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20

15 재일 조선학교 죽이기 작전 /김미경 : 국제신문



[세상읽기] 재일 조선학교 죽이기 작전 /김미경 : 국제신문
국제신문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15-03-03 18:49:15





누구를 만나버린다는 건 우연이 필연이 되는 순간이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아침에 일어나 씻고 출근 준비를 해서 집을 나섰다. 겨울답지 않게 공기가 따뜻하고 하늘도 맑아 카페에서 차 한잔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상쾌한 기분에 코끝을 자극하는 차 향기를 생각하면 기분이 저절로 좋아진다. 이런 소소한 행복이 오래 머물기를 바라며 강 옆에 있는 찻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무런 생각 없이 걷고 있는데 연세가 드신 노인께서 갑자기 눈앞에 뭔가를 내밀었고 난 자동반사적으로 그 전단을 받아들었다.

'고교 수업료 무상화 정책에서 조선학교만 제외, 또 다른 민족차별!'이라는 문구가 순간 총알처럼 날아와 가슴 한구석에 박힌다. 아침의 싱그러움이 존재의 고통으로 변하는 데 1초도 걸리지 않는다. 길 양쪽에 서서 "제발 부탁합니다,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는 학생들의 앳된 모습에 눈물이 왈칵한다. 부모도, 조국도 선택하지 않고 일본 땅에 재일동포 4세로 태어난 그들에겐 아무런 잘못도 없다. 통한의 역사가 시퍼런 그들의 청춘을 옭아매고 있을 뿐.

카페를 찾던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다. 카페로 들어와 앉았지만 주책스러운 눈물은 왜 이리 끊어지지도 않는지. 혼자서 실실거리고 웃는 것만큼이나 주변에 신경이 쓰이는 일이 혼자서 찔찔 짜는 모습일진대 일본인들이 힐끔힐끔 쳐다보아도 영 표정관리가 되질 않는다. 전단을 앞에 두고 한숨 쉬고 있는 난 이미 그들과 섞일 수 없다. 우린 같은 공간 속에 있지만, 매우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그렇게 간절하던 커피는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고 머릿속은 온통 '무엇을 할 수 있을까'로 가득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학생들을 위해 빵을 몇 봉지 사든다.

아뿔싸, 그 사이 거리에선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다. 혹시 다른 번화가로 움직였나 싶어 여기저기 다녀 보아도 학생들은 보이지 않는다. 손에 든 빵 봉지가 천근처럼 무겁다. 이쯤에서 그만둘 것인지 아니면 더 노력해볼 것인지 잠시 고민하다 택시를 탄다. 그리고는 '정확한 주소도 모르고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지만, 히로시마 역 근처에 있는 조선학교로 데려가 달라'고 한다. 조마조마한 마음이 더한다.

이 필연의 아침에 만난 운전기사는 자신도 조선학교 출신이라고 밝힌다. 조수석 앞에 붙은 명찰을 보니 성이 '양(梁)'씨다. 제주도 출신의 동포 3세인 그가 서툰 한국어로 조선학교 졸업생의 절대다수가 경상도 출신이라 알려준다.

학교는 후미진 동네의 비탈길이 끝나는 곳에 얌전히 숨어있다. '아버지 호', '어머니 호'라고 쓰인 버스 말고는 특별히 다른 느낌이 없다. 운동장에선 씩씩한 청년들이 공차기에 열심이다.

갑자기 나타난 방문객을 선생님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볼에 복숭아 빛 홍조를 띤 여학생들이 북한식 억양으로 "안녕하십네까"하며 인사를 건넨다. "응, 미안하지만 난 남한식으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할게"하며 받아준다.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하다.
히로시마현과 히로시마시가 아베 정권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조선학교만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제외시키고 일체의 지원을 끊은 지 만 2년째로 접어든다. 센다이, 오사카, 사카이, 후쿠오카시도 일체의 지원을 중단해 버렸다. 현재 12개의 지자체만이 문화 교류, 교재와 도서 구입 등을 위한 소신 지원을 계속하고 있지만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일본 정부의 '조선인학교 말려죽이기 작전'은 성공할지도 모른다.

입으로는 다문화주의를 주창하고 인류의 축제인 2020년 올림픽을 준비하면서도 행동으로는 대놓고 민족차별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이중성이 놀랍다. 다른 민족의 일본 영주는 봐 넘겨줄 수 있어도 한반도 출신의 존재는 거슬린다는 건 이들의 비뚤어진 우월감 때문이다. 언제까지 북한 독재정권과 재일조선인들을 연결해 보수우경화 정책을 팔아먹을 것인가.

이런 핍박에도 한국, 북한, 일본 국적을 가진 207명의 히로시마 조선학교 학생들은 한 달에 25만 원에 달하는 수업료를 부담하면서까지 한글과 역사를 배우고 싶어 한다. 고유 언어과 정신이 그들을 오랜 차별에서 견디게 해준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빼앗아야만 완전한 일본인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지금의 통치자들은 식민통치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일본 정부의 재일조선인 학교 고사작전을 언제까지 팔짱을 끼고 두고 볼 것인가.

히로시마 시립대학교 평화연구소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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