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6

한국의 경제학자... 일본학파의 현주소 - 매일경제



한국의 경제학자... 일본학파의 현주소 - 매일경제

한국의 경제학자... 일본학파의 현주소
입력 : 1993.02.08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은 학문의 세계에서도 여지없이 들어맞는 말이다
.
우리나라에서 최근 중소기업 사장들이 잇달아 자살 하자 금방 일본에서는
지난 한해동안에만 중소기업사장 2천명이 자살했다는 비교통계가나왔다.
원화환율이 급격히 절상되어 수출전선에 이상이 생기자 당장에 일본에서
는 80년 초반 엔고시대에 어찌어찌 대응했다더라 하는 보고서가 만들어져
위로 위로 올라갔다.가깝게 해방이후로만 따져도 이같은 사례는 무수히 많
다. 일본과 단교하고 일본쪽으로는 고개도 안돌리고 살았던 이승만 정권시
절에조차도 일제시대의 법령 행정체계 관료조직을 그대로 계승했고 정치 경
제 사회 문화전반에 걸쳐 일제시대부터의 정치가 관료 문화.예술인 그리고
학자들이온존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리고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에도 총론적으로는 미국 경제의 모델
을 취했을지라도 각론에 있어서 우리의 모델이 되어왔던 것은 사실상일본경
제와 산업이었으며 이러한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아니 변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일본이 세계 제1의 경제대국으로 등장함에 따라 이같은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화되어갈 전망이다.
그러면 일본경제및 산업 또는 일본 기업들에 대한 연구는 누가 하는가.아
니 최소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경제상황과 유사한 일본의 사례를 수
집 분석하고 경제운용의 토대로 삼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학파"란 본래 "학문상의 원칙과 경향을 같이하는 유파"를 뜻하는 말이지
만 그렇게 따지자면 우리나라에 학파라고 구분지을수 있는 경제학자들의 그
룹은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편의상 일본에서 수학하고 학위를
받은 사람, 또는 일본에서 일정기간 경제경영 연구를 지속한 사람들 그래
서 일본경제학의 특성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체계화한 사람들을 "일본학파"
로 정의하자.

우리나라와 일본간의 역사및 정치 경제 사회상황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소위 일본학파의 가장 큰 특징이다.일본학파는해방전과
해방후, 국교정상화 전후, 그리고 80년대를 전후해서 아주 뚜렷한 분기점을
나타낸다.해방전의 일본학파는 태평양전쟁 전 세대와 그이후의 학도병 세
대로 구분된다.
일본의 식민통치가 적어도 자기생전에는 계속될 것으로 생각했던 전쟁전
세대는 당시로 말하면 유학인텔리 계층이었다. 그들 중에도 졸업후귀국해서
고교선생(일본인이 아니고서는 대학교수가 될 수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
으로 남았던 사람들, 그리고 관료계층으로 순조롭게 풀린 현실파들, 그리고
월북한 사람들등 다양한 그룹이 존재한다.

그중 당시 동경상과대(현 히도쓰바시대)를 졸업하고 귀국한 뒤 학자및관
료계층으로 성공한 사람들로는 백두진 전국무총리, 신태환 전서울대총장(학
술원회원), 박동묘 전성균관대총장, 구용서 초대 한국은행총재, 이정환 전
한은총재(현 금호석유화학 회장)등이 손꼽을 만하다. 그리고 동경대에서 마
르크시즘에 심취, 전후 사상논쟁에 휘말려 월북한 인사로는백남운씨(북한에
서 교육부장관등 역임)가 대표적이다.

이들 1세대의 뒤를 이어 일본유학길에 오른 불운한 학도병 세대는 그야말
로 간발의 차이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일본유학중 때마침시작된
태평양 전쟁의 와중에서 천황과 대일본제국을 위한 학도병으로끌려가게 된
것.
이들중 몇명은 천신만고끝에 살아돌아와 해방된 조국에서 명문고교의인문
사회과 선생으로 활약하다가 60년대 대학들이 증설되면서 대학교수로 자리
를 옮기기도 했다.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안고 살아간 이들 세대로는 지금은
은퇴한 부산대김석환 교수등이 대표적이다.
해방이후부터 65년 국교정상화 전까지는 한.일간 관계가 그야말로 살벌했
다. 일본유학은 아주 은밀히 일본인들의 명의를 빌려 또는 일본과특별한 관
계가 있지 않고는 거의 불가능했다. 이 당시 일본유학파들을소위 "밀항조"
라고 칭하는데 그만큼 일본에 가서 공부한다는 것이 쉽지않았음을 반증하는
단어다.
호남 지주의 아들로 동경대 경제학부와 대학원을 나온 주종환 동국대교수
, 주일공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 히도쓰바시대(일교대)를 나와미버클리
대로 유학, 현재 연세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종빈교수등이어려운시기
일본학파의 맥을 이은 사람들이다.국교정상화 이후 67년 일본문부성 국비장
학생으로 선발돼 일본유학길에오른 연세대 윤기중 교수의 뒤를 이어 일본유
학생들이 다시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한다.

