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2

불교 경전 실감있게 재구성|고은 지음-소설 『화엄경』 - 중앙일보

불교 경전 실감있게 재구성|고은 지음-소설 『화엄경』 - 중앙일보

불교 경전 실감있게 재구성|고은 지음-소설 『화엄경』

[중앙일보] 입력 1992.03.15 00:00 | 종합 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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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 <서울시립대 교수>


고은의 장편소설 『화엄경』은 작년 여름에 처음 간행된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독자들의 꾸준한 호응을 받고 있다.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사상적 가치를 고려할 때 이러한 현상은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어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고은의 소설 『화엄경』은 『화엄경』이라는 이름의 불경 속에 「입법계품」이라는 명칭으로 들어가 있는 선재동자의 이야기를 소설화 한 것이다.

선재동자의 성불하기까지 과정 그려|현세적 요소·화려한 언어 돋보여|

「입법계품」의 내용은 선재동자가 문수보살로부터 보신보살에 이르는 53명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면서 가르침을 받고 깨달음의 사다리를 한계단 한계단 밟아 올라간 끝에 드디어 대원을 이루고 성불하기까지의 과정으로 되어있다.

여기에서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 53명의 인물 가운데는 문수·보현 같이 고귀한 인물뿐 아니라 창녀와 같이 비천한 존재도 포함되어 있으며 여성의 수가 20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조금이라도 문학적인 감수성을 지닌 이라면 이러한 면모를 가진「입법계품」의 이야기가 현대의 작가로 하여금 그것을 기초로 한 새로운 창작의 시도에로 나서게끔 충동할 만한 요소를 적지 않게 내포하고 있음을 금방 수긍할 수 있으리라.

주인공이 순결한 영혼을 지닌 소년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 그 소년이 길 위를 떠돌며 체험을 축적해 가는 과정과 그 영혼이 성장해 가는 과정이 서로 나란히 가고 있다는 사실, 그 소년에게 깨달음을 위한 안내자가 되어 주는 인물들이 실로 다채로운 성분을 망라하고 있으며 그들 가운데 여성이 절반 가까운 비율을 차지한다는 사실 등등이 모두 그러한 요소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입법계품」이 아무리 그러한 요소를 담뿍 안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 자체는 어디까지나 아득한 옛날에 기록된 불교 경전의 일부라는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며, 따라서 단조로운 구성과 엄숙한 설교 투의 스타일에 감금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작가가 이 이야기를 기초로 하여 새로운 참조의 작업에로 나설 때에는 위에서 언급한 몇가지 요소들의 매력을 일단 적극적으로 사용하되 구체적인 인물을 설정하고 사건을 전개하며 문장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는 원전의 면모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나름의 완전히 새로운 작품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상으로 장편소설 『화엄경』의 바탕이 된「입법계품」의 개요,「입법계품」이 현대작가의 관심을 끌만한 이유, 그리고 현대의 작가가 「입법계품」을 기초로 해서 새로운 작품을 쓸 경우의 문제점 등을 간단히 짚어보았다.

이 정도의 예비 지식을 갖고서 다시 고은의 소설 『화엄경』으로 돌아라 살펴보자.


그는 「입법계품」을 소설화함에 있어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차례로 찾아가 만난다는 기본골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구체적인 작품 공간을 창출해 나감에 있어서는 원전의 면모에 조금도 구애받지 않고 완전한 의미에서의 환골탈태를 이룩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빛과 향기를 획득하는데 성공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같은 성공을 가능케 한 비밀은 대략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소설 『화엄경』 이 원전에 없는 역사적·현세적 요소를 상당히 적극적인 자세로 도입함으로써 원래의 「입법계품」보다 훨씬 실감 있는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작가가 선종의 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파격적이고 자유분방한 관점·스타일을 작품 속에 끌어들임으로써 원래의 「입법계품」보다 더욱 생동하는 성격을 창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고은 특유의 화려하고 발랄한 언어가 여기에서도 거침없이 구사돼 이를테면 「고은만의 공간」이라고 일컬음직한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대략 세가지의 측면에서 원래의 「입법계품」을 대대적으로 손질한 결과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기에 이른 고은의 『화엄경』은 이 글의 서두에서도 말했다시피 독자들의 호응을 꾸준히 받아오고 있다. 이것은 『화엄경』이라는 소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매력에다 동양적인 고전의 세계에 대한 독자 대중의 간절한 그리움이 덧붙여진 결과로 나타난 현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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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불교 경전 실감있게 재구성|고은 지음-소설 『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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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 화엄경

