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8

[위안부문제] 하바드 대의 석 교수의 위안부문제의 진실찾기 - 램지어 교수 평가 - 그리고 나의 석교수 평가

[위안부문제] 하바드 대의 석 교수의 위안부문제의 진실찾기 - 램지어 교수 평가 

- 그리고 나의 석교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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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틀 전에 뉴요커에 나온 하바드 대의 한국계 교수 석 (Jeannie Suk Gersen) 교수의 글을 읽었다. 잘 써젔다고 생각한다. 포괄적이라서 이 글 하나만 읽어도 위안부문제의 역사적인 면과, 한일관계에서의 문제, 그리고 왜 지금 램지어 교수의 글 때문에 소동이 일어나고 있는가 까지 대강 알 수 있게 써저 있다. 그리고 관계된 여러 그룹에 대해 상당히 공정하게 써저 있다고 생각된다. 한국 미디아에서 이 글을 언급하는 걸 읽으면 마치 석교수가 <우리 편>이고, 램지어 교수를 비판하는 것 처럼 들리게 쓰여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 혼자서 그렇게만 생각하고 말려고 했는데, 페북에 이글에 대해서 자꾸 올라온다. 오늘 아침에 걷기 운동을 하며 불교에 관한 오디오북을 듣고 있는데,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자꾸 석교수의 글에 대해 생각이 나서 한시간 들은 오디오북의 내용이 뭐였던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 이다. 그래서 잊기 전에 석교수의 글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놓기로 했다. 

어떤 순서로 적을까? 

1] 우선 석교수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우리편>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적는다.

a)  <한국에서는 조선인 업자들의 역활을 인정하는 하는 것을 (좋게 말해서) 힘들어 한다.>: 위안부지지운동하는 사람들은 하지 않고, 하고 싶지 않은 중요한 이야기이다. 
[In South Korea, reckoning with the role of native recruiters in entrapping fellow-Koreans, and with impoverished families in allowing their girls to be taken, has been difficult, to say the least.] 

b) <한국에서는 오래 동안 (1990년 이전에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성폭행 피해자들이 사회에 의해 낙인찍히고, 배척당하였기 때문이다.>: 
- 일본정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국사회, 그러니 한국인에 의해 그랬다는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에 다 나오는 이야기이다. 
[For decades, the issue of comfort women was not widely discussed in Korea, the society of which stigmatized and ostracized sexual-assault victims. ]

c) <한국에서는 일본의 책임을 경시하려는 일본의 시도에 대한 원한이 쌓여 왔고, 때로는 일본군이 한국인 처녀를 성노예를 만들기 위해 총구로 납치했다는 색갈론이외로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협함으로 굳어졌다.>: 이건 간단히 말해서 위안부지지운동에서 말하는 강제 동원설은 틀렸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석교수가 공정하다고 말하는거다. 
[in South Korea, resentment about Japan’s attempts to downplay its responsibility had been building, sometimes hardening into intolerance of anything short of a purist story of the Japanese military kidnapping Korean virgins for sex slavery at gunpoint.]

d) <2015 년 한일 양국은 오바마 행정부의 격려로 아베 총리가 위안부들에게 “가장 진심으로 사과와 후회”를 표명 한다는 새로운 합의에 도달했다.>: 
- 뭐라고, 아베가 그런 말을 했다고? 대부분 한국사람들을 믿지 않을거다. "아베여, 사과하라, 사과하라", 계속 그러고 있지. 
[In 2015, Japan and Korea reached a new agreement, with the encouragement of the Obama Administration, in which Prime Minister Abe expressed “his most sincere apologies and remorse” to the comfort women. ]

2) 두번째로 박유하 교수와 책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서:

<(이 책)은 여성을 모집하는 한국인의 역할과 일부 위안부들이“노예적 상태”에 갇혀있는 동안 일본군과 발전한 사랑의 관계를 탐구했다. 
이 책은 일부 사람들이 주장한 것처럼 일본의 책임을 면책하거나 위안부의 잔인한 희생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하버드대의  근대 일본역사가 고든은 일본과 미국에있는 66 명의 다른 학자들과 편지에 서명하여 한국 정부에 의한 박유하 기소에 대해 “큰 놀라움과 우려”를 표명하고 저자의 책의 학문적 업적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  
- 이건 박유하 지지자들은 다 아는 이야기 이지만 박유하 비판자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 일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후자에 속한다. 

