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상고사를 쓴 최태영 옹 (펌) : 네이버 블로그
한국상고사를 쓴 최태영 옹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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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시민
2011. 4. 17. 21:04
(이 글은 1996년 12월 『월간조선』에 발표했던 것입니다. 그때 최태영 옹의 연세 97세, 2005년 11월 30일에 돌아가셨으므로 106세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올해 97세의 崔옹은 노구를 이끌고 우리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가 가르치는 역사는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많이 다른 내용이다. 그는 소학교시절 金九 선생에게 배웠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영국법을 전공했다. 유진오·이광수·양주동과는 친구 사이였고, 한국 학자들이 자타가 공인하는 명저의 저자이기도 하다. 3·1운동에도 참가했고 친일 지식인들의 변절도 바라보았다.
<법학에서 역사학으로>
이 책은 1977년에 낸 원고지 1만4천 장의 방대한 저서로, 숙명여대 제자들이 원교 교정을 보고 그 대학 출판부에서 책으로 만들어준 것. 출간 1주일 만에 학술원 저작상을 수상하고, 훗날 전국대학 교수들의 투표에 의한 역대 최고의 명저로 꼽힌다.
"내 서양법철학 연구는 그것으로 완결되었다고 생각하오. 이 원고를 끝낸 75년부터 우리 고대사 공부를 시작했어요. KBS 이사장을 했던 송지영(宋志英)이 살아생전에 '이병도(李丙燾) 매칠 사람은 선생님뿐입니다' 하고 볼 때마다 간곡히 권유한 것도 힘이 돼서 역사공부를 시작한 겁니다."
손자 재롱이나 보며 여생을 즐길 일흔여섯 살에 시작한 역사 공부, 최옹의 목표는 송지영의 말대로 이병도였다.
"내가 왜 이병도를 꺾을 마음으로 역사 공부를 시작했느냐, 그것은 김구 선생과 장지영 선생한테 배운 우리 역사를 그 사람은 도무지 역사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였소. 법학과 교수로 있으면서도 관심을 갖고 그가 쓴 글들을 봐왔는데 해방이 되고서도 여전히 식민사관에 입각해서 쓰고 있더라고."
최옹의 말에 의하면 이병도가 말년에 쓴 글은 자신과의 오랜 논쟁을 거친 후, 반성의 의미로 쓴 글들이라 한다.
"나를 한동안 인정해주지 않았지. 늙도록 법학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학자라고 나서서는 국내 사학계를 이끌어가는 자기한테 당신 생각 잘못되어 있다고 하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소. 처음 몇 해 동안은 강연할 때 따지러 가면 문간에서 쫓겨났소. 결국에는 토론을 받아주는 관계로 발전했지. 그쪽 집안 사람들, 지금도 나를 아주 미워하오. 아버지 권위를 손상시켰으니 당연한 거지요. 이병도는 서당 공부를 하다가 보전 법과에 들어갔소. 졸업하고 나서 바로 일본에 가 역사공부를 하고 왔으니 우리 역사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겠소? 그가 일제시대 때 죽 몸담고 일한 '조선사편수회'는 식민지 침략을 역사적으로 합리화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소."
<李丙燾와의 공저 아닌 공저>
ㅡ이병도의 일제시대 때의 친일행위는 해방 후 국사편찬위원으로 재직하면서, 또 많은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어느 정도 보상한 것이 아닐까요?
"이병도의 학문적 업적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오. 하지만 그의 역사관은 해방 이후에도 식민사학의 악폐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로 있더라 이겁니다."
ㅡ식민사학의 악폐라면 어떤 것들을 지적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민족은 고질적으로 사대주의의 기질을 갖고 있다, 허구한 날 당파 싸움이나 한다는 것에서부터 일선동조론·지리적 결정론·정체성론·타율성론 등 많지요."
그렇지만 1989년에 고려원에서 낸 『한국상고사입문』이란 책은 분명히 이병도와의 공저였다.
