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20

영화 [길위에 김대중> 상영 지원에 관해 이재봉

 영화 <길위에 김대중> 상영 지원에 관해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1월 6일 김대중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만든 영화 <길위에 김대중>이 1월 10일 개봉돼 국내외에서 상영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1월 18일까지 거의 7만 관객을 끌었다니 기록영화 치고는 잘 나가는 것 같군요. 영화 내용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미 널리 알려졌을 테니, 제가 이 영화의 홍보와 판촉 활동을 벌이게 된 이유와 과정만 말씀드립니다.


10년 전부터 이 영화 제작을 기획하고 의뢰한 정진백 김대중추모사업회장이 작년 12월 18일 용산CGV에서 열린 <길위에 김대중> VIP 시사회에 초대하더군요. 그가 김대중 관련 강연회나 학술회의를 열 때마다 저에게 발표를 부탁하는 바람에, 2020년부터 해마다 김대중 주제로 논문 쓰면서 가까이 지내고 있거든요. 마침 이 영화를 만든 명필름의 이은 대표는 저와 함께 통일운동을 벌이는 동지이고요.


김대중추모사업회장 및 명필름 감독과의 친분을 자랑하며 속된 말로 ‘가오’ 좀 잡으려고, 친지들과 통일운동 동지 20여명을 VIP 시사회에 불렀습니다. 아예 손수건 꺼내들고 훌쩍거리며 영화에 빠졌다가, 끝나자마자 옆에 앉아있던 이은 감독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논문 쓰느라 김대중에 관한 책 좀 읽었는데, 영화 한 편의 감동이 훨씬 크네요. 잘 만들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그리고 제 멋대로 ‘VIP’ 시사회에 20명이나 동참시킨 은혜나 빚을 갚기 위해 적어도 그 10배 사람들이 영화를 보도록 하겠노라고 맘먹었습니다.


12월 26일 전주 시사회에도 참여했다가, 1월 10일 전국적으로 개봉하는데 제가 살고 있는 익산은 빠져 있는 걸 알았습니다. 명필름에 연락해 개봉일 저녁 익산에서도 상영하도록 부탁했지요. 익산 5개 시민단체와 함께 200석 상영관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저는 관람권 50매를 구입해 “익산시민과 전북도민 여러분께 멋진 영화 쏩니다”는 내용의 글을 여기저기 올렸고요. 


이틀 만에 50명 관람 신청을 받으며, 예상 밖 호응에 저 혼자 2차 상영을 준비했습니다. 수요일 저녁예배 때문에 개봉일 10일 상영에 참여할 수 없다는 기독교인들을 배려해 화요일 16일 저녁 시간으로 정하고, “감동 후불 앙코르 상영!”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신청자를 모았습니다. “1만원짜리 영화 감상 후 감동 받은 만큼 1,000원이든 10,000원이든 제 통장으로 보내주세요. 감동받지 못하거나 용돈 넉넉지 않으면 무시하고요. 저는 가난해도 꽃보다 아름다운 후원자.기부자들이 항상 넘치거든요.”


100명 초대하겠다고 했는데, 상영 1주일 앞두고 신청자가 모두 차버렸습니다. 그런데 2-3명 신청하면서 미리 5만원씩 보내주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감동 후불’ 아니라 ‘따블 선불’이 된 셈이랄까요. 게다가 “저는 가난해도 꽃보다 아름다운 후원자.기부자들이 항상 넘치거든요”라는 말에, 서울, 인천, 경기, 강원 지역 등 멀리 계시는 분들이 성금을 보내기 시작하더군요. 관람료가 외상이나 무상이라 했는데, 며칠 만에 선불금 말고 기부금만 100만원 정도 들어온 겁니다.


