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도전하는 여성 불자들에게 불교의 밝은 미래 달려 있다”
노덕현 기자
승인 2014.06.20
조은수 교수 (불교학연구회장)
조은수 교수는 …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 박사과정 수료 후 도미하여 미국 버클리 대학교에서 박사, 미국 미시간 대학교 아시아언어문화학과 조교수를 역임하고 2004년 이래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불교 철학 전공. 논문으로 ‘원효에 있어서 진리의 존재론적 지위’, ‘불교의 경전 주해 전통과 그 방법론적 특징’, ‘범망경(梵網經) 이본을 통한 고려대장경과 돈황(敦煌)유서(遺書) 비교연구’, ‘종교적 신앙심과 마술적 영험 - 삼국유사의 불교적 읽기’ 등이 있다. 저술로는 <Korean Buddhist Nuns and Laywomen: Hidden Histories, Enduring Vitality> (SUNY Press, 2011), <Jikji simgyeong> (‘직지심경’ 2인 공동 영역)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국제한국학센터 초대 소장, 유네스코 아시아 태평양지역 세계기록문화유산 출판소위원회 의장, 그리고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소장을 역임. 현재 불교학연구회 회장, 샤카디타 세계불교여성연합 부회장을 맡고 있다.재수생 시절 조계사에서 불교와 인연서울대 불교학생회에서 불심 다져
철학 대학원 진학 후 본격적으로 공부
美버클리대서 박사 후 미시간대서 교수
2004년 한국 돌아와 후학 양성 매진
GEP 프로그램 등 글로벌 역량 강화 나서
한국불교학계, 세계불교학계와 소통에 앞장
“교육이 처음이자 끝” 인재 양성 강조
대학 진학에 실패한 재수생 시절, 불교를 접하고 인생의 새로운 길을 고민한 한 소녀가 있었다. 매일 아침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목탁소리를 들으며 꿈을 키운 그녀는 마침내 서울대에 진학했고, 재수시절 받은 감화로 이윽고 세계적인 불교학자가 돼 불교학의 세계화로 그 꿈을 실현하고 있다. 서울대 철학과 조은수 교수의 이야기다. 조은수 교수는 서울대 개교 60년 만에 처음으로 철학과에서 여교수가 된 이로, 세간의 주목과 관심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힘든 재수생활, 조계사에서 불교 접해
조은수 교수가 불교를 접하게 된 것은 정말 많은 인연이 작용했다. 사실 조은수 교수는 학부시절 약대를 나왔다. 전공분야가 전혀 다른 불교를 뒤늦게 공부해 세계적인 석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조 교수가 ‘약사의 길’ 대신 ‘불교 철학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조계사 부처님의 가피였다. 40여 년 전, 조은수 교수는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서울 종로학원에서 재수 생활을 했다. 당시 종로학원의 위치가 바로 조계사 대웅전 앞이었다. 조은수 교수는 힘든 재수 생활 중 가슴이 답답할 때면 조계사 대웅전을 찾아 절도하고 앉아서 쉬며 마음을 놓였다.
조 교수는 “민감한 청소년이었던 그 시절, 대웅전에 앉아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마음이 청량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치성한 마음이 솟으면서 불교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됐지요”라고 말했다.
불교와 인연을 쌓은 조 교수는 마침내 1977년 서울대에 입학한다. 여기서도 조 교수의 신심은 높아져 갔다. 조 교수는 서울대 총불교학생회에 가입해 수업 시간에도 몰래몰래 철학과 수업을 듣곤 했다. 대학에 진학해 접한 인도철학자 라지니쉬의 저서는 조 교수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라지니쉬는 당시 서구사회에서 크게 주목받은 철학자 중 한명이었다.
