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27

허경영/정계 활동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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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정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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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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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서명

1. 선거2. 공약
2.1. 97대선 10가지 혁명 공약2.2. 07대선 33가지 대표공약2.3. 국가혁명배당금당 33정책

1. 선거[편집]

1.1. 제13대 대선: 출마 포기[편집]

허경영신민당

허경영의 첫 행적은 1987년 신민당 후보로 대선 출마를 시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예비후보로 등록은 했으나 기탁금 문제로 최종 후보로 출마하지 못했다. 참고로 허경영의 당시 소속 정당이었던 신민당은 김영삼과 김대중이 몸을 담았던 신민당신한민주당과는 이름만 같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정당이다.

1.2. 1991년 지선 출마[편집]

관련 블로그 글

당시 지방선거는 3월에 치러진 기초의원선거와 6월에 치러진 광역의원선거로 나눠져서 선거를 치뤘는데, 허경영은 3월 기초의원 선거 때 무소속으로 은평구 갈현1동 기초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했으며, 이후 6월 광역의원 선거 때 민중당 소속으로 은평구 광역의원에 다시 출마했다가 역시 낙선했다.

자료가 많지는 않지만 공보물은 남아 있다. 심지어 91년 3월 1일자 동아일보에는 허경영으로 보이는 사람이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 규탄대회에 참여한 흔적도 남아 있다. 이 사진은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17면 좌상단

인터넷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블로거가 직접 선거총람까지 찾아본 결과, 당시 기초의원선거는 3위, 광역의원선거는 4위로 낙마했다고 한다.

1.3. 제14대 대선 출마[편집]

진리평화당 대선후보로 출마 예정이었으나 기탁금을 마련하지 못해 출마하지 못했다.##

1.4. 제15대 대선 출마[편집]

당시 TV광고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도 공화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결과는 39,055표를 얻고 7명 중 7위로 낙선. 공약은 조선왕조 부활핵주권 회복경기도를 서울시에 합병, 대통령의 명칭을 '국민대표'로 변경 등이다.

여담이지만, 허경영의 공화당 때문에 국민승리21의 정식 명칭은 건설국민승리21이 되었다. 원외정당의 순번 부여 순서는 가나다순인데 공화당이 국민승리보다 앞에 있었기 때문에 국민승리21 측에서 더 높은 순번을 부여받고자 당명을 건설국민승리21로 정한 것이다.

1.5. 제16대 대선: 출마 포기[편집]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하려 했으나 차후 대권을 위해 포기했다. 여담으로 후보를 사퇴하면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1.6. 제17대 총선 출마[편집]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했다. 하지만 득표율 저조로 또 낙선했다.

1.7. 제17대 대선 출마[편집]

15대 대선 당시 김대중이회창이인제 3자 대결에 묻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명박이 독주하던 선거여서 허경영이 더 주목받을 수 있었다.

원래는 대선 1년 전인 2006년 열린우리당에 입당, 2007년 4월 열린우리당 대선 예비후보로 가장 먼저 등록한 바 있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그 해 8월 대통합민주신당과 합당을 선언하며 해체되었다. 링크된 기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해체가 결정되던 날 자신의 지지자들을 이끌고 김혁규김원웅 등과 함께 '열린우리당 지킴이'를 자처하며 합당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 때 해체되지 않았다면 허경영이 열린우리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나와 컷오프됐을지도 모른다.

열린우리당이 해체되자 경제공화당을 창당, 대선에 출마했다. 군소후보 토론회에 참석했으며 결과는 0.4%, 약 10만표에 육박하는 득표로 다른 군소후보들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 참고로 당시 이인제가 0.7%였는데 심지어 울산, 부산, 대구, 경북, 경남에서는 이인제를 앞섰다. 허경영 스스로도 "내 지지율이 이인제 후보와 비슷한데 다른 군소후보들과 비교하면 너절해진다"고 했을 젓도.

