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체제론 비판
통일경제포럼
2017. 12. 28
이병창 동아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1. 양국체제론
김상준 교수는 얼마 전(2017. 12. 7) 백년포럼에서 양국체제론을 발표했다. 김 교수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 주장을 이미 2015년부터 제시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의 주장에 상당한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얼까? 이 포럼과 관련된 사람들(이래경 다른 백년 이사장, 김동춘 연구원장)이 현 정부 인사들과 가까우니 현 정부 자신의 입장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단법인다른백년은 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한반도 양국체제와 동북아데탕트’를 주제로 ‘2017 백년포럼시즌3’을 열었다. [사진-통일뉴스]
필자가 보기에 김 교수의 주장은 남북관계에 관해 오늘날 상당히 일반화된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청년들을 만나면 대체로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노무현 정권 이래 통일론을 대체하여 탈분단론이 지배해 왔던 사실을 반영한다. 양국체제론은 탈분단론에서 모호하게 감추어놓은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통일론자로서 양국체제론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할 필요성을 느꼈다. 우선 김 교수의 주장을 경청해 보자.
2. 마의 순환고리
김 교수의 문제의식은 ‘마의 순환 고리’를 깨자는 주장에서 드러난다. 그는 한국에서 대규모 민중의 투쟁으로서 1960년 4.19 혁명, 1987년 민주항쟁, 그리고 2017년 촛불혁명을 들고 있다. 이 세 혁명은 기묘하게도 30년 터울로 발생했다. 그것은 민중 투쟁의 결과 일단 민주화가 되었으나 30년 만에 다시 독재 체제로 되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를 마의 순환고리라 지칭한다.
이렇게 30년 터울로 마의 순환 고리가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김교수는 그 이유를 남북의 대결구도에서 찾고 있다. 6.25 전쟁 이후 남북 대결의 긴장은 남북 모두를 ‘비상 국가체제’로 왜곡시켰다.
여기서 비상 국가체제란 독일의 법학 칼 슈미트의 주장으로부터 김 교수가 끌어낸 개념이다. 즉 국가는 전쟁과 같은 시기에 비상대권을 통해 법의 예외를 설정하는 권리를 가진다. 전쟁 중인 적국은 법의 예외에 속하니, 여기서는 법이 아니라 노골적인 폭력이 지배한다.
비정상국가에서 법의 예외는 비단 적국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시민의 일부도 이런 법의 예외에 집어넣어진다. 나치 시대 수용소나, 미국의 관타나모 이라크인 수용소가 그런 곳이다. 심지어 자국민조차 이렇게 법의 예외에 집어넣는 나라도 있다. 한국과 같은 나라이다. 예를 들어 국가보안법은 시민 중의 일부를 법의 예외에 집어넣은 비상대권의 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 관타나모 수용소의 모습 ⓒReuter
3. 비상대권
이런 비상대권이 6.25 전쟁 이후 지속되어 왔으니, 김교수는 이 때문에 30년마다 민중의 투쟁을 통해 얻어지는 민주주의가 다시 왜곡되었다고 주장한다. 비단 남북 대결만이 문제가 아니다. 6.25 전쟁을 촉발시켰던 국제 냉전체제는 남북 대결에 더하여 남북의 비정상체제를 중첩적으로 결정하여 왔다. 4.19 혁명이 박정희 쿠데타로 넘어간 것은 그런 과잉결정 요인 때문이었다.
다행히 90년대 이후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하여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과잉결정 요인은 사라졌으나, 남북 대결의 긴장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87년 민주체제 역시 이명박, 박근혜의 비정상체제로 왜곡되고 말았다.
김 교수는 이제 2017년 촛불 혁명의 결과로 새로운 민주 정부가 들어섰으니 이런 마의 순환 고리를 깨뜨릴 절호의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한다. 이 순환 고리를 깨는 결정적인 계기는 곧 남북에서 비상대권의 작동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김 교수는 남북 사이의 전쟁 상태 자체를 해소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남북은 아직 전쟁 중에 있다. 남북은 여전히 비정상적인 국가이다. 상대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양국체제론의 핵심은 이런 전쟁 상태를 폐기하고 남북이 상대 국가를 국가로서 인정하는 것에 있다.
