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03

얀 루프-오헤른 “내 50년 침묵을 깨준 한국의 ‘위안부’ 친구들”



“내 50년 침묵을 깨준 한국의 ‘위안부’ 친구들” : 책&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내 50년 침묵을 깨준 한국의 ‘위안부’ 친구들”

등록 :2018-04-26 20:19수정 :2018-04-26 20:55

나는 일본군 성노예였다
얀 루프-오헤른 지음·최재인 옮김/삼천리·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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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루프-오헤른은 2차대전 당시 일본군 성노예 피해 사실을 유럽인으로 처음 증언한 인물이다. 한국에서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 나온 2007년 미국 하원 ‘2차대전 당시 종군위안부’ 청문회에서 한국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증언한 피해자로 좀 더 익숙해졌다.


루프-오헤른은 여러 매체와 공식석상에서 일본군의 강간 범죄를 폭로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 전체를 기록하기로 했다. 그 결실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가 쓴 첫 단행본이 세상에 나왔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네덜란드 식민지인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1923년 태어나 스무살이 될 때까지의 행복했던 유년 시절이다. 사탕수수 플렌테이션을 운영하는 부모 아래서 다섯 남매 중 셋째로 자란 그의 추억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풍요로웠다.



7명의 일본군 ‘위안부’들이 각자 자신의 이름을 쓰고 얀 루프-오헤른이 자수를 놓은 손수건. 
삼천리 제공

하지만 그의 인생은 사범대학 다니던 시절 전쟁이 터지면서 가장 참혹한 현장으로 내던져진다. 책의 두번째 부분이다. 1942년 3월 일본군이 자바를 침공하며 그와 가족들은 수용소로 끌려갔다. 손바닥만한 잠자리에 이와 쥐가 득시글거리고 음식물 찌꺼기를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던 2년간의 수용소 생활도 거기서 차출된 16명 소녀들과 트럭에 실려간 순간에 비하면 사치였다. ”방을 둘러본 뒤, 나는 이곳이 위험하고 피해야 하는 곳임을 즉각 알아차렸다. 모기장이 드리워진 더블 침대가 놓여있었다. 상판이 대리석으로 된 탁자가 있었고, 거울과 세면기, 그리고 같은 종류의 물병이 있었다.”

그는 자바의 수도인 스마랑에 ‘칠해정’이라고 이름붙은 일본군 장교 위안소에서 여러달 성노예로 악몽같은 시간을 보낸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본식 꽃이름과 방에 놓여있던 꽃병 탓에 그는 50년간 꽃을 좋아할 수 없었다. 그는 다른 피해여성들과 서로 격려하고 매일 기도하며 짐승의 시간을 견뎠다. 그는 이곳에 올 때 누군가 준 흰 손수건에 함께 있던 소녀들의 이름과 도착한 날짜를 자수로 새겼다. 평생을 간직해온, 그러나 가족 누구에게도 그 사연을 말하지 못했던 이 손수건은 지금 오스트레일리아 전쟁기념관 포로수용소 전시관의 가장 중요한 기록물 중 하나로 전시돼 있다.



Carol Ruff, 삼천리 제공

마지막 부분은 전쟁이 끝나고 가족과의 재회와 결혼, 출산 등 겉보기에는 다시 찾은 것 같은 평탄한 삶에서 강요받은 지독한 침묵의 시간과, 반세기의 침묵을 깨고 성노예 피해자로 증언에 나서기까지의 정신적 투쟁 기록이다.

 ”50년 동안 나는 소리쳐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안되는 이유들이 분명히 있었다. 50년 동안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렸고, 어둠이 내릴 때마다 공포를 느끼며 살았다.(…) 하지만 가족한테도 말할 수 없었고, 다른 ‘위안부’들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이 침묵을 깨뜨린 건 1992년 초 텔레비전에서 본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보여준 용기였다. 같은 해 겨울 그는 일본 도쿄에서 각국 관련 시민단체들이 연대해 연 일본 전쟁범죄 국제청문회에서 처음 자신의 피해사실을 증언했다. 그는 마지막 장에서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가장 먼저 감사를 표했다. “평화와 화해가 있는 세계로 가는 여정에서 나는 이들과 함께했다.” 우리가 얼마 안 남은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여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삼천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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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42275.html?fbclid=IwAR3LwLqw9hJcljDGbNGjukTMYd77Am08O7B3YTvbrjcXDhuxf-YbqgyWs3o#csidxa451987ebc050a6b52c9c0782459bf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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