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9

춘원 이광수, 가장 잘한 일 - 당당뉴스



춘원 이광수, 가장 잘한 일 - 당당뉴스





춘원 이광수, 가장 잘한 일
장준식 | junsikchang@gmail.com





입력 : 2019년 02월 13일 (수) 13:49:34
최종편집 : 2019년 02월 14일 (목) 00:35:54 [조회수 : 1151]







100년 전, 개화 초기 한국 사회의 3대 천재 중 한 명으로 불리던 춘원 이광수, 교과서에서 배운 계몽주의소설 ‘무정’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를 문학가로 알고 있지만, 실상 그는 언론인이면서 사회운동가였다. 국문학자 김윤식이 이광수에 대한 글에서 평가하고 있듯이, 그에게 문학은 여기(餘技)였다.

이광수는 ‘무정’, ‘유정’, 그리고 ‘흙’ 등 한국 근대 소설의 한 획을 긋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는 언론을 통하여서 수많은 논설을 발표하였는데, 대표적인 논설로 <민족개조론>이 있다. 민족개조론을 발표한 후 이광수는 안창호와 함께 수양동우회를 결성한다. 수양동우회는 자신의 민족개조론을 실천으로 옮길 단체였다.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은 그의 독창적인 생각이라기 보다는 도산 안창호의 <실력양성론>의 연장선에 있었다. 일찍이 도산은 급진적인 독립운동에 맞서 점진적인 독립운동에 대한 주장을 펼쳤는데, 그 핵심 사상이 ‘실력양성론’이다. 급진적인 독립운동을 하고자 했던 독립운동가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력충돌을 일으켜 즉각적인 대일항전에 나설 것을 촉구했으나, 도산은 그들의 생각에 반대하며 힘을 먼저 기르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이광수가 <민족개조론>에서 강조하는 무실ㆍ역행ㆍ충의ㆍ용감의 자기개조 및 자아혁신은 이미 안창호가 <실력양성론>에서 주장하던 내용이었다. 이광수와 안창호는 같은 평안도 사람으로서 이광수는 안창호의 제자였다. 독립운동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은 같았는데, 급진적인 독립운동보다는 점진적인 독립운동, 즉 힘과 실력을 먼저 기른 후 영구적인 독립의 기회를 맞는 것이 더욱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믿었다.

안창호는 ‘실력양성론’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도덕적인 국민, 실력 있는 국민, 화합하는 국민을 만들고자 흥사단과 수양동우회를 조직한다. 이 두 단체는 각기 미주와 한국에서 세워진 단체인데, 이 단체는 직접적인 독립운동 활동이나 정치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훗날 일제에 의하여 수양동우회가 정치단체로 지목되어 안창호와 이광수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옥고를 치른다.

안창호와 이광수는 대단한 독립운동 의지를 지닌 분들이었다. 안창호는 미국에 있는 가족을 돌보지 못한 채 평생 독립운동을 하느라 세상을 떠돌아다녔고, 이광수는 2.8 독립선언서의 기초를 작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안타깝게 안창호는 수양동우회 사건의 옥고 후유증으로 독립을 보지 못한 채 1938년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스승을 잃은 이광수는 망명지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친일행각을 한다.

우리는 이광수를 기억할 때 한국 근대의 위대한 소설가이자 문장가로 기억하지만, 친일행각을 벌인 반역자로도 기억한다. 친일행위 때문에 해방 후 이광수는 반민족행위처벌법에 의해 구속됐고, 구속수감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납북되어 자신의 고향 땅에서 삶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8 독립선언서를 쓸 정도로 대단한 독립 운동가였던 이광수, 그가 왜 안창호의 죽음 이후 친일 행위자로 돌아섰는지에 대한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어느 안창호 연구서에는 안창호가 이광수의 친일 행위를 예견해서 망명지에서 이광수의 귀국을 극구 말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이유는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사상에 이광수가 깊게 물들어 있었는데, 안창호는 그것을 걱정했다는 것이다. 그 사상이란 ‘사회진화론’이었다.

사회진화론은 그 당시 제국열강들이 약소국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쓰였던 사회과학의 사상이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영향을 받은 영국의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에 의해서 주장된 사회진화론은 인종차별주의나 파시즘, 나치즘을 옹호하는 근거와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약육강식 논리에 사용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유행하던 사상이다. 그 당시 최첨단의 지식인이었던 이광수가 세계를 휩쓸고 있었던 사회진화론에 휩쓸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그의 민족개조론도 결국 사회진화론의 측면에서 보면, 민족의 개조가 사회진화론적 입장에서 다른 민족보다 우위에 올라설 수 있는 길이었기에 이광수는 그토록 민족개조론을 통하여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힘 있는 민족의 배양을 이루고자 했던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민족을 실질적으로 다스리고 있는 일본이 사회진화론적 측면에서 보면 한민족보다 더 훌륭한 나라이고 본받아야 할 나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보면, 사상이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얼마나 무서운 도구인지 알 수 있다.

어떠한 사람의 행위는 한 가지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을 만큼 그 안에는 복잡한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이광수는 분명 친일행위를 저지른 인물이지만, 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식인이었던 한 인간의 고뇌와 맞물려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광수의 친일 행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그 당시 피 흘려 죽어가며 끝까지 항일했던 민족 지도자들에게 아픔이 되기 때문이다.

이광수의 친일행각에 대한 좀 더 깊은 연구와 평가를 뒤로하고, 그의 인생의 말년에 그가 행한 일 중 잘한 일은 <안창호 평전>을 쓴 일이다. 이광수는 한국역사의 인물 중 이순신과 안창호를 가장 존경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동시대를 살았던, 스승으로 모셨던, 깊은 영향을 받았던 안창호에 대한 평전을 기술한다.

이광수의 <안창호 평전>은 안창호 연구의 귀중한 사료이다. 안창호와 평생 사귐을 가지며 안창호와 함께 독립운동을 벌였던 동지로서 이광수는 안창호의 삶과 그의 사상에 대하여 글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광수의 <안창호 평전>을 읽고 있노라면, 이광수의 파란만장한 삶이 애처롭고, 그러면서도 이렇게 훌륭한 책을 후대에 남겼다는 게 고맙기도 하다.



장준식

(북가주 실리콘밸리) 세화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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