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1

알라딘: 이즈쓰 도시히코 의식과 본질

알라딘: 이즈쓰 도시히코






이즈쓰 도시히코(井筒俊彦)

1914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게이오대학에서 니시와키 준자부로를 사사했고, 언어학자로서 출발해 그리스 신비사상사, 러시아 문학 등을 강의하는 한편, 『아라비아 사상사』, 『신비철학』, 『아라비아어 입문』 등 초기 대표작을 간행했다.

1949년부터 시작된 연속 강의 「언어학 개론」을 바탕으로 1956년 『언어와 주술』(영문 저작)을 발표했고, 이 책 덕분에 로만 야콥슨의 추천을 받아 록펠러재단 펠로로서

1959년부터 중근동, 구미에서 연구 생활을 하였다. 1959년 코란의 윤리적 용어 구조를 밝힌 『의미의 구조』(영문)를 발행했다. 1960년대부터 맥길대학과 이란 왕립철학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연구와 강연, 집필 활동에 종사했으며, 『코란에서의 신과 인간』, 『이슬람 신학에서의 믿음의 구조』, 『수피즘과 노장사상』 등 영문 저작을 정력적으로 발표했다.

 1967~82년에 거의 매년 스위스 에라노스 회의에서 노장사상과 선 · 유교 등 동양철학에 대해 강연했으며, 일본에 귀국한 뒤로 해외에서 오랫동안 연구한 성과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철학을 일본어로 저술하기로 결심하고 『의식과 본질』, 『의미의 깊이』, 『코스모스와 안티코스모스』, 『초월의 언어』 등 대표작을 발표했다. 1993년 자택에서 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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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과 본질
이즈쓰 도시히코
(지은이),박석 (옮긴이)위즈덤하우스2013-04-08원제 : 意識と本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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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반양장본
399쪽
148*210mm (A5)
510g-


책소개
인류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등 나와 내 주변을 둘러싼 존재에 대한 논제를 다양한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연구해왔다. 이 질문을 가장 심도 깊게 연구한 학문이 철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양철학은, 그토록 오랫동안 인류의 가장 직접적인 질문을 연구한 학문임에도 아직 전체적인 흐름도, 통일성도 없이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워낙 동양철학의 뿌리가 깊고 방대한 탓에 감히 하나로 엮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동양철학에 체계적인 흐름이 없다는 것은 간과할 일이 아니다. 동양철학을 삶의 뿌리로 두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것이 ‘존재론적 위기’가 될 수 있다.

<의식과 본질>의 저자인 이즈쓰 도시히코는 불교·선불교·노장사상·공맹사상·신유학·힌두교·탄트라·이슬람·카발라 등 동양철학에 속해 있는 갖가지 종교와 민족의 수많은 사상의식을 ‘본질’이라는 서양철학의 키워드를 빌려 동양철학을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을 제시한다. 이 책은 동양의 수많은 사상과 깨달음을 학문적으로 재배치하려는 첫 번째 움직임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인류의 다양한 사상적·학문적 연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동양철학을 주체적·실존적으로 이해하는 의미 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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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옮긴이의 말

제1장 본질에 대한 동서양의 다양한 관점
제2장 개체적·구체적 실존, 보편적·추상적 본질
제3장 본질과 존재, 일반화와 개체성
제4장 말라르메와 송대 신유학의 본질론
제5장 신을 위해 본질론을 부정한 이슬람의 원자론
제6장 신이 없어도 본질을 부정한 선종
제7장 선은 고요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다이내믹하다?187
제8장 본질론으로 보는 샤먼과 신비가의 이마주
제9장 《주역》의 원형 이마주, 무의식의 구조
제10장 불교의 만다라와 유대교의 세피로트
제11장 신의 내부에서 펼쳐지는 세피로트 만다라
제12장 이데아론·정명론·보편 본질 실재론

책을 마치며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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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52 본질이 실재하지 않아도, 본질이라는 존재응고점이 없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에는 또 그것 나름대로의 실재성이 있다. 본질은 없지만 사물은 있는 것이다. 본질의 실재성을 철두철미하게 부정하면서, 경험 세계에 대해서는 이른바 허무주의가 아니라 분절된 존재에 꿈이나 환상 같은 것으로는 결론 내릴 수 없는 실재성을 인정하는 것은 동... 더보기
P. 67 개념적 본질의 세계는 곧 죽음의 세계다. 싱싱하게 살아서 약동하는 생명은 거기에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 앞에 있는 사물은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자신의 실재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 살아 있는 사물을 살아 있는 그대로 잡을 수 있으려면 자연스럽고 소박한 실존적 감동을 통해 ‘깊게 마음에서 느끼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
P. 103 꽃이라는 이름은 본래는 실재하지 않는 꽃의 본질을 망상적으로 불러일으킨다. 허공에 불러일으킨 그 허구의 본질을 부정론자, 예를 들어 불교사상가는 외적 실재에 근거를 지니지 않는 것으로 여겨 즉시 떨쳐버린다. 반대로 긍정론자, 예를 들어 니야야, 바이세시카 학파에게 꽃이라는 말은 실재하는 꽃의 실재하는 본질을 지시하는 것이다.
P. 126 정좌靜坐와 달리 궁리窮理는 현저하게 존재론적인 것을 제1의 특징으로 삼는다. 모든 존재자의 깊은 곳에는 본질이 숨어 있다는 확신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확신이 없다면 궁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것이 유교가 선종과 전혀 다른 점이다.
P. 378 동양철학에서 인식이란 의식과 존재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뒤얽힘이다. 그리고 의식과 존재의 이 뒤얽힘의 구조를 추구해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해도 본질의 실재성의 문제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실재성을 긍정하든지 부정하든지 간에.



저자 및 역자소개
이즈쓰 도시히코 (井筒俊彦)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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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게이오대학에서 니시와키 준자부로를 사사했고, 언어학자로서 출발해 그리스 신비사상사, 러시아 문학 등을 강의하는 한편, 『아라비아 사상사』, 『신비철학』, 『아라비아어 입문』 등 초기 대표작을 간행했다. 1949년부터 시작된 연속 강의 「언어학 개론」을 바탕으로 1956년 『언어와 주술』(영문 저작)을 발표했고, 이 책 덕분에 로만 야콥슨의 추천을 받아 록펠러재단 펠로로서 1959년부터 중근동, 구미에서 연구 생활을 하였다. 1959년 코란의 윤리적 용어 구조를 밝힌 『의미의 구조』(영문)를 발행했다. ... 더보기


최근작 : <이슬람 문화>,<의식과 본질>,<이슬람> … 총 49종 (모두보기)

박석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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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상명대학교 중국어권지역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인문학자인 동시에 명상가로서 명상의 사회화, 사회의 명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인문학, 동서양을 꿰뚫다』 『대교약졸』 『명상 길라잡이』 『명상 체험여행』 『송대의 신유학자들은 문학을 어떻게 보았는가』 『하루 5분의 멈춤』 등이 있고, 역서로는 『한산시』 『의식과 본질』 등이 있다.