그레고르옥자 () l 2015-12-09 01:13
https://blog.aladin.co.kr/733182138/8027486 



화엄경
고은 지음 / 민음사 / 1991년 7월
평점 : 
품절 





예닐곱 살 여덟아홉 살 무렵의 내 장래희망은 스님이었다. 지금은 프로필을 작성할 때 종교란을 놓고 무교로 할 것인지 불교로 할 것인지조차 고민하지만, 그때는 정말 불심으로 충만했다. 집에서 목탁을 하도 두드려서 이웃집의 항의도 받아봤고, 동자승 달력모델이 되어볼까 진지하게 고민도 해봤다. 어머니의 영향인지 불교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주말이 되면 어머니를 따라 선원에 가서, 남들 다 염불 외고 기도하는 동안 서가에 앉아서 불교만화를 보곤 했다. 진묵대사라던가, 석가모니라던가, 서유기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 중에서도 화엄경을 열심히 봤더랬다. 문득 떠올랐다. 선재동자가 진리를 찾아 험난한 여정을 거듭하는 장면이.




고은 시인의 『화엄경』은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 구도기를 소설화한 것이다. 초판은 91년에 나왔으며 지금은 절판되어 시중에선 볼 수가 없다. 뒷면엔 이문열의 추천사가 적혀 있다. 시인이 승려였던 시절(1959년), 운허 스님으로부터 화엄경을 서사시로 쓰라는 말을 들었고, 한참이 지나서야(1991년) 장편소설로 그 말씀을 이행했다고 한다. 1969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하니 그 22년간의 여정이야말로 하나의 구도와도 같았을 것이다.




소설 『화엄경』은,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의 명을 받들어 보살의 길을 찾기 위해 남인도 일대로 구도기행을 떠나 마지막 보현보살까지 53인의 스승을 만나 진리를 깨우친다는 내용이다. 선재의 스승은 다양하다. 바라문, 어린이, 뱃사공, 창녀, 도둑 등등 구태여 부처와 관련이 있지도 않다. 때로는 선재가 스승이 된다. 각종 신神도 스승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화엄경』은 불도佛道를 넘어 종교를 초월한 진리를 다룬다고도 봄직하다.




소설 속 선재는 쉰 세 명의 스승을 찾아가고, 배우고를 반복한다. 때로는 꿈속에서, 때로는 만나지도 않고 배운다. 스승은 다음 스승을 일러주고 선재는 다음 스승을 찾아 미련 없이 걷는다. 때로는 충만하게 걷고 때로는 의구심에 빠져 걷는다. 진리를 얻기 위한 과정은, 보살에의 길은 오직 두 발바닥으로 흙길을 디뎌야만 다다를 수 있다. 그 여정이 너무나도 길고 힘들어서, 또 진리의 말들이 현학적이어서 자취를 눈으로 좇기가 좀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꾸준히 등장하는 시와 노래, 고은의 문체는 책을 붙잡게 만든다. 아름다운 진리를 아름다운 말로 표현한다.



경전이 고은의 손끝에서 문학으로 바뀌었다.



[내 삶이 길 위에 있을진대

내가 어느 스승을 찾으랴

길이 내 어버이, 길이 내 스승이매

이 길 위에서 나고 죽어서

길이여 길이여 내 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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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고은 (지은이)민음사199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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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절 확인일 : 2017-03-10
536쪽148*210mm (A5)697gISBN : 9788937400049

고은 (지은이)