허경영은 자신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단순한 친분 이상의 관계이며 결혼할 것이라는 주장을 자주 했었다. 이어 허씨는 2007년 9월 대선 당시 “대통령이 되면 박근혜와 결혼하기로 했고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취임 만찬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으며 이병철 삼성 회장의 양자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책보좌역을 역임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허씨는 대통령 후보 공보에 부시 대통령과 함께 있는 사진을 싣고 “부시 대통령의 당선 축하파티에 초청된 허경영. 이때 허경영은 유엔본부를 한국으로 가져와야 한국 안보가 해결된다고 하여 긍정적 결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있는 듯한 사진을 싣기도 했다.

하지만 이병철 삼성 회장의 양자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책보좌역을 역임했다는 그의 주장은 거짓이었고, 부시 대통령과 함께 찍었다는 사진은 합성으로 밝혀졌고 조작된 증거가 상당히 많은 걸로 보아 이는 확실한 판결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재판부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심어준 데다 잘못을 전혀 뉘우치지 않고 있어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이후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으며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었다. #

당시 배정받은 기호가 8번이다 보니 이를 이용해 선거 포스터에 8번 찍으면 8자 납니다 라는 문구가 기록되었다.

1.8. 제18대 총선: 출마 포기[편집]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은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려 했으나, 구속으로 인해 출마를 포기했다.

1.9. 제18대 대선: 출마 불가[편집]

18대 대선 출마를 공언했으나 피선거권 박탈로 인해 출마하지 못했다.

1.10. 제19대 대선: 출마 불가[편집]

허경영은 여전히 피선거권 제한 때문에 2019년까지 대선출마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비밀리에 여론조사를 해봤더니 자신이 1위였다고 주장했다. 조사기관은 허경영 페이스북이며(투표인원) 방식은 '허경영을 지지하는 사람은 좋아요 누르세요’ 하는 식이다.[1] 당연하게도 공신력이 있는 조사로 볼 수 없다. 또는 자신이 19대 대선때 출마했다면 100% 당선됐을거라고 얘기했다.

허경영 페이스북 여론조사

1.11. 제21대 총선 출마[편집]

2018년 12월 24일에 허경영은 형의 실효로 드디어 피선거권을 회복했다. 2020년에 진행되는 21대 총선을 위해 국가혁명당을 창당할 것을 선언했다. 이제까지 공약대로 당선 의원들의 무보수 활동을 내세운다. 지역구에 출마하게 된다면 정치 활동을 시작했던 서울 은평구 을 선거구, 본인의 출생지인 서울 중랑구 을 선거구, 아니면 하늘궁이 위치해 있는 경기도 양주시 선거구에 출마할 가능성이 있으며, 비례대표에 출마하게 된다면 1~2번을 배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상황으로 보아 비례대표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허경영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 위해서는 국가혁명배당금당이 비례대표 선거 득표율 3% 이상을 얻거나 지역구 국회의원 5명 이상을 당선시켜야 한다. 만일 달성한다면 지역구 의석이 적기 때문에 준연동형 시스템 하에서는 허경영 번호인 2번 까지는 올 가능성이 크다.

결국 비례대표 2번으로 출마하기로 했다. 출처. 여성할당제로 인해 비례대표 1번은 여성이다. 어차피 2번을 해도 3%만 넘긴다면 당선된다는 건 확실하기 때문이다.

국가혁명당이 151석을 획득하지 못한다면 당선되어도 당선자들이 전부 사퇴하겠다는 엄청난 배짱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21대 총선 이전에 TV조선의 탐사보도 세븐,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 궁금한 이야기 Y, 등 허경영의 실체의 관한 잇다른 언론보도와 과거 연예설이 불거 졌던 최사랑의 허경영 본인의 실체 폭로로 인한 진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는 바람에 결국 선거 결과는 0석이었다. 아무도 당선되지 못했다.

1.12. 2021년 재보선 출마[편집]

2021년 재보궐선거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라고 2020년 7월 12일 하늘궁 강연 중 밝혔다2020년 12월 8일 서울시장 예비후보 등록을 하였고, 2021년 3월 18일에는 1호로 서울시장 후보에 등록했다.