"내가 쓴 책인데 이병도가 책 머리말 하단에 사인만 하고 공저로 낸 거요. 그 사인은 내가 3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따져서 받아낸 항복문서와 같은 의미가 있소. 그가 방향전환 성명을 낼 때 둘이 동석한 자리에서 하기로 약속해놓고는 하루 앞당겨서 내가 없는 자리에서, 사인도 자기 혼자 해버렸소. 그래서 그 책의 내 사인도 사실은 이병도 글씨요."
한 사람이 썼는데 공저로 출판된 이상한 책. 이 책에 대한 보다 분명한 설명이 있어야겠다. 원래 『한국상고사입문』은 영문으로 쓰여진 책이다. 재야사학자로서 10년째 한국상고사와 한일 고대사 비교연구에 몰두하던 최태영은 1986년 미국 알래스카대학 한국학연구재단의 재정 지원을 받아 그곳 대학원 한국학 전공자들이 교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An Introduction to the History of Ancient Korea』란 책을 삼화인쇄소에서 5백 부 한정판으로 낸다. 그것을 번역한 책이 바로 『한국상고사입문』이다.
50년 동안 영법학을 연구해온 영어 실력은 한 권의 역사서를 영문으로 쓰게 했고, 그것의 번역서가 이 책이니 이병도가 공동저자가 아닌 것은 분명해졌다. 1990년에 유풍출판사에서 낸 『한국상고사』는 『한국상고사입문』의 수정·증보판이라 한다. 일본어판도 나와 있다.
친일 행적이야 어쨌든 이병도의 업적과 권위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인데 최옹의 주장에 순순히 승복했다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는다.
"내가 자료를 갖다주면 이병도가 미심쩍어하면서도 그걸 읽습니다.『환단고기』같은 책이면 거들떠도 안 봤겠지만 대개가 일본에서 나온 자료이고 일본인들이 쓴 글이니까 읽는 겁니다. 그리곤 나랑 토론하자고 졸랐습니다. 3년을 따라다니면서 그렇게 했더니 결국 그의 생각이 돌아서더군요."
『한국상고사입문』은 도대체 어떤 책인가. 최옹의 말을 일단 들어본다.
"외국의 지식인들이 갖고 있는 한국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자는 것이 애초의 저술 목적이었소. 국내에서도 천관우·김재원·김원룡 등에 의해 상고사에 대한 본격적인 논쟁이 일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어요. 일본의 교과서에 임나일본부설이나 남한경영설이 '설'이 아니라 사실로 기록되는 등 역사 왜곡이 심한데, 외국에서는 그 일본 교과서를 통해 우리 역사를 공부하니 말이 되는 일이오?"
<일제의 역사 왜곡 작업>
『한국상고사입문』에서 제일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제2편 상고시대는 한민족이 이미 반만년 전에 대륙의 요동지역을 중심으로 광대한 고대국가인 고조선을 세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의 『사기』『전한서』『후한서』와 『삼국사기』 『규원사화』『제왕운기』『환단고기」등 우리 역사서, 그리고 윤내현·유승국·김성호 등 국내 사학자들의 글을 인용하며 주장하고 있는 것은 단군에 의한 국가건설이 신화가 아니라 사실(史實)이며, 한사군은 평양 주변이 아니라 요하(遼河) 서쪽의 중국 북부지방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ㅡ선생님의 주장을 학계에서 인정해주고 있습니까.
"누구의 인정을 받으려고 시작한 역사공부가 아닙니다. 비록 역사를 대학에서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사명감, 식민사관을 극복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날 이때까지 연구해왔소. 내가 우리 교과서에 단군을 신화적인 인물이 아닌 역사상의 인물로 고쳐 써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더니 국내 사학자들 절대다수가 처음에는 강력하게 반대하였소만 지금은 생각이 많이들 바뀐 것 같소. 고분 출토 등 확실한 물증이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실증사학의 영향 때문인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삼국사기』는 역사고 『삼국유사』는 신화요. 김부식과 일연의 세계관이 달랐는데 역사와 비역사로 나눌 수가 있소?"