최근작 : <참선 잘하그래이>,<인문학, 동서양을 꿰뚫다>,<하루 5분의 멈춤> … 총 2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자크 데리다가 인정한 세계적 석학, 이즈쓰 도시히코의 대표작
이즈쓰 도시히코는 국내에서는 낯선 인물이지만,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거장’이라는 칭호로 존경을 표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학이다. 그는 전 세계 종교철학의 경전과 고전의 대표 언어인 희랍어·라틴어·히브리어·산스크리트어·한문 등을 자유로이 구사했으며 아랍어·영어·불어·독어·러시아어 등 20여 개 이상의 외국어를 섭렵한 일본 역사상 전후무후한 천재였다. 주 전공은 이슬람 철학과 이슬람 신비주의로, 이란의 왕립 이슬람사상연구소의 교수로 있었으며, 일본에서 최초로 《코란》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그리스 신비주의, 근대 러시아 문학에 관한 저작도 많이 남겼으며 만년에는 유식불교·선불교·밀교·노장사상·주자학·카발라·중세 스콜라 철학까지 관심을 확장시켰다고 한다. 그가 지금까지 이룬 학문적 영역은 누구도 쉽게 따라잡기 어렵다.
《의식과 본질》은 이즈쓰 도시히코의 대표작으로, 일본에서 30년간 꾸준히 읽히고 있는 베스트셀러이며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자의 탁월한 외국어 실력과 방대한 학문적 관심과 지식을 바탕으로 수십 년 동안 동서양 사상계를 분석, 한 권에 통합·정리·집약한 작품이다. 그가 이 책에서 언급하는 동양철학의 범주는 불교·선불교·노장사상·공맹사상·신유학·힌두교·탄트라·이슬람·카발라 등으로,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고금의 사상과 인물을 한 권 안에 모두 담아냈다.

‘본질’이라는 이름 아래 만난 수많은 사상적 거인들
저자는 ‘본질’을 키워드로 동양사상을 한눈에 훑고 있지만, 사실 본질은 중세 기독교 스콜라 철학에서 나온 개념으로 동양철학에서 익숙한 키워드는 아니다. 독자들은 서양철학 특유의 개념을 가져다 동양철학이라는 이름 아래 나열하는 그의 글을 보고 의아해할 수도 있다. 게다가 곳곳에 등장하는 서양철학자들과 그들의 문제의식이 동양철학과 혼합되어 있는 것을 보고 혼란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낯선 시도가 처음에는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는 저자의 치밀한 의도 아래 철저하게 비교·분석한 결과다.
예를 들어 저자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이데아가 사물의 변하지 않는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운을 떼다가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어버이는 어버이다워야 한다”는 공자와 맹자의 정명론正名論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곧 바이세시카의 명실론名實論이 주장한 “이름은 그저 개념의 세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이라는 독특한 주장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이데아론·정명론·명실론이 본질을 설명하는 방식은 달라도 같은 사상체계 아래에 있음을 분명히 하는 작업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구토》에서 본질을 어떻게 설명했는지를 중국의 노자의 유명有名과 무명無名 논리를 끌어와 거론하고, 또 공통적으로 본질의 허망함을 인정한 대승불교의 공空사상, 샹카라 베단타 철학의 불이론不二論이 어떤 차이점이 있었는지 비교·분석한다. 이슬람 철학과 중국의 성리학·선종이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설명하고, 주역의 팔괘와 티베트 밀교의 만다라, 유대교 신비주의 카발라에 나오는 생명나무 세피로트가 상징하는 유사성을 설명한다. 그의 이런 시공간을 넘어선 통합적 사고가 철학에서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하이쿠 시인 바쇼와 독일의 시인 릴케의 시세계가 어떠한 관점에서 본질을 이야기했는지를 설명하고, 중국 초나라의 애국시인이자 샤먼인 굴원의 무속적 정신세계와 장자의 철학적 우화의 세계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비교·분석한다. 또한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의 정신세계와 중국 송나라의 주자학자들이 주장했던 거경궁리居敬窮理의 세계가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까지 이 한 권 안에 집약해놓았다.
이 밖에도 기독교 스콜라 철학자 둔스 스코투스, 에도 시대 일본의 사상가 노리나가, 유대교 신비주의 사상가 이사크 루리아, 신화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질베르 뒤랑, 이슬람 사상가 이븐 알 아라비, 원자론의 집대성자 무하마드 가잘리, 아리스토텔레스 사상가인 아베로에스, 그와 비교되는 이슬람 사상가 스후라와르디, 주돈이·정이천·주자 등 다양한 학자들이 사상적으로 연계되어 나오고 있다.
전 세계의 사상·종교·철학의 깨달음을 이렇게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새로운 사상체계를 정립하는 학문적 업적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독자들은 《의식과 본질》 한 권만으로 동양사상을 포함한 인류의 정신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수많은 사상적 거인들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세상은 과연 진짜일까?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단순히 동양의 종교·사상을 학문적으로 정리한 것이 아닌, 저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깨달음과 명상에 관한 가르침을 이야기하는 내용이 곳곳에 나타난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 책은 철학서인 동시에 명상서라 할 수 있다. 저자 이즈쓰 도시히코는 학자인 동시에 선수행자였으며, 그의 선불교에 대한 언급들을 보면 단순한 이론이 아닌 실제적 체험이 통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실천에서 나온 깨달음을 담고 있기에, 이 책에 담긴 글이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독자들은 저자 이즈쓰 도시히코의 실천적 깨달음을 통해, 지금껏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 사물들이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본질은 없지만 우리 눈에 비칠 뿐인지 진지하게 성찰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또한 사물과 현상을 보는 인식이 바뀌어 가치관과 인생관에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는 단계에 이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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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보기‘( 실상, 진리, 선불교의 깨달음)에 대한 분석적 고찰. 앵무새 흉내를 내는 여타 대부분의 책들과는 비교되지않는 군계일학적 저술! 실험 데이터적 근거가 없는 점이 아쉬우나, 아직은 어쩔 수 없는 한계일 듯.
그냥 2016-08-31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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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과 본질




이 책에서 말하는 의식과 본질에 대한 접근은 너무 어렵다. 오랜 세월 인류는 이런 부분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많은 철학을 발전시켰다. 어쩌면 인간 본연에 관해 파고들었기에 인류가 지금껏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여기서 말하는 의식과 본질은 눈으로 보이거나 만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정신과 육체의 이어짐을 말하는 것이기에 이 부분에 대해 충분한 고민이 없는 일반인이 접근하기에는 너무 버겁다. 물론 오랜 시간을 두고 고민한다면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충분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용어이다.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용어다 보니까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문장을 읽으면서도 알 듯 말듯하게 감은 오는데 명확하게 한번에 이해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저자가 의식과 본질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온 세상의 모든 철학적 개념들을 더불어 설명한다. 중국, 이슬람, 서양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사람들이 말하는 철학적 개념들이 등장한다.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층의식과 심층의식에 관한 개념 역시 철학적 소양이 부족해서인지 명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또한 문화에 따라 본질을 이해하는 틀이 달라진다는 저자의 말은 더욱 나를 복잡하게 만든다. 과연 그 실체가 무엇일까? 하나로 확고부동하지 않고 주관적인 흐름이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이 개념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된다. 수많은 철학자들의 개념들이 등장하지만 오롯이 알기란 좀 더 내공을 쌓아야 할듯하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다각적인 방법과 접근으로 의식과 본질을 설명하는 저자의 생각의 끝이 궁금해진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보니까 점점 더 조바심이 생긴다.앞으로 이 책을 여러 번 읽는다면 그 의미의 일부를 깨우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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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식님 2013-04-30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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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과 본질 [意識と本質 : 精神的東洋を索めて(1983)] - 이즈쓰 도시히코



1. TV 프로그램들. 특히, 프로야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저 화면에 등장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저 모습이 프로가 낼 수 있는 베스트가 아닐까?' 라고 말이다. 즉, TV를 통해 우리들에게 전달되는 화면은 엄청난 내공이 쌓인 결과물인 것이다.



그런데 이 <의식과 본질>을 읽으면서 TV의 결과물조차도 책에 비하면 미미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의식과 본질>은 뭐랄까... 시각적 외. 모든 감각의 내공. 특히, 내면의 고뇌가 누적된 결과물이랄까?



동양과 서양의 종교와 철학의 개념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책을 통해 설명하고자 하는 본질의 3가지 분류에 따라서 하나의 범주로 묶어내거나 해체하는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음...앞으로 이어나갈 글이 옳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를 적어보기로 한다.