4. 탈분단론
이제 김 교수의 주장을 분석해 보자. 김 교수 자신은 자신의 입장이 탈분단론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탈분단론자로 우리나라에는 백낙청 교수나 이종석 전 노무현 정권 NSC위원장을 들 수 있다. 이 두 이론가는 분단체제라는 개념을 통해, 남북의 평화 공존을 역설해 왔다.
김 교수가 사용하는 분단체제라는 개념은 원래 백낙청 교수가 제시한 개념이다. 백 교수는 남북 관계도 세계체제의 하위체제로 본다. 월러스타인의 '세계체제'란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의 공모 아래 제3세계를 착취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백 교수는 이를 남북관계에도 적용하면서, 자본주의 남한과 사회주의 북조선이 분단을 위해 공모해 왔다고 주장한다.
백 교수의 목적은 남북의 분단이 고착 강화되고 있는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다. 백 교수의 분단체제 개념은 남북의 대립이 남북 사회를 각각 왜곡시켰다는 점을 설명하려한다. 특히 남한 사회는 군사독재 정부, 과도한 노동착취, 수출 주도 경제, 잔존하는 봉건제 등 여러 왜곡된 현상이 존재한다. 이 현상을 백 교수는 고착된 남북 분단이 만들어놓은 결과로 설명했다.
백낙청 교수의 '분단체제론 3부작'
그러나 백 교수의 분단체제 개념은 세계체제라는 설명하기 곤란한 너무 무거운 부담을 지고 있다. 백 교수의 주장 이후 탈분단론자는 백 교수의 분단체제 개념을 수용한다. 탈분단론자는 남북 관계가 고착 심지어 강화되는 현상을 설명하려 한다. 탈분단론자는 이를 위해 국제 냉전체제를 설명하는 정치학적 개념을 빌려온다. 그것이 곧 거울이론 또는 쌍대(雙對)이론이다. 흔히 게임이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 거울이론이란 인간의 모든 행동은 상대의 행위에 대한 반응으로 출현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서로 대립하는 행위 당사자는 상대의 행위를 공격으로 인식하며 스스로는 이를 방어하기 위해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는 이 행위를 자기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하며 스스로는 이를 방어하기 위해 행동한다고 믿는다. 국제 냉전은 서로 무장을 강화했는데, 거울 이론은 이는 서로 상대를 오인하는데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탈분단론자는 남북의 긴장된 대립도 이런 거울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믿는다.
탈분단론자의 주장은 세계체제니 하는 설명을 굳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이론적 부담이 줄어드는 대신, 이런 분단 체제가 남북 사회를 전반적으로 어떻게 왜곡시키는가에 대해서 설명하지 못한다. 이종석과 같은 교수는 다만 남북의 정치적 군사적 긴장이 강화되는 현상의 분석에 제한한다. 그러므로 원래 백 교수가 지녔던 문제의식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5. 심리적 폭력
김 교수는 남북 사이에 전쟁이라는 긴장된 대립이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탈분단론자와 유사하다. 그러나 김 교수의 글 가운데 백 교수가 남북의 고착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세계체제 개념은 없다. 김 교수는 다만 6.25 전쟁 이후 전쟁이라는 비상상황이 계속되었다고 말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김 교수의 입장은 이종석 교수와 더 가깝다. 그는 이종석 교수 등이 주장하는 거울이론의 효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를 암암리에 전제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김 교수는 백 교수가 분단체제가 사회전반 특히 경제체제조차 왜곡했다는 데까지 나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종석 교수처럼 그저 남북 간의 정치적 군사적 대립이 강화되었다는 것에 그치지는 않는다. 김 교수는 전시상태라는 비상상황이 비상대권을 통해 권력, 부, 기회의 독점을 낳는다고 말한다. 이것이 비정상국가의 상태이다. 이 차원에서 김 교수의 주장은 분단체제론 가운데 백 교수 쪽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전시적 비상사태 의식은 권력의 비상한 독점 즉 강력한 독재체제의 심리적 온상이 되고 이런 비상 상태는 사회 전 부문으로 관철된다. 권력, 부, 기회의 독점이 전시적 비상상황을 빌미로 정당화되기 때문에 그 독점과 독재는 기형적으로 심화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김 교수의 주장을 백 교수나 이종석과 비교해 보면 김 교수의 이론에 문제가 드러난다. 김 교수의 경우 전쟁 상황이 비정상상태를 강화하는 메커니즘은 물론 권력을 이용한 착취이지만 이 착취 체제를 대중이 다시 묵묵히 받아들이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이게 제시되어야만 비로소 마의 순환고리가 설명된다.