1933년 8월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18세의 나이에 출가하여 수도생활을 하던 중 1958년 『현대시』『현대문학』 등에 추천되어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피안감성』(1960)을 펴낸 이래 고도의 예술적 긴장과 열정으로 작품세계의 변모와 성숙을 거듭해왔다. 연작시편 『만인보』(전30권), 서사시 『백두산』(전7권), 『고은 시전집』(전2권), 『고은 전집』(전38권), 『무제 시편』, 『초혼』을 비롯해 16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고, 1989년 이래 영미ㆍ독일ㆍ프랑스ㆍ스웨덴을 포함한 약 20여개 국어로 시집ㆍ시선집이 번역되어 세계 언론과 독자의 뜨거운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한국문학작가상 단재상 유심작품상 대한민국예술원상 오상순문학상 등과 스웨덴 시카다상, 캐나다 그리핀공로상, 마케도니아 국제 시축제 ‘황금화관상’ 등을 수상했으며, 세계시단의 주요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의장, 버클리대 한국학과 방문교수, 하버드 옌칭연구소 특별연구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이사장이며, 서울대 초빙교수 및 단국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로 쓴 한민족의 호적부’라 일컬어지는 연작시편 『만인보』는 시인이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특별감방에서 수감되었을 때 구상한 것이다. 1986년 1권을 출간한 이래 25년 만인 2010년, 전30권(총 4,001편)으로 완간된 『만인보』는 한국문학사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사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념비적인 역작이다. 2012년 10월, 55년간 써온 작품들 중 240편을 모은 대표 시선집 『마치 잔칫날처럼』을 출간했다. 접기
수상 : 2015년 심훈문학대상, 2014년 공초문학상, 2014년 스트루가 황금화환상, 2008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2007년 영랑시문학상, 2004년 단재문학상, 1999년 현대불교문학상, 1993년 대산문학상, 1989년 만해문학상, 1974년 한국문학작가상
최근작 : <어느 날>,<시요일 스페셜 (시요일 APP 1년 이용권 + 특별 한정판 시집 5종)>,<고은 깊은 곳> … 총 198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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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만물이 그대의 스승임을
스승의 아름다움은 그 존재로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함이 느끼는 것임을
책을 덮고나면 길 위에 선 수행자가 된다  구매
나나나 2015-03-2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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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세명의 스승을 만난 선재가 나는 꼭 15살에, 부러웠다. 그처럼 나에게도 그런 스승이 있었다면 마구 원했다. 그후로 10년이 넘게 흘렀다. 나는 아직도 화엄경을 잊지못한다. 지켜볼 일이다. 나를 말이다.  구매
september 2011-12-28 공감 (0) 댓글 (0)

마이리뷰
   
강추하는 불교소설이에여 새창으로 보기
이책...어라 구입못하게 되었네여...

그러나...꼭 한번 구해다 읽어보세여...불교믿는 분이라면 말이져...중고책방이나 공공도서관에 있겠져?

이책...소설책 치고는 꽤나 두꺼운 책임돠...그런데...신기하게도 이거 읽으면서 별로 피곤한 줄 몰랐어여...불교에 관심있고, 구도자의 길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이라면...읽고나서 많은 느낌을 받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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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고 운허(耘虛)스님의 권유로 집필을 시작한 작품으로, "1959년 운허스님이 화엄경에 나오는 남순동자(南巡童子) 선재(善財)가 진리를 찾아 다니는 일대기를 서사시(敍事詩)로 써보라는 권유가 계기가 됐다"면서 "운허스님은 춘원이 쓰려다가 못쓴 것이니 일조(고은씨의 법명) 수좌가 쓸 차례라고 권했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고은 씨는 환속한 뒤 69년 독서신문에 <어린 나그네>를 연재하면서부터 집필을 시작, 74년 연재된 것만으로 책을 냈는데, 그후 22년에 걸쳐 성우 향봉 지선스님과의 인연으로 나머지 2천여 장을 집필, 500 페이지가 넘는 장편이 됐다고 밝혔다.

화엄경은 부처님 설법 초기에 다온 대승사상을 담은 경전으로 주인공 선재의 구도기(求道記)이다. 선재동자가 구도를 위해 남인사 순례 여행에 나서 53인의 스승을 만난 끝에 문수보현 보살의 가르침으로 궁극의 경지에 이른다는 줄거리이다.

작자는 이 작품에서 특유의 시적이고 잠언(箴言)적인 표현을 많이 쓰고 있다. 즉 딱딱한 경전에 문학적 향기를 불어넣어 선재동자의 진리를 찾아가는 역정을 인간적인 이야기로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화엄경이 입법계품 그대로라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면도 있다. 이를 닮았다면 그것은 내 문학의 어리석음이라고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는데 그만큼 자신의 상상력(想像力)과 통찰력(洞察力)이 스며있음을 강조해 눈길을 끌고 있다. -----  [동아일보] 199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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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1sku 2004-03-05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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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읽기의 지루함, 혹은 즐거움 ..... 새창으로 보기
어린아이의 세계는 현실의 세계와는 달리 거짓이 없다. (....) 어린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그것과 말할 수 있으며 넋의 교제가 가능하며 그것들과 함께 슬퍼하고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다.그러나 현실은 그런 동화의 깊은 세계를 잃어버리고 있다. 그것 없이는 얼마나 현실이 궁핍한가를 현실은 모르고 있다. 많은 고대의 현자들이 말해 준 신화는 실지로 그들이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갔을 때 그들이 목격한 아주 커다란 태초의 현실이었다.

