심야토론 당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설파하다 옥살이를 한 일화를 회고하고 "홍목사님은 이 땅의 민주주의와 평화 통일, 그리고 민중 생존권 옹호를 위한 다양한 활동에 헌신하면서 재야의 큰 어른으로 우뚝 섰다"고 말했다.

▲ 각계 시민들이 고 홍근수 목사의 영전에 헌화하고 고인을 기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시간여 노제를 끝낸 오후 1시경 참석자들은 운구와 함께 장지인 마석 모란공원으로 향했다.

▲ 운구행렬의 뒤를 '평화통일 세상에서 부활하소서' 등 30여개의 만장이 뒤따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명동성당을 출발해 을지로를 거쳐 노제장소인 대한문앞으로 이동하는 운구행렬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운구행렬에 각계 시민들이 참가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대한문앞 노제가 엄수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고인에 대한 묵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조헌정 향린교회 담임목사의 '하늘뜻 펴기' 설교

세계교회협의회가 주관하는 평화열차 행사를 위해 5일 출국했다가 갑작스런 부음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한 조헌정 향린교회 담임목사는 '하늘뜻펴기'라는 설교에서 "고인이 염원하던 평화열차에 영혼으로 탑승하기 위해 고인의 16년, 저의 10년 목회의 꿈이 담겨있는 향린교회에서 함께 출발하자고 저를 부르신 것"이라며 "현재 모스크바에 정차해 있는 평화열차에 다시 올라 탈때는 홍근수 목사님과 함께 동행하겠다"고 말했다.

조헌정 목사는 지난 1991년 2월 KBS 심야토론에 나가 "남한이 유럽처럼 공산당을 허락했을 때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것", "남쪽 사람 대부분이 북쪽 사람들의 이마에 빨간 뿔이 하나씩 있다고 믿었을 때 그들 또한 사랑하고 눈물 흘리고 정을 나누는 휴머니스트"라고 했던 당시 홍목사의 발언이 남한 사회에 준 충격은 대단했다고 회고했다.

이후에도 고인은 주위의 자제 권유를 물리치고, 나라의 주권을 미국에 팔아넘기지 못해 안달하는 집권자를 비판하고 천하 제일의 강대국인 미국에 맞서 '핵보다 강한 무기인 인민의 단결된 힘'을 강조하며 독자성을 지키려는 북을 옹호했으며, 분단의 비극을 조장하는 미국을 향한 서슬퍼런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고 조 목사는 말했다.

조 목사는 고인의 마지막 저서 제목이 '양키 고 홈'이라는 걸 상기시키고 이렇듯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설교와 행동만으로도 고인은 500세 이상의 삶을 누린 분이라고 추모했다.

이와 함께 고인의 삶에서 20년전 문규현 신부와 함께 평통사를 만든 일을 빼놓을 수 없다고 조목사는 언급했다.

조목사는 "도대체 전시작전통제권을 계속 맡아 달라는 노예와 같은 지도자가 다스리는 나라가 이 세상 어디에 있느냐"고 오늘의 현실을 되묻고 "만약 평통사라는 조직마저 없었다면 세계인들은 우리를 멸시와 조롱의 눈초리로 계속 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조목사는 이처럼 참을 수 없는 민족적 모멸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민족 자주, 민중의 깨어남 밖에 없다며 이같은 자질은 자유와 해방을 중시하는 신앙에서 나오는데 홍목사님은 성서의 출애급 사건과 갈릴리 예수에서 찾고 이를 끈질기게 구현해 오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조목사는 또 그 육신은 오늘 땅에 묻히지만 그 영혼은 자유와 해방의 평화열차를 타고 모스크바에서 이르쿠츠크, 북경에서 그리고 담을 헐고 신의주와 평양을 통과하여 서울로 부산으로 향할 것이라고 기원했다.

