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4

Gwang-hong Park - 1942년 5월 10일,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징병제도 실시' 소식이... | Facebook

(1) Gwang-hong Park - 1942년 5월 10일,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징병제도 실시' 소식이... | Facebook



Gwang-hong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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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5월 10일,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징병제도 실시' 소식이 발표되었다. 이에 조선의 각계각층에서는 '드디어 떳떳한 황국신민', '대동아공영권의 지도자로서 반도인들도 내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는 등의 감격과 환호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고 매일신보는 전한다. (징병의 대상이 됨으로써 비로소 2등국민의 처지를 벗어난다는 인식. 사실, 이는 나 자신도 지난날 정훈교육 때 많이 써먹었던 논리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의 예를 들어 "국방의 의무는 진정한 시민에게만 부과된다"고 설하며 내 앞에 있는 대원들의 자부심을 북돋아주려 했었다.)
이 시기의 신문기사들을 정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를 첨부해본다. 5월 19일자 기사. <징병제도 실시를 앞두고 가정생활의 대전환>이라는 제목보다도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잘 다녀오란 대신에 죽고 도라오지(돌아오지) 마라'는 부제. 황군으로서 출정하게 될 아들을 보내는 조선인 어머니들의 마음을 대변한답시고 이런 기사를 내보낸 것이다.
1942년 5월 시점은 유럽에서도 아시아에서도 아직 추축국의 우세가 명확하던 시기였다. 특공대가 등장하는 2년 반 뒤의 정세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죽어서, 돌아오지 마라'는 문구가 무려 '어머니'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부끼고 있는 것이다. 기사에 등장하는 윤은혜 씨는 "아들의 육체는 돌아오지 않더라도 진충보국하였다는 소식만 들으면 일본의 어머니는 기뻐하는 것입니다"고 단언하며 제국신민으로서 우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강변한다. 그녀의 진심이 어떠할지는 모르나, 조선총독부 관계자들은 이러한 반도 어머니의 충심을 매우 흡족하게 바라보았으리라.
졸저에도 언급했던 군가 <노영의 노래>(露営の歌、1937)에는 이런 가사가 흐른다. '꿈에 나오신 아버지께 죽어서 돌아오라 격려받으니, 깨어나서 노려보는 적의 하늘'. 윤은혜 씨의 발언은 노영의 노래를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한 것만 같다. 기사에 따르면 윤은혜 씨 본인이 일본에 가본 적이 있다고 하니, 이 노래를 진짜로 들어봤을 가능성도 적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이 무시무시한 가사에, 당시 사람들은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나라를 위해 죽는 것만이 가치있는 삶이던 시대. 그 시대 속에서도, 특히 피식민지 지역에서 민족모순까지 안고 살아갔던 조선민중의 진심은 과연 어떠했을까. 그들에게 나라는, 전쟁은, 삶은, 죽음은 무엇이었을까. 그 복잡한 실타래를, 현대인이 풀어내고 재단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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