사람들 사이에는 대개 호오(好惡)의 감정이 약간씩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나와 고은 사이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나는 고은이라는 작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를 이야기하란다면 그 대답에는 망설여질 터이지만 하여튼 그렇다.

세상에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어디 그렇게 딱 부러지는 이유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던가. 굳이 해야 하는 자리라면 한두 가지 챙겨서 말하지 못할 바도 아니겠지만 여기서 굳이 그런 무리까지 할 필요는 없으리라.

나의 서가에는 그의 책이 별로 없다. 3권이 있을 뿐이니, 그가 100 여 권이 넘는 책을 낸 것에 비한다면, 그리고 나의 상당한 책 수집벽에 비추어본다면 이것은 사실 여간한 감정이 아닐 수 없다. 하기에 내가 여지껏 고은의 소설 <화엄경>을 읽지 않은 이유도 그리 짐작하지 못할 바는 아닐 성싶다.

특히나 이 소설의 경우, 기왕의 싫은 감정도 감정이려니와, 이 소설의 작가가 환속한 사람이고 이 소설이 바로 그런 작가에 의해 씌어진 '불가 소설'이라는 점에서도 저러한 거부감의 이유는 찾을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 작가의 <절을 찾아서>라는 책을 읽으면서 느껴야 했던 기왕의 상당했던 반감도 일조하고 있을 터이다.

실제로 저 상당한 광고 공세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근에야 소설 <화엄경>을 읽게 되었다. 그것도 처음부터 책을 사서 읽은 것은 아니고 그저 빌려서 읽고 치울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나마의 작정이란 것도 이 소설의 작가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문열의 찬사 때문에 하게 된 것이었다. 하기사 그 이유를 거의 전적으로 이문열의 찬사로만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기에는 소설 <화엄경>이 ''91 중앙문화대상 예술상'을 수상한 작품이었다거나 일전에 읽은 작가의 <만인보>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는 사실 등도 적지 않게는 영향을 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런 사실들이 책을 읽게 한 직접적인 동인은 분명 아니었으니, 그 주된 이유는 아무래도 책의 뒷표지에 씌어 있는 이문열의 글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문열은 거기에서 소설 <화엄경>에 대해 다음과 같은 찬사를 보내고 있다.

기독교 문학으로는 <천로역정>이 있고, 시적으로는 단테의 <신곡>이 있지만 솔직이 소설 <화엄경>이 주는 감동은 그 두 작품을 뛰어넘는다. 소설 <화엄경>은 무엇보다도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참됨의 아름다움, 거룩함의 아름다움에다 추구와 탐색의 아름다움이 있으며, 말의 아름다움, 사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비어 있음의 아름다움과 잃어버림의 아름다움이 있고, 낯섬의 아름다움, 뒤틀림의 아름다움이 있다. 거기서는 자칫 잡스럽게 보일 수도 있는 관능의 세계도 아름다움이고, 심지어는 집요함과 치우침도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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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광 2000-10-1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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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 화엄경 새창으로 보기
예닐곱 살 여덟아홉 살 무렵의 내 장래희망은 스님이었다. 지금은 프로필을 작성할 때 종교란을 놓고 무교로 할 것인지 불교로 할 것인지조차 고민하지만, 그때는 정말 불심으로 충만했다. 집에서 목탁을 하도 두드려서 이웃집의 항의도 받아봤고, 동자승 달력모델이 되어볼까 진지하게 고민도 해봤다. 어머니의 영향인지 불교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주말이 되면 어머니를 따라 선원에 가서, 남들 다 염불 외고 기도하는 동안 서가에 앉아서 불교만화를 보곤 했다. 진묵대사라던가, 석가모니라던가, 서유기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 중에서도 화엄경을 열심히 봤더랬다. 문득 떠올랐다. 선재동자가 진리를 찾아 험난한 여정을 거듭하는 장면이.