“제 대학생활은 불교학생회 선후배들과 함께 토론하고, 여름이면 사찰수련회를 가 같이 공부하고, 기도하는 것이 가장 컸어요. 철학서를 보고 불교학생회에서 동기, 선후배들과 토론하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해인사에서는 성철 스님께 가서 배우고, 또 혼나기도 했죠. 그때 불교학생회는 그 속에 진리뿐만이 아니라 청년이 꿈꿀 수 있는 삶의 하나였어요.”
불교에 심취한 조 교수는 약대를 졸업 한 후 부모님 몰래 서울대 철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철학을 하는 여성이 많지 않던 시절,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굳은 결심 하에 미국 유학, 교수의 길 걸어
서울대 철학 대학원은 동양철학뿐만 아니라 서양철학 등 여러 학문을 두루 배우는 기회가 됐다. 석사를 마친 조 교수는 더 넓은 세상으로 도전하는 것을 선택한다. 바로 미국 유학이다.
“그때는 대학원에 불교 쪽 교수님은 심재룡 교수님 한분셨어요. 공부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미국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그때 결혼을 해 아이도 6살이었고,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죠. 그런데 미국의 좋은 점은 대학원에 입학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공부를 마칠 때까지는 그 것을 보장해준다는 거였죠. 과감히 미국행을 결심했어요.”
7년 만에 버클리대에서 ‘아비달마’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조 교수는 미국 미시간대에서 조교수를 지내게 된다. 이후 7년을 합해 총 15년 동안 미국에서 있었던 그녀는 2004년 8월 교수로 모교인 서울대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
“서울대학 차원에서도 동양철학, 특히 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때입니다. 한국사회가 크게 변화하며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 예전과 달리 여성이기에 받는 차별이 줄어든 점도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불교를 공부하지도 않았음에도 이렇게 학생들에게 불교를 가르칠 수 있는 위치까지 오게 된 건 모두 부처님의 가피 덕분입니다.”
2013년 인도 바이샬리에서 열린 샤카디타 세계여성불자대회에 참가한 비구니 스님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세계불교학회와 소통하는데 앞장조은수 교수는 현재 학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젊은 학자들이 세계불교학계와 소통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조 교수는 현재 규장각에서도 연구 활동을 하며, 서울시 마포 대안학교 이사장 등 다양한 일을 맡고 있다. 특히 2013년부터는 불교학연구회 회장을 맡아 불교학계 소통에도 앞장서고 있다. 나아가 그 안에서 좀 더 심도 깊은 불교철학을 연구하고자 당당하게 의견을 개진해 나가고 있다.
“오는 8월이면 제가 귀국한지 10년이 됩니다. 첫째는 귀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작고하신 은사 심재룡 교수님의 발자취를 잘 이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이 되요. 둘째는 제가 한국사회, 학계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에 대해 돌아보게 됩니다.”
조 교수는 故심재룡 교수에 대해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토론하길 즐겨했다고 회고했다. 조 교수는 “교수님은 한국 선불교 전통의 정체성을 학문의 장 속에서 이론적으로 확립하신 분”이라며 “고려 보조지눌에 의해 정립된 선의 이론과 수행법이 조선 불교수행 규범으로 계승된 점을 밝히셨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어 “돈오점수에 대한 이론화 작업은 후에 성철 스님에 의해 비판을 받으며 새로운 학문적 논변의 계기가 됐고, 그런 논변 하에 한국불교의 학문은 더욱 풍성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그런 점에서 이러한 활발한 논변이 학계에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 불교학자들의 수준은 매우 높아요. 다만 그 수준이 이론을 세우거나 학문적 논변으로 이어지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조 교수는 “불교학계에 10여종의 학술지가 있고, 많은 논문이 양산되고 있지만 일방적인 배포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여기에 조 교수는 한국불교학계가 세계불교학계와 소통이 부족한 점도 지적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해외에서의 한국학자들의 활동이 저조한 것입니다. 일본학계와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일본불교가 세계학계에 큰 관심을 받는 것은 지속적인 소통이 영향을 미친 겁니다. 한국불교는 일본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음에도 주목받지 못하고 있어요.”
