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황장엽 회고록 (양장)
황장엽 회고록 (양장)

황장엽 (지은이)시대정신200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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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양장본
408쪽
135*195mm
571g
ISBN : 9788990959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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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김일성종합대학 총장(14년), 최고인민회의 의장(11년), 조선노동당 비서(18년) 등 무려 43년간 북한의 주요 요직에 있으면서 누린 최고의 명예와 권위, 수만 명에 이를 제자, 무엇보다 사랑하는 부인과 자식, 손자손녀 등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남한으로 온 황장엽의 회고록.
김일성의 집안 관계, 김일성의 생각의 변화 과정, 김정일의 권력 독점 과정과 그 방법 등에 관한 기술, 황씨 부부가 김일성의 전처 소생과 후처 소생 사이의 불화 속에서 어느 쪽도 편들지 않으려고 애썼던 이야기 등을 담았다.
중소 이데올로기 분쟁 때 사회주의 나라들의 격한 논쟁과 편 가르기, 사회주의 지도자들의 낮은 이론 수준과 권모술수, 북한의 대응 등을 목격자의 증언으로 들려주는 부분은 역사를 피부로 느끼게 한다.
목차
1 식민지 조국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의 추억 / 뒤늦은 학교생활 / 평양상업학교 진학 / 일본에서의 고학 / 조국으로의 송환과 징용
2 해방된 조국과 입당
해방의 기쁨과 고민 / 조선노동당에 입당 / 마르크스와의 만남
3 이상사회와 비극의 씨앗
모스크바종합대학 철학연구원 / 사랑과 이별의 고통 / 비참한 조국의 현실 / 숙청의 회오리
4 마르크스주의에서 주체사상으로
중앙당 비서실 / 김일성 일인 독재체제 확립 /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의문 / 주체사상의 싹
5. 시련 그리고 김정일
5·25 교시 / 영원한 봄 / 신임을 회복하다 / 후계자 김정일
6. 권력의 중심에서
굵직굵직한 감투 / 반대세력의 시기 / 무소불위의 조직부 / 권력과 탐욕 / 중국의 개혁 개방 / 신중치 못한 방문
7. 작은 나보다 큰 나를 위해
북한의 암울한 장래 / 사회주의 붕괴와 회의 / 다시 권력의 중심으로 / 김일성의 사망 / 무더기 죽음의 시작 / 마지막 건의 / 수령절대주의의 종말 / 형언할 수 없는 갈등
8. 한국에서의 10년
예기치 못한 사태 / 한국의 눈부신 발전 / 한국사회의 약점 그리고 민주주의 / 인간중심철학 / 인류의 발전 방향 / 김대중과 햇볕정책 / 한국의 진보와 보수 / 자주정신과 창조적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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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생이별을 한 이 아픈 가슴을 이겨내며 내가 얼마나 더 목숨을 부지할지는 알 수 없으나, 여생은 오직 민족을 위하여 바칠 생각이오. 나 개인의 생명보다는 가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고 가족의 생명보다는 민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며 한 민족의 생명보다는 전 인류의 생명이 더 귀중하다는 내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만 알아... 더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황장엽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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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 강동에서 태어나 24세가 되던 해에 조선로동당에 입당하고, 42세의 나이로 북한의 최고 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의 총장 자리에 올라 14년간 역임했다. 그 후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11년간 지내고, 조선노동당 과학교육담당비서, 주체사상연구소 소장을 거쳐 조선노동당 국제담당비서 등 최고위급 요직을 두루 거쳤다. 또한 김일성의 이론 담당 서기와 김정일의 개인 교사 등을 하며 김일성 부자의 지근거리에서 그들을 수십 년간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가족과 동료, 사회적 명예를 뒤로하고 1997년 대한민국으로 망명했다. 2010년 10월 10일 논현동 자택에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했다.
