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3

[책1] 우리안의 식민사관 - 해방되지 못한 역사,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했는가 이덕일 (지은이) 2015


[책1] 우리안의 식민사관 - 해방되지 못한 역사,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했는가
이덕일 (지은이)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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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몇달전에 이덕일의 위의 책이 처음 출판 되었을때 샀는데, 그 이유는 언론에 나타난 센세이셔날 책 소개였다. 물론 나는 그런 소개 만을 가지고 책을 사진 않지만, 이덕일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식민사관을 비판하는 책을 하나 읽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산 것이다. 나는 사실 식민사관을 문제시 삼기 보다는 꺼꾸로 식민사관을 문제시 삼는 한국의 풍조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이 책을 읽으려고 한 것이다. 책을 샀을 때는 식민사관을 가졌다는 김현구 교수에 대하여도 알지 못하고, 재판에 대하여도 몰랐다. 또 책을 사고도 책을 너무 많이 산 덕분에 부분적으로 읽은 채, 둔 상태였으나, 재판이 끝나서 다시 뉴스가 된 분위기라서 그 재판에 관한 김현구 교수에 대하여 언급한 부분을 읽어 보았다.
- 그런 식으로 김현구 교수의 책들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그의 책들을 살펴보자니, 대부분이 나에게 관심꺼리 였다. 그의 책들은 기본적으로 한일관계에 대한 반일감정에 의해 끼게 된 색안경의 시각을 벗기려는 노력이었다. 이덕일의 주장과는 반대로 식민사관이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국수적인 반일사관"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것 이다.
 