2.

아무리 믿을 수 없다 하더라도 모든 불가능을 배제하고도 남았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실이다.

- 트위터 탐정 설록수, 189p-



토실여왕님의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이 문장은 <의식과 본질>에 따르면 세 번째 본질긍정론에 해당함을 알 수 있었다. 모든 불가능함을 제거하고 남은 것이 진실이라는 의미는 곧, 끊임없이 질문을 하면서 불가능을 제거하고 진실을 찾아가는 소크라테스의 문답법과 같은 맥락이고, 그것이 바로 본질이 표층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는 세 번째 본질론에 해당했다.



3. 나는 항상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생각했다. 책의 개념에 따르면 나는 마히야(보편적 본질의 세계, 플라톤의 이데아)를 버리고 후위야(즉물적이며 경험적인 리얼리티를 표방)로 간 릴케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나 역시 릴케처럼 이 세상의 본질의 유무에는 상관없이 내가 중심이 되어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바로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라고 봤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어쩌면 오만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알고자 하는 실존조차도. 실존 자체가 하나의 본질로서 작용함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결국, 내가 실존의 영역에서 보려 했던 것은. 즉, 무의식적인 문화적 학습을 통하여 얻어진 관점이라는 큰 틀로 봤을 때, 첫번째 본질긍정론을 따르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의식과 본질>의 첫 번째 본질론은 표층의식에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심층의식에서 깊게 사물을 보는 것인데, 그러한 바라봄에 있어서 모든 것을 무로 만드는 단계가 선행하고, 그 뒤에 순간적인 번뜩임이 등장하여 존재가 분절화하여 등장한다고 한다. 또한 그러한 번뜩임이 존재하는 문학이 대체적으로 시 문학에 많이 분포한다. 그래서 시에 등장하는 언어는 언어 그 자체가 사실적이지 않고 상징적인 것이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이한 관점도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4. 참고로 두 번째 본질긍정론은 첫번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심층의식에서 본질을 찾는 것인데, 여기서는 샤머니즘처럼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원형의 본질이 있고, 그러한 본질은 표층의식과 심층의식의 가운데에 있는 M의 영역에서 이마주(상징적 이미지화)된 것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다고 말한다.



이래의 글은 갈림길을 읽고 적은 '사실'과 '진실'에 관한 생각이다.



소설 내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결과에 의하면 '사실'은 인간이 느끼는 개인적인 관념이다. 헌데 그것은 '진실'은 아니다. '진실'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아주 커다란 개념이다. <갈림길>에 의하면 '진실'이란 신이 만들어놓은 것과 같다고 여겨진다. 그에 비하면 '사실'은 아주 작은 것을 다룬다. 그리고 '사실'이라는 것이 '진실'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실'을 '진실'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평생 노력하는 존재라고 이해해도 될 것 같다.



여기서 '사실'이란 표층에서 부유하는 인간의 판단이고, '진실'이란 아마도 두 번째 본질긍정론의 본질과 유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에 가깝게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은 본질을 찾고자 노력하는 인간의 한 모습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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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예 2013-04-2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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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件中1 - 10件目のレビューを表示
2019年7月26日
自戒を込めて、断言します。
哲学の世界にあまり詳しくない方は、本書を読むと、おそらく挫折感を味わいます。

文体はさほど難しくないですが、古今東西の哲学、宗教、文芸などを含め、縦横無尽に、いや「共時的」に井筒ワールドが展開されています。
しかし、ひとつひとつが深すぎて、生半可では、読みこなせません。

とはいえ、サルトルの「嘔吐」体験や、本居宣長や芭蕉の句など、断片的にではありますが、感性的に理解できる箇所も少なくありません。

井筒ワールドのあらましを知りたければ、まずは、若松英輔の「井筒俊彦 叡智の哲学」(慶応大学出版会)からはいるのがよろしいかと思います。
「意識と本質」についても1章がさかれ、そこで若松氏は、井筒にとっての「意識」とは、自分の外へ滑り出すこと(「脱自」)であり、「外」で「意識」を待ち構えているのは、「本質」である。脱自と同時に「神充」が起こる。と紹介している。これは観念論ではなく、井筒の個人的体験にも根ざしているとか。

「意識と本質」は、1回読んだ(眺めた?)だけでは、私のような浅学の徒には理解できなかったため。現在は、★4つだが、何年か後には、★5つになっていることを期待し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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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年6月14日
イスラーム哲学全般に関する記述は本質を簡潔に表しており、とても勉強になりました。そして、禅についての表記が多いのですが、ここもとても素晴らしかった。サルトルの嘔吐から、禅における物事の本質を演繹していく内容は白眉といえるでしょう。禅の入門書はいろいろありますが、公案などの説明を読んで理解はしても、納得まで至らないものが多かったですが、禅の本質について、著者の説明を読んで初めて納得できたと思います。目を開いてくれた大切な一冊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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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年3月25日
本の表題に違わない東洋哲学思想全般の明晰な論述内容。ことに不立文字といわれる禅の無心をこれほど分かり易く言語で分析解説してくれる本はないと思われ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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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年4月25日
読んだけれども、眺めただけに終わってしまったかと思われる。いずれ再読し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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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年6月8日
かなり前になりますが毎日新聞の、確か「わたしの3冊」という文庫本紹介コーナーで遠藤周作さんがこの本を取り上げていました。慶応の学生だった遠藤さんは一度も井筒先生の授業に出席したことがなく、後になってきちんと授業に出ていれば良かったと後悔した、そんな話だったように記憶しています(遠藤さんは井筒先生と対談もしておられたと思います)。ちなみに書評の中で遠藤さんはこの本を「小説家を志す人には必ず読んでほしい本」と言っていたように思います(記憶違いがあったらスミマセ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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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年7月26日
 東洋思想を深層意識レベルで深く読み解いた上で、現代人向けに体系化した解説書がここにあったのかと、一読して感嘆しました。噂に違わぬ名著でした。

 東洋思想は、深層意識で観想しながら構築されたものが多いためか、表層意識のみに頼って日常を送る一般現代人には、難解に感じやすく、納得できる解説書は、ありそうでなかなか見あたりません。

 しかし、著者は幼少期から禅に親しんでおられたとのことで、おそらく深層意識の相当深いレベルに達しながら、文献を深奥まで解読しつくされたのでしょう。各々の東洋思想のその真髄を、切れ味鋭い論理性で、さらりと解き明かしてくれます。

 本書の主題は、意識のあり方と言葉の意味分節機能に着目しながら、我々が自明のこととしている事物の本質性が、実際に実在するのか、それともしないのかという観点で、極東から中近東までの様々な東洋思想を整理・類型化し、概観するものです。

 日本人に馴染みの深い禅を初めとする大乗仏教や、老荘・孔子の思想、インドのヴェーダーンタ、イスラム哲学、ユダヤのカバラ、ユングの元型論に至るまで、論説の筆先は縦横無尽に駆けめぐり、奥深いその姿が鮮やかに顕現します。

 既読の文献の一節が、深層意識に裏打ちされた著者の端的な解説により、思いもかけなかった形で面前に提示されて、これまでの自分の理解がいかに皮相なものだったかと、唸りたくなることが度々でした。

 例えば、
「老子の『常無欲』とは、深層意識の本源的なあり方」、
「易の認める元型『八卦』は、それぞれ独自の方向に顕現可能性を持ったエネルギー体」
「趙州『狗子無仏性』は、犬にも事物を分節して個々別々に見る本性があるので、仏性が無いということ」、
「バカヴァト・ギーターの『純質的』『激質的』『闇質的』は、禅に当てはめた場合『無心』『有心』『執心』として現れてくる」 等々・・・。

