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확산돼도 체제 변화는 없어...북한 내부서 무너질 가능성 없다”
최경희 박사 ‘김정은 정권의 변화: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강연
이지희 기자 (jsowuen@gmail.com)
종교신문
기사입력 2020-06-25 03:04 PM
"원래 체제 충성하던 사람이 배신감 느끼면 반격하는데, 이제는 충성도 떨어져 반격할 저항력 없어"
"주민 스스로 먹고살기 때문에 정보화·개인주의화 확산과 이에 따른 사적 공간 확대로 정치에 단념"
"북한의 시장 확산으로 변화가 많은 것 같지만 사실상 수령 중심의 북한 체제 자체는 변화가 거의 없기 때문에, 북한 내부적으로 무너질 가능성은 절대 없다고 봅니다. 만약, (북 주민) 스스로의 변화라면 가능성은 있지만, 우리가 요구하는 변화의 방향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탈북민 출신 첫 해외 박사이자 샌드연구소 대표인 최경희 박사는 "북한의 변화를 볼 때 한쪽으로만 계속 생각할 수 있는데, 북한에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함께 봐야 한다"고 당부하며 이같이 말했다.
▲최경희 샌드연구소 대표는 “북한의 시장화는 인민·집단보다 개인이 중요시되는 기회이지만 ‘개인의 자율성 회복’ ‘권력자의 위기 초래 가능성’보다 단념화되고 무의식화 현상의 증대를 가져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지희 기자
지난 22일 물댄동산교회(조요셉 목사)에서 열린 관악통일비전포럼 창립총회에 앞서 진행된 초청강연에서 '김정은 정권의 변화: 가능성과 한계'를 주제로 발표한 최 박사는 "북한 사회를 파악하려면 북한 체제가 어떤 모델로 작동하는지 메커니즘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며 "북한 체제는 1967년 국제공산주의운동 안에서 사용했던 수령 호칭을 공식화하면서 김일성이 유일한 수령으로, 이는 후계자로 계승되고 당은 당으로, 인민은 인민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수령이 구심점이 돼 사회를 견인하는 동심원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래서 수령인 김일성은 '태양'에, 영도자 김정일은 '광명성', 김정은은 '북극성'의 별에 비유해 우주에서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과의 연관성을 정치 시스템에 도입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경희 박사는 "김일성 시대는 '당', 김정일 시대는 '군', 김정은 시대는 '국가'를 내세우지만, '당, 군, 국가'는 수단이고 언제든지 그 위의 권력자인 수령과 후계자를 위해 바뀔 수 있는 것"이라며 "현재 김정은이 '국가'를 내세우는 것은 조선노동당이 실익을 따지는 중국공산당과 교섭이 안 돼 당이 나서 외교를 총괄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북한 체제에서는 '한 사람의 수령'과 '다수의 인민'의 힘의 크기가 동등하다고 본다며 "수령 쪽의 힘이 커지면 커졌지, 작아지면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곳이 북한이다. 한 방향으로 김일성 일가 3대까지 오니 내부에서 이것이 무너지는 일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최 박사는 말했다.
