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4

김시덕 - 총장 물러나라는 서울대 교수 대자보 속에 자리잡은 암투… 규장각에선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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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adimir Tikho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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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단서부터 달자면, 제 페친이시기도 한 김시덕 선생님의 학술적 주장은, 제가 보기에는 상당한 논란의 여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저로서는 '대륙' 내지 '해양" 같은 용어의 과학성 등을 회의해볼만합니다. 한데, 저로서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들을 내놓으시는 분이시긴 하지만, 일단 충분히 실적을 내신 연구자를 "사관이 맞지 않다"고 탈락시키는 부분에 대해 동료 연구자로서는 경악을 금할 수 없습니다. 사관이야 동의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지만, 연구자는 피고용자, 노동자입니다. 노동자의 노동권/인권을 그렇게 함부러 다루면 안되죠.

일본 주류 학풍의 영향을 받는 건, 당연히 문제적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주류가 우향우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해서요...
한데 저는 솔직히 '국사'학계에 아직도 만연하는 어떤 쇼비니즘도 매우 우려스럽게 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쇼비니즘의 내재적 근대 지상주의가 저로서 대단히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1.  왜 하필이면 노비나 여성들의 권리를 추락시키고 유교적 도그마티즘을 공고화시킨 조선초기를 고려말에 비해 "진보"된 "근세"로 보고, 거기에다가 "민본주의" 등등의 미사여구를 가미시켜야 할까요? 
  2. 조선 역사의 흐름은 당연히 변모를 거듭하고 당연히 전진되는 부분도 많았지만, 그 모습이 예컨대 서구의 동시대의 근대화와 많이 다르다고 해서 왜 그 다름을 꼭 은폐시키고 서구와 같은 "근대"를 "발견"하려고 애써야 하는지...모르겠습니다. 
  3. 왜 16세기 동아시아 치고 대단히 보수적이며 관념론적인 사상가인 퇴계이황이 현실 이상으로 확대해석되고 속된 말로 "뻥튀기"돼야 하는지, 
  4. 왜 중국 상대의 3대를 이상적인 치세로 생각했던 "실학자"들을 서구의 계몽사상가와 동일시시켜야 하는지, 
  5. 왜 3대 정치 이상화 연장선상의 다산의 천자추대론을 "민주주의 사상"으로 미화시켜야 하는지...

저는 이해 못하고 그런 식의 '국학'에 대해서 강한 문제의식을 느낄 뿐입니다. 

제국주의자들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박유하교수 류의 역사수정주의는 대단히 위험하지만, 
역사 수정주의에다가 국수주의적 과거 미화 내지 유아독존적 태도로 대항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관은, 30-40년대에 신남철 선생이 이미 천명한대로 철저히 보편주의적이어야 하고, 동시에 밑으로부터의, 억압 받은 사람과 계층의 시각을 내포하는 사관이어야 합니다. 그런 사관이야말로 수정주의의 대항마가 될 수 있죠. 조선시대 사대부나 군주들을 미화하는 것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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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 물러나라는 서울대 교수 대자보 속에 자리잡은 암투… 규장각에선 무슨 일이?
“총장님 이제 그만 사퇴하십시오” 지난 4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엔 성낙인 총장의 사퇴를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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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m Bohnet

You are generally much smarter than me but 


a) .During the very early Choson the status of "women" was not degraded, nor was was "Confucian dogmatism" characteristic of the fifteenth century (for the latter point, seen Duncan, Chong Tuhui, among others). Some new laws were brought in during the fifteenth century which sought to redefine the status of yangban women (부녀), not women as a whole. These rules only gradually influenced how individual yangban families organised themselves during the sixteenth century, and if you follow recent work by Jung Jiyoung among others, had a limited and gradual effect on base and commoner women during the eighteenth, nineteenth centuries and indeed twentieth centuries. 

b) I have not idea what you think 근세 means, but the "early modern period" in Europe, as I expect you know, was also characterised by greater state involvement in family matters and in regulating the position of women. And, for that matter, it was associated with the growth of the slave trade, as indeed was industrialisation in the US. So there is no real conflict in recognising the greater autonomy of Koryo women and the early modernity of Choson. 

Perhaps I misunderstand you.




Vladimir Tikhonov

Dear Adam, thank you very much for the important caveats to my, rather general, claims. 

