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9

강주영 소녀상#상징이_권력이_될_수_있다

강주영
9 hrs · Public
#상징이_권력이_될_수_있다
내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전주 풍남문에도 소녀상이 있다. 성노예반대투쟁을 지지하고 그 성과를 칭찬하면서도 소녀상은 불편했다. 많은 지인들이 모금과 건립해 참여했는데 나는 동참하지 않았다. 
상징을 전국적으로 만드는 운동에 동의하지 않는 게 이유였다. 상징은 무엇인가를 강요(?)한다. 아무리 정의롭다 하더라도 강요를 느낀다면 불편하다. 몇 군데라면 이렇게까지 불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뜨개질 모자를 소녀상에 씌여주는 마음은 참으로 아름답게 느꼈다. 그 옆에 몇몇이 뜻을 모아 세월호 추모 산수유 나무를 심는 일에는 동참했다. 나무는 강요하지 않으니까.
내게 소녀상은 페미니즘이나 인권으로 읽히지 않고 극일 또는 반일민족주의로 읽혔다. 그것의 이쪽 이름은 한민족국가주의일 것이다. 전쟁성노예는 팽창국가주의의 산물인데 소녀상에서 고통 받는 여성의 절규가 아닌 한민족국가주의의 냄새를 맡는 것은 나의 과도한 반국가주의로 인한 왜곡과 무딘 후각 탓이었을까? 나는 가급적 소녀상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남부시장에 갈 때 피해다닌다.  
그리고 미군에게 성노예로 착취당한 여성도 수 백 수 천일 텐데, 베트남에서 한국군에게 성착취를 당한 베트남여성은 어쩔 것인가? 
노회찬 선배와 개인적 인연이 있고 그를 존경했지만 '노회찬재단'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재단이 좋은 일을 한다해도 영웅의 서사를 만들고 그에 의존하는 운동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내가 노화찬빠가 된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20년 쯤 후에는 괜찮을 듯 싶기도 하다.
남미 쿠바, 에콰도르, 볼리아, 페루를 간 적이 있는데 가는 곳마다 남미 독립의 아버지라는 볼리바르의 동상을 만났다. 볼리바르 말년의 고통은 사라지고 그는 남미 정권들의 홍위병으로 전시되고 있었다. 
초중고마다 있었던 이순신은 우국충정의 서사, 국가주의 상징이었다. 거기에 사람은 없었다.
상징이 권위가 되고 권위가 권력이 되면 운동은 종파가 되기 쉽상이다. 그때가 바로 정풍과 혁신이 일어날 때이다. 그래야 지난 날들의 성과도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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