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성추행 사건을 일으키면서 정의당은 재보궐 선거에 불참했고,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단일화를 하면서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3등이 유력했던 국민의당, 정의당이 후보를 내지 않게 되면서 최종 득표율 1.07%를 기록하며 3등으로 선거를 마무리했다. 이는 지난 91년 지방선거 이후 처음으로 1% 이상의 득표율을 획득한 것으로, 현재까지 지역구(구의원 및 시의원) 선거를 제외한 전국구 선거(대통령, 국회의원, 도지사 및 광역시장급 이상 지방자치단체장) 중에서는 유일하게 득표율이 1%가 넘었다. 군소후보들 중에서 득표율이 가장 높아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1.13. 제20대 대선 출마[편집]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나올 것을 암시했다. 그때까지 건강하거나 선거법 위반을 하지 않는다면 무조건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선에서도 당선을 못한다면 70대 후반에 대통령 선거에 다시 나가야 된다.

2021년 8월 18일에 행주산성에서 출마 선언을 했다. 장군옷에 백마 탄 허경영 "내가 난세영웅"…세번째 대선출마(연합뉴스) 안철수 후보와 국민경선을 통한 단일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안상수 예비후보와 하늘궁에서 회동했다. 안상수, 허경영과 손잡았다…“이재명보다 훨씬 현실적”

허경영 “대통령제 없앨 것. 내가 제국 황제 되겠다”(2021년 11월 8일, 세계일보.).

허경영이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한 후 여러 사람들에게 녹음된 통화를 돌리며 선거에 참여해줄 것을 홍보하고 있으며 사실상 본인을 뽑아달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2022년 1월에도 계속 돌리고 있었으나 항의가 계속되자 그만뒀다. #

2022년 1월 17일, 가수 김필도 지속적으로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피로도를 느껴 SNS에다가 전화 사진을 캡쳐하고, "제발 전화 그만 해주세요."라고 글을 올렸다.

심지어 권역응급의료센터의 핫라인 전용 콜폰에도 전화가 걸려왔다.#

진용진 유튜브에 출연해 랜덤으로 아무 번호나 전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2021년 12월 아시아리서치앤컨설팅의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 국민의당의 안철수 후보를 제치고 지지율 4.7%로 3위 자리에 안착했다.

TV 토론 출연 여부가 어떨지가 관건이다. 앞서 허경영은 주요 정당 토론회에 참여를 요청했고 일부 비정규 여론조사의 경우 최대 5.5%까지 찍기도 했다. 평균적으로는 2%에서 3% 정도의 지지율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심상정에 약간 밀리는 수치이다. 심상정이 속한 정의당은 원내 정당에다가 직전 총선 득표율이 3%를 넘어 TV토론 참여가 가능하지만 허경영은 직전 총선 득표율이 1%도 미치지 못한데다가 소속 정당이 본인 광신도로 이루어진 원외 정당이고 평균 지지율도 5% 미만인 걸 생각하면 출연 가능성이 높지 않다.

글로벌뉴스통신이 주관한 1월 21일 20대 대통령후보 초청 토론회에 초청되었다. 초청기준이 TV토론 기준인 지지율 평균 5%보다 2% 낮은 3%이기 때문에 조건에 부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무 후보도 수락을 하지 않으면서 무산되었다.

2022월 1월 26일 발표된 코리아정보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5.6%가 나왔다.

한편, 대부분의 조사 결과에서 허경영은 심상정과 지지도가 비슷한데, 많은 언론에서는 아예 허경영을 기타/무당층에 포함해 발표한다. 이를 두고 혀경영 지지자들은 항의를 하고 있고, 한 지지자는 차를 타고 선관위 건물로 돌진하기도 했다. # 3% 정도의 지지율이 나오는 허경영을 넣지 않지만 1%도 안 나오는 김동연 후보는 넣는 언론이 많은 것도 이들이 분노한 이유 중 하나로 추정된다.