 時折挟まれる図説も素晴らしく、ユングの元型論など、それ専門の解説書よりも遙かに構造把握が進みました。

 東洋に生まれた一人として、座右の参考書として今後折にふれ、一生をかけて繰り返し読み込んでいきたい、全く宝物のような一冊です。
 著者がせめてあと十年、長くご存命であったならばと、残念でなりません。

 個々の東洋思想を学ぶ中で、その深みに足を取られてしまった方が、一旦、鳥瞰的に体系を把握されるのにも、本書は最適です。是非一読をお薦めしたい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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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年12月9日
この本と出会ったのは今から15年くらい前のことでした。大学の哲学科で東洋哲学を勉強していた僕は、知人の紹介でこの本を知りました。

東洋哲学といえば訓詁学とか経学みたいな、講釈や説教めいたものを想像しがちだったので、この本を読んだ時の衝撃はすごかったです。当時流行していた、深層心理学などで使われる無意識の構造や、言語の発生源みたいな話が出てきて、急に東洋哲学が斬新なものに見えてきました。夢中になって何度も繰り返し読んだことを覚えています。

井筒さんにはもう少し長生きしてほしかったです。東洋哲学の共時的構造化というものが、いかなる姿をしているのかその輪郭だけでも見てみたかったです。本書ではほんのさわりというか、共時的構造化序論というものであることが述べられていますが、序論ですらこの深みをもつ思索に畏敬の念を禁じえません。日本人にも、すばらしい哲学者が存在したことを知っただけでも良かった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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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年3月5日
本書は4つの論文を一冊の本にまとめたものであるが、特に「意識と本質−東洋哲学の共時的構造化」は、頁数でその8割を占めており、本書の中心をなす論文である。イスラム教から老荘思想、密教、禅まで、多様な東洋の宗教には、全体的統一もなければ有機的構造性もないように見受けられるが、歴史的な聯関から引き離して、時代を越えた視点で構造化し直すという「共時的構造化の分析手法」を用いれば、東洋哲学の構造化・体系化が図れるのではないかという極めて野心的な取り組みがそこにはある。しかも、東洋哲学の領域だけに閉じこもるのではなく、著者の西洋哲学での長年に亘る研究成果があって、両者に共通する「本質論」を基軸に存在物の本質を極めるという研究姿勢が見られる。
東洋哲学の大きな特徴として、「本質概念」は「言語の意味機能」と「人間意識の階層的構造」と聯関していると著者は言う。言語の意味機能を用いて存在物の本質を見極めるというプロセスは人間意識の表層で始まるが、そのプロセスを通して深層意識に入り込み、絶対無分節の存在(老子的にいうならば、「無」あるいは「道」であって、存在のゼロ・ポイントにあるもの)を見ることができるとされる。さらに、その無分節の存在が「無」から「有」に転換して、密教で言うところの大日如来の如きものあるいは易の太極のようなものが出現し、言語アラヤ識が無意識に働いて、再分節化のプロセスが始まって、様々な存在本質が出現するとされる。前段の表層意識下のプロセスと後段の深層意識下のプロセスのいずれでも分節化された存在が見られるが、前段のプロセスで見られる日常現象界の存在と、無分節化した存在が再分節化した後段プロセスの存在とは、まったく異質なものであるとされる。
本書を読んで、私が大いに興味を持ったのは、深層意識レベルにある言語アラヤ識という機関によって生み出される心象(イマージュ)と呼ばれる異形の怪物たちである。イマージュは表層意識にもあるが、表層意識のイマージュは外界に実在する事象に裏打ちされているためにその異常性には気づかない。しかし深層意識にあるイマージュ(元型イマージュ)が時として表層意識に出現すると異常現象として覚知され問題を引き起こすが、有能なシャマンの手にかかれば、哲学的世界観まで展開す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その代表例が老荘思想であり、シンボライズされた易の卦であるとされる。さらには空海の金剛界・胎蔵界の両部曼荼羅もイマージュ空間の構造的呈示であると説く。どうも内に創造的エネルギーを秘めた絶対無分節の存在は神以前の神であり、その分節化で神々が誕生するということのようで、言語アラヤ識で生成されるイマージュは、いわゆる「神」と同体のように思えてくる。著者は、日本神道の神々については触れていないが、日本の神々も東洋哲学の構造化の中で例外的なものではないであろう。絶対無分節の唯一絶対神が分節することで様々な神々が生まれ出るというメカニズムで、東洋の国々に見られる多様な多神が創出されたのではなかろうかと。
本書290頁に書かれている以下の文章は、中国文化に根ざす神々の誕生プロセスを的確に表現したもので、とても印象的である。
「神はその存在原点から、左右に対極的エネルギー(陰陽)を流出させ、そうすることによって神として自己顕現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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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年2月24日
知人に勧められて読みました。
内容のわりに、文体がわかりやすく、著者の、伝えたいという思いがひしひしと伝わってきます。
岩波の青には、日本語的に読みにくいものが多いですが、こちらの本はとても読みやすかったです。
井筒さんの智慧の深さを感じることができ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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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年9月6日
物理学であれば、最新の教科書を読めばその到達点が把握されるのに対し、古来、哲学書に有るのは、哲学者個人の主張か、それらの通時的羅列(哲学史)であった。「意識と本質」は、真理を求めた人類の格闘の成果を全体構造へ集結させることに成功した最初の教科書であるのかもしれない。過去の思想家への敬慕を貫きながら、過去の思想はそれぞれ真理の一局面であることが説かれている。これは、個々の思想の価値を貶めるものではなく、それぞれが形成される背景や主題を境界条件として、それぞれが最高の叡智と言ってよいのだろう。思想は個人から生まれるがしかし人類全体の共同成果であるという新たな地平を提供している。「意識と本質」は、物理学で例えれば、各実験・観測データから全データを説明する方程式の導出に相当する。本書では新たな世界観(データ)は提示されていない。提示されているのは、世界観が形成されるメカニズム(方程式)だ。井筒は、「あとがき」で、これは試作品であると言っているが、究極の方程式を提案する物理学者と共通する心情であろう。データの修正や補強について指摘して欲しいと願っているに違いないが、重要なことは、共時的構造化という人びとが求めていた切れ味のよい解法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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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件中11 - 20件目のレビューを表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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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8月8日
 本書『意識と本質』は、東洋思想の「共時的構造化」を試みた井筒俊彦(1914-1993)の代表的著作とされるが、その思想を理解するには到底力が及ばないので、井筒が芭蕉をどう評価していたかだけをメモしておきたい。
 それでも「本質」という言葉の使い方が、私の認識とは違っているので、その点はおさえておきたい。ジョン・ロックは、唯名的本質と実在的本質という区別を行いました。唯名的本質とは外面的で観察可能な性質であり、我々は通常それを認識することになります。実在的本質とは、ものの根底にある本質で、それこそが真のあり方なのですが、通常は隠れていて認識できません。ところが科学の進歩のおかげで、実在的本質の知識が得られるようになり、科学技術とはこの実在的本質を発見し、隠れていた性質を解き放ち、それを利用することにほかならないと考えられます。

 井筒も「本質」を二つに区別します。普遍的本質と個体的本質です(p.39)。普遍的本質はロックの唯名的本質と同じでしょう。ロックの実在的本質は科学技術のおかげで隠れていることはできなくなり、客観的認識が可能となります。そして、分節化されて我々の言語体系に概念として組み込まれ、唯名的本質(普遍的本質)に変換されます。ですから、井筒の本質は、普遍的本質(ロックの唯名的本質と実在的本質)と個体的本質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イスラーム哲学では常識的にこの二つの本質を認めています。マーヒーヤ(普遍的本質)とフウィーヤ(個体的本質)です(p.40)。そして、どちらを重視するかで正反対の方向が生まれます。

