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4

알라딘: 정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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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절의 역사 - 조선 지식인의 성 담론
이숙인 (지은이)푸른역사201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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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424쪽
152*223mm (A5신)
620g
ISBN : 9791156120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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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정절'의 키워드로 조선시대의 내밀한 역사를 살핀 책. 저자 이숙인(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은, 정절이 조선시대 역사의 내밀한 원리를 읽어내기에 유용한 개념임에 착안, 남녀의 문제와 부부의 문제가 결합된 정절은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는 상호 관계성의 개념이지만, 조선에서는 여성 일방의 의무개념으로 전개되었다고 말한다.

또 순결과 신의로써 몸과 마음을 통괄하는 이 정절 개념은 유교이념의 조선 사회를 이끌어온 사실상의 일등공신이었고, 신하의 충절과 아내의 정절이 한 쌍을 이루는 유교적인 정치체제에서 정절은 가족을 유지하고 충절은 국가를 지탱하는 이념이었다. 정절은 임금에 대한 신하의 충과 어버이에 대한 자식의 효와 같은 맥락에서 제기된 하위자의 의무였다. 또한 정절은 부부의 사적 관계를 반영한 도덕 개념이지만 삼강의 질서로 편입되면서 사회 및 국가의 이념과 결부된 공공의 것이 된다.

정절을 지킨 아내를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보상하고 '정절을 해친' 아내에 대해 국가가 분노하고 응징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는가. 정절은 곧 국법이었다. 이 책은 정절에 내포된 이러한 복합적인 의미와 그 숨겨진 비밀을 밝힘으로써 조선시대 여성의 또 다른 진실을 담아냈다.


목차


서설

1부 정절의 법과 제도
정절의 법과 예禮
- 정절의 법: 구상에서 제정으로
- 정절의 예제: 향약을 중심을

실행失行 여성 처벌
- 실행의 범주와 처벌의 양상
- 음행에 대한 법 가부장의 분노

정절 여성 포상
- 수절 과부와 수신전守信田
- 정절에 대한 법 가부장의 격려

2부 정절의 문화정치학
절부의 발굴
- 절부 발굴의 실상
- 절부 발굴의 이념

실행의 검열
- 실행의 발명
- 실행녀의 자손

3부 정절의 학습과 지식
정절의 학습
- 행실도行實圖 속의 정절
- 교화서를 통한 정절의 유포

정절의 지식체계
- 정貞과 절節: 성적 순결과 사회적 의무
- 조선 지식인의 성性 인식

4부 정절의 사건과 논쟁
정절의 사건
- 음부淫婦와 간부奸夫들
- 과부의 성과 소문

정절의 논쟁
- 개가 논쟁
- 열녀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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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숙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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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중국 고대 경전을 통한 여성사상을 연구했다. 동아시아학술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서 한국 사상 및 고전 여성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정절의 역사』 『동아시아 고대의 여성사상』 『신사임당』 등이 있고, 역서로 『열녀전』 『여사서』가 있다.


최근작 : <되살아나는 여성>,<오륜행실도>,<조선의 왕비 기록으로 만나다> … 총 27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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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동학.천도교와 기독교의 갈등과 연대, 1893~1919>,<몸젠의 로마사 5>,<고백하는 사람들>등 총 274종
대표분야 : 역사 7위 (브랜드 지수 423,415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정절’ 프로젝트, ‘조선 여인’을 만들다
―조선의 정치, 제도, 문화, 지식, 담론을 통해 ‘내밀한’
국가 원리 정절의 실체를 규명하다

‘정절’이라는 두 단어 앞에서 우리가 그리는 그림은 비슷할 것이다. 소복을 입고 언제든 가슴에 찬 은장도를 꺼내들 준비가 된 여인. 이 여인들이 금과옥조로 여겼을 말이 있다. 평생 한 남자, 즉 한 남편만을 섬겨야 하며, 일생 동안 아버지, 남편, 아들의 뜻을 따르는 것이 여자의 도리임을 뜻하는 일부종사와 삼종지도. 그 연원을 따져보면 조선 시대 여성의 잔혹한 역사를 탄생시킨 내밀한 국가의 의도와 만나게 된다.
‘정절’의 키워드로 조선시대의 내밀한 역사를 살핀 책 ≪정절의 역사≫이 출간되었다. 저자 이숙인(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은, 정절이 조선시대 역사의 내밀한 원리를 읽어내기에 유용한 개념임에 착안, 남녀의 문제와 부부의 문제가 결합된 정절은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는 상호 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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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절은조선의국법으로,영조의딸화순옹주도열녀가되고자영조의극력만류에도죽은남편을따라자결했다.정절은왕의부정도이길만큼컸다.음행소문의주모자로몰려곤욕을치른남명조식등흥미로운이야기가많다.환향녀를위해고투한최명길,역시큰정치인이다.
lawplex 2014-11-2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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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절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사회의 장벽


















김원숙 「신부」 2007년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알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알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잡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서정주 ‘신부’)





여인이 불 켜진 방안에 혼자 앉아있고, 댓돌 위에 고무신이 한 켤레만 가지런히 놓여있다. 문틈으로 나와 있는 옷자락은 첫날밤을 앞두는 아리따운 신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말았다. 혼인 첫날밤에 생긴 오해로 신부는 평생을 그대로 앉아 있다. 먼 훗날 신랑의 손길이 닿자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았다.