대통령후보 TV토론에 출연하지 못하자 유튜브를 통한 단독 정책토론을 예고했다. 2022년 2월 7일 오후 2시 30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단독 정책토론을 진행하며 100명 이상의 유튜버들이 토론을 생중계한다고 말했다. #

두 번째 TV토론 역시 허경영의 참여가 불가능해지자 허경영 측은 법원에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러나 2022년 2월 9일 법원은 신청을 기각했으며 그 근거는 "방송사들이 후보 네 명만 초청해 토론회를 여는 것은 유권자들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토론을 활성화하려는 합리적이고 상당한 차별", "방송사의 재량을 일탈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이렇게 기각 당했음에도 또 가처분 신청을 냈다.#

2월 14일, 대통령 후보 등록을 마쳤다. 소속 정당 국가혁명당의 당명이 'ㄱ'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기호 후보 번수는 원외 정당 중 가장 높은 순번인 6번으로 정해졌다.

2월 22일 마침내 군소 후보 토론회에 참가했다. 토론 이전부터 박정희 대통령에게서 받았다고 주장하는 백금 지휘봉을 꺼내 들었다. 이에 토론회 관계자는 규정위반이라며 제지에 나서자 허 후보는 "어디서 눈을 부라리고 쳐다보고 있어"라며 당장이라도 지휘봉으로 때릴듯한 태도로 호통을 치고 "남들 자는 시간에 토론한다", "여야 후보들은 밤 1시까지 하냐 근로자법이 어떻게 돼 있어. 근로자들은 밤 1시에 근무하나. 나쁜놈의 OO들 같으니" 라고 욕설을 퍼부우면서 선관위를 맹비난했다. 토론회 관계자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허 후보는 공약 발표 도중 혁대와 지휘봉을 꺼내 들었다. 그러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내게 준 선물"이라며 "박정희 대통령이 왜 이걸 (내게) 줬겠나. 대한민국을 바꿀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경영의 과거 사기 전과 및 사이비 교주, 박근혜와 결혼한다는 주장 및 최사랑과의 사실혼, 과도한 자기 정당 홍보 전화 및 광고, 비현실적 포퓰리즘 공약이 비판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토론회에서도 다른 군소 후보들과 달리 비정상적인 태도를 보여 논란이 되고 있다.

2022년 3월 3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단일화를 하면서 2021년 재보궐선거때 처럼 3위 경쟁을 하게되었다. 하지만 재보궐때랑 달리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존재해 3위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여론조사상에서는 심상정 후보하고 그리 큰 차이가 있게 지고 있지 않거나 동률로 나오고 있기 때문에 안철수 지지자들이 실망해서 던지는 기권표를 흡수하는게 중요해보인다.

2022년 2월 들어 이재명 후보가 허경영의 무궁화 꽃 발차기, "나라에 돈이 없는게 아니라 도둑놈이 많은겁니다!"라는 발언을 유세에서 사용하자 허경영 후보는 도둑질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2022년 3월 8일, 대선을 불과 이틀을 앞두고 다시 투표 독려 전화를 하였다.

지상파 3사가 코리아리서치·입소스·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여론조사를 한 결과 1.6%로 1.8%로의 지지를 받은 심상정과 단 0.2%p 차이다.

하지만 여론조사와는 달리 실 득표율은 0.8%를 얻었는데 2.4%의 지지율을 얻은 심상정보다 밀렸다 그나마 다른 군소후보보다 득표율을 큰 격차로 벌린 것과 전체 4위를 기록한 것이 위안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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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약[편집]

2.1. 97대선 10가지 혁명 공약[편집]

  • 정치 혁명 - 국회의원 제도를 폐지하고 남녀동수의 직능의원제를 시행함
  • 조세 혁명 - 직접세를 폐지함
  • 교육 혁명 - 대학 지망자 전원이 입학 가능하게 함[2]
  • 정신 혁명 - 대통령 명칭을 "국민대표"로 변경
  • 국방 혁명 - 핵주권 회복(=핵무기 개발)
  • 도덕 혁명 - 조선 왕조 부활
  • 환경 혁명 - 담배 생산/판매 금지
  • 경제 혁명 - 중소기업 장기융자를 무담보로
  • 복지 혁명 - 실업자 취직을 국가에서 책임짐

2.2. 07대선 33가지 대표공약[편집]