 芭蕉以前の和歌は、言葉の普遍的本質でつくられ、様々な規則があり、それを守らなければ歌として認められなかった。歌ばかりでなく、孔子の正名論や宋代の儒学も普遍的本質で思想が展開されたので整合的ですっきりした理論になった(p.56)。
 一般に詩人、特にリルケにおいては個体的本質が重視され、普遍的本質が徹底的に排除されます。Xが花であるという形で意識されるとき、XはもはやXという個物ではなくなるからです(p.51)。意識の深層領域に開示される個体的本質を、本来言語化できないのに言語化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が詩人なのです(p.52)。
 しかし芭蕉は、逆に普遍的本質から個体的本質への転換を問題としたのです(p.57)。芭蕉は「本情」、つまり事物の存在深層に隠れた普遍的本質を対象とした。「本情」は言語を操る表層意識では捉えることができない。捉えるには意識の変質が起こらなければならない。「私意をはなれる」こと、さらに「をのが心をせめて、物の実(まこと)しる事」の修練が求められるのです。これを「風雅の誠」と呼びました。「風雅に情(こころ)ある人」に、「本情」がちらりと光る。これを「物の見えたる光」という。「物に入りて、その微(び)の顕(あら)われ」るともいっています。「物に入る」とは、何々を対象とする意識ではなくなることをいいます。この時、普遍的本質から個体的本質へと対象が転換するのです。

 桑原武夫(1904-1988)は、フランス思想等の研究に深い造詣を示した人でしたが、俳句をなじった第二芸術論でも有名になった人でした。第二芸術とは、今でいえば大衆芸術ということでしょう。桑原は作者名を伏せたうえで、大家の作品と無名の作者のものを混ぜた15の俳句の優劣を問う実験を行ったが、大家と素人の区別をつけ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これらの事実をもって俳句は二流の芸術としたのです。
 一方井筒の芭蕉論は「風雅の誠」を作者に求めるのですが、当然鑑賞する側にも表層意識から離れることを求めるので、俳句の優劣の判断が違ってきます。ですから、句会などで誰の選なのかが重要になります。表層的意識だけで作った句は、説明の句といわれて評価が低くなります。「物の光」を見るのも鑑賞する側の責任が大きいのです。

 本書『意識と本質』は以後、「本質」の種類とそれを捉える「意識」の種類の組み合わせで、東洋哲学を説くことにな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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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9月10日
購入して5年、3度目の読了でようやく書いてあることが分かった。
井筒俊彦は難解だ、という先入観が邪魔をしていたか、読むべき時期が早かったか。

本書では本質論について、元型的本質は実在すると考えるグノーシスやシャーマニズム、無本質を根本思想に持っている禅などを分かりやすく比較している。

特によく理解できた部分は、禅で言われる「本質などない」ということの意味について。本質はない、というのはともすれば虚無主義にも陥りがちであると思う。しかし禅における空や無は、何もないこととは逆なのだ。

形而上の思索にとどまらず、生きる上で智慧を与えてくれる記述が多く見られる。

具体的には、無分別智に昇る道と、そこから戻って再び現実を生きることについて書かれている。

A→Z→A'

AとA'は、ある人から見れば全く同一だし、ある人から見れば全く別物であるということ。

それは見る人が無分別智を経由しているか否か、ということ。主客融合した後の主客分離。

A'に至ってはじめて融通無碍の境地を得るのだという。

さらに進んで道元を紐解き、A'がA'を見る、ということも書かれているが、ここは分かるようで分からない。

スーフィズムを始めとするイスラム思想はもちろん、カバラや易経の考察まで、文庫本一冊に膨大な情報量である。碩学というのは、こういう人のことを言うのだなと納得する一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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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1月5日
東洋哲学の諸伝統を現在の時点で理論的平面に移し、空間的に配置し直し、それらすべてを構造的に包み込む「共時的構造化」という壮大な試みである。空海の立体曼荼羅のような歴史的な新たな思想構築であると感じられる。本質的などというものは本当はどこにも実在していない。その無いものが、言葉の作用によりあたかも有るかのように見えている。約40年前の壮大な試みのさらなる深化は、今後、どのように進展するのだろうか。創刊当時、栗本慎一郎さん、中沢新一さんが推薦する一冊として取り上げていたことが懐かしく思い出さ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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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年1月18日
難解な文章を読むのは苦痛に近いが、これを読む価値は「無分節の意識」である。

完全に静寂な無分節の意識が存在する、実在、
そこに、種子、心、無知、などにより、ゆらぎが生じる、イマージュ(心象)、
しかし、その状態では単なるゆらぎであって不確定である、
そこに名を与えることによって対象の本質を確定する、
名-形、このコンビネーションと分節化によって現象世界の創造が意識の中に起こる。

そんなことが書いてある。
ここが分かれば神秘主義の全てが分かるカギなんだね。

禅・自己探求・思惟をする人が無分節の意識の視点にたって読むのがお勧め。
難解すぎるので星4。来世はもう少し簡単に書いて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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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年11月27日
表題作の他、「本質直観」、「禅における言語的意味の問題」、「対話と非対話」の全4つの論文を収めた論文集。だが、表題作が全体の3/4を占め、他は関連論文なので、表題作に絞って語っても良いだろう。

簡単に言えば、「本質」というものが、有「本質」であるか無「本質」であるかを考察し、禅を中心とした東洋的哲学の無「本質」に意義を見出すという論考。特に、無「本質」から個々の事物が現出する過程を<分節>論の立場で考察している点が特徴である。その論考は、禅や密教を含む仏教は勿論、西洋哲学、イスラーム哲学、古代インド宗教、孔子の<正名論>、老荘思想、シャーマニズム等の幅広きに及び、著者の該博な知識が十二分に発揮されている。ある種の比較哲学論と言っても良い。著者の論考の主な構造モデルは禅とイスラーム哲学に基づいている。30以上の言語を操ると言われている著者らしく、イスラームの原典に直接当っている様子も良く窺える。

個人的には、孔子と老荘の比較が面白く、特に老荘思想が現代で言う所の"カオス"であるという指摘は興味深かった。また、本書を読んでいて自然と思い出したのは高村薫氏「太陽を曳く馬」である。「太陽を曳く馬」は読む者を圧倒する力作ではあるが、その難解さにタジタジとした方も多いのではないか。本書中の禅論や古代インド宗教論を先に読んでいれば、「太陽を曳く馬」の理解度も高まったと強く感じた。そうした知的基盤を与えてくれる優れた啓蒙書だと思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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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年12月4日
この本の事を思うと、ホメイニー革命当時、人文書院の谷誠二さんや岩波書店の合庭惇さんとかがいなかったら、どうなってたんだろう?って。

全然違ったタイトルの本を読んでいたことになっていたかもしれないし、また逆に井筒先生のあれ以降のほとんどの本が読めなくなっていたかもしれない(その可能性はあったはず)。前者の場合であれば、ただこの本をも含めて、今手に入るタイトルの本が読めなくなっていたからといって、それがそのままあたしたちにとって丸損になったかと云うとそれはわからないかも。他のタイトルで画期的な本が上梓されていた可能性もあったわけで、そうなれば結局プラスマイナスゼロみたいな事になっちゃって、なるべくしてなったとしか言いようがなくなってしまう。