[(The book) explored the role of Koreans in recruiting the women and the loving relationships that some comfort women developed with Japanese soldiers while they were confined in a “slavelike condition.” 
The book did not, as some have claimed, absolve Japan of responsibility or deny the comfort women’s brutal victimization. 
Gordon, the Harvard historian of modern Japan, signed onto a letter with sixty-six other scholars, in Japan and the U.S., expressing “great consternation and concern” at the South Korean government’s indictment of Park, and conveying appreciation for her book’s scholarly achievement.]

3) 세번째로 램지어 교수에 대하여

a) [동료의 추론을 소화하는 데 시간을 보낸 후,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곧  의견이 일치하지 않은 것을 공개적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학문적 자유를 행사 하는 것이나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것에 대한 제도적 처벌 요구에는 참여하거나 장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당연히 이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After I spent time digesting my colleague’s reasoning, I spoke with him to say that we were about to have a public disagreement, but that I would not be joining or encouraging any possible calls for institutional penalty for his exercise of academic freedom to engage in scholarship or express his opinion.]

b)  [(나는 그가) 위안부들이 무력, 위협, 속임수, 강압에 의해 징집되고 감금되었다고 믿었다면 그렇게 설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의 견해는 위안부들의 증언이 일관성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또는 그가 쓴 것처럼 위안부들이 “자기이익추구”를 하고 “근거가 없는 말을 한다”고 간주했기 때문에 그들의 증언을 신용하지 않기로 이미 결정한 것을 반영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가 일본 정부의 성명의 경우에는 한 성명이 다른 성명과 모순되는 경우에도 일본 정부의 부정을 인정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나는) 동료의 학술논문을 가능한 한 관대하게 읽으려고 노력하면서 그의 견해가 그의 학업 경력에 영향을 준 일반적으로 받아 들여진 지혜에 대한 회의론의 산물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 많은 한국의 학자들에게 없는 좋은 자세이다. 특히 책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들을 생각해보라.
[I was confident that he would not have described it as such if he believed comfort women’s accounts of having been conscripted and confined by force, threats, deception, and coercion. 
  It seemed to me that his view reflected a prior choice not to credit those accounts because he deemed them inconsistent, or, as he wrote, “self-interested” and “uncorroborated.” I noticed, however, that he did choose to credit Japanese government denials, even where they contradicted other statements by the government. 
  Trying to read my colleague’s work most generously, I thought his views might be a product of a skepticism of generally accepted wisdom that had informed his academic career.] 

c) [나는 내가 강하게 동의하지 않는 인기없는 의견이나 견해를 표명 할 학계의 권리를 옹호합니다. 
그러나 Ramseyer 문제에는 학문적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강한 공감대가 드러났다.
 램지어는 위안부문제에 관해서는  (그가 생각하는) '성차별, 인종차별, 제국주의'라는 '삼위 일체'에 집착하는 학문적 합의에 의해 채택 된'순수한 허구'를 반박하기 위해 오는 정설뒤집기 하는 것이 그의 일 이라고 작정했던 것입니다.”] 

- 세번째 마지막 문장이 램지어 교수가 위안부문제에 대해 자신이 하려고 한 것을 잘 설명한다. 신화부수기를 하려고 한 것이다. 그 신화라는 것이 한국의 위안부운동에서 말하는 위안부 이야기같은 것이었다. 이 자세는 일본의 우익이나, 한국의 이영훈 등이<반일종족주의>에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니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니다. 하바드 대 교수라는 것 만 다르다. 이 세 그룹이 각각 진실 밝히기를 위해서 일하는가, 아니면 자기네들이 미리 정해놓은 이데오르기에 의해 일을 하는가는 쉽게 판단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위안부지지운동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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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efend the right of academics to express unpopular opinions or views with which I strongly disagree. 
  But the Ramseyer matter has revealed a strong consensus that academic freedom comes with the responsibility, 
  Ramseyer has framed his work on comfort women as that of a debunker coming to refute what he called a “pure fiction” adopted by an academic consensus obsessed with the “trifecta” of “sexism, racism, and imperialism.”]

d) 부제목에 나오는 <수상한 학문활동>이라는 말이 석교수의 램지어 교수의 최종평가이다. 이건 많은 학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참고한 후에 내리는 평가이다. 램지어 교수가 학자로서 불충실한 것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dubious schola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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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지막으로 내가 부치는 말이다. 