고은 시인의 『화엄경』은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 구도기를 소설화한 것이다. 초판은 91년에 나왔으며 지금은 절판되어 시중에선 볼 수가 없다. 뒷면엔 이문열의 추천사가 적혀 있다. 시인이 승려였던 시절(1959년), 운허 스님으로부터 화엄경을 서사시로 쓰라는 말을 들었고, 한참이 지나서야(1991년) 장편소설로 그 말씀을 이행했다고 한다. 1969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하니 그 22년간의 여정이야말로 하나의 구도와도 같았을 것이다.



소설 『화엄경』은,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의 명을 받들어 보살의 길을 찾기 위해 남인도 일대로 구도기행을 떠나 마지막 보현보살까지 53인의 스승을 만나 진리를 깨우친다는 내용이다. 선재의 스승은 다양하다. 바라문, 어린이, 뱃사공, 창녀, 도둑 등등 구태여 부처와 관련이 있지도 않다. 때로는 선재가 스승이 된다. 각종 신神도 스승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화엄경』은 불도佛道를 넘어 종교를 초월한 진리를 다룬다고도 봄직하다.



소설 속 선재는 쉰 세 명의 스승을 찾아가고, 배우고를 반복한다. 때로는 꿈속에서, 때로는 만나지도 않고 배운다. 스승은 다음 스승을 일러주고 선재는 다음 스승을 찾아 미련 없이 걷는다. 때로는 충만하게 걷고 때로는 의구심에 빠져 걷는다. 진리를 얻기 위한 과정은, 보살에의 길은 오직 두 발바닥으로 흙길을 디뎌야만 다다를 수 있다. 그 여정이 너무나도 길고 힘들어서, 또 진리의 말들이 현학적이어서 자취를 눈으로 좇기가 좀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꾸준히 등장하는 시와 노래, 고은의 문체는 책을 붙잡게 만든다. 아름다운 진리를 아름다운 말로 표현한다.



경전이 고은의 손끝에서 문학으로 바뀌었다.



[내 삶이 길 위에 있을진대

내가 어느 스승을 찾으랴

길이 내 어버이, 길이 내 스승이매

이 길 위에서 나고 죽어서

길이여 길이여 내 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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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르옥자 2015-12-09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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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작가 고은 씨의 소설 『화엄경』
 법보신문 승인 2004.12.22


경전의 소설화 시대 개막
연재 22년만에 책으로
2주만에 3만부 판매

시공 초월한 장중한 표현
몽환적 분위기로 독자 압도

불교의 대표적 경전으로 칭송되고 있는 화엄경을 장편 서사시(敍事詩) 형식으로 소설화하여 비로소 불교경전의 소설화 시대를 열었던 책이 고은(高銀, 1933- ) 선생의 장편소설 『화엄경』이다.

이 책은 불교계는 물론 저자와 출판사, 그리고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발매되기 시작한 지 2주일만에 3만 부(6판)가 판매되는 경이적인 기록을 발휘했다. 일조에 베스트셀러가 되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모두가 의아해 한 것은 “불교경전을 주제로 한 소설이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였다. 경전을 소설화 한 것도 처음이었지만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것은 정말 상상 밖이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이 책은 민음사에서 출판될 때(1991)까지만 해도 장장 22년 동안 『독서신문』(‘어린 나그네’)’, 『대중불교』(‘소년 선재’) 등을 전전하면서 거의 무관심 속에 연재되었던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소설 『화엄경』은 한마디로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이 대단히 풍부한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시간과 공간의 벽이 없고 장중한 서사시적 표현들이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다. 작품의 무대가 되고 있는 인도의 지리 풍토 문화적 묘사가 사실 여부를 떠나서 지극히 몽환적으로 다가온다. 한 장만 넘겨도 금방 무슨 특이한 장면(표현)이 쏟아질 듯한 분위기는 더욱 독자로 하여금 이 책에 몰입하게 한다. 작품의 전개도 박진감 있고 문학적 표현도 매우 아름답다. 언어의 아름다움, 종교적 신비의 아름다움, 그리고 자칫 추잡스럽게 보일 수도 있는 관능의 세계도 아름답게 펼쳐진다.

