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7

[단독]윤미향 8년전엔…이용수 총선 출마 막아섰다 - 노컷뉴스



[단독]윤미향 8년전엔…이용수 총선 출마 막아섰다 - 노컷뉴스




핫이슈정의기억연대 후원금 논란
[단독]윤미향 8년전엔…이용수 총선 출마 막아섰다


2020-05-27 11:07 | CBS노컷뉴스 김태헌·송영훈 기자

이 할머니, "위안부 문제 해결하고 싶다"며 2012년 출마선언
윤미향 강하게 만류 "국회의원 안 해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
'다른 할머니들도 출마 싫어한다'며 출마 막기도
정작 8년 뒤 본인은 위안부 문제 앞세워 정계 진출


(그래픽=김성기 기자)더불어민주당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인이 지난 2012년에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제19대 총선 출마를 선언한 이용수 할머니를 강하게 막아섰던 것으로 확인됐다. 위안부 피해 당사자의 국회의원 출마를 만류했던 윤 당선인은 정작 8년 뒤 '위안부 문제 해결' 등을 앞세워 직접 국회에 진출했다.

27일 CBS노컷뉴스가 단독 입수한 이 할머니와 윤 당선인의 2012년 3월 8일 통화 녹취록을 보면 윤 당선인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 죽기 위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고 말한 이 할머니에게 "국회의원을 안 해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며 출마를 만류했다.


당시 이 할머니는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도저히 죽을 수 없다. 국회의원이 되면 일본 국왕으로부터 사죄와 배상을 반드시 받아오겠다"며 출마를 선언했다. 윤 당선인과 이 할머니의 통화는 이 출마선언 기자회견 직전에 이뤄진 것이다.

또한 윤 당선인은 이 할머니에게 '(할머니의) 총선 출마를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이 싫어한다'는 취지의 얘기도 했다.이에 대해 이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이 뭐하는 데 기분 나빠 하느냐. 나는 그런 것 때미로(때문에) 할 것 안 하고(하지 않는다)"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 죽어야 한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안타깝다"고 반박했다.





좌측부터 이용수 할머니,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인. (사진=이한형 기자/연합뉴스)
그러면서 "국회의원이 되면 월급은 다 좋은 일에 할 것"이라며 "(네가) 걱정되면 '할머니 건강이 걱정된다'고만 하면 된다"고 국회의원 출마를 만류하는 윤 당선인을 나무라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통화 엿새 뒤인 그해 3월 14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당시 이 할머니는 "국회에 진출해 직접 정부와 일본을 압박하는 것이 살아 있는 동안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출마 배경을 설명했다.

이는 올해 4월 총선에 뛰어든 윤 당선인이 밝힌 출마의 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위안부 피해 당사자인 이 할머니의 정치권 진출을 막아섰던 윤 당선인은 8년이 흐른 이번 21대 총선에 '위안부 문제 해결' 등을 앞세워 출마, 국회에 입성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인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윤 당선인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도 "내용을 파악 중"이라고만 짧게 답했다.
sia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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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 Kyeong Seo
 added a post to the album 역사, 일본군'위안'부.

3 hrs · Public

'말을 곧이 곧대로 하는 성격이 있다. 아닌 건 아니고 늘 분명하다. 일을 잘 한다. 목표한 일은 거의 모두 해낸다. 꿋꿋하다. 일본 아베와도 싸워야하는 운동인 만큼 본인 스스로가 이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에게 흐트러진 감정,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대단히 인내하며 노력한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기 때문에 일도 관계도 맺고 끊음이 분명하다. '
내가 본 윤미향대표의 성향이다.

이런 성향의 사람에게는, 온정적이며 감정적 성향의 누군가는 상처받기 싶다. 상대가 상처를 줘서가 아니라, 본인의 성향이 온정적이고 관계중심이라 일을 해가는 방식도 '감정의 맥락'에서 풀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주 큰 트라우마를 겪은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반면에 목표를 꼭 달성해내고 문제를 즉각 해결하고 도움되도록 일을 만들고 배열하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은 포기한 채, 본인의 감정도 뒤로하고 꼭 해결하고픈 가치로운 일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다소 냉정하고 이성적이며 '보증수표같은' 끈기있는 실행자 성향의 사람에게는....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한 일과 성과가 '배신'이라 말로 돌아오면 그 아픔과 쓰라림을 어찌 다 말로 다 표현할까?

