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9

‘일본학자가 본 식민지 근대화론’ 펴낸 도리우미 유타카 “일제 수탈 없었다지만, 불공정 시장서 부당이익 취한 것” - 경향신문



‘일본학자가 본 식민지 근대화론’ 펴낸 도리우미 유타카 “일제 수탈 없었다지만, 불공정 시장서 부당이익 취한 것” - 경향신문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입력 : 2019.09.10 21



경제학·사학 연구자 시선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자 주장’ 비판
쌀도 어쩔 수 없이 싸게 팔도록 하고 통제를 통해 문제 감춘 것




최근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된 <반일종족주의>(미래사)는 일제강점기 경제분야 수탈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기반해 강점기에 되레 발전과 근대화 토대를 닦았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 주류 역사학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친일학자’들의 ‘친일사관’으로 취급해 제대로 반박하지도 않는다. 서로가 토론하는 공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중간지대는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일본인 역사학자 도리우미 유타카(鳥海豊·57·한국역사연구원 상임연구원)의 책 <일본학자가 본 식민지 근대화론>(지식산업사)은 소중하다. 일본인 학자가 식민지 근대화론을 반박해서가 아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 차근차근 비판한다. 식민지 근대화론 학자들이 논거로 쓰는 경제적 통계 전체를 부정하기보다는 세세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집중한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 만난 도리우미 연구원은 “한국사람이 너무도 가난했다는 ‘결과’만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할 뿐 어떤 경로로 어떻게 수탈했는지 설명하는 글은 찾기 어렵다”며 “<반일종족주의>가 나온 김에 토론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리우미 연구원은 원래 역사학도가 아니었다.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취직해 몇년간 일하다 2000년 와세다대학 아시아태평양 연구과에 입학했다. 한국사를 공부하고 싶었지만 당시 일본에서는 제대로 한국사를 배울 수 있는 대학원이 없어 아시아 전체를 먼저 공부하기로 했다. 2003년 석사를 마친 뒤 한국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일본에서 한국사를 개인적으로 공부했지만 박사과정은 쉽지 않았다. 다만 학부에서 전공한 경제분야는 자신이 있었다. 2013년 ‘일제하 일본인 토목 청부업자의 활동과 이윤창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번에 나온 책은 박사 논문을 보완하고 수정한 것이다. 그래서 책 부제가 ‘일제강점기 일본인 토목 청부업자의 부당 이익을 중심으로’이다.



도리우미 유타카 한국역사연구원 상임연구원이 지난 9일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도리우미 연구원은 ‘수탈’의 개념부터 다시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도리우미 연구원은 한국 역사학계가 쓰는 ‘수탈(收奪)’의 의미부터 다시 정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존에 쓰던 수탈의 의미(강제로 빼앗음)로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반박할 수가 없다. 도리우미 연구원은 “기존에는 토지조사사업으로 땅을 수탈하고 쌀을 가져갔다고 했는데, 이는 1997년 (조선총독부 자료 등으로) 무너졌다”며 “토지조사사업을 통한 수탈은 없었고, 쌀 수탈 역시 2차 세계대전 중 강제공출 이전에는 경제적인 교류거래, 즉 수출이었다”고 말했다.


도리우미 연구원은 ‘토지와 쌀 수탈이 없었다는데 왜 한국사람은 가난하게 살았는가’란 의문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여기에 ‘한국사람은 더 가난해졌는데, 일본에서 온 사람들은 어떻게 대부분 부자가 됐는가’란 의문이 더해졌다.


도리우미 연구원이 인용한 1928년 조선총독부 통계 연보에 따르면 조선 내 일본인의 1인당 우편저금액은 56.46엔인 반면 조선인은 0.23엔에 불과했다. 인구의 2.45%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인이 우편저금의 86%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인이 조선인보다 245배 많은 자산을 소유했다는 의미다.


도리우미 연구원은 “이 압도적 차이가 수탈이나 착취, 부당한 이익 확보 없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무엇인가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연구는 일본 정부가 조선에 ‘불공정한 시장’을 만들고 일본인들에게 이익을 몰아줬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도리우미 연구원은 “쌀의 경우를 보면 판매시장에서 지주들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싸게 팔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헐값으로 수출하도록 했다”며 “이런 여러가지 통제를 통해 겉으로는 별문제 없어 보이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 “방직업계만 봐도 경성방직보다 일본업체들이 조선총독부 지원을 더 많이 받은 것으로 나와 있는데 구체적인 수치를 찾을 수가 없다”며 “일본이 이런 흔적을 감추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9102122015#csidxb2f99fedcf0e2a893579fbc2fcfb0be


















Jin Kaneko
15 mins ·



これは、『反日種族主義』というか、李榮薰さんらの唱えた植民地近代化論を否定するインタビューではないと言えますね。ハンギョレの人選ミスか?

 鳥海さんは記事冒頭で「本(『反日種族主義』)の著者とはあまり争いたくない(笑)」と述べておられので、論争は実現しないのかもしれないけれども、実現すれば建設的な論争になる予感がします。実現したら面白いと思う。

 鳥海さんは、韓国の通説的な歴史叙述となっているエキセントリックな「収奪論」に与しない立場を冒頭で述べている。
 そのうえで、植民地近代化論に疑問を向ける鳥海さんの問題意識を次のように語っている。

〝私の疑問は、収奪や搾取がなかったのに、なぜ朝鮮人はあのように貧しかったのだろうかという点だった。日帝時代、朝鮮に来た日本の人々は、大部分が貧しかったり職がなかった。それなのに、彼らは皆金持ちになった。朝鮮人はさらに貧乏になったが、日本人はほとんど全員が大金持ちになったというのが、とても不思議で変ではないか。〟(記事より)

 しかし、安秉直さんや李榮薰さんの目を向けている対象はもっとマクロ。近代化とは、つまり資本主義社会化のことであるが、朝鮮が資本主義社会に移行するにあたって必要な法・経済・社会の仕組み、教育水準などは、いつどのように獲得していったかという部分である。
 さらに李榮薰さんらの問題意識の背景には、内在的発展論や朝鮮の近代化とはいつかといったことについての既存の学問的主張に対する反論・反証、批判という意味合いもあった。

 そうした中で、鳥海さんは、果たして日本統治時代に、資本主義社会に移行していくにふさわしい、朝鮮の民衆への富の再配分の仕組みを問題にしているようだ。
 そして、日帝統治時代、暴力的な収奪はなかったけれども、日本の朝鮮からの富の収奪の構造は厳然としてあったのではないかと問うているようである。

 ハンギョレの記者が『反日種族主義』批判のために記事をつくろうとしていたとしたら、うまくいかなかった記事ということなるのでしょうね。
 たぶん、ハンギョレの意図はそうなのでしょう。この日本語の〝『反日種族主義』批判の日本人学者「朝鮮人が貧しくなったのに収奪・搾取なかった?」〟という浮いた見出しにそれが表れている(笑
 まあ、この見出しにがっかりして、記事を読まないと損をするぐらいの水準の記事内容になっていると思う。

 リード(前文)の冒頭の「日帝の投資で朝鮮が発展したという植民地近代化論の虚構を暴く」というのも、記事本文を正確に示していませんね。

 ハンギョレがこれまで掲載してきた、『反日種族主義』批判の韓国人学者の発言とも明らかに違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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