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8

이재봉 - 조선의 정책.전략 변화와 한국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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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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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정책.전략 변화와 한국의 길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요즘 조선(북한)에서 나오는 보도를 접하면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며 금세 전쟁이 터질 듯합니다. 작년 12월 31일 발표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와 1월 2일 나온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에 관해 수많은 전문가들과 단체.기관들이 다양한 분석과 해설을 내놓고 있는데, 저도 한 마디 덧붙이면 혼란스럽게 만들 것 같아 망설이다 조선의 체제나 성격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몇 줄 씁니다. 신년사 같은 ‘전원회의’ 보도문은 원고지 150매 넘는 A4 20쪽 정도인데, 남북관계에 관해서만 ‘분석’ 필요 없이 ‘요약’하면서요. 조선은 은유법을 잘 쓰지 않고 직설적이기에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1)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확대회의’: 중대한 정책.전략 결정 기관

조선을 포함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나라에서는 당이 국가보다 위에 있습니다. 헌법도 “국가가 조선로동당의 영도를 따른다”고 명시하듯, ‘조선로동당’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이끄는 거죠. 그런 당의 ‘중앙위원회’는 5년마다 열리는 당대회를 빼고는 ‘최고’ 지도기관으로서 당의 중대사업을 주관합니다. ‘전원회의’는 당 대표/간부인 중앙위원 전원이 모인 회의이며, ‘확대회의’는 중앙위원뿐만 아니라 후보위원까지 확대한 회의이고요. 조선의 정책.전략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회의라는 말입니다.

2) 남북은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다: 전쟁은 현실적 실체

한국과 미국은 조선이 오래 전부터 제안.주장해온 평화협정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종전선언조차 거부해왔습니다. 전쟁을 끝내지 않고 있으니, 남북은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입니다. 한국이 먼저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 규정했고, 조선은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도 주적으로 삼겠다고 했으니, “현재 조선반도에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가 병존”한다고 한 거죠. 미국의 초대형 전략핵잠수함, 핵전략 폭격기, 초대형 핵동력항공모함 등 각종 핵전략 수단들이 조선반도에 투입되고, 각종 규모의 한미 합동군사연습이 ‘력대 최대’ 또는 ‘사상 최고’의 기록을 세우며 확대 강행되고 있으니, “전쟁이라는 말은 이미 우리에게 추상적인 개념으로가 아니라 현실적인 실체”라고 했고요.

3) “남조선 전 령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 평화 통일에서 무력 통일로

남북이 전쟁 중에 있기에, “만일의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핵위기 사태에 신속히 대응하고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력량을 동원하여 남조선 전 령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하겠답니다. ‘영토 평정’이란 말을 썼으니, 남쪽으로 핵.미사일 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침략해 영토를 점령하겠다는 거죠. 연방제에 의한 평화적 통일이 아니라 영토 점령을 통한 무력 통일을 이루겠다는군요.

4)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니다”: 민족이 아니라 적이다

남과 북은 좋든 싫든 한민족 같은 핏줄인데 더 이상 ‘동족관계’가 아니라고 한 대목에 충격적이라는 사람들이 많은 듯합니다. ‘민족’이란 대개 같은 언어, 관습, 역사, 문화, 종교 등을 지니고 오랜 세월 공동으로 생활해온 집단을 일컫는데, 남북은 80년 가까이 떨어져 지내며 전쟁도 끝내지 못하고 있는 적대 관계이니 더 이상 같은 민족도 아니고 같은 성질을 가진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사회 전반이 양키문화에 혼탁되였으며 국방과 안보는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반신불수의 기형체, 식민지 속국” 또는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과 동족도 아니고 동질도 아니라는 거죠. 하기야 이 세상엔 약 2,000개 민족이 약 200개 국가를 이루고 있다는데, ‘같은 핏줄’과 ‘같은 말’보다 ‘같은 정신’과 ‘같은 의식’이 민족의 더 중요한 요소 아닐까요?


5)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 연방제 통일 포기

조선이 1960년부터 제안해온 이른바 ‘연방제 통일’을 포기하겠다는군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6.15 선언을 통해, 남쪽의 통일방안과 북녘의 통일방안 가운데 공통점을 바탕으로 통일을 지향하자는 멋진 합의를 이루었지만, 그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으니까요. 남쪽은 북녘을 “‘주적’으로 선포하고 외세와 야합하여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의 기회만을 노리는 족속들”이고, 남쪽 정권이 10여 차례 바뀌어도 “‘자유민주주의체제 하의 통일’ 기조는 추호도 변함없이 그대로 이어져”왔으며, 남쪽 헌법에 ‘대한민국의 령토는 조선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버젓이 명기되여“ 있는데, 남쪽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는 것은 더 이상 우리가 범하지 말아야 할 착오”라는 겁니다. 이에 따라, 전원회의는 “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사업부문의 기구들을 정리, 개편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며 근본적으로 투쟁 원칙과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1월 13일엔 다음과 같이 남쪽에 대한 모든 조직.창구를 폐쇄한다고 보도하더군요. “지난 시기 북남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을 위한 련대기구로 내왔던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련합 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단군민족통일협의회 등 우리 관련단체들을 모두 정리하기로 하였다.”

6) 한국에 대한 ‘조선의 정책.전략 변화’: 무조건이 아니라 조건부

조선이 남북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 규정하고, “남조선 전 령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하며,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라서, 남쪽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지 않겠다는 것은 ‘무조건’ 그렇게 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조건부입니다. “미국과 남조선 것들이 만약 끝끝내 우리와의 군사적 대결을 기도하려든다면”이라는 조건을 붙인 것이거든요. 이 세상에 영원한 정책이나 전략은 없습니다. 예외 없는 법이나 원칙도 없고요. 한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거죠. 한국이 가만있는데 무턱대고 핵.미사일 사용해 영토 평정과 무력 통일을 추구하겠어요? 한국이 조선을 자극하는 한미연합훈련 그만두고, 미군이 가진 작전통제권 되찾아오며, 주한미군 내보내고, 호전적 미국에 휘둘리지 않을 자주적이고 평화 지향적인 정권 세우면, 한국에 대한 조선의 정책이나 전략도 평화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겠지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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