김 교수는 그 근거를 비상 상황은 독재를 받아들이는 심리적 의식을 강화한다는 방식으로 심리적으로 설명한다. 그의 주장은 흔히 말하는 민족 통일론자의 입장과 닮았다. 민족 통일론자1는 남북의 분단이 독재의 유지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 오래 전부터 주장해 왔다.
이런 민족 통일론자는 그 근거를 분단 이데올로기의 역할에 주목했다. 반북반공 이데올로기가 그것이다. 이 반북반공 이데올로기는 체제 내 비판론자를 때려잡는 수단이 되었다. 수많은 반독재 투쟁가가 간첩으로 조작되어 희생당했다. 그 때문에 체제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반공 반북 이데올로기의 틀 내에 갇혔다.
김 교수의 독재의 심리적 온상이라는 개념이나 민족통일론자의 반공반북 이데올로기 개념은 동전의 양면이다. 후자는 독재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동조를 강조하는 것이라면 전자는 비상상황의 심리적 폭력을 강조한다. 둘 다 심리적 복종을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한국사회에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반북 이데올로기
6. 통일론 비판
김 교수의 입장은 독재 체제 즉 비정상국가를 설명하는데 민족 통일론자와 동일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김 교수는 민족 통일론에 대해 비판적인 것인가?
사실 양국체제론이 주장하는 내용 자체는 민족 통일론도 주장해 왔던 내용이다. 즉 남북이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며 상호 협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서부터 양국체제론과 기왕의 통일론자가 구분된다. 기왕의 통일론자에게 남북의 화해나 공존, 협력은 남북 연합이든 높은 단계의 연방제이든, 통일로 가는 길목이었다. 반면 양국체제론은 이런 길목을 길목이 아니라 최종 목표지로 설정하였다.
그는 왜, 이 길목에서 양국체제에 주저앉아 통일로 나가기를 망설이는가? 김 교수는 통일론이 오히려 비정상 체제를 유지하는 빌미를 주었기 때문이라 한다.
“이들이 통치체제를 비판하면서 주장하고 있는 통일이란 결국 대치하고 있는 적의 편에 동조하는 통일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분단체제란 이러한 분단체제 비판세력을 식량으로 먹어치우면서 즉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탄압하면서 자신의 몸체를 괴물처럼 더욱 키워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통일을 요구하면 탄압의 빌미를 주므로, 통일이라는 주장을 하지 말자는 주장으로 김 교수의 입장을 요약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김 교수는 민주화 이후 화해 통일 정책을 실시하려 했던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노력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민주 정부 시기 10년의 대북 화해정책 역시 그러한 상승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여러 성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오히려 반발세력의 강한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이들 반대세력은 민주정부의 남북화해정책을 친북적 분단체제 종식 운동으로 간주하면서 이에 맞서는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일으켰다.”
독재세력은 권력에서 추방된 이후 화해 통일 정책을 반대하면서 자신의 힘을 새로이 구축해 왔다는 주장이다.
