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k Yuha - 전문가도 아닌 내가 코로나 얘길 좀 썼던 이유는 일본정책도 긍정적이든 반면교사든 참고가 되었으면...
Park Yuha
6 hrs ·

전문가도 아닌 내가 코로나 얘길 좀 썼던 이유는 일본정책도 긍정적이든 반면교사든 참고가 되었으면 해서였다. 그러다가 최근엔 내가 알게 된 일본쪽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말하는 분이 한국에도 계시기에 더이상 쓰지 않았었다. 또 일본의 검사를 둘러싼 편견에 대해서는 장부승 교수께서 열심히 지적해 주고 계셨고.
그러다가 어젯밤에 쓰게 된 건 PC적 사고의 어떤 문제를 다시 목도했기 때문이었다. 그 글을 쓴 이는 이렇게 쓰고 있었다. 일본의 소극적 검사대책이 복지정책상 골치덩이였던 노인등 약자를 버리려는 정책이라면서
“늙고 병든 이 몇천명 쯤 죽어나가는 것보다 공포가 확산되어 경제가 둔화되는 것이 더 겁나는, 게다가 어쩌면, 사회적 약자들의 대량 사망이 일종의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이 상황을 재빠르게 가치를 매겨 정책을 택하는 미국과 일본 정치인들의 비열한 선택을 보면 치가 떨릴 지경이다 “라고.
나역시 대남병원사태가 일어났을 때 바로 그런 사태가 될 것을 우려해 그런 문제가 될 가능성을 곧바로 지적했었다. 그리고 이후 격리정책이 바뀌어 중환자들을 옮겨 치료하게 되어 안도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병원에서 사망자가 많이 나온 건 사실이고 이후 대구등에선 의료붕괴사태가 일어나 중증환자면서 치료를 받지 못한 이들이 사망하기도 했다.
이 과정이 보여 준건 발견과 격리를 우선한 정책이 병에 취약한 이들을 사망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공무원조차 격무에 시달려 자살하거나 사고를 일으켜 사망하거나 간호원들의 대량 이탈도 일어났으니 의료자원은 물론 행정자원에 과부하가 걸렸고 그 이유가 이십만이 넘는 “공격적/선제적 검사”에 있었다는 건 명백했다.
말하자면 의도적이 아니라 해도 당사자에겐 유일무이한 “생명”의 존속을 둘러싼 현장에서 “실제로” 약자가 보호되지 못한 측면이 많은 건 아직까지는 한국쪽인 것이 분명하다. 그게 몇사람이 되었건. 그런데도 눈앞에서 이미 일어난 문제보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일본의 정황을 실제 일어났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거나 일어날 것으로 확신하는 오해/오류가, 정의로운 척 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실제로 정의로운 사람들한테서 보인다는 사실이 암담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는 한, 정의로운 척 하는 사람들이 엉터리 정보로 정의로운 사람들을 포섭하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일 수 밖에 없다.
사실 이 글은 어제 아베수상 기자회견에 대해 썼더니 어떤 분이 정부가 아니라 국민들의 생각과 정서에 대해 듣고 싶다고 해서 쓰는 글이다.
물론, 막 통과된 긴급사태선언 특별조치법에 대한 불만(하지만 어쨌든 야당도 협력해 통과시켰다), 갑작스런 학교휴교에 대한 불만,미온적으로 보이는 코로나 검사에 대한 불만, 소비세인상에 대한 불만, 올림픽개최의지에 대한 불만(이들은 코로나 이전부터 비판했다) ,또 사태에 따른 기업들의 신규채용지연에 대한 불만등 국민들의 불만은 당연히 없지 않다. 그리고 그 불만은 당연히 “원래” 아베정부비판자일 경우 더 강하다.
