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2

연찬문화연구소 | ‘새로운 정치, 새로운 나라’를 위한 2020년 지리산 제언(펌) - Daum 카페



연찬문화연구소 | ‘새로운 정치, 새로운 나라’를 위한 2020년 지리산 제언(펌) - Daum 카페



남곡|조회 61|추천 0|2020.01.02.


‘새로운 정치, 새로운 나라’를 위한 2020년 지리산 제언


나라 안팎의 상황이 매우 엄중합니다.


촛불의 열망과 기대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반을 지났습니다. 취임사에서 약속했던 ‘국민통합’은 물꼬를 제대로 잡지 못했습니다. 국론 분열은 심화하였고 지지자와 반대자 간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양극화와 이중화로 인한 계층·세대 간의 갈등은 더욱 첨예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싼 국론 분열의 양상은 해방정국 당시의 혼란을 연상시킬 만큼 극심하였으며, 그 심각한 파장을 해소할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교육, 경제, 노사, 외교 및 안보 등 사회 제 부문의 산적한 과제들을 해결할 동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힘든 삶 속에서 국민은 희망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87체제는 이미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87체제는 오랜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 정상적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를 뿌리내리는 데는 성공하였습니다. 그것은 민주화의 중요한진 전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7번의 정권 교체는 대단히 거칠었고,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의식과 문화의 진보는 엄청나게 높아진 물질적 수준과 그 괴리가 너무나 컸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승자 독식의 선거제도 아래서 오직 대권 쟁취만이 정치의 목적이 되어 버린 가운데, 극한적 대결의 정치, 거리의 정치가 30여 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더 극성스럽습니다. 지금 모든 정치 행위는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여당은 대통령 보위 집단으로, 야당은 차기대선캠프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고 국회는 식물국회로 전락하였습니다.



남남갈등은 지금 거의 한계상황에 와 있습니다.



이 상황으로는 남북문제를 비롯해서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이념·세대·성별에 따른 사회적 갈등, 소득 양극화, 지역·계층 간의 불평등, 노사문제 등 우리 앞에 놓여있는 국가적 난제들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쟁투의 정치, 패거리 정치는 시민사회 내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사실의 여부와 상관없이 오직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진영논리 속에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 증오와 혐오의 딱지를 붙이는 것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언론매체의 편향성은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으며, 공론의 장에서 조롱과 경멸의 언어폭력은 거의 일상화 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바탕이라 할 경청과 대화의 토론문화는 찾아보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한국 정치문화의 후진성, 특히 국회의원을 비롯한 직업정치인들의 구태(舊態)와 무책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갈등과 분쟁을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 풀어나가는 것이 정치의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는데 주저치 않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의 관심이 자신들의 당파적 이익에 매몰되어 내년 4월의 총선과 다가오는 대선에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지극히 암울하다 할 것입니다.



큰 전환이 절실하고 절박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에 명시되어 있는 ‘민주·공화’는 국체이자 국정의 제 1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상황이 ‘민주·공화’의 가치가 심하게 위협 받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민주와 공화가 분리할 수 없는 가치로 통합되고, 그것이 정치제도와 그 운영의 제1 원리로 작동할 때, 우리는 지금의 난제들을 옳게 해결할 수 있는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헌법 제1조의 가치를 선명한 기치로 하는 정당 개혁과 이것을 뒷받침하는 국민 의식의 성숙이 만나야 합니다. 향후 진행될 일련의 선거들이 ‘권력 교체’의 싸움이 아니라 대한민국 최고의 가치인 민주·공화를 새롭게 세우는 ‘시대교체’의 전환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현 정권이 남은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해 국정을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하는 것이 지금의 정치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책무가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정부와 제 정당 그리고 국민께 다음과 같은 제안을 드립니다.


첫째, ‘합의민주주의’와 ‘협치’는 선택이 아니고 필수입니다.

지금 한국의 정치는 시대정신과 미래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다원 사회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더는 한국 정치사회의 문제를 대통령 중심의 문제로 축소하지 말고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정치제도와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편 가름의 망국적 진영논리의 덫에서 시급히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내각의 기능을 강화하고, 동시에 과도한 중앙집권체제의 지양을 통해 민주국가의 본질인 지방분권, 자치분권을 강화하며, 의회의 기능을 되살려 대의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방향으로 정치개혁을 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대의제 민주주의의 핵심인 정당 본래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선거제도를 비롯한 제도개혁은 물론 정당의 설립에 관한 제반 법률의 개정이 필요합니다.