On the issue of how ChosOn of 15th-18th centuries looked compared to contemporaneous Europe, whole volumes can be written, with a number of nuances (including these you have pointed out to) which we have to accommodate. 
My intention in the posting was simply to point out to the Euro-centric bias intrinsic to the teleology - popular with the Korean history scholars in the Republic of Korea - of ChosOn Korea supposedly following the same direction as the contemporary Western European states, that is, towards "proto-capitalist" economy, status equalization and "Enlightenment"-type thinking. 

While I do not deny that there were important shifts, economically but also epistemologically, I still won't characterize ChosOn society as proceeding to some sort of teleologically pre-destined European-type modernity. But I think that younger historians in the Republic of Korea are much less influenced by this sort of old-school Euro-centric thinking...----


총장 물러나라는 서울대 교수 대자보 속에 자리잡은 암투… 규장각에선 무슨 일이?
입력2017.09.11 18:05 수정2017.09.1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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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님 이제 그만 사퇴하십시오”

지난 4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엔 성낙인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한 국사학과 교수의 실명 대자보가 붙어 화제가 됐다. 

대자보를 붙인 오수창 국사학과 교수는 학생들과의 갈등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시흥캠퍼스 사업의 난맥상을 총장 사퇴의 첫번째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그가 정말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던 사안은 인사였다. 그는 서울대 본부가 규장각 측의 반대를 무릅쓰고 특정인을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조교수로 재임용한 것을 두고 “무엇을 근거로 (본부가) 규장각과 인문대의 각기 두 차례에 걸친 재임용 불가 의견을 뒤집으셨습니까”라고 반발했다. “문제 교수의 연구성과가 결격”이고 “그 내용이 규장각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란 게 그가 밝힌 재임용 불가 이유다.

논란의 주인공은 2013년 임용된 김시덕 교수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한반도의 사활을 건 미래 전략을 짜는 데 있어 필독서가 될 것”이라 평한 베스트셀러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의 저자인 김 교수는 국내 대표적 일본 고문헌 전문가로 꼽히는 젊은 연구자다. 주기적으로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고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소통도 활발하다. 이처럼 역사학계에 보기드문 스타 교수가 ’결격자‘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건의 내막엔 소위 ’튀는‘ 아웃사이더(외부자)에 배타적인 규장각과 서울대 국사학과의 학풍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같은 논문인데 평가 천차만별…본부 “객관성 결여”

본지는 오 교수 대자보의 진위 여부를 확인했다. 쟁점은 

첫째 김시덕 교수의 연구 성과가 대자보의 문언 그대로 결격인지, 
둘째 규장각과 인문대의 결정을 본부가 뒤집는 과정에서 성낙인 총장이 부당하게 개입했는지 여부다. 
결론은 둘다 아니오였다.

인사 과정에 참여한 다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김 교수의 연구실적이 모자라다는 오 교수의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었다. 인문한국(HK) 조교수였던 김 교수가 재임용되기 위해선 4년간 연구실적물이 400%가 넘어야 한다. 서울대에 따르면 김 교수는 대상 기간 중 주저자로 6개의 논문을 써 600%를 달성했다.


논문의 질이 평균적으로 수우미양가로 따졌을 때 ‘우’ 이상 돼야 한다는 서울대 내부 기준도 충족했다. 평가 결과 김 교수의 논문 6개 가운데 5개가 ‘우’, 1개가 ‘미’ 판정을 받았다. 본부 관계자는 “재임용 기준인 400%에 해당하는 4개 이상의 논문이 ‘우’등급 이상이라 재임용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본부 측은 성낙인 총장이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 제기도 근거가 없다고 해명했다. 서울대의 교수 채용 절차는 학과(부) 또는 연구소, 단과대학, 본부의 3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본부 인사위원회는 총장이 아닌 교무처장을 위원장으로, 서울대 내 17개 단과대 학장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올초 규장각과 인문대 인사위원회는 김 교수를 결격자로 규정하고 채용 반대 의견으로 해당 채용건을 본부 인사위원회에 올렸지만 반려됐다. 처음엔 김 교수의 6개 논문 중 3개가 ‘미’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세부 심사결과가 수상했다. 같은 논문을 두고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수’에서 ‘가’까지 극명하게 갈렸다.

