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1

여야 4당의 청년대변인이 말하는 ‘청년들의 분노’…“지금 여의도에 청년을 위한 청년정치는 없다”



여야 4당의 청년대변인이 말하는 ‘청년들의 분노’…“지금 여의도에 청년을 위한 청년정치는 없다”




여야 4당의 청년대변인이 말하는 ‘청년들의 분노’…“지금 여의도에 청년을 위한 청년정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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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2019.09.20. 오전 6:00
최종수정2019.09.20. 오전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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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SKY캐슬>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정의와 공정, 진보를 말하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높은 담장이 둘러쳐진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지만 청년들의 분노가 가장 컸다. 상실감·박탈감으로 점철된 ‘조국 대전’을 넘어온 청년들은 기성정치권에 청년을 위한 정치가 없음을 부르짖고 있다.

경향신문은 19일 여야 4당의 ‘젊은 입’들을 만났다. 올해 1월부터 각당이 뽑은 청년대변인·부대변인들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사태’에서 무엇이 청년들을 분노케 했는지 물었다.

더불어민주당 장종화 청년대변인(33)은 “(조 장관을 둘러싼 문제들이) 청년들 본인이 해왔던 것에 반한 것이 청년들에게 상처를 준 것”이라며 “조 장관이 실제 (불법적) 행위를 했다는 것보다 그전까지의 언행으로 괘씸죄를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황규환 청년부대변인(38)도 “ ‘조국사태’는 청년들이 ‘내가 손해를 봤다’는 게 가장 화나게 한 부분”이라며 “나는 그러지 못했는데 장관 후보 딸이라는 친구는 그랬다는 거야? 장학금 한 번 받으려고 그렇게 고생했는데, 그 사람은 6번을 받았다는 거야?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청년들은 조 장관 딸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관련해 ‘공정’ 문제에서 가장 큰 실망과 분노를 했다고 전했다. 바른미래당 김홍균 청년대변인(22)은 “지난 정권에서 최순실 사태로 수많은 청년들이 공정의 가치가 무너졌다고 느꼈다”며 “전혀 다를 것이라 기대했던 지금 정부가 들어서고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정의당 강민진 청년대변인(24)도 “청년들은 기회 자체가 평등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했다.

우린 일상의 분노 말하는데

정치는 삶과 동떨어진 얘기

소외된 자 목소리 기억해야

30대의 육아·경력단절 등

실질적인 청년 대책 없어

관련 법안은 1년 넘게 계류

이들은 여야가 앞다퉈 강조하고 있는 ‘청년정치’에 대해 “지금 여의도엔 청년이 원하는 청년정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치권이 총선 때마다 청년대변인을 임명하고 영입에 나서는 것을 놓고도 “청년이란 타이틀 자체가 청년정치에서 한계가 되고 있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특히 정치권 주류를 점하고 있는 ‘86세대’ 인사들과 현재의 청년은 “다르다”는 반응이 많았다.

장 대변인은 “86세대는 학생운동 등을 통해 거대 어젠다에 투신했지만, 지금 청년은 다르다”며 “청년을 위한, 청년 세대를 위한 내용을 논의해야 하는데 그런 논의가 없다”고 지적했다.

기성정치권을 향해선 “20·30대가 안고 있는 문제는 일자리만 있는 게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 부대변인은 “단순히 ‘청년’ 하면 일자리만 생각한다. 30대 정도 되면 육아·출산·보육 등도 이슈인데 (정치권이) 너무 무관심하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이 실질적인 청년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도 야도 청년에겐 무관심”“우린 불공정 문제가 가장 중요”