で、この本のこと。

この本プロパーで見れば、恐ろしく設計が壮大で常識的に考えたらこんな本は元来誰も書けない性格の本、いや書いちゃいけない本、あの分厚い宇井さんの「仏教汎論」でさえ取り敢えず仏教だけなのに―― この本では、中華の達人、フレンチの達人、和の達人を全部井筒先生一人でやってるようなことになるんだもの。人生三回ないと帳尻が合わないはず(少なめに見積もって)。それに「わたしは中華もフレンチも和食も全部修行を極めている」なんて大上段に言われたら「ほんとに大丈夫?!」って眉唾。それをさせないのが井筒先生の持つ抑止力なんだろうし、またそれを見抜いてまんまと井筒先生を担ぎ出して舞台で力を揮わせ、この本に至らしめたのが、合庭惇さんという演出家だったんでしょうね。

金字塔的な本ってスーパーな学者とスーパーな編集者の意識の焦点が合致して初めて生まれるんだって改めて気付かせてくれる好例かなあ。

レビューになってないのわかってるけど、懐かしいのでちょっと書いてみ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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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年4月23日
60代後半になって、手にとって読み始めたらひっくり返りそうな衝撃を受けました。こんなに分かりやすく存在論を説明してくれる人はほかにいません。せめて10年早く読みたかった。哲学がなぜあるのか、芸術がなぜあるのか、宗教の大混乱、禅の体験や本だけではとても分からなかったことが快刀乱麻で「分節」されています。欧米二元論に日本的ナショナリズム、歴史を愚かに繰り返すことがないように、これからの世の中に絶対必要な本です。読まなくてもよいからとにかく1冊買っておこ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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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年7月5日
これにはイマージュの引き起こす人間の精神について述べた箇所がある
がその基盤となるのが言語アラヤ識という解放系の無意識であるとする。これがユングのいうセルフの基盤となる。言語アラヤ識に入る情報に安定性があれば何も起こらない。しかし彼が別著で指摘するとおり現代はリゾームの時代。セルフの基盤となる安定的社会構造は崩れエゴのみを肥大化させなければ人は生きていけなくなってきている。こういう時人の言語アラヤ識に入る情報は不安定化しそれがイマージュ意識の不安定性と可変性を生み時にはアートに時にはイデオロギーや思想に時には精神病理に時には新宗教となっセルフを再構築し言語阿頼耶識の安定性を保とうとする。彼の東洋哲学的基盤の賞揚は還って危険であるが社会的現象の基盤としての言語アラヤ識という無意識を設定した所は素晴らし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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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年4月8日
岩波文庫と云う、比較的安価な文庫に収録されているにも係わらず、これは井筒俊彦の主著の一つであろう。それは、彼の主要論文からすれば比較的読み易く、且つ、一般の読者を想定している。井筒のライフワークである主著と目されている、イスラム神秘主義、ユダヤ教神秘主義カバラ論、ゾハール等は、初学者が、何の武器も持たず挑戦しても、恐らく、歯が立たないに違いない。ゆえに、井筒の理解を超える知見に到達する事は困難であろう。我々、一般人は、この様な神秘哲学とは、異なる次元の生活者であり、多かれ少なかれ、ごく表層的な次元での生活者であるからだ。では、何故、我々物好きな人間は、この様な、非日常的次元の哲学を読もうとするのであろうか?そこには、人間存在の真の世界像に付いて、深遠な知見を覗いて見たいという欲求からであろう。十数ヶ国語を操ったという、井筒俊彦の、驚異的な言語力と読解力が、縦横無尽に展開されていて、その知識と創見が、現代哲学の巨匠達の省察と、重なる部分を見い出すのは爽快だ。この地球上の言語は、ある意味ではすべてローカルな言語であり、どこの言葉が最も優れている、などと言うことは無い。あらゆる言語は、人間の認識精神の発露であり、その根源的力から生まれた状況の産物なのである。

ここには、中観・唯識の哲学からヴァガバット・ギータ、プロティノスのネオプラトニズムの論拠、プラトンギリシャ哲学とスコラ思想、易経から禅哲学、イスラム思想、ユダヤ神秘主義、カバラとゾハール、説一切有部派から大乗起信論、クサのニコライからトマス・ケンピス、フランツ・ブレンターノからエドムント・フッサール、サルトル、メルロー・ポンティからステファーヌ・マラルメまで、殆ど書き切れない位の存在論と認識の探求者達が考察される。存在の深遠に付いて、井筒が興味を懐いた分野の、多くの巨匠が取り上げられているのだ。大乗起信論の「真如」がフッサールの「エポケー」、「現象学的還元」の概念と似ていると云う、指摘は面白い。投稿者が、特に注目したのは、井筒の思想の中核に在る、意識の「深層と表層」と言う概念であり、人間の内面に、深く秘匿された構造世界である。心や意識の「構造的見方」、マナ識、阿頼耶識という、日常意識を支える根源的な意識の構造である。この本でも展開しているユングの「元型」の概念は、禅の根本である、インド・ヨーガ哲学との類似性にも興味がある。

本書では、芭蕉や、道元、宣長、なども、その思想が分析される。井筒の展開する概念の中で、投稿者は、未だに、よく理解できない概念が言語と意識に於ける、「音韻分節」・「意味分節」などの本質と、その可能性である。本書を買ったのは、30年近くなる昔だが、この著作の理解には、広範な基礎知識を前提とし、かつ、その深い創造的な理解を要請している為に、簡単には、深奥にある内容を把握し切れない点が多い。知識ミニマムとして、むかし、中央公論社から出版された、「世界の名著81冊」全冊の本質的理解があるのならば好ましい。若い人々が、この哲学書に挑戦し、単なる、日常の次元にのみ生きる事なく、いのちの中に秘められた、深い実相に気付き、そこに到達できる事を希望する。この世界は、目の前に広がるだけでは無く、意識と共に末那識が気付かない無意識である阿頼耶識と云う、自我を超えた、内面の宇宙にも広がっているのだから。私達のいのちとは、何か不思議な縁って、与えらえた命であり、そして、いつかは、その与えらえた源へ帰って行く。存在の実相は、そのいちの秘密は、そこで開示されるベキものであろう。神秘哲学は、その次元の思惟であり、本来、意識のサイクルとは平行に営まれる、人間の内部で動く、意識下のサイクルを探る試みであり、禅はその探究であるし、また、大乗の如来蔵は明らかに、その探究の発展と系譜上にある。

井筒俊彦は、膨大な東洋哲学構築の、著作計画の端緒で急死した、就寝中の脳出血であるという。それ故に、我々は彼の思意の中に、計画として有った、「東洋哲学の根幹に通底する諸神秘思想の共時的構造化」を、読む事は永遠に出来なく成った。それは誠に残念であるが、井筒自身は、大いなる命の源に、帰る事に従ったに違いない。この世界は深い、本の価値を確信すると共に、井筒俊彦の霊の冥福を祈り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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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年7月11日
西洋の対語として「東洋」があるとしたら、そこにはにはどのような哲学的、思弁的共通性があるのか。明瞭な形では存在しえなくても、東洋哲学の諸伝統の蓄積の上に新しい哲学を生み出さなければならない。

こんな壮大な問題意識から著者は膨大な知識を駆使し、著者独自の「共時的構造化」の方法によってイスラーム、ギシリア、儒教、仏教の系譜を縦横に跋渉して知の体系化を目指す。スコラ哲学、プラトン主義、新プラトン主義、ユング、フッサールの現象学など西洋の系譜もしっかりと押さえながら、記述は明瞭かつ分かりやすい。

そこかしこに溢れ出る術語概念に対する深い理解と分かりやすい説明は、なるほど、30カ国語に熟達した語学の広範な知識に裏づけられている。圧巻なのは、密教(esoteric religion)に関する奥深い理解が、本書全体を通底していることだ。凡庸な学者は、顕・密の顕を極端に重視することはあれども、密に対する見解があまりにも表層的なことがままある。