본부 인사위는 인문대 인사위 측에 “김 교수 논문에 대한 평가점수를 신뢰할 수 없다”며 ”논문을 다시 평가해 다시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한 본부 인사위원은 “평가의 공정성이 의심되는 결과였다”며 “과거 비슷한 사안에서 서울대가 재임용을 거부했다가 해당 교수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학교 측이 패소한 전례가 있다는 점도 규장각 측에 분명히 전달했다”고 말했다. 재평가 결과 ‘우’등급 논문이 3개에서 5개로 늘었다. 재임용을 거부할 이유가 없어진 본부는 학장 등 인사위원들의 표결을 거쳐 재임용 결정을 내렸다.

◆일본 문헌 연구하면 무조건 ‘친일’인가

이번 논란에서
뿌리 깊은 서울대 순혈주의와 배타성이 고스란히 노출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출신인 김 교수는 일본과 한국의 고문헌을 통해 양국의 교류사를 연구해왔다. 일본의 국립 문헌학 연구소인 국문학 연구자료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2010년 펴낸 일본어로 된 ’이국정벌전기의 세계’로 이듬해 40세 이하 고문헌연구자에게 수여하는 권위있는 학술상 ‘일본고전문학학술상’을 외국인 최초로 받았다. 2015년엔 한국 동방문학비교연구회가 주는 ‘석헌학술상’까지 받아 한·일 양국 학계에서 나란히 연구성과를 인정 받았다.

본인만의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대중적 인기까지 겸비했지만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의 주류를 이루는 전통적인 국사학 연구자들 입장에서 김 교수가 달갑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란 게 사태를 가까이서 지켜본 서울대 교수들의 견해다. 인문대 A교수는 “정식 교수가 아닌 HK(인문한국)연구교수로 임용된 후 외부기고, SNS에 열심이었던 김 교수를 안좋게 보는 시각이 많았다”며 “서울대 국사학과 내 주류는 아직까지 강한 민족주의 성향의 학풍을 가지고 있는데 일본 내 문헌을 근거로 들어 이를 지적하는 김 교수가 이질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 동료 교수들의 시선도 싸늘하다. 단과대 학장을 지낸 B교수는 “규장각이나 인문대에서 내린 합리적인 판단을 본부 측에서 근거 없이 좌지우지했다면 문제지만 

이번 사건은 주류의 생각과 다른 외부자의 시각을 배척하고 출신성분이 다르단 이유로 차별한 사건”이라며 “사관이나 접근법의 차이는 학문적 논쟁을 통해 해결할 일이지 이렇게 한 명의 연구자를 연구소 또는 학과 전체가 따돌림시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인문대 C교수도 “김 교수의 임용을 반대하는 측에선 그의 연구에 ‘친일’ 딱지를 붙였는데 일본 문헌을 바탕으로 연구한 것과 일본 측에 서서 연구한 것은 다르지 않나”라며 “이번 사건은 세계 속의 한국학 연구소를 지향하는 규장각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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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의 전쟁 - 에스콰이어 코리아 
https://www.esquirekorea.co.kr/article/3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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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의 전쟁
김시덕은 보르헤스를 좋아한다. 그는 이야기가 현실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본다. 옛날 책 속에서 지금 세상을 본다
 BYESQUIRE2017.07.26

신기주(이하신) 전쟁을 연구하시는 학자가 요즘은 직접 전쟁을 치르고 계시네요.
박찬용(이하박) 서울대학교와의 전쟁.
김시덕(이하김) 세상과의 전쟁이고, 한국학회 일부와의 전쟁이죠.

신_ 김시덕의 전쟁이 발발한 원인은 무엇인가요?
김_ 지난 수년 동안의 연구 활동 탓이죠. 특히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에선 임진왜란 등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에 관한 한국의 일반적 통념을 깨는 주장을 했잖아요. 그걸 한국의 어떤 사람들은 친일적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한국을 비하한다거나, 일본을 미화한다거나.

박_ 한반도가 원래는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 요충지가 아니었다는 주장이라든지.
신_ 16세기 이후 일본이 융성하기 전엔 대륙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는 내용.
김_ 더 본질적으론 ‘한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나 유라시아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사에서 일본의 비중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더니 제가 친일적이라는 얘기들이 나오더라고요.

신_ 그게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교수의 재임용에서 김시덕을 문제 삼은 근거라니.
신_ 서울대 규장각은 한국학의 메카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지 않고, 규장각의 방대한 자료를 기반으로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아시아학을 할 수 있는 학문적 거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박_ 규장각 하면 정조가 떠오르는데.
김_ 규장각은 정조 시절에는 싱크 탱크였고요.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는 일종의 국가 기록원이었어요. 지금은 이씨 왕실 관련 문헌은 한국학 중앙연구원 장서각으로 옮겨졌고, 나머지 공적 문헌이 모여 있는 곳이 규장각이죠.

