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3

백승종, <우리에게 조광조는 누구인가>



백승종
14 September at 06:57


세 가지 교훈

조광조의 개혁정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그와 그의 시대가 21세기 한국사회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여기서는 세 가지만 간단히 정리해본다.

첫째, <<여씨향약>>의 보급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형세가 악화되어 조광조가 실각할 때의 풍경이 문득 떠오른다. 그때 수백을 헤아리는 ‘향약인’이 몰려와, 개혁파를 두둔하였다. 그들은 형리(刑吏)가 조광조 등에게 장형(杖刑)을 집행하지 못하게 물리적으로 방해하기도 하였다.


도대체 이 무명의 선비와 백성들은 왜, 일신의 위태로움을 무릅쓰고 조광조를 끝까지 놓지 못했던 것일까. 조광조와 그의 동료들이 ‘향약인’에게 새로운 사회질서를 선사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바로 참된 지방자치였고, 여론에 의한 직접민주주의였다. 오늘날 우리는 겉으로만 지방자치제를 시행할 뿐이다.

지금의 자치제는 중앙정부의 권력과 재정적 도움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기생적인 상태이다. 많은 시민들은 지방의회의 독립성과 자발성에 대해 회의한다. 조광조의 향약운동은 성리학적 도덕에 기초하여 향촌사회에 새로운 활력과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로서도 500년 전의 향약운동을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둘째, 지식 위주의 과거제도에서 벗어나, 조광조 등이 ‘현량과’라는 새로운 관리 채용 방식을 시험한 것도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과거제도는 폐지된 지 어언 100년도 지났으나, 인재를 선발하는 방법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바뀐 것이 없는 실정이다. 언제 어디서나 오직 시험에 의지해서 인재를 뽑고 있다.

세상사는 과거와는 비할 수 없이 복잡다단해졌다. 인재 상에도 큰 변화가 왔다.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더 이상 단순한 필기시험으로 인재를 선발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우리도 현량과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면 어떠할까. 인재를 기르는 방법이나 선발하는 방법에 전향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끝으로, 조광조가 끝까지 목숨을 걸었던 ‘도덕정치’도 감동적이었다. 그의 도덕심은 닥쳐오는 억울한 죽음마저도 피하지 않게 하였다. 조광조는 성리학의 순교자였고, 그래서 길이 후세의 모범이 되었다.

5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세상은 그때와 같지 않다. 도덕이란 말만 들어도 시민들은 돌아서서 비웃을 지경이다. 그러나 도덕이 실종된 정치란 무엇인가. 결국 소수 기득권층이 모든 것을 독점하는 불의한 세상으로 가자는 것인가. 우리는 정치와 도덕은 그 본령에 있어 불가분의 관계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 한국사회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세상을 분열시켜도 그만이라는 극단적인 편 가르기가 횡행한다. 원칙을 저버린 극단적인 대립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다. 조광조와 그의 동료들이 그랬듯, 공익을 우선으로 삼으면 안 되겠는지 묻고 싶다. 파당적 이익을 앞세우느라 사욕에 치우친 우리의 오늘은 과연 떳떳한 것일까 의심스럽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일찍이 갈파했다. 현대의 학교에서는 지배계급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다. 오직 지배집단의 가치와 문화만을 일반문화로 여겨 모든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상징적 폭력(symbolic violence)’이 자행되고 있다.

그리하여 ‘문화자본’이라는 것도 실상은 사회적 불평등의 구조를 재생산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현대의 교육은 교묘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소수 특권층이 대를 이어 ‘문화자본’을 독점적으로 상속하게 돕는 수단이 된 것이다. 이는 경제자본의 상속보다 더 악랄한 상속이요, 대다수 시민을 좌절로 이끄는 허무한 일이다.

우리는 뚜렷이 기억한다. 조광조는 경연석상에서 경상도 노비 여형의 학문적 성취를 칭찬하며 마치 자기 자신의 일처럼 좋아하였다. 인간의 성취란 세대 간의 세습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에 의하여 결정될 때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공자가 <<논어>>의 첫머리에서 하필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를 외친 까닭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깊이 헤아려보았으면 한다. 그가 추구한 군자의 길은 개인적 노력과 성찰의 결과였지, 부자나 귀족의 아들에게 저절로 주어지는 세습이 결코 아니었다. 교육도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출처: 백승종, <우리에게 조광조는 누구인가>(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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