a) 우선 램지어 교수의 학문적 스타일을 <수상한 학문활동>이라고 붙일 수 있는가는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스타일은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1990년대의 일본의 법, 사회, 경제 분석에서 부터 그랬던 것을 알 수있다. 그는 마치 <신화부수기>가 자기의 소명인 듯 학문활동을 해 왔다. 일본을 보는 시각을 바꾸려고 했다. 그가 다 올았다고나, 그의 분석과 동의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이 그의 학문적 스타일이여다는 것이다. 그 스타일이라는 것은 개인의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과학의 하나의 파라다임이다. 그러니 이 파라다임을 포함시커 판단을 하지 않으면 않된다고 생각한다.

b) 두번째로 석교수를 포함한 석교수가 논하는 모든 영어세계의 학자들이 위안부이야기를 할 때, 특히 위안부제도의 강제성 이야기를 할 때,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에 의해 점령당한 적국의 위안부를 구별하지 않고 이야기한다. 더군다나 일본인 위안부라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테지만,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인 위안부들이 조선인 위안부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위안부들에 대한 일반론을 일본인 위안부들에 대해 응용할 수 있을까? 일부는 할 수 있고, 일부는 할 수 없다. 그러면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인 위안부에 가까운가, 아니면 적국의 위안부에 가까운가? 일본인 위안부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일본제국의 2등 시민으로서 일본인에 가까운 면이 많이 있다. 그래서 "우리도 천황을 위해서 왔다"는 말이 어느 조선인 위안부의 입에서 실제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구별을 하지 않고 일반론으로 위안부를 논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충분히 논하지 않고 있다. 

c) 코노담화에서 일본정부가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했다고 하는데, 그 문구가 타협에 의한 것이었다고는 나의 전 번 글에서 썼다. 일본 정부의 조사에 의하면 "그런 결론을 내릴 근거가 없었다"가 실제로의 일본 정부, 특히 일본 보수파, 우익들의 입장이다. 이 점은 이데오르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의 양심에 의한 것이다. 한국이 열심히 노력하여 세계의 여론을 바꾸는 날이 온다고 하여도, 그럴 수록 이 조사의 결론을 믿는 "양심적" 일본인들은 받아드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문제를 석교수는 논하지 않고 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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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newyorker.com/culture/annals-of-inquiry/seeking-the-true-story-of-the-comfort-women-j-mark-ramseyer?fbclid=IwAR3HrAE8-WZNrkk_LVnRn8h-NfEIJp6j_JlihTl1L8Cw6GFjQOnYOAvc5B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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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교수의 글을 이제야 읽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위에 쓰신 내용들은 모두 정확합니다만, 램지어 교수의 주장에 근거가 없음을 석교수가 지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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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학문과 언론의 자유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만, 학자가 제대로된 근거도 없이 (예를 들면 2차 대전 이전에 유흥산업에 종사했던 일본 여성들의 계약서를 바탕으로 해서 2차 대전 중의 조선인 위안부들에게도 그런 계약과 합의가 존재했을 거라고 추정한다든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학자로서의 윤리가 부재하다고밖에 저는 판단이 안 됩니다. 이 외에도 그가 자료로 제시하는 정보의 왜곡 (단순 실수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수준의) 등 램지어 교수 논문에는 여러 가지의 문제들이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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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노동의 종류나 노동 기간 등의 세부 사항들에 대해 노동자가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다면 설사 계약이 있었다 해도 (again, 램지어 교수는 2차 대전 당시의 조선인 위안부 계약 문서를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자발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석교수도 저와 동일한 입장이네요. 학문의 자유뿐 아니라 학자의 integrity와 responsibility에 대해서도 석교수는 강조하고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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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이런 수준의 주장은 비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사실관계를 밝히려는 학자들의 운신의 폭을 오히려 좁혀 놓는, 매우 안타까운 결과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친일적이라서가 아니라 근거가 없으므로 비판받아 마땅해 보입니다. 민족주의적이냐 비민족주의적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근거와 논리전개의 탄탄함만이 평가의 기준이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신화 부수기'에 저도 찬성입니다만, '날조'와 '왜곡'은 신화를 오히려 더욱 굳건하게만 만드는 부작용을 낳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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