해방전 1세대들에 이어 일본학파 제2세대라고 할 수 있는 60년대말 70년
을 전후해 일본땅에 발을 디딘 이종훈(중앙대) 고시천(건국대) 김영작(국민
대) 신희석(외교안보연구원)교수 등이 당시 동경대에 수학했었다. 또 고려
대 이형순교수(경제학)가 72년에 게이오대에서 박사학위를, 임병윤교수(농
경제학)가 70년에 동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도 이 시기이다.
이들은 동경유학 중 국내 정치상황, 조총련의 접근 등 민감하고 조심스러
운 상황에 자주 내몰렸다. 73년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의 와중에휩쓸린김
영작 교수는 본국에 송환돼 영어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이종훈중앙대교수
는 "당시 일본의 경제상황 자체가 그리 좋을 때가 아니어서장학금은 고사하
고 생활비조차 없는데다 학위는 안주고해서 정말 고생했다"고 회상한다. 반
면에 당시 미국 유학생들은 학위도 빨리 주고 생활비에 장학금에 또한 아르
바이트까지 할 수도 있어서 "미국유학 갔다오면친미파가 되지만 일본유학
갔다오면 반일파가 된다"는 말도 있었다는것.

한일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제4세대는 70년대 후반에 일본유학길에올라
80년대 전반에 돌아온 사람들로 정재영 성균관대교수(와세다대),김도형산업
연구원 일본연구센터소장, 이종윤 외대교수(히도쓰바시대),그리고 그 이후
박진도 충남대교수(동경대), 심승진 경북대교수(게이오대)가 있고 지난 90
년에는 박우희 서울대교수가 동경대에서 박사학위를취득했다.
이밖에 김정연 서울대교수(경영.게이오대), 김형주 성대교수(회계.와세다
대), 이원우 숭실대교수(경영.와세다대), 김영호 경북대교수 등도대표적인
일본학파로 꼽힌다.또 와세다대 대학원에서 수학한 김종현 서울대교수, 히
도쓰바시 경제연구소에서 2년간 교환교수로 있었던 정영일서울대교수, 일본
산업연구원에적을 두었던 조규하전경련전무등도 일본경제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학위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민상기 서울대교수와 어윤대 고대교
수도일본을 비교적 많이 아는 학자로 꼽히고 있다. 미국에서 학위를받았지
만 일본에서 교환교수생활등을 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현해탄 하나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일본학파는미국
학파나 유럽학파에 비해 그야말로 수적으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또미
국학파들이 정.재.관계에서 화려한 스폿라이트를 받은 것과는대조적으로 학
계와 연구소등에 간간이 흩어져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산업연구원의 김도형박사는 "역사적으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60~70년대는 모든 것이 미국 위주였죠. 미국이나 유럽으로의 유학꿈이 좌절
됐을때 대부분 차선으로 일본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고 또 일본의경우 특이
한 학제와 학풍탓으로 박사학위 따려면 최소한 7~10년 소요되니 누가 선호
하겠습니까. 돌아와서 대접을 잘 받는 것도 아니구요"라고설명한다.
일본학파에 대해서는 정통경제학자로 대우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도 있다.
일본은 경제력에 비해 학문적 수준이 뒤떨어진다는 평가도 그러한 분위기를
대변한다.
그러나 중앙대 이종훈교수는 "케인즈 경제학을 해수경제학, 프리드먼의
신고전파 경제학을 호수경제학이라고 한다면 일본경제학은 강수경제학 또는
국민경제학"이라고 설명한다. 일본경제학은 초창기 미국의 경제학을 들여
다가 자신들의 정치 경제 문화적특수성을 감안하여 가장 실용적이면서 사회
주의적 평등에 기초한 경제학적 흐름(강)을 만들어냈다는설명이다.
특히 현장을 중시하는 귀납적 접근방식, 시장경제원리와 국가역할의적절
한 조화라는 측면에서 볼때 일본 경제학이야말로 우리 경제실정에가장 잘
맞는 이론적 틀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또 20세기 초반에동경대를 중
심으로 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평등원리가 국가와 단체를중시하는 일본
문화와 적절히 조화를 이룸으로써 자유주의 개인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원칙으로하는 미국경제학과는 질적으로 다른 독특한 학풍을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일본이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 등장하면서 일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일본유학생들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92년 10월 현재 미국유학생이
전년대비 13% 증가한 3만4천1백51명이었던데 반해 일본유학생은91년의7천4
백93명에서 92년에는 무려 2.8배가 증가한 2만5백85명이었다. 일본어의
필요성, 일본의 기술혁신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이 점증하면서 대학강단에서
도 일본유학파를 선호하는 추세다.

일본 경제경영연구 서적은 85년까지 단 2권에 불과했으나 90~91년사이에
67권이 출판됐으며 그중 90%가 단순 번역서이고 또 대부분이 성공사례 중
심이다.
경제기획원내에는 이강우 공정거래위 상임위원 등이 중심이 되어 일본파
견(연수) 경험자 19명이 정기적인 일본연구모임을 갖고 있기도 하다.
또 과거 경제사상사나 농경제학 등의 분야에 치우쳤던 연구분야도 80년대
들어 임천석 박사(KIEP) 온기운 김인중 박사(KIET)등 젊은 학자들을중심으
로 국제경제 산업조직등 특정분야를 연구한 목적의식이 뚜렷한 일본학파가
뒤를 잇고 있다.
미국경제학적 방법론으로는 절대로 한국경제를 제대로 분석할 수 없으며
일본경제학의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접근방법이 우리에게 보다 적합하고 유
용하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이미 현실적으로도 증명되고있다는 것
이 일본학파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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