일본은 한국 강점기에 조선사편수회의 이마니시(今西龍)를 중심으로 단군과 고대국가 건설에 관련된 역사서와 민간에 전해지던 단군 관련 비사(秘史)를 수차례에 걸쳐 엄청난 분량을 압수해 불태웠다고 한다. 총독부는 그런 책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형에 처한다는 공문을 지방관들한테 여러 차례 보내 모아오게 했고, 향교나 서원을 샅샅이 뒤져 수집한 뒤에 불지를 만큼 역사 왜곡에 집착했다.
김향수가 쓴 『일본은 한국이더라』(문학수첩)란 책에는 일본인 하라타(原全榮)의 조사를 인용, 일제의 역사 왜곡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일제는 <조선사 편찬 요강>에 따라 1926년 12월부터 1938년 3월까지 조선에서 사료 4천9백50책, 문서기록 4천5백13점을 모아 몽땅 태운다. 대마도에 조선과 관련이 있는 사료가 엄청나게 많은 것을 알고 대경실색, 고문서류 6만 6천4백69매, 고기록류 3천5백76책을 압수해 숨기거나 태웠다고 한다.
살아온 생애와 역사에 관한 긴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이 났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필자는 96년 5개월의 생애와 20년 동안의 역사연구를 단 며칠간의 방문을 통해 요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역사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만 뼈저리게 느낀 다섯 번의 방문이었다.
9남매 중에 살아 있는 사람은 장남인 자신을 비롯해 셋째 태순(泰淳)과 다섯째 태응(泰應) 외 여동생이 하나. 춘천에 사는 셋째는 노인을 위한 복지재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귀가 멀었고, 다리를 저는 다섯째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바보 용칠이」를 쓴 소설가. 55년을 해로한 부인과는 일흔여섯에 사별했다고 한다.
ㅡ대학입시에 국사가 필수과목이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명감을 갖고 한국고대사를 연구해오신 선생님께서는 요즘 대학생들에게 할 말이 많으실 텐데….
<유언처럼 당부하는 역사공부>
"요새 학생들 국·영·수만 잘하면 대학생이 되지요. 역사를 바로 알아야 정치가 바로 됩니다. 기술만 가르치면 건물을 지어도 삼풍백화점처럼 무너지지요. 역사를 가르쳐야 하오. 일본은 우리 역사연대의 약 반과 우리 옛 강역의 대부분을 잘라버렸소이다. 고조선과 고구려 등 우리 선조가 거주했던 대부분의 영토를 우리 영토가 아니었던 것처럼 꾸민 것이 만선사관(滿鮮史觀)이지요."
만선사관이란 한반도는 원래 독자적인 정치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대륙에서 실패한 정치세력이 옮겨 자리잡은 지역으로, 문화도 대륙의 주변문화가 옮겨왔을 뿐이어서 만주지방과 하나로 묶어야만 역사와 문화를 체계화할 수 있다는, 조선침략과 만주침략의 명문을 얻기 위한 논리라고.
"성명과 언어를 말살하고, 우리 민족의 뿌리가 되는 단군까지도 잊어버리게끔 신화 속의 가공인물처럼 조작해왔소. 그러면서도 강제점령 당시 우리 민족을 일깨워준 것처럼 역으로 선전해왔지요. 우리는 왜곡되고 조작되었던 우리 역사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뿌리를 찾고, 우리 민족이 정말 우수한 민족이라는 사실에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최태영(崔泰永, 1900년 3월 28일 ~ 2005년 11월 30일)은 대한민국의 법학자이자 역사학자이다. 한국인 최초로 1925년에 법학 정교수가 되어 한국 근대 법학의 초기에 보성전문학교와 서울대학교 등 많은 대학에서 상법·민법·헌법·국제법·행정법·법제사·법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가르치며 법학 교육에 크게 기여하였다. 고대사에 관심이 많았으며, 이병도와 함께 《한국 상고사 입문》을 펴내기도 했다.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forum1&uid=9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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