그 관계가 부부이거나 부모 자식관계이거나 아주 오랜 세월 서로 믿고 의지해온 동지 관계라면 더욱 그러하다.
2013년...할머니가 국회의원 나가신다고 할 때, 그냥 "할머니 지지합니다, 인권운동가 우리 이용수 할매가 나가서 이 문제 해결 담판을 지어주세요" 라고 윤미향 대표가 할머니를 격려하는 말을 했으면 어땠을까? 할머니는 새누리당 공천신청 서류접수도 거절 당하고 민주당에는 신청은 했지만 공천에서 떨어졌다. 피해자 경력이 있고 인권운동가인 80 넘은 나이의 할머니를 비례대표 후보로 뽑아주는 것은 그 정당의 몫이다. 

비례후보 공천자리 받기는 쉽지 않았다. 당신이 피해자고 인권운동가로 거듭나고 나이까지 80이 넘은 할머니로서는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일제와 연관된 군위안부 문제를 다 해결하고 가고싶었을거다. 정말로 힘들고 징한 싸움이다. 함께 운동에 나섰돤 친한 할매들도 매년 한 두 명씩 죽어가고 30년을 이어온 수요시위, 손녀같은 어린 학생들까지 고생시키는 것은 더욱 못 볼 일이다. 아흔이 넘은... 거의 반세기를 살아온 할머니의 사고와 관점에서는 할머니 스스로가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것은 노령에도 대단한 결심을 한 것이고, 또 70세 넘어서까지도 보험설계사 일을 하신,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이용수 할머니라는 인간, 열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늘 앞에 서기 좋아하는 할머니 성향을 고려할 때, 할머니는 모두에게 지지받고 응원받고 싶었을 거다. 특히 '우리 윤미향'에게. 

반면에 정치판이 어떤지 잘 알고 전체 운동판을 늘 머릿 속에 넣어두고 고민하는 이 운동의 리더로서 윤미향대표는 울 할매가 나갔다가 여러가지로 상처받을까봐 등등의 이유를 고려하며 '나가지 않는 것'을 권유했을 것이다. 윤미향대표는 감정적 맥락보다 이성적 맥락에 따르며 여러 사안을 보는 성향이다. (내가 옆에서 관계해 본 바로는)

그런데...
그때 그냥, "우리 할매 짱! 나가보소.. 내가 뒤를 봐줄게요. 할매만 믿어요." 라고 말을 했으면 (공천도 못받고 비록 떨어지더라도) 오늘날과 같은 사태, 기자회견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윤미향에 섭섭하지 않았을 것이다.
"윤미향이가 국회나간다고? 8년전 나보고는 못하라고 해놓고....어찌 감히..."
할머니가 윤대표의 전화에 겉으로는 "그래 잘해라"는 대답은 해주었지만 그 대답의 속 뜻은 '나 화났음' 이었다고 말씀하신다. '안아 달라해서 안아준거지 나는 계속 화나고 섭섭하다'고 말씀하신 맥락도 할머니가 감정적으로 단단히 화가 나셨음을 보여준다.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특히 대구라는 지역의 갑갑한 상황 속에, 대구에 사시는 이용수 할머니 마음은 최근 지옥같았을 거고 그 지옥은 인간과의 관계에서 오고, 점점 생각은 과거 일본군에 당했던, (잘못한 것 없는데) 무릎꿇고 빌고 또 빌었는 그 악몽-할머니가 2차 기자회견하시며 피 토하듯 말씀하신 그 대목의 속으로 빠져들며 할머니가 당했던 엄청난 트라우마가 다시 오늘의 할머니를 엄습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 악몽 속에서, 할머니는 지난 30년, 소위 '정신대'운동을 되돌아 보게 되었고 지난 30년 세월은 지금 (윤미향이 국회의원이 된 이 지점부터) 거꾸로 거슬러가서 함께 했던 가장 믿고 의지했던 윤미향의 말과 행동과 할머니가 참여한 활동들이 재배열되며, 선별되고 재해석한 것 같아 보인다. 당신 스스로가 이번엔 군위안부 '성노예'가 아니라 이 운동 단체를 위한 '앵벌이' 피해자로 인식되는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에 돌아서서 과거를 보니,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라는 명칭도 지극이 의심스러워진다. 내가 만두 속 알맹이처럼 이용당한 느낌이다. 밤새 생각해도 내가 왜? ㅠ
할머니를 엄습한 트라우마는 본인 스스로 주체로서 '인권운동가'라는 명함을 떳떳이 내 걸고 일본으로 미국으로 세계만방으로 다니면서 일본군의 범죄를 고발하고 일본정부를 호통치며 어린 학생들에 아픈 역사 속의 교훈을 전하는 운동가로서의 당신 자신을 고스란히 분열시킨다.
객관적으로 외부에서 볼때, 30년 인권운동가로서 할머니의 활동은 활기차고 감동적이며 멋진 여성의 모습이며 찬란했다. (또 가끔은 저 연세에 힘 쓰는 것이 미안하고 짠하기도 했지만.)