조 교수는 한국학계가 적극적으로 세계대회 등에 참여해 논문 등을 발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불교에 관심 있는 해외 여러 학자들이 말합니다. 한국불교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다고요. 이는 한국학자들의 잘못이 커요. 함께 소통하며 이들에게 정보를 줘야 합니다. 매년 열리는 세계불교학회(IABS)에도 참여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북미-유럽-일본 학자들입니다.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입니다.”
조 교수는 2011년 태국 IABS대회에 박경준 교수, 서재영 박사, 이도흠 교수 등과 한국불교의 환경보호 운동에 대해 발표를 하기도 했다.
“불교학계에서 소통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 불교계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세계학자들과 교류라며, 해외 발표 등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자 해요.”
이러한 조 교수의 영향으로 올해 8월 비엔나에서 열리는 IABS에는 서울대 석ㆍ박사 10명이 발표를 한다.
조계종 국제선센터에서 열린 비구니 글로벌 역량강화 프로그램(B-GEP)에서 강연하는 모습불교 여성의식 신장ㆍ교육 발전에 기여 할 것조은수 교수는 불교여성개발원 불교여성연구소 소장, 샤카디타 세계불교여성연합 부회장 등을 맡아 불교여성인권 신장에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불교계에서는 그동안 여성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한국불교 만 보더라도 조선시대 불교 명맥을 이어간 것은 재가여성들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 가치를 단순히 기복불교라고 해서 폄하 받는 것이 현재 불교계의 시선입니다. 사찰에서 여성관이 변화하고 여성의 의식화하고 교육시키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조 교수는 “오히려 여성들이 스스로를 의존적으로 만들고 있다”며 “비구니 스님과 재가 여성이 불교계 발전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은수 교수는 국제적으로도 샤카디타 여성불자국제협회(Sakyadhita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Buddhist Women)에서 활동하고 있다. 샤카디타는 ‘석가의 딸들’이라는 뜻으로 1987년 인도 보드가야에서 결성된 세계 최대의 불교 여성단체로 세계 45개국 2000여명의 회원이 활동한다.
조 교수는 샤캬디타 개최하는 세계여성불자대회(Sakyadhita International Conference) 논문집을 한글로 번역해 출간하는 한편 국내외 비구니 스님들과 여성 불자들의 교류 증진을 통한 국제불교네트워크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이와 함께 조은수 교수는 GEP(Global Empowerment Project)도 교장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GEP는 불교계의 여성인재, 차세대 글로벌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1년에 한 차례 20여 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개설해 12주 간 영어 능력 등을 집중적으로 배양하는 프로그램이다. 비구니 스님을 대상으로하는 B-GEP도 명법 스님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2011년 제1차 GEP 수료생들은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12차 세계여성불자대회에서 논문 번역서를 만들고, 컨퍼런스 발표 통역을 수행하는 성과를 냈으며 제3차 수료생들은 인도 바이살리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여성불자대회에 참가해 통역과 번역봉사자로 활약했다.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조 교수의 꿈은 무엇일까. 조 교수는 인재양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지난 3월에 뉴욕에서 미국고등교육재단 장학금 심사를 진행했다”며 “세계에 불교학을 진흥시키기 위해 홍콩의 부호 로버트 호가 기부한 기금으로 수백 명의 교수와 학자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조 교수는 이어 “한국에도 이런 분들이 많다. 세계적인 학자를 키우기 위해 힘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교육이 처음이자 끝이죠. 불교정신에 입각해 세계에 당당히 활동하는 그런 인재들을 키워내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조 교수는 “교육은 처음이자 끝”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불교정신에 입각해 세계에서 당당히 활동하는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며 앞으로도 자신의 활발한 연구 활동과 함께 후학들을 양성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인터뷰 하는 내내 조은수 교수에게서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이미지가 물씬 풍겼다. 부드러움, 우아함 속에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삶을 살아가는 불자들의 향기가 조은수 교수에게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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