이 시를 읽으면 슬픔과 외로움이 느껴진다. 한 편의 전설과 같은 시 속에 외롭고 슬픈 신부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기다리다 한 줌 재가 된다는 것. 이 시 속에는 우리나라 옛날 여인들의 한(恨)이 있다.



수절을 미덕으로 삼았던 한국 여인의 애틋한 삶을 서사적으로 표현한 이 시는 유교적 열녀의 이미지를 신화적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조선 시대 여성의 정절(貞節)은 남성의 충절(忠節)과 더불어 마땅히 지켜야 할 윤리적 규범이자 인간적 덕목이었다.



농촌 마을을 지나다 보면 마을 어귀나 도로 주변에서 문 모양의 나무 건축물들이 보호 울타리 속에 서 있는 것을 가끔 보게 된다. 아마도 우리가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유적일 것이다. 이런 건축물이 '정려'(旌閭)이다. 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를 표창하기 위해 마을 입구나 집 앞에 세우는 문을 말한다.



충신이나 효자, 열녀에 대해 국가에서 상을 내렸다는 이야기는 이미 삼국시대에도 나오지만, 이를 정려와 같은 사회제도로 정비한 것은 조선 시대였다. 태조는 조선을 세워 왕이 된 다음, 충신이나 효자, 열녀의 행실을 널리 권장하고, 정려를 세워 모범으로 삼도록 했다. 이후 조선의 조정에서는 각 고을 수령의 추천을 받아서 연초에 국가 차원에서 충신이나 효자, 열녀를 결정했다. 충신이나 효자, 열녀로 인정되면 그 집안사람들은 부역이나 조세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이를 ‘복호’(復戶)라고 한다.



정려가 오늘날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이를 가문의 영예로 여겨 잘 보존했기 때문이다. 또한, 정려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구실을 했다. 가족윤리가 강조되는 5월에 정려는 전통 윤리의 상징으로 되새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정려가 가지는 의미가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정려를 통해 지키고자 했던 윤리들은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삶을 규제하기도 했다. 정려가 세워진 집안의 후손들은 알게 모르게 그와 같은 삶을 따라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다. 특히 이러한 압력을 강하게 받았던 것은 여성이었다. 정려가 내려진 인물 중 다수는 여성이었는데, 이는 남편에 대한 정절의 대가였다. 이는 평민이나 노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정절은 정려가 요구하는 여성이 지켜야 할 가장 우선적인 덕목이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했을 경우에는 사회적인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재혼한 여성의 자식은 벼슬길에 오르는데 제한을 받았다.



남녀 문제와 부부의 문제가 결합한 정절은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상호 개념이지만 조선에서는 여성 일방의 의무개념으로 전개되었다. 소복을 입고 언제든 가슴에 찬 은장도를 꺼내 들 준비가 된 여인. 서정주의 시에 나오는 신부처럼 평생 한 남자, 즉 한 남편만을 섬기는 여인. 전란 통에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여인. 그 연원을 따져보면 조선 시대 여성의 잔혹한 역사를 탄생시킨 내밀한 국가의 의도와 만나게 된다. 신하의 충절과 아내의 정절이 한 쌍을 이루는 유교적인 정치체제에서 정절은 가족을 유지하고 충절은 국가를 지탱하는 이념이었다. 즉 정절은 국법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부부 사이의 개인적 도덕인 정절을 국가가 관리했다는 뜻이다. 이 시기 정절을 지킨 아내에게는 국가 차원의 보상이 이뤄졌고, 반대로 개가한 과부 등 ‘정절을 해친’ 아내는 국가가 나서서 분노하고 응징하기까지 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정절을 어긴 이른바 실행녀(失行女)의 남성 가족은 관직에서 물러나거나 관직 진입 자체가 어려웠다. ‘자녀안'(姿女案)이라 하여 양반 출신으로 부정한 짓을 하거나 세 번 이상 개가한 여성의 소행을 적어 그 자손의 관직 등용을 제한했다. 이러한 정절과 관련된 법과 제도는 국가 차원에서 정절 여성을 발굴하는 동시에 여성의 음란행위를 감시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정절 이데올로기’는 순수혈통을 지켜내기 위해 여성들의 성을 구속하였고, 이 범주에서 벗어난 여성들에게는 유·무형의 가혹한 처벌이 주어졌다. 가부장적 사회의 잣대로 이분화한 순결한 여성과 타락한 여성으로 재단한다. 우리는 후자에 속하는 여성에 대한 경멸의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을 ‘뭔가 당할 만했겠지’라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심지어 가슴이 파인 상의에, 허벅지가 훤하게 드러나는 짧은 치마 같은 야한 느낌이 드는 옷차림이 성범죄를 유발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여성들이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는 식의 여성책임론이 나온다. 이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내려오는 여성의 정조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여성이 열녀라는 타이틀을 받으면 그 여성뿐만 아니라 가문 전체에도 영광이었다. 하지만, 한 여성이 여성으로 사는 삶을 희생하는 조건으로만 사회적 출세를, 그것도 다 늙은 다음에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여성 개인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조선 시대를 절대적으로 지배한 유교라는 사상과 잦은 외적의 침입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의 수난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조선을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장벽 ‘정절 이데올로기’에 부딪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조선 시대 여인들은 수천수만 명이 훨씬 넘게 존재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열녀의 죽음이 과연 그 시대에 타인에 의해 정당하게 칭송될 수 있는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이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는지 역사에게 물어봐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사회에 희생된 이름 없는 여인들의 넋을 기리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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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4-11-05 공감(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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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女僧은 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十 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山절의 마당귀에 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백석, '여승')