나역시 아베수상의 헌법개정시도를 우려하고 있고 수출규제등 과도하고 갑작스러운 정책에 (그 과정을 이해하면서도) 비판적이지만( 이 역시도 한국에는 과장된 보도와 곡해가 많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비판자가 대부분인 나의 지인들과 모든 정책에서 똑같은 스탠스를 취할 생각은 없다. 어쨌거나 내가 한국인인 한, 내게 더 중요한 건 “일본국민전체를 대표하는 총리”로서의 위치가, 그가 좌파인지 우파인지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좌파여도 역사문제에선 이른바 “법적책임”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국가로서의 스탠스는 다르지 않고, 결국 과거사 문제에서는 보수정부나 진보정부나 다를 바 없다는 걸 과거 민주당 정부가 보여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베수상이 보수우파임은 당연히 참고하지만, 내게 더 중요한 건 그가 얼마만큼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사고를 가졌는지, 동아시아평화구축, 나아가 세계평화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다. 그리고 분명한 건 아베수상 1기 임기 때는 그 부인이 한류팬이라면서 한국기사도 호의적인 내용 일색이었다는 사실. 그러니 변한 건 아베수상이 아니라 우리쪽 언론과 사고다. 중요한 건 그렇게 만든 담론이 많은 부분 정확하지 않았다는 점이고.
많은 한국인들은 일본을 비민주적사회로 간주하고, 일본인은 그런 정부에 꼼짝 못하는 식으로 순종적이거나 바보같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런 사고의 연원을 조사한 적은 없지만 아마도 “우리는 혁명을 이루지 못했는데 당신들은 해냈다”며 한국에는 선망의 시선을, 자국에 대해서는 자괴감과 자조로 일관해 온 일본의 좌파지식인/시민들로부터 발생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그건 “일본국민의 반”의 생각일 뿐이고 나머지 반의 생각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더 중요한 건 또, 일본에 대한 반감을 가진 사람일수록 이런 “(또다른) 일본의 생각”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건 이념적 동질성이 주는 무조건적 신뢰가 만드는 일이겠지만, 좌파로서의 생각과 “한국인”으로서의 생각이 언제나 같아야 하는 건 아니다.
일본인은 “통제하기 쉬운 민족”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이런 생각도 그런 일본좌파의 생각이다. 분명 일본은 전제주의 국가시절에 통제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고 그 잔재는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아베수상이 “긴급사태선언”이 가능하도록 하는 법안을 일부러 만들었다는 건, 그런 잔재들이 실제 통제로 기능하는 건 아니었다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재명지사가 교회에 대해 “행정명령”을 하려다 취소하거나 박원순 시장이 신천지교인을 “고발”하는 사태는 오히려 한국에 (옳건그르건) “통제”를 위한 법이 마련되지 않고 있었다는 걸 보여준 것이고, 동시에 현재 발동되고 있는 모든 조치들에 과연 법적인 근거가 있는지 여부가 충분히 검토되고 있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 일이었다.
그럼에도 명령이건 고발이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따라온 한국쪽이 더 “통제가능”한 국민이 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검역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개인정보가 제공되고 노출되고 있는 정황도 그 중 하나. 물론 그 “통제”—일제잔재가 오히려 극대화되어 남아 있는 나라는 북한이다.
손정의씨가 검사키트를 백만개 제공하겠다고 했다가 마스크제공으로 바꾼 건 일본의 전문가와 정책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없었다가 뒤늦게 참고한 결과로 보인다.
물론 일본의 정책이 옳았는지 여부는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현대일본은 우생보호법을 발동시킨 과거의 일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지식을 PC적으로 소환해 타자를 이해하는 건, 일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자신을 위해 백해무익하다.
지금은 인류가 처음 만난 적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중이고 실수나 실패는 당연히 생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정책주체가 어디가 되었건 좀더 관대한 눈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피해를 당하는 중인데도 기존의 분열을 고착화하고 정신적 국경을 더 높이 쌓는 일에 몰두하는 게 아니라.
정책과 의료와 경제와 일상에 관해 더 원활한 소통이 필요하다. 그 길만이, 개인차원에서든 국가차원에서든 모든 위기극복의 첩경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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