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昇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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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친께서 공유한 어떤 분의 포스팅을 보다가 걸리는 구절이 있었다. 이 분은 '업자', 그러니까 역사학의 프로페셔널은 아니지만, 매스미디어와 대중출판을 통해 많은 영향을 미치고 계신 분이라 생각되어 감히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아마도 영혼 없는 '숫자'로만 역사를 설명하려는 이영훈 선생 등의 연구 방법(태도)에 대해 화가 많이 나신 듯 한데, 머리가 너무 뜨거워지신 탓인지, '피가 흐르는 생생한 역사'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사실관계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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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이전에는 아예 경찰이 임의로 누군가를 지목해서 끌고 와서는 엉덩이 까고 쇠좃매로 피 철철 날 때까지 때릴 수 있는 조선 태형령이 엄존하고 있었다는 사실 앞에서 그 ‘근대화’의 의미를 숫자로 증명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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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태형령'의 잔혹함을 통해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식민통치의 근대적이지 않은 부분, 또는 의도적으로 잔존시킨 전근대성을 설명하려 했으나(이 자체에 이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태형령'에 대한 이해가 틀려 있거나, 또는 읽는 이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킬 만한 부분이 있다.
(1) 조선태형령은 경범죄를 포함한 형사범에 대한 '처벌의 방법'을 규정한 것이지, 그 자체 내에 무엇이 죄가 되고 죄가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요컨대 "임의로 누군가를 지목해서 끌고" 오는 것 자체는 '조선태형령'의 규정 사항이 아니다.
(2) 아무튼 끌고 와서는 '쇠좆매', 그러니까 아마도 숫소의 성기로 만든 몽둥이같은 걸로 피가 나도록 때렸다고 하는데(어디 『장길산』같은 데 나오는 시장바닥 똘마니들의 무기를 연상케 한다) , 이는 사실과 다르다. '조선태형령 시행규칙' 제11조에서 재질(대나무)을 비롯하여 길이와 두께, 너비 및 삼베로 감싸서 매듭을 지어 묶는 것까지, 형벌에 사용하는 태(笞)를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3) 이건 단순한 레토릭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되지만, "피 철철 날 때까지 때릴 수 있는" 이라는 수사 역시 사실관계의 오해를 불러 일으킬 여지가 있다.
'조선태형령' 제7조에서는 태형은 한번에 30대 단위로 시행토록 규정하고 있다. 말하자면 피가 안나도 30대 이상은 못때리는 것이고, 피가 나더라도 30대 채울 때까지는 아랑곳 않고 계속 때린다는 말이 되겠다.
* '조선태형령'에 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으신 분은, 하기의 연구를 참조.
염복규「1910년대 일제의 태형제도 시행과 운용 」『역사와현실』제53호.


94박인식, 정혜경 and 92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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