아마 일반적 소설 기법에 젖어 있던 독자들로서는 매우 감동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또 풍토적 지역적 무대가 인도로서 이국적 색채를 띠고 있다는 점도 색다르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 선재동자와 몇몇 주요인물만 그대로 남아 있고 기타 등장하는 여성이나 장면, 지리 풍토적 묘사 등은 모두 창작 각색된 것이다.

소설의 줄거리. 이제 막 소년의 문턱에 들어선 어린 구도자 ‘선재동자’(9세)는 깨달음(진리)을 구하기 위하여 갖가지 고난을 극복하며 53명의 선지식을 순례한다. 그가 만나는 선지식 중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있는가 하면 하찮은 창녀도 있고 상인도 있고 뱃사공도 있다. 완숙한 육체적 절정에서 소년 선재와 하나가 되기를 기다리는 30대 여인도 있고 보살행의 성자 보현보살도 있다. 성(聖)과 속(俗)의 갖가지 사람들이 신분과 차별을 초월하여 선지식으로 등장한다. 진리는 반드시 훌륭한 고승한테서만 얻어지는 게 아니라 어떤 사람한테서나 구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부처(진리) 아님이 없다’는 대승불교의 사상, 화엄의 세계가 그대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 책은 『화엄경』 전체를 소설화 한 것이 아니다. 『화엄경』 39품 가운데 마지막 장인 입법계품, 즉 ‘선재동자의 구도 이야기’를 화엄의 무애사상과 결합시켜 문학적 종교적으로 창작 각색한 것이다. ‘선재동자의 구도 이야기’는 화엄경 전체에서는 약 25%를 차지하며 입법계품에서는 거의 전체를 차지한다.

고은(高銀)의 문학인생을 대표하는 소설 『화엄경』의 파고는 다음해까지 출판가를 휩쓸었다. 2년 후(1993) 장선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으나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흥행을 보지는 못했다.

고은 선생은 전북 군산 출생으로 20세(1952년)의 나이로 효봉스님의 문하에 입산, 약 10여 년 동안 승려생활을 했다. 법명은 일초(一超), 대표 시집인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를 비롯하여 소설, 수필 등 100여권의 저술이 있다. 신국판 530쪽, 1991년, 민음사 간. 윤창화 〈민족사 대표〉
changhwa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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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화엄경 > - 고은.
민음사.
"끝없이 길을 걸어서 진리를 만나려 하는 그 거룩한 어린이의 얘기."
"그리하여 이 세상은 괴로운 바다이자 진리의 바다인 것이다."
가을이 완연해지고 하늘이 한참 푸르고도 너무나 아름답고 빛나는 이 가을 한 자락에
< 소설 화엄경 >을 읽고 나의 독후감을 써 보겠다.
화엄경(華嚴經).
초기 불교 경전 중 하나로 법계연기와 사사무애의 교설을 밝힌 대승 경전이다.
40권본, 60권본, 80권본의 어마어마한 책 수와 무한한 내용이라고 하니
내가 불교 신자가 아니어서 잘 모르지만
화엄경이라는 경전을 다 읽으려면 인생 동안 한참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화엄(華嚴)이란 무엇인가. 최근에 사전에서 알게 되었는데
화엄은 여러 가지 수행을 하고 만덕을 쌓아 덕과를 장엄하게 하는 일이라고 한다.
화엄의 이러한 정신은 사실 소설 속의 "어린 나그네" 선재의 행실이지 않을까.
중생들의 끝없는 괴로움과 아픔을 함께 하고 어루만져주기 위해 인도 곳곳을 여행한 어린 선재