북한 체제의 원형은 변화가 없지만, 수단의 변화 가운데 시장(장마당)이 크게 확산되면서 일어난 유의미한 변화는 바로 '계층 이동'과 '가치관의 변화'라고 주장했다. 최 박사는 "신흥부유층이 권력과 결탁하면서 평양으로 거주지를 이동하거나, 돈이 없으면 조직 생활을 못하고 지방으로 쫓겨나는 등 평양 인구가 바뀌고 있다. 경제정책의 시장 의존도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독재 시스템이 고착화한 상황에서도 북한 주민이 살기 위해 유일하게 자신들의 의지대로 만든 것은 장마당"이라며 "자본주의를 전파시킨다고 시장을 막으려 했지만 결국 김정일 시대에 시장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고, 2003년 종합시장이 나와 세금을 거두기 시작했는데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북한 내 시장이 확산되면서 과거와 달리 사적 영역, 사적 공간이 생겨나고 확대되고 있다"며 "과거에는 배급을 주니 수직적으로 충성을 요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주민이 스스로 먹고살기 때문에 (당에서는) 충성을 요구하면서도 사실은 정보화, 개인주의화에 따른 '단념화' '거리두기'를 하여 정치에 대해서는 아예 단념하도록 하고, 교육도 그러한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관악통일비전포럼 창립총회에 앞서 진행된 초청강연 시간에 최경희 박사가 강연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최 박사는 "과거 북한은 한 인간이 사회적 자본을 가질 수 없었던 시스템이라면, 이제는 시장이 있으므로 이를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다"며 "원래 체제에 충성하던 사람이 배신감을 느끼면 반격을 하는데 이제는 충성도가 떨어져 반격할 저항력이 없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북한의 정치토양 자체가 의식화·조직화·세력화될 수 있는 토양이 아닌 '당'이라는 강력한 구조가 있고, 의식적으로 시스템화됐기 때문에 저항 세력이 조직되기 어렵다"며 다시 한번 "북한 안에서 우리가 원하는 그런 방향의 변화가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 박사는 "북한의 시장화가 '개인의 자율성 회복'이나 '권력자의 위기 초래 가능성'보다 단념화되고 무의식 방향의 흐름을 유도하는데, 이는 앞으로 통일되거나 우리와 교류하는 데 위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북한은 2019년 하반기부터 김정은이 백두산에 오르는 등 혈통과 전통의 정통성 재구축에 들어간 상황으로, 최 박사는 "체제의 내적 공고화가 생각보다 높고, 특별히 핵에 의한 내재적 정치 효과가 상승하고 있다"며 "김정은의 정책을 하나하나 보니, 모든 정책을 견인하는 지렛대 역할을 핵이 하는 것 같아 '핵지렛대 정책'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인권, 경제, 전염병 확산, 자연재해, 정보, 종교, 군사력 등 외생 변수에 의한 흔들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김정은을 둘러싼 북한 지배세력은 사회·정치적 생명체만 논하는지, 실용적 성향이 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최경희 박사는 우선 "북한은 공산주의 이념이 변질되면서 사유화되고 마치 국가가 김정은 산하의 한 주식회사처럼 되어 있는 것 같다"며 "북한은 수령과 인민의 구조이지, 수령과 엘리트 인민이라는 구조는 없다. 솔직히 (북한 권력서열 2위인) 최룡해부터 인민이고, 인민은 언제든지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을 수도 있지만 바로 떨어트리고 죽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북한 고위층의 지위와 범위를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최 박사는 "그렇지만 정책 기반에 기여한 사람들, 김정은과 한배를 탄 측근들은 이 체제가 유지돼야만 본인들이 살아갈 수 있고 체제가 무너지면 같이 무너진다는 가치관을 공유하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북한 체제에 붙어 체제가 유지되기 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경희 박사는 더 나아가 "16~19세기 정치학 구조를 그대로 차용해 사람을 세뇌시키는 일을 누가 어떻게 하는지 굉장히 궁금해서 살펴봤는데, 유학을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며 "해외에 유학을 나갈 수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이 프랑스 등 외국에 가면 철학을 공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철학이 잘못 씌워지면 사람을 완전히 나쁘게 만들 수 있는데, 우리는 반대로 잘 씌워지는 것을 철학이라고 할 것"이라며 "북한처럼 독재권력화가 되면 칸막이 구조라 밖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해외에 나갈 수 있는 그들의 혈통이 유학을 다녀온 후 가계를 이어나가는 입장에서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숭실통일아카데미 원장이자 관악통일비전포럼 상임고문 조요셉 목사가 강사 소개를 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청진경제전문대학을 졸업한 최경희 박사는 북한 노동당 함경북도 도당위원회에서 속기사로 일했다. 남동생이 라디오로 남한 방송을 듣다가 발각돼 남동생과 어머니가 1998년 탈북하고, 최 박사는 2001년 6살 아들을 데리고 탈북해 남한에 입국했다. 한양대 중어중문학과에 편입하여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2009년 일본 시즈오카 대학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 2015년 일본 동경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 사회와 통일에 기여하고자 한국으로 돌아왔다.
샌드연구소(SAND, South And North Development)는 남북한 민주주의 발전과 평화통일에 기여하고자 설립된 학술연구단체다. 또한 영문으로 '모래'를 뜻하는 샌드(sand)는 길을 닦는 주재료이자 건축물의 기초에 쓰이는 유용한 자원으로, 샌드연구소는 통일국가 건설의 기초를 제공하기 위해 현실적인 인권문제 해결과 인재육성에 역점을 두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 관련 연구, 남북한 정세분석 등 학술활동과 학문의 사회적 실천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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