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미
5 June 2018 ·
태영호 회고록을 이틀간에 걸쳐서 다 읽었다.
아이가 고관절염으로 아파서 누워있었는데, 이 책에 정신이 가있어 마음을 반만 주었던 것 같다. 아이에게 미안하다.
책을 인터넷에서 주문하면서 두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그는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또 하나 망명에까지 이르게 한 그의 내적동기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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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북한을 세 단계의 변화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해방이후 사회주의 사회(60년대 후반까지)에서 사회주의 봉건시대(김일성 유일지도체제시기까지)를 거쳐 현재는 노예제사회(김정일-김정은 세습왕조유지를 위한 공포정치시기)로 정리하고 있다.
망명동기는 그가 직접 입을 빌어 밝히지는 않았으나, 자식의 장래에 대한 걱정과 숙청에 대한 공포, 북한사회에 대한 염증과 멸망에 대한 예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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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은 자체핵개발이라는 거대한 목표점을 향해 달려온 북한체제를 60년의 세월을 관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외교관답게 북한을 안팎으로 들여다보며 묘사하고 있어 시야가 시원하다.
예전에 황장엽 회고록을 읽었을 때와는 달리 현장감을 가지고 긴박감있게 읽었다.
62년생이라 선배이긴 하지만 그가 외무성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시기는 내가 세상에 눈을 뜬 시기와 일치해서 동일한 세대라 할 수 있다. 남한에서 북한을 의식한 나의 경험과 그의 인식이 교차되어 재미가 더했다.
이미 북한의 숙청정치, 김씨전제정치의 실상, 햇볕정책의 그늘, 인도적 구호물자의 군부대전용 등 암암리에 다 알고 있던 이야기지만, 태공사의 의식흐름에 밀착되다보니 현장의 공포감과 회의감과 무력감이 생생하게 추체험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가 기술한 사실기억과 그가 내린 판단을 분리해서 보려고 애썼다. 특히 광주항쟁, 김대중정부의 출범과 햇볕정책 등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북한의 외무관리로서 그는 남한의 햇볕정책이나 그가 관여한 영국의 비판적관여정책을 저평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개발에 시간을 벌어주고 북한체제유지에 도움을 줬다는 측면을 주로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 행위는 단기적 성과측면 보다는 널리 유장하게 보는 포석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나의 기존의 판단을 움직일 설득력을 갖지는 못했다.
태공사의 생각의 궤적은 일개인의 돌출적 사고가 아니라 북한상류계층의 생각의 흐름을 부분적으로나마 대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북한체제를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들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본 것은 북한체제는 이미 죽은 사회라는 그의 평가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그의 아들들 세대)는 이 죽은 거죽을 뚫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 같다는 전망이다.
황장엽 회고록 서문에 ‘허위와 기만의 북한사회’라는 말이 반복해 나온다. 태공사도 마찬가지로 이야기하고 있다. 북한을 ‘나라전체가 사기와 허위로 뒤덮였다’고 표현한다.
이 점은 남한사회에서도 내가 느끼는 점과 궤를 같이하는 것인데, 북한의 그것은 출구를 못찾고 하소연할 데도 없고 생생한 공포에 기반한 것이어서 절박함이 더 크다.
우리 남한사회가 활력을 잃고 병들어가는 사회라면 북한은 이미 영혼을 잃고 겉껍데기만 살아움직이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대북관계에 있어서 우리사회는 반분되어있다. 북한을 선진체제로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을 사악한 체제라고보느냐, 아니면 후진적인 체제라고 보느냐의 시각차는 분명히 존재한다.
사악한 체제라고 보는 사람은 체제붕괴만이 답이라고 대부분 직행하고 있고, 후진적 체제라고 보는 사람은 체제진화를 도모하려는 경향성을 띠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이 사악한체제 결론쪽으로 조금 더 견인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남북한 대화의 필요성, 평화로운 핵문제해결을 지지하는 내 생각이 변할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인권을 이유로 북한과의 대화와 평화적 해결을 반대하는 견해도 있는데, 북한의 인권문제는 사실 북한의 체제문제와 분리해서 제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책을 보면 김정일이 “유럽이 인권대화를 하자는 것은 결국 우리내부를 파보겠다는 것인데, 절대 허용할 수 없다. 인권은 국권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북한의 체제문제와 인권문제를 같이본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북한민의 인권을 위해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바는 체제의 변화이다.
태공사도 ‘분단된 현실에서 북한의 통수권자와 대화도 하고 악수도 해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김정은을 천사나 평화의 사도로 묘사하는 것은 북한주민이야 어떻게 살든 한국이 알 바는 아니라는 말로 들렸다’고 서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경계인을 좋아하는 것 같다. 정해진 그대로가 아니라 그 흔들리며 흔들리며 이상을 추구하는 오롯함, 살아있음을 좋아한다. 경계인을 변절자,배신자로 보는 사람도 많은 것, 안다. 눈이 밝지 못한 사람들이다.
둘 다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하지만 경계인은 궁극에서 목숨을 걸고 삶을 추구할 수밖에 없고, 변절자는 목숨이 무서워 삶을 파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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