* 주요 저서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개인의 생명보다 귀중한 민족의 생명』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
『맑스주의와 인간중심철학Ⅰ- 인생관』
『맑스주의와 인간중심철학Ⅱ- 사회역사관』
『맑스주의와 인간중심철학Ⅲ - 세계관』
『인간중심철학의 몇 가지 문제』
『인생관』
『세계민주화와 인류의 마지막 전쟁』(2002년, 도서출판 시대정신)
『황장엽의 대전략』(2003년, 월간조선사)
『민주주의정치철학』(2005년, 도서출판 시대정신)
『북한의 진실과 허위』(2006년, 도서출판 시대정신)
『변증법적 전략전술론』(2006년, 도서출판 시대정신)
『황장엽 회고록』(2006년, 도서출판 시대정신)
『청년들을 위한 철학이야기』(2007년, 도서출판 시대정신)
『현 정치정세와 민주주의적 당면과업』(2007년, 도서출판 시대정신)
『북한민주화와 민주주의적 전략』(2008년, 도서출판 시대정신) 접기
최근작 : <황장엽 회고록>,<사회역사관>,<세계관> … 총 30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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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사상 그 자체 황장엽
주체사상 그 자체로서 북한의 최고 핵심 권력인물중의 한 사람의 회고록이다.
1970년부터는 북한 권력의 최중심에 서서 반김일성, 반김정일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북한 권력 투쟁의 실제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흥미로운 자료이기도 하고,
한국에서 극보수세력 등과 연합하여 반김정일 연대를 형성하는
권력투쟁가, 정치가로의 일면이 이해되기도 한다.
모든 회고록과 마찬가지로 자기 미화의 욕구가 보이고,
특히 김정일과 연합하여 중국의 개혁 개방을 반대하던 문건을 작성하던 일 등에 대한
내용은 전혀 기술되지 않고 있다.
한국극보수세력의 논리와의 연결부분의 황장엽의 실질된 모습인지, 한국에서의 생존전략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국을 배신하면서 구구한 변명에서는 황장엽에게 측은지심이 들게 한다.
북한 최고 권력가를 통하여 북한의 주먹구구식 권력 관계를 조금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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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눈 2006-11-2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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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장엽이라는 한 괴물적 사상가의 죽음
한 때 맑스-레닌주의를 공부했고, 김일성주체사상의 정립가이자, 탈북자 가운데 최고의 지식인이었으며, 가장 거물이자, 망명한 이후 북한체제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였던 황장엽 씨가 어제 오전 사망했다. 아래의 기사를 요약해서 본다면, 그는 남북한 분단체제가 만들어낸 괴물에 다름 아니다. 그는 적어도 맑스-레닌주의의 이름아래 묶일 수 있는 지식인들이 역사와 권력이라는 거대한 운무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변형시켜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볼 때 그는 남북한 분단체제의 역사가 만들어낸 아이러니를 체화한 괴물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주체사상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이자, 자유민주주의-시장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물론 그것은 그가 북한의 지배엘리트에 속한 것이어서 그랬을 것이다.]는 말년에 그 체제를 가장 비열한 방식으로 옹호하는 자들의 나팔수 노릇[물론 직접적인 옹호자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최종적으로 볼 때, 그것의 간접적 동의자 역할은 하였을지도 모른다.]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진보의 이름을 가장한 얼치기 종북주의자들[여기엔 한때 그가 만들어낸 주체사상의 세례를 받은 자들도 포함된다.]은 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기도 할 것이다.
* 경향신문(2010.10.10)
황장엽은 누구… 분단 비극의 또다른 아이콘
주체사상 입안한 북 최고 엘리트… 남쪽으로 망명해 ‘극과 극’의 삶
북한 주체사상을 정립한 이론가에서 북한을 가장 매섭게 비난하는 반북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10일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숨진 황장엽 전 북한 조선노동당 비서가 걸어온 길은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풍경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태어났다. 일제에 강제징용돼 강원도 삼척탄광에서 노역하던 중 해방을 맞아 평양으로 돌아가 교사 생활을 했다. 그후 모스크바대학 유학 중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을 본격 공부한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북한에 최적화해 주체사상을 이론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황장엽 회고록> (2006)에 따르면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사상'이다. 그가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이 된 65년부터 체계화하기 시작한 주체사상은 김일성 주석이 항일 독립투쟁 때부터 얘기했던 '자기혁명은 자기가 해야 하고, 남의 원조를 받지 않고 자기갱생을 해야 한다'는 소박한 사고에 바탕해 있다. 80년에 후계자로 공식화된 김정일은 김 주석의 위대함을 강조하고 그 후광을 이어받고자 주체사상을 널리 퍼뜨렸다. 당시 남한 내 변혁 운동가들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이 공로로 그는 59년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에 오른 뒤 72년부터 11년간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수행하고, 84년엔 당 국제담당 비서 겸 조국평화통일위 부위원장의 중책을 맡았다.