- 김현구 교수의 책을 3권 주문하였다. 밑의 두 책과 동경대학 일본사 교과사의 김교수에 의한 번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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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2]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
김현구 (지은이) | 창비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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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 소개
얼마 전 일본 천황 아끼히또(明仁)가 자신을 백제의 후손이라고 발언하면서 다시 한 번 일본과 백제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캄무천황과 천황가의 모계백제설을 다룬 보도가 줄을 이었고,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도 제작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지은이 김현구(金鉉球) 교수는 한일합방의 역사적 근거로 동원된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언급하며, 백제와 일본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함을 강조한다. 한국과 일본은 한 조상에서 갈라진 형제이므로 강제합방이 아니라는 일본의 주장이나 천황가에 백제의 피가 섞였다는 것만을 강조하는 것이나 모두 같은 범주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한.중.일을 아우른 풍부한 문헌과 당시의 정세를 바탕으로1500년 전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를 재조명한다. 1부에서는 백제와 일본의 교류가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에서 비롯된 '용병' 관계였으며, 일본은 백제뿐 아니라 당(唐)과 신라 등과도 활발한 교류를 벌였음을 입증한다. 2부에서는 백제계의 후손인 캄무천황(桓武天皇)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으며, 제3부에서는 천황과 천황제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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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독자 리뷰>
도래인의 존재
marine ㅣ 2011-08-10
제목이 자극적이라서 약간은 걱정을 했는데 읽어 보니 매우 성실한 저작이었다.
좋은 책을 읽게 되서 기쁘다.
일본 천황이 자신의 조상 중에 백제인의 피가 흐른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 한동안 이슈였던 것 같은데 우리 쪽에서 좋은 내용만 편집해 주장한 거면 어쩌나 걱정했다.
확실히 저자도 백제나 신라 사람들이 다수 일본으로 건너 갔고 일부는 왕실과의 혼인을 통해 천황가에 편입됐다고 보는 입장이지만 분명한 증거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다.
백제가 망한 후 일본에서 군사를 보내 백촌강 전투를 치룬 일은 우리 역사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았던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당시 동아시아는 상당 부분 서로 연결된 국제전 양상을 띄었던 것 같다.
김춘추가 당나라에 군사 원정을 부탁했을 뿐 아니라 일본까지 갔던 건 처음 알았다.
이런 사람이 왕이 됐으니 어쩌면 신라의 삼국 통일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보통 백제인들과 천황가만 연결해서 생각하는데 신라계도 많이 건너갔고 특히 백촌강 전투에서 패한 후 신라와의 연합전선을 폈다는 사실이 인상깊다.
일본으로서는 당나라가 백제를 무너뜨린 후 바다를 건너 일본까지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했을 것이다.
그 유명한 일본의 소가씨가 백제 계열이라니, 흥미롭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 <근초고왕> 에서 등장하는 목라근자가 이 책에도 나오는데 당시 백제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임나, 즉 가야에서 활약했고, 그 아들 목만치는 백제와 일본의 연합 전선 구축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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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3]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 한일분쟁의 영원한 불씨를 넘어서
김현구 (지은이) | 창비 |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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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 소개
임나일본부설 다시 읽기
임나일본부설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고대 일본이 한반도의 남부(임나 지방)를 오랫동안 지배하면서 당시 백제 등으로부터 조공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는 20세기초 한일강제병합을 전후하여 스에마쯔 야스까즈(末松保和) 등의 일본 학자들이 『일본서기(日本書記)』 등의 사료들을 체계적으로 엮어내 ‘한반도 남부경영론’이라는 주제로 집약하고자 했던, 식민사학의 대표적 사례다.
김현구 교수는 임나일본부설을 단순히 날조로만 보는 우리 사회 한편의 시각을 경계한다. 이는 물론 강제병합의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기도 하겠지만 그동안 한국사회에서는 이를 객관적으로 조명하고자 시도하지 않았으니 이것 또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다소 도발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이 책의 제목에는 고대한일관계사가 대중적으로 공유되지 못했던 이와 같은 사정을 안타까워하는 저자의 마음이 담겼다. 하여 저자는 일본 학자들의 대표적인 주장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차근차근 제시하며 이를 차례로 논박한다.
첫째, 일본 학자들은 『일본서기(日本書記)』 징구우황후(神功皇后)조 49년(서기 369년)의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 왜가 바다를 건너 신라를 쳐서 김해의 남가라(남가야) 등 가야7국을 평정하면서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내용을 근거로 내세운다.
둘째, 『일본서기』와 중국 『송서(宋書)』의 또다른 기록들이 있다. 369년 왜가 가야7국을 평정하고 백제가 왜에 조공을 시작했다, 382년 왜가 가야를 구원했다, 438년 왜왕 진(晉)이 한반도 남부에 대한 군사권을 보유했으며 중국으로부터 이를 승인받았다, 5세기 전반 임나가 자발적으로 요청하여 왜가 임나 일부 지역을 지배했다, 509년 ‘임나일본현읍’이라는 직할령이 등장했다, 562년 임나가 멸망했다 등의 기록은 임나일본부설에 하나의 이야기 줄거리 즉 서사적 근거를 제공한다는 주장이다.
셋째, 「광개토대왕비문(廣開土大王碑文)」의 404년 기록을 보면 ‘왜군이 한반도를 북상해 고구려군과 싸웠고 당시 고구려군이 왜를 추격, “임나가야”에 이르렀다’는 요지의 내용이 있다. 이에 일본 학자들은 왜군이 한반도를 북상하려면 반드시 가야와 백제를 통과했어야 하므로 이는 곧 왜의 한반도 지배를 뜻한다고 주장한다.
고대한일관계사는 어떻게 왜곡되었나
위의 첫째 주장에 대해서는 설화전승일 뿐이며 위조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대다수였다. 김현구 교수는 이에 적극 동의하면서도 위의 징구우황후 당시의 설화가 실제로 사이메이천황(齊明天皇)의 백제부흥군 지원의 역사와 일치한다는 사료를 제시한다. 일본 학자들이 이 두가지 기록을 놓고 각각 전쟁의 주체, 대상, 성격 면에서 비슷한 면에 기대어 사실을 왜곡했을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둘째 주장에 대해서 김현구 교수는 이 책의 2장부터 5장까지를 할애해 그 논리적 모순을 밝혀낸다. 일본 학자들이 연대순으로 엮어낸 저 기록들의 허구를 밝혀내기 위해 저자는 그 기록들을 연대순으로 검토하며 그 기록 안에서 미처 드러나지 않았던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토대로 그 왜곡의 실체에 접근한다.
셋째 「광개토대왕비문」의 주장에 반박하는 부분에서는 한일간의 주장들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학자적 태도가 돋보인다. 저자는 그동안 한일 학계에서 비문조작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391년 기록에 집중하기보다 그런 논란이 전혀 없는 연도의 기록을 택해 이를 논박한다. 결국 당시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왜는 단지 지원군에 지나지 않았을 뿐, 그 주도세력은 백제였을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개연성이 크다.
저자의 결론은 열려 있다. 단, 결론을 대신한 몇가지 전제들은 주목을 요한다. 고대의 신라와 일본이 서로 대립했던 배경이 역사편찬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따라서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상을 왜인이라고 말했을 것이며, 이런 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일본서기』의 편자들이 ‘임나일본부’를 가공했으리라는 추정이 바로 그것이다.
임나일본부설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문제다!
임나의 실체에 대해 양국 학계에서는 그동안 기마민족 정복왕조설(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삼한 삼국의 일본열도 내 분국론(북한 김석형), 왜인[僞倭] 자치집단설(이노우에 히데오井上秀雄), 백제군 사령부설(천관우) 등이 제기되어왔고 이는 관련연구가 점차 객관적 연구를 지향해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일본 매스컴이나 학교 교육에서는 여전히 과거의 임나일본부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일본어로도 번역될 예정인 만큼 이 책이 한일 양국의 일반대중들의 역사인식을 한단계 높이고 양국간 역사논쟁에서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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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독자 리뷰 >
고대 백제-왜의 관계와 임나일본부설의 실체를 밝힌 수작!
클라우디우스 ㅣ 2015-11-12