후원금을 떼먹지 않기 위해 3차 상영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익산시내 고등학교들에 연락해 청소년들에게 영화를 보여줄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나 관람자들은 대부분 익산시민들이라도, 후원자들은 모두 다른 지역에 계시는 분들이라 더 보람 있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익산을 포함한 전라도에서야 노장년이든 청소년이든 김대중을 잘 알 테니, 그에 대한 편견과 왜곡이 심할 듯한 경상도나 강원도 지역에서의 상영을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리라는 것이었죠.


김대중추모사업회와 명필름의 조언과 도움을 받으며 두 곳에서 영화를 상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첫째, 광주 고려인마을입니다. 2000년대 초부터 고려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해 이젠 7-8천 명이 모여 사는 마을이랍니다. 작년에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문제’로 시끄러웠는데 그 후손도 있고, 2022년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해온 동포도 많다는군요. 그들이 영화를 보고 조상의 나라 현대사와 김대중을 알게 되면 좋겠지요.


둘째, 접경지역 철원입니다. 김대중에 대한 편견이 심할 듯한 경상도와 강원도 중에서도 왜곡된 안보의식까지 지니고 있을 접경지역이잖아요. 제가 강의를 맡고 있는 국경선평화학교 주관으로 그곳 지역민들이 이 영화를 통해 현대사에 대한 왜곡에서 벗어나 건전한 안보의식을 갖도록 도와주는 게 보람 있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요즘 윤석열 정권이 나라 안에서는 대선에서 맞붙었던 경쟁자를 ‘적’으로 만들며 검찰.경찰을 총동원해 때려잡지 못해 안달이고, 밖으로는 통일.평화의 상대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일본까지 끌어들이며 끔찍한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데, 바로 이런 때 김대중 같은 지도자가 그립지 않을 수 없지요. 영화에도 나오듯, 자신을 두어 번 죽이려했던 박정희뿐만 아니라 사형선고를 내렸던 전두환까지 용서했습니다. 대통령이 되어 ‘박정희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박정희 딸 박근혜도 품었으며, 전두환을 청와대에 10번 정도 부르며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했으니까요. ‘살인마 전두환’까지 청와대에 초청한다고 비판받으면서요. ‘성인 (聖人)’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나라 밖에서는 미국 대통령들에 조금도 끌려가지 않고 오히려 끌어당겼습니다. 1994년 북한을 폭격할 뻔하고, 1996년엔 판문점을 찾아가 ‘북한 국가의 종말’을 위협하던 호전적이고 폭력적인 클린턴을 평화적 ‘운전 조수’로 만들었잖아요. 클린턴이 1998년 워싱턴에서 김대중과 정상회담 끝내며 다음과 같이 말했으니까요. “김 대통령의 비중과 경륜을 볼 때 이제 한반도 문제는 김 대통령이 주도해주기 바랍니다. 김 대통령이 운전대 잡아 운전하고 나는 옆자리로 옮겨 보조적 역할을 하겠습니다.”