주체사상의 배후세력으로 남한 내에도 유명했던 황장엽이 97년 2월12일 탈북, 남한에 망명했다는 사실은 남북한 모두에 큰 사건이었다. 그가 김덕홍 전 북한 여광무역 사장과 함께 베이징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한 뒤 필리핀을 거쳐 서울에 도착하자, 남한 진보진영에는 소련 붕괴 이후 또 한 번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베일에 싸여 있던 북한 정권의 비사가 그의 입에서 쏟아졌다. 황장엽은 분단 이후 지금까지 최고위급 탈북자로 남아 있다. 그는 북한 사정을 가장 잘 알기에, 가장 무섭게 북한의 치부를 공격할 수 있는 인물로 통했다.
반대로 북한 내에서 그는 '조국'이 가장 어려울 때 떠나간 '배신자'였다. 돈 착복, 여자문제 등이 원인이 돼 권력핵심부의 눈 밖에 나고 탈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미확인 얘기도 흘러나왔다. 탈북후 13년간 그는 암살 위협에 시달리며 안가에 머물러야 했다. 남한의 학계 일각에서도 그는 "과학적 분석보다 감정적인 측면이 앞선다"는 평가도 나왔다. "김일성은 그를 대접해줬지만, 김정일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탈북 동기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남북 모두에도 안착하지 못한 경계인 성격이 있는 것이다.
북한 내 잘나가던 권력 엘리트였던 그가 탈북을 결심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은 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90년대 중반 북한 내 대기근이었다. 그의 회고록 곳곳에는 "나는 중국이 개방정책으로 전환하는 걸 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북한의 권력에는 더 이상 기대를 걸지 않았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그는 김일성 생전에도 중국식 개혁·개방의 길을 가는 것이 옳다는 식의 의견을 폈지만 김일성 부자는 남한과 수교하고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도입한 중국을 마뜩지 않아 했다. 김일성 사후에도 김정일이 중국식 개혁·개방 노선을 취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해지자 그는 결단을 내렸다.
그가 숨을 거둔 순간, 그에게서 주체사상을 배웠고 또 한때 많이 의존했던 김정일은 자신의 3남 정은을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 주석단에 공식 등장시켰다. 그 사이 황장엽이 정립한 '주체사상'은 역사가 됐고 그 자리를 '선군정치'가 메웠다. 그로선 지도 이론을 만들었던 당 창건일에 세상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운명을 겪었다.
* 한겨레(2010.10.10)
황장엽, 주체사상 대부에서 북 비판 선봉자로 ‘극과 극 삶’
[한겨레] 김일성 이론서기→김정일 개인교사…북 권력 측근
1997년 "평화통일 기여" 망명 뒤 '북 민주화' 깃발

10일 숨진 황장엽씨는 1997년 4월 남쪽으로 온 73살 이전까지는 '주체사상의 대부'였고, 남쪽에 온 뒤론 '북한민주화운동의 좌장'이란 극명하게 대조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황장엽씨는 북한 유일사상체계를 체계화한 '주체사상의 대부'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개인교사로 알려져 있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 모스크바종합대학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을 공부한 황씨는 1958년 1월 초부터 1965년 4월까지 김일성 주석의 이론서기로 일했다. 65년부터는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으로 김일성 주석 자녀(김정일 국방위원장 등)의 교육을 책임졌고, 60년대 이후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는 문제로 김 주석을 수시로 만났다.
