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4

[김시덕의 명저로 읽는 일본의 쟁점](7)지배층보다 피지배층 역사에 주목…한국의 ‘민족주의’ 돌아보게 해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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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의 명저로 읽는 일본의 쟁점](7)지배층보다 피지배층 역사에 주목…한국의 ‘민족주의’ 돌아보게 해 - 경향신문
김시덕의 명저로 읽는 일본의 쟁점
(7)지배층보다 피지배층 역사에 주목…한국의 ‘민족주의’ 돌아보게 해


일본 이바라키현 가스미가우라·기타우라 연안(위 사진)과 나가노현의 산촌 기소마치의 풍경(아래). <고문서 반납 여행>의 저자인 아미노 요시히코는 이들 하안·호반 지역이나 어촌·산촌 등의 평범한 주민들 삶에 주목하고 연구했다. 김시덕 제공
김시덕 | 문헌학자2020.01.12 21:42 입력

역사학자 아미노 요시히코 ‘고문서 반납여행’

고문헌을 다루는 연구자로 살아오면서 이제까지 세 번의 행운을 경험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조선에서 약탈해 간 <동국통감>을 에도시대 일본에서 새로 찍은 <신간 동국통감>의 판목(板木), 즉 책을 새긴 목판을 지금의 근무처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서고에서 발견한 것이 첫 번째다. 이 판목은 1919년 일본 교토에서 조선총독부로 기증된 뒤 행방이 묘연했었다. 임진왜란 후 부산 왜관을 통해 조선에서 유출된 <징비록>의 한문 본문을 세계에서 최초로 다른 언어로 번역한 책인 <통속 징비록>을 지난해 말 히로시마시립도서관에서 발견한 것이 두 번째다. 이 책은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 도심에 미군이 원자폭탄을 투하해서 도서관이 파괴된 뒤 사라진 것으로 생각돼왔다.




세 번째 행운은 오늘 소개할 아미노 요시히코(網野善彦, 1928~2004) 선생의 <고문서 반납여행 - 전후 일본 사학사의 한 컷>(글항아리·2018)을 번역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대학교 학부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던 1999년 일본에서 출판된 이 책은, 내용이 참 좋기 때문에 누군가 한국어로 번역할 것으로 믿어왔다. 하지만 2010년에 일본 유학을 마치고 거의 10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번역하지 않아 나에게 기회가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옮긴이 서문에서 “한편으로는 감개무량하고, 또 한편으로는 수많은 일본책이 번역되는 가운데 이렇게 감동적인 책이 번역되지 않은 현대 한국 사회의 얄팍함이 한탄스럽기도 하다”고 적었다.


지배층 위주의 역사학에 반기
평범한 사람들의 일생 추적
특히 농촌보다는 어·산촌에 주목
그들의 풍요와 역동성 규명



아미노 요시히코는 패전 후 일본의 역사학 연구를 주도한 학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패전 이전 일본 역사학이 지배층 위주의 정치사를 중시한 데 대하여, 아미노는 지배층보다는 피지배민과 피차별민, 농민보다 어민·산민(山民)·비정착민(非定着民)에 주목했다. 아미노의 이러한 역사 연구는 같은 시기 프랑스에서 탄생한 아날 학파(Ecole des Annales)의 연구 경향과 비교되고는 한다.


최근 서양사학자 주경철 선생 등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출간되고 있는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85)의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로 대표되는 아날학파는, 정치사 연구가 주를 이루던 기존 역사학 연구를 지양하고 자연환경으로부터 일반 민중의 삶에 이르는 장기적인 흐름에 주목하는 새로운 역사학 연구를 제창했다. 아미노는 프랑스에서 전개되던 이러한 새로운 역사연구를, 영향에 관계 없이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아미노 요시히코의 학문적 동료인 하야미 아키라(速水融, 1929~2019)는 1960년대 벨기에에서 유학하면서 역사인구학(Historical demography, 歷史人口學)이라는 신생 분야를 접하고 일본에 소개했다. 역사인구학은 몇몇 유명인의 삶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 교회들이 소장하고 있는 교구장부(parish register)나 전근대 일본에서 제작된 슈몬닌베쓰아라타메초(宗門人別改帳) 등을 통해 대규모 인구의 인생 궤적을 총체적으로 연구하는 방식이다. 역사인구학을 이용하면 역사상 특이한 행적을 남겼거나 자신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긴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생을 추적할 수 있게 된다. 하야미 아키라의 역사인구학 연구는 지배층 위주, 정치사 위주의 역사학 연구에 반기를 든 아미노의 학문적 경향과 궤를 같이한다.