顕・密にわたる認識についての明快な枠組み設定がp214の意識の構造モデルで示されたくらいから、東洋思想に共時的に存在する哲学は、まさに「密」に集約されていることに読者は次第に気づいてゆ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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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年7月18日
よくもこれだけの内容を、平易ならざる用語の数々を連ねて、ここまで明確にわかりやすくかけたものだと驚いてしまう。自分の感じていた言葉と認識のズレのようなものの心地悪さを、ことごとく説明してくれた。
個人的にこんな体験がある。
朝、職場に行くと、前日の夜同僚が私宛に残した簡単なメモが置いてある。しかしこの同僚の書いたたった数文字の悪筆が解読できない。その日の業務の内容に関わることと、必死にメモとにらめっこをするも、読めない。突然めまいがして吐き気に襲われる。
あるいは、ある日、夕暮れ時に海へ行って、曇り空と海の境の判別できないような彼方をじっと見つめている。そのうちに、海を見ているという自意識が消え、ランダムな心象が次々と浮かんでくる。そして静かに何かが充満していくような感覚を受け、フッと抜けるように我に帰る。そこで海を見ていたことに気づく。
こういった日常の表層の割れ目のようなところから、別次元の意識に入って行くことを、経験を通じて自覚してはいたが、この著作を読むことでそれが現象として明確になり、また、言葉では掴みえない域も、自分に対してハッキリし、何はともあれ晴れ晴れとした気分になった。あまりにもわかりやすいので、一読して全てを把握した気にもなるが、それは慢心であろう。言語学の面からもソシュールなどと合わせて読んでおきたい一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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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年4月1日
世の中にはいろいろな思想があり、それらを一つ一つ見ていくことや断片的に知っていくことは可能である。また、表面的にさらっと通してしまう入門書なんかもある。しかしそれぞれの独特な言葉の使い方や構成の仕方により、それらを包括的に、一貫した視点に立って深く考察することは難しい。それをして見せてくれるのがこの本である。著者は東洋を中心に様々な思想のそれぞれの「本質」の捉え方を、著者自身が定義しなおした一貫した表現を使って説明してみせる。それは難解である事の多い東洋哲学を明快に説明してくれる上、それぞれの理念的関連や類似点を明らかにする。今まで知らなかったり、いまいち理解できなかった哲学を知ることもでき、まさに「目から鱗」本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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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年1月31日
井筒氏は「神とは宇宙のありかたである」と言っているように思える。そうならばいくつかのことが説明できる。
1 神はなぜ全知全能であるのか
 「すべてが入っているもの」こそ、宇宙の別称である。宇宙内のすべてのモノやコトの存在の「ありかた」を神とすれば、神は他者としてそれらの外に立つことはない。時間の地平を越えても宇宙のあり方は変化し得ないから、定義上、神は全知全能でしかあり得ない。
2 なぜ天にいるか
信仰者にとって神の住処は「天」以外にない。天には星ぼしが輝いており、そこには一定の物理法則が明らかに感じられる。「法則」の支配こそ神の第一の能力であるからには、その身に最も近いと思える天界こそ住処と考えるのは自然である。
わずかな過ちは「法則」をセムならではの支配・被支配の概念で考えたこと。どんな「ありかた」も許容される宇宙内において、法則は創り・創られるものではないだろう。法則は、世界の分節のしかたとして「在る」ものだろう。理論物理学が発見間近としている宇宙方程式すら宇宙の「ありかた」の「すべて」を記述するものではない。絶対無分節者としての宇宙を描こうとする宇宙方程式は、表現として分節的記述以外にありえず、いったん分析的に記述されればそれは分節を繰り返すだけであり、無分節状態の再現は定義として不可能になる。記述そのものが永遠に終わらない、という不確定性原理の矛盾があらわれてしまう。
3「宇宙のありかた」は運命論ではない
「宇宙のありかた」の考え方は、すべてがあらかじめ絶対者によってコードされていることの単なる発現であるとする、諦観に満ちた運命論ではない。すべての生命は、輻湊する存在連関の糸の結節点としてのみ存在するが、結節点としての生命は、たまたまそこに密度が高まっているアミノ酸分子の、ゆるい「よどみ」でしかない。しかも、それらアミノ酸は、「拡散」による内部のエントロピー増大を回避すべく、一方向的な時間軸上で非可逆的に入れ替わっているのだから、存在連関の網はあらかじめ織られようが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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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年9月12日
著者に圧倒される本というのはこういうのを言うのですね。まさに天才の著作です。こういう著作が多く読まれれば、物事を深く考える人々が増えていくのでしょ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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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年4月3日
井筒先生の著作のなかでは、一番好きですね。二番目はイスラーム思想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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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年5月25日
彼はある意味、北一輝と並ぶ二大日本ファシスト思想家で大アジア主義研究の第一人者大川周明の正統な後継者ともいえる。満鉄東亜調査局大川塾の講師であり、その文献をもとに西洋では現代思想のデリダ、ソシュール、心理学はユング、宗教人類学はエリアーデ、ギリシャ思想、イラン王立アカデミーで禅仏教徒で見性体験を得ながらイランのイスラム教徒にイスラム教を教えた世界的イスラム学の権威。ユダヤ教、ヒンズー教、仏教、儒家、道家からロシア、フランス、ドイツ文学や詩、日本、中国の古典文学、俳句、和歌、日本最大の神道家とされる本居宣長の国学まで主要な東洋思想は大体かれはおさえているが、意識と本質は特に東洋思想的教養はこれ一冊で十分という著作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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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年10月23日
「意識」や「無意識」といった概念はもはや日常語になっており、ともすれば心理学者などでもこうした概念を簡単に自明視してしまうきらいがあるように思えます。この本では、まず意識とはどのようなものかということについて明確な規定が与えられていて深く納得できます。イスラームに興味がなくとも、最初の10ページ程度でも読んでみることをお勧めします。博学ぶりをふりまわすことのない、シンプルで落ち着いた、それでいて説得力ある論調に畏敬の念がたえません。圧倒的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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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年1月24日
著者のエゴになっている哲学書が多い中、この書は「意識・本質」を客観的でコンパクトな構造的思索で展開されており、読みやすくかつ説得力があります。哲学や宗教に興味がある程度の方でも十分に理解でき、それでいて得れる知識は膨大で壮大です。

また、現代の日本人に忘れがちな「日本人の本質」を呼び起こす、拒絶反応のおきない日本的観念論であるとも思えます。哲学的または形而上学的思索(じぶんとは何?せかいって何?神?)を深めたい!と思う上で最初に手に取る書。ということで間違いありません。

是非お読み下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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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Eメンバー
2013年6月1日
本書の開口一番、<人間知性の正しい行使、厳密な思考の展開、事物の誤りない認識のために、「定義」の絶対的必要性をソクラテスが情熱をもって強調して以来、思惟対象あるいは認識対象の「本質」を究めるということが西洋哲学伝統の主流の一部となって現在に至った。(p.3)>とある。

井筒氏は、アジア文化圏〔ギリシャを含む近東・中東・極東〕の哲学的思惟〔意識の本質〕を「共時的構造化」の視点で浮き彫りにするために、様々な「定義」を縦横に駆使する。

ただ残念なのは、井筒氏が生存した1993年までには、ブッダ釈尊の教法の真義〔凡夫が聖者になり、聖者が釈尊と同等のブッダになること〕は解明されておらず、それゆえに釈尊仏教を再興した龍樹の勝義諦・世俗諦も正しく理解されていなかった。従って、本書で井筒氏が用いた仏教用語の「定義」は、伝統仏教の曖昧な解釈のままであり、哲学的思惟を解明する「定義」としては不十分なのである。