기성세대는 청년들의 분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올해 대학 4학년인 김홍균 바른미래당 청년대변인은 “학교든 취업이든 합격과 불합격의 문제가 닥치면 무엇이 부족해서 떨어진 것인지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내가 모자라서인지, 부모가 부족해서인지, 합격한 사람의 부모가 잘나서인지 온갖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면에서 공정과 관련된 문제에는 정말 예민해진다. 불공정하다 느끼게 되면 참기가 어려워진다”고 토로했다. ‘조국 대전’을 겪으며 청년들은 ‘공정’ 문제에서 가장 크게 분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청년들을 향해 ‘왜 보다 중요한 문제에는 분노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황규환 자유한국당 청년부대변인은 “4050세대야 민주화·산업화 같은 문제들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지만 지금 청년들에게 그런 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너무나 당연한 배경”이라며 “일상의 불공정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야 4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청년 모시기’에 나섰지만 ‘총선용 급조’ ‘꼰대 국회’라는 싸늘한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장종화 더불어민주당 청년대변인은 “청년이 원하는 것은 현실정치에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정치권이 내실 있는 청년정책을 마련하기는커녕 ‘구색 맞추기’에만 급급하다는 것이다.

결국 ‘조국사태’로 청년의 목소리는 커졌지만 이를 담아낼 정치권의 움직임은 이를 보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청년대변인들의 시선은 지금 여의도 ‘청년정치의 한계’를 가리키고 있다.

■ 청년들이 말하는 청년의 분노

청년들의 분노는 기성세대의 생각보다 더 복합적이다. 장 대변인은 “다들 입시나 취업에서 더 많은 기회를 누리고 싶어한다. 조국 장관 같은 사람에게 가진 것을 전부 포기하라고 이야기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진 것을 바탕으로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간극이 워낙 크기 때문에 자괴감과 분노를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 대변인은 “지금 대입 제도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다들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봤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아버지가 조국이었다면 나는 그의 딸처럼 더 많은 것들을 이용하려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경쟁이 워낙 치열하기 때문에 열정이나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걸 극복하기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경쟁에 대한 부담은 분노를 표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한 여권 유력인사는 대학생들의 집회를 두고 “굳이 마스크를 쓸 이유가 있는지 아쉽다”고 했다. 김 대변인은 청년들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내 생각을 드러내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을 다 아는 것”이라며 “나중에 어떤 불이익이 있을지 모르는데”라고 했다.

청년들의 목소리가 인터넷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넘어 촛불집회까지 터져 나오는데도 청년대변인들은 “분노가 온전히 전달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장 대변인은 “많은 청년들이 ‘정치하는 사람들은 늘 엉뚱한 소리만 하는 것 같다’고 얘기한다”고 했다. 청년들은 일상의 분노를 말하는데 정치권은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만 한다는 것이다. 조 장관 사태에서도 많은 정치인들은 ‘위법이냐, 적법이냐’만을 따졌다는 지적이다.

대변인 월급 먹고 살기 빠듯

기성 정치인과 경쟁 힘들어

선배들이 만든 민주·산업화

지금 우리세대엔 당연한 것

너희들이 뭐 했나 하면 안돼

아예 작은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 청년들도 있다. 강민진 정의당 청년대변인은 “구의역 사고로 목숨을 잃은 김군의 동료는 ‘19세 때 우리는 대학 갈 꿈도 꾸지 못했다’고 말했다”며 “서울대나 고려대 집회에서 터져 나왔던 목소리는 분명 타당하지만, 그 바깥에도 청년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강 대변인은 “나만 해도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고, 학원도 다닐 수 있었다”면서 “그런 것조차 누리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더 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들의 목소리는 증폭되고 있지만 하나로 모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보니 정치권에선 그런 청년들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장 대변인과 황 대변인은 한목소리로 ‘청년기본법’을 거론했다. 지난해 국회 미래특별위원회에서 여야 합의안이 만들어졌지만, 1년이 넘도록 별다른 논의 없이 계류 중인 법안이다. 황 대변인은 “커다란 쟁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상황”이라며 “결국 여도 야도 실질적인 청년정책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 현실의 벽에 막힌 청년정치