한국사회의 지속적 발전, 양극화·이중화의 해소를 위한 사회적 대합의, 그리고 인류의 지속적 생존을 위한 문명전환이라는 세 개의 국가 목표는 이념적으로 대립하거나 충돌하는 과제들이 아닙니다. 이는 함께, 동시에 추구되어야 할 국정의 과제들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연정과 협치를 최상의 정치방식으로 이해하는 정치문화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중도(中道)가 그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중도적 입장에서 보자면 진정한 보수란 진보적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고 또 진정한 진보란 보수적 가치가 필요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런 중도가 우리 사회의 중심에 자리 잡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 연정과 협치가 일상의 정치문화로 정착될 때 우리는 비로소 헌법 제1조의 민주와 공화의 이상을 구체적이고 보편적으로 실현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남북관계를 ‘통일을 전제로 하는 특수 관계’로부터 ‘평화공존 하는 일반국가 관계’로의 전환이 절실합니다.


남북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고 남북과 동시에 수교하는 국가가 많아지는 국제 환경에서 91년의 「남북 기본합의서」가 나왔습니다. 전문(前文)에는 남과 북 쌍방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관계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고 하면서, 제 1조에는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면서도, 국가 대 국가로 인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남북 기본합의서」의 이 애매한 표현은 ‘통일’에 대한 아름다운 장밋빛 전망을 배경으로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상대에 대한 불신과 공포가 그 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입으로는 통일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에 의해 통일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대한민국에서는 민주화 운동이 독재로 회귀하는 두 차례의 역사적 배경이 되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폐쇄적인 기이한 왕조 국가를 만들어 온 바탕이 되었습니다.

민족의 동질성보다 체제의 이질성이 훨씬 커져 있는 현실에서 같은 민족이라는 특수 관계는 남북이 정상적인 수교를 한 이후에 비로소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일반국가 관계로 전환하는 것은 종전선언과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핵심 사안입니다. 이는 통일을 반대하고 영구 분단을 획책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상호불가침’, ‘내정불간섭’을 내용으로 하는 일반국가 관계의 정립이야말로 쌍방의 불신과 적대와 공포를 해결함으로써 비로소 통일로 가는 진정한 길을 열게 될 것입니다.

남북 평화체제의 구축 문제는 단지 남북 간의 적대를 해소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시아의 공동체성과 평화를 진전시키는 전제조건이자 필요조건입니다.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전환함으로써 북한 핵 문제도 지금까지와 같이 끌려다니는 수동성에서 벗어나 우리의 주도적 노력과 연계하여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셋째, ‘생명에 대한 사랑’을 축으로 하는 문명전환이 시급합니다.



전 지구적 차원의 문명전환은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인류의 생존을 좌우하는 전 지구적 기후변화의 비상사태 속에서 지금까지의 자본주의 체제와 물질중심의 산업문명을 넘어 새로운 문명, 생명과 생태 중심으로의 전환만이 인류의 지속적 생존을 가능케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를 절박하게 인지하지 못하면 우리는 마치 열탕 속의 개구리처럼 공멸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문명은 인간의 자기중심성을 넘어서는 문명이며, 물신(物神)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문명입니다.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인 ‘생명에 대한 사랑’의 힘입니다. 이 새로운 동력으로 정치와 사회체제를 평화롭게 변혁해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문명은 민주주의의 성숙과 진보를 절실하게 요구합니다. ‘인간중심’의 민주주의에서 ‘생명중심’의 민주주의로, 권리의식의 민주주의로부터 책임의식의 민주주의로, 개인과 함께 공동체의 발전과 행복을 위한 민주주의로 확장되고 진보해야 합니다. 개발의 권리 주장에 앞서 돌봄의 의무를 생각해야 하며, 생명을 돌보고 평화를 증진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새로운 문명의 성숙한 민주주의란 온 생명이 함께 사는 지혜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두 길이 있습니다. 쇠락과 도약의 길입니다.


이제 202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로운 10년의 첫해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 세력과 입장들이 같은 평면에서 권력을 놓고 대립 투쟁하는 상태로부터 역사의 질적 진화가 이루어지는 단계로 뛰어 올라야 합니다. 단순한 ‘권력교체’가 아닌 ‘시대교체’의 길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은 우리 공동체가 그 길을 가기 위한 제안들입니다.

지난 세기 우리 한국인들은 국권 상실, 식민지, 분단, 그리고 전쟁이라는 참혹한 시련을 겪어 오면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내면화해온 꿈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반듯한’ 나라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엄혹한 상황과 짧은 시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세계사적인 기적을 일구어왔습니다. 이는 실로 우리의 위대한 자산입니다.

지금 한국사회의 변화와 개혁을 열망하는 국민의 에너지는 그 어느 때 보다 높습니다.

이 제안들이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 일정을 앞둔 지금 각계각층의 활발한 논의와 토론을 통해 ‘새로운 정치,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2020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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