そこで、現時点で明確になった釈尊の教法の真義に基づいて、本書の冒頭部分における井筒氏の論理思考を検証してみようと思う。
【井筒氏の論理】
サルトルが<意識には内部なるものはない。意識は己自身の外以外の何ものでもない。>(p.6)と断じたのは、<言葉の意味作用とは、本来的には全然分節の無い「黒々として薄気味悪い塊り」でしかない「存在」に色々な符牒を付けて事物を作り出し、それらを個々別々のものとして指示する>(p.8)からであり、それは<言語によって無分節の「存在」が分節されて、存在者の世界が経験的に成立する。>(p.9)ためである。

【私の所感】
しかし、<言語によって無分節の「存在」が分節される(p.9)>という表現は、少しおかしい。例として赤ん坊やペットで飼っている犬を想定しよう。彼らは、様々な対象物を識別し、好悪の感情を抱くが、それらの対象を表現する言葉は存在しない。赤ん坊は「あー」とか「うー」という声を出し、犬は「ワン」と吠えたり「ウー」と唸ることで、対象物への志向の意志を表現する。つまり、言語が分節を可能にするのではなく、言語が無くても分節は起こる、と考えなければならない。すでに分節があるから、<言語以前から言語以降へ>や<「無名」から「有名」へ>という転換が起こるのであり、その分節が「本質」となって出現するのである。井筒氏が、<Xが一定の名を得ることによって、一定のものとして固定され凝固する(p.10)>という時の「X」こそが分節なのである。
そして、「本質」⊃「分節」⊃「言葉」という包含関係が成立すると思われる。

【井筒氏の論理】
井筒氏は、<しかしサルトルにおいては、深層意識の次元に身を据えてはいない。だから、絶対無分節の「存在」の前に突然立たされて、彼は狼狽する。>(p.11)と言い、<仏教的表現を使って言うなら、世俗諦的意識の働きに慣れ、世俗諦的立場に身を置き、世俗諦的にしかものを見ることのできない人は、たまたま勝義諦的事態に触れることがあっても、そこにただ何か得体の知れない、ぶよぶよとした、淫らな裸の塊りしか見ないのである。>と述べる。

【私の所感】
さて、「分節」と「無分節」の定義は、「世俗諦」と「勝義諦」の二諦に基づいて理解すべきであり、その二諦は釈尊の教法の真義に基づかなければ明確にならないのである。
先ず、「世俗諦」とは三界(欲界・色界・無色界)の貪・瞋・痴が存在する世界の法則を表し、それに伴う表面意識・潜在意識・深層意識の三つの意識が存在する。世俗諦の世界は、三界の貪・瞋・痴の法則により時間と空間が生まれ、そこに住むものは時空に制限されるのである。「存在」に「世俗諦」という時空のフィルターをかけると、「分節」が生じるのである。
次に、「勝義諦」とは三界(欲界・色界・無色界)の貪・瞋・痴が消滅した世界の法則を表し、表面意識・潜在意識・深層意識が統合された一つの意識が存在する。勝義諦の世界には、時間と空間が存在しない。「存在」が時空から自由になった「あるがまま」の状態を「無分節」と呼ぶのである。

以上で垣間見えたように、井筒氏が目指した「共時的構造化」を「世俗諦」の世界(我々凡夫が住む世界)で実現するのは不可能であり、時空が消滅した「勝義諦」の世界(阿羅漢の住む世界)では実現する必要もない当たり前の出来事な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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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年8月21日
井筒さんの哲学は、常に移ろいゆく目に見えている現象世界とその奥にある常に変わらない何か(神/ロゴス/存在と呼ぶ人もいる)というものを前提としている。 あるいは、その間に「本質」とよぶものを置いている(その言葉の定義は常に動いているように見える)。

そして、奥にある何かを捉えようとする、イスラムのスーフィズムや大乗仏教(特に禅や密教)のアプローチを「東洋的」と呼び、それにプラトンとの共通性なども見出そうとされている。

しかし、「その奥にある常に変わらない何か」というものが本当に存在するのかどうかは論じない(判断停止)、あるいはそういうものは存在しないとする、非常に重要な思想的な流れというものをあまりに無視されている。 インドの初期仏教や、ギリシア哲学の懐疑主義と言われる人たちの哲学である。

人間は弱いもので、目の前のものが常に移ろい何一つ頼ることができない、自分すら老いて常に変わっていく状況で、頼れる「何か」をどうしても探してしまう。   

しかし、その何か(神であれ、ロゴスであれ、絶対存在であれ、ウパニシャッドでいうブラフマン(梵)であれアートマン(我))を探し求める旅に出るというのは、実は大きな罠でもあるともいえる。 

何故なら、人間自身、所詮移ろいゆく物体の寄せ集まりであり、その能力は非常に限られている。  ある一定の人間だけ特殊な能力があり、あるいは何か特殊な方法や儀式があって、猿やネズミと異なって、人間だけが、その絶対存在を捉えられるというのはおかしい、あるいは時間の無駄だとする考え方をするのが初期仏教やギリシアの懐疑主義の哲学である。

井筒さんの時代には、中村元先生や前田専学先生の優れた初期仏教の研究があったはずである。ギリシア哲学もソクラテス、プラトン、アリストテレスだけではなく、ピュロンやデモクリトスの研究もあったははずである。 なぜそれらの研究を全く無視されているのかが、そして、初期仏教という非常に重要な東洋哲学の一つの考えを無視して「東洋」を謳われているのは非常に疑問を感じてしまう。

また、随所に、物質的西洋VS精神的東洋 という古い(ナショナリスティックな)考え方を抜け出ていない感じも何やら古さを感じさせる。 鈴木大拙の禅の研究のように、西洋にコンプレックスを感じながら、東洋人の一メンバーとして東洋の凄さを懸命に宣揚されているような、、、

インド哲学が好きな者としては非常に疑問を感じる一冊で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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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編を貫く「普遍」への意志 井筒俊彦「意識と本質」

大澤真幸が読む

 本書は、人間の意識がどのように事物の本質を捉えるのか、ということについての考え方の違いを基準にして、イスラームやユダヤ教までも含む多様な東洋哲学を分類し、それらの間の位置関係を明らかにした書物である。東洋哲学全体の地図を作成しようとしているのだ。
 こんなことができるのは、まず井筒俊彦だけだ。井筒はイスラーム思想を中心にあらゆる東洋哲学に(実は西洋哲学にも)精通していた碩学(せきがく)中の碩学。井筒の前に井筒なく、井筒の後に井筒なし。こう言いたくなる。
 「本質」とは、「Xとは何か」という問いに対する(正しい)答えである。例えば「君主とは何か」への正解が「仁愛なり」なら、仁愛が君主の本質だ。
 だが、「正解」が簡単に見つかるわけではない。本書によると、その「見つけ方」に関して三つの考え方がある。瞑想(めいそう)の果ての直観や悟りなど深層の意識の働きを通じて本質を見極めることができるとするもの(朱子学など)。マンダラのようなイメージやシンボルを通じて本質を捉えられるとするもの(密教など)。事物に正しい言葉=名前を与えれば、普通の表層の意識で本質を認識できるとするもの(儒教の名実論など)。
 この分類を使うと、一応は第一の種類に入れられるが、この三分類そのものからあと一歩ではみ出すという極限にあるのが禅だとわかる。無心(意識の究極的原点)に至り、事物の本質など存在しないと悟れ、と説くのだから。本質と見えたものは、言葉による世界の区分け(分節)が生み出す錯覚だ、と。
 禅とは逆の極限が、カッバーラーと呼ばれるユダヤ教神秘思想。禅と反対に、本質がまさに言葉とともに無から創造されるとする。ただし、その場合の「言葉」は神の言葉である。
 こうした紹介から感じ取ってもらえるだろうか。本書を貫いている「普遍」への意志を、である。人類が蓄積してきたあらゆる知を総合して真理に迫ろうとする驚異的な野心。これに深く感動する=朝日新聞2017年6月11日掲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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