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8

[펌] 우리나라 의사에 대한 오해 by 이화의대 권복규 2012

[펌] 우리나라 의사에 대한 오해 by 이화의대 권복규 : 네이버 블로그 2012
여러 글들을 읽다보면 의사에 대한 오해가 너무나 많습니다. 몇 가지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1.우리나라의 의사수는 OECD국가에서 여전히 적은 편이다.

- 2011년 인구 1천명당 활동 의사수는 우리나라가 한의사 포함 2.0명으로 평균 3.1명에 비해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병원의 병상수는 인구1천명당 5.5개로 OECD평균 3.4개보다 훨씬 많습니다. 이 통계의 의미는요? 즉 더 적은 수의 의사가 더 많은 환자를 돌본다는 뜻입니다. 왜 그럴까
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원가의 74%인 건강보험 수가로는 운영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박리다매"인 거죠. 낮은 수가는 의사들 중에서도 많은 비율을 비보험 분야, 즉 미용성형이나 비만관리 같은 의료상품 영역으로 가게 하여 실제 환자를 돌보는 의사의 숫자를 더 줄입니다. 대형 종합병원의 전공의들 1주 평균 근무 시간은 100시간 이상이고, 교수라 해도 별로 다를 바 없습니다. 이렇게 해야 병원이 수지를 맞출 수 있습니다. 한편 개원의들은 주5일 근무 시절에 토요일 4시까지, 심지어 24시간 진료를 하기도 합니다. 감자탕집이죠. 즉, 의사 1인당 봐야 하는 환자 수가 OECD 국가의 두 배라는 뜻입니다. 캐나다에서는 하루 20인 이상을 규정상 볼 수가 없는데 우리나라 개원의는 40인 이상을 봐야 적자를 면할 수 있습니다. 병원도 월세 내고 직원 월급도 주어야 하니까요. 우리나라 의사도 20명만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 수가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의대 정원 대폭 늘이자구요? 그러면 그 결과로 미용성형/피부관리/비만치료 의사만 들고 정작 인명을 다루는 의사는 그대로일 겁니다. 석선장 치료한 이국
종 교수도 중증외상센터가 계속 적자라 병원이 없애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걸 전공하겠습니까?

2. 그런데도 의사들은 부자인데?

- 일반인의 눈에는 잘나가는 의사들, 즉 성형외과나 시력교정안과 의사들이 더욱 잘 보입니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니까요. 탈세나 뭐 그런 이유들로요. 고졸 조무사 한두 명 직원으로 두고 근근히 동네 상가에서 유지하는 내과나 소아과 의사들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차는 좋은 외제차로 탄다구요? 이것도 자영업이니 절세를 하기 위해서는 비용처리를 할 수 있는 아이템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집도 좋은 데 산다구요? 의대를 가보니 대부분의 동기선후배들이 중산층 이상 집안 출신입니다. 의대만 6년, 전공의과정 5년, 군대 3년을 지원하겠다는 집은 대개 중산층 이상이 아니면 어렵습니다. 의사라서 잘 산다기 보다는 원래 어지간한 집안 출신들입니다. 게다가 여자의사라면 처지가 더 나은 신랑과 결혼을 하고, 남자의사도 맞벌이를 하거나 최소한 중산층 이상의 여성과 결혼을 하니 출발부터가 좀 넉넉하게 시작합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나아보이는 것이죠. (집안이 넉넉하지 못한 저는 동기들에 비해 근근히 살고 있습니다. 차는 10년 된 라세티구요.)

3. 월수 천만원도 부족하다고?

- 교육훈련이 힘들고 인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일을 하는 중견 여객기 조종사의 임금이 연봉 1억5천만원쯤 됩니다. 현대차 노동자들도 평균 연봉8천5백만원이라고 했지요? 어지간한 중견기업도 과장 이상이 되면 월급+상여금+법인카드(회식 등)해서 그 정도는 벌게 됩니다. 보통 전문의 따고 출발하는 나이가 동기들이 과장 달은 나이죠. 월급쟁이 의사는 상여금도 법인카드도 없습니다. 개원의 입장에서는 보통 개원비용이 3억5천만원이 평균적으로 들어가는데, 그러면 투자 대비 수익률을 8%만 치더라도 연2천7백만원 + 본인 인건비는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요? 만약 융자를 내서 시작했다면 금융비용까지 추가되고, 앞서 말했지만 하루 40명 이상 보지 못하면 바로 한계 상황으로 몰리며, 사실 매년 전체 개원의의 11%이상이 폐업하고 있습니다. 활동의사 숫자가 모자란 건 이 폐업 또한 큰 기여합니다. 게다가 여기에는 의료사고에 대한 위험비용이 빠져있습니다.
환자가 죽기라도 하면 1억~2억은 순간적으로 물어주어야 합니다. 의사는 다른 자영업과 달리 업장을 비울 수 없는 직종인데, 소송으로 가면 법정에 나가지 않을 수 없으므로 울며겨자먹기로 합의 보는 게 이렇다는 겁니다. 의사는 폐업하면 다른 일을 할 능력도 없습니다. 십여년을 그 일에만 특화되어 분화한 존재거든요. 택시운전 하면 된다구요? 의사 일인 양성에 2억5천만원 정도의 사회적 비용이 소요됩니다. 

4. 그런데 왜 시골에는 안 가? 무의촌은 어쩌라구?

- 면소재지에는 이미 의원급은 다 들어가 있습니다. 읍 정도가 되면 작은 종합병원도 들어가구요. 강원도와 경북의 산간오지를 제외하면 의료기관 접근성이 1시간 이내입니다. 요즘은 시골도 다 차가 있구요. 그런데도 무의촌이 있는 이유는 인구가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구가 줄면 환자 수도 줄어 그 인구로는 의료기관을 부양할 수 없습니다. 시골은 노인분들이고 대개 의료보호 환자들입니다. 벌써 20년 전에 꽤 괜찮은 시골에서 공중보건의 생활을 했는데 하루에 환자 스무 명 이상 보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그쪽 인구가 더 줄었죠. 공공의료기관이 아니면 유지가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인구가 줄면 의원만 안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빵집도 안 들어갑니다. 공공이 해야 할 일을 의사를 비난한다고 해결되겠습니까?

5. 아무리 그래도 의사들은 여전히 불친절하고 잘난척하는 기득권 부르주아야. 

- 의사에 대한 반감은 합리적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걸 압니다. 의사인 페친분들도 이 점은 이해하셔야 합니다. 본인이. 혹은 가족이 투병 중 겪었던 의사들의 불친절함과 교만은 평생 상처로 남고 의사들을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의사들도 반성하고, 특히 대학병원에 있는 의사들이 힘들겠지만 환자들에게 따뜻이 대하는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의사들의 불친절과 교만을 의사에 대한 계급적인 시야에서 보면 안 됩니다.
의사는 기득권이 아닙니다. 의사는 전문직일 뿐입니다. 물론, 일부 연세가 든 의사들 중에는 경제가 급속히 발전할 때 많은 부를 축적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40대 이하 젊은 의사들은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능력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좀 나은 전문직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내가 아플 때 믿고 몸을 맡기려면 그 의사들은 지성이나 교양, 능력, 사회적 위상이 어느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국 사회가 그 정도는 대우를 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의사들의 문제점들을 따져보고 개선을 요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의사들을 기득권으로 몰아서는 서로가 패배자가 될 뿐입니다. 정작 기득권은 따로 있습니다. 재벌병원과 국가병원, 학벌병원들입니다. 그곳에서 착취당하는 의사들까지 기득권으로 몰면, 마치 현대나 삼성 직원들도 기득권이라 하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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