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1

Namgok Lee 정명(正名)



(9) Namgok Lee




Namgok Lee
19 September at 05:04 ·


요즘 한 사람의 장관 인사(人事)로 나라가 온통 나눠지는 아픔을 겪고 있다.
어처구니 없는 일 같지만, 그 일개 장관의 인사(人事)를 둘러 싸고 우리 사회의 모든 모순 갈등들이 그 민낯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희망의 단서를 찾고 싶다.
각급 여론 조사에서 중도층이 확대된다는 뉴스를 본다.
선거에서 어디를 찍을지 정하고 있지 않는 사람들을 중도(中道) 층이라고 부르는 것 같지만, 나는 몇 차례의 여야 정권교체를 겪으면서 이제 진정한 중도(中道)가 정치적으로 자리잡아가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번 ‘21세기에 보내는 공자의 메시지’라는 테마로 다섯 차례 강의 한 것 가운데 정치에 관한 내용 중 ‘정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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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正名)

① 공자의 정치에 대한 유명한 언급이 있다.

<자로가 여쭈었다.
“위나라 임금께서 선생님께 정치를 맡기신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반드시 명(名)을 바로 세울 것이다.”
자로가 말씀드렸다.
“현실과는 먼 말씀이 아니신지요. 어찌 명(名)을 먼저 세운다 하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로야, 너는 참 비속하구나. 군자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일에는 입을 다무는 법이다. 명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불순해지고, 말이 불순해지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적절하게 집행되지 못하고, 형벌이 잘 집행되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 둘 곳이 없게 된다. 따라서 군자가 명을 바로 세우면 반드시 말이 서고, 말이 서면 반드시 행해지게 될 것이니, 군자는 말을 세움에 있어 조금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제13편 자로)
子路曰, 衛君 待子而爲政 子將奚先
子曰, 必也正名乎
子路曰, 有是哉 子之迂也 奚其正
子曰, 野哉 由也. 君子於其所不知 蓋闕如也 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事不成 則禮樂不興 禮樂不興 則刑罰不中 刑罰不中 則民無所措手足 故 君子名之 必可言也 言之 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而已矣>

정명(正名)을 말할 때 ‘군군신신(君君臣臣)부부자자(父父子子)’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즉 각자 또는 각 집단이 자기 정체성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특히 요즘의 부패하고 혼란스러운 정치 현실을 보면 이 말이 실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명’이 기본적인 수준에서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정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저 과거의 낡은 이데올로기나 정서, 현실적인 이해관계 등에 의해 이합집산할 뿐이다.
다당제를 비롯해 여러 정치 지형을 그려보는 노력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단순한 지역할거를 넘어 보수와 진보의 정명이 이루어지는 정계대개편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정치의 선진화는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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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1장의 첫 단락이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도를 도라고 할 수는 있지만, 항상 그 도일 수 없고,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가능하나, 그 이름이 변화하는 실체를 항상 설명할 수는 없다.(항상 그 이름일 수 없다)”
인식하고 탐구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물이나 현상에 이름을 붙인다.이것은 인간만의 탁월한 능력이다.그러나 동시에 치명적인 함정이 있는데, 사물과 현상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변하는데, 관념은 고정되기 쉽다는 것이다.
공자는 정명(正名)을 이야기한다. 이름을 바르게 한다는 것이다.그런데 이 이름은 고정되는 것이 아니다.
실체에 대해서는 공자는 무지(無知)를 자각한다.이 자각이 탐구의 출발이다. 고정을 가장 경계한다. 그래서 탐구의 출발점을 공공(空空)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관념이 고정되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의(義)’라고 이름 붙여도, 그것이 고정되는 것을 경계해서 ‘무적(無適) 무막(無莫) 의지여비(義之與比)’를 말한다.
단정하지 말고 그 시점의 의를 탐구해서 그 의를 실행하라는 것이다.

노자 식으로 표현하면, '의가의 비상의'義可義 非常義가 될까?

*도덕경이 공자 사후 1세기가 지나 나온 것이 맞다면, 공자의 '정명' 등이 고정적인 개념으로 변질하는데 대한 노자의 비판이 담긴 듯.
공자의 '무고정성'이 공자 사후 그 제자들에 의해서도 제대로 계승되지 않고 왜곡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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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나는 이와 함께 ‘정명’을 현대적 용어로 표현한다면 ‘시대정신의 구현을 위한 종합철학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보고 있다. 풀어야 할 난제가 많을수록 또 그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법이 서로 모순되어 보일수록 먼저 ‘종합철학’을 바로 세워야 한다.

과거의 진보니 보수니 좌니 우니 하는 고정되고 편향된 시각으로는 지금의 시대적 요구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기가 힘들다.
지금까지의 관점에서 보면 모순 되게 보이는 요소들이 이제 상호보완하고 인간 진화를 위한 길에서 함께 나가야 할 동반자라는 관점이 우리가 세우고자 하는 종합철학이 아닐까.
민주화와 물질적 생산력의 향상 등은 과거에 비해 이러한 종합철학이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을 만들어 왔다. 다만 사람들의 의식이 이에 따르지 못하는 것이다. 과거의 좌우, 보수와 진보, 자본계와 노동계 등의 고정관념들이 새로운 정치에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역사발전 단계로 볼 때 지금 우리 사회는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있는 과도기라 하겠다.
이 시기를 살아가는 당사자들에게는 극심한 혼돈으로 느껴지겠지만,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면 새로운 시대정신이 출현하기 위한 필연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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