책.
여행 과정에서 몸도 마음도 고생이 많았지만 마음 속 한켠으로는 진리와 보살행을 추구했기 때
문에
선재 인생으로써는 아마도 구도의 여행, 화엄 그 자체였다.
어린아이 선재로서는 "거룩한 여행"이었다. 이 길은 우리 같은 세상 사람들이 아무나 할 수 없
는 일이다.
사실 나는 화엄경이라는 경전은 이름만 들어봤지 실제로 어떤 경전인지 전혀 몰랐다.
내가 아는 불교 경전이야 고작 반야심경(般若心經),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정도.
반야심경은 옛날에 우리 이모로부터 서예를 배울 때 한문으로 반야심경 내용 전체를 다 배워서
쓴 적이 있었고,
부모은중경은 동화사 기념품점에서 우연히 제일 얇은 경전 하나를 꺼내서 읽어보니 그게 부모
은중경이었더라.
그래도 내용 하나는 좋았다. 부처님이 길가의 뼈 무더기를 본보기로 효도를 강조하셨으니.
하긴 뭐, 내가 불교가 아니니 경전 이야기는 그냥 확 넘어가 버리자.
이 < 소설 화엄경 >을 쓴 작가는 고은 시인이다.
어느 스님의 부탁을 받아 화엄경 경전을 받아 이 소설을 쓴 것이 22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상품의 가치가 없다고 겸손해한 작가는 시인이지만 < 소설 화엄경 >만 봐도 하나의 대작가이
자 소설가였다.
게다가 소설 한 권의 양도 532 페이지나 되었고 책도 제법 두꺼웠다.
< 소설 화엄경 >이 22년의 집필 끝에 1991년에 출간되었으니 꽤 한참이나 오래 되었으리라.
우리 집 서재에 < 소설 화엄경 >이 한 쪽 구석에 박혀 있었다가 내 손에 발견되어 몇 번 읽어
보았지만
내용이 너무 많고 길어 귀찮았고 결국 끝까지 다 읽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화엄경을 끝까지 읽을 목표를 열흘로 세웠다.
10월 2일부터 10월 10일까지 하루에 각각 60 페이지씩 읽었다. 하루도 건너뛰지 않고 읽었다.
화엄경을 하루하루 읽다보니 마치 내 심정이 원고 마감에 쫓기는 작가의 심정과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선재의 여행 구도기에 배울 점이 많다고 느껴졌고
역시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 내키는 대로 살고 있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틀 전 10월 10일, 마침내 < 소설 화엄경 >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고,
그러고 나서 나의 마음은 한층 가벼워졌다.
아. 화엄경. 역시 재미있었어. 그런데 어려운 것들이 많아.
< 소설 화엄경 >은 게으르고 약했던 나의 끈기를 조금 더 강하게 키워주었고, 진리도 함께 가
르쳐 주었다.
자. 이제 < 소설 화엄경 >에 대해서 설명해 보도록 한다.
< 소설 화엄경 >은 고은 시인이 쓴 화엄경을 바탕으로 한 구도(求道) 장편소설로,
9세의 어린아이인 선재가 주인공으로 진리와 보살행을 구하기 위해 남인도와 북인도 곳곳을
편력하여
떠돌아다니는 "어린 나그네의 진리 구도 여행기" 이다.
진리를 알려줄 다양한 스승들이 대부분 있었던 남인도를 위주로 여행을 했기 때문에
선재의 별명은 남순동자(南巡童子)이기도 하다.
어린 나그네 선재는 북인도 출신으로 어느 부잣집 아들이었으나 전쟁 환란 중에 부모와 집을
다 잃고
문수보살에 의해 구조되면서 그의 가르침으로 인하여 어린아이의 첫 길을 떠나게 된다.
선재는 이렇게 남인도를 떠돌아다니며 총 53명의 스승을 만나 진리를 묻고 깨닫는 여행을 많
5 이 하게 된다.
어린 나그네 선재가 만난 스승은 특별하거나 거룩한 어떤 존재는 아니었다.
속세에 사는 일반인들도 선재의 스승이었다. 보살과 숲의 신 뿐만이 아니라 소녀, 창녀, 술주정
뱅이, 어린아이,
승려, 왕, 부자, 의사, 뱃사공 등도 모두 선재에게는 스승이었다.
부처님의 어머니였던 마야 부인도 선재에게 스승이었지.
하지만 마야 부인 자신은 여러 부처들의 어머니라고 고백을 했다지.
그렇게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이 스승이 되어 선재의 길고 길었던 구도의 여행은 끝이 나게 된
다.
그러나 선재는 아직도 길을 더 떠나야 한다. 전에는 구도를 위한 여행이었지만
이제는 중생을 위해 진리를 더 배우고 가르치기 위한 여행을.
결국 < 소설 화엄경 >은 어린 나그네 선재가 한 어린아이와 함께 미지의 길을 떠나는 것으로
결말로 끝난다.
< 소설 화엄경 >은 선재 개인의 편력기 뿐만이 아니라 선재의 구도 여행 당시의 상황,
인도 곳곳의 다양한 인종과 아리아 족과 드라비다 족 분위기, 인도의 카스트 제도,
인간의 탐욕과 전쟁으로 인한 끝없는 중생들의 고통, 그 속에서 탄생한 석가모니의 불교 교단,
불교 교단이 카스트로 얼룩진 이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만민의 평등을 외치고 다닌 사상,
그로 인해 환영을 받기도 했고 때로는 폭행과 살인까지 당했던 상처들을 안기도 한 불교 교단.
이렇게 여러 복잡한 이야기들도 함께 반영하고 있었다.
아 맞다. 소설 속에서도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알려주는 진리 몇 구절도 있었지.
선재는 길고 길었던 혼자서의 구도 여행을 통해서 많은 고난과 유혹들을 겪었지만
진리를 향한 그의 일념 하나로 당당히 극복하고 뿌리쳤다.
특히 첫 사랑이었던 이련 아씨와 오랜만에 만나 부부가 되었지만
결국 부부됨도 구도자의 근심이라고 생각한 선재는 아내와 아이를 버리고 계속 구도의 길을 간
다.
오죽하면 선재가 뱃속의 아이마저도 "폭풍의 씨앗"이라고까지 독설을 했을까.
하나의 유혹이 결국 개인의 고난으로 커지기까지를 이야기하는 걸까.
이 세상을 살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두고 가정을 꾸리는 많은 우리들은 선재를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도 요즘 결혼도 아이도 늦게까지 미루려고 하고
결혼했어도 후회하고 괴로움이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현실을 보니
선재가 가족을 "폭풍의 씨앗"이라고 한 것도 이해가 된다.
구도의 길을 위해 평범함을 거부해야 했을까. 남들이 다 겪는 행복을 거부해야 했을까.
구도가 대체 뭐길래. 진리가 대체 뭐고, 보살이란 대체 뭐길래.
선재의 여행이 그렇게 불교 수행자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인연도 미련을 두지 않고, 세상 즐길 것과 쾌락, 즐거움을 다 버리고, 세상은 꿈이고 무상하다는
걸 깨달으며.
하지만 고은 시인이 첫머리 "작가의 말"에서 본인이 말했듯이,
선재의 구도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선재가 길고 길었던 많은 여행을 통해서 자신이 점점 내면적으로 성숙해지고 보살이 되어갔듯
이,
우리 각자의 삶도 저렇게 하나하나 성숙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 성숙해지는 수단이 뭘까. 인간관계? 책? 여행? 예절? 인생 경험? 일?
물론 다 있을 수도 있지만 무엇이든간에 우리 개인으로부터 성숙해지면 세상도 성숙해지지 않
5 을까.
그런데 요즘은 거꾸로 가고 있다. 사람들이 점점 문란해지고, 타락해지고, 가식적이고, 서로 이
용하고....
이제는 문란해지지 않으면 정상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은 땅에 떨어졌