할머니가 많은 여성들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말씀하신 대목은 지금 또다시 피해자, 앵벌이가 되었다고 스스로를 인식하는 할머니의 마음에는 너무도 부끄럽고 당신 자신이 못났기에(?) 세상의 여성들을 위해 하시는 말씀이라고 본다. 이 지점에서 볼때 할머니는 여전히 치열하게 당신을 살아온 여성이며 스스로 인권운동가다.
누구나 욕망이 있다. 그것이 오롯이 사익을 위한 것이라면 그 욕망의 크기가 클 수록 함께 사는 세상에 위협적이지만 그 욕망이 공익을 향한 것이라면 그 개인의 욕망이 클 수록 공적 이익은 커진다.
"맛있는 것 먹자해도 밥한끼 안 사줬어요."

이용수 할머니가 우시며 하신 이 말씀 또한 (윤미향 당선자 국회의원 출마 후) 몹시 당신 자신이 서럽고 느꼈던 배신감이 아주 컸음을 보여준다.
할머니 당신의 주관적 팩트가 아닌, 주변의 우리가 본 객관적인 팩트는.... 전국에 계신 할머니들이 어떤 행사(꽃나들이, 목욕, 관광 등) 참여를 위해 서울에 오시거나 운동에 나선 할머니들이 수요시위에 참여하고 UN, 미국의회 등에 해외증언 가실 때 정의연은 최우선적으로 할머니들의 먹는것과 편한 잠자리, 교통수단을 챙겼다. 노령의 할머니들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 운동에 참여한 여러 활동가들은 다 아는 대목이다.
할머니의 주관적 팩트는 '나 이만큼 속상했어.. 어찌 니가 나에게 그럴 수 있어.. 내 마음도 몰라주고..' 딱 이 지점에서 그간의 모든 사건이 섭섭함이 되고 의심이 되는 과정에서 나온 말씀이라고 본다.
군위안부 30년 운동의 가치와 회계부정(?) 의혹 등은 역사학계와 사법부가 잣대를 대어 전후사정 옳고그름을 판단내려야 할 것이다. 그 일은 학계와 기관에 맡기도록 하고, 나는 운동을 일상으로 해온 현장의 활동가와 인권운동가로 나선 피해 할머니의 쉽지 않은 관계를 보고자 한다. 사실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지 않는가? 특히 어떤 피해가 있고 트라우마가 크게 남은 사건의 경우는.
이래서 이 운동은 더욱 어렵다. 부부, 부모 자식 간의 관계 이상으로 어렵다. 공동의 지향점과 목표, 가치가 있지만 사람과 사람 간이 엮이고 서로의 욕망이 충돌하며 서로 다름에서 오는 성향 충돌로 인한 도무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지점에서 그대가 오늘 나를 배신(?)하였고 나는 배신 당(?)했다.
내가 볼때 우리 할매 눈에 보인 윤미향은, 윤미향대표의 눈에 보인 우리 이용수 할머니는... 그 오랜 세월 함께하며 여성인권을 지키기로 뜻을 모은 30년지기, 서로 바라기다. 이 지점이 나는 참으로 슬프고 아프다. 나의 눈에 비친 당신과 당신의 눈에 비친 내가 왜 이런 감정의 골이 생겼는지, 당신도 나도 우리도 가슴에 손을 얻고 차분히 돌아보는 통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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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요 미안해요...
그 마음 내가 알아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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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전쟁과 여성인권운동에서 두 분 모두 큰 일을 했고 이 운동의 가치실현을 위해 30년을 노력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할머니가 잘못했다, 거짓말한다, 윤미향대표가 잘못했다, 많이 해먹었다'는 말로 돌을 맞기에는 이 두 분의 공이 크고 그 가치가 여전하며 이 운동을 이끌어가는 내부 사람들이 많이 아프기 때문이다.
운동을 전개하면서 감정이 상하기도 하고 판단을 잘못하기도 한다. 그건 우리가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용수 할머니, 윤미향 대표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긴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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