조목사는 고인의 첫번째 책 '예수와 정치'의 한 구절을 인용해 고인의 평소 신념과 신앙세계의 일단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정치는 이 세상을 사는 인간을 위해 약속되고 주어지는 것이지 외세나 죽은 인간을 위해 약속되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복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정치의 이상의 빛에서 인간의 정치를 보고 비판하고 필요하면 항거하고 혁명하는 사명이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것은 국가나 정치권력을 잡은 자들에게 대하여 교회가 가지는 예언자적 사명이라 할 것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정치가 하나님의 정치에 가까이 실현되는 것이다. 여기에 기독교인의 정치적 사명이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주기도문의 구절이 의미하는 바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세계평화의 위협은 물론 한국사회의 모든 악과 모순, 즉 억압과 착취, 인권유린과 불평등, 군사주의와 군부독재등의 원인과 온상이 되고 있는 남북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성취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인의 사명이요, 한국교회의 사명일 것이다. 여러가지 한국적 상황, 남북을 망라하여 이 상황을 고려할 때 현 집권자들이 통일을 신념으로 원하지도 않지만, 통일을 성취할 능력 또한 없다. 오직 통일을 실현할 의사와 능력을 가진 통일의 주체는 민중이다. 교회는 이 민중들과 더불어 민족화해와 통일의 당위성과 방향을 제시하고 이의 성취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


한편, 고인은 오늘의 향린교회가 갖게 된 목회의 독자성이라는 기틀을 만들었다고 조목사는 회고했다.

조목사는 "목사.장로 임기제, 국악예배 도입, 목회운영위원회 신설 등은 고인이 아니고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교회개혁의 금자탑"이라고 평하고 큰 교회 건물외에 이렇다하게 내세울 게 없는 한국 교회의 현실에서 "이달 말 부산에서 열릴 세계교회협의회 행사에 한국 교회가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내용이 향린교회의 국악예배"라며, "전통가락에 맞춘 노래와 음성으로 함께 고백하는 것은 내용과 형식에서도 가히 세계에 자랑할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목사는 끝으로 사도바울의 유언과 같은 고백이 많은 기독교인의 장례예배에 인용되지만 홍목사님의 삶만큼 자신있게 증언할 수 있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며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라는 디모데후서 4장 7~8절을 인용해 고인을 기렸다.



김상근 목사 추도사

김상근 목사는 고인을 '형, 형, 근수형'이라고 애달프게 불렀다.

지난 7월 정전협정 60주년 어느 행사에서 평화협정체결을 반드시 체결해 부끄러운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고 피토하며 외칠 당신인데, 그리 오래도 누워만 계시더니 우리곁은 이렇게 홀연히 떠나십니다.

당신은 마구 뛰는 사람이었습니다. 거기가 어디든 당장 달려갔습니다. 결코 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에둘러 흘리지도 않았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분명했습니다. 시대의 한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곡선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그냥 직선이었습니다. 당신의 말은 길지 않았습니다. 짧았습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게 정곡이었습니다. 당신은 늘 넓었고 깊었습니다.

박정희기념관설립반대운동은 그저 반대운동이 아니라 민족의 얼을 바로 세우자는 거사였습니다.

당신의 걸음은 넓고 높았습니다. 매향리국제폭격장폐쇄 투쟁, 불평등한소파(SOFA)개정 투쟁, 효순.미선이 죽음 사회화 투쟁,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투쟁, 그것들은 반미투쟁이 아니었습니다. 해꼬지의 역사를 거부하는 거사였습니다. 세계사를 바로 세우는 거사였습니다.

당신의 가슴은 슬펐습니다. 당신이 그리도 사랑했던 민중의 선택이 엇나갈 때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함성을 듣던 예수의 가슴처럼 당신의 가슴은 슬펐습니다.

그건 예수의 슬픔이었고 그래서 당신은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향린교회에 그리도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한국 그리스도 장로교에 그리도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한국 그리스도 교회협의회에 그리도 뜨거웠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뜨거움이었습니다.

지난해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홀랑 까먹고, 총칼로 권력을 찬탈하고 여덟을 죽여 권력을 이어간 박정희의 딸이 너희보다 낳다는 국민의 판정을 받고 말았을 때 병석에 누워있던 당신은 얼마나 답답해하고 터질 것 같고 고통스러웠을까?

형 미안하외다. 정말 미안하외다. 그러나 형, 쉼없는 눈, 비, 바람속에서 잡초들은 쓰러지고 눕혀지고 맙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패잔이라 해서는 안되지 않습니까. 다시 일어날 것이기에. 아니 지금 벌써 일어나고 있기에 말입니다.