점점 말세가 되어가 버렸다.
그러니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정신의 성숙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인가.
"진리를 찾아서 무얼 해요. 그걸 찾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폭풍우 속에서 구도를 향한 선재의 행동에 이해를 하지 못하는 이련 아씨의 이런 말도,
어쩌면 세상 사는 우리들 모두의 모습과 똑같지 않을까.
상술(商術)이 넘쳐나고, 눈에 보이는 것들이 현혹하고, 거짓이 넘쳐나고, 속임과 상처가 넘쳐나
고,
사람들은 쾌락과 욕망에 쫓기 바쁘고, 그들 사이에 문란이 넘쳐나고, 평범하고 편한 것만 추구
하고,
개념과 예의가 밥 말아먹듯이 점점 없어지고, 몰상식과 두꺼운 낯만 점점 높아지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런 사람들이 진리를 찾기 싫어하는데.
그렇다면 진리를 찾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련 아씨의 말과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진리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생활 곳곳에도 진리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굳이 종교에 귀의하거나 스님이 되지 않더라도 우리 안의 "진실"을 찾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작은 하나하나라도 찾아내고 실천하면 우리의 삶이 조금씩 성숙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
해 본다.
< 소설 화엄경 >. 이미 너와는 친해졌어.
이제는 너와는 친구하며 함께 할래.
너는 단 한 권의 책이 아니었어. 너는 나에게 스승이자 친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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