지아비는 집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어린 딸은 돌무덤이 되고 옥수수를 팔던 파리한 여인은 여승이 되었다. 속세의 인연을 끊는 마지막 장면이 처연하다. 이 시는 일제 강점기에 비극적 삶을 살아가는 한 여인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가난 때문에 가족을 잃고 여승이 되기까지의 일생을 서사적으로 잘 그려 내고 있다. 먼 그 시절에도 가족 해체의 슬픔이 있었다. 백석 시가 보여준 애잔한 정서는 일제 강점기 발붙일 곳 없이 떠돌아야 했던 유랑과 상실의 소산이지만 그 원천은 사실 시인된 자가 가진 원형적인 고독과 비애의 결과물이다.



이 시가 쓰인 시기는 일본의 착취와 억압이 심했다. 그때 시대 상황을 반영하여 식민지 현실에 희생당한 민족의 삶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이 시를 단순하게 보면 한 여인의 비극적인 인생사를 압축된 형태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힘겨운 현실 속에 좌절하는 우리나라 여성의 한(恨)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백석 시에 나오는 여승은 속세를 떠나도 가을밤 같이 차게 울었을 것이다. 과부가 기구한 운명을 끝내기 위해 속세와의 단절을 결심하게 된 그녀의 사연을 불경처럼 서러워하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여성이 결혼하지 않고 여승이 된다는 것은 유교 이념이 강한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여성을 사회통합의 구성원으로 수렴되기 위해서는 만든 것이 삼종지도(三從之道)다. 유교 사회에서 여자는 어렸을 때 지아비를 쫓고, 출가해서 혼인하면 남편을 따라야 하며, 노후에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 이렇듯 조선의 여성들은 삼종지도를 숙명으로 여기며 자신의 욕망을 꾹꾹 봉인해야 했다. 과거 여성들에게 최고의 출세와 신분상승은 부유하거나 권력을 가진 남성을 만나 결혼하는 것뿐이었다. 삼종지도의 숙명을 거스르거나 따르지 못한 여성은 국가가 강조하는 유교 질서에 어긋나는 행위로 간주하였다. 결국, 이들에게 억압과 차별의 시대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 같은 곳이 바로 절이었다.





































하지만 조선의 국가 이념은 숭유억불(崇儒抑佛)이었다. 남성 사대부들이 혼인을 피하고 여승이 되는 여성들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그래서 불교와 여성 둘 다 억압할 수 있는 제재와 제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승이 되려는 여성이나 절에 다니는 부녀자에게 '실행죄'(失行)가 적용되었다. 여기서 '실행'이란 '성적인 방종'이라는 의미가 있다. 조선 시대 최초의 법전인 <경제육전>에 보면 여승이 되어 절에 들어가는 여성은 절개를 잃은 것으로 해석했다. 심지어 중이 과부의 집에 출입하거나 만나는 것조차도 실행의 사례로 봤다. 당시 관료들과 사대부들의 기본적인 사고가 이러했다. 절이 문란한 풍습을 조장하고, 부녀자들과 음행을 일삼는 곳이다. 그곳에 출입을 잦거나 여승이 되는 여자는 여성의 정절을 해치는 범죄로 바라봤다.



"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백석 시에 나오는 여승은 과거에 어떤 남편의 아내이자 어린 딸의 어머니였다. 하지만 가정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하고 그녀는 과부가 되었다. 평생 수절하면서 인고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원망에 가을밤 같이 차게 울어야 했다. 가난한 생활 그리고 과부를 향한 차별과 편견 어린 시선은 그녀가 짊어져야 할 이중고였다. 그나마 유일한 핏줄인 딸마저 저 세상을 먼저 떠나보냈다. 모든 것을 상실한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승이 되는 것뿐이었다. 운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불가에 귀의한 여인. 그녀의 모습은 유교의 엄격한 도덕에 의해 억압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여성들의 삶이기도 하다. 고달픈 조선 여성들의 삶을 알고 나서 오랜만에 백석 시를 읽으니까 나도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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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4-11-06 공감 (7) 댓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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