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9

손민석 계몽군주적 성격을 지닌 독재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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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유시민, 정세현 등이 대담에서 김정은은 계몽군주적 성격을 지닌 독재자이기에 돌아가신 분께는 유감스럽고 불행한 일이지만 이 상황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냐며 이 기회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어서 되겠냐는 말이나 김정은이 계몽군주적 성격을 지닌 사람인데 전화위복의 계기를 놓쳐서 되겠냐는 말이나 같은 맥락이라 본다. 

사람이 죽든 말든 별로 신경쓰지 않는거다. 자기네들 이해관계만 보이는 것이다. 

유시민은 예전에 이라크 파병 문제로 김선일씨가 살해당할 때도 "사람 하나 죽었다고 파병철회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는 명언(?)을 남겼던 적이 있다. 이런 유시민이 정작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첫째로 다룬 게 외부 침략과 내부 범죄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국가의 기능이었다. 자가당착도 이정도면 정도가 심하다. 선택적 정의감의 내로남불이다. 

김어준도 희생자를 두고 "월북자"라 단정지으며 북한이 "화장"을 한 것이며 미국의 제재가 극심해서 북조선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미국을 비판했다. 제정신인가 싶다. 북조선이 살인을 했어도 동맹국인 미국이 비난을 받는다.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질서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같은 좌익조차도 이런 정도의 반미감정은 가지고 있지도 않고 가질 수도 없다. 

북조선 편향적이라는 비난을 피할 길이 있나? 그렇다고 이쪽 진영이 친북, 종북이라는 말이 아니다. 아마 그저 순수하게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의 성공을 바라며 그것의 실현을 가로막는 것 같아 보이는 존재들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 본다. 진영논리만 있는 거다. 

문제는.. 이쪽 진영 논리가 대부분 이렇듯 자신의 정치적 목적만 있지, 사람 목숨값을 개똥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럼 전쟁이라고 했어야 했다는 거냐는 말에 담긴 논리적 비약은 차치하더도, 그 논리에 담겨 있는 사람 목숨값을 쉬이 여기는, 언제든 개인 하나쯤은 전체를 위해 희생시킬 수 있다는 비겁함과 전체주의적 성격을 지적하고 싶다

본인들의 그 전체주의적 면모가 박정희의 유신 논리와 다를 게 무엇이며.. 박정희와 전두환은 왜 미워하나. 국가 세우는데 민간인 좀 학살하면 어떤가. 이승만을 왜 미워하나? 민주당 쪽의 진영 논리에 따르면 큰일을 하다보면 민간인 학살도 좀 할 수 있는거지. 사람 하나 죽는다고 이라크 파병 같은 국가 정책을 바꿀 이유도 없고 죽은 걸 오히려 호재로 삼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보수 정부를 왜 그리 미워하고 비난했나? 세월호 사건을 갖고 박근혜 정부를 비판한 논리의 핵심이 시민의 안전을 국가가 담보하지 못했다는 것 아니었나? 그냥 정치적 적대자라 비판한 것이었나? 이쯤 되면 세월호를 정략적으로만 이용했으며 문재인의 "고맙다"는 말의 진의가 무엇이었는지 비아냥거리고 싶어질 지경이다.

국가를 계급지배의 수단으로 보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조차도 국가의 기본적인 기능을 공동체의 수호로 본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나 <정치경제학비판요강>의 "자본주의적 생산에 선행하는 제형태들" 읽어봐라. 예컨대 <요강>에서는 국가의 계급적 성격은 사상된채로 국가에 대한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노예제 사회에서의 국가가 전사공동체로 파악되며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공동체를 수호하기 위한 조직으로 서술된다. 그것이 갖고 있는 노예를 착취하는 계급적 성격은 사상되어 분석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전사공동체로서 국가는 폭력을 독점하고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한다. 국가란 외부로부터의 침략을 막으면서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질서' 유지를 통해 궁극적으로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수호하는 양면적 역할을 갖고 있다. 피지배계급은 그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외부에 대해 갖고 있는 공공적 성격으로 인해 국가에의 종속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물론 그외에도 국가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조건 등의 토대가 있지만 차치하자. 토마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대내적 안정을 위해 대외적 대립을 지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나 칼 슈미트가 '적과 아군'을 구별해야 한다고 했던 건 이런 맥락이라 본다. 엥겔스나 레닌이 대외전쟁을 국가 내부의 "내전"으로 전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건 이런 맥락에서 국가의 공공성을 사상하고 계급적 성격을 부각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어떤 사정에서, 그것이 합당한 것이든 하지 않은 것이든 자국민이 살해당하는 걸 지켜보고만 있었다. 설령 정말 피치못할 사정으로 인해, 합당한 사정으로 인해 살해 자체는 막을 수 없었다고 해도 사후 조치가 적절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 북조선의 설명을 보면 시신 인계는커녕 시신 확보조차도 제대로 안되어 있지 않나. 국가가 기본적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자국이 국가가 할 기본적인 조치들조차 제대로 인민들한테 설명하지 않는 이 상황에서 정부를 지지한다는 이들이 앞으로의 정략적인 이해득실이나 논하고 있고 가해자인 북조선을 옹호하며 동맹국인 미국을 비난하고 있는 게.. 이게 정상적인 상황인가.. 내 아둔한 머리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최소한의 기본은 좀 갖추자. 적어도 국가가 사회구성원을 지켜야 한다는 공리 자체를 부정하지는 말자.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자꾸 월북자 주장하는 건 본인들도 개인한테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는 정부가 비판을 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그러는 것일텐데.. 안타깝다. 정치논리에 국가의 공적 기능이 파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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