에도시대 고문서 “1억점 추정”
최상층부터 최하층까지 기록 남겨
문서 보존 노력한 ‘기록의 민족’


아미노 요시히코와 하야미 아키라의 연구는 “여전히 ‘무진장’이라고 부를 만한 분량의 에도시대의 미발견·미조사 문서가 유서 있는 집안의 장롱, 서랍, 궤짝 안에 잠들어 있다”고 아미노가 묘사한 일본의 사회적 조건에 바탕을 둔다. 조선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에도시대에 얼마나 많은 고문서가 제작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유학한 일본의 국립사료관·국문학연구자료관에서 “1억점” 정도는 제작됐으리라는 추측을 들은 바 있다. 전근대 일본의 고문서가 ‘무진장’ 존재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독자분들께서 실감하실 수 있도록, 내가 소장하고 있는 고문헌 가운데 18~19세기 고문서만 모아서 촬영한 사진을 보여드린다. 나같이 컬렉터도 아닌 외국인에게 이 정도의 고문서가 있을 정도이니, 아미노의 표현처럼 근세 일본 고문서는 무진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기록의 민족’이라는 형용사는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지배집단의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해서 ‘기록의 민족’이 아니다. 최상위 지배집단에서 최하층 피차별민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기록을 남기고, 또 모든 것에 앞서서 문서를 보존하려 노력하는 것이 ‘기록의 민족’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1970년대 중반 건설된 서울의 모 주공아파트 관리실에 대량의 서류가 남아있는데 제대로 보존도 되지 않고 또 조사도 시켜주지 않아서 아파트가 재개발되면 사라질 것 같다는 증언을 동료 연구자에게서 들은 바 있다. 현대 한국에서 제작된 문헌도 상황이 이럴진대 전근대 문헌은 어떻겠는가?


아미노 요시히코는 게센누마와 같은 어촌, 가스미가우라·기타우라 호수 연안과 같은 하안(河岸)·호반(湖畔) 지역, 나가노와 같은 산촌 등에 주목하여 이들 지역 주민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규명하려 했다.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에서는 이들 어촌·하안·호반·산촌 지역은 쌀농사가 되지 않는 가난한 지역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아미노는 고문서 및 비문자자료(非文字資料)라 불리는 문서 이외 옛 자료를 연구하여, 쌀농사 중심의 역사관·세계관으로는 알 수 없는 풍요로움과 역동성이 이들 지역에 있었음을 밝혔다. 아미노의 이러한 연구 성과를 대중문화 분야에 도입한 사례 가운데 하나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원령공주(もののけ姬)>다.


김시덕 교수가 소장하고 있는 18~19세기 일본의 고문서. 아미노 요시히코는 에도시대의 “미발견·미조사 문서”들이 집안 장롱 등에 잠들어 있다고 했다.

아미노의 고문서 연구에 따르면, 일본 각지 해안 지역은 쌀농사보다는 어업 및 해운(海運)을 통해 경제적으로 번성하고 도시(都市)로서의 사회적 성격을 띠었다. <고문서 반납여행>에서 언급되는 이시카와현의 노토반도 북쪽 끝에 자리한 도키쿠니 집안은 교토·오사카 등의 일본 중심지에서 홋카이도·사할린에 이르는 장거리 항해를 통해 상업적으로 부를 축적했다. 이 지역을 지배한 영주 가문이 작성한 공식 기록에는 가난한 농부로 기록되어 있는 어떤 사람이, 도키쿠니 가문에서 발견된 문서에 따르면 대규모 선단(船團)에 종사하여 부를 축적한 선원인 경우도 있다. 도쿠가와 막부가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주자학적 관념을 일본에 정착시키려 한 바람에, 그들이 일본의 변경이라고 간주한 어촌에서 전개되고 있던 이러한 상업적 번성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아미노 스스로도 1950년대 초 처음 이 지역에 발을 들였을 때는 “논밭이 적으므로 가난한 지역일 것이라 짐작”했고, 육로로 접근하는 것이 힘든 이 지역은 유배지라는 선입견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조선으로 말하면 제주도·흑산도에 해당한다고 할까. 조선 정부도 사농공상적 계급 질서를 사회 구석구석에 관철하려 했고,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관념하에 피지배층은 농업에 종사하는 것이 근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유배된 흑산도 인근 우이도의 문순득이 동중국해에서 표류하여 류큐, 필리핀 루손, 마카오, 베이징을 거쳐 귀국할 때 동행한 조선의 사대부는 <표류주자가(漂流舟子歌)>라는 한시를 지어 “흑산도 민속은 매우 어리석어 바다에서 이익을 쫓느라니 대부분 곤궁하구려 (…) 원하노니 네 고향엘 가거들랑 농사에 안식해서 농사나 힘쓰게나”라고 비판했다.