신_ 수백 년 동안의 온갖 공적 서류가 다 모여 있다고요?
김_ 한국뿐만이 아니라 가까이는 중국부터 멀리는 유럽 서적까지 모여 있어요. 고종 때 중국에서 번역한 유럽의 경제 서적도 있고요. 1000점 정도 됩니다.

신_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를 읽어보니까, 조선 시대에도 일본 서적이 한국으로 들어와 지식인들한테 영향을 미쳤다고 쓰셨던데, 그 근거가 규장각 자료에 있었던 거군요?
김_ 자료의 힘이죠.

신_ 그렇게 오래되고 보수적인 규장각 같은 엘리트 집단에서 주류와 다른 비주류적 주장을 하는 건 위험한 일 아닌가요?
김_ 한마디로 사문난적이죠.

신_ 학문의 도리를 어지럽히는 자.
김_ 게다가 일본과 관련된 것이니.

박_ 더 위험하겠네요.
신_ 누구보다 전쟁이 벌어질 걸 아셨는데 전쟁을 좋아하시는군요?
김_ 인간은 생각이 다르면 충돌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번엔 좀 실망했죠. 굉장히 거칠게 들어와서. 학문적 논쟁이 벌어질 줄 알았거든요. 세련되게. 그런데 그냥 밀어붙이더라고요. 소송까지 각오하고 있었는데, 이건 뭐. 여기에 서울대 중심의 사고방식도 작용해요. 뭐든 서울대끼리.

박_ 하지만 세상은 서울대가 아닌데.
김_ 그러니까요.

신_ 교수님의 연구도.
김_ 이젠 교수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학교를 나올 텐데.
신_ 박사님의 연구도 결국 한반도 중심의 갇힌 사고방식에서 탈피해 다극 중심의 역사관으로 동아시아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는 거잖아요.
김_ 열국지적인 관점.

신_ 정작 한국학자들부터가 서울대적인 사고, 한국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네요. 그걸 깨려다 보니 전쟁이 난 것이고.
김_ 사실 서울대 국사학과 안에서도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조용히.

신_ 하지만 동조하면 역시 사문난적으로 몰리는 거죠?
김_ 몇몇 사람이 규장각에 대한 아주 좁은 해석을 하는데 그들의 목소리가 큰 거죠. 그뿐만 아니라 솔직히 한국에서 일본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예민해요. 기본적으로 전 제가 쓴 칼럼의 댓글은 안 봐요. 20년간 그랬어요. 글을 쓸 때도 최소한 세 번 정도는 자체 검열을 합니다. 언론 쪽도 안 믿어요. 한국에선 일본 연구가 북한 연구보다도 어렵다고 느껴질 정도예요.

신_ 서울대 규장각에서 처음 김시덕이라는 일본 전문가를 교수로 임용했을 때는 한국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자는 의지가 있었던 게 아닌가요 다극적 관점의 역사관을 수용하려는.
김_ 규장각 안에도 있었고, 서울대 안에도 있었죠.

신_ 그런데 이제 와서 학문의 물줄기를 바꾸려면 최소한 학문적 논쟁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김_ 그런데 너무 거칠게 나오니까 저조차도 처음엔 당황했어요. 정작 그런 사람들이 진보를 자칭하니까. 너무너무 수구적인데.

박_ 그래도 김시덕의 전쟁이 소송까지는 안 갈 거라고요?
김_ 서울대학교는 학교 본부와 단과대의 관계가 좀 독특하거든요. 교육부까지 간여하게 돼 있고. 저의 재임용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의사 결정이 늦어지고 있어요. 정권도 바뀌었고.

박_ 혹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쪽이 386세대인가요?
김_ 맞아요. 저는 한국에서도 일본에서처럼 세대론이 유의미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본의 전공투 세대가 그래요. 공부도 안 했으면서 주장만 강한. 하루키가 정말 치를 떨죠.


신_ 박사님의 주장 가운데 또 흥미로운 건, 이젠 한반도가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충돌이 일어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중요도가 줄어들고 있다는 거였어요. 두 세력이 구태여 한반도를 통해 충돌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거죠.
김_ 대륙과 해양 세력이라는 틀 자체가 사라져버렸으니까요.