  • 1. 60세 이상 건국 세대에게 건국 수당 월 70만 원 지급
  • 2. 결혼수당 남녀 각 5,000만 원씩 1억 원 지급
  • 3. 출산수당 3,000만 원 지급
  • 4. 신용불량자 20년 무이자 융자로 해결
  • 5. 융자에 대한 이자를 1년 이상 납부한 중산, 서민에게 원금 일부 공제로 부채 수당 지급
  • 6. 세금 고지서 폐지와 36가지 세금을 소득세와 간접세로 통폐합
  • 7. 중소기업 취직자에 5년 간 봉급 외 100만 원 쿠폰, 5년 이상 근무자에게 창업 자금 3억 원
  • 8. 산삼 뉴딜정책으로 국민 건강 회복, 생활 재기, 농촌 발전
  • 9. 중3 때 평생 전공을 결정, 고등학교부터 전공 1과목만 시험
  • 10. 사생활, 국민 생활보호 위해 호적 대사면과 전과 대사면 실시하고 호적에 이혼 기록을 남기지 않음
  • 11. 국회의원 100명으로 감축, 출마 자격 고시제 실시하고 무보수 명예직으로 함
  • 12. 정당제도 폐지
  • 13. 지자체장 선거 폐지
  • 14. 경기도 전체를 서울특별시로, 전국 9개 도(道)를 4개 도로 합병
  • 15. 어음보험 공사 신설
  • 16. 신원 확인용, 금융거래용 주민등록증으로 새 주민등록증 발급
  • 17. 금융실명제 폐지
  • 18. 상속세 폐지
  • 19. 부동산 실명제, 양도세 폐지
  • 20. 네트워크 사업자 보호법 제정
  • 21. 장애우 재활 수당, 보행권 지원하고 3급 이상 장애자 국가 취업 우선
  • 22. 농지, 농가 거래 자유화 실시
  • 23. 새만금(新萬金)을 세계 제1의 금융 메카로 하여 국민소득 5만 불 시대 달성
  • 24. 농약 생산 완전 금지
  • 25. 식수원을 팔당댐에서 소양강댐으로 하여 무공해 식수 제공
  • 26. 6.25와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에게 3억 원씩 지급하고 매월 30만 원 연금 지급
  • 27. 파업 완전 근절을 위해 노동 3권 중 행동권 대신 경영 참여권을 부여
  • 28. 징병제예비군훈련 폐지로 전군을 모병제로 확대
  • 29. 장기 이식 대기자 구제를 위해 장기를 국가에서 일괄 구매하여 1년 내에 모두 수술
  • 30. 국가 외채를 국가 외채 상환 운동 전개로 2년 내에 완전 상환, 화폐 변경으로 900조 회수
  • 31. 택시기사를 민정 경찰, 국가 홍보 요원으로 둠
  • 32. 동경 기준 시간을 서울 표준 시간으로 변경
  • 33. 유엔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

10년 사이 5개 공약이 유지되었다.

수당 지급을 위한 예산 확보 정책으로는 1회만 실시하는 화폐도안 변경으로 불법 지하자금 몰수로 약 900조, 지자체를 감시 가능한 광역지자체만 남기고 없앤 뒤 임명제로 바꿔 지자체로 인한 예산 낭비를 막아 연간 약 200조를 확보하는 등등이 있다.

이후 2012년에는 시험, 등록금, 군대, 취직, 결혼에서 해방되는 5대 해방 공약을 쓰기도 했다.

2.3. 국가혁명배당금당 33정책[편집]