아들 부쉬가 2001년 워싱턴에서 김대중과 첫 정상회담할 때, 김대중이 북한에 대한 미국의 역할을 부탁하자, 그는 북한을 비난하며 김대중을 ‘이 사람 (This man)’이라 부르고 답변을 가로채기도 하며 참 고약하게 굴었습니다. 김대중은 22살 아래 아들뻘에게 당하는 일이라 매우 불쾌하고 괘씸했지만, 꾹 참고 그 대신 상하원 의원, 전문가, 기자 등을 두루 만나 북한에 대한 미국여론을 돌리려 힘썼지여. 그리고 아버지 부쉬에게까지 전화해 아들을 설득해달라고 부탁했고요. 1년 후 부쉬를 청와대로 부르며 “혼신을 다해” 회담을 준비하고, “젖 먹던 힘을 다해” 그를 설득했습니다. 부쉬가 감리교 신자라는 걸 미리 알고 김대중은 그에게 감리교의 역사와 역할에 관해 강의할 정도였으니 부쉬의 혼을 쏙 빼버린 거죠. 결국 부쉬는 기자회견에서 햇볕정책을 지지하겠다고 분명히 밝히고, 도라산역을 방문해 “나는 북한을 침공할 의도가 없다. 북한과 대화하겠다. 미국도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나중에 주위 사람들에겐 “김 대통령을 다시 봤다. 존경한다”고 했고요. 클린턴보다 열배 백배 호전적이던 아들 부쉬까지 김대중 팬으로 만든 거죠. 이런 외교의 달인 대통령을 우리도 한 때 가졌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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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음과 같은 글을 퍼뜨렸습니다. “광주 고려인마을과 접경지역 철원에서 김대중 영화를 통해 김대중 정신을 알리려는 제 구상과 계획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면서 재정적 여유가 좀 있으시다면, 관람료 1만원씩 후원해주시겠어요? (전북은행 102101-1778059 이재봉/남이랑북이랑).” 오늘 1월 18일까지 성금이 200만원 이상  들어왔습니다. 적어도 두 군데서 100명 넘게 볼 수 있게 된 거죠. 먼저 오늘 저녁 광주에서 고려인들 대상으로 영화를 상영합니다. 철원에서는 농민회와 국경선평화학교가 관객 선정 및 상영 날짜를 조정하고 있고요.


이렇게 제가 익산에서 300명 이상, 광주와 철원에서 각각 100명 정도, 모두 500명 넘게 관객 동원하는 셈이니, 12월 18일 ‘VIP’ 시사회에 20명이나 동참시키고 적어도 그 10배 사람들이 영화 보도록 하겠노라는 자신과의 약속은 지킨 셈입니다. 항상 그래왔듯, 제 돈은 한 푼도 쓰지 않고 꽃보다 아름다운 천사 같은 후원자들의 따스한 정성 때문에 가능했지요. 이런 일을 통해 제 이름만 알려지는데 그분들 성함도 밝히지 않을 수 없군요.


익산에서는 전남 영광의 이선조 원로교무 덕분에 관객 동원과 관람료 마련이 넘치도록 잘 이루어졌습니다. 원불교 성직자들 한 달 생활비가 20-30만원 정도인 걸로 알고 있는데, 더구나 퇴임하신 70대 할머니께서 익산의 동료 성직자, 교도, 가족 등 50여명에게 영화 보도록 권유하며 무려 70만원을 내놓으셨거든요. 광주와 철원에서의 상영은 다음과 같이 26명이 2,151,000원의 성금을 보내주셔서 성사될 수 있었고요.


고성환(윤미연) 100,000 / 김경자 50,000 / 김근환 300,000 / 김수환 30,000 / 김영윤 50,000 / 김양진(인숙) 50,000 / 김은주 30,000 / 김경일(정관) 200,000 / 김재만 100,000 / 김종호 100,000 / 나영만 20,000 / 문장렬 100,000 / 서유나 50,000 / 성도종 50,000 / 신영욱 30,000 / 양기준 100,000 / 오성희 50,000 / 오효원 100,000 / 유남희 50,000 / 이우정 100,000 / 이유섭 100,000 / 익산공동체상영단 31,000 / 임봉수 100,000 / 전희식 10,000 / 정인수 100,000 / 채구묵 100,000 / 홍승권 50,000 / 합계 2,151,000원.


“원광고 다니는 저희 아들이 세 번이나 울었다고 합니다. 어젯밤에도 오늘 아침에도 계속 김대중 전 대통령 얘기네요. 좋은 기회 주셔서 고맙습니다”고 연락 주신 분 포함해 영화를 감동적으로 감상하신 분들, 관람료를 두세 배 내신 관객들, 광주와 철원에서도 상영할 수 있도록 후원해주신 분들..... 모든 분들께 감사와 사랑으로 이재봉 드림.


* 이 글은 계간지 『산넘고 물건너』 제12호 (2024년 1월)에 실릴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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