그는 "마르크스주의를 각 나라의 구체적 실정에 맞게 적용해야" 하며 "사대주의를 반대하고 자주적 관점을 지켜야 한다"는 김일성 주석의 시각에 자신이 고민해오던 '인간 중심의 철학'을 더해 이를 '주체사상'이란 이론틀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그는 1972년부터 11년 동안 남쪽 국회의장 격인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지냈다. 황씨는 1979년부터는 당중앙위원회 주체사상 담당비서, 과학교육 담당비서, 국제사업 담당비서 등을 맡아 북한 권력의 핵심이자 최고위층의 측근으로 지냈다. 요약하자면 14년간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11년간 최고인민회의 의장, 18년간 조선노동당 비서로 일한 북쪽의 대표적 지식인이자 권력핵심인사로, 역대 탈북자 가운데 최고위 인사이기도 하다.
이런 황장엽씨가 국제세미나 참석차 일본 방문 뒤 귀국을 위해 베이징 북한대사관에 머물던 97년 2월12일 베이징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하자, 남북한은 물론 국제사회에 큰 파문이 일었다. 황씨의 망명 신청 다음날 북한 외교부 대변인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전제한 뒤 "만일 그가 북경의 한국대사관에 있다면 납치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쪽 외교부는 황씨의 망명 의사가 확인되자 "변절자여 갈 테면 가라"는 성명(97년 2월17일)을 발표했다. 당시 북한은 김일성 주석 사망 뒤 식량난 등으로 이른바 '고난의 행군' 중이었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황씨 같은 고위층의 망명을 북한 붕괴의 전주곡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황씨는 97년 4월18일 베이징을 출발해 필리핀을 거쳐 4월20일 서울에 들어온 뒤 "한국에 온 가장 중요한 목적은 전쟁방지와 평화통일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당시 서울 도착 기자회견에서 "갈라진 조국의 어느 한 부분만을 조국이라고 생각해 본 일이 한번도 없다. 그래서 누가 '망명이다' '귀순이다' 하고 말하는 것은 나하곤 관계없다"고 주장했다.
황씨는 남쪽으로 온 뒤 줄곧 김일성 주석의 지도자 자질은 인정한 반면에 "김정일은 정치가로서 0점"이라고 혹평했고,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북한의 '3대 세습' 움직임을 비판하는 등 북한 체제에 대해 직설적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또 황씨는 자신이 기초를 다진 주체사상이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 숭배를 위한 봉건사상으로 변질됐다고 비판했다. '개인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사회정치적 생명은 무한할 수 있다'는 주체사상의 사회정치적 생명관을 김 부자가 '수령 절대주의'로 왜곡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공개 강연이 되고만, 지난달 30일 < 자유북한방송 > 의 '황장엽의 민주주의 강좌'에서 "개인은 죽어도 집단은 영생합니다"라고 강조하는 등 개인주의보다는 집단주의 정치철학을 중시했다.
P.S
정말 아이러니하게도[그가 북한 노동당 창당일에 죽은 것도 아이러니하지만] 남한에서 황장엽의 대부분의 저서는 뉴라이트의 사상과 정치적 이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출판사 <시대정신>이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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來而 2010-10-11 공감 (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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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이야기 그리고 북한 이야기
(구판)
(개정판)황장엽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이 그저 '보기에도 짜증나는 찌질한 할배 이미지'만 갖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10월 9일 욕실에서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고 그때야 비로소 이 인물이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 바로 이 회고록을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사실 황장엽 본인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 동안 별 관심이 없었던 해방시절부터의 북한사회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는데, 특히 김일성이 어떻게 일인체제를 구축해갔는지, 그 일인체제가 어떻게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다만, 김정일에 대한 악감정을 많이 드러내고있고, 자신의 망명을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는 느낌이 많아서 개인적으로는 이 책도 왜곡이 없지는 않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어디까지 사실로 받아들이고 어디까지 왜곡인지를 알 수 없어서 책을 덮는 이 순간에도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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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아저씨 2010-11-2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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