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 문 닫은지 반년, 마음 둘 곳이 없네"... 우울감 시달리는 노인들
입력2020.09.22. 오후 3:52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정부의 ‘고강도 거리두기’ 정책이 지속되면서 우울감을 호소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정부의 휴업 권고로 경로당 등 노인 복지시설들이 반년 넘게 운영을 중단하면서 노인층이 갈 곳을 잃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원본보기조선일보DB
2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달 15일 기준 전국 노인복지관 394개 가운데 97.5%(384개)가 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로당은 6만7192개 중 76.5%인 5만1404곳이 운영 중단에 들어갔다.
노인복지 시설 대다수가 운영 중단에 들어간 것은 지난달 23일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전국적으로 2단계로 격상시키면서 시설 휴업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노인복지 시설 운영이 중단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는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올해 2월부터 7월까지 노인복지 시설 휴업을 권고했다. 7월부터 운영이 본격 재개됐지만 한달여 만에 정부가 운영 중단을 다시 권고한 것이다.
권고는 강제성이 없고, 노인복지 시설 운영 여부에 대한 결정권은 전적으로 각 지방자치단체에 있기 때문에 권고를 따르지 않는 지자체들도 일부 있었다. 코로나 확산세가 약한 일부 지역에서였다. 서울, 인천, 경기 등 코로나 확산세가 심각한 수도권 지역은 모든 노인복지 시설이 휴업에 들어갔다.
지난 1월 코로나 사태 이후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사회적인 활동을 이어갈 노인복지 시설이 운영 중단을 거듭하면서 우울감을 토로하는 노인들이 증가해 왔다. 특히 이번 추석은 정부의 이동자제 권고로 혼자서 명절을 보내야 할 처지에 놓여 외로움과 우울감에 시달리는 노인들이 더욱 늘 것으로 예상된다.
3년 전 남편을 떠나보내고 혼자가 된 김모(75)씨는 "노인복지관과 경로당이 계속 문을 닫아 갈 곳이 없어 집에만 있는데 무력감이 크다"며 "감염 우려 때문에 자식들과도 만나지 않고 있어 외로움이 더 커졌다"고 하소연했다.
이모(71)씨는 "카페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허용하면서, 노인들이 감염병에 취약하다는 인식 때문에 경로당도 못가게 하는 건 부당하다"며 "차라리 격일제로 순번을 정해 경로당에 갈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부는 코로나 사태로 노인복지시설 휴업이 길어졌지만, 대신 노인돌봄 관련 예산과 인력을 늘려 적극 대응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노인돌봄 예산으로 3728억원을 배정, 작년(2458억원)보다 약 52% 늘렸다. 정부 노인돌봄 정책을 수행하는 생활지원사 수도 작년 1만2000명에서 올해 2만8000명으로 약 134% 더 늘렸다.
보건복지부 노인정책과 관계자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 노인복지시설 휴관의 빈틈을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생활지원사를 통한 안부전화 걸기, 식품 배달, 각종 비대면 영상 서비스 등 노인돌봄 맞춤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의 노인복지 정책 대상이 제한돼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해당 정책은 65세 이상 연령층 가운데 기초연금수급자로서 돌봄이 필요한 45만명의 취약노인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813만명) 중 5.5%만 혜택을 보는 셈이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최모(79)씨는 "노인돌봄 맞춤 서비스를 신청하려고 해도 준비할 서류도 많고 복잡해서 못한다"면서 "집에서 보라고 노인들을 위한 영상을 만들었다고는 하는데 집에 컴퓨터도 없고 스마트폰도 잘 다룰 줄 몰라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심민관 기자 bluedrag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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