신_ 그렇게 기존의 사고방식과는 다른 틀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요? 왜일까요? 다극적 세계관으로 비주류적 비판 의식을 갖게 된 건?
김_ 대학원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 연구 테마를 잡았던 게 일본과 외국과의 대외 전쟁이었거든요. 문헌 조사를 통해서. 그러다 보니 임진왜란이 나왔고 만주전쟁,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다 건드리게 됐죠. 심지어 일본에는 백거이가 일본으로 쳐들어와 전쟁이 난다는 전설까지 있었어요. 백거이의 시가 너무나 인기여서.

박_ 요즘으로 치면 랩 배틀 같은 얘기네요.
김_ 일본이 지닌 문화적 공포 같은 걸 반영하는 거죠. 백거이의 시가 일본에서 워낙 인기였으니까. 중국에서 안녹산의 난이 터졌을 때도 일본까지 쳐들어온다는 전설이 있었고, 신라가 철인을 보내서 침략할 거란 전설도 있었어요. 외부에 대한 공포가 많은 거죠. 김시민이 임진왜란에 관한 복수를 하려고 쳐들어온다는 전설도 있었으니까요.

신_ 상상의 전쟁이네요.
김_ 국제 전쟁이라는 게 워낙 바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경우라,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방에 대한 우월감만 키우면서 모든 게 엉켜버리는 거죠. 상상과 현실이. 상상의 전쟁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현실을 상상처럼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마치 보르헤스의 소설처럼 말이죠.

신_ 문헌학자 김시덕이 보르헤스를 좋아한다 •••.
김_ 제가 워낙 보르헤스를 좋아해요. 보르헤스의 소설을 보면 프리메이슨들이 상상의 백과사전을 만든 다음 상상의 물건을 상상의 논리를 바탕으로 만들고 숨겨두잖아요. 그게 발굴되면 현실이 되는 거고. 이런 현상은 특히 전쟁과 전쟁 문헌을 보고 있으면 잘 드러나요. 상상의 적을 만들고 그 적이 현실에선 진짜가 되고.

신_ 적을 만들고 적을 과장하고 적보다 우리가 우월하다고 믿게 만들고, 그래서 정복해야 한다는 논리를 정당화하고.
박_ 없던 공포도 생기고, 없던 정의도 생기고.
김_ 거의 모든 전쟁에서 발견되는 특징이죠. 사실 저는 밀리터리 마니아도 아니에요. 무기 같은 것에도 별 관심이 없어요. 근본적으로 저는 사람들이 왜 똑같은 걸 두고 다른 생각을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되거든요. 그렇게 생각이 충돌하는 사건이 뭘까 했는데, 그게 전쟁이더라고요. 가장 극적인 충돌이 일어나죠.

박_ 연애 아닐까요?
신_ 연애도 전쟁인 걸로.
김_ 저는 대학에서 일본 문학을 공부했어요. 학문적 스타트가 문학이다 보니까 언어 사용에 예민해요. 전쟁 같은 연애와 전쟁은 정말 다르죠. 정말 전쟁이 난다는 건 인간의 물리적 구조를 완전히 바꿔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전쟁에 관심을 두고 처음 공부한 전쟁이 임진왜란이었어요. 사실 고3 때부터 한일 고대사를 공부하고 싶었거든요.

박_ 고3 때? 노선이 굉장히 확실하셨네요?
김_ 고2 때 신학 대학에 가서 <구약성경>을 공부해볼까도 생각했었죠.

신_ 도대체 어떤 영향을 받으면 고등학교 때부터 그런 데에 관심을 갖게 되나요?
김_ 초등학생 때 본 다큐멘터리 <실크로드> 때문인 것 같아요. ‘이란 어딘가에 금은붙이가 굴러다닌다니 내가 가서 가져올까?’ 뭐 이런 생각부터. 사실 파보면 거의 픽션이죠. 역사와 상상은 그렇게 뒤섞여 있는 거고. 사실 고2 때 <구약성경>에 관한 성경 비평을 하면서 매우 심각한 고민에 빠졌어요. 제 나름대로 성경을 파헤치다가 모순을 발견하고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죠. 그때 목사님의 대답이 제 인생을 바꿨어요.