내년 4월 21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4당은 앞다퉈 청년대변인 제도를 신설했다. 내년 총선을 의식해 급조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기존 민주당 청년비례제 등은 한때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지만, 이들 역시 유의미한 정치인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청년정치의 어제와 오늘을 들어봤다. 무엇보다 더 많은 청년정책이 필요하고, 더 많은 청년정치인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지금까지의 청년 정치인들은 기성정치의 구색 맞추기였고, 어쩌면 지금 청년대변인들도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는 자평도 내놓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조국사태’를 거치면서 청년들의 목소리를 방치해선 미래가 없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장 대변인은 “청년이 마주하는 현실의 벽은 높다”는 말부터 꺼냈다. 당장 돈 문제부터 걸린다. 청년대변인으로 활동비는 받고 있지만, 먹고살기는 빠듯하다. 5년가량 민주당 보좌진으로 일했던 장 대변인은 “퇴직금으로 내년 초까지는 버티겠는데, 그 이후는 계산을 안 해 봤다”고 멋쩍어 했다. 황 부대변인은 “나를 포함해 우리 당 청년부대변인이 9명인데, 대부분 각자 생업이 있다”며 “생업을 포기하고 더 적극적인 활동을 하라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국회 내부는 차라리 사정이 나은 편이다. 10대 시절부터 청년운동단체에서 활동해 온 강 대변인은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기성 정치인과의 경쟁은 버거운 장벽이다. 큰 정당은 큰 정당대로 경쟁자들이 많고, 작은 정당은 작은 정당대로 얼마 안되는 당선권 비례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중 한두 명 정도가 국회에 진출하는 상황에서 청년의 목소리를 내기란 힘든 일이다.

특히 ‘86그룹’ 선배 정치인들과의 비교는 1차 관문이다. ‘젊음만 내세우지 뭘 했느냐. 선배들만큼 헌신한 청년 정치인이 누가 있느냐’는 비판이 지속된다. 그러나 이들은 86그룹 선배들과 자신들은 상황이 다르다고 잘라 말한다. 장 대변인은 “과거처럼 노동운동, 학생운동이 활발한 것도 아니고 다들 취업 걱정하고, 먹고사는 고민을 하고 있는데 왜 청년들은 정치를 하지 않느냐고 한다”며 “기회는 열어주지 않았는데, 뜬금없는 소리로 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강 대변인은 “정치를 하려면 최소한의 비전이 있어야 한다”며 “거대정당은 모르겠지만, 소수정당에서 활동한 이력은 이후 정치 말고 다른 길을 생각하게 될 때 스펙은커녕 페널티만 된다”고 하소연했다. 황 부대변인은 “청년 정치인들은 젊음을 내세우지만, 사실 그것만 가지고 선택받을 수는 없다. 청년들 각자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면서도 “정당이든, 유권자든 청년 정치인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런 난관들을 뚫고 제도권 정치에 진입한다 해도 청년 정치인이 제대로 활동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총선 이후 배출된 20~30대 젊은 의원은 고작 1~2명에 그쳤다. 황 부대변인은 “청년 의원들이 30명쯤 되어 세력을 만들 수 있으면 모를까, 그 정도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앞서 국회에 진입한 선배 청년 정치인들도 처음에는 각자 생각하는 청년정치가 있었겠지만, 기성정치의 틀이 옥죄고 들어가는 부분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정치의 한계는 이들의 이름표인 ‘청년대변인’이라는 타이틀에서도 드러난다. 청년 세대에 편입된 이상, 그 틀 안에서만 얘기하라는 압박을 자주 느끼곤 한다. 심하게 말하면 “영속성 없이 써먹고 버려지는 존재들이 청년 정치인”이었다는 말이다. 김 대변인은 “오히려 청년의 입으로 모든 사안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강변했다. 지금처럼 진영으로 갈린 정치를 벗어나 청년들끼리는 다른 방식의 정치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러자면 청년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더 강한 목소리를 모을 수 있도록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그 안에서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도 절실하다.

이번 총선 세대교체? 회의적

진영 떠나 ‘청년 소통’ 절실

2030세대 원하는 것 알아야

내년 총선에서도 여야는 청년 문제를 ‘핫 이슈’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터라 이번 역시 세대교체가 쉽지 않아 보인다. 황 부대변인은 “한국당을 올드하다거나 꼰대정당이라고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지만, 나는 누누이 ‘꼰대국회’라고 얘기한다. 우리 당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거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청년 정치인에 대한 지지가 낮아지면서 ‘2030’세대의 지지율도 낮아진다는 내부 논의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지금 2030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 세대가 ‘4050’세대가 되어도 견고한 지지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심진용 기자·사진 권호욱 선임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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