근대 이후 서해안·한강 루트 보면
아미노의 관점 국내에도 통용
반세기 전 해로는 육로보다 편리


일본이든 한국이든, 불과 50~60년 전까지만 해도 육로로 가는 것보다 바닷길로 가는 것이 더 편리한 지역이 해안지역 곳곳에 존재했다. 육로로 접근하는 것이 어렵다고 해서 이들 지역이 가난한 곳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이들 지역은 해운과 어업을 통해 번성했다. 내가 소장한 <징비록>의 1695년 일본 교토판 <조선 징비록>에는 오늘날 니가타현에 해당하는 에치고(越後)의 대본소(貸本所) 도장이 찍혀 있다. 당시 교토에서 에치고로 갈 때는 육로보다는 해상 루트를 이용했다. 중부 일본에서 쌀을 실은 대규모 선단이 홋카이도·사할린까지 가서는, 중부 일본에서 특용작물을 재배할 때 쓰는 비료를 제조하기 위한 청어를 실어오는 해상무역 루트의 중심에 자리한 것이 에치고 지역이었다. 교토에서 <조선 징비록>을 사서 읽던 선원이 에치고쯤에서 책을 다 읽고는 대본소에 판 것 같다.


피지배층 역사 경시하고
지배층 찬미 역사관의 씨줄과
주변국 증오의 날줄에 사로잡힌
한국에도 이들의 비판의식 통해


<고문서 반납여행>을 번역출판한 뒤 한국 학계에서 받은 반응 가운데 가장 많았던 것이 바로, 이 어촌과 해상 루트에 대한 문제였다. “저자가 고문서 연구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보여준 피지배층과, 변경, 그리고 소수자 등에 대해 보여준 각별한 관심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 여전히 한국의 전통문화를 다루는 대부분의 고문서 연구들은 국왕이나 양반, 문중 중심 등 주로 상위 지배계층의 모습에 편중된 현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책의 저자가 깊은 관심을 드러낸 바닷가 사람들의 역사서술을 우리에게 기대하기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김수태 <역사여행의 새로운 길을 들려준 고문서 이야기>).


서울 영등포 청과시장의 강화섬쌀 하리정미소(위 사진)와 마포구 공덕동 재래시장의 연백이발관·충남상회(아래). 이들 가게는 한강을 중심으로 근대까지도 활발했던 서해안의 해상루트를 증언하는 흔적이다. 김시덕 제공

어떤 연구자분들은 아미노 요시히코의 주장에 동조하면서도, 조선시대 어촌 문서는 많이 흩어졌기 때문에 아미노의 연구를 한국 학계가 도입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추측을 들려주셨다. 한편 부산 지역의 어떤 연구자분은, 본인이 남해안 어촌 지역을 조사하면서 숱한 고문서를 발견했지만, 학계에서 이들 고문서의 존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하신 바 있다.


나는 전근대보다는 근대 이후 한반도 서해안 및 한강 루트에 주목하면 아미노 선생의 관점을 이용할 수 있으리라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평안도-황해도-경기도-충청남도-전라도는 1960년대까지 뱃길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했기 때문에, 6·25 전쟁 때의 월남민과 고도성장기 초기 이촌향도민도 이 해상루트를 이용했다. 지난해 출간한 <갈등도시>에서 소개한 바 있는, 서울시 서부의 한강 북쪽 기슭에 자리한 마포구 공덕동 재래시장의 ‘연백이발관·충남상회’와 같은 경우가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황해도 연백과 충청남도가, 서해안에서 한강 루트를 통해 내륙으로 들어와 서울시 서부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한강 남쪽 기슭 영등포 청과시장에 ‘강화섬쌀 하리정미소’가 자리한 것도, 강화도에서 김포·인천·부천을 거쳐 영등포로 이어지던 한강 하운을 증언하는 도시화석으로 생각된다. 불과 반세기 전까지 바다와 강은 한반도에서도 육로보다 더욱 편리한 길이었다.


나는 이 책의 옮긴이 서문을 다음과 같은 구절로 맺었다. “피지배층의 역사와 문화를 경시하고 지배층을 찬미하는 굴절된 역사관을 씨줄 삼고, 주변 국가들에 대한 증오심을 날줄 삼은 호전적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21세기 초 대한민국 사회에도 이들의 비판의식이 적용된다고 옮긴이는 생각하고 있다.” 조선시대 말기를 연상시키는 주관적 세계관에 바탕을 둬 외교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는 모습이 보이는 2020년 1월에도 나의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다.

■ 필자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문헌학자이자 인문저술가이다. 2010년 일본에서 간행한 &lt;이국정벌전기의 세계―한반도·류큐열도·에조치>(가사마쇼인)로 일본 고전문학학술상을 외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2011년 2인 공저 <히데요시의 대외 전쟁>(가사마쇼인)은 일본 도서관협회 추천도서로 선정됐다. 10여종의 단행본, 공저, 번역서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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