박_뭐라셨는데요?
김_ 그건 악마의 시험이니까 기도를 하라고. 그때 깔끔하게 교회를 나왔죠. 알고 보니 그 교회가 이단으로 치부되는 곳이더군요. 그러곤 고3 때부터 고대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신_ 그런데 지금은 사문난적. 평생 이단아의 운명일까요?
김_ 평생 이리저리 떠돌아다녀요.


신_ 일본을 연구하다 보면 결국 다극적 세계관에 눈을 뜰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김_ 제국을 경영해본 나라를 공부하면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 같아요. 반면에 중국이나 한국을 공부하면 자기중심적이 될 확률이 높아지겠죠. 그 안에 완성된 세계가 있다고 보니까. 한국은 과거를 배척해요. 그것도 한국 중심적인 사고 탓이죠. 이 안에서만 사고하니까. 좁은 울타리 안에서. 요즘은 안동에서 종손들끼리 삼년상 지내는 경쟁이 붙었다고 하네요.

신_ 2017년에?
김_ 21세기에. 전통이라는 고정관념 안으로만 파고드는 거죠. 사회가 퇴행하고 있는 거예요. 그것 역시도 한국 중심적인 역사관과 세계관에 함몰돼 있기 때문이고요.

신_ 정작 우리의 역사관은 영화 <명량>을 통해 구성돼 있죠. 더 큰 사고를 해야 하는데,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을 통해 형성된 좁은 역사관 안에 있는 거예요.
김_ 전 또 그게 인간사인 것 같아요. 조선 시대 사람들도 역사 공부를 정사를 보고 했느냐? 아니거든요. 다들 소설을 보고 공부했어요. 일본인들의 역사관을 지배하는 것도 시바 료타로가 쓴 역사소설이고, 한국은 김진명이 지배하고 있는 거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진짜 다들 믿잖아요. 전 100년 뒤 한국 현대사를 얘기할 때 역사가의 역사책보다 김진명의 소설이 더 중요한 텍스트가 될 것 같아요.

신_ 김진명이 역사라•••.
김_ 중국도 애초에 <십팔사략>이라는 근거가 희박한 이야기로 역사를 공부했거든요. 일본에서도 훌륭한 사상가라고 불리는 사람의 역사적 레퍼런스를 추적했더니 결국 통속소설이었다는 얘기가 있어요. 제가 전쟁사를 연구하면서 경험한 바로는 역사와 문학과 사상은 결국 한 덩어리라는 거예요.

신_ 우리가 안다고 믿는 역사는 팩트가 아니다.
김_ 지금 <명량>을 보고 역사를 이해한 사람들이 몇십 년 뒤에 한국을 이끌고 있을 텐데요.

신_ 박사님은 그래도 팩트가 많이 담긴 역사서를 자주 접하셨을 텐데요.
김_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그게 싫어요. 역사를 하는 사람들이 ‘이건 팩트가 담긴 사료고, 이건 위서고’ 이렇게 구분하는 게 싫어요. 저는 역사적 사료도 아니고 문학적 가치도 없는 중간의 덩어리 사료에 더 관심이 있어요. 흑백으로 보지 않는.

신_ 평생이 이단아이고 전쟁이군요.
김_ 흑백으로 보지 않고 무지개로 보자는 거죠. 프랑스식으로 말하자면 잡사에 관심이 있는 겁니다.

박_ 대중사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지금 들고 계신 책은 뭔가요?
김_ <도요토미 히데요시 무장들의 연대기>예요. 일본 서민들이 보던 책. 당시 일본 서민들은 이런 책을 보면서 임진왜란을 이해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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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adimir Tikhonov

http://esquirekorea.co.kr/interview/%EA%B9%80%EC%8B%9C%EB%8D%95%EC%9D%98-%EC%A0%84%EC%9F%81/

제가 보기에는 이건 (위의 글] 말이 안되는 이야기죠. 특히 이 문장을 보면 정말 뭔가가 저와 근본적으로 사고방식이 다른 분이란 생각이 들어요: "제국을 경영한 나라를 공부해보면 다극적 세계관에 눈 뜨게 되고, 중국이나 한국을 공부하면 자기중심적이게 된다". 말이 안되죠. 

실은 에도시대의 오규 소라이 등을 "근대사상가"로 억지로 옷단장시킨 일본의 근대 본위주의적 학풍이야말로 한국에서의 "실학"에 대한 억지 근대적 해석의 원조인데요
...말이 안되는 이야기인데, 좌우간 일단 노동자의 권리는 어떤 경우에도 존중돼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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