당신이 시작한 '교회 쪼개어 나눠 세우기'는 벌써 손자들을 보고 있기에 말입니다. 당신의 동지들은 벌써 유럽대륙 끝자락에서 한반도 평화열차에 올랐기에 말입니다. 우리들은 어느덧 민족.민주.민중의 큰 길에 나서고 있기에 말입니다. 이 믿음이 있기에 당신의 얼굴엔 항상 미소가 있었던 것 아닙니까.

험하고 복장터지는 독재의 법정에서도 당신은 유머와 해학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우리는 당신을 평화와 통일의 사도라고 합니다. 오래 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문규현 신부 추도사

문규현 신부는 고인을 오랜 벗이고 동지이며, 형님이라고 불렀다. 또 사랑하고 존경하는 홍근수 목사님이라고 불렀다. 추도사를 읽어 내려가는 음성은 침통했고 간간히 울먹였다.

비록 직접 활동하지 못했어도 살아계실 동안에는 늘 저와 동행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제까지라도 저희와 함께 계실줄 알았는데 이렇듯 가시니 마음의 절반이 사라지는 듯, 영혼은 통채로 흔들리는 듯, 황망하고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민족, 민주, 통일, 평화 가치를 마다하지 않고 앞서가신 형님,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를 함께 설립해 대중적인 통일운동의 지평을 열고자 헌신하셨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창립때에도 기꺼이 저와 함께 후원회장을 맡아 진보의 길을 활짝 열고 가시고자 했던 당신이었습니다.

분단조국에서 사회에서 교회에서도 분단이데올로기가 모든 것을 단죄하고 삼키는 어려운 현실에서도 목사님은 한번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 막다르고 험난한 길에서 스스로 희생 제물이 되어 통일과 평화, 진보의 마음, 이름으로 새 역사를 열어주고 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남들이 부담스러워 피해가려는 일들도 다 목사님 차지였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감옥에 갇혀계실 때 조차도 진정한 자유인이었습니다. 무겁고 버거운 사연도 목사님앞에서는 새털처럼 가벼워졌습니다.

"괜찮아, 이건 어때". 제가 그리듯던 말이었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이 함석헌 선생의 영전에 바쳤던 추모글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문익환 목사님 자신에 대한 것이 되었고 이제는 홍근수 목사님에게 드려도 좋을 추도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중 일부를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예수의 부활이 로마제국을 뒤엎은 갈릴리 민중의 부활이었듯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부활은 분단의 비극, 분단의 치욕을 거부하는 민족의 하나됨입니다. 당신이 그렇게도 사랑하시던 이 겨레가, 이 씨알들이 무덤을 불러내면서 걸어나가게 민주, 자주, 통일을 향해서. "

목사님, 사랑하는 형님, 목사님을 떠나보내는 이 시간, 이 나라는 역사의 시간을 거꾸로 흘러가는 듯 정말 암담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 그리스도의 정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온전히 봉헌하고 온전히 희생했던 목사님의 노고가 허망하고 부질없는 것 처럼 낱낱히 흩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켜본 목사님께서 자리에 누워계시던 안타깝고 아쉬운 지난 얼마간은 빈 자리도 아니었고 빈 시간도 아니었습니다. 제 스스로 힘과 지혜를 튼튼히 채워가도록 내어주신 또 다른 사랑과 가르침의 시간음을, 영적으로 성장하는 법을 배워가는 시간이었음을 이제사 깨닫습니다.

함께 했던 그 모든 시간과 우정, 정말 고맙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예수의 제자들에게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삶임을 온 생애로 알려주신 당신에게 다시한번 뜨거운 동료애로, 동지애로 하직인사를 올립니다.

목사님의 육신은 비록 저희 곁을 떠나지만 그 고귀한 가르침과 영혼은 여기 남아서 민주와 자주, 민중 평화통일의 완성을 향한 위대한 출애급의 여정을 저희와 함께 계속 가시리라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 '평화와 통일의 참 스승'이신 홍근수 목사님 편하게 가소서.

늘 자주, 민주, 평화, 통일의 그 길에 부활하시고 영원히 안식을 얻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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