2020년 21대 총선에 출마하면서 허경영이 제안한 정책이다. 몇몇 공약이 바뀌고 지급액도 늘었다.
 네이버 블로그 아이콘네이버 블로그에 허경영 33정책 만화가 그려져 있다
  • 1. 정치혁명: 국회의원을 100명으로 줄이고 무보수 명예직으로 하는 등
  • 2. 정당혁명: 무소속 출마를 원칙으로 하면서 패거리 정치를 청산
  • 3. 결혼혁명: 결혼부를 신설하여 결혼 시 수당 1억 원 지원, 주택자금도 2억 원 무이자 지원, 여성부를 폐지한 뒤 연애수당 20만 원 지원 등
  • 4. 출산혁명: 출산 시 5,000만 원의 출산수당과 전업주부수당 월 100만 원 지급
  • 5. 노후혁명: 65세 이상 노인에게 월 70만 원 지급
  • 6. 부채혁명: 18세부터 1인당 코로나 긴급생계지원금 1억 원씩 지급. 금융이자 지출 폐지
  • 7. 배당혁명: 1년 국가예산의 60% 절약, 18세 이상 국민에게 1인당 150만 원씩 배당금 지급
  • 8. 소득혁명: 중산주의 실현을 위해 18세 이상 국민에게 1인당 150만 원씩 배당금 지급
  • 9. 세금혁명: 증권거래세, 지방세, 상속세 폐지. 자동차 관련 세금은 기름을 넣을 때 지급 등. 400조 원 세수 확보
  • 10. 신불혁명: 신용불량자는 단 한 번 20년 무이자 무담보 대출지원으로 재기를 돕는다.
  • 11. 교육혁명: 수능시험 폐지, 본인이 원하는 한 과목의 6년 간 모의고사 점수로 대학이 결정
  • 12. 사법혁명: 강력범죄 제외 모든 범죄는 재산비례 벌금형으로 통일. 교도소를 한 곳만 남기고 모두 폐쇄. 100조 원 세수 확보
  • 13. 뉴딜혁명: 1,000여 개의 농업뉴딜단지 조성, 식량을 완전 자급자족
  • 14. 금융혁명: 금융실명제 폐지.
  • 15. 취업혁명: 중소기업의 청년취업자에게 매월 100만 원씩 3년간 지급
  • 16. 유엔혁명: 유엔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3]
  • 17. 화폐혁명: 돈, 수표, 국채 등의 디자인 모두 변경. 지하자금 900조 원 회수
  • 18. 지역혁명: 전국 8개 도를 동,서의 4개 도로 통폐합. 지역감정 해소
  • 19. 징병혁명: 징병제 폐지, 모병제로 변경.
  • 20. 농지혁명: 농지거래허가제 폐지.
  • 21. 농약혁명: 농약공장 폐지.
  • 22. 부패혁명: 김영란법 폐지. 뇌물관련 쌍벌죄를 수수자만 처벌하는 것으로 변경
  • 23. 어음혁명: 기업으로부터 받은 어음을 즉시 현금화. 어음보험 가입 의무화
  • 24. 생활혁명: 기본 생활, 가전제품과 전/월세 보증금 1억까지 재산압류 강제집행을 금지. 고소보증금제 시행. 전과기록 기재 금지.
  • 25. 보훈혁명: 6.25, 월남참전용사, 파독광부/간호사에게 5억원과 매월 300만 원 지급
  • 26. 노동혁명: 기업가족협의회 구성, 노조 완전히 없앰.
  • 27. 장기혁명: 국가에서 장기 확보.
  • 28. 도덕혁명: 대통령이 모든 국민의 관혼상제를 챙기면서 사기 진작. 생일에 10만 원, 직계가족 사망 시 대통령 조화와 위로금 1000만 원 전달.
  • 29. 장애혁명: 장애인 재활수당 현실화. 모든 국민에게 안경 무상제공
  • 30. 주택혁명: 소형 임대아파트 대규모 건립. 모든 아파트 관리비를 지역단위로 통폐합
  • 31. 벌금혁명: 벌금을 재산비례형으로 변경. 100조 원 세수 확보.
  • 32. 황사혁명: 국가에서 모든가정에 무료로 공기청정기와 황사마스크 지급
  • 33. 식수혁명: 농약을 미생물 농약으로 바꾸고 공장 폐수를 완전히 차단.

수당 지급을 위한 예산 확보 정책으로는 국가예산 절약으로 300조, 재산비례벌금제로 100조, 세금혁명으로 400조, 양적완화로 2,000조를 확보해 1년에 2,800조 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1] 계정을 여러 개 파서 중복투표도 가능하다. 게다가 허경영 페이스북이면 당연히 허경영 지지자가 더 많이 볼 것이니 허경영의 표가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2] 유럽에서는 실제로 대학 입학을 쉽게 해준다. 대신 졸업이 끝장나게 어려운 구조다.[3] 당연하지만 이 부분은 한국 국회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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