2003년 서울 시청 앞 광장의 '반핵반김 한미동맹 강화 6.25국민대회'
7. 엎어 치나 메치나
이러한 김 교수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아예 주장하지 말라는 것은 성폭행 당하지 않으려면 성욕을 불러일으킬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처럼 허황하다. 온몸을 두건으로 칭칭 동여맨다고, 성폭행하려는 남자의 성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남자는 그렇게 칭칭 동여맸기 때문에 더욱 성욕이 도발되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통일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면, 비정상체제를 옹호하는 자는 속으로 더욱 의심할 것이다. 저 놈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유는 마음속에 있는 것을 감추려는 의도이니 더욱 더 의심스러우니, “저 놈을 매우 쳐라”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양국체제를 주장할 뿐 통일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하면 비정상 체제론자는 고문의 유혹을 더욱 강하게 느낄 것이 틀림없다.
김 교수는 양국체제론을 주장하면 독재의 무리들이 성큼 수용할 것으로 본다. 독재의 무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권력의 획득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남북의 단순한 화해협력조차, 북한의 도발이니 뭐니 하면서 반대할 것이다. 어차피 메치나 엎어 치나 마찬가지인데, 통일론으로 나가지 않고 양국체제론에 머무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중요한 것은 빌미를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비정상체제에 대해 유혹을 느끼는 비상상황을 해소해 나가는 것이 아닌가?
8. 지정학적 지위
비상상황 즉 남북 대립을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 자체는 민족 통일론자의 입장과 김 교수의 입장이 같다. 다만 민족 통일론자의 입장에서 볼 때 남북의 통일이 없이는 남북의 대립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김 교수가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반도가 처한 지형적 특수성을 보자. 남북을 둘러싸고 근대 이전에는 중국과 북방이 대립했고 근대 이후에는 해양과 대륙 세력이 격돌했다. 이런 긴장 대결 속에 남북이 있으니, 열강의 긴장은 남북의 대립으로 확산된다.
김 교수 자신은 이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냉전 체제가 해소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남북의 대립을 이런 국제 냉전 체제가 이중으로 결정했지만, 이제 국제 냉전 체제가 사라졌으므로, 남북 대립의 해소를 위한 부담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김 교수는 87년 이후와 달리 이번 촛불 이후를 주목한다.
하지만 김 교수의 주장은 일방적이다. 여전히 중국과 소련, 그리고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대립한다. 그 대립이 낳은 긴장은 굳이 상세한 근거를 들 것도 없이 사드 문제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여전히 국제 냉전이 남북의 대립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현실이니 현실을 인정하자. 그러면 과연 양국체제가 가능할 것인가? 가정 삼아 남북에 그야말로 천재일우로 양국체제가 들어섰다고 해 보자. 남북 양국은 무중력 지대에 들어서 있는 것이 아니니, 주변 열강은 반드시 남북 두 국가를 서로 이용하려 할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열강들
주변 열강은 서로 남북의 사소한 갈등을 침소봉대할 것이다. 각기 남북의 한 국가를 지원하는 척하면서 자기의 이익을 위한 희생물로 삼을 것이다. 남북이 그런 주변 열강의 보호 아래 들어서게 되면, 그 주변 열강을 섬기는 사대주의가 등장하게 마련이다. 사대주의자는 다시 남북의 긴장 대립을 이용해서 비정상체제로 복귀를 시도할 것이다. 사대주의자는 주변 열강의 결정을 자기의 결정인 것처럼 전도한다. 사대주의자는 남북의 대결이 마치 남북 당사자의 생존이 걸린 대립처럼 만든다. 그러면 모두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9. 결론
이제 결론을 내리자. 주변 열강의 대결 구도는 역사학적 개념을 이용해 말하자면 일종의 장기 지속이다. 지정학적인 차원에서 한반도의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민족이 살아나기 위한 유일한 방도는 남북의 통일이다. 적어도 외교 군사적인 차원에서 통일에 이를 때만이 주변 열강의 개입으로부터 자기를 보존할 수 있다. 거꾸로 열강의 외적인 대립을 남북의 내적인 대결로 전환시키는 참담한 결과로 전락하지 않는다.
만일 남북이 통일된다면 주변 열강의 대립구도를 오히려 자주적으로 이용할 수 있으니 그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좋은 것이 아닌가? 주변 열강의 대립 구도 속에서 양국체제는 가능하지도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병창
동아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통일경제포럼 공동대표
bclee197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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