이 책은 김현구 교수가 고려대에서 했던 강의를 묶어서 낸 책이고, 이 수업은 수 차례 석탑 강의상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김현구 교수는 한국인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잘 모르는 임나일본부설의 실체를 일본 학자들의 주장과 이에 대한 반론으로 우리에게 알게해준다. 김현규 교수의 설명을 통해 일본서기 기록대로 일본이 임나일본부를 통해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것은 아니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임나일본부설은 날조이고, 왜는 백제에게 일방적으로 문명의 세례를 받던 야만인인 아니라, 백제와 왜는 서로 간의 이해에 의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백제는 왜가 원하는 문물을 전해주고, 공주/왕자를 통해 친밀감을 유지하면서, 왜를 통해 군사적 지원을 받았고, 임나는 왜가 아니라 백제의 영향 아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나일본부설에 초첨을 맞춘 책이라 신라와 관계를 깨지 않으면서, 가야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북진하여 고구려와 맞서려던 성왕의 분투를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
(그러나 성왕의 분투에 초점을 맞추면 책의 논점이 흐려졌을 것이다. 성왕의 분투는 <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 - 김태식 저, 에서 잘 느낄 수 있다.)
한일 고대사는 양국의 정치적 이해와 맞물려 서로가 보고 싶은 모습을 상대에게 투영한다.
그래서 위대한 한민족의 우월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이유로 외면되어 있던 고대 백제와 왜의 관계와 임나일본부설의 실체를 알게 해주는 이런 훌륭한 책의 저자인 김현구 교수는 이덕일 박사에 의해 임나일본부설을 퍼트리는 식민사학자로 매도되고 있다.

(아래 사진의 책의 소제목만 읽어도 이런 오해를 할 수가 없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매도를 때문에 현재 형사재판 중이며 순리대로 해결되었으면 한다.
(http://cafe.naver.com/booheong/122130 : 김현규 교수 - 이덕일 박사 2차 공판 참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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